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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계의 저주들

각 나라의 프로야구계에서는 오랫동안 우승 못하는 팀들의 이유를 저주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페이지.

Contents

1. 풀리지 않은 저주
1.1. 염소의 저주
1.2. 와후 추장의 저주
1.3. 커넬 샌더스의 저주
1.4. 김성근의 저주
1.5.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
1.6. 임수혁의 저주
1.7. 10번의 저주
2. 풀린 저주
2.1. 밤비노의 저주
2.2. 검은 양말의 저주
2.3. 윌리엄 펜의 저주
2.4. 노무라 카츠야의 저주
2.5. 달구벌의 저주
2.6. DTD의 저주

1. 풀리지 않은 저주

1.1. 염소의 저주

밤비노의 저주가 풀린 현재 상황에서 가장 끈덕지게 남아있는 저주. 1940년대 시카고 컵스의 열성팬이었던 빌리 시아니스라는 사람은 애완 염소를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에 데려가서 같이 경기를 관람했다. 1945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월드시리즈 3차전에 입장하려던 그는 염소의 경기장 입장이 금지되자 "다시는 리글리 필드에서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않을 거다"라고 저주했다. 그 해 월드시리즈에서 3승 4패로 우승에 실패한 컵스는 월드시리즈 진출은 물론, 1908년 대한제국 순종 2년 이후 100년을 훨씬 넘어 현재까지도 아직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2003년 저주를 깰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까지 컵스는 3승 2패로 플로리다 말린스를 리드하고 있었고, 6차전 선발투수로, 시즌 18승을 거둔 유망주 마크 프라이어가 호투하며 7회까지 3-0으로 컵스가 앞서고 있었으나…


8회초 말린스의 공격, 이스 카스티요[1]가 친 공이 좌측 파울선으로 날아가는 순간, 스티브 바트만이라는 컵스 팬이 공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면서 좌익수 이세스 알루가 공을 못 잡고 말았다. 이 상황 이후 프라이어가 심리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후 말린스가 구원 투수들을 후드러 패며 컵스는 8:3으로 믿을 수 없는 역전패를 당하게 되었고 7차전에서도 내리 패하며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그들을 밟고 올라선 말린스는 뉴욕 양키스를 꺾고 그해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이 때 건드린 파울볼을 경매로 사들여 공개 폭파쇼를 벌인다거나, 전에 경기장에 못들어 온 시니아스의 후손들을 무료로 입장시키고, 염소를 모셔오거나 하는 등 염소의 저주를 풀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했으나 효과는 아직 없다.

우선 우승을 하려면 탄탄한 투수진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당시의 영건 3인방이었던 프라이어, 케리 우드, 카를로스 잠브라노 중 우드는 결국 불펜투수로 전향했다가 은퇴, 프라이어는 사실상 재기불능 상태로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은퇴, 잠브라노는 한동안 자기 역할을 해줬지만 결국 멘탈이 박살나서 마이애미 말린스로 내쳐졌고, 마이애미에서도 재계약에 실패해서 백수가 되었다.[2]

'리글리 필드'에서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않는다고 저주했으니 아예 새 구장에 가서 저주 자체를 피하면 되지 않냐는 농담도 있다. 참고로 컵스의 첫 전국제패는 리글리 필드가 개장하기 전에 했으므로 리글리 필드에서 우승이 나온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1.2. 와후 추장의 저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1948년을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해보지 못했는데, 이는 컵스 다음으로 오랜 기간 동안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한 기록이다. 팀 로고에 아메리카 원주민을 바탕으로 한 마스코트인 '와후 추장'의 얼굴을 우스운 모양으로 박아넣어 원주민들의 원한이 깃들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는데, 일명 '와후 추장의 저주(Curse of Chief Wahoo)'라고 한다.


그럴만 해 보이네

인디언스는 1948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한 번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다. 1995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97년 플로리다 말린스에게 월드시리즈에서 졌고, 가장 최근에 월드시리즈에 가까웠던 2007년 ALCS에선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3승1패로 앞서가다 3연패를 당해 다잡은 월드시리즈 진출을 놓치기도 했다.

이 저주를 의식한 것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클리블랜드는 2011년 기존의 홈 유니폼을 제외한 리트로 스타일의 홈 유니폼과 원정 유니폼, 얼트 유니폼(원정) 착용 시 경기에 쓰는 모자와 헬멧의 패치를 와후 추장 로고에서 알파벳 C로 바꾸었고 공교롭게도 2011 시즌에는 초반 지구 1위의 호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중부지구 1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15게임이라는 압도적인 격차로 2위에 그치고 말았고, 2위 주제에 승률이 겨우 0.494로 당연히 와일드카드 획득도 실패. 막판까지 치열했던 와일드카드 열전에 대해 알고 싶다면 2011 MLB 와일드카드 레이스를 참조하자. 2013년에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했지만 탬파베이 레이스에게 깨지면서 66년째 우승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1.4. 김성근의 저주

프런트는 팀워크의 낭비
LG 트윈스의 DTD가 과학현상이라면 김성근의 저주는 그 과학 현상들을 모아놓은 과학서적.
DTD따윈 김성근의 저주중 단지 하나에 불과할뿐.

이 저주는 SK 와이번스에서 풀릴뻔했지만 결국... 자세한건 해당 항목 참조.


1.5.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

팀의 우승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저주는 아니다. 자세한 것은 이영민 타격상 항목 참조.


1.6. 임수혁의 저주

롯데 자이언츠는 1992년에 우승한 걸 끝으로, 단 한번도 우승을 못하고 있다. 1999년 플레이오프의 감동이 이어진 2000년 4월 18일, 롯데는 잠실구장에서 LG 트윈스와의 경기를 가진다. 2회초 타석에 들어선 임수혁은 유격수 유지현의 실책으로 1루에 안착했고, 이어진 테드 우드의 우전안타로 2루에 진루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다음 타자였던 조성환이 타석에 들어선 그때, 갑자기 2루에 있던 임수혁이 쓰러졌다. 의식을 잃은 채 다리를 떨며 쓰러진 그의 모습을 본 구단 트레이너가 달려나왔으나, 대처법을 몰랐던 트레이너와 선수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들것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들것을 통해 덕아웃으로 옮겨진 그는 잠시 후 대기하고 있던 엠뷸런스에 실려 수십분 후 강남시립병원(현 서울의료원 강남분원)으로 옮겨졌고, 간신히 맥박과 호흡을 살려내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그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다.[3]



원인은 그가 프로 입단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지병인 심장 부정맥이었다. 2루에 진루한 후, 그의 심장이 갑자기 느리게 뛰면서 뇌로 올라가야 할 혈액이 부족해져서 쓰러졌던 것. 그러나 당시 경기장에는 의사는 대기하고 있지 않았고 구단과 계약을 맺은 병원에서 전문 간호사가 와 있었는데, 현장의 "유일한" 의료인었던 간호사는 이를 더위에 의한 탈진, 즉 일사병으로 판단하고 말았고, 심폐소생술이 급박하게 필요한 상황에서 간호사를 비롯한 선수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숨을 쉴 수 있게 유니폼 단추를 풀고 물을 가져다 몸을 적시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리고 임수혁이 쓰러진 이후로 롯데는 구단 최악의 비밀번호를 찍게 되고 2008년 이후로 성적이 좋았으나 2010년 임수혁이 사망한 이후, 2013년부터 다시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따라서 임수혁은 투병 동안에, 그리고 사망 이후로 총 2번 저주를 퍼부었다.
죽은 건 되돌릴 수 없으므로 완전히 망했어요

1.7. 10번의 저주

이 저주는 OB 베어스의 전 감독 윤동균과 연관이 있는데, 이는 윤동균이 현역 시절 달던 번호가 10번이었고, 한때 영구결번까지 갔지만 1994년 OB 베어스 항명파동으로 물러나면서 슬그머니 해제, 그 후 두산 베어스로 가면서 10번을 단 선수들이 이상하게 부진을 겪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첫 번째 타자는 희성으로 1998년 입단 이후 1년 동안 10번을 달고 뛰었다. 그러나 문희성은 이후 2군을 전전하는 2군 본즈가 되어 2005년 시즌을 제외하면 만년 2군, 백업을 전전하다가 현재는 버스 기사가 되었다고 하는 카더라가 있다.

이후 10번을 단 선수는 강혁(항목 2번). 한양대-OB 사이 이중등록으로 영구제명까지 갔다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보권되어 당시 지명권을 소유한 두산으로 5억 7천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면서 10번을 달게 된다. 그러나 당시 두산은 1루수로 타이론 우즈가 있었고, 거기다 해태에서 최훈재를 영입한 상황. 자리가 없어진 강혁은 대타를 전전하다 2001년 SK 와이번스로 이적, 이후 병역비리로 선수인생이 완전히 망가지게 된다.

강혁이 이적한 후 이번에는 심재학이 2001년 2월 두산으로 오면서 10번을 달게 되었다. 심재학은 2001년 한국시리즈의 우승 주역이 되었고 더불어 성적도 타격 2위인 0.344에 홈런 24개, 88타점을 기록하며 커리어하이를 찍었는데... 2002년과 2003년에 거짓말같이 패망, 결국 2004년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10번의 주인은 사라졌다.

이후 트레이드된 윤성이 10번을 달았지만, 그 또한 2005년 5월 현대 유니콘스 전에서 그라운드 홈런을 친 인생경기를 제외하면 큰 존재감은 없었고, 최준석이 2006년 이적 이후 2007년부터 10번을 달게 되는데, 최준석은 2007년 16홈런, 2009년부터 2011년까지 5번 타자로 맹활약하며 저주가 드디어 깨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고질병인 무릎 부상이 발목을 잡기 시작, 2012년과 2013년을 연속으로 부진하며 군면제를 받고 만다. 일단 2013년 포스트시즌에서는 맹활약을 했지만 FA 협상 과정에서 두산과 갈라서며 친정팀 롯데 자이언츠로 컴백, 부활에 성공하였다.

2015년 현재 10번은 2011년 말 한화 이글스에서 2차 드래프트로 영입한 김강이 달고 있는데, 김재환, 오재일 등에 밀려나면서 2군을 전전하고 있다.

2. 풀린 저주

2.1. 밤비노의 저주

가장 유명했던 야구계의 저주. 보스턴 레드삭스는 1901년 창단한 이후 1918년까지 5번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명문팀이었다. 하지만 레드삭스의 구단주 해리 프레이지는 1912년에 새로 지은 야구장인 펜웨이 파크를 건설하는 데 융자받은 돈을 갚기 위해 1920년 1월에 팀의 간판타자[4]로 전 시즌에 홈런 신기록을 세운 베이브 루스를 12만 5천 달러, 거기에 향후 37만 5천 달러를 빌리는 조건을 덧붙여 뉴욕 양키스로 현금 트레이드했다.

이후 양키스는 루스의 미친듯한 홈런 행진 덕분에 메이저 리그 최고 명문팀으로 성장해 2009년 우승을 포함해 모두 27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반면, 레드삭스는 2004년에 우승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특히 1986년 3승 2패로 앞서고 있던 뉴욕 메츠와의 월드시리즈 6차전, 연장 10회말 동점 2아웃 상황에서 1루수 빌 버크너의 믿을 수 없는 알까기 실책으로 무너지며 7차전마저 패배하며 우승에 실패하자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루스의 애칭을 따 '밤비노의 저주'라 부르기 시작했다.

저주를 풀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 끝에 레드삭스는 2004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양키스를 3연패 뒤 4연승으로 역스윕하며 월드시리즈에 진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시리즈 셧아웃으로 꺾고 우승함으로써 86년 만에 저주를 풀었다. 그러나 당시 커트 실링의 피 묻은 양말 조작설이 돌기도 했고, 후에 타선의 핵이었던 매니 라미레즈데이빗 오티즈의 약물 복용이 사실이 밝혀지며 의미가 퇴색.

어쨌든 이후 레드삭스는 2007년에 샌디에이고-만패-애리조나를 차례대로 셧아웃시키고 올라온 록토버 콜로라도 로키스를 시리즈 셧아웃시키면서 팀의 일곱번째 우승을 기록한다. 그리고 2013년 10월 31일 95년만에 펜웨이 파크에서 8번째 우승을 확정지으며 저주에 확인사살을 찍었다.

2.2. 검은 양말의 저주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1919년 최악의 승부조작 사건인 블랙삭스 스캔들을 일으킨 이후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저주.

당시 구단주인 찰리 코미스키가 지독한 수전노였기 때문에 급여를 짜게 주는 것은 물론 선수들에게 유니폼 세탁비도 받을 정도였다. 결국 돈이 필요했던 화이트삭스 선수 조 잭슨 외 7명은 신시내티 레즈와의 월드시리즈에서 도박사와 짜고 승부를 조작했다. 이후 8명은 야구계에서 영구퇴출 당했고 화이트삭스는 우승을 못하는 것은 물론 연고지에서의 인기도 시카고 컵스에 압도적으로 밀리는 안습의 세월이 86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렇게 안습의 세월을 달리다가 2005년 포스트 시즌에 갑자기 미친 저메인 다이와 조 크리디, 진숙희의 사기짓 등의 활약으로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시리즈 셧아웃으로 꺾어 88년만에 통산 3번째 우승을 거두며 저주를 풀었다. 또한, 월드시리즈를 4전 전승으로 우승한 통산 19번째 팀이 됐다. 무엇보다 지역 라이벌 시카고 컵스보다 우승을 먼저 했으니 기쁨도 두 배. 그리고 컵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한 지 한 세기가 지나가고 말았다(...)

2.3. 윌리엄 펜의 저주


필라델피아 시가 속한 펜실베이니아 주를 건설한 윌리엄 펜이란 사람을 기려 1871년 신축한 필라델피아 시청 건물 꼭대기에는 37피트(약 11미터) 크기의 펜의 동상이 세워졌다.[5] 그리고 필라델피아에는 시청보다 높은 건물을 안 짓는 불문율이 있었는데...

그런데 1987년에 필라델피아에 945피트(약 288미터)짜리 고층 빌딩이 세워졌다. 이후 필라델피아 필리스(야구), 필라델피아 이글스(미식축구),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농구),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아이스하키) 등 필라델피아 시를 연고지로 하는 모든 프로팀이 21년 동안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하는 사단이 벌어졌다. 필라델피아 시민들은 이를 가리켜 펜이 자기가 서있는 높이보다 높은 건물이 세워지자 열폭해서 저주를 걸었다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 저주를 깨기 위해 2007년 6월에 신축한 975피트(약 297미터) 높이의 빌딩 꼭대기에 윌리엄 펜의 인형을 갖다놓았다. 얼마 후에 인형이 도둑맞자 2008년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급히 작은 윌리엄 펜 인형을 구해다 대신 세워두었다. 이 덕분인지 2008년 월드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4승 1패의 성적으로 필라델피아 팀으로는 25년 만에(1983년 시즌 세븐티식서스의 NBA 우승) 우승을 하게 되었다. 다만, 다른 팀들은 아직 우승을 못하고 있어서 절반의 성과.

2.4. 노무라 카츠야의 저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전신인 난카이 호크스에서 활약했던 노무라 카츠야가 선수 겸 감독 시절인 1977년 시즌 2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아내 노무라 사치요의 막장행각[6]으로 인해 감독직을 사임하면서 기나긴 저주가 시작되었다. 특히 1978년부터 1989년 다이에가 난카이를 인수한 후 1997년까지 일본 프로야구 최장기간 B클래스 기록인 6565655664546546456를 세우기도 하였다(참고로 6이 꼴찌).

이후 1995년 왕정치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심기일전하기 시작하여 1999년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센트럴리그 우승팀인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일본 시리즈에서 4승1패로 프랜차이즈 역사상 35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기나긴 저주가 깨지게 되었다. 2000년 일본시리즈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밀려 준우승 했지만 2003년에는 '호호응(호랑이와 매) 시리즈', '산요 신칸센 시리즈'라 불린, 한신 타이거즈와 명승부를 거두며 다시 한 번 일본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2011 일본시리즈 전까지 클라이막스 시리즈 징크스에 걸린 건 안 자랑.

2.5. 달구벌의 저주

1984년 삼성 라이온즈는 전기리그 우승으로 이미 한국시리즈 진출권을 따낸 상황이었는데, 여기서 김영덕 감독은 상대적으로 껄끄러운 OB 베어스[7]보다 만만했던 롯데 자이언츠[8]를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간택(?)하게 되고, 후기리그 마지막 2연전을 롯데에게 모두 내주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우선 트리플 크라운 만들기 작전을 위해 이만수와 장효조를 10경기 전부터 내보내지 않았고, 김영덕 감독은 첫 번째 경기를 2진급 선수들로만 구성해 내보냈는데, 경기 초 2진급 선수들에게 롯데가 탈탈 털리자 김영덕 감독은 아예 노골적으로 져주라고 지시하며 7-0으로 앞선 경기를 9-11로 져주는(...) 위엄 돋는 업적을 달성하셨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경기에서는 전날보다 노골적으로 져주기 승부를 기록하며 롯데의 후기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하셨다. 당시 이만수와 함께 수위타자 부문에 경쟁했던 홍문종은 당연히 덤으로 9연속 고의사구를 당했다...

그러나 그 후 벌어진 한국시리즈에서는...

그리고 84년 이후 삼성은 86년, 87년, 90년, 93년, 01년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패했고, 이기간중 한국시리즈 12연패, 한국시리즈 잠실 구장 10연패(...)라는 흠좀무한 대기록을 작성하며 85년 통합우승을 제외하고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82년 준우승을 포함하면 한국시리즈 6회 진출 모두 준우승이라는 위업마저...

그리고 2001년 우승 청부사 김응용 감독을 모셔와 발비노 갈베스의 활약으로 87년 이후 간만에 페넌트레이스 출범이후 첫 우승을 기록하며 93년이후 9시즌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투수진의 전체적인 난조로 그만 2승 4패, 페넌트레이스 체제 출범이래로 3번째, 프로야구 통산 4번째 한국시리즈 직행팀의 준우승이라는 뼈아픈 기록을 다시한번 작성해야했다. 이 준우승은 김응용 감독의 첫 준우승이기도 했으며, 이때 삼성은 '정말 안되는 것인가?'란 주제로 인터넷 야구 게시판이 크게 달구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저주는 이듬해인 2002년 이승엽-마해영의 극적인 홈런 2방으로 떨쳐내면서 삼성은 장장 19시즌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내며 달구벌의 저주에서 벗어나기에 이른다. 82년부터 치면 21시즌, 8번째 한국시리즈를 맞아 거둔 우승이었다. 그 이후 2003년 을 이끌었음에도 4위(정규리그 성적, 3위). 2004년 또 다시 준우승에 머물다가 2005년, 2006년 우승, 2007년, 2008년에는 연속 4강, 2009년에는 한번 탈락(5위), 2010년 준우승을 하다가 다시 2011년에 우승, 2014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2.6. DTD의 저주

김성근의 저주중 하나. DTD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뭐, 다들 알고 있겠지

비밀번호는 2003 시즌 부터 찍었지만, 이 저주는 김재박 감독이 LG에 취임한 2007 시즌부터 적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DTD 언급자인 김재박의 취임 후에도 가을야구에 계속해서 탈락했다는 것과, 상위권에 있다 결국 DTD를 시전해 가을야구에 탈락했다는 것이 겹쳐 저주로 굳어졌다. 이미 스포츠 언론에서는 정착된 용어.

일단 2013년에 드디어 비밀번호를 끊어내면서 가을야구를 확정하면서 저주는 깨졌다. 가을야구 탈락을 한다는 저주이니 가을야구 진출을 하면서 깨진것이 맞는데, 플레이오프에서 광탈을 하면서 아직 저주가 깨진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새어나오고 있다. 2013년에는 LG보다는 기아 타이거즈타어8DTD의 범주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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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히 드랍 더 볼로 유명한 그 선수 맞다.(...)
  • [2] 이러한 원인이 전 신시내티 레즈 감독이었던 베이커의 혹사가 문제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 [3] 여담이지만 다른 나라 같은 경우에는 TV인터넷 등 대중인들이 제일 손대기 쉬운 매체에서 구급법 강좌가 지겹도록 나온다. 만화영화 같은데서도 보면 사람이 의식을 잃었거나 하는 경우 과장되었긴하지만 의사도 아닌 주인공이나 조연들이 갑자기 의사처럼 돌변해버리는 장면도 이런 사회적 고증에 맞췄다고 볼 수 있다.
  • [4] 1917년까지는 간판투수였다. 이후 외야수로 옮겼지만 아직 투수로도 출장했다.
  • [5] 참고로 시청 건물의 높이는 548피트인데, 548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전설로 남은 3루수인 마이크 슈미트의 통산 홈런수이기도 하다.
  • [6] 선수 부인들을 갈군다든가, 선수 기용에 간섭한다든가 등등
  • [7] 김영덕 감독이 OB 선수들의 뒷통수를 쳐버리고 삼성 감독으로 온터라 84년 전기리그에서 두 팀 간에 난투극이 있기도 했고, OB는 84년 전후기 통합승률 1위를 기록하는 등 삼성 못지않은 강팀이었다.
  • [8] 전기리그 상대전적이 9승 1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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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3 16: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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