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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급 전함

last modified: 2015-04-14 00:03:59 by Contributors

Contents

1. 제원
2. 개요
3. 동형함과 건조계획
4. 대단한 스펙
4.1. 구조
4.2. 무장
4.3. 장갑
4.4. 속도
4.5. 시설
5. 안습신화
5.1. 주포의 실상
5.2. 허술한 장갑
5.3. 느린 속도와 짧은 항속거리
5.4. 불충분한 시설
5.5. 부족한 부품과 장비
6. 실전
6.1. 미드웨이 해전
6.2. 야마토 호텔과 무사시 여관
6.3. 어뢰다!
6.4. 레이테 만 해전
6.4.1. 시부얀 해전
6.4.2. 사마르 해전
6.5. 시나노 격침
6.6. 격침
6.7. 격침의 의미
6.7.1. 일본
6.7.2. 미국
6.8. 야마토급의 전과
6.9. 번외편: 과달카날 해전에 불참한 이유
7. 평가
7.1. 일반적인 평가
7.2. 과연 세계 최대의 삽질인가?
7.3. 야마토의 설계도면
7.4. 일본인들의 야마토에 관한 인식
8. 기타
9. 가상 매체에서의 야마토


1. 제원

IJNBBYamato000.jpg
[JPG image (202.68 KB)]
IJNBBYamato001.png
[PNG image (1.76 MB)]
구분건조시(1941년)최종사양(1945년)
기준배수량65,027t유지
만재배수량71,659t유지
전장263m유지
전폭38.9m유지
흘수선11m유지
추진력150,000shp유지
보일러로호함본식 보일러 12기유지
터빈함본식 증기터빈 4축 4기유지
스크류3엽 프로펠러 방식 스크류 4기 (직경 6m)유지
속도27knots (50㎞/h) (통상시), 29knots (과부하시)유지
항속거리16knot (30㎞/h)로 7,200해리 (13,334㎞)유지
승조원2,500명 (정규인원), 2,800명 (최대수용인원)유지
주포460㎜ 45구경장 3연장 주포탑 3기 (총 9문)유지
부포155㎜ 60구경장 부포탑 4기 (총 12문)155㎜ 60구경장 3연장 부포탑 2기 (총 6문)
대공포127㎜ 40구경장 2연장 대공포탑 6기 (총 12문)127㎜ 40구경장 2연장 대공포탑 12기 (총 24문)
대공기관포25㎜ 3연장 기관포좌 8기 (총 24문)25㎜ 3연장 기관포좌 52기, 25㎜ 단장 기관포좌 6기 (총 162문)
대공기관총13.2㎜ 2연장 기관총좌 2기 (총 4문)유지
소나영식수중청음기(패시브 소나)유지
장갑주포탑 전면 660㎜, 측면장갑 410㎜, 갑판장갑 226.5㎜, 함교 500㎜유지
함재기수상정찰기 7대, 캐터펄트 2기 장착유지
건조비용 약 137,802,000엔 [1]

2. 개요

인류 역사상 최대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
대화 여객 1~3번함[2]

구 일본 해군이 건조한 사상 최대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 일본군 해군의 팽창을 억죄이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런던 해군 군축조약에서 탈퇴한 일본이 기어이 조약의 제한을 무시하고 건조한 규격 외의 초거대 전함이다. 크기나 배수량만 해도 현대의 대형 크루즈선에 필적할 정도.

초도함 야마토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뛰어들기 직전부터 건조를 시작해, 전쟁이 일어난지 얼마 후에 진수, 취역했다. 야마토는 그야말로 거함거포주의의 극에 달했다고 할만한 전함으로서, 지금까지도 그 기록이 깨지지 않았고 이제는 깨질 이유도 없는 공전절후의 46㎝ 함포를 탑재한 전장 263m, 전폭 38m의 거대전함으로 이 거함에 맞먹는 덩치를 지닌건 영국의 후드급 순양전함, 미국의 아이오와급 전함 정도며 이들도 함체의 길이가 비슷한 수준이지 함체의 폭은 야마토급 전함이 더 넓다. 이게 얼마나 큰 건지 실감이 안 난다면 일반적인 학교 운동장이 보통 너비 100m이거나 더 작은곳도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래서 일반 전함과 비교해도 크기 때문에 야마토와 나가토가 나란히 항해하는 모습을 본 미군 정찰기 조종사가 '전함 한척과 중순양함 한척을 발견했다'라고 보고하는 에피소드가 있었을 정도다. 나가토 지못미

실례로 야마토의 승조원이었던 해군 장교 이시다 나오요시의 증언에 의하면, 함내에서 길을 잃을 때를 고려해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를 알려주는 화살표가 함내 곳곳에 있었다고 한다.[3] 게다가 두터운 방어장갑 덕에 기준배수량만 6만5천여톤, 만재 배수량이 7만톤에 달하는 괴물이었다. 이 배수량 기록은 1950년대 말 미국이 현대식 대형 항공모함인 포레스탈급 항공모함을 취역시킬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4]

그 덩치에 걸맞게 건조비도 무지막지한 수준으로 퍼먹어서 야마토의 건조비용은 당시 금액 기준으로 1억4287만엔, 2006년시의 환율로 환산시 약2604억762만엔이 소요되었다.[5] 이것은 야마토 단 한 척으로 일본의 고속철도도카이도 신칸센(東海道新幹線) 전체 구간을 건설가능한 엄청난 금액이었다.

한자까지 똑같기 때문에 보통 일본의 고대 국가의 이름을 딴 전함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번국 가운데 하나인 야마토노쿠니(大和国)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실 야마토의 자매함인 '무사시'와 '시나노'의 어원만 찾아봐도 알 수 있다. 무사시는 무사시노쿠니(武蔵国), 시나노는 시나노노쿠니(信濃国)에서 따왔다. 참고로 일본해군의 전함 명명법은 옛 일본의 번국에서 따온다. 그 예로 나가토나 무츠도 번국의 이름이었다. 얘들이 하도 야마토혼 타령을 해대니 헷갈릴 만도 하지..

하지만 안습한 함생의 이력에 비추어 여객선이라고도 불렸으며, 실제로 태평양 전쟁 기간중 야마토는 취역 이후 자매함 무사시와 함께 트럭섬에 거의 쳐박혀있어서 일본 해군 장병들은 대화여객 야마토 호텔이라고 부르면서 조롱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무사시도 무장운수 무사시 료칸(여관)으로 불렸다.

야마토 포를 발사한다고 한다. 파동포가 아니고?[6]

3. 동형함과 건조계획

야마토급 전함은 총 8척이 계획되었으나, 실제로 군함으로서 완성된 것은 3척, 전함으로서의 야마토급은 단 2척에 불과했다.

야마토의 원형인 A-140 디자인의 여러 안들. 공식 설계는 아니고 설계 내용을 바탕으로 한 그림

A-140 디자인 중 함수에 주포탑 3기를 집중배치한 안의 가상사진

야마토의 최초 건조 계획은 A140 설계안이라 명명되었으며, 실제 건조된 야마토보다 더 무거웠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A, D, G형 디자인에선 화력 집중을 위해 넬슨급 전함 처럼 주포탑 3기를 모두 함수쪽에 설치했다는 것이다.#. 이외에 설계안에 따라 2연장 주포탑을 사용하는 안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계획상에선 출력도 20만 마력에 속도는 30노트로 충분히 고속전함이라 불릴만 한 수준이었고 배수량은 68,000톤으로 계획되었다.

실제 건조는 전함으로서는 1번함 야마토에 이어서 2번함 무사시가 건조되었다. 뒤이은 3번함 시나노는 후술할 사정에 의해 도중에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야마토급의 3번째 전함은 건조 당시에 110호로 불렸는데, 1940년에 기공이 되었고 1945년경 완공이 예상되었다. 1942년 6월이 되자 일본 해군은 아직 건조중인 전함을 항공모함으로 개장할 것을 지시하였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항공모함 시나노(信濃)다. 이때 선체는 45%정도 건조 중이었고 항공모함으로 개장하게 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항공전력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실제 이유는 건조에 필요한 인력과 작업공간의 부족 및 예산의 심각한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일본해군 : 지금이라도 건조에 필요한 자원을 조금만 더 주신다면...

4번째 야마토급 전함은 111호였으며 30% 정도 선체가 건조 중이었는데, 1941년 12월에 건조 취소 명령이 내려졌다. 이쪽도 역시 다른 무엇보다도 예산 부족이 원인이었다. 그나마 111호까지는 선대에서 건조중이었고, 부품도 일부 만들어진 상태라서 111호용의 부품과 자재는 야마토급 전함의 수리 보수용으로 사용되거나 시나노의 건조에 유용되었다.

5번째 야마토급 전함은 797호였는데, 야마토의 155㎜ 부포를 완전히 없애고 100㎜ 대공포를 다수 장착하는 설계였다. 대공화력을 강화한 전함이었지만 이 전함의 건조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으며 이유는 역시 예산의 부족이 주요 원인이었다. 선대에서 건조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건조를 위해 준비했다가 남은 자재는 역시 시나노 등 다른 함선의 제조에 사용되었다.

6, 7번째 야마토급 전함은 슈퍼 야마토급으로 불리기기도 하며, A-150 전함 설계안에 따라 만들어지려 했으나 예산 낭비로 판단되어 취소되었다.

8번째 야마토급 전함은 제대로 된 설계나 구체적인 개념도 없이 희망사항으로 끝났다.

물론 태평양 전쟁이 개전하면서 건조에 시간과 비용, 자재가 많이 소모되는 대형함선보다는 구축함과 잠수함 등 소형함 위주로 건함 방침이 변경되었고,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로 항공모함이 부족해지면서 더 이상 전함을 건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줄기차게 여러가지 설계안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일본에게 미국 수준의 경제력이 있다면 8번함까지 건조할 가능성은 충분했으며, 이 경우 거함거포주의의 극치를 끝까지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을 논하기엔... 가라앉을 자매는 가라앉는다

4. 대단한 스펙

거함거포주의의 극한을 추구했으며, 당시 일본의 기술력을 집대성해서 만든 물건인지라 적어도 카탈로그상에서는 엄청난 스펙을 자랑한다.

4.1. 구조

기존의 전함들을 운용하면서 생겼던 문제점들을 뒤늦게나마 야마토급의 설계에 적용시켰기 때문에 기존의 일본군 전함과는 달리 의외로 개선점이 몇 보인다.

  • 최대급 전함이지만 성능에 비해서는 작다 -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큰 전함이면서도 18인치급 주포를 탑재한 전함치고는 작게 설계되었다. 애초에 설계 당시에는 모든 성능을 충족시키려면 적어도 야마토의 실제 배수량보다 15,000t ~ 20,000t의 배수량이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최대한 최적화 및 신규 기술의 도입으로 인해 배수량을 최대한 억제했다. 이렇게 함으로서 과도한 건조비용과 엄청난 자재량을 절감하고, 건조시간도 최대한 단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일본내에서는 최대급 전함이면서 동시에 최소화를 지향한 전함이라는 평가까지 있다.

  • 3연장 주포탑 채택 - 기존의 일본 전함은 3연장 주포탑 제조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7] 2연장 주포탑만 사용이 가능해서 열강의 주요 전함처럼 주포문수를 12문 정도로 유지하려면 후소급처럼 주포탑을 무려 6기나 탑재해야 했고, 야마토가 등장하기 전의 일본군 최대이자 최강의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나가토급 전함조차도 주포를 8문 탑재하기 위해 주포탑을 4기나 탑재해야 했다. 하지만 야마토를 건조하면서 일본도 마침내 3연장 주포탑 제조기술을 확보하게 됨으로서 주포를 9문이나 탑재하지만 주포탑은 3기만 탑재해도 괜찮았다. 이로 인해 중량절감과 방어력 상승, 여유공간의 확보가 가능하게 되었다. 본래 전함 배수량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게 바로 그 특유의 대구경 주포와 중장갑이라는걸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이리하여 결과적으로 다른 함선으로 치자면 최대 주포탑 3기 분량의 배수량이 전부 함체의 여유 배수량으로 흡수되었기에 장갑이나 다른 시설을 여유롭게 강화할 수 있었고 후술할 개량에 필요한 배수량도 넉넉하게 확보됐다.

  • 함교의 복잡화와 거대화 방지 - 기존의 일본 전함은 '파고다형 함교'로 통칭되는 높고 거대한 함교를 가지고 있었으며, 성능개량시마다 함교에 추가구조물이 덕지덕지 붙어서 함교가 매우 비대화되었고 마치 처럼 무식하게 높은 함교가 함체에 우뚝 솟은 기괴한 용모가 되었다. 이렇게 될 경우 배의 무게중심이 상승하고 매우 높은데에 위치하기 때문에 악천후시 배가 전복될 수 있으며, 함교라는 좁은 공간에 다수의 시설이 밀집한 결과 각 시설물에 필요한 공간이 태부족인데다가 함교에 주포탄이나 폭탄이 명중하면 파괴 정도에 비해 시설물의 피해가 막심한 부작용이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앞서 언급한 주포탑의 과대한 탑재로 인해 여유공간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므로 야마토에서는 함교에 필요한 시설물 외에는 다 함체로 분산처리했다.

  • 연돌의 집중화 및 위치선정 최적화 - 기존의 일본 전함은 연돌이 2-3개라서 항해시 매연으로 인해 함교의 시야가 가리는 등의 부작용이 있는데다가 공간도 많이 차지하므로 개장시마다 연돌을 1개로 정리하는 추가작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야마토에서는 아예 연돌을 1개로 집중화하고, 함교에서 상당히 떨어진 후방에 경사형으로 설치함으로서 매연으로 인한 시야감소를 최대한 억제했다.

  • 360도 선회식 부포탑 도입 - 기존의 일본 전함은 제1차 세계대전의 유물인 포곽식 부포를 보유했는데, 이런 방식의 부포는 측면장갑에 구멍을 뚫으므로 방어력 하락이 발생하고, 포신의 상하좌우각도 조절에 엄청난 한계가 있으므로 대공사격이나 장거리 사격이 불가능한데다가, 포곽의 특성상 후방부를 모든 부포가 공유하므로 부포 포곽중 한개만 포탄이 관통하는 사태가 발생해도 유폭이 퍼지기 때문에 해당 측면의 모든 부포가 파손되거나 손상을 입어서 전투력이 격감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야마토에서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었으므로 부포는 독자적으로 선회및 부양이 가능한 부포탑에 탑재해서 부포의 숫자도 줄이면서 효율적인 방어가 가능하게 되었다.

  • 대공무장의 강화 - 기존의 일본 전함은 주포탑의 과대 적재로 인해 대공무장을 탑재할 공간이 크게 부족해서 적군의 항공세력에 매우 취약한 문제점이 있었다. 하지만 야마토는 주포탑을 3기로 정리하고 적절한 위치에 탑재함과 동시에 배수량 측면에서도 대공화기의 장착에 돌릴 여유를 가질 수 있으므로 200여문에 가까운 대공무장을 탑재해서 일본군 전함중 가장 대공방어능력이 높았다.

  • 함체의 성능향상 - 기존의 일본 전함은 구식 구조라 속도 향상을 위해 나중에 함체의 구조 자체를 변경하는 일이 잦았으나, 야마토는 구상함수를 처음부터 채택하고, 함체 구조도 포격성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저항이 적고 깔끔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공고급 순양전함을 제외하고는 가장 빠른 속도인 27노트가 가능했다. 또한 어뢰 공격을 막는 벌지도 최대한 많이 붙이면서도 표면을 깔끔하게 처리하여 다른 개장 함선처럼 벌지를 더덕더덕 붙여서 속도가 크게 감소되는 일을 막았다.

  • 각종 시설의 첨단화, 고급화 - 기존의 일본 전함은 공간부족과 여유 배수량 부족으로 인해 각종 시설이 충분하지 못한데다가 그 성능도 열악한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승조원이 거주 및 전투하는데 상당한 악영향을 주는데다가 전함의 전투능력 자체도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때문에 야마토는 내부 시설을 확충하고, 레이더등의 첨단 시설도 설치해서 전투력 향상과 장병 복지를 동시에 추구했다.

이렇게 해서 야마토는 적어도 일본군이 보유한 전함중에서는 가장 강력하고 성능이 뛰어난 전함이었다. 물론 속도면에서는 공고급 순양전함에 밀리지만, 공고급은 원래 태생이 순양전함인데다가 태평양 전쟁 개전 시점에서 함령이 30년을 넘은 수준의 노령함이고, 주포의 위력도 가장 약한 편이라 함대결전에서는 주력으로 운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4.2.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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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즈키급 구축함 1척과 맞먹는 주포탑 1기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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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포인 18.1인치 주포탑과 여타 실존/비실존 병기들과의 크기 비교(…)

© Bsyamato (cc-by-sa-3.0) from
길이만 해도 2m에 달하는 거대한 포탄.
맨 왼쪽과 가운데의 탄두가 날카로운 형태의 포탄이 각각 91식 철갑탄과 그것의 개량형인 1식 철갑탄이고 오른쪽의 뭉툭한 탄두를 가진 포탄이 전함용 대공포탄인 3식 통상탄. 맨 오른쪽의 깡통을 쌓아둔 모양의 물건은 장약이다.

그 압도적인 규모에 걸맞게 탑재한 무장도 일본은 물론 열강의 주력 전함과 비교해도 '일단은'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우선 야마토의 주포는 대외적으론 18인치라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히는 18.1인치이다. 1인치가 2.54㎝이니 18인치는 457㎜이며, 야마토의 주포는 정확히 460㎜이므로 18.1인치가 맞다. 이는 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조약상의 주포 구경 제한인 14인치는 물론이고 기존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의 주포 구경 제한인 16인치조차 넘어선 것으로, '함선에 장착된 것으로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포로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그러나 바로 아래 구경과 그리 큰 격차라고는 못하는 것이 2위가 겨우 0.1인치 작은 18인치 포이기 때문이다(...) BL 18인치 Mk 1이라는 영국의 함포인데, 전함에 쓰인 것은 아니고 HMS 제너럴 울프라는 모니터함과 HMS 퓨리어스라는 순양전함에만 장착되었다. 심지어 실제 탄두의 중량은 더 무거웠다고..

함선으로만 한정하는 이유는 지상 병기중에서는 유명한 구스타프 열차포(800㎜)를 비롯하여, 칼 자주박격포(600㎜), 리틀 데이비드(914㎜, 36인치), 차르 대포(890㎜)같이 전함조차 한수 접어주는 흉악한 구경을 가진 괴물 포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중량에 연연할 필요가 그다지 없는 대구경 열차포나 구식 화포였기 때문이었기에 운송과 발포가 가능했다면 구경은 딱히 상관이 없었다. 당장 열차포는 주로 쓰이는게 보통 중순양함 급인 구경 240㎜ 급이었고 좀 더 화력이 필요하다면 전함 급인 300㎜나 400㎜ 급도 소수나마 제작되어 쓰였다.

일본 해군은 야마토급의 건조에 있어서 매우 공을 들였기 때문에 미국 등 해군열강이 기존 워싱턴-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제한을 넘는 전함 건조의 동기를 유발하지 않기 위해서 표면상으로 '94식 40㎝ 포'라는 명칭을 붙여서 15.7인치 주포라는 것처럼 위장하였다. 40㎝이라고 쓰고 18.1인치라고 읽는다. 덕분에 미군은 이 46㎝포의 존재를 전쟁이 끝난 뒤에야 깨닫게 되었고, 심지어 야마토에 탑승했던 일본군 수병들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야마토의 포를 40㎝로 알고 있었다는 모양.

물론 18.1인치 대포라는 당시 해군 조약이고 표준 규격이건 뭐건 다 씹어먹는 괴물같은 물건이 당연히 기성품으로 있을리가 없기 때문에, 일본이 자체적으로 비밀리에 개발해야 했으므로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래서 주포 제작에 새로운 방식의 제조 방법이 도입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긴축법(自己緊縮式, Autofrettage)이라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포신 내경을 구경보다 약간 작은 상태로 가공해 포신 내부에 고압의 압축수를 채워 가압을 시키면서 내경을 팽창시킨다. 이렇게 하면 포신에는 내경을 수축시키려는 응력이 발생하여 잔류된다. 이 잔류 응력은 포탄이 발사될 때, 폭압에 의해 팽창하려는 응력과 반대 방향의 응력이며, 결과적으로 포신에 걸리는 응력이 상쇄된다. 이로 인해 같은 재질에서도 포신 두께를 얇게 할 수 있어 제작비용 및 중량을 감소시킬 수 있었다.

초기에는 영국으로부터 습득한 소감식(焼嵌式, shrinkage fit) 방식의 포신 제조법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포신을 내통과 외통으로 2층 구조로 하여 외통을 가열해 열팽창시킨 상태로 내통을 집어넣어 급냉시키고 외통이 수축시켜 단단히 조인 상태로 고정된다. 이것은 중소형 포신의 제조에 주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대구경 함포의 경우는 강선식(鋼線式, gun wire) 포신 제조법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소감식과 같은 방식이나 내통의 표면에 건와이어(gun wire)로 불리는 강선을 고장력을 걸친 상태로 감아서 외통을 씌우는 타입으로 주로 대구경 포신의 제작에 이용되었다.

그래서 야마토급 전함의 주포 제작에는 여러가지 기술이 결합된다. 일단 94식 45구경 46㎝ 포신는 안쪽으로부터, 1A 내통, 2A 강통, 3A 강통, 4A 건와이어, 5A 강통의 5개의 레이어 구조였다. 각각의 강통은, 소감법을 이용해 압축 응력을 갖게 하여 기본적으로는 소감식 포신이지만 강선식(鋼線式)과 자긴식(自緊式)이 동시에 적용되기도 하였다. 참조로 건와이어는 두께 1.5875㎜, 폭 6.350㎜를 사용하였다. 한마디로 종합하자면 가장 강력한 함포를 만들기 위해 당시의 일본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력이란 기술력은 총동원된 것이다.

게다가 건조 도중에는 물론 태평양 전쟁이 종전될 때까지 야마토급 전함의 실제 스펙에 대한 정보를 기밀처리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였고 결국 전쟁이 끝날때까지 야마토급 전함의 존재나 스펙을 감추는데 성공하였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미국은 일본이 신형 전함을 건조중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주포 구경이 18.1인치인 줄은 몰랐고, 일본 신형 전함에 맞서 건조한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은 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을 준수하여 "16인치 주포를 탑재할수도 있는 14인치 포격전함"으로 설계되었다. 따라서 함대결전사상에 따라 일본군이 생각한 함대결전에서는 미국의 전함중 어떤 전함도 1대 1 승부가 불가능하리라고 예상되었다.

부포도 일본제국의 입장에서는 기적이라고 볼 수 있는 155㎜ 60구경 3연장 포탑인데, 해당 포탑과 함포는 모가미급 중순양함에 탑재한후 잘 쓰인 물건이며, 나중에 모가미급 순양함이 진정한 중순양함이 되기 위해 8인치 주포탑을 탑재할 때 8인치 주포탑이 발사속도, 사정거리, 명중정도에서 모두 불리하므로 교체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있었을 정도로 성능이 우월한 제품이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360도 선회포탑인데다가, 함체 중심선상에 배치되므로 기존의 다른 전함처럼 적이 한쪽 측면으로 붙으면 다른 쪽 부포가 무용지물이 되는 사태를 막고, 적은 부포수량으로 충분한 방어가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서 모가미급 중순양함에 쓰였던 물건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개량을 추가로 해서 장착했고, 나중에 대공포 증설시 철거되지만 함체의 양 측면에 동일한 부포탑이 1기씩 총 2기가 추가 탑재되었으므로 건조 당시의 부포 화력은 어떤 일본군 전함보다 우세했다.

대공포의 경우에도 초기부터 탑재수량이 많았던 데다가 필리핀 해 해전이후 날로 증강되는 미군의 항공전력에 대응하기 위해 증설을 거듭한 결과 나중에는 200여문에 가까운 수량을 탑재했다. 그리고 일본군은 전함에 가장 좋은 대공포를 탑재하므로 대공능력면에서는 함재기를 자신의 엄호에 사용가능한 항공모함을 제외하고는 일본군의 어떤 함선보다도 뛰어났다.

4.3. 장갑

야마토급 전함의 장갑
구분상세(단위는 ㎜, 장갑판의 종류)
현측 주장갑200 - 410 VH
횡(横)측 방어격벽중갑판 함수부지역 340 MNC, 하갑판 지역 300 MNC, 중갑판 함미부지역 340 VH, 하갑판지역 350 VH
갑판장갑중갑판 200 - 230 MNC, 최상갑판 35 - 50 CNC
어뢰방어격벽50 - 200 NVNC-CNC
주포 탄약고갑판평탄부위 200- 230 MNC, 갑판경사부위 230 MNC, 수직부위 100 - 270 VH, 바닥 50 - 80 CNC
장갑함교측면 380 - 500 VH, 상면 200 MNC, 바닥 75 CNC, 통로 300 MNC
주포탑전면 660 VH, 측면 250 VH, 후면 190 NVNC, 상면 270 VH, 바벳 380 - 560 MNC
부포탑포방패 25 HT, 바벳 25 DS + 50 CNC
조타 기계실상면 200 MNC, 측면 350 - 360 VC
연통380 MNC

야마토급 전함의 또 하나의 장점은 장갑, 그것도 엄청난 떡장갑이다. 기준 배수량만 아이오와급을 능가하는 무지막지한 배수량 답게 주포 포탑의 전면장갑 두께부터가 무려 660㎜(!) 측면장갑은 410㎜, 즉 16.1인치. 그것도 경사장갑이었다. 갑판은 상부 200㎜, 하부 226.5㎜로 8인치급의 더러운 떡장갑을 자랑했다. 그리고 포탑의 전면장갑이나 현측의 측면장갑등 중요부위에는 NVNC(New Vickers Non-Cemented)강이라는 특수강을 적용했다. 같은 시기의 다른 전함들이 가장 두꺼운 곳도 13인치 대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코 얇은 게 아니다. 실제로 주포탑 천장에 250kg 급의 폭탄이 떨어져도 관통이 안되었고 외부에서 폭발했지만 전혀 손상이 없었다.정작 최후의 순간엔 주포장갑은 도움이 안되었다. 이뭐병

그리고 이전까지 사용해온 VC강철의 제조 과정은 무쇠 → 용해 → 압연 → 침탄 → 표면 담금질이며, VH강철은 상기의 침탄 작업을 생략한 표면 경화층만의 장갑판인데 반해, NVNC강철은 침탄 이후의 작업을 생략한 균질압연장갑이면서도 특수강이었으므로 생산공정단축으로 인한 생산성 증대와 시간절약을 얻어내면서 동시에 방어력을 증대하는 데 성공하였다.

어뢰에 대한 대응면에서도 벌지를 처음 건조시부터 장착해서 나중에 벌지를 추가한 전함처럼 덕지덕지 붙은 벌지가 함선의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현상을 겪지 않았으며, 그 양과 질도 스펙상으로는 높은 편이었다. 일본의 제철 기술이 연합군에게 한참 뒤떨어져 있었다는걸 감안해도 카탈로그 상으로는 그야말로 최강이었다.

4.4. 속도

야마토의 속도는 27노트까지 가능하고, 과부하를 걸면 29노트까지 가능했다. 이는 2차대전 당시의 최신예 고속전함에는 못미치는 속도지만, 일본은 이미 30노트를 내는 공고급 순양전함이 4척이나 있으며, 나머지 전함들의 속도는 개장해서 25노트로 맞췄기 때문에 그 이상 속도를 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방어력 향상과 손상시 전체 출력이 모두 나가버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 보일러와 기관을 분산해서 보일러 - 기관 - 보일러 - 기관 식의 교차배치를 했다. 이것은 그 당시의 최신예 전함들이 하나같이 채용했던 방식이므로 시대의 흐름에도 부합했다.

4.5. 시설

일본의 가장 강력한 전함답게 각종 전투용 장비도 최신예였으며 사통장치도 뛰어난 편이었다. 일단 광학측거의 자체가 15m 측거의로 불리는 물건인데, 렌즈간의 거리가 15.5m에 달하는 물건이었다. 이런 종류의 마이크로미터는 렌즈간의 거리가 멀수록 성능이 좋아지는데, 일반적인 일본의 전함도 고작 5m급의 물건을 사용했다는 것을 보면 일본 입장에서는 전대미문의 고급 물건을 탑재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기성품은 있을리가 없어서 일본광학(日本光學)에서 특별히 연구해서 제작한 특제품이며, 이 일본광학이 나중에 니콘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시의 기준으로 일본에서 광학관련기술을 집대성한 물건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중의 개량에서는 레이더까지 탑재했다. 이 개량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적의 레이더 전파를 탐지해서 경고를 알려주는 전파탐신기(電波探信機)는 1호3형(1号3型)이 2기가 장착되었고, 대공레이더로는 2호 1형 레이더가 2기, 수상용 레이더로는 2호 2형이 2기가 장착되었다. 그리고 탐지거리는 항공기면 편대로 비행시 100㎞, 단기로 비행시는 50㎞이었으며, 수상목표물의 경우 전함은 마스트 높은 곳에 레이더를 장착하므로 동급의 레이더로도 35㎞까지 탐지가 가능했다.

공/방 전투력 뿐만 아니라, 그 덩치에 걸맞게 승조원들 특히 수병들의 생활 시설 등도 그때까지의 일본은 물론 타국 해군의 열악했던 수준을 벗어나 '해상 호텔'이라 불릴 정도의 호화로움을 자랑했다.

당시의 함상 생활은 미국 해군을 제외하면 장교CPO급 되는 상급 부사관이 아닌 하급 부사관과 수병들은 '아무데나 해먹걸고 자는 것'이 기본이었는데, 야마토급에는 일본 해군으로서는 유일하게 승선하는 모든 수병들이 사용할 수 있는 침대가 구비되어 있었다. 또한 야마토와 무사시의 주방에는 전쟁 전에 세계의 주요 항로를 오가던 일본의 해운사들이 운용하는 호화 여객선의 주방에서 일하던 요리사가 징용되어 함내의 요리를 책임졌다. 거기다 함장 전용 취사 담당 및 준사관 이상 취사실에는 전기 냉장고가 있었고, 하사관과 수병용 부식들을 위해서 식료품 보관용 대형 냉장고가 있었다고 한다. 냉장고의 용량도 커서 야마토의 식료품 냉장고의 동력은 8만 킬로 칼로리, 50 마력의 터보식 냉동기 4대의 일부였고 거기에다 식료용 냉장고의 터보식 냉동기는 히타치제였다고 말하는 증언도 있었다고 한다.

이 덕분에 일본군 육군보다 평균적으로 식사가 좋았다는 일본군 해군에서도 야마토와 무사시의 식사는 훨씬 좋았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1942년에 트럭섬에 해군과 연락차 방문한 대본영 파견참모 츠지 마사노부 중령이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사령장관과의 면담 후 야마토에서 식사를 대접받았는데, 그 내용이 도미 소금구이, 도미회, 차가운 맥주(!)였고 이를 대접받자 매우 감격했다는 등 당시 야마토를 방문한 육군 장교들이 야마토호의 식사에 놀랐다는 일화가 많았다고 한다. 전쟁이 말기에 이르른 상황에서도 수병이 "카레라이스가 맛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걸 먹어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회고했으니... 카레라이스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당시 일본 수병이 먹은 식사는 매운 카레라이스와 바나나, 사과가 들어간 마카로니 사라다였다. 그것도 1944년에!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 참여하러 갔다 미해군 항공기들에 격침당하기 전, 정확히는 점심식사 이전에 전투태세에 들어갔기 때문에 전투배식으로 나온 주먹밥 2개를 먹은 승조원도 있고 못 먹은 승조원도 있다고 한다. 거기다 침몰한 날의 저녁식사 메뉴로 통조림쇠고기 통조림, 야식은 단팥죽으로 제법 푸짐한 메뉴가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야마토호의 식사에 관한 이야기. 당시의 일본은 상황이 악화돼서 본토에 있는 고위 정치인이 버터 바른 군고구마를 자주 먹지 못하는 별미로 손꼽을 정도였고, 일반 국민은 물론, 일본군중 대부분이 굶주리는 상태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진짜 대단한 일이었다.[8] 그런 호화식단의 결정체가 바로 아이스크림라무네.

당시 일본 해군 내에서 야마토급보다 좋은 대우를 받았던건 마찬가지로 기밀 엄수를 강요받았고 수상함보다 시설이 열악하기에 그만큼 대우는 더욱 후하게 해줬던 잠수 항모 센토쿠급의 승조원들이나 군 병원의 부상자들[9] 정도였으니 사실상 일본내에선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민간 객선 출신 요리사 말고도 민간인 출신 군속들(이발사 3인, 재봉사 1명, 세탁공 1명)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출처[10]

한편 시설 수준과는 약간 관련이 떨어지지만 야마토는 연합함대의 총기함 역을 수행하다 보니 각종 고관들이 함을 방문할 때가 많았고, 이를 위한 만찬도 빈번했다. 이를 위해 담당 장교는 호텔급 정식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했고, 만찬 때는 함의 군악대가 식사에 어울리는 음악을 연주해 줬다고 한다(...). 이는 야마토 이전에 총기함 역할을 하던 나가토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5. 안습신화

하지만 스펙만 따지면 이 세상에서 킹왕짱이 아닌 무기가 별로 없다. 아무리 카탈로그 스펙이 좋아봐야 실전에서 제대로 싸우지 못하면 결국 다 숫자놀음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카탈로그의 내용은 실제 사실을 100% 반영하지 못하고 일부만 보여준다는 문제도 엄연히 있었다. 야마토의 화려한 스펙 뒤에는 감추어진 문제점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5.1. 주포의 실상

일단 가장 강력한 주포의 경우 타국에 비해 우수하다고 할 수 없다. 타국이 18인치급 함포를 개발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야마토의 스펙을 '몰라서 대응을 못한 경우'라고 보는 게 가깝다. 만일 미국에 정보가 알려진 상태였다면 18인치 주포를 탑재한 전함이 바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미국은 이미 전간기에 18인치인 457㎜ 함포를 개발 완료하였으나### 다른 경쟁국가들이 아직 16인치인 406㎜ 함포 수준에서 머물러 있었고 457㎜ 신형 함포를 탑재하기 위해서는 함체가 더 커져야 했는데,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 두 바다를 오가기 위한 전략 통로인 파나마 운하의 폭인 33m보다 전함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우려하여 결국 탑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이오와급 전함 이후 초조약형의 궁극이며, 아예 그냥 파나마 운하 이용을 포기하고 함폭을 넓힌 초대형 몬태나급 전함도 아이오와급 전함의 16인치 Mk.7 함포를 그대로 탑재했다. 물론 18인치 포를 탑재할 계획은 있었으나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등 신조전함에 탑재된 신형 16인치 포는 초중량탄인 SHS탄을 사용하여 특정 거리에서는 18인치의 관통력과 격차가 크지 않아서 무리하게 18인치를 탑재 전함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일본이 18인치급 전함을 만들 때 미국은 16인치로 18인치급의 화력을 발휘하는 미친 전함을 만들고 있었다는 말이다. 다만 미국이 진작 18인치급 전함인 걸 알 수 있었다면 당연히 그에 대응하는 18인치급 전함이 건조되었을 것이다. SHS는 특정 거리에서만 18인치급 성능이 나오지만 그만큼 단점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에 주포 구경이 2인치나 차이나는 전함과 진지하게 비교당하는 것 자체가 야마토급 전함이 안습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물론 미국 외에도 이미 18인치 함포를 만든 예가 있으며, 이미 1910년대에 영국의 대형 경순양함 퓨리어스에는 18인치 주포가 탑재되었고, 동함이 항모로 개조된 후에 이 주포는 모니터함에 장착되어 1차대전중 활약했다. 야마토의 주포에 비하면 약 0.1인치밖에 차이가 안 난다.(…) 또한 1920년대 타국의 '계획함'중엔 18인치포나 그 이상의 포를 탑재한 전함의 건조안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계획상으로만 존재했던 영국의 N3급 전함 계획이 있다. 그러나 당시는 이미 전함 건함경쟁이 막바지에 달한 시기였고 1921년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인해 다들 계획으로만 끝났다.

여기에 더해서 전함용 3연장 주포탑을 일본제국 최초로 채택한 덕분에, 타국의 전함들도 겪었던 주포의 명중률이 크게 떨어지는 문제를 떠안았다. 원래 3연장 주포탑은 주포끼리의 간격이 좁아서 동시에 발사하면 주포탄끼리 간섭현상이 발생하므로 포탄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곳으로 날아가버린다. 그래서 초기에는 30㎞ 기준으로 포탄의 살포계가 1㎞를 넘어가서 산탄포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는데, 이렇게 될 경우 전함의 예상포격거리인 20㎞ ~ 30㎞에서 협차따위는 기대도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이는 나중에 주포의 발사간격을 미세하게 조정해서 어느 정도 조절했지만, 레이테 만 해전에서 야마토가 사격한 포탄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발사한 사람을 포함해서 아무도 알지 못했다는 것만 봐도 완전한 해결이 어려웠다. 실제로 일본군의 다른 전함보다 명중률이 떨어졌다고 한다.[11]

부포의 경우에는 성능은 뛰어나지만 부포탑의 장갑이 너무 약했다. 고작 25㎜라는 엄청나게 얇은 장갑을 자랑했는데, 이 수치는 악명높은 97식 전차 치하의 전면장갑과 수치가 같다. 그러니까 명색이 규격 외의 초거대 전함의 부포탑이라는 물건이 주적인 전함이나 순양함은 둘째치고 심지어는 구축함의 포탄에도 바로 관통된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구축함이라도 최소한 5인치(127mm) 주포 정도는 달고있었으므로 그 압도적인 함체 장갑에는 어쩔수 없지만 꼴랑 25mm 장갑판으로 무장한 부포 따윈 손쉽게 파괴할 수 있다는 소리다. 더 큰 문제는 부포 탄약고와 주포 탄약고가 인접했다는 것으로, 재수없으면 부포탑에 인화된 불길이 주포 탄약고에 옮겨붙어서 걸레짝이 되는 사태가 날 수 있었다. 물론 일본도 당연히 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방염처리를 하고 부포 바벳을 강화했지만 그렇게 한 강화책은 고작 50㎜ CNC +25㎜ DS 정도며, 그나마 포탑부분은 포방패를 포함해서 그냥 25㎜로 유지했으므로 그 정도로는 완전한 대책이 되지 못했다.

애초에 부포탑의 피탄이 탄약고 유폭등을 불러와 함선의 침몰로 쉽게 이어지는 문제로 인해 타국의 전함들은 일본처럼 운용하는게 화력 집중과 운용에 편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포탑을 함체 중심선이나 주포탑 인근에 놓지 않고 일부러 함체의 양 측면에 놓은 것이다. 그렇게 배치하면 동일한 화력을 내려면 부포탑과 부포의 문수가 2배로 필요하지만, 피탄당하더라도 해당 부포탑만의 국부적인 손상으로 끝나며, 불이 나도 부포탑 전체를 분리해서 수장시키면 되고 최악의 경우인 부포탑 연쇄폭발이 발생하더라도 전함의 한쪽 측면 상부만 파손되므로 당장 침몰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대해서 일본은 측면에 부포탑을 놓아도 똑같이 위험하다는 반박을 들고 나오는데, 지중해에서 벌어진 칼라브리아 해전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해당 해전에서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이 쏜 15인치 포탄이 이탈리아의 전함 체자레에 명중한 일이 있다. 그 당시의 상황은 체자레의 대응방어를 넘어가는 거탄이 한쪽 측면에 명중해서 해당 부위의 부포탑이 폭발했는데도 불구하고 속도가 19노트로 약간 떨어지고 주포 사격에 잠시 지장을 받았지만 무사히 자력으로 전장에서 벗어났다.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측면장갑의 보호를 받고 외부로 노출된 부위는 포탑밖에 없는 측면 부포탑은 대공화력의 증대를 위해 제거하면서, 주포탑보다 높은 위치에 존재하는 바람에 포탑과 바벳은 물론 탄약고의 일부도 갑판장갑 위에 있어서 측면장갑의 보호를 못받는 선체 중심선상의 부포탑을 남겼다는 문제점까지 있었다. 물론 해당 부포탑도 상부구조물 안에 있지만, 갑판장갑 위에 위치한 상부구조물은 장갑함교같은 일부 특수부위를 제외하고는 장갑이 없다. 적의 공격이 머리 위로 떨어지건 측면으로 날아오건 간에 이를 막아낼 장갑은 부포탑이 가진 얇은 장갑에 불과하다는 것은 실로 처참한 경우다.

부포탑과 바벳, 탄약고는 장갑으로 방어된 바이탈파트의 외곽에 위치되어 있는데[12], 이로 인하여 부포탑 및 바벳의 관통에 따른 부포탄약 유폭이 주 탄약고를 인화시켜 대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부포탑이 폭발해도 탄약고를 방호하는 장갑 외곽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얼핏 보면 맞는 이야기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게, 실제의 탄약고 폭발은 외부보다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의 영향력이 더 크다. 밀폐된 공간에서 폭발이 발생할 경우, 상하좌우의 모든 영역에 큰 압력이 가해지게 되며 선체 전체에도 만만치 않은 타격을 입힌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알량한 탄편방어용 내부 장갑판 가지고는 쉽게 막기 어렵다. 영국의 전함은 전함의 주포탄 1발이 장갑을 뚫고 내부에서 작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측면장갑을 엄청나게 강화했는데, 해당 주포탄 1발의 작약량은 잘 쳐주어도 몇십kg에 불과하다. 그런데 부포탑의 작약량은 포탄이 많은 관계로 최소 수백kg 이상이며, 여기에 장약까지 들어가므로 유폭시 위력이 그냥 주포탄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

그리고 야마토의 15.5㎝ 대수상부포는 부포 탄약고로서는 지나치게 대규모였고 이것의 폭발은 장갑영역 외부에 지나치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아래와 같은 사례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오후 12시 41분에 베닝턴을 떠난 6대의 헬다이버가 투하한 450kg짜리 철갑탄 6발 중 2발이 야마토의 우현에 명중했다.

<중략>

159번 프레임에 떨어진 1발은 후방 155㎜ 부포탑 천장에 명중하여 자체 탄약고를 폭발시킴으로써 치명적인 유폭과 화재가 발생했다.
포탑 내부의 인원 중 1명을 제외한 전원이 몰살당했고, 이 폭발로 레이더실과 최후미의 127㎜ 대공포좌도 파괴되었다.
이때 급강하폭격을 마치고 빠져나가던 헬다이버 1대가 대공포에 맞아 격추되었다.


즉 야마토 후방 부포탑이 급강하 폭격기에서 폭탄을 맞아 포탑에서 한 명만 살아남을 정도로 큰 폭발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주포탑 탄약고가 유폭하는 일 없이 야마토는 2시간 동안 싸우다가 어뢰를 두들겨 맞아 2시 12분에 통신이 두절되고, 17분에 기울기가 22도까지 늘어난 다음, 23분에 전복되었으므로 주포탑 유폭은 없다는 이야기다.

이는 부포탑 탄약고 폭발에도 불구하고 바이털 파트인 기관과 탄약고를 일단 방호하는데 성공했으므로 고전적인 제1차 세계대전 시기의 전함의 방호력으로서는 기대할만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피격의 결과로 바이털 파트 외부에는 큰 피해가 발생했으며 특히 레이더실이 완파되었다. 레이더실이 날아가는 순간 모든 것을 목측에 의존해야 하므로 공습에 대처하는 것은 물론 수상함 전투시에도 유효사정거리가 크게 줄어들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눈이 먼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탐색능력과 대공능력이 중요해지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전함 입장에서는 위험성이 주포탑이 폭발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야마토급 전함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함이다.

게다가 위의 문장은 부포탑 지역에 동시에 떨어진 폭탄 2발중 1발의 피해를 고의로 삭제하는 등 상황의 일부만 제멋대로 편집한 물건이다. 실제로는 1번2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래와 같은 심각한 손상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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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전투에서 야마토가 받은 공격과 피해

  • 후방 사격관제실과 부포관제실 파손. 이 과정에서 측거기를 포함한 광학조준장비가 몽땅 파손된다.
  • 레이더실 완파. 덕분에 레이더는 그냥 고철로 전락한다.
  • 127㎜ 대공포탑 2기 완파. 그나마 가장 쓸만했으며, 대공화력의 주력을 담당한 127㎜ 대공포탑 12기중 2기가 한번에 고철이 되었다.
  • 후방 부포탑 탄약고 폭발. 엄청난 수준의 화재가 발생했다.
  • 후방 보수반원 전멸. 불을 끌 사람들이 전멸해버렸다.

당장 입은 피해만 추산해도 엄청나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게다가 후방 부포탑에서 발생한 화재는 보수인원이 전멸하여 아예 손도 못 댔기 때문에 야마토가 침몰할 때까지 소화되기는 커녕 더 크게 번졌으며, 결국에는 3번 주포탑의 탄약고 유폭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온도가 올라갔다는 보고가 지휘부에 올라갈 지경이었다. 해당 보고는 야마토의 지휘부가 퇴함명령을 내리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한마디로 말해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하더라도 주포 탄약고 유폭으로 인해 알아서 침몰할 운명이었다. 종합하자면 애초에 해당 위치에 부포탑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여기에 대해서 일본측에서는 실제로는 부포 탄약고의 유폭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당시 야마토의 전투 보고서 상으로는 미군의 1차 공격 당시 떨어진 폭탄이 후방 사격지휘소 부근의 상갑판을 뚫고 들어가 터졌고, 이때 일어난 화재가 후방 부포탑에까지 이르렀지만 부포탑의 탄약고 자체는 무사했던 것으로 돼있다. 애초에 부포탑 탄약고가 폭발했더라면 그 바로 옆에 있는 주포탑 탄약고도 무사하지는 못햇을 것이다. (당시 야마토의 피해보고서. 후방 부포탑의 직격은 없는걸로 기록돼있다.)

그러나 이건 일본만의 기록이라서 교차검증이 안된다. 야마토의 피해를 기록한 『軍艦大和戦闘詳報』는「大和被害経過資料不足ニテ詳細不明」이라는 주석을 달아서 피해 및 경과에 대해 자료부족 및 상세불명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표현한데다가, 최후의 전투 당시 동행했던 제2수뢰전대(第二水雷戦)의 전투상보와도 어뢰명중등에서 차이가 나서 교차검증이 안되는 등 매우 부적합한 자료이다.## 게다가 이 자료에서는 부포탑 날아간 것은 교묘하게 숨기고 있고 폭탄 2발이 낸 피해가 너무 크며, 침몰 직전까지 꺼지지 않은 화재를 낸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데다가 피해 표시에 대한 도면도 자세하게 표현한 미국의 물건과는 달리 진짜로 대충 그린 물건이다. 따라서 신빙성에 의심이 갈 수 밖에 없다.

대공포의 경우도 숫자에 비해 위력이 약하고 공격에 취약했다. 애초에 일본군의 대공포가 발사속도, 포탑선회능력, 포신부양능력, 명중률 등 모든 성능이 타국의 대공포보다 떨어진다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대공화기를 통합 운용해서 적기에게 일제사격을 한다는 개념이 부족했다. 이러니 사격명령이 대충 내려지면 실제 목표 표착과 사격은 사실상 각 포탑과 포좌별로 사수가 알아서 담당하는 구식방식을 채택했으며, 비장갑 노천배치 방식의 대공포가 너무 많아서 적 전투기가 기총소사만 해도 대공포가 개발살나고 포 조작원이 다수 죽거나 다치는 참상이 발생한다. 물론 미국의 경우에도 비장갑 노천배치식 대공포가 많지만, 대공포의 성능이 좋은데다가 기본적인 포방패등의 장갑도 있고, 대공화기를 통합해서 질서있게 운용하므로 가뜩이나 장갑도 얇은 일본군 전투기가 동일한 짓을 하려고 하다가는 먼저 항공모함 함재기들에게 도륙당하며 어떻게든 함재기들을 뚫고 함선의 방공망에 접근해도 일본기의 장갑으로는 대공포에 격추당하는데다 미군의 대공포는 기본적인 장갑도 든든하게 구비됐기에 기총소사를 쏴도 효과가 매우 덜하다.

여기에 더해서 건조 당시에 설치된 대공포좌에는 선체 내부에 통로가 연결되므로 탄약과 부품, 인원보급과 보충을 적의 방해를 받지 않고 수행이 가능했지만, 나중에 설치된 대공포좌는 전함의 장갑이 너무 두꺼웠다는 등의 이유로 그런 방식의 연결통로를 만들 수 없었기에 일단 포좌에 배치된 탄약을 다 써버리면 아무런 엄폐물 없이 인력에 의존해서 포탄을 공급받아야 했다. 당연하게도 적함의 주포탄 포격과 적기의 기총소사가 난무하는 전장 한가운데에서 그런 섬세한 작업은 불가능했으므로 전투가 어느 정도 지속되면 탄약부족과 인명 손실로 인해 상당수의 대공포좌가 멈춰버리므로 대공화력이 더 격감된다.

주포의 경우 너무 강력한 나머지 주포가 대공목적으로 3식탄을 발사하는 등의 행동을 하면 섬세한 대공포좌의 조준장비가 망가지는 일이 발생했다. 18.1인치 주포 발사시의 포구에서 폭발풍 압력은 1평방미터 근처 약 8톤 정도로 노출 상태의 인간이나 계측장비는 파괴될 가능성이 높았다고 당시의 일본에서도 위험성을 인식했다.[13] 저 그래서 주포 사격시 후폭풍으로 인해 비장갑 대공포좌는 사람이 있으면 매우 위험해지므로 발사전에 대피신호가 울리게 되는데, 안그래도 날쌘 비행기를 맞추려고 하다보면 이런 과정이 싹 무시되니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주포의 후폭풍을 맞아서 대공포 조작요원이 개발살나게 된다. 덕분에 무사시가 신나게 공습을 두들겨맞을 때 이런 문제가 현실화되었고, 표류하기 시작할 때 주포 조작요원과 대공포 조작요원간에 충돌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면 타국은 어떤가 하면... 애초에 주포에 3식탄 같은 포탄으로 대공사격을 한다는 이상한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았고, 물론 광학장비의 내구성도 좋아서 주포 사격으로 인한 후폭풍등으로 망가지는 일은 적은데다가 수리 및 보충도 쉬웠다. 특히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대공용 양용포좌는 모두 기후와 파편을 방어하기 위해서 밀폐된 포탑이었으므로 주포발사의 폭풍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야마토급 역시 원래의 12.7㎝ 포좌들은 대개 밀폐포탑식이었으나, 나중에 대공화력의 증강을 위해 대규모로 증설된 12.7㎝ 포좌들은 노천개방된 상태였다. 더욱이 중구경 이하 대공포(일본군의 경우 25㎜) 포좌는 그냥 묵념.[14]

여기에 주포탑이 원채 무거운 물건인데다[15] 그 무게중심 설계에도 문제가 있어서, 배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 경우 포가 자동으로 돌아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격이 불가능했다. 우측에 있는 적을 노리기 위해 주포를 우측으로 겨눈 상태에서 우측으로 회전하고 있자면 포탑이 지 멋대로 반대쪽인 왼쪽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

5.2. 허술한 장갑

앞서 설명했듯이 야마토급 전함의 장갑판은 스펙이 대단하다. 하지만 그 대단한 장갑판도 사실 일본이 가진 철강 기술력의 부족과 수급에 어려움이 있어서 미국 전함들과 비교하면 방호력은 오히려 차이가 심하게 나는 곳이라면 13% 정도 낮은 수준이었다. 반대로 말해서 미국 전함의 장갑이 같은 두께일 때 일본 전함보다 1.2배 정도 더 튼튼했다는 이야기.

이 항목을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곳을 참고할 것.

  • 철강의 재질(PLATE MATERIAL)
Japanese Vickers Hardened (VH) face-hardened, non-cemented armor (used only on YAMATO-Class battleships)

일본 NVNC (New Vickers Non-Cemented) 표면경화 강판 (야마토급에 적용됨)

  • 철강의 품질(STEEL QUALITY)
Steel had many tiny pieces of dirt and so forth, being about the same as pre-WWI British Vickers Cemented (VC) KC-type armor steel in quality (VC was used for the first time in the Japanese battleship IJN KONGO, built in Britain, and manufactured in Japan under license thereafter), from which the unique Japanese armors New Vickers Non-Cemented (NVNC), the homogeneous, ductile form of VH used in a number of Japanese post-WWI warships, and VH itself was derived (this steel was not up to U.S., British, or German post-1930 steel quality).

검사에 적용된 철강은 많은 미세 찌꺼기(dirt)들을 함유하고 있고, 그러므로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영국에서 생산하였던 "British Vickers Cemented (VC) KC-type"의 방어 장갑용 강철(armor steel)과 품질면에서 동일한 것으로 사료된다. (VC 철강은 전함인 공고(金剛)에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당시 영국에서 건조되었으며 이후 일본에서 기술제휴로 생산하게 된 제품이다.) 이것은 당시 일본에서 "New Vickers Non-Cemented (NVNC)"라는 제품으로, 균일(homogeneous)의 연성재질(ductile)의 VH강으로 WWI 이전에 건조된 일본의 함선에 채용되었으며, VH강의 물성치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NVNC라는 철강재는 미국, 영국 또는 독일에서 사용하던 1930년대 이전의 VH강과 동일하지는 않다.)

Carbon content was raised above VC steel level to increase ease of hardening, some copper added to allow some nickel (in short supply in Japan) to be removed (but not much), slight amount of molybdenum added to increase hardenability still more, and the cemented (carburized) thin surface layer used in VC (and in most other, foreign face-hardened armors) was eliminated with no loss of resistance from VC quality (a good design point). Surface of plate face was very smooth, unlike rough, pebbly surface of cemented plates, such as U.S. Navy Class "A" armor.

상기의 VC강의 재질의 경도강화(hardening)를 쉽게 하기 위하여 탄소함유량이 증가되었고, 일정량의 구리(copper)를 첨가하여 다소 니켈(nickel, 당시 일본에서는 공급부족) 성분이 부족한 것을 대체하였으며, 경도강화성(hardenability)을 올리기 위하여 소량의 몰리브덴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VC강에 사용된 침탄(浸炭) 처리된(cementation- carburized) 얇은 표면층은 VC강에서 (그리고 다른 이종표면강화(foreign face-hardened) 강판에서도) 품질의 저하 없이 제거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의 A-클래스 강판과는 달리 표면이 아주 매끈하게 유지되었다. (디자인면에서 아주 우수한 점이다.)

  • 결론(CONCLUSIONS)
The U.S. Navy Ballistic Limit (complete penetration minimum velocity with this projectile at normal) estimated at 1839 feet/second (560.5m/sec), plus or minus 3%, which gives it about a relative plate quality of 0.839 compared to U.S. Class "A" armor (estimated, as no such super-thick plate was ever made in the U.S.). This was about the same as the best WWI-era British KC-type armor, which was what the Japanese were trying for--they had not attempted to make improved face-hardened armor, as the U.S. Navy did during the 1930's, for actual ship installation.

"U.S. Navy Ballistic Limit 社"는 시험용 포탄(projectile)이 최소 탄속(彈速)에서 피사체를 완전관통(complete penetration) 하였다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560.5m/sec (±3%) 탄속(彈速)에서 미국의 표준 A-클래스 강판을 100% 기준으로 상대 품질 정도를 83.9%로 사료된다. (추정치, 미국에서는 일본처럼 그렇게 두꺼운 강판을 생산한 적이 없었다.) 이것은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생산되었던 최고 성능의 영국 KC-type의 강판과 동일한 수준이고, 일본이 영국과 기술제휴로 보유하고자 하였던 것이며, 일본은 미국이 1930년대 실제 건함(建艦)용으로 개발하였던 이전보다 개선된 표면강화 강판을 만들려고는 하지 않았고 KC-type의 강판의 수준에서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The plate was excessively brittle internally, with too much "upper bainite" crystal structure due to too-slow cooling. This was due to using the same pre-WWI British Vickers KC-type armor-hardening techniques on plates over 17" (55.8㎝) thick, for which they were never intended. This problem was solved during WWII, but no more VH was ever made except for some thin experimental plates. Brittleness did not seem to reduce resistance to penetration, though cracking might cause problems due to hits that ricocheted off.

시험에 사용된 강판은 내부적으로 과도한 취성(brittle, 잘 깨어지는 성질)을 갖고 있고, 저속냉각에 기인한 "upper bainite" 결정조직을 갖고 있다. 이것은 1차대전 이전에 영국의 "Vickers KC-type armor" 강판의 17" (55.8㎝) 이상의 중후판의 경화 기술과 동일한 것을 사용한 것으로 사료된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이러한 중후판에 적용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내부취성의 문제는 2차대전 동안에 해결 방안이 개발되었는데, 그러나 실험용 강판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VH강은 생산되지 않았다. 이 특성은 피탄이 튕겨 날아가면서 생기는 내부의 균열(cracking)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겠지만, 어쨌든 취성(Brittleness)으로 인해 피탄 시의 저항력이 감소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Note that one of these experimental plates 7.21" (18.3㎝) VH plate NPG #3133 was patterned on Krupp KC n/A (probably from data traded with Germany during WWII) and was tested by the U.S. Navy at the NPG using 335-pound 8" Mark 21 Mod 3 and Mod 5 (the latter with the super-hard AP cap, which turned out to be required to penetrate that plate intact) during this same test series. It was found to be THE BEST PLATE OF ITS THICKNESS RANGE (6-8" (15.2-20.3㎝)) EVER TESTED BY THE U.S. NAVY, even though its steel was of the same rather poor quality as the other VH plates tested!!! This caused the U.S. test conductors to state that obviously they did not understand what it took to make a high-quality Class "A" plate, since the 7.21" VH plate should not have been so good from everything they thought they knew about face-hardened armor!!! Obviously the Japanese could make armor as good as anyone if the specifications had required it!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실험용 강판 중에는 18.3㎝ 두께의 "VH plate NPG #3133"이 독일의 Krupp社에서 KC n/A강으로 특허를 내었다. (아마도, 일본과 독일이 기술자료를 공유하여) 그리고 이 강판은 미해군에 의해서 NPG에서 335-pound 8" Mark 21 Mod-3와 Mod-5 함포로 실험이 실시 되었는데(Mod-5 함포의 경우는 이 신형 VH 강판의 관통하기 위해 특수강화 관통용 철갑탄(AP)이 사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는 15.2~20.3㎝ 두께에서 가장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동일하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이전의 VH강으로 실험을 했을 때도 같은 결과였다. 그리하여 실험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게 되었다. "분명하게도 그들은 고품질의 A-클래스 강판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은 7.21"(183㎜) VH 강판은 그들이 알고있는 표면경화(face-hardened) 강판에 대하여, 생각한 것처럼 모든 면에서 뛰어나게 제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일본인들은 만약 사양서(specification)에서 요구를 하였다면, 다른 나라들처럼 우수한 재질의 강판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일본내에서 도는 풍문에 의하면 야하타(八幡)제철에서 제작된 야마토급 전함의 현측(舷側)의 장갑은, 크기와 중량의 관계로 열처리가 불가능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특수강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약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므로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카탈로그 스펙만큼의 방어력도 못낸다는 결론이 나와버린다. 공포의 가라치기는 어디서나 만악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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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치 Mark 6으로 쏜 철갑탄에 관통된 야마토급 전함의 660mm 주포탑 전면장갑

그렇다고 해도 저 넘사벽 수준의 두께는 숫자값을 한 모양인지, 일본이 시나노용으로 절단해뒀다가 항공모함으로 개장시키면서 잉여로 남은 포탑 전면 장갑판을 2차대전 후에 노획한 미국이 실제 사격 표적으로 시험해보니 모든 교전거리에서는 16인치 주포로 포탑 전면 장갑판을 뚫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애초에 장갑의 품질중 충격을 잘 견디는 인성부문이 크게 낮기 때문에 일반 교전거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명중당할 것을 가정한 실험에서는 그대로 뚫리긴 했지만, 실제 45도 경사를 준 포탑과 달리 수직으로 세워놓은 장갑판에 수직에 가까운 입사각을 가지고 관통했기 때문에 실제 포탑처럼 단순 45도 경사만 보정해주어도 919㎜ 두께가 나오는데다 상기 관통 실험 보고서에서도 모든 거리에서 관통 불가라고 언급하고 있다.

해당 부위(포탑 전순)는 가장 두꺼운 부위로, 실제로 주포탄이 명중할 확률이 높은 현측장갑은 410㎜로 주포탑 전면장갑과의 격차가 250㎜에 달한다. 따라서 사우스다코타같은 전함이 10㎞ 근방에 접근하면 충분히 깰 수 있을 정도인데, 일본이 설정하는 표준적인 포격전 거리인 20㎞ 이상 ~ 30㎞ 이내에서부터 포격전을 시작하면 앞서 언급된 주포의 산탄현상이 심해서 협차도 제대로 못하는 야마토가 속도도 동일한 사우스다코타를 근접할 때까지 못막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굳이 사우스다코타가 근접할 필요도 없이 장거리에서 레이더를 사용한 포격을 지속하면 야마토 쪽은 상대방에 대한 명중탄을 전혀 내지 못하고 자신의 갑판장갑이 대낙각으로 떨어지는 16인치 초중량탄에 맞아서 골로 간다.

여기에 대해서 일본측에서는 포탑 전면장갑을 못뚫으니 소용없다고 주장하지만, 장거리 사격에서 대낙각으로 날아오는 포탄이 좁아터진 포탑 전면장갑과, 갑판장갑이나 포탑 천정, 측면장갑중 어느 쪽에 맞을 확률이 높을지는 명백하다. 그리고 일본이 원하는대로 미국 전함이 근접해서 사격을 할 경우라도 측면장갑에 맞을 확률이 높지 포탑 전면장갑에 맞을 확률은 적다. 포탑 전면장갑을 방패처럼 분리해서 포탄이 날아올 때마다 판넬처럼 스스로 날아와서 막나? 결론적으로 포탑 전면장갑이라는 매우 작은 영역만 포탄을 막아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레이더 관제 사격이 주간에는 쓸모없다는 이야기는 미국의 SG레이더와 하단의 레이더 관련 사항으로 반박 가능하다. 애초에 야마토급 전함의 광학조준장비는 실전에서 쾌청한 날에 한해 20㎞ ~ 25㎞ 의 거리 이내만 조준이 가능하다. 날씨 여부에 관계없이 레이더 화면을 보면서 협차 여부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며 장거리 사격을 하는 미국 전함과, 쾌청한 낮 시간대에 한해 상대적으로 가시거리가 짧은 광학장비에만 의존해서 명중률 떨어지는 주포로 사격하는 일본 전함의 격차는 결코 작지 않다.

물론 미국 전함들도 그런 장거리에서는 명중률이 떨어지지만 야마토는 아예 그 거리에서는 명중도 못 시킨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래의 사례를 볼 때 미국의 레이더 관제사격의 명중률이 그렇게 낮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다.

IOWA fired 40 rounds and NEW JERSEY 18 rounds at ranges of between 33,500 (30.6 ㎞) and 39,000 yards (35.6 ㎞). IOWA opened at 35,000yds (32 ㎞) and ceased at 39,000yds (35.6 ㎞). She fired 40 rounds HC in 8-gun salvos, straddling on the first salvo. NOWAKI altered course after the first salvo and the next two salvos were fired during this turn. After the third salvo landed, NOWAKI disappeared from radar and optics and the last two salvos went out in generated mode from the rangekeeper. Even so, both ships reported being able to see the splashes (but not NOWAKI) out to nearly 39,000 yards (35.6 ㎞) on radar and visually (using optics, of course).

위에서 보듯 레이테 만 해전에서 전함 아이오와(IOWA)와 전함 뉴저지(NEW JERSEY)가 일본의 구축함 노와키를 레이더로 발견하고 레이더 조준사격을 실시한 적이 있다. 이 당시의 상황은 윌리엄 홀시오자와 지사부로에게 낚여서 휘하의 고속전함부대를 오자와의 미끼인 일본 항공모함부대로 보냈다가 다시 원위치시키는 등의 혼란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35.6㎞ 라는 놀라운 거리에서 협차로 충분히 판단할 탄착점을 형성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물론 구축함 노와키는 명중당하지 않고 빠르게 도주하였지만 이는 크기와 면적이 작고 잽싼 기동이 가능한 구축함이기에 가능했으며, 전함같은 것은 바로 명중탄이 나거나 다음 탄이 명중탄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는 이야기다. 애초에 전함이 장거리에서 구축함같은 작은 목표를 협차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에 미국 전함, 적어도 아이오와급의 통상적인 명중률은 매우 훌륭했다고 보면 된다.

여기에 더해서 항상 일본에서 언급하는 쾌청한 날씨에 낮시간, 20㎞ ~30㎞ 거리에서의 교전이 과연 실전에서 얼마나 발생했는지부터 생각해보자. 뻑하면 폭풍이 불고, 안개가 끼며, 파도가 거친 바다에서는 쾌청한 날씨에 낮시간이라는 조건을 만족하는 것부터가 어렵다. 그리고 레이더를 제대로 사용하는 미군이 일부러 목측관측을 위해 근접한다는 가정도 현실성이 없다. 애초에 레이더로 적함을 발견한 순간, 항공모함에 연락해서 함재기를 떼로 부른다는 끔찍한 사실은 일단 잊자. 한마디로 말해서 일본에게 유리한 비실전적인 상황을 가정한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어뢰명중을 예상하고 달아놓은 벌지도 문제가 컸다. 1943년 12월 25일 요코스카에서 트룩으로 병력과 장비를 수송하던 야마토[16]를 포함한 수송함대는 트룩섬 서방 290㎞ 거리에 있던 미국 잠수함 스케이트(USS Skate)에게 발각되었다. 스케이트는 야마토를 목표로 어뢰 4발을 발사, 이중 한발이 3번 주포탑 우현에 명중하여 구멍이 뚫리고 침수가 시작되었다. 일단 피격 지점은 벌지(bulge)뿐이라 정상적인 경우에는 벌지만 손상되고 끝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어뢰의 충격으로 현측장갑의 하단부가 안쪽으로 밀려들어가고 상부장갑 브라켓이 무너지면서 안쪽으로 구멍을 내는 송곳으로 작용해서 구멍은 더욱 커져 총 3,000톤의 물이 쏟아져 들어갔다. 게다가 브라켓이 송곳으로 변하면서 탄편 방어용 세로벽이 찢어져서 3번 주포탑의 상부 탄약고와 기계실에 침수가 일어났지만 다행히(...) 탄약폭발은 없었고 야마토는 우측으로 기울어진 상태로 트룩으로 향했다. 배가 워낙 큰탓에 침몰만은 면했지만, 구축함 뇌격전술에 광적으로 집착하던 일본해군의 방향성과, 전쟁초 불량어뢰로 분전하던 미국해군의 상황을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고 한심한 초전함(...)의 대어뢰 방어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벌어진 상황을 감안하면 해당 부위에 포탄이라도 맞는 즉시 침수가 시작된다는 이론이 성립돼버린다. 자국의 산소어뢰라도 오사로 맞으면 그냥 격침 당연하게도 구레항에서 배를 수리하는동안 5천톤 이상의 대어뢰장갑을 붙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더 이상 무게증가가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이래서야 야마토가 만약에 미국 잠수함들이랑 한번 더 마주쳤다면 극적이고 장렬한 대공전투고 뭐고 없이 포 한발 못쏴보고, 후술할 시나노의 허망한 최후를 그대로 따라갔을지도 몰랐을 일이다.

동형함이었지만 항모로 개장된 시나노의 사례에서 설계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전후 일본에 대한 미국의 해군 기술 임무 분석가들은 시나노에는 설계 단계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무엇보다도 선체의 대포탄용 장갑과 수선 아래의 대어뢰 방뢰구역(bulge) 사이의 연결이 형편없이 설계되었다는 점이었다. 잠수함의 어뢰는 모두 이 연결부위를 따라서 폭발하였다. 게다가 어뢰의 폭발력은 기관실 중 하나의 H형 들보를 밀어냈는데, 밀려난 들보는 두 기관실 사이의 구멍을 내는 초대형 망치가 되어버렸다. 방수격벽 문제도 침몰하는 데 큰 원인이 되었는데,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침수가 너무 급격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도무지 대응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다른 증언에 따르면 접합부의 리벳이 터져버려 침수가 급격히 진행되었다고 한다. 즉 도면을 개략적으로 보자면 당시 최신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기술부족으로 설계단계에서부터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최신예전함답지 않게 거의 모든 부위를 리벳으로 접합하는 구식 기술을 사용했다. 리벳접합은 두개의 강철판에 일정 간격으로 구멍을 뚫고 리벳이라는 쇠못을 박아서 접합하는 방식으로 기술력이 부족해도 충분히 사용이 가능한 방법이며, 오랜 기간 사용해왔으므로 신뢰성도 높은 편이지만, 추가되는 리벳의 무게등으로 인해 중량이 증가하고, 충격을 받으면 리벳이 끊어지거나 뒤틀리므로 해당 부위가 혼자서 분해되거나 누수현상이 발생한다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게다가 버틸 수 있는 충격량도 한도가 작아서 원래 강재의 허용응력의 약 45%정도가 한계였다. 여기에 더해서 리벳접합식 전차에서도 나타난 일이지만, 직격을 받은 부위의 리벳이 부서진채로 내부로 총알같이 날아오는 문제때문에 사상자를 늘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본제국도 외국에서 전기용접기술을 도입했으나, 제4함대 사건과 모가미급 중순양함에 적용된 전기용접의 미숙한 적용으로 인한 각종 균열 덕분에 대형함선에 전기용접기술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서 야마토급 전함까지 악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야마토급 전함은 리벳부터 615만개 이상 사용했는데, 이 때문에 중량 증가뿐 아니라 상술된 리벳이 충격을 받아서 파손되어 침수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문제등의 약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일본군 쪽에서도 할 말은 있다. 원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강재로는 용접기술을 적용할 경우 취성 등의 문제로 인해 선체에 균열이 가기 쉬웠다. 구식 강재를 대량 사용한 미국의 리버티급 수송선은 용접 불량등으로 거의 10%에 달하는 자매선들이 어뢰공격이 아니라 항해도중의 선체파손으로 침몰했다고. 이 문제를 해결할려면 선박용 강재를 용접방식에 적합한 고장력강으로 만들어야 하며, 결국 2차대전 이후 고장력강이 선박용 강재로 대량 도입되면서 해결이 났다. 따라서 용접기술이 미천한 일본의 입장에서는 확실하고 신뢰성이 높은 리벳접합을 중시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야마토급 전함에서 리벳 접합이 사용된 부분은 선체 중앙부이고 선수부와 선미부는 전기용접을 도입했다. 이는 수류 저항의 감소를 도모한 것으로 영국의 킹 조지 5세급 전함들도 선체 중앙부는 리벳 접합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변명을 하면 할수록 문제가 점점 커진다. 애초에 리버티급 수송선같이 급조해서 대량생산하는 물건에 투입되는 기술력과 정성과 노력은 수년에 걸쳐서 건조하는 주력함에 들이는 정성과 기술력과 노력보다 매우 적다. 이는 일본을 제외한 열강의 주요 전함과 순양전함, 항공모함같은 물건들이 용접결함에서 오는 심각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만 봐도 충분하다. 결국에는 기술력이 미천한 일본의 현실만 드러낸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기술력도 부족하면서 리벳과 용접을 함께 사용한 결과, 좋은 방향으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상황을 악화시켰다. 무사시의 침몰은 용접을 쓴 함수부와 함미부의 파손이 심각한 부력감소로 이어진 것이 주 원인이었으며, 야마토 역시 앞서 설명된 것처럼 중앙부의 리벳접합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침수현상이 커지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함선의 어떤 부위나 다 약점이 된 셈이며, 리벳을 안써서 중량감소를 한 것도 아니고, 100% 리벳만 써서 신뢰성을 증가시킨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가 된 것이다.

5.3. 느린 속도와 짧은 항속거리

애초에 야마토급 전함의 속도에 대해 일본 해군이 요청한 수치는 항공모함과 함께 발을 맞출 수 있는 30노트였다. 이를 위해 최신 디젤 기관을 탑재할 예정이었으나, 이 디젤 기관을 실험장착했던 류호가 시도 때도 없이 기관 트러블을 일으키는 통에 디젤 기관 계획은 취소. 엔진이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까지는 어떻게 넘어간다쳐도, 집중방어구획 설계로 제작된 야마토의 경우 트러블을 일으킨 기관을 들어내고 정비하는 것이 어렵다는 정비성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꼭 디젤 기관이 아니더라도 강력한 증기 기관을 추가로 장착하는 안이 있었지만, 디젤 기관을 비슷한 규모의 증기 기관으로 변경한 것만으로도 이미 3000톤의 배수량 상승이 일어났는데 여기에 추가까지 할 경우 배수량이 1만톤 가까이 늘어난다는 결론이 나왔고, 당시 함정본부는 천문학적인 건조비의 절약을 위해 기관을 늘리는 선택지를 포기.
그외에도 함의 길이를 늘리는 설계변경을 통해 30노트는 가능했으나, 이것 역시 집중방어구획이 넓어져 추가 예산이 소모된다는 이유로 각하되었다.

종합하면 기술력의 문제, 예산의 문제 등의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결국 30노트를 포기하게 된 것. 야마토의 외형적 특징인 짧고 굵은 모양을 가진 통통한 선체 역시 이러한 요인에서 기인한 것으로, 이런 선형은 포격전의 안정성은 높아지지만 속도에는 치명적으로 안좋은 영향을 주었다.

여기에 더해서 일본의 대형군함용 엔진인 함본식 로(ロ)호 중유보일러(艦本式ロ号重油専焼罐)와 함본식 스팀터빈(艦本式高中低圧蒸気タービン)은 유럽이나 미국의 1920년대 기술을 답습해서 모방한 수준이었다. 물론 신뢰성이나 작동성능은 다른 일본의 엔진보다 매우 우수하였지만, 아이오와급의 신형 대형 고출력 스텀터빈 및 아이오와급의 보일러가 섭씨 468도에서 증기압력 42kgf/㎠ 를 내는 것을 생각한다면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다.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이나 사우스다코타급 전함같은 다른 미국의 신형전함에 비해서도 이들이 쓰던 보일러는 섭씨 454도에서 증기압력 39.7kgf/㎠ 이므로 엔진성능면에서 열세였다. 그래서 최신기술을 이용할 수 없으므로 안그래도 떨어지는 출력이 더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야마토와 같은 15만 마력을 채용한 프랑스의 리슐리외급 전함에 탑재된 보일러는 6기, 그것도 일본해군 구축함용 보일러의 온도 및 압력과 동일한 물건인 섭씨 350도에서 증기압력 30kgf/㎠ 이었다. 야마토급 전함의 보일러가 12기를 사용하면서 섭씨 300도에서 증기압력 20kgf/㎠ 라는 점과 비교하면 안 까일래야 안 까일 수 없다. 이는 일본내 팬덤에서도 야마토급을 까는 데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출력에 비해서 기관부 중량이 과대하게 많다는 것이 주요 비판점이다.

그래도 야마토의 속도인 27노트는 건조 당시에는 괜찮은 속도이긴 했다. 하지만 취역하고 나니 주적인 미국의 전함은 구식전함은 아예 상륙작전용 및 비상대응용으로 전환해버리고 신형전함은 모두 똑같이 27노트의 속도를 내며, 영국의 전함도 신형전함이 29~30노트를 내므로 따라잡기도 벅찼다. 특히 아이오와급 전함은 전쟁 후반부에 나오긴 했으나 33노트가 가능하며 과부하를 걸면 35노트까지 가능하므로 이미 답이 없었다. 게다가 야마토의 과부하 지속능력부터 아이오와급보다 크게 떨어지므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오히려 거리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다.

게다가 사실 이렇게 상대방 전함의 속도를 굳이 따질 필요도 없는 것이, 일본군의 중순양함과 같이 다니면서 화력지원을 해주거나, 조금 멀리 떨어진 지역에 파견보냈다가 적의 항공권 밖으로 탈출할 능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결론이 이미 일본 내부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과달카날 전투에서 공고급 순양전함인 히에이가 중순양함의 근접사격에 당해버리고, 키리시마가 급수로는 상대가 안될 정도로 막강한 16인치 주포 탑재 신형전함인 워싱턴에게 신나게 두들겨맞는 참사가 발생했지만 야마토를 전장에 파견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고 일본 해군의 상징을 그런 사소한 임무에 투입할 수 없고 연료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가 붙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이렇게 속도가 느린 것도 문제가 큰데, 항속거리를 일부러 축소시키는 실책을 추가로 저질렀다. 원래 자력이동이 가능한 모든 종류의 장비는 항속거리가 길수록 좋다. 항속거리가 길면 공격과 방어시에도 도움이 되는데다가 도주나 후퇴, 우회시 경로를 여러가지로 잡을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보급기지를 덜 만들어도 되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유용하다. 일본군도 그걸 인식하지 않은 건 아니라서 해당 함재기에 탑승할 조종사의 불편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억지로 제로센의 항속거리를 크게 늘리고 나름대로 잘 써먹었다.

하지만 야마토급 전함은 오히려 항속거리를 줄여버린 것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초도함인 야마토가 시험 항해시 측정된 데이터로는 1만 해리 이상의 항속거리가 나오는 것으로 판정이 나왔다. 그래서 군령부는 "기름이 너무 많이 먹힌다!"면서 설계진들의 반발을 깔아뭉개고 3번함 이후의 야마토급은 함내의 연료 용량을 삭감해서 7,200해리가 나오도록 조치했다. 그 바람에 설계 변경 등을 하느라고 3,4번함은 기공만 하고 공사가 중단된 기간이 3개월 이상 나왔다고 한다.

이렇게 억지로 일본군이 연료탱크를 줄인 이야기는 현실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인데, 기름소모량이 그렇게까지 눈에 걸린다면 큰 연료탱크에 기름을 적게 넣는 식으로 간단히 해결가능했을 것이다. 굳이 설계변경과 건조시간 증가까지 불러오면서 억지로 연료탱크를 줄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유사시 연료탱크가 적은 구축함의 연료가 부족할 때, 미국 해군이나 바로 일본군 스스로가 했던 것처럼 아직 여유가 있는 전함의 연료탱크에서 연료를 빼내서 구축함에게 보급하면 호위세력을 유지하면서 보급기지까지 함께 돌아갈 수 있는데, 야마토는 이런 행위가 불가능하니 해당 사태가 발생하면 호위세력을 내버리고 홀로 항해할 수 밖에 없으며, 이렇게 되면 함재기나 잠수함등의 공격에 매우 취약해진다. 이에 더해서 태평양 전쟁이 진행되면서 일본 해군의 연료사정이 안좋아지자, 출동하는 순양함이나 구축함의 연료를 항구에 있는 야마토같은 전함에게서 뽑아내서 보충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말 그대로 항행능력을 일시적으로 상실하고 항구에 묶여있던 기간도 있었다.

5.4. 불충분한 시설

일단, 승조원의 복지향상을 위해 설치한 시설은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일본의 기술력이 좀 떨어지는데다가 승조원에 대한 대접의 기준 자체가 타국의 기준보다 떨어지므로 객관적으로 보자면 약간 모자라는 점은 있으나, 출격부터 침몰때까지 일본의 전함중에서는 가장 상태가 양호했다. 야마토에서의 근무조건중 가장 안좋은 것은 가혹행위였고, 나머지는 미미했다는 점만 보더라도 일본의 해군 승조원에게는 갈구지만 않으면 정말 좋은 곳이었다는 점이 입증된다. 가혹행위에서 이미 틀려먹은 것 같지만 알 게 뭐야

하지만 전투용 시설은 타국의 전함보다 크게 질이 떨어졌다. 주로 사격통제장치와 관련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일단 자랑거리 중 하나인 초대형 측거의는 실제 운용해보니 쾌청한 날에도 30㎞ 거리의 목표가 잘 관측되지 않는 등 예상했던 것보다 조준 및 관측가능한 거리가 크게 떨어져서 정확한 관측은 20~25㎞이 최대한계였다. 그리고 측거의 특성상 광학장비이므로 날씨가 쾌청한 경우가 아니면 안그래도 떨어지는 성능이 크게 떨어졌다. 그런데 바다에서 날씨가 쾌청하고 구름이 없으며, 안개따위의 시야를 가리는 현상이 없는 날은 그렇게 많지 않다. 덤으로 야간에는 말 그대로 장님이 돼버리므로 견시를 사용해서 인간의 육안에 의존해야 한다. 애초에 전함씩이나 되는 병기가 험악한 바다에서 날씨와 주야간 여부까지 따지면서 싸워야 한다면 전투용으로는 못 써먹는다는 의미나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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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레이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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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레이더의 화면SG레이더의 화면부 및 조절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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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급 전함의 Type 22 수상레이더의 모습Type 22 수상레이더의 화면

그리고 레이더를 달았다고 하긴 하지만 미국의 SG레이더처럼 각도, 방위, 거리가 다 나오고, 포탄이 바다에 낙하해서 떨어지는 물기둥까지 탐지가 가능하며, 대략적인 광점의 크기와 이동속도를 연속으로 표시해줘서 이게 항공기인지 함선인지, 함선이면 대형인지 소형인지 알 수 있고, 주포탑의 사격제원컴퓨터와 연동이 가능한 물건이 아니라 대강 어느 각도에 뭔가가 있다만 아는 수준의 허접한 물건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일본군의 무기체계에서 보듯이 기술력이 딸리기도 했는데다, 관료주의적인 문제로 인해 이미 알고 있는 기술이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물건으로 제대로 된 사격통제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은 레이더만 좋은 것이 아니라 레이더를 이용한 사격관제기술을 전쟁 중에 크게 발전시켜서 이미 실전에서 잘 써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링크 1 링크 2 링크 3 링크 4 링크 5 그런데 이걸 상대할 일본군의 경우 안그래도 허접하기 짝이 없는 레이더에 그나마 제대로 된 사격통제는 주포와 부포만 가능하며 이마저도 대수상 능력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대공포의 경우에는 개략적인 사격개시명령이 떨어지면 그 후는 대공포좌에 있는 조작요원들이 알아서 잘 해야 했다. 하지만 일본군의 대공포 능력 자체도 매우 처량했다. 그래서 대공포화의 숫자에 비해 대공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신기하게도 전함치고는 특이하게 선수의 구상함수 내부에 수중 음파탐지기를 장착했다. 이 물건은 소나(Sonar)와 구조가 비슷한 물건으로 잠수함등을 탐지하는 물건이다. 나름대로 전함의 적이라고 볼 수 있는 잠수함에 대한 대비를 한 것 자체는 좋다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는 그 당시의 일제답게 성능이 좋지 않아서 잠수함이 있는데 탐지하지 못하고, 잠수함이 없는데 있다고 탐지하는 오인사고를 자주 내는 바람에 사실상 별로 쓸모가 없었다. 결국 공간낭비로 끝났다.

5.5. 부족한 부품과 장비

야마토급 전함은 그 자체가 기존의 전함들의 공통 규격을 싸그리 무시한 규격 외의 사이즈였기 때문에 당연히 기존의 부품을 사용할 수 없고 부품 하나마다 기술자의 손재주가 들어가는 특제로 제작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취역한 시기가 일본의 전함중 가장 나중인데다 태평양 개전 직후에 취역했기 때문에 미리 전쟁전에 예비 부품을 제조할 시간도 자원도 없었고 일단 적에게 선빵을 후려치며 전쟁에 돌입한 이상 다른 함선들처럼 한가하게 그런 예비 부품 따위를 만들고 있을 처지도 아니었다. 따라서 예비 부품이나 장비의 수량이 매우 부족하거나 아예 없어서 손상시 수리를 위해서는 건조가 취소된 다른 자매함들의 부품과 자원을 유용하 수복하거나 그마저도 안되면 부품이 제조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추가되므로 한번 손상되면 장기간 도크 내부에서 놀고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일례로, 그렇게 자랑하는 18.1인치 주포는 아래와 같은 복잡한 과정으로 제조된다.

1강괴를 가열하여 2,000톤 프레스로 단조를 실시한다.
2강괴의 머리부분 30% 와 하단부 15%를 절단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강괴의 머리부분 및 하단부는 성능을 저하시키는 불순물의 농도가 높기 때문이다.
31250℃까지 강괴를 가열한후, 그 온도로 2시간 정도 보관유지한다.
4소둔처리를 실시한다. 소둔처리는 열처리한 후, 강철을 적정온도에서 가열해서 보관유지 과정을 거친 다음, 천천히 냉각하는 과정이다.
5절삭가공을 한다.
6담금질을 한다. 담금질은 열처리한 후, 급냉하는 것이다.
7재가열한다.
8시험편 채취 및 검사를 한다. 이 과정에서 큰 이상을 발견하면 강괴 전체를 폐기해야 한다.
9자기긴축처리를 한다.
10마무리 절삭가공을 한다.
11강선을 가공한다.

한눈에 봐도 복잡하고 시간 및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과정인데, 덕분에 일본이 종전시까지 제작한 18.1인치 주포의 포신숫자는 고작 27문이었다. 1938년 3월에 첫번째로 완성된 주포는 카메가쿠비 포격시험장에서 테스트를 받았고, 18문의 주포는 야마토와 무사시에 장착되었다. 따라서 남은 주포수는 고작 8문이며, 이걸로는 야마토나 무사시중 한척의 포신을 전부 교체하지도 못할 수준에 불과했다. 시험용으로 쓰던 주포까지 교체용으로 감안해도 고작 한척의 주포를 교체하는 수준이며, 시나노가 원래 계획대로 전함으로 만들어졌다면 주포 교환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참고로 남은 주포의 행방은 1945년 종전후 2문은 카메가쿠비 시험장에서 폐기되었으며 나머지 7문의 일부는 미완성 단계였으나 상태가 양호한 2문은 버지니아에 있는 Dahlgren 포격시험장으로 보내졌고 나머지 5문은 폐기되어 1950년대 고철로 처리되었다.

당시에 미군은 야마토급의 18인치 주포에 대하여 정밀 분석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

이 주포는 보기 드물 정도로 정교한 방식으로 제조되는데, 어쩌면 그런 류의 대구경포를 제조하는 일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2A라 명명된 A 튜브는 약실부터 전체 길이의 절반 정도쯤 되는 부분을 압착하여 에워싸는 3A 튜브가 있다. 이렇게 조립하고 나서 와이어 와운드(wire-wound)[17] 공정을 마치고 나면, 모든 부분에 걸쳐 조여주는 2개의 튜브층과, 2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약실부 끝의 마개가 추가된다. 포신 중앙부의 여러 튜브들은 접시 스프링 와셔로 꽉 조여져 있는데, 아마도 포신에 쌓이는 피로가 집중되는 것을 줄이고, 혹시라도 모를 "포신 내부의 공간이 좁아지는 문제(steel choke)”를 방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형태는 영국의 빅커스(Vickers)社에서 탄피 홈을 만든 방식과 유사하다.

1A로 알려진 내부의 A튜브는 유압을 이용해서 독립된 3단계의 과정을 걸쳐 방사형으로 팽창되어 고정된다. 내부의 A 튜브가 자리를 잡으면 강신을 새겼다. 또한 3A 튜브에는 짧은 멈춤쇠(breech ring)가 달려있고, breech bush[18]가 파여져있다. 약실은 일본판 애즈버리(Asbury) 식 약실에 웰린(Welin) 폐쇄기를 조합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식으로 설치하는 방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포를 재생(relining)하려면 내부의 A 튜브를 전부 파내야한다(Boring)는 점이다. 이건 매우 비용이 많이 드는 방식이므로, 두 전함 모두 전쟁 내내 포열을 교환한 적이 없기는 하지만, 단순히 사용한 포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더 실용적일 것이라 생각된다. 이 부분은 이 전함들의 짧은 생애를 보여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요약 : 여러개의 튜브로 포신을 만들면서 밖에 있는 포신이 안에 있는 포신을 꽉 조이도록 만든 것인데, 재생하려면 안에 있는 튜브를 뽑아야 하므로, 차라리 새로 만들라는 이야기다.

보고서 내용대로라면, 야마토의 18.1인치 주포는 1회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이 이야기는 다 쓴 포신을 재가공해서 전투목적으로 재사용이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야마토의 포신 내구수명은 고작 200발이다. 이렇게 될 경우 포격연습을 좀 빡세게 하고 함대결전에 1회 투입된 다음에는 모든 포신을 갈아야 하는데, 앞서 설명했듯이 포신의 여유분이 없다시피하므로 한동안 공격능력을 상실한 상태로 항구에 계류되어야 한다. 또한 이런 이유로 인해 포신마모를 우려해서 사격훈련을 강도높게 진행하지 못했다.

포신 하나만 따져도 이지경이니 다른 거대부품을 감안한다면 답이 안나온다. 실제로 시나노의 구상함수는 건조중에 파손돼서 부품이 없었으나, 건조가 취소되었지만 아직 건조장에 남아있던 네번째 야마토급 전함인 111호의 구상함수를 떼어내서 달았다고 한다.

6. 실전

6.1. 미드웨이 해전

1번함 야마토는 취역한 이후에 나가토로부터 연합함대기함 역할을 물려받고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했지만, 알다시피 전장에서 삼만팔천리 떨어진 곳에서 연합함대의 기함 역할만 하다가 끝나서 실제로 전투하는 일은 없었다.

6.2. 야마토 호텔과 무사시 여관

그후로 오랫동안 해군의 상징으로 아껴진다(…). 당연히 전투에 참가할 일도 없으니 그 잘난 18.1인치포로 공을 세울 일도 없고 진짜 해상호텔 노릇만 톡톡히 했다. 그러다 전함 무사시가 취역하자 1943년 말 총기함 임무를 교대해 이제서야 태평양으로 나서게 된다. 무사시 역시 무사시 여관으로서 호화숙박시설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6.3. 어뢰다!

1943년 12월 25일, 요코스카에서 트룩으로 병력과 장비를 수송하던 야마토를 포함한 수송함대는 트룩섬 서방 290㎞ 거리에 있던 미국 잠수함 스케이트(USS Skate)에게 발각되었다. 스케이트는 야마토를 목표로 어뢰 4발을 발사, 이중 한발이 3번 주포탑 우현 벌지(Bulge)에 명중했다. 벌지라는 물건은 어뢰를 막으라고 달아놓은 것이기에 원래대로라면 탈이 안 나야 하겠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요상한 설계때문에 이놈의 벌지가 어뢰에게서 받은 충격 때문에 야마토의 선체를 꿰뚫고 구멍을 내버렸고, 야마토는 3000톤의 바닷물을 먹고 오른쪽으로 기울어졌지만 침몰은 면했다. 그래서 구레로 돌아가서 수리하느라고 상당한 시간을 소모한다. 너 세계 최강의 초전함 맞냐

겨우 수리를 끝내고 다시 전쟁터에 나가보니 이미 태평양엔 미군의 전함이 아니라, 미 해군의 항모와 거기에서 날려보낸 함재기들이 어뢰와 폭탄을 한가득 싣고서 바다와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덕분에 또 딱히 전투에 참가해보지도 못하고 전력보존이란 명목 하에 계속 후방으로만 돌려졌다.

6.4.1. 시부얀 해전

일본 해군이 총력을 기울인 레이테 만 해전에서, 야마토는 구리다 부대의 일원으로서 야마토급 전함 2번함이자 자매함인 무사시와 함께 출격한다. 무사시는 다른 배보다 조금 밝은 색상으로 도색하고 출격했는데, "우리는 미끼다"라는 소문이 함내에 퍼지면서 승조원들이 불안해했다고 한다. 미끼 맞아

레이테 만으로 진격하던 도중 미군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함대 기함인 중순양함 아타고가 침몰했고, 구리다 제독은 구조된 후 야마토를 구리다 함대의 기함으로 정한다.

시부얀 해전에서 구리다 함대는 미군 함재기의 공습을 받았고, 색상이 밝아서 눈에 확 띈 무사시는 집중공격을 받는다. 무사시는 미군의 공습에 대응하고자 주포로 3식 통상탄을 발사했지만 미군 함재기들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고, 무사시의 대공포반만 개발살났다(...) 개수를 통해 추가된 대공포가 바깥에 노출되어 있어서 주포 발사의 충격을 그대로 받았다고. 대공포반은 주포를 쏘지 말라고 했지만 주포가 말을 듣지 않았고, 이 일로 대공포 반원들과 주포 사수들은 나중에 주먹다짐 직전까지 간다. 어쨌든 무사시는 주포로 열심히 대공사격을 계속했고, 미군은 신나게 무사시를 두들겨팼다. 이 주포는 해로운 주포다

이 와중에 무사시의 1번 주포탑에 달린 주포 3개 중 하나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난다. 3식탄의 폭발 시간을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포탄이 폭발한 게 원인이었고, 방해자가 없어진 대공포반은 전력을 다해 싸웠지만 미군이 너무 세서 망했어요. 결국 무사시는 침몰하게 되었고, 포술장은 자기가 주포 통제를 잘못해서 무사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며 사과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다만 무사시가 어글을 끌어서 중순양함 묘코가 피해를 입은것 외에는 함대에 큰 피해는 없었고, 구조된 승조원들 중 절반은 일본으로, 나머지 반은 필리핀 방어전에 동원된다. 무사시의 함장은 거함거포주의를 주장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편지를 남긴 후 배와 운명을 함께 했다고 한다.


6.4.2. 사마르 해전

무사시를 잃은 구리다 함대는 곧바로 퇴각을 시작한다. 구리다 함대를 쫓아낸 윌리엄 홀시오자와 지사부로가 이끄는 일본군 항모전단을 발견하고, 3함대를 이끌고 진격해서 엔가노 곶 해전을 벌인 끝에 오자와의 항모 전부를 수장시킨다. 이 해전에서 미군은 진주만을 공격했던 철천지 원수 즈이카쿠를 갈아버린다. 복수 성공

그러나 3함대가 진격하면서 산 베르난디노 해협의 감시망이 사라지고, 이 틈을 타서 구리다 함대는 해협을 돌파, 레이테 만으로 진격하다가 스프레이그의 호위항모전단과 마주친다. 포격전이 가능한 거리였으므로, 드디어 야마토의 18인치 주포가 위력을 발휘할 순간이 온 것이다! 기대하시라 야마토 무쌍 미군은 혼비백산해서 도망쳤고, 일본군은 급히 미군을 추격하면서 사마르 해전이 벌어진다.

하지만 미군의 콩알만한 구축함들은 겁도 없이 어뢰와 주포를 쏘며 덤벼들었고, 호위항모들도 도망가면서도 주포를 쏘고 함재기를 날리며 반격했다. 이들 중 구축함 USS 히어만(DD-532)이 공고급 순양전함 하루나에게 덤벼들어 어뢰를 발사했고, 하루나는 이것을 피하지만 바로 뒤에 있던 야마토를 향해 어뢰가 달려들었다(!) 야마토는 재빨리 어뢰를 피하지만 방향을 잘못 잡아 미군 함대와 반대편으로 달리게 된다. 어뢰가 질주를 멈출 때까지 경주를 하게 된 야마토는 전장에서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레이테에서는 구축함이 초전함보다 강력합니다! 전장에서 너무 멀어진 데다가 계속된 격전으로 인한 피로 때문에 구리다 제독은 레이테 만으로 진입하지 않고 퇴각하기로 결정했고, 이게 그 유명한 구리다 턴이다. 결국 구리다 함대는 미군 상륙전단을 격파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고, 야마토는 구리다 제독의 판단 착오를 일으킨 원인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6.5. 시나노 격침

3번함 시나노는 일단 개전시에 건조가 중지되었으나, 미드웨이 해전 이후의 항공모함 부족을 타개하고자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성능이야 어쨌든 제2차 세계대전 기준으로는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이었다.

1944년 12월 29일, 마무리 공정을 위해 구레 항으로 향하던 시나노는 미 해군의 발라오급 잠수함 SS-311 USS 아처피시 (Archerfish)의 매복에 걸려들어 어뢰 4발을 맞는다. 아무리 항모로 개조되었다고 해도 야마토급 전함 3번함이니 정상적이라면 격침될 수가 없지만, 8시간도 못 버티고 침몰해버렸다. 그리고 시나노는 미 해군에게 잠수함이 잡은 역대 최대의 군함(경험치 조공...)이라는 위업(...)만 헌납한다. 부실공사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대재난이었다(...)

6.6. 격침

(ɔ) from
미군의 공격을 받는 야마토. 어뢰로 인해 가라앉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결국 1945년에 들어서며 일본의 전황이 막장 악화일로를 달리자, 야마토는 편도 연료와 1170발의 주포탄[19]을 싣고 오키나와로 상륙해오는 미군을 막기 위한 '천 1호 작전'에 나선다. 뭔말인고 하니 편도연료로 오키나와 해안에 도달해 그 상태로 해안 모래밭에 올라타(좌초) 고정포대 노릇을 하는 작전이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고정포대 노릇을 한 전함이 있긴 하지만, 마라는 그나마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인민의 적에게 1톤짜리 폭탄을 얻어맞은 거고, 전함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그럭저럭 제 할 몫을 해냈으며 각종 시설과 대공포대가 있는 자국의 군항 내부에서 고정포대가 된 것이라 야마토가 맡은 작전 같지도 않은 작전과는 3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었다. 거기에 그 꼴로도 마라는 레닌그라드를 수호하며 레닌그라드의 수호신이라 칭송받기까지 했으니 야마토 따위와는 비교할 수 조차 없다.

이렇게 무모한 작전을 세운 이유는 당시 일본의 해군 함정용 중유의 비축분이 바닥을 드러냈던 것도 있지만, 출격 자체가 '제국해군의 상징답게 장렬히 죽어라'였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쟁이 일본의 패배로 끝나고 난 뒤, 높으신 분들에게 '우리 해군은 이렇게 열심히 싸웠음에도 지고 말았습니다'라는 변명을 하기 위해서는 해군의 최대전력이었던 야마토가 살아남아있어서는 안됐기 때문. 한마디로 작전 자체가 미군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 아닌 야마토를 가라앉히기 위한 것이었고, 아무도 야마토가 미군을 막아내리라는 기대 따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작전에 구멍이 엄청난데, 미 해군의 대함대의 방해를 뚫고 오키나와까지 가는 것 자체는 잠시 생각을 접어두고라도 오키나와 해안에 좌초하면 오키나와 전투를 수행중인 일본군 수비대의 도움 없이는 그냥 고정표적 1호가 돼버린다. 재수없으면 미군에게 육박공격이나 당해서 점령당하는 막장 상황USS YAMATO(BB-6X)이 벌어지며, 그런 일이 없더라도 좌초된 군함의 연료와 탄약이 떨어지면 그냥 거대한 고철덩어리로 전락하는데다 앞서 말했듯이 이동능력이 전무하므로 공중에서 폭격하는 비행기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따라서 애초에 이 작전의 성공확률이 극히 낮은데다가 고정포대 노릇을 하는 것은 설령 야마토가 작전지역에 멀쩡하게 도착했더라도 불가능하다.

거기에 출격시기 자체도 일기예보상 2~3일 뒤에 미 항공기 운용에 지장을 주는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었던지라 그나마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날이 흐려 시야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 날을 골랐다. 결국 구름과 안개속에서 갑툭튀하는 미 항공기들을 상대로 대공사격은 거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나마 당시 유류탱크 담당 장교가 윗선과는 다르게 생각이 있어서인지 유류 탱크 펌프가 닿지 않는 아랫쪽까지 인력(!)으로 퍼내서 '적어도 멍청하게 꼬라박느니' 중간에 회항할 것을 어느정도 가정하고 왕복연료로 메꿔서 줬다고 한다. 물론 상부에 보고한 것은 편도분 연료만 넣은 걸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유류 탱크 바닥에 남아있는 연료는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분량이기 때문이다. 당시 참모들도 알면서 눈감아 줬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상 자살임무에 가까운 작전이었으므로 만일 배가 격침될 경우 살아남은 승조원이 주변 섬에 표류할 것을 생각해서 약간의 돈과 비상용 물자를 승조원에게 배급하기도 했으며[20] 출격 전에 술잔치를 벌여서 최대한 사기의 저하를 막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출항 직전에는 B-29를 개조한 장거리 정찰기에, 출항해서는 일본 근해를 벗어나기도 전에 잠수함에게 들켰으니 이미 그 상황에서 미국은 야마토의 출항을 알아차렸고, 채 오키나와에 도달하기도 전에 미군 함재기 부대에 포착되었다. 일본 함대가 출항했다는 것을 포착했다는 보고를 들은 스푸르언스 제독은 미처 제독 휘하의 항모들에게 처리를 맡겼다.[21]

이 때 같은 급인 무사시가 양현에 골고루 어뢰를 맞아서 침수 구획이 균등하게 침수되는 바람에 오히려 격침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 무사시는 잠수함에게 최후를 맞았다는 낭설까지 돌았기 때문에, 해당 전투의 전훈을 살려 미군의 조종사들은 독자적인 판단으로 야마토를 공격할때 좌현에 집중적으로 공격을 가했다. 그래서 야마토는 이 해전에서 좌현에 9발의 어뢰를 맞은 반면 우현에는 단 한 발의 어뢰만 피격당했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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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하는 야마토

결국 250대의 항공기에게 어뢰와 폭탄을 배불리 먹은 후(…) 배가 기울어지면서 주포 탄약고에 있던 주포탄이 바닥으로 쏟아지면서 충돌, 결국 탄약고에 유폭을 일으켜 대폭발하며 버섯구름을 피워올리며 순식간에 해저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만다. 폭발이 위력이 너무 커서 폭음은 100㎞나 떨어진 규슈 남부까지 들렸고, 폭발연기는 160㎞ 거리에서도 관측되었으며, 퇴함한 승조원중 상당수가 폭발에 휘말려서 죽었다. 일단 버섯구름 옆에 있는 함선의 크기와 비교해도 엄청난 폭발인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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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의 잔해

폭발의 여파로 함체는 완전히 두 동강이 난 채 각각 멀리 뒹굴고 있다는 것이 근래의 수중탐사로 밝혀졌다. 이로서 우주전함 야마토는 힘들어졌다.

이 전투에서 미 해군과 일본 해군의 인명손실은? 비교하지 말자. 미군은 헬캣 3대, 헬다이버 4대, 어벤저 3대가 격추됐고 조종사 4명, 항공승조원 8명이 사망했다.# # # 총 12명. 일본군은 야마토에서 3055명, 야하기를 포함한 제 2수뢰전대에서 1187명이 사망했다. 따라서 둘을 합친 일본군의 총 전사자 숫자는 4242명. 미군 한 명이 전사할 때 일본군은 353.5명이 전사(...)하는 더없이 초라하고 굴욕적인 전과를 기록하며 연합함대의 이름뿐인 자존심은 그렇게 태평양에 가라앉았다. 거기에 태평양 전쟁을 치루면서 소중한 피와 목숨을 값비싼 수업료로 지불해 가며 입지를 탄탄하게 쌓아온 항공모함에게 주도권을 상실당한 전함은 마침내 초거함 야마토급의 격침과 함께 거함거포주의의 종말을 맞이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군함계의 타이타닉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호화로운 스펙으로 만들어지더니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것도 진짜로 타이타닉과 닮았다. 그리고 침몰된 야마토를 조사한 것도 타이타닉을 조사한 그 탐사선이었다.

야마토의 침몰 과정에서 일본 해군은 자신들이 가진 최대의 함선이자, 연합함대의 자랑이었던 함선을 본토 진격을 늦추려고 아예 갖다 바쳤다. 이를 본 미국은 카미카제에 이어 자신들의 전함까지 자살공격에 쏟아붓는 일본을 정상적 공격으로 굴복시키기 힘들다고 생각했고, 원자폭탄의 실전 투입 의견이 강해졌다.

6.7. 격침의 의미

6.7.1. 일본

야마토는 내실이야 어쨌든 세계 최대의 전함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렇게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게 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높으신 분들은 그렇게 했다.

사실 야마토의 최후의 출격은 군국주의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야마토가 오키나와로 출격하는 것은 당시 전황으로는 성과를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자살에 불과했기 때문에 군부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 군 수뇌부에서 그런 반대 의견을 누르기 위해 한 말이 "병력을 남긴 채 패전한다면 연합함대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였고, 그 말에 모든 반대의견이 쑥 들어갔다고 한다. 설득된 것이 아니라 설득을 포기했기 때문이지만.

즉 출격작전 자체가 체면과 '남자다움'을 우선시하고 죽음을 미화하며 찬양하는 일본 군국주의 특유의 사고방식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 '남자다움' 따위나 챙기다 다 죽으라고? 거기다 히로히토도 "해군이 항공작전 말고 수상함 작전은 안 하느냐"며 은근히 부추겼다. 덴노께서 이러시는데 누가 감히 반대하겠느냐 말이다. 진짜로 반대란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반역자로 인생끝장 크리.

그래도 제대로 된 작전이라도 세웠다면 좀 나았을 것이지만 하필 사용자가 일본군이라서 그저 닥치고 적이 진을 치고 있는 오키나와로 반자이 어택을 해버린 것.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해전 결과는 미군 12명 전사에 일본군 4242명 전사. 겨우 비행기 10대와 12명의 적군을 4242명의 군인과 세계 최대의 전함(과 호위함들)하고 바꿔먹은 거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미군의 공격을 얻어맞기만 하다가 죽었으니 연합함대의 체면은 완전히 망가진 셈. 일본의 높으신 분들은 만족했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특히 미군)이 보기에는 그냥 선물 보따리에 불과했다.

출격 과정이 워낙 병크이긴 해도 어차피 출항시키지 않아 살아 남았어도 구레 군항 공습 등 공습으로 격침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주요 전함도 몇발의 폭탄을 맞았는데 어뢰에 폭탄을 한참 얻어맞고야 터진 야마토급을 빠르게 격침시키긴 어려울 수도 있다.

6.7.2. 미국

일본 해군의 상징을 격침시켰다!
적장 물리쳤다!

미국 해군 입장에서 야마토는 무조건 격침시켜야 할 적이었다. 세계 최대의 전함이자 일본 해군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미 해군 항공대의 사정도 한몫을 했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항공모함 전단을 유지하려면 항공모함이 전함보다 세다는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사시의 경우도 잠수함에게 격침되었다는 설이 나돌 정도였으므로, 항모의 가치를 보여주려면 일본군의 1급 전함을 함재기로 격침시켜야 했다.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전쟁이 끝나면 국방예산이 축소될 것이므로 이런 어필은 꼭 필요하기도 했다.

그래서 야마토가 출격하자, 미 해군 항공대는 야마토를 죽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고 결국 야마토를 격침시켰다. 세계 최대의 전함도 격침시키고 항모전단의 가치 어필도 했으며 피해도 매우 적었으니 미 해군에게 야마토는 엄청난 선물 보따리였다.

6.8. 야마토급의 전과


최후의 순간까지 자매함인 무사시와 시나노를 포함해 이 거함 자매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그 강력한 46cm 주포로 격침시킨 적함은 단 한 척도 없었다.

그나마 전혀 전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흔히 거론되는 것이 1944년의 레이테 만 해전에서 야마토와 무사시가 포함된 구리타 함대가 레이테 상륙 작전을 지원중인 킨케이드 지휘하의 3개 호위항모함대중 세번째 함대인 호위항모 6척, 구축함 7척을 지휘하던 스프레이그 소장의 함대를 만나서 호위항모 4척과 구축함 1척도 대파시켰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때 격침된 건 호위항공모함 갬비어 베이 하나뿐이었으며, 이것도 야마토의 전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야마토는 조금 싸우다 말고 구축함이 돌진하면서 날린 어뢰에 대한 회피기동을 하다가 재수없는 방향을 선택해서 어뢰의 항주방향으로 회피했으며, 덕분에 어뢰의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어뢰에게 추격당하면서 뒤로 돌아서 도망가고 있었다.

물론 무사시는 앞서 언급했듯이 일부러 타 함선과 조금 다른 색을 도색해서 미군의 화력을 끌어오는 탱킹 역할을 수행하다가 탱킹의 방어력을 상회하는 집중공격을 맞이해서 폭탄과 어뢰를 신나게 얻어먹고는 포격전에 참가하기 한참 전에 격침당한 상태였다. 그나마 무사시가 입은 총 피해는 포탄 44발, 로켓탄 9발, 어뢰 25발, 폭격 78발(참고로 이 수치는 확실한 수치는 아니며 출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수치이다)이라는 해전 역사상 전무후무한(…) 흰수염 전함버전 피해량이었던지라, 탱커로서의 역할은 충실하게 수행했다고 평가받는 편이지만 야마토는 그런 것조차 없다.

그나마 대공포로 적기를 격추한 전과는 약간 있다. 레이테 만 해전에서 야마토와 무사시가 수량 미상의 적기를 격추했고, 야마토의 최후 전투에서도 비행기 10대를 격추했다고 한다.이 중에서도 함재기 1대는 자신이 야마토에 떨군 폭탄이 폭발하는 과정에서 휩쓸렸으므로 엄밀히 따진다면 비행기 9대 격추라고 볼 수 있으나, 일단 야마토 공격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므로 10대라고 인정된다. 그리고 희생된 사람은 12명. 이 비행기 10대와 전사자 12명이 야마토 + 무사시 + 시나노 3척을 통틀어 따진 야마토급 전함의 모든 전과다.

6.9. 번외편: 과달카날 해전에 불참한 이유

카도쿠라 소우지 중장 : 연합함대에는 아직 무츠도 있고 나가토도 있고 세계 제일의 이 야마토도 있다. 지금이 아니면 거함거포를 언제 쓴단 말인가?
우가키 마토메 중장 : 하지만, 카도쿠라...
카도쿠라 : 지금이야말로 전함 동원해서 최후의 총공격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구로시마 가메토 대령 : 카도쿠라 사령관님, 죄송합니다만 저희들도 그러고 싶습니다.
카도쿠라 : 왜 안 하는가?
구로시마 : 하지만...
카도쿠라 : 하지만 뭔가!
우가키 : 사실은... 아부라가 나인다연료가 없다.

위는 일본 영화 야마모토 이소로쿠에서 나오는 대사. #

야마토는 과달카날 해전에 참가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트럭 섬까지 내려와서 대기중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함 히에이가 미국 구축함들(…)에게 기관포로 두들겨맞거나 기리시마가 전함 워싱턴에게 격침당하는 상황에서도 연료 부족 등을 핑계로 손가락 빨며 구경만 하고 있었다. 실제로 연료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야마토를 한 번도 출격시키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야마토를 그런 하찮은 싸움에 내보내면 연합함대 체면이 깎인다는 게 이유.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독일 해군은 최신예 전함인 비스마르크를 그런 사소한(?) 임무에 투입하여 순양전함 후드를 격침시키고, 신예함인 프린스 오브 웨일스를 중파시키며 영국 해군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물론 그 뒤에 뭇매맞고 가라앉았지만 적어도 용감하게 전투한 끝의 일이므로 야마토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23]

그리고 더욱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그렇게 연료가 부족했던 원인 중 하나가 해군과 육군 사이의 알력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정부가 (산업체를 통제해서, 혹은 직접) 석유를 뽑아올려서 정제한 뒤 육군과 해군에 분배하겠지만, 일본군은 정부의 통제를 받지않고 해군과 육군은 견원지간이라는 사정 때문에 이는 불가능했다. 덕분에 일본군에서는 해군과 육군이 각각 따로따로 유전을 배분받아서 제각기 직접 석유를 정유해서 쓰고 있었으며, 원유나 정유소를 공유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해도 심각했을 석유 부족이 훨씬 더 심각해졌다. 과달카날 해전 당시에도 일본 해군이 배정받은 인도네시아의 유전들은 정유시설이 이미 파괴된 상태였고 육군의 정유시설도 공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기껏 배정받은 유전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또 다른 문제는 야마토의 정규 최고속도는 27노트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과달카날 해역으로 출동하는 일본 전투함대의 속도는 라바울에서 과달카날 섬까지 평균 30노트였으니, 만약 야마토가 과달카날로 진출했다면 그 3노트나 느린 속도 때문에 항해 도중에 함대 자체가 미군 항공부대의 등쌀에 시달리다가 과달카날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라바울이나 트럭 섬으로 회항하게 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 1930년대 초반에 야마토 급의 제원을 정하는 과정에서 20만 마력/30노트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다가 그만한 속도는 앞서 설명했듯이 배수량 폭증과 과도한 비용문제로 기각당했다는 점에서 만약 20만 마력/30노트가 야마토의 기관과 속력으로 채용되었다면, 야마토는 과달카날 해역에서 보다 유용하게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다. 사실 속도가 3노트 정도 늦어진다는 문제는 야마토 없이도 수송함대들이 어느정도 목표를 잘 달성하고 있는 경우에나 의미가 있지, 미군의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워싱턴이 일본 함대를 실시간으로 털어먹는 상황에서 야마토가 놀고 있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즉 체면 때문에 야마토를 출동시키지 않은 상황에서는 야마토의 속도가 빠르건 늦건간에 어차피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여담으로 워싱턴의 속도는 고작 28노트였고, 워싱턴과 동행한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사우스다코다도 27.5노트에 불과했으며,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활약한 일본군의 항공모함 준요는 겨우 25노트다.

또 다른 문제는 야마토가 함대결전사상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져서 운용되고 있었다는 점과 관계가 있다. 함대결전사상에서는 한 번의 중요한 결전으로 승부가 갈리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수리해 가면서 계속 운용하기 위한 예비부품을 준비할 필요가 별로 없다. 게다가 야마토의 경우에는 최대급의 전함이라는 특성상 부품 제조 자체가 상당한 난이도와 시간 및 정성이 필요한 문제점까지 있다. 그 결과 주포와 같은 일부 중요한 부품은 전투중 파손시 즉시 교체할 예비부품량이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즉, 함부로 해전에서 굴리다가 약간의 파손이 발생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부품 수급문제로 상당기간 전력에서 이탈해버린다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볼 때 함대결전을 위해서 딱 한 번 쓰기는 좋은데 다른 용도로 쓰기는 불편한 물건이라고 보면 된다.

7. 평가

사상적으로는 구일본군 하면 해군, 그리고 야마토 하면 그 해군의 상징이었던 만큼, 당시 피해를 입었던 동아시아 주변국들은 야마토란 이름 자체와 그를 이용하는 행위를 일본 극우와 연결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당연히 디스커버리에서 뽑은 최고의 10대 군함에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이유는 제대로 전투에 참가도 못하고 침몰했으므로 제대로 된 평가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것.

7.1. 일반적인 평가

항공모함의 시대에 전함을 내놓는 희대의 삽질
일본 해군 최고의 5성급 호텔
어뢰 한 방 맞고 3000톤의 물을 먹는 물장갑 초전함
주포 일제사격으로 자기 대공포반을 개발살낸 초전함 2호
구축함에게 쫓겨서 전장에서 이탈하는 세계 최강 초전함
부실공사의 여파로 열흘 만에 침몰한 세계 최대 항모 겸 초전함 3호
사상 최대 규모의 카미카제반자이 어택. 12명을 죽인 대가로 4242명이 죽는 비참한 최후
전과 제로
거함거포주의의 종말

성능은 둘째치고, 세계 최대의 전함인 주제에 실전에서 보여준 전과가 제로라는 이유로 대차게 까인다. 대공포로 미군 함재기들을 격추시킨 전과는 있으나, 레이테 만 해전에서 구축함에게 쫓겨서 도망가는 바람에 구리다 턴의 원인 중 하나를 제공했으므로 실제 전과는 마이너스다(...) 이 해전에서 타카오급 중순양함 초카이를 팀킬했다는 설도 있지만, 초카이를 대파시킨 범인은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 화이트 플레인즈가 가장 유력하므로 일단 넘어가자. 호위항공모함이 중순양함을 포격전으로 이기는 건 좀 이상하지만, 구축함에게 쫓기는 초전함도 있으니 그러려니 하자

타국 전함과 비교하면 더욱 비참해진다. 영국군과 미군의 전함들은 전쟁기간 내내 전장에서 활약했기에 전과에서 마이너스를 기록한 야마토와는 비교할 수도 없으며, 해군력이 취약한 독일군의 비스마르크급 전함도 성능 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평가도 받지만 그래도 연합국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었다. 게다가 비스마르크는 어쨌든 적인 영국 해군과 용감하게 전투하고 제대로된 함대함 포격전에서 영국의 자존심을 격침시키고, 신예전함을 중파로 두들겨패서 패퇴시키는 나름대로의 전과를 세우며 영국의 자존심을 무참히 바다에 침몰시켰고 결국 자존심이 박살나서 분노가 극에 달한 영국 해군과 홀로 포격격을 주고받은 끝에 장렬하게 침몰했다.

자매함 티르피츠는 전적도 없었고 더 이상 전함을 잃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노르웨이 피요르드 해안에 은신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언니의 명성과 이름값을 등에 엎고 비스마르크급 전함 2번함이라는 그 존재만으로도 영국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기에 교전국(특히 영국)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야마토급 전함은 전과가 하나도 없어서 그런 거 없다.

심지어 해군력이 취약하기로 유명한 소련군의 구식 전함인 강구트급 전함 마라도 나름대로 전과를 올렸다. 마라의 경우 한스 울리히 루델의 활약으로 항공폭탄이 1번 주포탑에 명중, 탄약고 유폭으로 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함수부터 전방 함교에 달하는 부분이 통째로 박살나면서 사실상 폐함이 됐지만, 수심이 낮은 지역이라 어떻게든 다 가라앉지는 않고 착저. 보통 군함이라면 이 시점에서 함생을 끝마쳤겠지만 마라는 심지어 3분의 1이 박살난 그 상태로도 살아있는 주포탑들을 근성으로 가동시켜 육군 포병 관측반의 좌표에 따라 포격지원을 해주며 레닌그라드가 독일군의 손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줬다. 그렇기에 레닌그라드의 수호신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마라인데 야마토 따위랑은 비교할 수 조차 없다.

그나마 야마토와 전과 면에서 비교가 가능한 건 최약체로 유명한 이탈리아군의 비토리오 베네토급 전함이나, 전쟁 초기에 독일에게 단숨에 털려서 안습화된 프랑스의 리슐리외급 전함 정도다. 그 외에는 전쟁기간 내내 도통 한 게 없는 일본군의 전함들 정도(...) 그나마도 일본 해군 최고의 수훈함 공고급 순양전함의 빛나는 전공 앞에선 한없이 초라해진다. 오늘도 야마토는 웁니다

일본군의 다른 군함들과 비교해도 전과가 초라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본 해군 전함 중 최고의 수훈함으로 평가받는 공고급 순양전함 공고와 하루나, 미국의 엔터프라이즈와 맞먹는 전적을 가졌다고 평가받을정도로 맹활약했던 항공모함 쇼카쿠즈이카쿠 자매, 비록 와레 아오바로 웃음거리가 되긴 했지만 전쟁기간 내내 수많은 전공을 쌓으며 마지막까지 구레를 지키다 최후를 맞이한 일본 최고의 중순양함 아오바, 전쟁 기간 내내 수많은 전공을 세우며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다른 국가에 공여될 정도였던 불침의 구축함 유키카제 같은 배들과는 비교할 자격조차 없다. 각 함종을 대표하는 수훈함들과 비교하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야마토의 전과는 진짜 해상 호텔보다 초라하므로 불평할 자격이 없다. 단적인 예로 원래 귀빈용 호화여객선으로 건조된 해상 호텔이었다가 항공모함으로 개조된 개장항공모함 준요산타크루즈 해전에서 그 엔터프라이즈를 중파시키고 자매함 호넷을 격침시키는 대활약을 펼쳤으며, 그 외에도 야마토보다 전공을 많이 세운 일본군 군함은 수도 없이 많다. 세계 최고의 초전함이라는 주제에 아무 것도 한게 없는데다 심지어 구축함보다 전적이 초라한 야마토의 평가가 한없이 낮아지는 게 우연이 아니다.

그래도 야마토보다 못한 군함도 태평양 전쟁에는 존재하긴 한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저지른 삽질로 미국이 정규 항모 4대를 격침시키는 결과를 만드는 바람에 일본 패망의 원흉으로 등극한 구축함 아라시가 대표적인 예다.

7.2. 과연 세계 최대의 삽질인가?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시대를 역행하는 일본군의 흔한 삽질 사례 중 하나로 보이지만, 사실 이는 철저히 결과론적인 해석일 뿐이다. 야마토가 기획되고 취역할 때까지만 해도 전함 대신 항공모함이 함대결전의 주역이 될 거라고는 일부 선각자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 야마토가 건조될 당시 동시대 여러 해군국들도 막 전간기 '해군의 휴일'이 끝나면서 신형전함을 다수 건조하고 있었다.참조 일본군이 무언가 신형전함을 건조중이라는 불확실한 정보만 입수한 미국의 대응 역시 똑같은 거함거포의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이었다는 걸 볼 때 최소한 당시로서는 결코 시대착오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총톤수와 건함능력에서 미국에게 압도적 열세를 보이는 일본이, 개함우월주의에 입각하여 개별 함정의 전투력을 극대화하자는 선택을 한 것은 당시로서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24]. 또한 결과론적으로도 7척의 정규항모와 4척의 경항모가 압도적인 우세 속에서 2시간 가까이 어뢰와 폭탄을 쏟아부은 끝에 가라앉힐 수 있었던 전함이었다. 구체적인 함재기 수를 말하자면 11척의 항모에 적재 된 함재기 숫자는 대략 800기 이상이었고, 작전 당시 공격에 참가한 함재기 수는 367기 정도 였다. 그 중 야마토를 노린 함재기는 총 117기로 전투기 15기, 전폭기 5기, 급강하 폭격기 37기 뇌격기 60기였다. 상대가 미국, 그리고 운용하는 측이 일본만 아니었다면 당시 기준으로 충분히 활약할 가능성은 있던 함이었다. 미국이 잡았다면 전쟁종결이 몇달은 빨라졌을 듯

문제는 미국의 전쟁수행 역량이 고작 초대형 전함 몇 척 갖고 어떻게 해 볼 수준을 한참 넘는다는 점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고노에 수상에게 말한 것과 같이, 개전 전에는 '1년이나 1년 반은 백죽지세일 수 있으나 2년이나 3년이 되면 장담할 수 없다'라는 인식은 있었다. 준비가 너무 안 된 연합군 상대로 초전에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가 그걸 잊어버린 게 문제.

이에 더해서 정작 거함거포주의 시대를 끝장내고 함대결전의 양상을 항공모함 중심의 항공전으로 뒤바꿔버린 계기를 마련한 주역은 다름아닌 일본 해군 자신들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얼마 안 가서 일본 해군은 진주만 공습에서 그들이 재미를 본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미드웨이 해전부터 지옥을 맛보기 시작했고, 야마토 자매들 또한 그 와중에 1척씩 용궁행 관광버스를 타게 된다.

결정적으로 아무리 야마토급 전함이 강력하다고 해도 일본군 수뇌부가 야마토급을 5성급 호텔로만 쓰고 있었다는 점은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

7.3. 야마토의 설계도면

설계도면이 그대로 남아서 연구자들과 애호가들에게 다대한 참고를 제공하는 비스마르크와는 달리, 야마토급은 일본이 패전후 관계된 일체의 자료를 완전히 폐기하는 바람에 설계에 참가한 사람들의 기억에만 의존해서 자료를 복구해야만 했다는 낭설이 떠도는데, 그럴리가 있나? 야마토급의 설계도는 꽤 많은 양이 남아있다. 물론 군의 것은 폐기되었지만 건조업체 것은 대부분 남아있었고, 특히 무사시를 건조한 미쯔비시와 시나노 하청 건조를 맡은 카와사키는 미군 조사관이 오자 마자 줬다. 당연히 전범 면죄 거래지만 말이다. 그런데 맥아더가 준건 자이바츠(재벌) 해체였다. 이미 때가 늦은 격. 설계도 다 줄테니 봐주세요. 개전할땐 마음대로지만 패전할땐 아니란다.

이를 통해 분석이 많이 되어 있다. 야마토 자신의 것 뿐만 아니라 무사시 및 시나노급의 설계도는 더 많이 남아있고, 이를 통해 구조 분석 또한 많이 진행되었다.

야마토의 장갑구조 (출처 : WARSHIP MAGAZINE 1987)

도면상 나타나는 장갑 구조 등을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초전함(超戰艦)"으로 불릴 수도 있었다. 다만, 위에 언급된 카탈로그에 나타나지 않는 각종 문제점과 안습 활약상 때문에 주로 까이는 것... 서류상에서만 킹왕짱이면 무슨소용. 우리도 자소서상으론 만능이야 그러므로 제대로 된 국가에서 야마토급 전함을 건조하고, 상식적인 지휘부가 이 배를 운용했다면 적어도 이 정도로 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대로 된 국가에서 상식적으로 운용했다면 그건 이미 야마토가 아니잖아 어찌 보면 일본군 전투기 에이스들 같은 억울한 처지. 차라리 반자이어택 안하고 나가토같이 항구에 가만있었으면 그래도 나름 초전함이니 미군이 잘 써줬을수도 있지[25]

7.4. 일본인들의 야마토에 관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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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동남쪽에 있는 구레 항에는 야마토 뮤지엄이 있다. 여기에 위에 언급된 1/10 야마토 모형이 전시되어 있으며 갑판의 경우 실제 나무를 가공하여 제작하는 등 현존하는 가장 정확한 야마토 모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1/10 크기가 저 정도면, 진짜는 도대체 얼마나 컸다는 걸까...

지금으로선 야마토가 일본 해군의 상징적인 존재 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구해군 기지가 있었던 지방의 해양박물관에는 1/10 사이즈의 거대 모형이 당당히 만들어져 있고, 전함 야마토란 이름으로 온갖 문화/오락 상품이 밑도 끝도 없이 나오고, 흥행하고, 또 나오고 있다. 일단 외관이 굉장히 특징적이기도 하고. 이것이 단순히 한때 '세계최대의 군함'을 굴렸다는 자부심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의 주장처럼 현재 일본의 우경화를 상징하는 것인지는 완전하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하여튼 여기까지만 보면 야마토라는 군함이 일본 국민들에게 체제 선전의 일환일지언정 여러모로 사랑 받고 관심을 받았던 군함인 것처럼 보이고, 각종 일본의 가상매체에서 일본 전함의 대표격으로 다루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일본 군부는 종전까지 야마토라는 세계 최대 전함의 존재를 숨기는 데 성공했다! 야마토의 정식 배치는 진주만 공습 이후이며, 단 한 번도 관함식 등의 행사를 통해 일반에 공개된 적이 없다. 야마토에 대한 사진도 영상도 관련 보도도 일절 없었다. 이는 일본 국민들, 일본 해군과 그 주변인을 제외한 모든 일본인들이 종전시까지 자국에 이런 전함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몰랐다는 뜻이다. 야마토가 알려진 것은 전함이 침몰하고 일본이 패전하여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에 의해 이런 저런 자료가 공개된 후의 일이고, 어디까지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언론플레이였던 야마토 신성화 작업의 결과였다. 이로서 미국이 야마토급의 대항마로 몬태나급 전함을 건조하려 했다는 설[26]도 이걸로 간단하게 논파된다. 자국민들조차 전쟁이 끝난 후에야 존재를 안건 둘째치고 상술했다시피 해당 함에 탑승한 승조원들조차도 제대로된 스펙을 몰랐던 야마토급이건만 대체 미국이 무슨 수로 자료를 입수한단 말인가?

이 점을 생각하면 야마토가 일본 제국 해군의 상징적 존재로 여겨졌다거나, 일본 국민들의 자부심이었다거나, 폭넓게 사랑을 받았다거나 하는 지금의 인식은 완전히 허황된 것일 수 밖에 없다. 애초에 그런 전함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긍정이든 부정이든 인식이 있을리가 있나. 결국 야마토는 전쟁관련 저술가들이나 각종 매체의 재포장에 의해 마치 대단한 무언가가 있었던 듯 묘사되었을 뿐, 현실에선 있는 지도 모르고 사라져갔던 전함에 불과하다.

실제 전쟁에선 야라레메카로 떨궈지기 바빴던 칠면조인 제로센도 전후문학에서 일당백이었던 무적의 전투기로 기술되고 있는데 이는 전후 패배감과 열등감에 휩싸여있던 일본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정신승리적인 작품이었다. 야마토도 이의 일환으로 극우들에 의해 끄집어내져 일본 사회에 대대적으로 선전해졌다고 생각할수밖에 없다. 즉 야마토가 지금처럼 유명해진건 어디까지나 전쟁 끝나고도 한참 이후의 일이고, 제로센과 마찬가지로 얄팍한 여론 선동의 결과일 뿐이었다. 실제로 일본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전함, 국내외적으로 일본 해군을 상징했던 전함, 일본 해군의 가장 잘 알려진 전함은 아끼려다 망해버린 야마토가 아니라 일본 해군 최초의 16인치 드레드노트급 전함이자 야마토급이 취역할때까지 오래도록 연합함대 기함 노릇을 했던 나가토이다.

8. 기타

일본이 만주 지역에 세운 호텔 이름이 바로 야마토 호텔이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운영되었으며 전쟁 이후 압수된 호텔 건물은 중국에 의해 개명된 후 호텔 영업을 재개했고, 마오쩌뚱 같은 중국 정치인들도 묵을 정도의 고급 호텔이라고 한다. 운영 시기로 보아 호텔이라는 별명은 여기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9. 가상 매체에서의 야마토

  • 일단 현실의 최후가 어쨌든간에 일본 해군이 보유한 최강의 전함이긴 했었고 동시에 세계 최대의 전함이었으니만큼 다양한 매체에서 야마토 자신, 혹은 야마토를 모티브로 디자인된 군함이 종종 등장한다. 특히 적으로든, 아군으로든 구일본 해군이 등장하는 매체에서는 거의 대부분 적으로는 최종보스로서, 아군에게는 최종병기로서 등장하며 일본 해군이 등장하지 않는 매체에서도 제로센 처럼 자주 등장한다.

  • 우주전함 야마토에 등장하는 주력함이자 주인공(?). 이미 이름부터가... 왠지 사람들에겐 야마토의 잔해를 건져다가 그걸 우주전함으로 개조했다는 설정이 퍼져있는데, 실제로는 야마토의 잔해는 부품으로 못써먹을 수준이라 야마토의 잔해로 위장하여 그 아래에서 건조중이었다. 상세는 야마토(우주전함 야마토) 참조.

  • 자들의 야마토라는 영화에서도 등장. 당시 야마토에 탑승한 생존자의 회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반전적인 메시지를 가지면서도 군국주의적 모습을 가져 논란을 가진 영화이기도 하다. 혹자는 이를 두고 현재 일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평한다. 하지만 정확한 해석으로는 군국주의 상징인 야마토가 침몰하는 모습은 일본이 그렇게 목맨 함대결전사상의 몰락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게 맞다는 해석영화에서 묘사된 야마토의 최후

  • 미국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람보에서 등장한다. 남미 가상 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킨 군부 장군이 야마토를 건져올려 현대기술로 수리하여 이걸 가지고 그 나라로 쳐들어오는데, 정부군 해군들이 아무리 펑펑 쏴도 끄덕도 안한다…. 그러나! 역시 람보 홀로 이 배 안으로 들어와 안에서부터 그야말로 먼치킨 위력을 보여주면서 차례로 때려부수고 폭발시켜 결국은 바다로 허무하게 가라앉는다.
    이걸 멀리서 본 반란군 장군이 "형편없는 고물덩어리 같으니라구!" 마구 화를 내자 부관이 말하길 "그러기에 차라리 비스마르크를 꺼내오는 게 나았다니까요."(…) 재밌게도 실제로 야마토는 대폭발로 선체가 조각조각났으나 비스마르크는 포격전으로 치명타를 입은 뒤 영국군의 어뢰로 처분(또는 비스마르크 승조원에 의한 자침)된지라 선체 자체는 원형을 유지한 채 얌전하게 가라앉아 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는 수백발의 주포탄이 맞은지라 원형은 유지했으나 구멍투성이에 내부가 엉망이니 야마토 수준의 난이도는 아니지만 수리가 힘든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물론 람보가 나타나는 시기에, 약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미국이 위급할 때마다 무덤에서 부활하는 아이오와급 전함들도 보통 "Katie" 라고 부르는 16인치 핵 포탄 Mk.23이라는 아이오와급 전함의 전용 핵포탄을 보유할 수 있다. 참고로 이 핵 포탄은 1953년에 개발이 시작되고 1956년에 완성되어 총 50발 정도가 제작되었다. 1발당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수준인 15~20kt 정도다.
    그 다음은 안봐도 비디오일 수준, 일단 2번 포탑만 핵 포탄을 사용할 수 있지만, 아이오와급 1척당 핵포탄 3발 일제사격하면 야마토건 비스마르크건 일격필살할 수 있으니 굳이 람보에게 수고를 끼칠 필요가 없다. 물론 그렇게 되면 쉽겠지만 애니에선 이 나라에선 미군의 지원이나 여러가지로 반대하여(극중 미국이 이전에 이 군부장군을 도와서 깽판을 돕던 일이 있어서 미국에대 하여 증오감이 크다.정부군 장군이 되려 람보 멱살을 잡고 이 놈이 적군과 한패일지 누가 압니까? 이럴 정도였다) 람보도 미국인임을 숨기고 비밀리에 활약해야했기에 아이오와급을 미군이 지원할 수도 없었다.
    아마 람보가 출동한 것은 전함에 비해 비용이 거의 안들기 때문일 것이다.

  • 지팡구에서는 쿠사카와 그 부하들에 의해 탈취되어 두꺼운 장갑으로 미 함대의 포격을 받아내며 미 함대 한가운대에 파고들어 함내의 원자폭탄을 터뜨리는 계획에 사용. 원폭의 폭발을 저지하려는 이지스함 미라이와 근거리 전투를 벌이며 측거의 같은 소소한 부분이 파손되거나 한다. 본디 미라이는 당시 세계관 기술력으로 보면 완벽한 오버 테크놀러지인 이지스 함이라는 특성상 미해군 항모 와스프를 격침시킬 때 처럼 장거리에서 하푼, 토마호크등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야마토를 일방적으로 무력화하여 격침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무고한 야마토의 승조원 수천명의 목숨을 빼앗을 순 없다는 카도마츠 이등해좌의 판단과, 미라이의 승조원을 제외하고는 가장 미라이에 대해 잘 알고있는 쿠사카의 지휘가 겹쳐 전함용 대공포탄인 3식 통상탄으로 미라이의 이지스 시스템을 파괴[27]하고 승조원들을 여럿 부상시키는 등 선전. 최종적으로 내부에 아무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미라이의 미사일에 격침당했으며, 수중에서 함선 내부의 원폭이 폭발하여 잔해조차 남기지 못했다.

  • 스트라이크 위치스 2기에서는 워록의 참패와 교훈을 잊은 높으신 분들이 네우로이 코어를 박아넣어 야마토[28]네우로이로 만들었다. 다만 강제적으로 네우로이화로 만들어서 그런지 10분 정도가 한계인듯. 만재 7만톤이 넘는 야마토가 공중으로 부상하는 장면에서 밀덕들은 경악했다. 다른 네우로이들의 공격을 무시하고, 약간씩 손상을 입는 것은 네우로이의 재생력으로 보완하는 상태에서 네우로이 둥지까지 진격하여 주포 포격으로 둥지의 코어를 파괴하려 했으나, 포격 직전 네우로이에게 컨트롤을 탈취당했다. 그럼 그렇지 그래서 그런지 10분이 지나도 네우로이화 그대로 남아있었으나 미야후지 요시카가 열풍환으로 코어를 파괴한 이후 네우로이화가 해제되면서 바다로 추락했다. 극장판에서는 어떻게된건지 라인강에서 포격지원을 해준다. 아무래도 어느 외딴섬에 고철덩이로 떠내려온 걸 끌고와서 복구시켰던가[29] 아니면 2번함 무사시를 건조했던 듯. 특히 야마토는 네우로이화가 풀리면서 그대로 바다에 입수되었기 때문에 2번함 무사시가 더 확률이 높다.

  •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에서는 인류의 적인 미지의 적, 안개의 함대의 총기함으로 등장한다. 멘탈 모델은 드레스를 차려입은 공주님 스타일.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 같지만 자세한 건 작품이 더 연재돼야 알수 있을듯.

  • 다라이어스 2에서는 태양계를 침공한 베르서 제국의 지구 분견대중 일부가 이 전함의 폐허를 활용해서 병개로 개조하는듯 한데, 지구 스테이지에서 상대하게 되는 보스중 하나다.

  • 스트라이커즈 1945에서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일본 스테이지 보스 KII(紀伊. 워싱턴조약 때문에 실제로 건조되지 못한 전함에서 이름을 따왔다.)의 이름을 빌어서 등장. 키이급이 실제로 건축되지 못했던걸 감안해서인지 포탑배치는 딱 야마토급 전함과 판박이다. 그런데 아래의 함대 컬렉션의 차후 업데이트 예정에 이 키이급 전함이 등장한다고 해서 더 알 수 없게 되었다(…)

  • 함대 컬렉션에서도 의인화되어서 등장. 고증을 살려서 연비, 수리비용, 수리시간, 자원소모량 등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위엄을 증명하듯 처음부터 강력한 46㎝ 3연장포를 사용 가능한 것이 특징. 자세한 것은 각 항목 참고.

  • 구일본군약소열전에서 까내리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는데, 언제 올라올지는 불명. 한동안 홈페이지가 폐쇄상태였다가 2013년 8월에 홈페이지가 부활했지만 언제 내용이 올라올지는 미지수다.

  • 월드 오브 워쉽에서 일본 전함 트리 최종테크로 등장한다. 항목 참조

  • Naval Front-Line의 일본해군 최종 종착점이다.미해군 아이오와급과 같이 레벨60급의 전함이다.

  • 네이비필드 시리즈 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등장. 1편에서는 느린 속도와 짧은팔 때문에 슈퍼야마토를 향한 마지막 고비지만, 2편에서는 슈야가 없어지고 대신 최종전함이 되었는데. 산탄이 심한데다 내구력도 동급에서 가장 떨어지지만, 강력한 공격력과 대공능력,정찰기 7기 탑재로 커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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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자매함까지하면 2억 5천만엔이었다고 한다.
  • [2] 이게 뭔소리인가 하면, 야마토를 한자로 쓸시 "대화"가 된다(...)
  • [3] 이건 야마토만의 특징은 아니고, 좀 크다 싶은 배는 대부분 이런 표식이 있다. 건물 안에 붙어있는 안내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4] 2차대전 시기로만 한정해보면, 페이퍼 플랜상으로는 이보다 배수량이 더한 나치 독일 해군(Kriegsmarine)의 H-4X시리즈가 있었다. 워낙 독일 해군이 죽을 쑨데다가(유보트는 논외) 페이퍼 플랜이기 때문에 실제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중 하나인 H-44의 경우 본함의 2배에 근접하는 14.15만톤이 배수량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이에 질세라 일본군도 100만톤급 페이퍼 플랜이 존재했었다.100만톤급이면 학원함도 만들수 있었을 듯 참고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배는 로열 더치 쉘이 주문해서 삼성중공업이 제작중인 60만톤짜리 해상 LNG 저장 선박이다.
  • [5] 여담으로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21세기 미군은 이 전함보다도 비싼 구축함을 뽑고있다(...)
  • [6] 물론 야마토 포가 우주전함 야마토의 파동포 오마주다.
  • [7] 사실 막 후소급공고급 순양전함을 건조하던 영일동맹 기간에 영국은 3연장 주포탑 제조 기술도 넘겨준다고 했지만 일본은 단점이 많으니 필요없다며 거절하는 무시무시한 실책을 저질렀다. 물론 일본도 나름대로의 사정은 있었으나 이후 태평양 전쟁이 개전된 이후에는 당연히 돈을 아무리 쥐어준다고 해도 적국에게 귀중한 주포탑 다연장화 제조 기술을 줄 턱이 없으니 일본이 스스로 만들어내야 했다.
  • [8] 이건 당시 일본의 정책 방향의 하나인데, 미군의 기뢰밭과 폭격기밭을 무사히 뚫고 돌아온 불멸의 보급선에서 가져온 물자를 가지고 일반 국민보다는 군인들에게 최우선적으로 보급하고 있었다.
  • [9] 인명경시 풍조를 가진 일본군의 특성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겠지만, 일단 부상당해 본토 및 주요 거점의 어느 정도 규모있는 병원에 입원한 장병들은 전방의 장병들보다 더 후한 대우를 받았다.
  • [10] 당시 영국 해군도 함내 PX 운영을 해군과 계약을 맺은 민간인들을 일종의 계약직 군무원으로 고용해 해결했다.
  • [11] 단 막 다연장 주포를 단 전함들에게선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런 문제는 대부분 조준장비의 개선이나 이런저런 개조로 해결했다.
  • [12] 이는 타국의 모든 전함도 마찬가지이다.
  • [13] 잘 이해가 안간다면 언더시즈를 보자. 언더시즈에서 스티븐 시걸이 잠수함을 박살내기 위해서 16인치 3연장포중에서 하나만 사용해서 사격했지만 토미 리 존스옹이 쭈우욱 날아가고 맨정신이 아닌데# 이거도 영화 전개를 위해서 좀 약하게 표현한거다
  • [14] 물론 연합군 전함들도 40㎜ 보포스 중구경 대공포좌들은 노천개방 포좌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대공전투중에 주포의 발사폭풍을 걱정해야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 [15] 일본의 36㎝, 41㎝ 연장포 등과 비교하자면 2~3배 정도 무거웠다.
  • [16] 오타나 중의적 문장이 아니다. 배가 크고 빠른데다가 튼튼하기 까지 하니 수송임무도 잘해낼것이라는 높으신분들의 생각.
  • [17] 열팽창을 줄이기 위해, 강선(총열 내부에 새기는 강선이 아니라, 금속으로 된 와이어를 말한다.)을 두르는 것)
  • [18] 소총의 총강경에 해당한다.
  • [19] 뒤에 나올 거대한 버섯구름의 주인공 되시겠다(...)
  • [20] 근데 워낙 승조원이 많다보니 야마토에 실어 놓은 배급할 돈과 물자 구입비가 자그마치 51만 805엔, 지금 가치로 10억엔이었다! 관련 4컷 만화
  • [21] 이때 미처 제독의 참모장였던 알레이 버크 제독(당시 대령)이 상관인 스푸르언스 제독에게 보낸 전문과 그 회신이 아주 유명하다. 알레이 버크 항목 참고.
  • [22] 이 한발도 야마토 쪽에서 일부터 몸을 틀어 의도적으로 맞은 것이었다. 한쪽만 침수되어 배가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반대쪽도 침수를 진행시키려는 의도였는데, 정작 이 한발은 야마토의 선체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던지라 침수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이는 근거 없는 낭설이다. 오후 2시 7분 미해군의 모루 전술에 의해 우현에 명중한 유일한 어뢰로 3번 기관실을 침수시켰다. 야마토의 침몰 막바지인 3차 공격당시 이미 야마토는 역침수의 한계에 다달아 있었으며, 더 이상의 역침수를 했을 경우 회피 기동 자체가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 [23] 사실 독일 해군으로선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독일 해군 재건 프로젝트인 Z계획은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시작하면서 말아먹었고, 그나마 있는 해군은 노르웨이 침공작전 당시 상당한 피해를 입었으며 장갑함 그라프 쉬페는 남대서양에서 침몰당하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거기에 당시 히틀러가 소련을 노리고 있으니 자칫하다간 지금 건조중인 함선들도 히틀러의 변덕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독일 해군이 보유한 최대의 전함인 비스마르크가 만약 전공을 세우고 귀환한다면 그나마 약한 독일 해군의 입지도 나아지진 않을까 하여 출격한 것. 뭐 결과는 안습하지만..
  • [24] 어떻게 보면 현재의 한국해군의 세종대왕급 이지스함이 타국의 이지스함들보다 크고 과무장을 한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수 있다. 충분한 숫자를 갖추긴 힘드니 소수의 강력한 함정을 보유하자는 식.
  • [25] 물론 핵실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긴하다만..
  • [26] 일본에선 마치 정설처럼 퍼져 있다.
  • [27] 대공포탄인 3식 탄의 특성상 내부에 많은 자탄(子彈)이 장탄되기 때문에 이를 일종의 산탄으로 써서 미라이의 함체에 광범위한 피해를 입혔고 그와중에 부수적으로 외부에 노출된 이지스 시스템을 파괴했다.
  • [28] 근데 잘 보면 함수 문양이 실제 야마토와 다르다. 국화문양이 아니라 벚꽃문양. 애초에 이 작품의 후소 황국은 일본이 아니라 일본을 닮은 다른 나라니까.
  • [29] 2기 마지막에 신덴 유닛과 함께 정체불명의 섬에 떠내려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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