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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

last modified: 2015-09-21 02:02:57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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靖国神社/靖國神社[1] (일본어)
Yasukuni shrine (영어)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위치
4. 논란
4.1. 국가신토 야스쿠니 교
4.2. 야스쿠니 신사를 이해하기 위한 사상적 배경
4.3. 야스쿠니 신사의 문제
4.4. 한국, 대만, 오키나와인 합사 취하 운동과 소송
4.5. 총리 참배와 전범 분사 문제
4.6.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안 모셔놨나?
5. 기타
6. 사건 사고
6.1. 야스쿠니 신사 방화사건
6.2. 야스쿠니 한국인 1인 시위 사건
6.3. 야스쿠니 신사 방뇨 사건
6.4. 2013년 8월 10일 도쿄 촛불시위
6.5. 야스쿠니 신사 한국인 방화 미수 사건
6.6. 아베 신조 총리 야스쿠니 신사 참배
6.7. 야스쿠니 신사 욕설 낙서 사건
6.8. 일본인에 의한 2014 연말 야스쿠니 방화사건

1. 개요

한국인이 알아야 할 역사이야기 #4 야스쿠니 신사 ver.2

야스꾸리 신사
도조 개O끼가 있는 끔찍한곳
던젼
일본 군국주의의 만마전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야스쿠니 신사보다 더 위험한 추모 시설이 있다. 순국7사묘 참조.
다신 국가인 일본은 이외에도 전범자 기리는 개인이나 재단 소유의 신사가 전국에 정말 많다!!!교묘히 골고루 분산시켜 놓았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시설. 일단 명목상으로는 일본 최대 규모의 신사라고는 하지만, 그 실상은 메이지 유신 이래 근대 이후 일본이 관여한 전쟁 범죄자들을 미화하고 숭상하는 시설이다.[2] 2차대전동아시아태평양 연안 국가들을 상대로 침략 전쟁을 벌인 전쟁 범죄자들을 신으로 추모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과거 반성 문제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설립 이래로 오늘날까지 일본 군국주의를 정당화·미화한다고 평가하고 있음에도 현재 일본만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다.

2. 역사

원래는 메이지 유신 이후 막부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병사들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1869년(메이지 2년)에 세운 시설이다. 본디 이름은 '쇼콘사(招魂社)', 즉 혼을 불러[3] 진정케 하는 절이다. 신불분리령 이후 1879년(메이지 12년) 6월, 국가신토의 상징답게 신사로 개편하면서 이름도 야스쿠니(靖國), 즉 나라를 평화롭게 한다는 뜻으로 바꾸었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피해자들에겐 상당히 신경 거슬리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이 전쟁에서 죽었고 또 그로 인해 야스쿠니에 합장된 인물들 중 일부는 정한론을 필두로 한 제국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야스쿠니(靖國)는 춘추좌씨전에서 유래한 단어로,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같은 뜻의 야스쿠니(安國)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安國이 사찰 이름로 자주 쓰이는 등 불교적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하여, 일부러 좌씨전에서 나온 야스쿠니(靖國)란 말을 사용한 것이다. 굽시니스트는 야키니쿠 신사라고 카더라

3. 위치

땅값 쩔어주는 도쿄에서 비싸디 비싼 치요다구에 위치하고 있다. 그도 그럴만한게 야스쿠니 신사의 원래 목적을 다시 보면 왜 거기 있는지 이해가 간다. 황거(고쿄)[4]도 코앞이고. 야스쿠니 신사 건너편에는 그 유명한 일본 무도관이 있다. 또한 근처에는 꽤 유명한 도쿄 시라유리(白百合) 여학원이 있다.

교통편을 적어보자면 쿠단시타역에서 가장 가깝고 JR 노선에서는 이이다바시역, 이치가야역에서 가깝다. 도보로는 대략 10~20분 정도.

4. 논란

靖国の鬼神端くれに頭下げる愚かなことをするから、オム真理教みたいな異端宗派が色んなことを仕出かすんだよ。
야스쿠니의 귀신쪼가리들한테 머리 조아리는 미련한 짓을 하니까, 옴진리교 같은 이단종파가 별짓을 다 저지르는 거야. [5]

4.1. 국가신토 야스쿠니 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군국주의 성향을 거세하기 위해서, 국가신토의 상징적인 조직이기에 폐지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종교법인이라는 을 뒤집어 쓰고 기형적으로 변하여 종교의 자유를 방패삼아 살아남는다. 마치 한국에서 맥아더 장군을 신으로 모시는 무당이 있다고 해서 그것 자체로 처벌할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맥아더 장군은 전쟁영웅이고 도조 히데키전범이다. 애초에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어쨌거나 문제는 특정 개인을 종교적으로 숭배하는 것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군국주의 자체를 숭배하는 곳이 되었고, 거기에 유력 정치인들이 적극 참배한다는 점이다. 이거야말로 제정분리 원칙의 위반

따라서 지금의 야스쿠니 신사는 그냥 사설 종교법인이다. 이 신사는 일본이라는 국가와는 법률적으로는 아무 관계도 없다. 그러므로 현재 야스쿠니 신사의 지위는 야스쿠니 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추도하는 것도 딱히 일본에 그런 법이나 조례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며, 일본 정부에서도 제어할 권한이 달리 없다. 그냥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눈가리고 아웅 수준인 것도 사실이다. 정치인들이 사적으로 참배하는 것은 물론이요, 일본 후생노동성에서는 자위대 대원 같은 사람들의 명부를 넘겨주는 일을 하면서 대놓고 야스쿠니 신사의 업무를 지원하고 있으며, 일본의 신토신사를 관리하는 신사본청도 야스쿠니 신사와 업무를 제휴하고 있다. 방위대학교 사관생도들도 참배를 하는데, 방대 측에서는 개인 참배라고 하면서도 이동시에 편의를 봐주고 있다.

그러므로 엄밀히 따지자면, 야스쿠니 신사는 현충원이나 알링턴 묘지와 같은 국가의 공공 추모 시설과 같은 위치에 설 수 없다. 따라서 '현재의 법률상으로는' 일본에는 제대로 된 추모 시설이 없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충원은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로서 운영되고 있어서 국가의 공식적인 시설이며, 알링턴 묘지는 종교에 대해서 중립적이고 그리스도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의 예식에 따른 장례도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신토의 사설 종교집단'인 야스쿠니 신사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물론 현충원 역시 종교에 대해 중립적이다.

하지만 "일본은 국가에 몸바친 사람을 위한 추도 시설이 없으니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할) 시설을 건설하자."는 주장은, 우익 측에서는 "야스쿠니 신사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정상적인 립묘지가 생긴다면 야스쿠니 신사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시설인지 여지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연간 20억에 달하는 운영 자금은 국가에서 분리된 뒤에는 유족회의 봉납금이나 유취관의 입장 수익료로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차례차례 사망하면서 재정 위기를 겪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유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야스쿠니 신사는 '음사(淫祀)'이다. 선조의 영혼을 제사하는 것은 후손의 정당한 권리이며, 이를 무시하고 관계도 없는 제3자들이 제멋대로 제사를 지내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이다. 예외적인 사례가 국가가 충신에 대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국가기관이 아니므로 제사를 지낼 권리가 없다.[6] 참고로 유교에서는 음사를 지내는 자들에게 복(福)이 없고 자손이 끊어질 것이라 경고한다.

4.2. 야스쿠니 신사를 이해하기 위한 사상적 배경

이미 일본인들 스스로 주장하는 그 신토에서도 멀리 동떨어진지 오래다.

일본에는 온갖 이 있는데, 이중 인귀(人鬼)[7]를 신사에서 모실 때는 주로 원한을 품어 세상에 재앙을 끼치는 영을 진정시키는 목적이었다.[8] 바꾸어 말하면 세상에 재앙을 끼칠 수 없는 인귀, 살아생전 권세를 누리다가 평온히 죽은 사람을 위해서는 신사를 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러한 신토 전통을 깨트렸다. 자신이 죽거든 신사를 세워, 승리한 권력자로서 죽는 자신을 신으로 모시라 하였다. 이때부터 인귀를 모시고자 신사를 세우는 데에는 민중 전통과 권력자 전통으로 나누어졌다. 민중 전통은 전통적인 목적대로 세상에 재앙을 끼치는 혼령을 진정시키고자 하였고, 권력자 전통은 권력자들이 죽어서도 자신과 자신의 후예들을 높이고자 하였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세키가하라 전투가 발발했고 이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도요토미 히데요시신사를 말 그대로 개발살내버렸다. 그냥 한 것이 아니라 시켜버린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신사는 추후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이 복구시켰다.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메이지 유신 이전 일본인의 종교관에서는 적대한 세력이나 심지어 반역세력조차 죽게 되면 은혜와 원한과는 상관없이 영혼을 구제하고 위로하는 제례를 행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으나, 도쿄 쇼콘샤는 에도 막부를 지지한 측의 전몰자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메이지 유신 지지 측 전사자의 영혼만을 위로하는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에도 막부 측 사망자를 모시지 않았으니, 이미 쇼콘사 시절에도 일본의 옛 전통과 비교하면, 이미 반쪽짜리 시설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목적이 바뀌어서 영혼을 위령함이 아니라 충혼, 즉 덴노에게 충성을 다한 군인을 높이 받들어 그 명예를 빛나게 함이 된다. "원한을 품은 영혼을 위로한다"는 목적에서 "충성스런 군인의 영혼을 높이 받들어 공을 기억하고 명예를 빛나게 한다"는 목적으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스쿠니 신사는 원한을 풀게 하는 장소라기보다는 오히려 야스쿠니 신사에 이름을 올림을 죽은 혼령이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에 충성하라는 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다. 즉, 야스쿠니 신사는 당시 일본인들에게 국가에 충성하고 덴노를 우러르라는 프로파간다를 위한 장소로 재건축된 것이다. 때문에 메이지 유신에 큰 공로를 세운 에토 신페이와 사이고 다카모리조차 사가의 난과 서남전쟁에서 덴노에게 적대하였다는 이유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지 않았다.

이러한 목적은 명백하게 의도한 것이다. 도쿄 쇼콘샤 시절부터 1880년대까지 야스쿠니 신사 주변은 시장거리였던 까닭에 항상 소란스러웠으나, 대대적인 주변정리를 통해서 경건한 분위기를 지니도록 주변을 조성하였고, 1898년 9월 이전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병으로 죽은 군인은 설령 전쟁터에서 죽었다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생각하기에 가히 명예롭게 죽은 군인들만 받아들였다.[9] 하지만 이러한 기준으로는 청일전쟁 전사자들 대부분이 야스쿠니 신사에 들어갈 수 없기에, 덴노의 특별한 허가와 배려로 말미암아 그러한 구분 없이 야스쿠니 신사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즉, 야스쿠니 신사의 성격이 처음부터 덴노에 대한 프로파간다를 겸한 군국주의 성향 강화였지만, 이때를 기점으로해서 보다 노골적으로 바뀐 셈. 그리고 이때부터 배향된 신위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10] 메이지 덴노, 다이쇼 덴노, 쇼와 덴노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적에 육군 대원수 군복을 입은 데서도 야스쿠니 신사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4.3. 야스쿠니 신사의 문제

야스쿠니 신사는 전쟁 도중에 죽은 황군(일본 '천황'의 군대)을 미화하는 장소였다. 실제 사망 원인에 대한 평가가 없이 전사자면 무조건 야스쿠니 신사에 모시는데,[11]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도조 히데키를 포함하여 여러 전범 또한 위령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본질은 '전쟁의 희생자들을 통해 과거의 전쟁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웅적인 행위로 미화하는 것인 셈. 특히나 도조 히데키 같은 경우 일본에서 자체적으로 전범 재판을 했을 경우에도 사형을 면키 어려웠으리란 말이 나올 정도로, 군인 겸 수상으로서 막장으로 정부를 운영했다. 순수하게 일본인의 입장에서만 보더라도 도조 히데키는 욕을 먹으면 먹었지 칭송받을 인물이 아니다. 자기 나라를 말아먹은 이런 인물마저 야스쿠니 신사에 배향함은 문제가 심각하다. 이에 대해 일본에서는 '일반 전몰자들도 있으니 전범들만 합사한 것이 아니며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의도는 더더욱 아니다'라는 해명을 하고 있다.

거기다가 야스쿠니 신사 내에 있는 전쟁박물관인 유슈칸(遊就館)이라는 박물관은 더욱 가관. 가이텐 같은 군수품을 전시하거나 '대동아 전쟁은 아시아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 따위의 전시물들을 대놓고 전시하고 있다.[12] 심지어는 조선인이나 대만인들도 자발적으로 참전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따로 전시물이 있을 정도. 제2차 세계대전때에는 여기서 장교용 일본도도 만들었다. 성능은 고철보다 좀 나은 수준이었다고

일본 신사에서 도리이(鳥居)[13]를 높게 세우는 것도 야스쿠니 신사에서 시작한 유행이다. 다른 신사와는 달리 야스쿠니 신사는 패전 전까지 해군육군이 공동으로 관할했는데, 이들 일본군 군부는 야스쿠니 신사에 청동으로 당시 일본에는 없던 큼지막한 도리이를 세웠다. 이후 일본 각지에서 경쟁적으로 도리이를 크게 세우기 시작했다. '도키노 사쿠라'(동기의 벚꽃)라는 전쟁 시절 노래에도 노래 가사 중에 '전쟁 중에 각지에서 흩어져 죽은 전우들이 야스쿠니 신사 앞마당 벚꽃으로 다시 만나자' 하는 가사가 있을 정도로 군국주의국가신토의 상징이었다. 다만 처음부터 이런 상징물이 되지는 못해서, 한동안은 일본 정부가 유족들을 상대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게 유도하느라 꽤나 애를 썼다.

상당히 널리 알려진 잘못된 상식으로, 야스쿠니 신사가 전사자들의 '위패'를 모셔두고 있다는 것이 있지만, 위패를 모심은 유교 전통으로 동북아시아 불교가 그 영향을 받았다. 위패를 모시는 방식은 신토에는 없다. 신사측에서는 공개하지 않지만 전범의 생전 모습을 조그한 인형 비슷하게 만들어서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인 신사들도 보통 역사적 인물들을 히나마쓰리 인형 비슷하게 만들어서 신사 맨 안쪽에 숨겨놓고 필요할 때만 고카이초(ご開帳)라 하여 한정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4.4. 한국, 대만, 오키나와인 합사 취하 운동과 소송

야스쿠니 신사 관련 뜨거운 감자 중 하나는 대만, 오키나와, 한국 출신자 합사[14] 문제이다. 일제에게 강제로 징집되어 전쟁에 나가서 사망한 외국인들의 신위까지 야스쿠니 신사에 모셨기 때문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징집되어 전사한 부친이나 다른 가족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 많은 유족들이 합사취하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가 전사자들을 모시는 방식은 영새부(靈璽簿)에 이름을 기록하는 것. 이곳에서 이름을 제거해 달라는 소송이 많았지만, 야스쿠니 신사 내에서는 종교적 해석을 이유로(아무리 생각해도 끼워맞추기지만)[15] 거부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들의 말로는, 야스쿠니 신사의 신의 몸체는, 모셔져 있는 신위들이 각각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라, 한 분의 신위만 뺄 수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무슨 합체 로봇도 아니고 이 때문에 유족들이 "누구 맘대로 아버지를 이 따위 시설에 놓느냐? 당장 치워라!"라면서 항의하고, 야스쿠니 신사 합사취하 소송을 하고 있지만 야스쿠니 신사 측은 여전히 요지부동.

백번 양보해서 거기 합사시키는건 좋다고 쳐도, 그럼 합사된 한국인의 유족이 야스쿠니에 방문하면 받아들여주느냐? 희한하게도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일본 처녀 아끼꼬의 진실찾기' 에피소드에서 이 어처구니 없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심지어 살아 있는 한국인까지 강제로 합사되어 있다. 당사자가 항의해도 무시한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안녕, 사요나라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도록 하자.

그런데 사실 합사되어 있는 조선인들 중에서도 전범이 많다. A급은 없으나 B, C급 전범으로 148명이 있으며 이들 중 23명은 처형당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조선인 출신 군인 중 가장 높은 직위까지 올라간 홍사익. 그 때문에 대한민국이 출범하자마자 외무부나 장택상도 전범 재심사를 요구했고##, 조선인 전범들도 한국정부에 사정했다. 강제징병된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외교문제로도 번졌다.###,## 전쟁중에도 한국정부는 조선인 전범 석방에 노력하는등 야스쿠니 신사와 한국인 전범은 뗄 수 없는 문제다.

2011년 7월 21일, 일본 법원은 살아있는 사람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해서 제사를 지내는 건 인권침해가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아무래도 일본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을 시체 취급해도 괜찮은 모양이다.

사실 이런 강제 합사 문제는 일본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종교나 유족 의향도 무시하고 막 집어넣어서 일본그리스도교 신자 유족들이 소송을 낸 적이 있고, 해결을 위해 일본기독교교회협의회(NCC) 아스쿠니 신사 문제위원회를 만들어 법정투쟁까지 나섰지만, 친절하신 일본 사법부는 '종교적 인격권은 법적 보호 대상외'라면서 기꺼이 무시해 주셨다. 이 정도면 고인드립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 ###

즉, 본질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는 신위를 배향함에 있어서 (대상이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대만인이든) 본인, 혹은 유족의 의사를 전혀 상관하지 않고 철저하게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패전 전에도 그러했고 패전 후에도 그러하다. 영광스러이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주는데 다른 사람(그게 유족이라 할지라도)이 왈가왈부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야스쿠니 신사의 방식은 메이지 덴노가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고 하여, 과연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올 입장인가 싶다.

참고로 아소 다로가 비유의 예로 자신있게 입에 올린 알링턴 국립묘지는 종교는 물론 매장 여부에 있어서도 유족의 의향에 따르고 있다.

4.5. 총리 참배와 전범 분사 문제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민당 총리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여 주변국과 외교문제를 빚었다. 의외로 최초의 참배자는 진보적인 성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미키 다케오 총리. 다만 그는 사적 참배라며 선을 그었고 공물 역시 그의 사비에서 충당되었다.

그 이후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패전 40주년인 1985년 8월 15일에 최초의 공식 참배를 했고 (다만 2배2박이 아닌 1배 등 비 신토 양식으로),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가 1992년 11월에 일본 유족회의 압력으로 후다닥 일정을 알리지 않은 참배를 했다. 1996년 7월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사촌이 합사되었다는 이유로 다시 사적 참배. 이렇게 전후 공식, 비공식 참배는 4번 정도 있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로 한국에 가장 유명하게 알려진 사람은 역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前 총리]. 그는 주변국인 한국중국의 반대도 무시하고 결국 취임 직후인 2001년 8월 13일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방문하여 참배하였다.[17] 그나마 패전 60주년인 2005년 8월 15일에는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 "고이즈미 담화"를 하면서 좀 안하나, 했는데 결국 다음 해인 2006년 8월 15일에는 총리 퇴임을 앞두고 결국 기어이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방문하여 참배하였고, 주변국의 반대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반대 세력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노골적인 불쾌감까지 드러냈다.

자민당 창당 이후 최초로 선거로 정권 교체를 이룬 민주당 정권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야스쿠니 참배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햐토야마 정권은 야스쿠니 신사에서 A급 전범들을 모두 분리하는 방안 혹은 국립추도시설 건립을 검토하였으나 실현시키진 못했다. 근 몇 년 동안 총리 자리가 바늘방석인지라 총리 재임기간이 짧았던 탓. 실현 가능성도 적었겠지만 그의 퇴임과 함께 이 해결은 물건너 갔다.

2010년과 2011년 8월 15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세계대전에서 많은 국가, 특히 아시아 여러 국가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며 사죄했으며(2010년의 간 나오토 담화) 신사 참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2011년 이날, 52명의 일본 여야 의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고,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은 간 총리 내각은 일본인이 아니다"라고 발언했으며, 민주당의 차기 총리가 되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재무상은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A급 전범들은 전쟁범죄자가 아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일본 정부가 주도적으로 전범들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금까지 "신사에서 주도적으로 했다"고 밝힌 게 거짓이었음이 드러난 셈.

결국 자민당으로 정권이 갈린 2013년 4월 23일 일본국회의원들이 대규모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자민당, 민주당 등 168명이나 되는 국회의원들과 부총리 등 각료 3명이 참여했고 66명의 국회의원이 대리인을 보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로 아베 신조 총리의 침략 부정 망언과 시너지를 일으켜 외교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심지어 아베 신조 일본 수상은 "야스쿠니 신사는 미국알링턴 국립묘지와 다를 바 없다"고까지 주장했다.

2013년 10월 미일 정례 외교-국방장관 회담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존 케리국무장관, 척 헤이글국방장관은 역시 도쿄에 위치한 치도리카후치(千鳥ケ淵) 전몰자 묘원을 참배했다.[18] 두 장관의 참배는 미국 정부가 야스쿠니 신사를 알링턴 국립묘지와 동격으로 주장한 아베 신조 내각의 주장을 반박하는 무언의 메시지라는 평가를 받았다.

애초에 이 A급 전범 합사 문제에 히로히토조차도 격노를 표했고, 이후엔 단 한번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았다.[19][20] 이정도면 천황에게 충성한다는건 명분이고 사실은 천황에 불충하는 시설이다. 아키히토 덴노 역시 합사 후에는 참배한 적이 없고, 신사참배 자체도 영 호의적이지 않은 쪽이고.

4.6.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안 모셔놨나?

공식적으로 국립묘지로 인정되는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단순히 전몰자들(그게 전범이건 아니건)이 모셔졌다는 이유로 대한민국현충원 비슷한 시설로 착각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이것만 본다면 일본 정치인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이 다른 나라에까지 시끄러울 정도인 것이 이해가 안 갈 것이다. 일단 대한민국 국민이나 정치인에게 현충원 참배를 하지 말라는 소리를 하면 이뭐병 따위의 반응이 나올 테니까.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는 국립묘지와 같은 개념으로 보아선 안 된다. 현충원과 같은 국립묘지는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분들께 감사하는 곳이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국립묘지와 같이 보편성을 가진 곳이 아니다. 천황에게 충성한 자들은 '(죽어서) 야스쿠니에서 만나자'고 다짐했는데, 이들은 죽어서 신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맹목적인 희생을 강조하는 전체주의를 정당화하는 허울좋은 말일 뿐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결코 문화상대주의니, 국립묘지라느니 하는 이유로 용인할 문제가 아니다.

그래도 다행히 전쟁 범죄자들 말고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들을 추도할 만한 대체 시설이 있긴 한데,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이라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무명용사를 추도하는 국립 시설이 그것이다. 게다가 이 묘원은 일본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시설이다.[21] 이렇게 대체 추도 시설이 있는데도 일본 극우들은 굳이 전범이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간다. 근래 들어 순국7사묘극우들의 집회 장소로 새로이 떠오르고 있다.

5. 기타

일본 우익하면 생각나는 검은 트럭에 '천황폐하 만세' 문구를 새기고 욱일기를 꼽고 달리는 사람들이 입구에 많이 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10년 12월 '가미카제(神風)'라는 이름의 유물 특별 전시회를 통해 야스쿠니 신사 내 유물 전시관인 유슈칸(遊就館) 1층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갑옷과 투구를 전시했다. 조선시대 갑옷에는 봉황 문양이 새겨져 있고 투구에는 군최고통수권자인 '元帥(원수)'라는 글이 새겨져 있으며, 고려시대 갑옷에는 용, 기린 등이 새겨져 있어 왕의 갑옷으로 추정된다[22]. 이들 옆에 敵國降伏(적국항복)'이라는 글을 내걸고 있다.

  • 日 야스쿠니 신사, 조선시대 갑옷. 투구 소장 확인#
  • 고려 갑옷·투구도 야스쿠니 신사에 보관#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야스쿠니 신사보다 더 위험한 추모 시설이 있다. 순국7사묘 참조.

바다이야기, 장미아파트 공경비의 작가 박병규가 야스쿠니 신사 방명록에 신사참배를 비판하는 내용의 그림을 남기고 온 적이 있다.#

6. 사건 사고

존재 자체가 사건/사고다
2011년 3월 11일 토호쿠 대지진으로 지붕이 일부 손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더럽게 튼튼하네 그냥 무너져 버리지 와장창

2013년 12월 26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배한 것을 봐선 아쉽게도 별 탈 없는 모양이다.

6.1. 야스쿠니 신사 방화사건

2011년 12월 26일 새벽에 누군가가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질렀다. 경비원이 재빨리 발견했기에 아쉽게도 신사 안의 산문기둥이 그을린 정도로 끝났다.

2012년 1월 8일 주한 일본 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중국인이 검거되었다. 그는 자신의 외할머니가 일본 때문에 피해를 입은 한국인 안부였으며,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를 거부하는 것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질렀다고 주장했다. 이 중국인은 재판을 받고, 징역 10개월을 살게 되었다.

2013년 1월 3일, 야스쿠니 신사 방화범 류창을 중국으로 송환하기로 했다. 한일 범죄인 인도조약 3조 '절대적 인도거절' 항목에 따르면 정치적 범죄이거나 정치범으로 판단될 경우 범죄인 인도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야스쿠니 신사를 불태우는 것이 정치적 범죄라고 판단한 것이다. 류창은 이미 징역 10월을 복역했지만 일본이 자국내 범죄를 이유로 신병인도를 요구해와서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았으며, 이 결정에 중국은 환영했고 일본은 유감을 표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어쨌든 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것에 대해 한국 측에서 처벌하여 일본 측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했고, 또한 류창에 대한 일본의 인도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국 측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 그 외에도 우리나라가 일본에 가진 유감을 인도 거부라는 형태로 표현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나름대로 중립적인 위치에서 대처를 잘 했다는 평이다.

6.2. 야스쿠니 한국인 1인 시위 사건

2012년 8월 15일 한 한국인이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일제 강점기위안부 문제독도 관련 내용으로 한 1인 시위를 했다. 당연히 거기에 있던 우익들과 야쿠자들에게 폭행을 당하다가 경찰에게 끌려갔다고 한다.

6.3. 야스쿠니 신사 방뇨 사건

2013년 5월 24일 한 대담한 정사갤러가 야스쿠니 신사 연못에 오줌을 갈긴(!!) 인증 게시물이 힛갤(현재는 삭제됨)에 올라왔는데, 벌써 몰려온 정사갤러들과 국빠, 일빠, 관심병자들의 병림픽으로 헬게이트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해당 사건은 이후 니코니코 라이브에서도 일본인들에게 번역되어 소개되었으며, 2ch 같은 사이트에도 급속히 퍼지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측은 신성한 장소어따대고 신성한 우리 신사에 물질이야에서 용서할 수 없는 폭거', '장난으로 넘기기에는 너무 악의적'이라며 범인의 빠른 체포를 희망하는 중. ###

6.4. 2013년 8월 10일 도쿄 촛불시위

도쿄 도심에서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촛불시위를 벌인 사건이다. 당연히(?) 우익 단체 또한 지지 않고 맞선 듯.

6.5. 야스쿠니 신사 한국인 방화 미수 사건

2013년 9월 22일 한국인 강모씨(23세, 무직)가 야스쿠니 신사에 무단침입해 방화를 저지르려다 순찰 중이던 경비원에 의해 체포되었다. 일본 경시청에 따르면 용의자는 21일 일본에 입국했으며 22일 오후 5시 경 야스쿠니 신사에 침입하여 폐문 후에도 화장실 쪽에 숨어 방화 계획을 꾸미던 것을 경비원에게 발각당해 도주하다 체포되었다. 체포 당시 한국 여권과 톨루엔으로 추정되는 액체가 담긴 페트병, 라이터 등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체포 도중 경비원에게 붙잡히자 페트병을 꺼내 던지려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용의자인 한국인 강모씨는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으며 이후 자세한 동기 등에 대하여 조사를 받았다.

6.6. 아베 신조 총리 야스쿠니 신사 참배

2013년 12월 26일 아베 신조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덕분에 이미 냉각될대로 냉각되었던 한일관계는 절대영도를 향해 가는 중. 예전에도 총리가 참배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현직 총리로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이후 7년만의 참배. 또한 아베 신조는 지난 임기 때는 참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동이 더욱 크다. 정작 본인은 지난 내각때 참배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고 발언했을 정도. 게다가 이번에는 한일관계가 매우 안좋은 상태에서 참배했기에 파장이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성토했다.

더불어 저 날은 마오쩌둥 탄생일 120주년이라 중일관계도 다시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

그동안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문제라며 줄곧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미국도 이번 사태에 대해선 '일본이 잘못했네'를 외치는 중.# 미국 입장에서는 한일관계를 어떻게든 개선하여 대중국 포위망을 짜야 하는 입장인지라, 여기에 초를 치는 일본의 이런 움직임이 당연히 달가울 리가 없다. 그런데 일본이 거기에 완전히 반하는 행동을 했으니 미국 입장에서는 매우 격노할 수 밖에 없다. 일본이 이런 미국의 반응에 굉장히 당황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미국의 반응을 예측 못하는게 더 이상한 상황이다.

참배 얼마 전에 미국부통령까지 파견해가며 한일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해왔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말렸다. 이에 아베 신조 총리는 "갈지 말지는 내가 판단하겠다"고 대답했다고. 그리고 바이든 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일본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을 것이니 한일관계를 개선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베 신조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졸지에 미국 부통령이 한국 대통령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 셈. 일본 정부는 "확답 안 했는데 왜 자기네 희망사항을 섞어서 한국 대통령에게 말해놓고 거짓말시켰다고 화내냐?"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여태껏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러시아유럽연합까지 이번 참배에 대해 '실망했다', '유감이다' 등의 뜻을 표하며 신사 참배 자체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미국과 러시아 유럽 모두 2차 대전에서 큰 피해를 입은 것을 생각했을때 당연한 일이다. '한중일 관계를 일본이 악화시키고 있다'가라는 여론은 덤.

여담이지만 이 일에 대해 일본에서 활동 중인 혼혈 방송인 하루카 크리스틴은 "해외에서 가장 비교할 만한 사례라면, 만약 독일 총리히틀러의 묘에 참배한다고 하면,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라고 소신을 밝혔다. #

2014년 1월 10일 프랑스 외무장관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을 편드는듯한 입장을 표명했다는 보도가 전해져서 국내외에서는 보도 직후 "2차대전 승전국, 그것도 나치에게 점령당했던 프랑스가 어떻게 그럴수가?!"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런데 불과 하루만에 프랑스 외무장관의 해당 발언이 일본 언론에 의해 왜곡되어 보도된 것으로 드러났다.[23][24]

영국 주재 중국대사는 "야스쿠니 신사는 호크룩스 같은 존재다. 일본 영혼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드러낸다(The Yasukuni Shrine in Tokyo is a kind of horcrux, representing the darkest parts of that nation's soul.)."라고 비판했다. 그럼 볼드모트는 누구지? 누구긴 누구야, 도조 히데키지 뭐.

2014년 1월 20일, 일본 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인데 그런 테러리스트 기념관을 만든 중국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러자 중국이 폭풍처럼 "테러리스트보다 훨씬 더 무수한 사람을 학살하고 피해가 더 큰 A급 전범들을 애국자이니 평화의 주동자이니 헛소리로 찬양하며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두는 너희들이 할 소리냐?!"라는 비웃음으로 응수했다.

6.7. 야스쿠니 신사 욕설 낙서 사건

2014년 5월 26일 한글로 'ㅋㅋ' 'ㅂㅅ' '개새'라는 낙서(…)가 야스쿠니 신사의 입구에 있는 기둥에 써져있는 것을 발견하고 신사 관계자가 경찰에 신고, 일본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도쿄 경시청이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고.누군지 몰라도 참 존경스럽다.


6.8. 일본인에 의한 2014 연말 야스쿠니 방화사건

12월 31일 야스쿠니 신사에서 한 일본인이 방화했다가 체포당했다고 한다. 피의자의 변으로는 정치적인 의도가 아닌, 자살할 의도로 일부러 야스쿠니에서 방화한것이라고 했다.자살공격한 사람 많이 모셨으니 자살하기 좋다 생각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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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신사 홈페이지에서는 國을 사용하고, 실제로도 国과 國이 혼용된다.
  • [2] 여러 혼들을 함께 모신다는 의미로 합사(合祀)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이 곳의 "합사"라는 개념은 일본 고유의 것도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가 독자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 [3] 국어에도 혼을 부른다는 의미로 똑같이 초혼(招魂)이란 말을 사용하며, 김소월의 시 '초혼'이 잘 알려져 있다. 비슷한 단어로 청신(請神)등이 있다.
  • [4] 고쿄가 치요다구 한가운데 있다. 위치상으로 보면 고쿄의 북서쪽으로 무도관이 있고 도로를 경계로 북서쪽에 야스쿠니가 위치해 있다.
  • [5] 출처 추가바람
  • [6] 여담으로 애초에 쇼와 덴노는 A급 전범들을 제사 지낸다는 것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의 입장에서는 되지도 않는 전쟁을 일으킨 탓에 자신을 곤경에 빠뜨린 자들을 도저히 충성스러운 신하로 볼 수 없었기 때문.
  • [7] 사람이 죽어서 된 영. 중국 전통에서 사용한 용어이다. 중국에서는 신을 셋으로 분류하여 천신(天神)은 하늘과 관련된 신, 즉 상제나 별의 신, 기후의 신 등을 가리키고 지기(地祇)는 땅과 관련된 신, 즉 땅이나 곡식과 관련된 신이며, 인귀(人鬼)는 사람이 죽어서 된 영이라 하였다.
  • [8] 이런 일본의 종교관을 기본적인 세계관으로 반영한 만화가 바로 블리치이다.
  • [9] 이는 세계 각국의 국립묘지라면 고인에 대해 평가를 해서 명예로운 이들만 받아들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야스쿠니 신사의 기준으로는 훈장을 받을 정도로 공을 세운 인물임에도 오직 전쟁터에서 전사하지 않았다고 거부한다. 그런 반면 온갖 전쟁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단지 전쟁터에서 전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받아들인다. 과연 이게 제대로 된 국립묘지의 방식일까?
  • [10] 야스쿠니 신사 측에서는 "일본을 위해 죽은 사람이면 누구나 받아들인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배향된 명단을 보면 오직 군인-남자인 경우에만 받아들였다. 민간인이거나 여자일 경우는 명백히 배척했다. 일본을 위해 죽은 사람은 누구나 받아들인다는 말은 야스쿠니 측의 의례적인 말에 불과하다.
  • [11] 이러한 행동은 모든 전몰장병들이 기꺼이 덴노와 국가를 위해 기쁘게 충심으로 죽었으리란 이미지를 준다. 청일전쟁 때, 기존 기준으로는 명예롭지 못하게 죽은 군인들도 야스쿠니에 모시도록 함은 유족들을 위로하는 의미도 있지만, 모든 장병들이 일심단결로 나라를 위해 싸웠다는 이미지 조성이 더 큰 목적이었을 것이다.
  • [12] 그리고 그 안에서 우익들이 자발적으로 그네들 시각의 '불순분자'들을 감시하고 있다.
  • [13] 일본 전통의 문. 문이라고 해서 여닫는 개념은 없다. 만화에서 간혹 절의 입구가 나올때 나오는 큰 문. 바로 그것이다. http://ko.wikipedia.org/wiki/도리이
  • [14] 合祀: 망자 둘 이상의 혼령을 한데 모아 제사함.
  • [15] 야스쿠니 신사의 배경사상인 국가신토 자체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전통종교인 신토덴노를 명분으로 삼아, 실제로는 중앙정부에 충성하도록 이것저것 짬뽕해서 만들어낸 물건이다.
  • [16] 이거 군국주의 시절부터 내려온 일본의 전통이다. 당장 안중근 의사 재판 과정에서도 행정부가 사법부에 실질적인 사형 명령을 내렸다. 2014년 3월 15일자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되었다.
  • [17] 본래는 8월 15일에 참배하기로 했지만 주변국의 반대를 의식하여 2일 앞당겨 참배하였다고 한다.
  • [18] 치도리카후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무명 일본군 병사들의 유골을 안치하며, 사설 종교기관인 야스쿠니 신사와는 달리 엄연한 국가시설이다. 때문에 일본이 진정으로 자국 전몰자들을 위한 추모시설을 원한다면, 야스쿠니 신사보다는 치도리카후치가 더 적합하다는 평가가 제기되어 왔다.
  • [19] 실제 히로히토는 사실상 전범인 걸 미국의 의지로 처벌받지 않았을 뿐이니, 내켜하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목이 덜렁덜렁 했을 테니까.
  • [20] 물론 여기 묻힌 놈들이 고운 놈들도 아니고, 전쟁을 벌인 결과 참패하여 히로히토의 목을 간당간당하게 만든 놈들이므로 개인적으로는 싫어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 [21] 사실 이것까지 뭐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반 사병이 항명하고 자기 소신을 지켜 제국주의에 가담하지 않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며, 어쨌든 군인은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극렬 반전주의자들은 이것도 뭐라 하기도 한다.
  • [22] 고려 갑옷으로 보는 것에 이견이 제기되기도 한다. 밑의 기사 참조.
  • [23] 구체적으로는 당시 프랑스 외무장관은 "프랑스독일과 전쟁의 비극을 겪어 봤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알고 있다", "이는 언제나 민감한 기억에 관한 문제이며, 그에 대한 해답은 역사가들의 연구와 민주적인 토론을 동시에 진행하고, 무엇보다도 상대에 대한 존중을 통해 찾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 자체로는 과거사 문제의 정치외교적 중요성을 전제로 하면서 일본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는 외교적으로 잘 조율된 수사였던 셈.
  • [24] 그런데 일본의 주요 언론, 특히 교도통신은 프랑스 외무장관의 발언 중 '기억(memory)에 관한 문제'라는 대목을 아베 신조 내각을 비롯한 일본 우익진영에서 애용하는 '전몰자 존숭(memorial)'으로 표현했다. 여기에 '역사가들의 연구와 민주적인 토론'이란 대목에서도 '역사가가 다루어야 한다'는 내용만 보도하여 1년 전 아베 신조 수상이 "침략 여부의 판단은 정치가가 아닌 역사가에 맡겨야 한다"고 발언한 것과 비슷한 인상을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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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9-21 02: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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