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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투레

last modified: 2015-04-14 01:16:54 by Contributors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디디에 드록바
(2006~2014)
야야 투레
(2014~ )

yaya_toure.jpg
[JPG image (65.41 KB)]
맨체스터 시티 FC No. 42
그네그네리 야야 투레
(Gnégnéri Yaya Touré)
생년월일 1983년 5월 13일
국적 코트디부아르 (Ivory Coast)
출신지 부아케 (Bouaké)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신체 조건 191cm, 90kg
등 번호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 19번
맨체스터 시티 FC - 42번
유소년 클럽 ASEC 미모사 (1996~2001)
소속 클럽 베베렌 (2001~2003)
메탈루흐 도네츠크 (2003~2005)
올림피아코스 F.C. (2005~2006)
AS 모나코 (2006~2007)
FC 바르셀로나 (2007~2010)
맨체스터 시티 FC (2011~ )
국가대표
(2004~ )
95경기, 19득점

맨체스터 시티 FC 소속의 축구선수. 맨체스터 시티의 핵심이자 201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

하지만 동시에 돈을 위해 팀에 등을 돌리고, 심지어는 동생의 사망조차 이용하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Contents

1. 플레이 특징
2. 프로 경력
2.1. 생일 사건
3. 국가대표 경력
4. 기타


1. 플레이 특징

191cm의 막강한 피지컬, 준수한 스피드와 패싱 능력, 강력한 중거리 슈팅 능력, 심지어 드리블까지 딱히 빠지는 부분이 없는 만능형 미드필더. 유스에서는 공격수로도 뛰었기 때문에 공격 능력도 준수하고, 바르셀로나 시절 챔스 결승에서 센터백으로도 뛰었을 정도.
미드필더에서는 주로 박스 투 박스형으로 뛰면서, 소속팀에서나 국가대표 경기에서나 수비형과 공격형 미드필더를 전부 소화한다. 현재 소속팀인 맨체스터 시티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1] 장신의 신체조건과 정확한 볼배급 덕에 '제 2의 비에이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2012년에는 중앙미드필더의 교과서라고 극찬을 받고 있는데, 사실 약점을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키가 커 헤딩도 잘 따내고 피지컬도 좋고 키핑력도 좋은 데다가, 패싱력도 아주 준수한 편. 게다가 중거리슛 능력까지 장착했다. 상황 판단도 뛰어나서 패스를 뿌릴지, 슛을 할지, 돌파를 할지, 금방 결정하고 움직인다. 야야 투레 때문에 중앙미드필더에서 뛰던 제임스 밀너는 윙어 자리에서 뛸 수밖에 없었고, 네덜란드 국대 미드필더인 나이젤 데용은 벤치에 앉을 정도.다비드 실바도 야야 투레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현재처럼 활약하기는 힘들었으리란 게 대다수의 중론이다.

굳이 따져보자면 모든 부분에서 강하지만 수비는 못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맨시티에 온 이후로는 그다지 잘하진 않는 편이다. 그래서 맨시티에 온 이후에는 4-3-3의 3 중간으로 뛴다던가 하는 경우는 없다시피하고 4-2-3-1의 2선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와 3선의 중앙 박스투박스에서 거의 고정으로 뛰고 있는데 골수에서 보듯 바르셀로나에서 맡던 롤보다 훨씬 공격적인 롤을 맡는 것으로 이 덕분에 투레의 파트너는 공격보단 수비에 치중하는 것이 보통이다. 2013년 페르난지뉴의 영입 이후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은 투레를 3선의 아래로 내리고 수비를 하게 하는 전술을 짰는데 초반 전적이 알려주듯 대망했다.(...) 투레가 수비를 '안' 하는 것이 원인. 결국 고육지책으로 투레를 다시 공격적으로 올리고 투레가 공격을 풀러 올라갈 때마다 콤파니를 중원으로 올리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2011년부터 3년 연속으로 아프리카 축구협회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아프리카 선수에, 2013년에는 BBC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아프리카 선수에도 선정되었다.

2. 프로 경력

야야 투레의 나이가 18살일 때, 코트디부아르의 ASEC 미모사에서 데뷔한다. 데뷔 이후의 활약으로 유럽의 클럽에 가게 되고, 벨기에의 베베렌, 우크라이나의 메탈루흐 도네츠크,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 프랑스의 FC 모나코 등을 돌아다니게 된다.

2007년에 FC 바르셀로나에 들어가서 활약하며야야 꾸레 역사적인 2010년의 6관왕 시즌도 보내게 된다. 이때 야야 투레의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가 아니라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중앙에는 아무래도 굇수가 버티고 있었으니 아무리 야야 투레라도 그 자리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펩 과르디올라 체제 '하에서 바르셀로나는 패싱력과 점유율을 아주 중요시했기 때문에 주로 피지컬과 돌파, 중거리슛을 주무기로 삼는 야야 투레는 중앙미드필더로 어울리지 않았다. 야야 투레가 아무리 패싱력을 갖추었다고 해도 싸비나 이니에스타를 밀어낼 수는 없었으니. 게다가 야야 투레는 그들에게는 없는 피지컬과 수비력이 있었기 때문에 수비형 미드필더에 적합했다.

바르셀로나 죽 활약하다가 2009년부터 부상으로 컨디션이 하락한 사이, 세르히오 부스케츠가 그 자리를 꿰찬다. 선발 출장을 원하던 야야 투레는 팀을 옮기기로 결심, 형이 있는 맨체스터 시티로 2010년 여름 이적하게 된다. 당시 투레의 에이전트가 중간에서 좀 난리를 친 것도 있었고, 기본적으로 챠비-이니에스타라는 역대급 미들 듀오를 가지고 있었던 바르셀로나 입장에서는 박투박형 미드필더 보다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야야투레보다 부스케츠가 좀 더 뛰어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2] 바르셀로나에서 나오면서 야야 투레는 펩 과르디올라와 좋지 않게 헤어지게 된다. 자세한 건 펩 과르디올라 항목 참조. 그러나 금방 다 잊어 버렸는지 말년에는 바르셀로나로 돌아가고 싶다고 종종 인터뷰하기도 한다.그야 과르디올라가 사라졌기 때문이지.

2010년에 맨체스터 시티와 2400만 파운드에 5년 계약을 맺게 된다. 그 뒤로 맨시티의 중원을 책임져 주며 더블 스쿼드를 만들었다는 2011~2012시즌의 맨시티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 된다. 입단 이후 적응 기간을 거쳤던 다른 멤버들과 달리 단숨에 스타팅 멤버 자리를 꿰찬다.

2013-14시즌엔 정신나간 프리킥 페이스를 보이고 있는데 갑자기 킥력 포텐이 터지면서 미친듯이 프리킥을 넣고 있다. 투레의 수비에서 많은 불안점이 활동량, 기동력 하락으로 인해 보이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공격적인 능력은 가면 갈수록 올라가는 중. 박싱데이 전까지 팀내 득점 3위, 리그로 한정하면 2위에 EPL 득점 공동 3위이다(...) 그 골 중 반 이상이 프리킥골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득점 페이스는 떨어질 거라는 예측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고도 계속 골을 퍼넣고 있다. 5월 초 기준으로 리그 20골, 리그 득점 3위(!)에 아게로가 유리몸화되면서 팀내 득점 1위(!!)이다. 덤으로 미드필더로서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20골을 기록한 건 첼시의 프랭크 램파드뒤로 겨우 두 번째의 일이다.

이렇게 역대급 시즌을 보냈지만, 수아레즈가 워낙 굇수급 시즌을 보낸지라 PFA 올해의 선수상을 받는데는 실패했다. 이에 대한 아쉬움을 직접적으로 표하기도. 하지만 시즌 마지막까지 꾸준히 활약하며 맨시티의 13-14시즌 리그 우승을 이끌어냈다. 공격수의 부상이나 기복이 유달리 심했던 13-14시즌의 맨시티였는데, 투레의 엄청난 득점포 가동이 없었더라면 우승은 거의 불가능했을 듯 하다. 그야말로 우승의 일등공신.

헌데 나이가 드디어 영향을 끼치는지, 아니면 태업인지, 14-15시즌 초반 투레는 그냥 팀에 짐만 되고 있다.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저번 시즌의 득점력은 어디 갔는지 실종되었고 수비는 저번시즌보다 더 안하며, 그냥 플레이 자체가 성의없는 상황이라 현재로선 팀에서 제일 욕을 많이 먹는 선수. 언제 반등할 진 모르지만 14-15시즌 초반의 폼이 계속되면 그냥 빨리 없애는 것이 팀에 이득인 상황.
하지만 그런 부진도 어느새 이겨내고 다시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2014년 10월 5일 아스톤 빌라 전에서 후반 82분에 골을 넣었다.팀은 88분에 나온 아게로의 골까지 2:0승리. 근데 맨체스터 더비를 앞두고 다비드 실바와 함께 부상을 당했다. 제길. 경미하긴 하나 상황은 두고 봐야할듯. 팬들은 아마도 램파드가 이 자리를 채워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나머지는 페예그리니의 선택에 달릴듯.

그리고 투레가 네이션스컵에 간 뒤로 맨시티는 한달간 0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면서 위의 비판을 무색케 하고 있다(...) 하지만 투레가 돌아온 이후에도 맨시티는 전혀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오히려 바르셀로나에게 털리고, 리버풀에게 발리고, 맨유에게 썰리고, 하위팀들에게 연패하는 등 팀이 연쇄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했고, 투레는 최악의 폼으로 비판의 중심에 다시 서게 되었다. 약점이 더더욱 부각되고 있다는 평가. 무엇보다 바닥까지 떨어진 활동량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투레가 2미들 중 한 자리를 차지하는 날은 거의 1미들로 경기가 운영된다고 봐도 될 정도이다.사실상 새로운 전술 실험

2.1. 생일 사건

13-14 시즌 종료 이후 맨시티가 시즌 2관왕에 도취되어 있을 무렵, 느닷없이 투레의 에이전트가 투레가 이적할 수 있다는 인터뷰를 했다. 투레가 맨시티에 남을 가능성은 50%에 불과하다는 것. 그 이유로 댄 사실이 굉장히 황당한데, 투레의 생일에 팀 동료들과 맨시티 직원들이 그를 축하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워낙 어처구니 없는 이유였고, 투레의 에이전트가 개드립 이적 관련 징징대는 발언을 한 게 하루이틀 일도 아니었던지라 신뢰도가 심히 의심되는 상황이었으나..


나 진짜 삐졌뜸! 레알임!

투레의 공식 트위터발 오피셜(..)이 뜨면서 이가 사실로 확인되었다.[3] 맨시티 팬들은 그야말로 멘붕. 비행기 안에서 투레의 생일축하를 해주는 영상이 이미 돌아다니는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어처구니 없어하는 팬들이 많다. 생일 케이크에 마음이 담겨있지 않았다구!


실제로 투레는 직원과 선수들이[4] 자신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동안 정색하면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였다(..) 생일축하 말고도 뭔가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긴 한 듯. 사실 당연히 그런 것이고 생일축하는 구실일 게 뻔하다. 피지컬은 괴물인데 멘탈은 소녀

근데 이번엔 일을 크게 벌이기도 했고, 팬이나 구단의 반응이 차갑다. 팬들은 최고의 시즌을 보냈음에도 그냥 팔고 그 돈으로 세스크폴 포그바를 데려오라는 반응이 더 많고, 오히려 투레 에이전트 쪽에서만 계속 떠벌대고 구단은 미동도 하지 않는 상황. 오히려 이적설만이 떠오르고 있는데 그게 이스코와의 스왑딜(...).

이걸로도 부족한지 월드컵 기간 중 개드립 하나를 더 터뜨렸다. 야야의 동생 이브라힘 투레가 월드컵 기간 주 암투병 끝에 사망했고 구단이 그를 추모했는데, 야야는 구단은 브라질 월드컵에 내가 가기 전에 이브라힘과 함께 있고 싶던 시간에 아부다비를 강제로 끌고 갔으니[5] 추모할 자격이 없다는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은데 우선 첫번째로 전에 구단은 사발레타, 만치니그리고 모 골퍼 등이 개인사정으로 팀을 잠깐 떠나길 원했을 때 계속 보내준 선례가 있고 심지어는 세르히오 아궤로같은 기간 중 리오 퍼디난드와 함께 아시아로 홍보투어를 갔는데도 막지 않았기 때문이고(...) 두번째로 투레 자신이 아부다비에서 웃으면서 찍은 사진이 꽤 많기 때문이며, 세 번째로 정작 저런 말을 하는 투레의 가족들은 구단에 지원에 대한 감사메일을 보냈기 때문(...). 물론 자세한 사실은 밝혀져야 알겠지만 만약 이것도 에이전트와의 돈을 얻기 위해/이적을 얻기 위한 계략이라면 이적은 불가피해졌다는 여론이 강해졌다. 돈 몇푼에 죽은 동생을 이용하는 파렴치한 행각에 팬들의 투레에 대한 감정은 더욱 심하게 악화되었다. 그리고 이 거짓말로 추정되는 말로 인해 이 일에 관심이 없는 팬들과 다른 팀 팬들에게는 야야 투레의 이미지가 불쌍한 이미지가 되고 맨시티 이미지가 내려가면서 맨시티 팬들은 정말 미칠 지경.

그런데 갑자기 스카이 스포츠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모든 오해가 풀렸으며, 100% 맨시티에 잔류할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 이건 뭐 싸이코도 아니고 본인 입으로 직접 동생이 죽었는데 구단이 자길 보내주지 않았다느니, 생일을 축하하지 않았다느니 해놓고 이를 그냥 '주변의 추측'일 뿐이었다고 일갈했다. 자기 말을 자기가 반박하는 토론의 새로운 경지 이젠 모든 게 괜찮고 시티에서 행복하다고(..) 사실상 투레의 보스 에이전트도 사태 종결을 인증했다. 내년엔 모두가 투레의 생일을 축하해주길 바란다(..)는 명언을 남기며 모든게 해결되었다고 선언한 것. 결국 잔류로 가닥이 잡히긴 했지만 아직 시티 팬 사이에서는 말이 많은 상황이다. 일단 팀을 제대로 된 이유도 없이 통째로 흔들어 버린 데 대해 사과의 말 하나 없었고, 딸랑 언론사와의 전화 인터뷰 하나로 모든 걸 마무리 지으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 이 모든 헛소동의 배후로 추정되는 에이전트에 관련된 조치도 아직까지 없다. 그냥 투레를 불러주는 곳이 없으니 억지로 남는 게 아니냐는 의혹만 커져가는 상황. 속사정이야 어찌됐건 이 일로 투레의 명예와 시티에서의 입지는 상당히 훼손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결국 투레의 생일축하 파문은 황당하게 시작해서 황당하게 끝나버린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남게 됐다.블루문의 마음은 찢어진다

그러나 이후 투레가 네이션스컵 차출로 팀에서 빠진 사이 맨시티가 투레 없는 기간동안 0승(...)이라는 기록을 달성하면서 이제는 생일파티 3박 4일로 해줘야된다(...)라는 뉘앙스의 드립이 흥하고있다.#

3.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에서도 오래 뛰면서 중원에 힘을 주며 센추리클럽이 머지 않았는데 디디에 드록바에게 가려지는 면이 없잖아 있다.[6] 드록국이란 말이 있다는 것 자체가...[7]

국대에서 드록바와 프리킥을 나눠 차고 있는데 2013년에는 7경기 6골에 팀내 최다골이라는 무시무시한 득점수를 올리고 있다.

드록바에게서 주장을 넘겨받은 뒤 2015년 네이션스컵에서 코트디부아르를 우승으로 이끄는 데 성공했다.

4. 기타

형제들도 선수로 뛰고 있는데, 형인 콜로 투레는 자신과 같은 맨시티에서 뛰다가 리버풀로 이적했고 동생 이브라힘 투레는 자신이 뛰었던 ASEC 미모사에서 뛰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브라힘은 2014년 6월 20일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야야 투레는 위에 선술한 행각을 벌였다.

AS모나코에서 뛸때까지만 해도 아스날에서 뛰던 콜로 투레의 동생으로 더 유명했으나 현재는 야야가 더 유명하다.

드록바와는 파벌이 있어서 둘의 사이는 미적지근 했었지만, 드록바가 콜로 투레의 약물 스캔들 사건에서 콜로를 옹호해주면서 지금은 관계가 많이 원만해졌다고 한다.상냥한 드록신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로 라마단을 꼭 지키고 술도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야야 투레가 금식하는 날에 경기가 있으면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게 금방 확 눈에 띈다.

바르셀로나 시절엔 24번을 달았고, 맨체스터 시티 이적 후에는 42번을 달고 있는데, 24번과 42번이라는 다소 생소한 등번호를 달고 있는 이유는 입단 시에 아내가 그 번호를 골라준 것이라고.팬들 사이에서는 2+4, 4+2=6이라는 설이 신빙성을 얻고 있기는 하다. 특히 맨시티에 들어올 때 24번을 비에이라가 차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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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제 야야 투레가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 차출로 빠진 기간 동안, 맨시티는 리그에서 많은 고생을 했다.
  • [2] 실제로 부스케츠는 2011, 2012년 현재 수비형 미드필더로서는 세계 최고의 선수로 꼽히고 있다.
  • [3] 단 이 트윗은 대필일 가능성이 높다. 그 전(사실 이 바로 전의 3 트윗도 대필일 가능성이 높기에 그보다도 전)의 트윗들과 말투가 다르기 때문.
  • [4] 나스리만 적극적이었고 다른선수들은 생일축하노래가 들리자 그냥 슬쩍 보고 말았다
  • [5] 위의 생일케익 사건이 아부다비로 가는 비행기 안이었다.
  • [6] 물론 국내 한정. 해외에선 야야 투레의 비중을 상당히 높게 쳐준다.
  • [7] 사실 드록국이란 말이 나올 때는 드록바가 선수로서 절정에 있을 때+EPL 버프를 받을 때였고 그에 비하면 야야 투레는 대단한 선수지만 바르셀로나에서 차비와 이니에스타의 조력자 정도의 역할로 아는 사람이 많았다. 이후 야야 투레가 EPL 입성 하고 리그를 씹어먹으면서 드록바 못지 않은 클라쓰 있는 선수임을 입증했지만, 그 땐 조국의 전쟁까지 멈춘 드록바의 위상을 넘보기엔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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