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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조)

last modified: 2015-04-07 17:09:22 by Contributors

중국의 역사
위진남북조시대/육조시대
/남북조시대 남조 남북조시대 남조 /남북조시대 남조
  소량   

  • 춘추시대의 소국인 양나라는 여기 참조.
  • 서위(西魏)의 괴뢰국 후량(後梁) 혹은 서량(西梁)은 여기 참조.
  • 주전충이 세운 후량(後梁)은 여기 참조.

梁 양나라, 502~557년.

Contents

1. 개요
2. 양나라 황제들
2.1. 시조, 무황제 소연(蕭衍)
2.2. 임하왕 소정덕(蕭正德)
2.3. 태종 간문황제 소강(蕭綱)
2.4. 예장왕 소동(蕭棟)
2.5. 무릉왕 소기(蕭紀)
2.6. 숙종 원황제 소역(蕭繹)
2.7. 숙종 정양후(민황제) 소연명(蕭淵明)
2.8. 목종 경황제 소방지(蕭方智)
3. 열종 사황제(영가왕) 소장(蕭莊)
4. 의 황제

1. 개요

502년에 세워진 나라로 육조시대의 국가 중 하나다. 소연의 성을 따서 소량(蕭梁) 혹은 남량(南梁)이라고도 부른다. 남제폭군 동혼후 소보권을 죽인 왕족 소연(양무제)이 세웠는데 소연은 아주 훌륭한 황제로 막장 황제가 들끓는 남조 역사 중에서도 정말 몇 안되는 명군으로 추앙되는 인물로 빛나는 업적을 세운 사람이다. 휘하 장수로는 진경지도 유명한 편.

...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 하나가 이 나라의 전부라는 것이다.(…)

물론 나라는 황제 혼자서 다스리는 게 아니다.[1] 하지만 양나라의 경우에는 소연이 국가를 세워서 50여년간 지배한 후 후술하는 사건 때문에 죽을 때 사실상 국가가 붕괴했기 때문에 개국 시조이자 명군이 암군이자 망국의 군주가 되는 몇 안되는 예외로 볼 수 있는 사례중의 하나다.

초기에는 제도를 개혁하고 민심을 살펴서 화폐경제가 발전하는 등 국가가 융성했으나, 점차 가속되는 인플레이션에다가 새로 주조한 철전은 외면받고, 동전을 만들 구리는 부족한 등의 상황이 발생하는 등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의 극치를 달리는 융성의 시대였지만, 속이 썩은 나무같이 이면에 문제점이 많이 발생하던 때가 당시의 양나라였다.

덤으로 빈부격차가 심해서 빈민과 불량배들이 군대에 입대하여 호구지책을 마련하는 바람에 양나라 군대 자체가 깡패의 모임으로 전락해버린 상황에서 중앙의 귀족들은 사치의 극한을 누리면서 여성화하여 화장을 하고 굽 높은 신발을 신고, 남이 옷을 입혀주지 않으면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라서 말이 날뛰는 것을 보고 고위급 관리가 저건 말이 아니라 호랑이라고 하는 등 겉보기엔 신선같지만 전혀 쓸모없는 인간만 양산하고 있었다.

물론 소연도 이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딱히 해결방법이 없었고, 이를 비관했는지 말년에 불교에 너무 심취해서 툭하면 머리깎고 중되겠다고 설치는 것을 신하들이 잡아와서 간신히 말리고 잊을만하면 또 그짓거리를 반복하여 나라를 홀라당 말아먹고 후경의 반란에 휘말려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도, 다른 곳에 있었던 같은 소씨 황족들이 서로 눈치 보고 어떻게 이 뒤에 더 챙겨먹을까나 강구하다가 결국 황제를 죽게 내버려뒀다. 소연이 다른 남조국가들의 예를 생각해서 황족들을 탄압하지 않고 자상하게 보살펴주고 죄를 용서한 것에 비하면 참 배은망덕한 짓을 한 셈이다.

이게 550년의 일이다. 물론 소연 자체는 좋은 황제였으나 종교에 너무 깊이 빠진 것이 유일한 단점으로, 그 유일한 단점으로 인해 자신이 파멸하게 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 황족들도 자기네들끼리 싸움하다가 북조의 공격을 받거나, 휘하 장수의 꼭두각시가 돼서 결국 제대로 된 황제놀음을 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557년에 나라가 망했으니 말 그대로 무제의 즉위 동안 잘 나가다가 죽자마자 폭풍 같이 망한 셈이다.

그 뒤에는 건강 근처는 장군 진패선(陳覇先)이 세운 (陳)나라로 이어지고, 서위의 괴뢰정권인 후량은 양양 부근의 좁은 지역에 세워진다. 참고로 후량의 경우 명색은 국가였지만 실상은 양양만 다스리는 일개 지방정권 이하에 불과했으므로 정식으로는 양나라로 보지 않으며, 남조로 치지도 않는다.

여담으로 양나라는 국호는 바꿨으나 스스로 제나라와 같은 운명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제나라에 제사도 지내주고, 심지어 왕릉도 같은 자리를 썼으며, 오행의 덕도 같은 목덕(푸른색)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 외에 양나라의 특징은 후경의 난 이후에 벌어진 대규모 내전으로 인해 멀리 보면 삼국시대의 위나라서부터 전해진 귀족계층이 한꺼번에 망해버린 것이다. 원래 남조의 귀족계층은 왕조가 망해도 그대로 존속하며, 귀족이 되고 안되고는 귀족들 스스로 결정하지 황제도 손을 못대는 엄청난 권세를 누렸으나, 후경의 난과 그 이후의 혼란으로 인해 권력과 함께 지방의 장원을 상실함으로서 재력도 잃어버림으로서 완전히 몰락했다. 따라서 후경의 난 이후의 귀족계층은 진나라에서 장식용으로 몇 명 등용된 것을 제외하고는 비참한 삶을 살게되며, 일부만이 수나라의 집권계층과 혼인하여 흡수되게 된다.

2. 양나라 황제들

공식적인 계승순서는 무제-간문제-원제-경제이며 나머지는 모두 폐제들로 비정통 괴뢰 황제들이다.

2.1. 시조, 무황제 소연(蕭衍)

유명한 명군으로 장기 통치를 했지만 양나라의 국운이 흥하고 쇠퇴하는 것을 모두 겪었다.

2.2. 임하왕 소정덕(蕭正德)

숙부의 온갖 정성에도 불구하고 온갖 인간말종짓으로 보답했으며 특히 후경이 난을 일으키자 오히려 그를 끌여들여 황제가 되었다가 토사구팽당했다.

2.3. 태종 간문황제 소강(蕭綱)

명군의 자질이 있었으나, 후경의 난으로 피살되었다.

2.4. 예장왕 소동(蕭棟)

소연의 증손자로 후경에 의해 약 4개월 동안 괴뢰 황제가 되었지만 폐위 후 작은할아버지 소역에 의해 두 동생과 함께 제거되었다.

2.5. 무릉왕 소기(蕭紀)

소연의 8남으로 다른 비정통 황제들과 달리 꼭두각시로 즉위한 것이 아니라 후경의 난을 틈타 촉 땅에서 스스로 자립한 것이다. 하지만 이복형 소역과 동시에 즉위했으므로 대립했고 거기에 재물을 아껴 부하들에게 피살되었다.

2.6. 숙종 원황제 소역(蕭繹)

문학가였지만 황제에는 어울리지 않았으며 결국 조카 소찰에 의해 피살되었다.

2.7. 숙종 정양후(민황제) 소연명(蕭淵明)

무제의 형 소의의 아들로 무제의 조카이다. 동위와의 전투에서 묵사발이 나 포로로 잡힌 후 나중에 괴뢰 형제로 귀국하여 황제가 잠시 됐지만 결국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진패선이 폐위시켜 버렸다. 진패선은 소연명을 다시 북제로 추방시킬려고 했지만 그 전에 병사해 버렸다.

제위 기간도 짧고 적국의 꼭두각시라서 일반적으로 황제로 보지 않지만 몇년 뒤 강릉 남부에서 남량이라는 소국을 세운 소장[2]에 의해 민황제로 추존되었다.

2.8. 목종 경황제 소방지(蕭方智)

비운의 마지막 황제이다.

3. 열종 사황제(영가왕) 소장(蕭莊)

진짜 마지막 황제는 이 분이지만(...) 비정통 황제로 본다. 양나라가 멸망하고 진나라가 서자 즉위했으나, 머지 않아 멸망당하고 북제로 망명한 후 병사했다.

4. 의 황제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 양 태조(梁太祖)[3] 문황제(文皇帝) 소순지(蕭順之) - -
1대 양 고조(梁高祖) 무황제(武皇帝) 소연(蕭衍) 천감(天監)502 ~ 519
보통(普通) 520 ~ 527
대통(大通) 527 ~ 529
중대통(中大通) 529 ~ 534
대동(大同) 535 ~ 546
중대동(中大同) 546 ~ 547
태청(太淸) 547 ~ 549
502 ~ 549 수릉(修陵)
임시 - 임하민왕(臨賀岷王)
전폐제(前廢帝)
소정덕(蕭正德) - 549 -
2대 양 태종(梁太宗) 간문황제(簡文皇帝) 소강(蕭綱) 대보(大寶) 550 ~ 551 549 ~ 551 장릉(莊陵)
- 양 고종(梁高宗)[4] 소명황제(昭明皇帝) 소통(蕭統) - - -
- - 안황제(安皇帝)[5] 소환(蕭歡) - - -
3대 - 예장흥문왕(豫章興文王) 소동(蕭棟) 천정(天正) 551 551 -
임시 - 무릉인왕(武陵仁王)
후폐제(後廢帝)
소기(蕭紀) 천정(天正) 552 552 -
4대 양 세조(梁世祖) 효원황제(孝元皇帝) 소역(蕭繹) 승성(承聖) 552 ~ 555 552 ~ 554 강릉(江陵)
5대 양 숙종(梁肅宗) 민황제(閔皇帝)[6]
정양후(貞陽侯)
소연명(蕭淵明) 천성(天成) 555 555 -
6대 양 목종(梁穆宗) 경황제(敬皇帝)
효성황제(孝成皇帝)[7]
소방지(蕭方智) 소태(紹泰) 555 ~ 556
태평(太平) 556 ~ 557
555 ~ 557 -
임시 양 열종(梁烈宗) 영가왕(永嘉王)
사황제(思皇帝)
소장(蕭莊) 천계(天啓) 557 ~ 560 557 ~ 5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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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서진사마유진나라처럼 떡밥이야 던질 수야 있겠으나.
  • [2] 소역의 장손으로 아버지는 무열태자 소방등이며 소방등은 현종 무영황제로 추존되었다.
  • [3] 양 무제 추존
  • [4] 후량 선제 추존
  • [5] 양 폐제 추존
  • [6] 북제 문선제 추존
  • [7] 양 소장 추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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