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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

last modified: 2015-03-24 14:54:53 by Contributors

목차

1. 중국의 4대 미인
2. 양귀비과의 한해살이꽃
3. SBS 소속의 개그우먼
4. 염색약의 이름

1. 중국의 4대 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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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264.08 KB)]


당나라 현종의 비(妃). 양귀비는 이름이 아니라, 양씨 성에 귀비(황후 다음 서열의 후궁)란 직함이 붙은 것이다.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귀비 양씨쯤 된다. 양씨의 이름이 흔히 옥환(玉環)으로 알려져있는데 이것은 후세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삼국지손부인이 후세에 손상향이란 이름을 얻은 것과 같은 경우이다.

본관은 포주(蒲州) 영락(永樂)(현 서성 융지시(永濟市) 지역)이며, 용주(容州)[(서성 지역)에서 출생했다. 17세 때 현종의 제18왕자 수왕(壽王)의 비(妃)가 되었다. 그러나 현종이 총애하던 무혜비(武惠妃)가 죽자, 황제의 뜻에 맞는 여인이 없어 물색하던 중 수왕비의 아름다움을 진언하는 자가 있어, 황제가 온천궁(溫泉宮)에 행행(行幸)한 기회에 총애를 받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수왕의 저택을 나와 태진(太眞)이란 이름의 여도사(女道士)가 되어 세인의 눈을 피하면서 차차 황제와 결합하였으며, 27세 때 정식으로 귀비(貴妃)로 책립되었다.이게 약간 아이러니인데 왜냐하면 무혜비의 아들이 수왕이기 때문이다(...).즉 원래 총비였던 시어머니가 죽자 며느리가 그 자리를 계승한 꼴.

한 마디로, 며느리로 왔다가 시아버지와 눈이 맞고 배가 맞은 막장녀. 현대 관점에서 보면 훌륭한 네토라레물이다. 다만 당시 시대에 양귀비가 황제를 상대로 절조를 지키려면 죽는 수 밖에 없었고 다른 가족에게도 해가 미쳤을 것이니 그녀를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또, 전 세대의 다른 여인들과 달리 양귀비는 정치에 개입하지도 않았기에 정적을 만들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도 아니다. 가장 큰 막장은 며느리에게 손댄 현종이라 봐야 할 듯.

다년간의 치세로 정치에 싫증이 난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아 궁중에서는 황후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고, 세 자매까지 한국(韓國)·괵국(國)·진국부인(秦國夫人)에 봉해졌다. 또한, 친척 오빠인 양국충(楊國忠) 이하 많은 친척이 고관으로 발탁되었고, 여러 친척이 황족과 통혼하였다. 그녀가 남방(南方) 특산의 여지(枝 - 요즘 음료수로도 나오는 '리치')라는 과일을 좋아하자, 그 뜻에 영합하려는 지방관이 급마(急馬)로 신선한 과일을 진상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런 지경이니 나라가 기울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다 755년 양국충과의 반목이 원인이 되어 안록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황제·귀비 등과 더불어 쓰촨으로 도주하던 중 장안(長安)의 서쪽 지방인 마외역(馬嵬驛)에 이르렀을 때, 양씨 일문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군사가 양국충을 죽이고 그녀에게도 죽음을 강요하였다. 현종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자, 그녀는 길가의 불당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중국 4대 미인(서시,왕소군,초선) 또는 '5대 미인'의 한 명으로 정사(正史)에선 그녀를 "자질풍염(資質豊艷)"이라 적었는데, 체구가 둥글고 풍만한 느낌의 미인이란 소리다. 요즘같은 시대의 미인상과는 다소 거리가 먼 타입(물론 요즘 시대에도 풍만한 걸 좋아하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양귀비 이전에 현종의 총애를 받았던 후궁인 매비가 양귀비를 일컬어 비비(肥婢 살찐 종년)이라 욕했다는 일화도 있다.

  • 일각에선 당시의 체격 기준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고대에는 허리가 가는 여자(근세 여자들처럼 코르셋 등으로 말 그대로 '개미 허리'를 만들듯이 한...)가 미인으로 취급받았기에 상대적으로 살쪘다고 구분지었다는 이야기로, 그렇게 봤을 때 양귀비의 실제 체격은 현대 미인들의 체형과 비슷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당(唐)대 여성들의 미인 기준은 대체로 현대와 비교해서도 당당한 느낌이었고, 가느다란 여성을 선호한 건 한(漢)대였다는 부분(대표적인 것이 '조비연' 등)을 들어 재차 부정하는 의견도 보인다.

가무(歌舞)에도 뛰어났고, 군주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총명을 겸비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양귀비의 별명인 해어화(解語花)와도 관련이 깊다. 말그대로 말을 알아듣는 꽃. 얼굴만 이쁜 꽃같은 후궁들이 아니라, 지적인 여자였음을 알수 있다. 동시대의 이백은 그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했고, 백거이(白居易)는 귀비와 현종과의 비극을 영원한 애정의 곡(曲)으로 하여 《장한가(長恨歌)》로 노래한 바와 같이, 그녀는 중국 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여주인공의 하나가 되었다. 진홍(陳鴻)의 《장한가전(長恨歌傳)》과 악사(樂史)의 《양태진외전(楊太眞外傳)》 이후 윤색은 더욱 보태져서, 후세의 희곡에도 좋은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경국지색이 뭔지 잘 보여주는 여자. 달기가 권력을 잡고 휘두른 타고난 악녀였던 반면, 양귀비는 권력에 휘말린 여자였다. 그녀 자신은 정치나 권력투쟁에는 관심이 없이, 현종과 음악을 즐기며 지내는 생활에 만족한 모양.

그 점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 양국충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안록산이 장안을 방문했을 때, 살이 쪄서 뱃살이 무릎에 닿을 정도(!)인 그의 외모를 재미있게 여겨 홀딱 벗겨 목욕시키고 아기 옷을 입혀 가마에 태우고 돌아다녔다는 일화. 현종도 그걸 보고 웃으면서 아기 씻긴 값을 주었다고 한다. 결국 안록산이 간신(양국충)의 토벌을 명목으로 난을 일으킨 결과 이 두 사람이 무슨 꼴을 당했는지 생각해보면 기묘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중국에서는 이때 양귀비와 안록산이 사랑에 빠져(!!) 안록산이 양귀비와 다시 한 번 만나기 위해 난을 일으켰다는 내용의 희곡도 있지만…. 비쥬얼이 워낙 그래서인지 한국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워낙 인기인이라 양귀비, 양귀비비사, 대당부용원 등 양귀비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여러 편 만들어졌다. 워낙 유명한 인물이고 절세미인이라는 특징이 있는지라 양귀비역은 작정하고 예뻐야 한다. 뭐, 이건 미인으로 알려진 여성 캐릭터라면 모두 해당되는 케이스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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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47.69 KB)]

위 사진은 당부용원에서 양귀비를 맡은 판빙빙. 대당부용원의 양귀비는 매우 자유분방하고 활발하며, 당현종과는 서로의 예술적인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지음의 관계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덧붙이자면 2010년 방영되었던 양귀비비사의 양귀비役 은도라는 배우는 ost를 직접 부르는 등, 마치 우리나라의 장희빈처럼 드라마화 될 때 마다 진정한 양귀비 재현에 힘쓴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직까지도 근거는 크진 않지만 일본의 가수인 불세출의 가희 야마구치 모모에가 양귀비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이는 야마구치 모모에 본인조차도 언론에서 이렇게 주장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자기 성은 원래 양씨이자 족보까지도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한국계인 손정의가 자신의 성씨를 들어 조상 중에 중국계 혈통도 섞였다는 립서비스를 한 바 있었던것처럼, 조선시대에 일부 양반들이 족보에서 성씨의 시조를 이름있는 중국계 인사들로 하던 유행에 맞물려 있는 것을 재일교포라 이런 역사에 무지해서 곧이곧대로 믿어서 썼다는 설이 약간 더 타당하다. 결국 근거없는 얘기라는 것.


이 링크에 따르면 원래 불타 죽은 사람은 양귀비가 아닌 시녀였으며, 양귀비가 도주했다는 내용인데, 그 도망간 곳이 다름아닌 일본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양귀비는 돛 없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갔는데, 이후 일현 본 야마구치현에서 주민들이 쓰러진 그녀를 발견했고, 이후 더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후손을 남겼다고 하지만 이것은 신빙성이 아예 없다.
일본에서는 중세까지 변방의 듣보잡이었다 보니 고대사의 유명인들을 끌어들여 칭키즈칸의 후예가 일본에 정착했다거나, 칭기즈칸이 사실은 미나모토 요시츠네라거나, 심지어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일본에 정착했다는 주장까지 있는데(다윗의 별을 새긴 신사가 있는 마을까지 있다!) 그 연장선으로 보면 된다. 환빠수준으로 보면 된다는 얘기다. 솔직히 일본 역사계통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런 역사분야에서 환빠보다 훨씬 더한 작자들이 널린게 또 일본이다

백거이의 유명한 시 장한가양귀비당현종의 사랑을 소재로 한 시다.

2. 양귀비과의 한해살이꽃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한 마약류
마약 양귀비·아편·코카인·모르핀·헤로인·메타돈
향정신성
의약품
비의료용 LSD·고메오
의료용 암페타민·메스암페타민·MDMA·케타민·벤조디아제핀·까트·프로포폴
대마 대마초와 그 수지(樹脂) 및 대마초 또는 그 수지를 원료로 하여 제조된 모든 제품
임시마약 랏슈


(ɔ) Franz Eugen Köhler, Köhler's Medizinal-Pflanzen from

학명은 Papaver somniferum 영어로는 Opium poppy, 중국어(보통어)에서는 罌粟(yīngsù, 앵속), 일본어에서는 ケシ(芥子, 罌粟)라고 한다. 문화어로는 '아편꽃'. 이 꽃의 한국어(표준어) 명칭이 독특한데, 한자어인 앵속(罌粟)이 아니라 당 현종의 후궁이었던 양귀비의 미모에 빗대어 '양귀비'라고 불린다.

색상은 붉은 빛이 대표적이지만, 주홍색이나 노란색, 흰색 등 종류에 따라 가지각색. 심지어 히말라야 등지에서만 자생한다는 양귀비는 푸른빛을 띤다. 1번 항목때문에 한 나라가 파탄난 것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말아먹을 마약의 원료라는 점에서 정말 적절한 작명이 아닐 수 없다. 양귀비의 일종으로 아편 성분이 없는 개양귀비의 별명은 우미인초. 항우의 연인이었던 그 우미인의 이름이 붙었다. 같은 미인이지만 나라를 말아먹은 양귀비는 아편이 있는 양귀비에 이름을 남겼고 그저 사랑만 하다 죽은 우미인은 아편이 없는 양귀비에 이름을 남겼으니 확실히 적절하기는 하다. 1의 양귀비와 구분하기 위해 양귀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종류에 따라서 아편을 만드는 데에 쓴다. 사진을 보면 꽃봉오리 같은것이 많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양귀비 열매로 여기에서 아편이 나온다. 관상용 및 농작물로 재배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마약법에 의해 아편을 만들 수 있는 양귀비의 소지, 재배가 금지되어 있다. 그렇지만 꽃이 아름다워서 몰래 관상용으로 기르는 이들도 종종 있고 시골에서도 몰래 종종 약재로 혹은 양귀비술 제조용(...)으로 키운다. 강력한 진통작용 때문에 과거부터 민간요법으로 사용되었고, 시골 및 도서지역에선 몰래몰래 기르는 경우가 많다. 보통 집안에서 키우는데 옥상이나 화단에서 키우면 헬기가 찍어간다고 한다. 때문에 시골에선 서로 싸운후 한쪽이 양귀비 재배로 다른쪽을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서로 자폭 그리고 섬이나 꽤 외딴 시골에서는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렵고 단속도 쉽지 않아서 기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지방에서 단속을 해도 대부분이 소량재배거나 재배자들도 거의 다 고령이어서 걸려도 불입건 처분되는게 대부분이다. 물론 그 경우에도 양귀비는 모두 압수된다. 재배 이유는 거의 다 관상용, 상비약이다. 그러나 상비약 용도도 엄연히 불법이고 관상용으로 기르는 것 역시 재배량과 관계없이 처벌 대상이 된다. 거기에다 직접 심은게 아니더라도 자생하는 양귀비를 냅둬도 처벌될수 있다.(...) 의외로 과거엔 양귀비를 이용한 아편 제조도 은근히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당시에 살던 노인분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면 그때의 무용담(?)을 들을 수 있다

사실 약국이나 병원이 지척거리에 있는 요즘과는 달리 옛날 시골에서는 의원이나 약을 구한다는 자체가 위급시에는 일단 불가능에 가깝고, 따라서 민간의 상비약으로서 양귀비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었다. 진통 및 해열이라는 현대 의약품의 가장 중요한 2가지 기능을 신속하고 강력하게 낼 수 있고, 특별한 처방이나 처리가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특별한 의학지식이 없이도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아무튼 마당한쪽에 십여그루 심어두었다가 자라면 따서 말려두었다가 급할때는 잎사귀 몇장을 물에 달여 먹이는 정도로 악효를 볼 수있으니까,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에서 근대무렵까지 민간상비약으로 애용되었던 물건이다.

그 외에 그 잎을 쌈싸먹으면 약간 쓴맛이 나는데 맛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약재의 일종이기도 하지만 일단은 법으로 금지.

그리고 오해하기 쉬운데 양귀비 축제 같은 곳에 나오는 양귀비는 털양귀비, 두메양귀비, 개양귀비(rhoeas) 같은 마약성분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합법적으로 재배가 가능한 양귀비 종류이다. 혹시나 관련 기사를 보고 오해하지는 말자. 애시당초 한묶음으로 양귀비라고는 해도 그 안에 다양한 종류가 있어서 마약성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어서 국내에서도 마약성분이 없는 것은 키울 수 있고 꽃 축제에서 쓰는 품종도 이런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꽃 축제는 대개 행정기관에서 기획하기 때문에 담당 공무원도 자기 죽을 짓은 안한다.

그러나 마약성분이 없는 양귀비라는 생각 자체가 몇 년전까지만 해도 국내에는 거의 없어서 마약성분이 없는 품종조차도 원예가들이 키우기 힘들었다. 이러한 사실이 국내에 퍼진 것은 원예취미가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한 2000년대를 좀 넘긴 시점부터이며 초기에 마약성분없는 양귀비 품종을 들여온 원예취미 모임에서는 이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한다.

또, 마약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양귀비의 씨는 , 베이글 등에 쓰이고, 기름으로 짜내서 쓰기도 하는데 유화 재료 및 가구의 마감재 용도로 사용된다. 씨에는 마약 성분이 거의 들어 있지 않다. 함량이 적다보니 씨에는 마약 효과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귀비 씨가 든 베이글을 자주 먹었다가 마약 검사에 걸렸다는 경험자가 있다. 미국의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R.A. 디키가 자서전 '어디서 공을 던지더라도'에서 밝히길, 친한 목사 집에서 그 사모님이 해 준 양귀비 씨를 듬뿍 뿌린 치킨 캐서롤을 너무 맛있어서 세 그릇이나 먹고 클럽 하우스로 싸오기까지 했는데 얼마 후 헤로인 성분이 검출되어 설명하는 데 진땀 빼야 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밀가루에 양귀비씨 가루를 섞은 반죽으로 국수를 만들어 팔던 국수집에서 국수를 먹은 멀쩡한 사람이 보름 동안 억울하게 유치장에 갇혀 지낸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국수집 주인이 자백하기로는 '자기 가게를 찾은 손님들이 또 찾아오게 만들려고 그랬다'고 하니 중독성을 알면서도 그 짓을 했다는 대륙의 기상(…)을 원없이 보여준 사건.

양귀비씨는 검정색으로 잡곡밥 속에 들어가는 조만한 크기인데, 달콤하고 바삭해서 빵에 넣어 먹으면 씹는 맛을 배가해준다. 국내에는 무슨 이유인지 양귀비씨가 든 빵이 거의 없다. 제과재료점에서도 작은 업소에서는 팔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영어권에서는 '무슨무슨 빵 with poppyseeds'라고 써놓는 경우가 많은데, 맛있으므로 기회가 되면 먹어보도록 하자 마약검사에 걸릴지도 모르지만... 인도 요리, 유태 요리에도 양귀비 씨가 쓰이는 것이 있다. Mythbusters에서 실험한 결과 실제로 마약 검사에 걸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경우 며칠만 양귀비 씨 베이글을 먹지 않으면 반응이 사라지므로 억울하게 마약 복용자로 몰리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그 전에 적지 않은 곤욕을 치를 수 있으니 참고하자.

중국에서는 아편 때문에 이미지가 안 좋은 꽃이지만, 양귀비의 씨앗은 식용하는 경우도 많다. 일부 지방에서 향신료로 쓰인다고. 같은 동아시아권인 일본에서도 양귀비의 씨앗은 케시노미(ケシの実)라 하여 적지않은 곳에서 이용된다. 단팥빵이나 케이크 위에 분말로 뿌리거나 시치미의 배합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일부 화과자소바의 재료로써도 쓰인다. 여행중 취식해도 별다른 처벌이나 제재는 없으니 안심하자. 하지만 위의 베이글의 경우처럼 다량을 섭취할경우 곤란한 일을 당할 수 있으니 여행 일정을 잘 생각하고 먹는것이 좋다.

리투아니아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 때 양귀비를 찧어서 낸 즙을 물에 타서 마시는데 이걸 양귀비 우유라고 한다. 그리고 이 우유에 양귀비 씨앗을 넣고 만든 빵을 넣어 먹는 걸 당연시한다. 여기도 예전에는 양귀비라면 어느 것이라도 가리지 않아서 때론 크리스마스 때 마약성분이 들어간 양귀비 우유와 빵을 먹고 헤롱거리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마약성분없는 품종으로만 만들어 먹도록 법으로 정해놓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선 많은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필품인 꽃이다. 마약 재료가 되는 것 말고도, 위에 나온대로 씨는 빵이나 빵가루같은 먹을 것으로 쓰이거나 또는 식용유로 활용된다. 게다가 남은 줄기는 말려서 땔감으로 쓰이며 타다남은 재는 모았다가 기름과 여러가지를 섞어서 비누로 만들어 쓴다. 그야말로 버릴 거 없이 알차게 쓰기 때문에 중독이니 돈벌이를 떠나 평범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작물이라서 살아가기 위하여 재배하는 게 많아 마약 퇴치에 걸림돌이 된다. 무굴 제국의 시조인 바부르는 양귀비 사탕을 좋아한 것으로 유명했다... 시크교의 창시자인 구루 나나크를 사로잡았다가 그의 노래가 마음에 들어 풀어주면서 선물로 양귀비 사탕을 줬다. 이때 나나크의 답변이 걸작인데 '매일 약빤 것처럼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아프간 정부가 과거 한국에서 대체 작물 권장으로 대마 재배를 근절했던 것처럼 이나 석류같은 대체 작물을 권장해도 그걸 팔아봐야 양귀비같은 생필품이 될 수 없기에 사람들이 계속 양귀비를 재배하고 무력으로 금지하다보니 되려 사람들이 탈레반을 지지하고 있게 만들고 탈레반의 군비에 도움이 되는 통에 미국은 할 수 없이 사람들이 기르는 양귀비를 사서 불태우는 작전을 쓰고 대체 작물 권장 및 생필품 보급에 힘을 쓰며 양귀비 재배를 막으려고 한다. 그러나 온갖 부정부패로 생필품이 착복되어 일부의 배만 채우고 지방에 널리 보급되지 못하기에 여전히 양귀비 재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것은 게임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2 멀티맵인 Afghan에서 양귀비밭으로 확인가능하다.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40세기경 수메르인들의 공예품에서 양귀비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양귀비에서 아편을 추출하는 법은 고대 그리스인도 알고 있었는데, '오피움'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인들이 붙인 말이며, 이것이 중국인들에 의해 '아편'으로 음역이 되었다.

인도에는 이것과 관련된 전설이 있는데, 어느 나라의 왕자가 꽃밭에서 새를 생포했다. 그런데 꿈에 아라후라라는 나라의 아름다운 공주가 그 새를 찾고 있었고, 공주의 이름이 뭐냐 물으니 놀라며 그 이름은 자신의 이름과 같고 그 새가 좋아하는 꽃의 이름과도 같으며 그 꽃 앞에 있으면 그 이름을 부른다고 했다. 결국 왕자는 새와 함께 몰래 잠입해 화원을 돌았고, 양귀비의 앞에서 그 새를 꺼내자 파파벨라라는 이름을 외쳤다고 한다. 그렇게 공주의 이름을 알게 된 왕자는 아름다운 공주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전설.

하지만 서양에서 아편성분이 없는 개양귀비는 붉은색이라 전사자들의 피를 먹고 피는 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게다가 양귀비의 꽃말은 '위안', '쓰러진 병사'. 벌판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양귀비꽃 군락의 색깔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인 듯. 특히 영국영연방 국가들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를 추도하는 꽃으로 지정하여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일인 11월 11일을 양귀비의 날(poppy day)로 정하고 양귀비꽃 모양 배지를 옷에 다는 풍습이 있다. 이 풍습 때문에 아편과는 아주아주 안좋은 역사적 기억이 있는 중국과 영국 사이에 외교마찰이 발생하기도 했다. 참조.[1]

영국 스코틀랜드캐나다의 전설적인 IDM 듀오 보즈 오브 캐나다가 리믹스한 'Poppy Seed'라는 곡은 양귀비꽃의 이미지에 딱 맞는다.

3. SBS 소속의 개그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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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염색약의 이름

60~70년대에 많이 쓰이던 염색약이다. 옛날에는 새치 염색제로 자주 쓰였다. 가격은 2000원 정도로 저렴한데 엄청나게 독한 염색약이라 효과는 상당하다. 까맣다 못해 아예 시커멓게 염색이 된다.(...) 하지만 저렴한만큼 물빠짐이 상당해서 염색 후 일주일 넘게 검은 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머리카락도 가닥으로 뚝뚝 끊기는 등 상태가 매우 처참해진다. 하지만 염색 효과가 매우 좋고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중고생들이 방학 때 노랗게 염색했다가 개학 때 학년주임에게 얻어터지기 전에 급하게 머리색을 원상복구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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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하지만 중국쪽에서 뭣도 모르고 트집잡는게 맞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붉은색 개양귀비는 아편을 뽑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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