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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last modified: 2015-03-26 17:55:17 by Contributors

(ɔ) from

1918년(19세), 적십자의 일원으로 이탈리아 북부의 호사루타 전선에 엠뷸런스 기사로 있을 무렵의 사진. 입이 떡 벌어질 엄청난 꽃미모를 자랑한다.

(ɔ) Lloyd Arnold from

1939년, 소설을 집필 중.


노년기의 모습

< 195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
(ɔ)

Photograph: JonathunderMedal: Erik Lindberg (1873-1966)

from
1953 - 윈스턴 처칠 어니스트 헤밍웨이 1955 - 할도르 락스네스

Ernest Miller Hemingway. 1899년 7월 21일 ~ 1961년 7월 2일. 미국의 참전용사, 종군기자 그리고 대문호.

Contents

1. 개요와 일대기
2. 평가와 기타 등등
3. 어록
4. 다른 매체에서의 모습


1. 개요와 일대기

같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포크너와 함께 미국의 근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미국이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하는 작가이다.

의사아버지와 예술을 사랑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 어머니의 강요로 자주 여장(!)을 당하고, 여장한 상태에서 지인들을 만나는 일을 경험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나 어머니와는 평생 사이가 나빴다. 헤밍웨이의 생일날 어머니가 그에게 선물을 소포로 보냈는데 열어보니 그 안에는 권총(그것도 아버지가 자살할 때 썼던 것)이 들어있었다는 일화도 있다.
사실 헤밍웨이는 아버지 쪽을 완전히 닮았다고 볼 수 있었다. 사냥꾼/모험가 기질이었으나 쇠락한 아버지와 잔소리 많은 전직 음악가 어머니는 종종 싸웠고, 헤밍웨이는 위의 언급처럼 강인한 남자의 표본인 아버지를 따랐다.[1] 참고로 헤밍웨이와 어머니의 악연은 어머니가 죽는 날까지 이어진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헤밍웨이는 곧바로 달려갔지만, 노인과 바다를 쓸 무렵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난 마저 글을 써야 한다. 돈을 부치면 가족들이 알아서 할 거다."라는 식으로 간단하게 무시.

어린 시절, 여장을 강요당한 일 때문에 정신적으로 큰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낀 모양인지, 이후 죽어도 여성적인 모습을 안보이기 위해 맹수 사냥, 바다낚시, 복싱등 남성적인 스포츠에 몰두하였으며 호색한스런 생활을 하며 자신의 강렬한 남성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의 문학작품들도 상당히 남성적이고 직선적이다.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반발심리가 그의 문학을 탄생시킨 셈.

처음 사회생활을 기자로 시작해 종군기자로도 활약했고, 1차대전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으며 무훈을 세웠다. 이 때의 경험은 이후 그의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 등등에서 발현된다. 이후 신문사의 특파원 자격으로 1차대전 이후의 파리에 체류하며 스콧 피츠제럴드, 트루드 스타인,[2] 즈라 파운드 등등의 미국작가들과 교류하며 문학적 소양을 키워갔다.

당시의 이들같이 파리에 체류하며 파리의 풍요한 예술적 토양과 자유를 즐기며 산 문학가 집단들을 문학계에선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이라 칭하며, 이 표현을 최초로 쓴 사람은 앞서 얘기한 거트루드 스타인이다. 이들이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충격으로 자신들이 구세대에게 버려진 잃어버린 세대라고 느끼면서, 이전세대와 단절된 새로운 문학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파리의 프랑스인 지성인들은, 전후 풍요를 구가하는 미국에서 보내주는 넘치는 달러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파리와 프랑스 문화에 열렬히 환호하는 척 하지만 실제론 프랑스어도 배우지 않고 겉핧기로 껍데기 문화만 섭취하는 이들을 경멸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 고급쓰레기. 헤밍웨이는 물론 그들의 퇴폐적인 위선을 증오했으며, 자신도 자신의 마초적인 성향인지 이당시 '계집애 같이'(?) 예쁘장하고 퇴폐스운 문화에 탐닉한 자신의 젊은 시절을 흑역사 취급했다.

여담. "이동 축제일(Movable Feast)"[3]에서 '잃어버린 세대'의 유래가 나온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자신의 차를 고치러 정비소에 맡겼는데, 젊은 직원이 빨리 고치지 못하자 정비소 사장이 "너네들은 전부 '허탕치는 세대'야."라고 호통쳤다. 거트루드는 이를 나중에 헤밍웨이에게 그대로 전하면서 덧붙였다. "자네도 그래. 자네는 물론…전쟁을 겪은 모든 젊은이들이 그렇다구. 이 잃어버린 세대들아."[4]

이후 앞에서 언급한 '무기여 잘있거라'로 큰 명성을 얻은뒤, 당시 혁명 스페인의 공화제를 열렬히 지지하여 종군특파원으로 자진해 스페인으로 갔고, 혁명군과 함께 보수파 반군인 프랑코의 군대를 비판했다. 이 때의 경험으로 그는'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쓰게되고 '노인과 바다', '리만자로의 눈' 같은 걸작 단편소설을 연이어 내며, 결국 노인과 바다로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참고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가했다!! 이렇게 열정적인 마초의 호칭은 우리말로 "아부지"에 해당하는 '파파'였다. 본인도 그렇게 불러달라고 원했고.

그리고 노인이 되자 늙어 약해지는 자신[5]을 싫어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더욱 사냥 같은 취미에 몰두하다 급기야 정신착란까지 일으키게 된다. 결국 7월 2일 이른 아침, 그는 자신에게 헌신적이었던 아내가 자게 놔둔 채 엽총을 입에 물고 쏴 자살해 생을 마감한다. 죽을 때까지 그는 마초였던 것이다. 하지만, 늘그막에 작품이 지지부진한 점으로도 고민해 온 점도 자살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6]

2. 평가와 기타 등등

그는 평생 인생을 격렬하고 폭력적으로 진정한 마초로 살았다. 항상 불끓는 정열을 주체하지 못해 사냥, 복싱 등 위험하고 강렬한 스포츠를 즐기고, 싸움도 꽤 잘했다는 등 자신의 강인함을 세상에 자랑하고 다녔다. 자기를 세상에 과시하는 것도 매우 즐겼으며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유명 연예인같이 자신의 화려한 사생활을 노출(그래서 하루가 멀다하고 유명인사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단다)하는 것도 즐겼다. 자살한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이 늙어 세상의 관심이 멀어지는 걸 견디지 못했던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여자를 밝혔으며 사생활도 문란해 여러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 결혼 중에도 수많은 여자들과 놀아나며 지냈다. 일단 그의 아내들을 정리해 보면...
  • 엘리자베스 해들리 리처드슨
  • 폴린 파이퍼
  • 마사 겔혼[7]
  • 메리 웰시 헤밍웨이
위의 셋은 헤밍웨이의 주체할 수 없는 막장행보에 질렸거나 그와 마찬가지로 막장으로 놀다 떠나갔고, 마지막 아내인 메리가 헤밍웨이와 금슬이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사후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그의 거시기 길이는 기껏해야 1인치, 즉 2cm 남짓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래서였나!? [8]

위의 이야기는 사회적 페르소나를 다룰 때 자주 나오는 사례중 하나이다. 사실을 적자면 이렇다. 그의 사망 뒤에 친구가 저건 그의 성격이 아니며, 실제로는 겁쟁이에 울보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의 문체의 특성은 잡다한 수식이 없는 간결함과 단순함인데, 이것은 그가 신문기자 생활을 통해 간결하고 정확한 문체에 익숙해진데다가 당시 유행하던 하드보일드 대중소설들(대실 해밋이나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그 자신의 마초적인 성격과도 부합했다. 때문에 영문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 혹은 영문학도들이 가장 선호하는 작가중 한 명. 문장이 간결하고 평이한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영어실력이 대단하지 않아도 쉽게 읽힌다.[9] 물론 그렇다고 작품 자체가 단순한 것은 아니므로 주의할 것.[10] 한마디로 쉬운 단어로 어려운 책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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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런 헤밍웨이의 특징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6단어 소설인데, 친구들이 단어 6개로 자신들을 울릴 만한 소설을 써 보라고 장난삼아 내기를 걸자 즉석에서 지어 낸 것이다. 비록 6단어로 이루어진 문장 하나에 불과하지만, 이 안에는 그 자리에 있었던 친구들을 울려버릴 만한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11] 그런데 이 6단어 소설이 헤밍웨이가 썼는지는 이견이 있다. 헤밍웨이 스타일이지만 헤밍웨이가 글을 쓰기 이전부터 있어왔던 이야기라고. 영어 위키백과 참조. 신문 광고.

어느 날 호텔에 머물면서 어느 영국인이 '에릭 블레어'라고 소개하며 인사하길래 퉁명스레 답했더니 그 사람이 "아 그리고 조지 오웰이라고도 합니다."라고 해서 헤밍웨이가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위 스페인 내전에 반 프랑코파에 섰던 경력, 그리고 쿠바의 아바나에 살았던 것과 관련해서, 그가 소련의 스파이로 활동했었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렇다 할 확증은 없는 상황이며 거꾸로 미국의 정보원이었다는 설까지 제기되어 실은 이중 스파이아니었냐는 의혹도 있다.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퍼졌을 때 모스크바바티칸 시국에서도 그의 죽음에 유감을 표명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가 전해진다.

모델이자 영화배우였던 손녀 마고 헤밍웨이(1954-1996)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앞서 헤밍웨이의 말년은 글쓰기에 대한 집착과 정신착란 등에 시달리다가 자살했다고 적었는데, 일각에서는 이 때 헤밍웨이가 병원에서 전기 쇼크 요법을 받았다는 기록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사실 헤밍웨이는 누군가에 의해 폐인으로 전락한 게 아닌가?라는 음모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해석은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3. 어록

정말 재미있는 책을 쓰려면 수많은 강타를 맞아봐야 한다.[12]
- 1981년, 카를로스 베이커가 편집하고 헤밍웨이가 자비로 출판(…)한 "1917~1961년에 엄선된 편지들" 중 1924년 12월 6일에 썼던 "편지"에서. 위에서 봤겠지만 헤밍웨이는 다른 작가들이 탁자 앞에 앉아서 토론이니 뭐니 하며 시간을 까먹자 권투 글러브 끼고 체육관으로 갔다고 한다.

책에 있는 좋은 부분들이란 작가가 운좋게 주워듣거나 그의 일생 동안 실패한 것들뿐이다. 그래도 전자는 후자만큼 귀중하다.[13]
-위에서 언급한 같은 책 중 1929년 9월 4일에 스콧 피츠제럴드에게 썼던 편지에서.

그 가을, 전쟁은 그 곳에 항상 있었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 곳으로 가지 못한다.
- 1927년, "여자 없는 남자" 중 "또 다른 나라"에서.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전적이 있다.

The world breaks everyone and afterward many are strong at the broken places. But those that will not break it kills. It kills the very good and the very gentle and the very brave impartially. If you are none of these you can be sure it will kill you too but there will be no special hurry.
해석: 세상은 모두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서 사람들은 강해진다. 그러나 세상은 부러지지 않는 사람들을 죽인다. 아주 선하거나, 상냥하거나, 용감한 이들을 세상은 무자비하게 죽이고 만다. 만약 당신이 그렇지 않아도 죽이겠지만, 딱히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다. -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모든 미국의 현대문학은 마크 트웨인의 "클베리 핀"으로부터 나온다. 미국식 글쓰기도 그것으로부터 나왔다. 그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 후로도 없었다.
- 1935년,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들"에서.

여기서 이길 수 있다면 어디서나 이길 수 있다. 세상은 괜찮은 곳이자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며, 여길 떠나는 게 무척 싫다.
오늘은 수많은 날들 중 그저 하루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날들에 벌어지는 일은 네가 오늘 뭘 하냐에 달려 있다. 올해 내내 그랬다. 너무 많이 그랬다. 모든 전쟁도 그런 식이다.
-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사람은 패배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사람은 파괴될 수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 1952년, "노인과 바다"에서.

우리 모두는 그 누구도 '거장'이 될 수 없는 길드에 속한 실습생들이다.
- 1961년 7월 11일, "뉴욕 저널-아메리칸"에서.

난 파리의 지붕 위에 서서 내다보며 생각했다. "걱정하지 마라. 넌 예전에도 항상 썼었고, 지금에도 쓸 수 있다. 네가 해야 되는 것은 진실한 글을 쓰는 것 뿐이다. 네가 아는 가장 진실한 글을 써라."
- 1964년, "이동 축제일"[14]에서.

네 운은 스스로 만들렴, 지그. 무엇이 훌륭한 패배자를 만드는 지 아니? 연습이야.
- 1976년, 헤밍웨이의 아들인 레고리 헤밍웨이가 쓴 "파파의 개인적인 언행록"에서 그레고리가 어렸을 적에 들은 말.

그대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는 건 그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대가 그걸 위해 태어났음을 그들이 생각하게 하라.
- 1984년, 아놀드 새뮤얼슨이 쓴 "헤밍웨이와 함께"에서 헤밍웨이가 작가 생활 2년차일 때 그 동안 쓴 원고가 전부 담긴 가방을 잃어버린 일에 대해 언급할 때.

4. 다른 매체에서의 모습

타임라인 191 시리즈에서는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 부분에서 주인공급의 대접을 받는다. 영국령 캐나다 진공작전에 의무대로 참가했다가 부상을 입어서 고자가 된다 이후 고스트 라이터로 살면서 남자다움을 자랑하지만 신체상의 문제로 관계를 가지던 여자를[15] 죽이고 자살하게 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시리즈에서는 전설의 사냥꾼 헤멧 네싱워리무법항의 노인 헤밍 등으로 패러디되어 있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도 마초스러운 모습으로 등장. 코리 스톨이 분했으며 그의 대표 배역이 되었는데, 평소 모습과는 달리 머리털이고 수염이고 풍성하게 나온다...

루팡 3세 헤밍웨이 페이퍼의 수수께끼에서는 말년에 자살이 아닌 타살로 언급되고, 죽기 직전 그가 발견한 보물을 기록한 유작을 통해 루팡이 코르카카 섬으로 향하는 계기가 된다. 물론 그가 찾은 것은 대량의 우라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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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가정의 주도권은 어머니가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는 밖을 낚시, 사냥 등을 하며 배회하였다. 어머니는 여성이 참정권도 없던 시절에도 당당하고 진취적인 여성이었기 때문에 초라한 아버지와 대조되는 어머니 의 모습은 더욱 부각되었다
  • [2] 당시 무명이지만 능력있는 예술가들을 지원해 준 사람이다. 이 후원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파블로 피카소도 있었고, 이 인연 덕분에 피카소는 헤밍웨이와 지인이 된다. 참고로 남동생 리오 스타인은 시인 겸 평론가.
  • [3] 헤밍웨이가 첫 번째 부인인 해들리와 함께 파리 생활을 돌이키며 썼던 회상록을 4번째 부인인 메리 헤밍웨이(본명은 메리 웰시)가 헤밍웨이 사후 출판한 것이다.
  • [4] lost에는 '길을 잃은' 뜻만이 아니라 '타락한'이란 뜻도 있다는 걸 감안하면, 이 타락한/인생 헛 살은 세대들아!라는 일갈이 위에서 설명한 상황에 더 적절하다. 현대어로 치환하면 잉여 세대들아!가 된다!
  • [5] 1차대전 당시 저승가기 직전 부상을 당한 점에서부터 교통사고, 그리고 말년의 비행기 사고로 크게 다쳐서 그 후유증이 커졌다고 한다.
  • [6] 죽기 전 몇 달 동안 글을 쓰다가 계속 찢고 쓰던 걸 던지고... 술을 마시며 괴로워했고 6월 28일 자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했는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젠 써지지 않는다! 써지질 않아!"
  • [7] 2012년 HBO에서 이 두 사람을 소재로 한 TV영화를 만들었다. 제목은 헤밍웨이와 겔혼(Hemingway & Gellhorn). 라이브 오언이 헤밍웨이를, 니콜 키드먼이 겔혼을 연기했다. 드라마의 평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 [8] 일설에 따르면 헤밍웨이가 사냥을 즐기고 총기에 집착한 이유가 작은 성기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9] 포크너같은 복잡한 작품을 읽다가 헤밍웨이를 펴면 무슨 초등학교 영어교과서를 보는 듯한 느낌이 '아주 잠깐'든다. 실제로 포크너는 헤밍웨이의 책에서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고, 헤밍웨이는 어려운 단어를 써야만 감동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 [10] 헤밍웨이는 스스로 무기여 잘있거라의 첫부분을 적어도 50번은 고쳐 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읽기 쉬운 글은 가장 쓰기 어렵다"라는 새니얼 호손의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 순간이다. 나스 키노코 보고 있나?
  • [11]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족을 덧붙이자면, 본문 내용은 아기 신발 팝니다. 한 번도 신은 적 없습니다가 된다. 아기 신발을 한 번도 신지 못했다는 뜻은 아이가 유산 혹은 사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도 모자라 이걸 팔아야 할 만큼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12] punishment는 권투에서 "강펀치"를 뜻하기도 한다.
  • [13] 아닌 게 아니라 노인과 바다는 정말로 주워들은 걸 토대로 썼다고 한다. 항목 참고.
  • [14] 몇째 주 몇요일 하는 식으로 날짜가 정해지지 않은 축제일을 뜻한다. 좋은 예로 부활절이 있다.
  • [15] 이 여자는 1차대전 마지막 날 남부연합의 공격으로 침몰한 북부 군함의 승무원의 아내로 나중에 그 잠수함 함장에게 찾아가 총으로 쏴죽이게 된다. 헤밍웨이는 바로 그녀의 회고록의 고스트라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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