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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통폐합

last modified: 2015-04-06 19:05:32 by Contributors

Contents

1. 소개
2. 신문사
2.1. 중앙 일간지
2.2. 지방지
3. 방송사
4. 통신사
5. 전두환 정권 내의 이견
6. 여담
7. 관련 항목

1. 소개

제4공화국 말기인 1980년 12월 전두환(당시는 제11대 대통령) 정권에서 시행된 정책. 다른 말로는 언론대학살이라고 한다. 수많은 언론사가 통폐합되었고 언론인 933명이 해직되었다.

언론사 구조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신문사, 방송사, 통신사의 난립을 정리하고 공영방송 체제를 도입한다는 취지[1]라고 하였으나, 실상은 전두환 정권에 저항적인 언론인은 해직하고 언론을 체제에 순응하려는 의도였다.

전두환 정권이 도입하려고 했던 공영방송 체제는 훼이크고 실상은 국영방송는 약 10년 뒤인 1991년 SBS가 개국하면서 다시 공영방송-민영방송 체제가 되었다.

2. 신문사

2.1. 중앙 일간지

  • 신아일보[2]경향신문으로 흡수.

    1965년 5월 6일, 국내 신문 사상 처음으로 상업신문을 표방하고 창간한 신아일보가 지령 4,806호를 끝으로 11월 25일 폐간되어 경향신문에 통폐합당했다. 재미있는 것은 비록 듣보잡 수준이긴 하지만 2003년 5월부터 신아일보 제호와 지령을 그대로 이어가는 형태로 신문이 발행되고 있다는 것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 기사를 참조.

  • 울경제한국일보로 흡수.

    11월 25일 지령 6390호로 폐간. 이 경우는 창간 주체가 한국일보로 동일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후 8년이 지난 1988년 8월 1일 복간했고, 창간 40주년을 맞아 2000년에 한국일보에서 공식적으로 분리, 독립하는 데 성공한다.

  • 일간내외경제→리아 헤럴드로 흡수.

    11월 24일 지령 2130호로 폐간. 희한하게도 경제신문이 영자신문으로 통폐합된 사례다. 1989년 '내외경제'로 복간했고, 2003년에 이름을 현재 사용되는 제호인 '럴드 경제'로 변경했다. 현재 럴드미디어 산하이며, 연기자 남궁원의 아들이자 하버드 출신의 정욱 전 국회의원이 헤럴드미디어의 회장으로 있다.

2.2. 지방지

  • 부산 : 국제신문→11월 25일 부산일보로 흡수, 폐간 당시 지령 10992호. 이후 1989년 2월 1일 국제신문 복간.

  • 경상남도 : 남일보[3]→11월 25일 경남매일신문으로 흡수, 폐간 당시 지령 9342호. 마산에서 발행하던 경남매일이 진주가 본거지였던 경남일보를 흡수했다. 이후 폐간된 지 정확히 9년 만인 1989년 11월 25일에 경남일보 복간.

  • 대구 : 영남일보→11월 25일 매일신문으로 흡수, 폐간 당시 지령 11499호. 1989년 4월 19일 영남일보 복간.

  • 전라남도 : 전남일보(지령 9643호)+전남매일신문(5806호)→11월 30일 광주일보로 통폐합, 전남일보의 지령을 계승한다.

1도 1신문사의 원칙에 따라 통폐합이 이루어졌다. 이 때 규모가 작은 신문사가 규모가 큰 신문사를 흡수하는 일도 벌어졌다.#.

3. 방송사

명목상으로는 방송 공영화라고 했지만 사실상 방송 국유화라고 보는게 맞다. 여하튼 신문사 소유 방송국도 날아갔다.

TBCDBS가 각각 KBS 2TV, 제3방송, KBS 2FM(이하 동양방송), 제4방송(라디오 서울)로 개편됨으로써 KBS에 흡수되었다. 1980년 4월 1일 건설된 TBC의 여의도 사옥은 TBC가 몇 달 써 보지도 못 하였고 현재는 KBS 별관이다. TBC의 고별 방송에서 은하가 눈물을 흘리자 정권은 그를 3개월 동안 방송 출연을 정지시켰다. 이후 KBS 제3방송은 1981년 KBS 제2라디오에 흡수, 폐지되었고 이후 2000년에 KBS 제3라디오로 부활한다. 한편 라디오 서울은 SBS가 개국한 후 1991년 AM 792KHz 주파수가 넘어가 SBS 라디오로 배정받았고, 표준FM 개국 후 러브 FM이 되었다. 지역의 경우 TBC 가맹국이었던 광주 전일방송과 군산 서해방송, 대구 한국FM방송이 각각 KBS 광주 제2라디오[4], KBS 군산 제2라디오[5], KBS 대구 FM방송의 형태로 KBS에 흡수되었다.

허나 국유화된 주제에 KBS의 일부 라디오 채널은 전국화되지 못했다. KBS 2FM은 한 술 더 떠서 국가기반 공영방송의 채널인 주제에 수도권에서만 방송한다.[6]

MBC의 경우도 별도의 법인[7]이였던 지방 MBC국의 주식 절반 이상이 문화방송으로 강제 양도, 지방 MBC국은 가맹국에서 계열국(즉 MBC 본사의 자회사)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원래는 명백한 민영방송이지만 MBC 본사 주식의 65%가 KBS로 양도, 사실상 KBS의 자회사가 됨과 동시에 공영방송으로 강제 전환당했다. 또한 박정희 시절 경향신문과 통폐합되었으나 언론통폐합을 기점으로 경향신문과 분리되었다. 전두환의 집권이 끝난 후 공기업인 방송문화진흥회(약칭은 방문진)를 개설하고, 방문진에서 KBS가 보유하고 있는 MBC의 주식을 모두 인수하면서 MBC는 반 공영방송 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이는 2015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때의 방송 시설들을 돌려받지 못했고, 비록 공중파로 부활하지 못했지만, TBC 자체는 31년 만인 2011년 12월 종합편성채널로 부활에 성공한다. 하지만 TBC는 1995년 5월 14일에 개국한 대구광역시 지역의 민영방송인 대구방송이 점유한 지라 이름을 JTBC로 정했다. 개국일에 개국축하 방송과 자신들의 존재를 어필하는 방송을 전면에 내세운 다른 종합편성채널들과 달리, JTBC는 31년이란 세월의 원한이 개국과 동시에 터져나와, 개국일부터 언론통폐합 관련자들을 전방위로 까는 다큐멘터리를 집중 편성했다. 특히 언론통폐합의 원흉인 연희동에 사시는 그분에 대해선 정말 사정없이 계속 깐다. 그분을 까는건 개국방송에 한하지 않고, 기회가 될때마다 계속 깐다. 이렇게 계속 까이는걸 보니 연희동에 사시는 그분은 앞으로 31년 간 더 사실듯 하다.

CBS박정희 정권 때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을 많이 하였다가 언론통폐합 때 보도기능을 잃고 극동방송같이 복음 방송만을 하였다. 동시에 상업 광고도 폐지되었다. 그러다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오랜만에 보도기능과 상업광고가 부활되었다.

보면 알겠지만 언론통폐합 조치로 덕을 본 방송사는 KBS뿐이다. TBC와 DBS는 최대의 피해자가 되었고, MBCKBS로부터 모든 주식을 흡수당함과 동시에 공영방송으로 강제로 전환되었고, 나중에 이를 처리하기 위해 이도저도 아닌 체제인 반 공영방송 체제로 바뀌여서 간접적으로 피해를 봤으며, CBS는 밟히지 않았지만 순수 복음방송으로 전환되면서 정부로부터 입막음을 당했다.

4. 통신사

동양통신, 합동통신 등 5개의 통신사가 있었는데 모두 연합통신(연합뉴스의 전신)으로 통합되었다. 이러한 단일 통신사 체제는 2000년대 시스가 정식으로 통신 업무를 하기 전까지 2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5. 전두환 정권 내의 이견

의외의 사실은 원래 전두환 본인을 비롯하여 노태우 보안사령관, 정호용 특전사령관 등 신군부 주요 인사들이 언론의 저항을 우려하여 '사이비 기자들만 정리하자'는 수준에서 언론을 정비하자는 입장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허문도 공보비서관은 허삼수[8] 사정수석비서관과 허화평 대통령비서실 보좌관에게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계엄이 해제되면 언론에서 12.12 사태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거론할 것이니 정권의 안정성에 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언론인을 정리해야 한다"라고 끈질기게 설득하여 결국 언론통폐합을 관철시켰다.문도!! 정리하고 싶은대로 정리한다!!

6. 여담

언론통폐합으로 해직된 언론인들은 소맥을 만들어서는 그것을 '통폐합주'라고 이름짓고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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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프랑스에서 여러 국영-민영라디오 방송사와 TV방송사를 RDF(이후 RTF로 개칭)라는 독점 공영방송사로 통합한바는 있다.
  • [2] 당시 신아일보 장기봉 사장은 국군보안사령부 지하실에서 수사관에게 "내가 전두환 대통령과 대구공고 동문인데도 이러냐"라고 저항했지만 소용없었고 포기 각서를 썼다.
  • [3] 이 신문이 현존 지방지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다. 1909년 10월에 간행 시작.
  • [4] 현재 해당 주파수는 제3라디오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 [5] 이후 군산방송국이 전주방송총국에 흡수되었고, 현재 이 주파수는 제3라디오용으로 쓰이고 있다.
  • [6] 1991년 SBS로 넘어간 라디오서울도 수도권에서 방송되었다.
  • [7] 당시에는 지방 MBC는 지금의 지역민방처럼 별개의 법인이었다.
  • [8] 허문도와 부산고등학교 동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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