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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last modified: 2015-03-14 22:11:50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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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2001년아시아 최초이자 세계 8번째로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를 완등하였다. 그리고 다른 8,000m급 위성봉인 얄룽캉과 로체샤르를 등정하여 세계 최초로 16좌 등정에 성공한 대한민국 산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 다만 엄홍길의 시샤팡마 등정은 1993년에 이루어졌으나 등정 실패 의혹으로 인정 받지 못한 탓에 논란을 불러왔으나, 말라얀 데이터베이스의 국제 공인 기록인 2001년의 재등정을 인정받으면서 마무리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산악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로서, 16좌 등정 이후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16좌의 마지막 고비였던 로체샤르 등정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산악인으로서의 삶과 도전 정신 등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평소에 무릎팍도사를 보지 않던 사람들도 '엄홍길이 나오니까 한 번 볼까.'해서 본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간 수많은 강연과 방송 출연을 해 왔지만 무릎팍 도사라는 예능 프로에 나오게 된 이유는, 산에 관련된 에피소드나 인생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예능 프로그램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릎팍 도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로체샤르가 지금까지 오른 산 중에 제일 힘들었다고 말하며, 다른 산은 보면 볼수록 익숙해지고 정이 가는데, 로체샤르만큼은 정나미가 떨어진다고(...) 로체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엄홍길 대장이 오른 루트가 수직 빙벽이 3,500m로 꽂혀있는 로체샤르이다.

대한민국 해군 출신, 그것도 UDT 출신이라는 이색적인 경력으로도 화제가 된 산악인. 산에 오르던 그는 넓은 바다를 경험해 보고 싶어서 해군에 입대했으며, 배를 타기만 하는게 지루하게 느껴져 특수부대인 UDT에 지원하게 되었다. UDT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경험한 군생활이 훗날 히말라야를 오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군생활 시절 포항 감포에서 독도까지 5박 6일동안 수영해서 가기도 했다고 한다(...)

산악인으로서 그의 마인드는, 산을 오를 때에 산이 잠시 정상을 빌려주는 것일 뿐 산을 정복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산이 허락해 주지 않으면 자기가 아무리 경험이 많은 산악인이라도 정상에 오르는 건 불가능하다고. 흔히들 신의 영역이라 부르는 8,000m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자연의 섭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자신을 낮추고 겸허한 자세로 산을 오르게 된다고 한다.

더불어 산에 오르다보니 언제라도 죽을 각오를 해서 2013년 3월 4일 TV에 나와 미리 쓴 유서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닌게 아니라 후배이던 故 박영석(1963~2011), 박무택[1], 장민[2]같은 등산가들이나 친하게 지내던 셰르파들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걸 하도 많이 봤으며, 자신도 죽을 고비를 많이 겪다 보니 이런 유서 작성은 당연했을 것이다.

아이스 에이지 2에서 딱정벌레 아빠 역으로 더빙을 맡기도 했다. 참고로 여기에 故 조오련, 하일성 같은 다른 스포츠 분야 전문가들도 같이 더빙을 맡았다.

16좌를 제패한 이후에는 8,000m 고산에는 오르지 않고 있으며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엄홍길 재단의 일에 집중하고 있다. 안나푸르나 등정 당시 모든것을 베풀며 살 것을 다짐했다고 하며, 네팔에 학교를 지으면서 이 맹세를 지키고 있다.

여담인데 그의 책을 보면 요즘 기후변화(지구 온난화)가 에베레스트나 히말라야에서도 뼈저리게 알 수 있을 정도라는 걱정이 나온다. 1980년대만 해도 히말라야의 산들은 날씨가 나빠도 사흘 정도만 마을에서 쉬면 날씨가 좋아졌지만, 2000년대에 와선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산 곳곳에 눈이 많이 녹은 게 갈수록 늘고 있다면서, 산마을에서도 차와 첨단장비로 편하게 지내고, 갈수록 자연이 오염되고 있는데 머지않아 히말라야 산들에 눈이 남아있긴 할까 걱정이 된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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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04년 에베레스트 정상등정 직후 하산길에서 사망. 위의 로체사르 에피소드에서 엄홍길과 함께했던 후배이다. 엄홍길이 2005년 휴먼원정대를 조직하여 시신을 찾아 내려오려 했으나,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인해 시신을 밑으로 운구하지는 못하고 양지바른 곳에 직접 돌무덤을 만들어줬다.
  • [2] 선배 박무택과 같이 하산도중 설맹으로 앞을 볼 수 없게 된 박무택이 먼저 내려보냈으나, 실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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