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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

일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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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막부
徳川幕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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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1] 가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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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기간 1603년 ~ 1868년
영문 국가명 Edo Shogunate
일본어 국가명 江戶幕府
위치 홋카이도를 제외한 일본열도
수도 교토(실질적으로는 에도)
정치체제 봉건적 군부 독재체제
국가원수 정이대장군[3]
언어 일본어
민족 일본인
종교 신토,선불교
주요사건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1603년 막부성립
1853년 쿠로후네 사건
1867년 대정봉환
1868년 보신전쟁/멸망
통화
성립 이전 전국시대/도요토미 가문 독재체제
멸망 이후 일본 제국


Contents

1. 개요
2. 역대 에도 막부 쇼군(將軍) & 도쿠가와 씨 종가 역대 당주
3. 에도 시대의 풍속
4. 에도 시대의 제도
5. 에도 시대를 다룬 작품


1. 개요

1603년 3월 24일 도쿠가와 이에야스에도[4]를 본거지로 창설한 에도 막부(江戶幕府, 강호막부)가 집권하던 시대.

1867년 11월 9일의 정봉환 때까지 약 265년 간 일본을 통치하였다. 앞서 존재했던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와는 달리 오랜 세월 동안 안정기를 유지하는 데 비교적 성공했으며, 일본 역사 전체 기준으로 볼 때 비교적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구축하는 데도 그런 대로 성공하였다.[5]

이 시기는 전국시대의 자유로운 교역보다는 쇠퇴했지만, 도자기키요에 등을 수출하고 , 을 대대적으로 발굴하면서 국부를 쌓은 시기이기도 하다. 덕분에 금, 은 화폐 사용이 일반화되었으며, 한편으로 전국시대 난립했던 관소[6]들이 철폐되고 해상 교통이 대통합되는 등 상업 발달이 두드러진 시기. 다만 후기에는 근처 은 먹는 하마 중국이 일본 금, 은, 동을 죄다 흡수해버려서 고생하기는 했다.

하여튼 덕분에 17세기 후반 ~ 18세기 초반에는 상당한 국부를 축적하고 국력도 신장되어 소위 '겐로쿠 시대'를 맞았으나, 18세기 중후반 이후 개혁의 실패, 자연재해의 빈발 등이 거듭되면서 문제점이 차곡차곡 쌓이고, 막번(幕藩) 체제의 경직성에 불만을 품은 지방의 강력한 번들이 개혁을 주장하고 지방민의 반란이 거듭되면서 붕괴에 직면하였다.

결국 1853/54년 쿠로후네 사건(흑선내항)으로 미국의 압력으로 개항한 뒤 격동의 동란기에 빠져 사쿠라다문밖의 변(櫻田門外の變)이 일어나는 등 사실상 통치능력을 상실하였다. 결국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내세운 토막(討幕)파(사쓰마나 조슈 같은) 번들과의 투쟁에서 패배하고 1867년 정봉환으로 천황에게 권력을 이양하면서 소멸, 이듬해 무진전쟁(보신(戊辰)전쟁)에서 패배함으로서 완전히 사라졌다.

에도 막부가 소멸한 1868년은 일반적으로 메이지 유신(明治) 시대의 시작이라 하여 일본 근대화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일본 근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연도.

에도 막부가 존속한 기간은 대체로 외국과 교류하지 않은 쇄국주의를 고집하던 시대와 일치하지만 유럽에서는 네덜란드, 아시아에서는 조선과 국교를 맺었고, 국교는 없었지만 류큐, 등과 교역하였다. 특히 조선에서는 총 12회에 걸쳐 조선 통신사를 파견해 조-일 간의 우호통상관계와 쇼군의 권위 과시, 선진 문화의 수용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그래서인지 조일관계는 에도시대가 끝난 이후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에도 막부는 또 산킨고타이(參勤交代, 참근교대) 등 독특한 다이묘(大名) 통제 정책으로 성공적으로 지방 통치를 수행하였고, 엄격한 사농공상의 신분제를 유지하여 조선에서 유입한 유교적 질서 체제를 사상 처음으로 구현한 무사 정권이기도 했다. 또한 일본 전체의 1/4과 주요 도시, 화폐 발행 등을 막부가 통제했고, 5~6만명의 군사를 거느리면서 중앙정부의 권력이 매우 강화되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산킨코타이에 의해 촉발 되어 전국 단위로 발달한 상업 또한 뒷날 자본주의가 번성하는 발판이 되었다. 또한 이 시기부터 전국시대까지 변방이였던 관동지방과 동북지방의 개발이 본격화 되었다.

이전 막부와는 달리 오오쿠라는 쇼군만을 위한 여성들을 모은 공간을 만들어 운영했다.

2. 역대 에도 막부 쇼군(將軍) & 도쿠가와 씨 종가 역대 당주

순번 이름 재임기간 비고
1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603 ~ 1616[7]
2대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 1616 ~ 1632[8]
3대 도쿠가와 이에미츠(德川家光) 1632 ~ 1651
4대 도쿠가와 이에츠나(德川家綱) 1651 ~ 1680
5대 도쿠가와 츠나요시(徳川綱吉) 1680 ~ 1709 개 쇼군(…)
6대 도쿠가와 이에노부(徳川家宣) 1709 ~ 1712
7대 도쿠가와 이에쓰구(徳川家継) 1713[9] ~ 1716
8대 도쿠가와 요시무네(徳川吉宗)[10] 1716 ~ 1745 쌀 쇼군
9대 도쿠가와 이에시게(徳川家重) 1745 ~ 1760
10대 도쿠가와 이에하루(徳川家治) 1760 ~ 1786
11대 도쿠가와 이에나리(徳川家斉) 1786 ~ 1837 역대 최장 재임[11]
12대 도쿠가와 이에요시(徳川家慶) 1837 ~ 1853
13대 도쿠가와 이에사다(徳川家定) 1853 ~ 1858
14대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 1858 ~ 1866
15대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 1866 ~ 1867

3. 에도 시대의 풍속

5. 에도 시대를 다룬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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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막부 말기에 제정된 국기라 그닥 많이 쓰이진 않았다.
  • [2] 기존에는 '세 잎 접시꽃'으로 알려저 있었으나 접시꽃이 아니라 족도리풀이라는 설도 있다.#
  • [3] 천황이 있긴 했으나 사실상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 [4] 지금의 도쿄
  • [5] 단, 권력 구조에 있어서는 중기 이후로는 쇼군들의 능력치가 떨어지다 보니 그 휘하의 로쥬(老衆)에게 실권이 쏠리고 쇼군은 다소 상징적인 존재로 물러나게 된다.
  • [6] 교통의 요지등에 관을 설치하고 이를 지나가는 상인들에게 세금을 거두었다. 전국시대까지만 해도 주요 관을 차지하여 거두는 돈이 꽤나 짭짤했다. 예로 산인의 아마고씨는 이즈모에 위치한 미호노세키(美保ノ関)를 얻은 후에 재정상태가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그러나 자유로운 상행위를 저해하는 요소로서의 단점도 적지 않았다.
  • [7] 1605년 히데타다에게 쇼군직을 물려주고 자신은 1616년 죽을 때까지 '오고쇼(大御所)'로써 실권을 휘두르며 섭정을 하였다.
  • [8] 1623년 이에미츠에게 물려주고 1632년 죽을 때까지 오고쇼직에 있었다.
  • [9] 이에노부 사후 쇼군직을 승계받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 [10] 이 때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직계 후손이 대가 끊겨 방계인 요시무네가 쇼군에 오른다.
  • [11] 에도 막부 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모든 쇼군 중 가장 오래 재임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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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10-20 17: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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