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에드먼턴 오일러스

No older revisions available

No older revisions available



NHL 서부 컨퍼런스
퍼시픽 디비전
© from
로스앤젤레스 킹스
(Los Angeles Kings)
© from
밴쿠버 커넉스
(Vancouver Canucks)
© from
산호세 샤크스
(San Jose Sharks)
© from
에드먼턴 오일러스
(Edmonton Oilers)
© from
애너하임 덕스
(Anaheim Ducks)
© from
캘거리 플레임스
(Calgary Flames)
© from
애리조나 카이오츠
(Arizona Coyotes)
­ ­

엠블럼
© from
­
에드먼턴 오일러스
Edmonton Oilers
­
창단 1972년 앨버타 오일러스[1]
연고지 캐나다 앨버타에드먼턴
홈구장 렉솔 플레이스
스탠리 컵
(통합우승)
5회
1983–84, 1984–85, 1986–87, 1987–88, 1989–90
컨퍼런스 우승 7회
1982–83, 1983–84, 1984–85, 1986–87, 1987–88, 1989–90,
2005–06
프레지던트 컵 2회
1985–86, 1986–87
디비전 우승[2] 9회
1978–79, 1982–83, 1983–84, 1984–85, 1986–87, 1987–88,
1989–90, 1990–91, 1991–92

Contents

1. 소개
2. 역사
2.1. 웨인 그레츠키 왕조
2.2. 왕조의 몰락
3. 기타


1. 소개

NHL 서부지구 퍼시픽 디비전의 팀. NHL의 과거의 명가(...)이자, NHL판 해태-KIA 타이거즈. 두 팀 모두 80년대에 리그 우승을 하면서 리그를 지배하는 강팀으로 호령했다 빈약한 구단의 자본 때문에 발목이 잡혀 2000년대 들어서 몰락했다는 점에서 많이 닮았다. 그래도 해태의 전성기는 9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고, 기아자동차가 해태를 인수한 덕분에 구단의 재정이 나아졌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2. 역사

NHL이 리그 확장을 도모해 6개팀을 창단할 동안 1972년 등장한 NHL의 경쟁단체 WHA는 캐나다 시장 확장을 위해 그간 비어있었던 캐나다 중부지방인 앨버타주의 대도시 에드먼턴과 캘거리에 각각 WHA팀을 창단했다. 팀 이름 오일러스는 에드먼턴에서 발견된 석유덕에 정제소 등이 생기면서 지어진 이름. 처음에는 앨버타 오일러스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가 니가 하면 나도 한다정신의 캘거리 브롱코스덕에 에드먼턴 오일러스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2.1. 웨인 그레츠키 왕조

그렇게 WHA에서 성장해오던 오일러스는 1978시즌에 글랜 새더를 헤드코치로 앉히고 1979년, 당시 20세 이하 선수의 NHL드래프트 참가를 막아왔던 이유로 18세때 WHA 인디애나폴리스 레이서즈에 들어와, 레이서즈의 심각한 경영난을 이유로 팀에서 뛰길 거부했던 183cm 86kg의 좀 작은 체구를 가진 온타리오 브랜트포드 출신의 어린 유망주 레프트윙 한명을 데려온다.


그 선수의 이름은 바로 웨인 그레츠키였다.

웨인 그레츠키는 사실 주니어하키 시절부터 특급 유망주로, 레이서즈는 그의 가치를 인정해 팀이 재정적으로 나빴음에도 7년 175만달러라는 당시 파격적인 대우로 레이서즈에 입단했으며 레이서즈에데 데뷔해 8경기를 뛴 상태였다. 하지만 레이서즈는 심각한 재정적자를 안고 있었고 그레츠키를 결국 지키지 못하고 오일러스에 내주었으며 결국 팀은 망했다. 그렇게 데뷔 8경기 만에 오일러스로 오게된 18살 소년 그레츠키는 데뷔하자마자 80경기 풀로 뛰면서 46골 64어시스트라는 압도적인 기록으로 WHA를 정ㅋ벅ㅋ했다.

WHA가 NHL과 합병하여 NHL에 합류한 오일러스의 그레츠키는 소포모어 징크스나 NHL의 집중견제 그런 것도 없었다. NHL데뷔시즌 보란듯히 137포인트로 하트 트로피를 수상했으며 이는 8년 연속 포인트 1위 기록의 시작이었다. 체구는 작지만 당시 획기적이었던 골대 뒷공간에서 골텐더와 수비수들의 사각을 노리는 골냄새 맡는 재주가 탁월했고, 스케이팅도 스피드와 부드러움을 겸비한 그야말로 골넣는 귀신 그레츠키는 단번에 NHL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가 되었다.


좌측부터 웨인 그레츠키,마크 메시어,야리 쿠리,글렌 앤더슨 기적의 세대 캐나다 아이스하키 버전

수비수 폴 커피(좌측)와 골텐더 그랜트 퓨어(우측)

거기다 글렌 새더는 그레츠키 하나만 찾아내지 않았다. NHL 입성한 첫해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로 지명한 고향 에드먼턴 출신 '메시아' 마크 메시어(Mark Messier), 4라운드에서는 팀 역대 3위 골기록을 가진 공격수 글렌 앤더슨, 1980년 1라운드 전체 6번으로 지명한 공격형 수비수 폴 커피(Paul Coffey), 4라운드에서 찾아낸 핀란드의 라이트윙 야리 쿠리(Jari Kurri)라는 한팀에 한두명 갖기도 어려운 특급 골잡이, 그것도 20대 초반의 동갑내기(폴 커피만 1살 아래)라는 독수리 5형제,FC 바르셀로나급의 말도 안되는 사기유닛들 집합소를 만들었다. 거기에 팀의 뒷문을 지킨 1981년 1라운드 전체 8번으로 지명한 골텐더 그랜트 퓨어까지. 당연히 이들 전부 에드먼턴에서 영구결번되어있다.[3] 여기에 이들을 보조하는 수비지휘에 능했던 센터 크레이그 맥타비쉬와 팀내 최다출장기록을 가진 수비수 케빈 로우등이 뒤를 받치는 그야말로 포텐셜 덩어리의 슈퍼신인 라인업을 만들었다.


이들의 성장도 드라마틱했다. 마치 마이클 조던시카고 불스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배드보이즈와의 혈투끝에 결국 우승하듯, 서부지구의 팀들을 그레츠키 군단이 레벨업하면서 79년 1라운드, 80년 2라운드로 하나하나 물리쳐가던 오일러스 퀘스트의 정점인 스탠리컵 파이널에서 버티고 있던 팀은 브라이언 트로티에와 마이크 보시가 버티고 있던 절정의 뉴욕 아일런더스가 있었다. 처음 맞붙은 1982~83 시즌에서 그들의 스탠리컵 4년연속 우승을 막지 못하고 패배한 오일러스는 다시한번 파워업해 다음해인 1983~84시즌에 통쾌하게 4대 1로 아일랜더스를 무찌르고 첫 스탠리컵 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들은 84,86,87시즌 세번의 우승을 더 추가하여 80년대 새로운 왕조로 등극한다.

하지만, 오일러스는 FC 바르셀로나같은 팀이 아니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라지만, 이쪽은 달이 너무 밝았던게 문제다. 한명한명이 명예의 전당급[4]이었던 슈퍼스타들을 감당하기에 오일러스의 재정은 빠듯했고, 결국 1987시즌을 마치고 넘쳐나는 선수들의 연봉인상 요구를 다 받아들일 수 없었던 오일러스는 선수들을 하나 둘 팔기 시작한다. 첫 대상은 폴 커피로 1987시즌 중 피츠버그 펭귄스로 트레이드 된다. 커피의 공백은 1985년 지명한 핀란드 공격수 에사 티카넨과 커피 트레이드의 대가로 영입한 공격수 크레이그 심슨의 맹활약으로 메꿔서 스탠리컵 우승을 일궈냈다. 하지만 이정도로 감당이 되던 재능들이 아니었고 결국 오일러스는 결단을 내린다.


바로 천재중의 천재이자 팀의 코어였던 웨인 그레츠키를 전격 트레이드한 것.

마치 1979년 인디애나폴리스 레이서즈가 그랬던 것처럼, 1988년 8월 9일 웨인 그레츠키는 신생팀이었던 로스앤젤레스 킹스에 마티 맥솔리,마이크 크루쉘니스키와 함께 팔려갔다. 대가는 지미 카슨,마티 젤리나스, 그리고 3장의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과 당시로썬 거액인 1500만 달러의 현금. 사실상 돈으로 팔려간 그레츠키의 공백을 나머지 메시어,앤더슨,쿠리가 열심히 메꾸고 후기 멤버들의 분전으로 1989~90시즌 웨인 그레츠키 없이 스탠리컵 파이널 승리를 차지한다.

2.2. 왕조의 몰락

하지만 그레츠키와 커피가 빠졌어도 메시어,쿠리,앤더슨을 지켜낼 수는 없었다. 쿠리는 그레츠키를 판 충격과 자신의 연봉인상에 불만족한 나머지 오일러스와 계약이 끝나자 이탈리아팀으로 가버렸고, 쿠리를 지킬수 없다는 결론이 나자 그의 소유권을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에 팔아넘긴다. 이후 쿠리는 재트레이드를 통해 웨인 그레츠키의 소속팀 킹스로 갔다. 마지막까지 고향 에드먼턴을 지켰던 마크 메시어,글렌 앤더슨도 결국 연봉문제와 팀의 재정문제를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91년 시즌 약물검사에 걸려서 60경기 출전금지의 중징계를 받은 골텐더 그랜트 퓨어는 글렌 앤더슨과 함께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로 트레이드 되며 고향을 홀로 외로이 지킨 메시어 역시 뉴욕 레인저스로 트레이드 된다, 그후 메시어와 앤더슨, 그리고 에사 티카넨은 뉴욕 레인저스에서 재결합해 1993~94 스탠리컵 우승을 다시 한 번 맛본다.

이들을 모두 떠나보낸 오일러스는 당연히 추락할 수 밖에 없었고, 4년동안 5655를 찍으며 밑바닥 생활을 해야 했다. 그렇게 밑바닥을 전전한 오일러스는 에사 티카넨을 레인저스로 보내고 얻은 플레이메이커 덕 웨이트와 1993,1994년 1라운더로 지명한 제이슨 아놋,라이언 스마이스(Ryan Smyth),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골텐더 CuJo 커티스 조셉등 젊은 유망주들을 중심으로 팀을 재건해 플레이오프에 돌어왔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전력으로 오일러스는 1,2라운드 정도에 머물수 밖에 없는 팀이었고, 여전히 팀은 가난하여 웨이트, 아놋, 조셉은 오일러스에 얼마 남지 못하고 다른 팀으로 팔려갈 수 밖에 없었다.

그들 오일러스에게 마지막 기회는 파업 직후 시즌인 2005~06시즌이었다. 파업 직후의 혼란한 시즌을 통해 알레스 헴스키, 자렛 스톨, 라피 토레스 등의 젊은 선수들이 성장한 오일러스는 캡틴 숀 호커프와 에이스 라이언 스마이스에, 우승을 위해 과감하게 영입한 MVP출신 수비수 크리스 프롱거와 버펄로 세이버스의 베테랑 센터 마이클 페카와 시즌 막판 긴급 수혈한 보스턴 브루인스의 공격수 세르게이 삼소노프 등을 앞세워 마지막 우승 기회를 노리고 달렸지만, 스탠리컵 파이널에서 다름아닌 과거 그들의 캡틴 덕 웨이트가 이끄는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에 완패하며 스탠리컵 우승에 실패했다. 결정타는 뭐니뭐니해도 플레이오프 당시 미친 방어를 보여줬던 골리 드웨인 롤로슨이 결승 1차전에서 시리즈 아웃 부상을 당했던 것. 16강전부터 준결승까지 한 번도 안 뛴 백업 골리는 그야말로 얼음 위에서 당황했다.

그리고 마지막 불꽃을 살랐던 2005~06 시즌 이후, 프롱거, 페카, 삼소노프, 자렛 스톨, 라피 토레스 등이 팀을 떠나며 5445553의 비밀번호를 찍고 있다.

2014-2015 시즌에도 밑바닥 생활중. 그나마 전체 꼴지는 아닌데, 버펄로 세이버스 덕분에... 그러나 퍼시픽 디비전에서 자기보다 바로 윗순위이던 애리조나 카이오츠마저도 제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3월 초에 버펄로와 같이 플레이오프 광탈이 확정나고 말았다.

3. 기타

  • 캘거리와는 어느 종목이든 앙숙. 앨버타 대전(Battle of Alberta)이라는 더비명까지 있다. 즉, 한국인이 여기 갈일이 얼마나 있겠냐만 여기서 플레임스[5]를 찬양하거나 하면 크게 다칠 수 있다(...).


----
  • [1] 1979년 NHL 가입
  • [2] 1978~1979 시즌 디비전 우승은 WHA 시절 이룬 것이다.
  • [3] 이중 맨 왼쪽에 있는 3번은 알 해밀턴이라는 수비수로, WHA시절에 주로 활동한 경력을 인정받아 영구결번.
  • [4] 실제로 그 5명+그랜트 퓨어까지 전부 명예의 전당 멤버!
  • [5] 뿐만 아니라 캐나다 청소년 하키 리그(CHL)의 히트맨, CFL의 스탬퍼더스도 마찬가지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3-10 16:29:40
Processing time 1.1613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