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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난 크레스포

last modified: 2015-02-20 22:16:37 by Contributors

한참 풋풋(?)했던 파르마시절월클급 스트라이커였던 라치오시절첼시 입단시절 여기로 가는게 아니었어임대생활하던 밀란시절큰외숙모
아르헨티나 국대시절머리를 자른 후의 인테르시절요즘은 많이 늙었다파르마 코치인 크레스포
워낙 옮겨다닌 팀이 많아서 이미지도 한가득이다.

이름 에르난 호르헤 크레스포 (Hernán Jorge Crespo)
생년월일 1975년 7월 5일
국적 아르헨티나
출신지 플로리다
184cm
포지션 스트라이커
선수 커리어 리버 플레이트(1993-1996)
AC 파르마(1996-2000)
SS 라치오(2000-2002)
인테르나치오날레(2002-2003)
첼시 FC(2003-2008)
AC 밀란(임대)(2004-2005)
인테르나치오날레(임대)(2006-2008)
인테르나치오날레(2008-2009)
제노아 CFC(2009-2010)
파르마 FC(2010-2012)
국가대표 커리어 64경기 35골 (2012년 1월 기준)
스태프 커리어 파르마 FC (2014~ / 유소년팀 감독)

커리어에서 느껴지는 저니맨의 향기

아르헨티나의 전직 축구선수 및 감독.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Contents

1. 커리어
1.1. 국가대표
2. 플레이스타일
3. 스태프
4. 뱀발
5. 시종일관 콩라인

1. 커리어

93-94 시즌 리버 플레이트에서 데뷔해 25경기 13골을 넣으며 프로선수생활을 시작했고 파르마에서 뛴 마지막시즌에 22골을 넣으며 2000년 당시 사상최고의 이적료인 4850만 파운드에 라치오로 이적, 라치오에서 26골로 안드리 셰브첸코를 제치고 득점왕을 차지하며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02시즌 인테르에 입단하게 된다.[1]

2003년에는 1680만 파운드에 첼시로 이적한다. 첼시에선 좋다고는 볼수없지만 나쁘지도 않은 활약을 했다.(49경기 20골) 무리뉴가 별로 크레스포를 좋아하지 않았고 서서히 드록바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크레스포의 상황에대해 설명을 붙이자면 여러가지 선수 내외적으로 흔들리던 시기였다. 영국 특유의 우중충한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에 강도가 드는 등 너무나도 힘들었던 시기였다. 결국 크레스포는 이탈리아의 인테르와 밀란으로 임대를 가며 이탈리아쪽으로 임대생활을 하며 좋은 활약을 펼치다[2] 인테르로 완전이적하게 된다.

그러나 인테르에선 평소 자신과 묘한 악연이 있던 무리뉴가 있었다. 이에 스태프들과 불화를 겪으며 13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하고, 본인도 2골밖에 넣지 못하는 등 영 좋지 못한 활약을 펼치다 제노아로 이적하게 된다.[3] 그후 2009년 파르마로 이적한 후 2012년까지 현역으로 뛰다가 유로 2012직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1.1. 국가대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은메달 멤버들로 구성되어 출전했다. 그런데 바티와 포지션이 겹치는 크레스포는 계속 벤치신세였다. 딱 한 번 그라운드에 나올 기회가 생겼는데 잉글랜드전에서 승부차기. 그러나 아르헨티나에서 딴 선수들은 다 성공한 패널티킥을 크레스포 혼자 실축하고 만다. 다행히 잉글랜드에서 2명이 실축해서 8강진출에 성공하게 된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은 그야말로 아르헨티나 전체의 흑역사, 또한 그에게는 더더욱 흑역사. 조국이 디폴트 선언[4]한 터라 본선경기가 치뤄지는 대한민국&일본으로 올 때도 선수들의 자비를 털어 왔으며 같은 조에 있던 잉글랜드데이비드 베컴, 마이클 오언 등의 스타들을 앞세워 팬들의 열성적 응원을 받은 데에 비해 아르헨티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저 그런 시선들 뿐이였다. 이 때 그는 바티스투타와 전후반을 도맡아 뛰었는데 그의 첫 골을 성공시킨 스웨덴전. 그는 경기장에 주저 앉아 울었다. 그와 동시에 경기 종료휘슬이 울리며 아르헨티나는 탈락했다. 팀이 탈락하는데 기뻐할 선수가 어디 있을까?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드디어 그에게 기회가 왔다. 바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호세 페케르만에 의해 강제 은퇴한 것. 잘가라! 그는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죽음의 조인데도 불구, 드록국 코트디부아르를 격파하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6:0으로 격파하는 등 선전했으나 8강에서 독일에게 패해 그의 월드컵은 끝났다. 비록 팀은 8강에서 탈락했으나 활약을 인정받아 실버슈를 받았다. 바티 보고있나?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절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이 국가대표로 차출되었지만 자신의 자리에는 곤살로 이과인이 들어감으로 인하여 차출되지는 못했다. 그걸로 국가대표는 끝났다.

2. 플레이스타일

한마디로 말해 득점기계, 완성형 스코어러. 바티스투타와 비슷하게 184cm의 땅땅한 체구에다가 플레이스타일은 아르헨티나 특유의 발재간을 갖춘 공중볼 장악, 드리블, 패스, 슛, 프리킥 어느하나 빠지지않는 완성형 스트라이커였다. 위치선정 또한 나쁘지 않았으며 이를 이용한 골도 여러번 기록했다. 물론 팀에겐 쓰나미도 넘나드는 위치선정을 가진자가 있어서 묻혔지만.
게다가 공수 전반을 넘나들며 수비가담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속도도 나쁘진 않았으나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았다. 물론 그의 미친듯이 뛰어다니는 모습운 뭇 상대팀에 공포감을 심어주곤 했다. 요즘은 포스가 떨어진 것 같지만...[5]

자신이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던 바티스투타와는 달리 이타적인 플레이 또한 나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는 "이런 훌륭한 선수를 놔두고 겨우 바티 따위를 중용한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바보다. 8강 이상 못 가도 싸다."라고 평가하며 크레스포 개인에게는 "크레스포는 2인자로 썩기에는 너무나 훌륭한 재원이다. 특히 1인자가 바티라면 더더욱 아까운 재원이다. 내가 1998년 아르헨티나 감독이였다면 크레스포를 주전으로 기용했을 것이고, 그랬으면 우승은 프랑스가 아니라 아르헨티나가 차지했을 것이다."라고 코멘트했다. 물론 크루이프 이 양반이 전적으로 토탈사커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이타적인 선수는 치켜올려주는 대신 그렇지 않은 선수는 가차없이 깎아내릴 정도로 반대의 평가를 내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그만큼 뛰어난 플레이를 펼쳤다는 것을 알아볼 순 있을 것이다.

3. 스태프

2014년 8월 9일 파르마 FC의 유소년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4. 뱀발

국내에서의 인지도나 평가는 아쉽게도 매우 떨어진다. 첼시 FC에서의 실패(?)[6]와 선수시절 경력 대부분이 세리에 A인점과, 대표팀 동료인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존재 때문이다. 국내에서 해외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청하기 시작한 2007년이 하필이면 전성기 끝물이였고, 파트너였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더욱더 주목받은지라... 어째 콩 냄새 난다.

메시가 좋아하는 선수라 한다.

남미 지역예선 역사상 최다득점자가 크레스포로서 9골을 달성했는데 이 기록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지역예선(남미) 11라운드 베네수엘라전에서 국가대표 후배인 곤살로 이과인이 연속 두골을 넣고 동률을 찍었다. 조만간 깨질 듯. 하지만 정작 이 기록을 깬건 국가대표 후배들인 메시나 이과인이 아니라 옆동네루이스 수아레스였다. 수아레스는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지역예선(남미)에서 혼자 11골을 넣음으로서 남미 지역예선 역사상 최다득점 기록을 갱신했다.

무리뉴와 묘한 악연이 있다. 첼시 FC시절 적응에 힘들어 하던 시기엔 무리뉴가 전력외 선수 취급을 하며 출장기회를 많이 잡지 못했고, 인테르로 완전이적한 08-09시즌에는 또 무리뉴가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다. 결국 제노아로 이적하게 된다. 제노아에서도 인테르와 맞붙게 되었을때 골을 넣고싶어했다고. 근데 정작 은퇴하고 나선 무리뉴는 승리자라고 인터뷰하는 거 보면 프로페셔널한 관계였던듯. 딱히 너를 싫어해서 떠났던 건 아니니까!

그의 후계자로 지목되는 선수는 많으나 딱히 후계자라고 불릴만한 선수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메시는 대표팀에서는 프리롤로 뛰고, 이과인은 아직 이타적 플레이라는 점에서 떨어진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메시, 아구에로, 이과인, 라베시와 같은 유형의 선수는 넘쳐나기 때문에 크레스포와 같은 유형의 정통 타켓멘이 나오지 않는것이 제2의 마라도나보다도 더 시급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문제점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막시 로페즈나 로헬리오 푸네스 모리, 루카스 비아트리 등이 언급되고 있다.

바티스투타와 사이는 좋지 않았다. 하기야 내자리에서 뛰고있는 놈이랑 좋다고 히히덕 거리며 어울릴 일이 없다. 멘탈이 어지간이 좋지않고선 당연히 서운하기 마련이다. 오죽했으면 마라도나는 "그놈둘은 골방에서 서로에게 주먹질을 하며 한명이 죽을때까지 가둬놔야 한다"라기까지 코멘트했다.

이탈리아 국적을 취득하고 이탈리아 여자와도 결혼했다. 이때문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서 잠정적으로 은퇴하게 된다. 현재의 나이도 고려했을때 아마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멘탈도 나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팀이 이기고 있을때 감독에게 자신을 빼고 수비수를 넣으라고 했다고...[7]

5. 시종일관 콩라인

에르난 크레스포는 아예 축구선수로서의 그 자체가 콩라인이다. 물론 1군으로 우승을 했던적또한 많았으나 2등과 2군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아르헨티나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것이 크레스포의 국가대표 데뷔전.
  •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크레스포는 바티스투타에 밀려 2군이였다.
    • 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16강에서 만난 잉글랜드와 승부차기까지 갔는데 크레스포는 여기에서 2번째 주자로 승부차기를 했으나 실축했다.
  • 2001년 크레스포의 소속팀인 라치오는 바로 전 시즌 리그 우승을 했으나 그를 영입하고 나서 2위를 하였다.
  • 2002년 대한민국&일본 월드컵에서도 역시 바티스투타에 밀려 2군이 되었다. 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넣은 골의 합은 2골.
  • 그가 2골을 넣은 2005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리버풀 FC에게 역전당하며 팀은 준우승
  •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매 경기마다 1골씩 넣어서 팀의 승승장구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미로슬라프 클로제에 밀려서 실버슈를 획득했다.
  • 그가 국가대표 마지막으로 뛴 대회인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아르헨티나는 결승까지 전승을 달렸으나 결승에서 브라질에 밀려 준우승을 차지했다.
  • 구글 넥서스 시리즈의 두번째 스마트폰인 넥서스 S의 코드명이 'crespo'이다.(...) 노린거냐.
  • 2012년에 이 양반이 갱신하기 전까지는 축구선수 개인 누적 이적료가 2013년 기준 1억 2100만유로로 역대 2위였다. 역시 콩라인. 현재는 3위. 1위는 1억 6910만 유로의 이 양반, 2위는 1억 2966만 유로를 기록한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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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당시 인테르는 호나우두를 떠나보냈다.
  • [2] 밀란으로 임대갔을때 밀란은 챔피언스 결승전에 진출한다. 이때 결승전에서 2골을 넣었는데도 진 경기가 바로 이스탄불의 기적으로 불리는 리버풀과의 경기다.
  • [3] 여담으로 크레스포의 부진으로 반사이익을 얻은 선수가 역시 아르헨티나 국적의 훌리오 크루즈. 빅클럽 선발로 뛰기에는 부족하지만 교체로 나와서는 뜬금골을 잘 넣어주는 맨유의 슈퍼서브라 불리던 솔샤르와 같이 준수한 백업 공격수 정도의 위치였던 선수가 단숨에 주전선수로 급부상하면서 본인의 커리아하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 [4] 국가가 망했어요. 재정적 파산을 선언하는 것이다.
  • [5] 이에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는 선수가 나타나지 않아 고민을 하게 된다.
  • [6] 실패라고 할 수도 없다. 경기대비 공격포인트는 매우 준수한 편이였으나, 조세 무리뉴가 선택한 선수가 디디에 드록바였기 때문. 플레이스타일은 둘다 비슷하지만, 피지컬에서 드록바가 한수 위였다. 조세 무리뉴와 크레스포는 2009년 인터 밀란에서 다시 조회한다. 이게 운명의 장난인지...
  • [7]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선수들은 개인 기량에대한 자존심이 쩔기 때문에 자신을 빼는것을 크게 달가워 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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