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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하르트만

last modified: 2015-03-17 14:52:06 by Contributors

에리히 알프레트 "부비" 하르트만
Erich Alfred "Bubi" Hartmann[1]
1922.4.19 – 1993.9.20

제2차 세계대전 독일군의 전투기 에이스이자 인류 역사상 최고의 격추왕. 1차대전의 전설적인 에이스인 붉은 남작,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과 더불어 공군 역사에서 에이스를 논하는데엔 절대로 빠질수 없는 인물. 그 공식 격추 기록은 무려 352대(…)로 격추 전과 300대를 넘긴 사람이 에리히 하르트만과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 (Gerhard Barkhorn)단 두 사람이고, 바르크호른이 301대라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에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전부 소련군 전투기는 아니고, 미군기 7대 격추기록이 있다. 또한 최후의 격추기록 2기는 45년 5월 8일, 즉 독일군이 연합군을 상대로 전투를 중지한 시점에서 세운 기록이고, 한 전장에서 소련기와 미군기를 각 1기씩 격추하는 드문 경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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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설명
2. 경력
2.1. 입대
2.2. 첫 전투
2.3. 현상금이 걸리다
2.4. 포로생활
2.5. 서독군에서의 하르트만
2.6. 이후
3. 하르트만의 전술
4. 기타


1. 설명

우크라이나의 검은 악마

애기를 검은색 계통으로 도색하였으며, 기수에 '검은 튤립'이라 불리게 되는 독특한 도색을 했던 것에서 유래해 붉은 군대가 붙인 별명이다. 여담으로 이 도색만 보면 소련공군 전투기들은 도망가기 바빴다고 한다. 그 때문에 나중에는 다른 도색을 사용했다고...[2]

2. 경력

2.1. 입대

1922년 4월 19일생. 1940년 3월 15일 공군에 입대한다. 1942년 동부전선의 JG52(제52전투항공단, Jagdgeschwader52)에 배속된 후 쭉 그곳에서 싸우게 된다.

2.2. 첫 전투

세계 최고의 에이스로 알려져 있으나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첫 공중전을 겪었을 때 그는 엄청난 바보짓을 저질렀다.

1. 상대적으로 손쉬운 표적이었던 IL-2슈트르모빅을 절호의 기습 기회를 잡아놓고 빗맞춰버렸다.[3]
2. 적기가 나타났다는 말에 그 적기를 피하려고 허둥지둥 구름 속으로 도망가다가 편대에서 낙오해버렸다.
3. 어딘지도 모를 하늘에서 헤매고 있다가 연료가 다 떨어졌다! 결국 대충 불시착한 뒤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육군의 차를 얻어타고 복귀했다.
4. 알고보니 구름 속에서 자신을 쫓던 그 '적기'는 바로 그가 잃어버린 장기였다(…) 장기에 탄 로스만은 무전으로 돌아오라고 수없이 소리쳤지만 하르트만은 겁에 질려 있어서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

순전히 감정 컨트롤을 못한 탓에 멀쩡한 전투기 한대를 맨땅에 갈아버린 죄로 그는 3일동안 비행금지령을 먹고 지상근무로 돌려진다. 그러나 이 때 한 가지 비범한 재능이 빛을 발했다. 그 재능이란 자신의 실수를 되돌아보고 절대로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었다.[4]

2.3. 현상금이 걸리다

첫 공중전에서의 장대한 삽질을 잊지 않고 노력한 덕에 352기를 격추시킨 대에이스가 되었고, 훈장을 무더기로 받았으며, 스탈린은 그에게 현상금을 걸었다.[5]

대전 말기 전투기대 총감 아돌프 갈란트가 초 에이스들을 모아 직접 조직한 제트전투기 비행단, JV-44[6]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으나 부대와 전우들을 떠날 수 없다며 거부한 전력이 있다.

다이아몬드 기사 철십자장 수여 직전에 동료들과 함께 술을 퍼마셔 만취상태로 자기 모자를 잃어버리자 히틀러 모자를 대신 쓰고 다닌 일이 있고, 그후에도 권총을 차고 훈장 수여식에 나서면서 히틀러의 안전문제로 권총을 회수하려하자 "만일 각하가 나를 전혀 신뢰하지 않으신다면 다이아몬드검과 기사 철십자장은 그 분의 모자에나 꽂아야 할 것 같소."라는 명대사를 남긴 적이 있다. 그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일화.

2.4. 포로생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JG52 사령관르만 그라프와 함께 미군에 항복하지만 소련과 미국의 밀약에 의해 소련군에 신병이 인도되어 10년 동안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하게 된다.

소련은 종전즈음에 '대전내내 동부전선에서 싸운 독일군 병사와 부대들은 설령 미군에 항복해도 자기네 포로' 라는 협상을 한 상태였다. 물론 이런 밀약을 인정하지 않은 사례도 꽤 많지만, 이 때문에 동부전선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전쟁영웅들 중 초급간부들, 특히 공군의 슈퍼 에이스들 상당수가 소련에 인도, 고초를 치렀다.

에리히 하르트만도 전쟁포로로 상당히 고초를 치렀다고 한다. 소련군들이 하르트만을 공산주의로 돌리려고 하거나, 여러가지로 소련에 협력하라고 시켰다. 그러나 전혀 말을 듣지를 않고 독일을 위해 싸운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식의 발언을 해서 독방에도 자주 가고, 단식투쟁도 하고, 제대로 된 인간 대접은 못받았다. 결국엔 전범 누명을 뒤집어쓰고[7] 전쟁포로캠프에 10년허고도 6개월간 잡혀있었다가 1955년에 풀려나 서독에 돌아가 아내 우르슐라와 재회할 수 있었다. 여담으로 하르트만은 전쟁중 매일같이 아내 우르슐라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8]

2.5. 서독군에서의 하르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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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13.86 KB)]

복역을 마치고 1955년 고향으로 돌아온 뒤 신생 서독공군에 지원했다. 전후에 복무한 JG 71에서 하르트만은 역시나 F-86의 기수에 '검은 튤립'을 그렸고, 해당 부대는 F-86을 운용하는 동안 똑같이 검은 튤립을 그려 넣었다!

1970년에 F-104의 채용에 반대했다가 대령으로 강제 퇴역당했고, 이후 F-104는 과부제조기로 명성을 날려 하르트만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2.6. 이후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 1993년에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3. 하르트만의 전술

지극히 단순해서, 요기의 엄호를 받으며 기습적으로 접근해서 사격하고 튀는(Boom and Zoom) 전술의 대가였으며 오로지 이 전법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적당한 위치에서 철저하게 기습한 후 잽싸게 튀는 전술 하나만으로 세계1위의 에이스가 되었던 것. 사실 이런 기동은 1940년대 초반 전투기 전술의 기본[9]이었지만, 이 사람이 무서운 건 "이렇게 싸울 수 없을 만한 상황에서조차 이렇게 싸울 수 있도록 미리미리 기동을 해 두고, 일격을 가한 후에는 욕심도 안 부리고 겁도 안 먹은 채 현장에서 빠져나가 적당한 위치를 다시 확보하고 또 치는", 도전정신 강한 전투기 조종사로서는 지키기 힘든 금도를 철저하게 지켰다는 데 있다. 하르트만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이러한 일격이탈 전법의 장점은 "후방에서 덮치기 때문에 기습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고, 가까이서 사격하기 때문에 명중률이 높으며, 같은 이유로 탄약의 파괴력도 강하기 때문에 몇발만 명중해도 적기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점에 있었다.

적에게 너무 가까이 접근했다가, 자기가 격추한 적기가 폭발할 때 나온 파편을 뒤집어쓰고 대파된 사례가 종종 있다.

4. 기타

  • 전쟁 기간 전체를 통틀어 요기를 한번도 잃지 않았다고 한다. 352대의 격추 기록보다도 그는 이것을 진정한 자랑으로 생각했다. 위에서 말했듯, 자기가 불시착한 적은 몇 번 있다.

  • 종전후 미군의 건카메라를 감상한 뒤 "일본군의 기체가 총에 맞으면 간단하게 불타오르는게 인상적이었다."라는 감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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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부비"는 "아기". 동료들 가운데 나이가 제일 어렸던데다 또 워낙 동안인지라 붙은 별명, 부비부비 영어라면 Babe, 한국군 식으로 치면 '막내야~' 정도로 불리는 느낌인듯.
  • [2] 비행대 소속의 아직 미숙한 신참 조종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신참들의 비행기에 검은 튤립을 그려넣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후에는 하르트만 탑승기는 부인 우르슐라의 이름을 써 넣은 것으로 구분한다. 여담이지만 나중 서독 공군 복무 시절에는 F-86 전투기 기수에 검은 튤립을 그려넣었다. 이후 그의 당시 복무 부대였던 JG-71 "리히트호펜"의 상징적인 마크로서 이 부대가 F-86을 운용하는 동안 전 기체가 같은 마크를 그렸다. 단, 전황이 기운 1944년 이후에는 모두 지워버렸는데 그 이유인 즉슨, 소련군이 불시착한 독일 에이스를 보면 포로고 뭐고 그딴 거 없이 바로 사살했기 때문이라고.
  • [3] 사실 하르트만은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같은 다른 에이스들에 비하면 사격에 능한 편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후로 언제나 적기에 최대한 접근해서 사격을 가하게 된다.
  • [4] 슈퍼에이스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은 40년부터 42년까지 10기 밖에 격추 못할 정도로 늦깎이었던데다,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는 신병 시절에 8기 잡으면서 자기 비행기를 6번이나 잃어버려 다른 사람들 다 소위 달때 소위 후보였다. 또 세계 최초로 격추수 200을 돌파한 헤르만 그라프 역시 프랑스 전격전때부터 참전했지만 바르바로사 작전 에서야 간신히 첫 격추를 할 수 있었다. 조종사는 아니지만 전설적인 티거 에이스 오토 카리우스도 첫 전투 때는 지레 겁먹고 혼자 도망가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 [5] 인민의 적으로 유명한 한스 울리히 루델이나 호랑이 기수 오토 카리우스 등의 독일 에이스들은 대부분 목에 현상금이 걸려있었다.
  • [6] "철십자 훈장 정도는 우리 부대의 뱃지에 불과했다." - 아돌프 갈란트
  • [7] 1997년에 러시아 정부가 에리히 하르트만의 전쟁범죄 기소는 위헌이었다고 인정했다.
  • [8] 불행하게도 1945년에 아들이 태어났는데 병으로 아들이 1948년에 죽는 바람에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 지못미
  • [9] 예외가 구 일본 육해군 항공대와 이탈리아 공군이었다. 이 두 나라는 격투전을 중시했다. 그러나 일본도 이탈리아도 그렇게 했던 이유는 적국의 항공기보다 강력한 엔진을 조달하기 어렵고 여압 역시 힘들어서 Boom and Zoom의 기본 전제조건인 상대적 고속/고고도를 확보하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그들도 그런 비행기가 있을 때는 무조건 저렇게 싸우는 것이 원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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