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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센 이노우에

last modified: 2013-10-17 20:19:39 by Contributors


Enson "Yamato Damashi" Inoue


국적 미국
종합격투기 전적 20전 12승 8패
3KO, 9서브미션
4KO, 1서브미션, 2판정, 1실격
생년월일 1967년 4월 15일
신장 / 체중 178cm / 93kg
링네임 "야마토 "
주요 타이틀Shooto 헤비급 챔피언

エンセン 井上. 하와이 태생의 일본미국인. 90년대 'Shooto 4대 천왕'의 일원으로 화끈한 공격성과 근성으로 이름난 선수이며, 야쿠자 캐릭터로도 유명하다. 에간 이노우에의 동생.

Contents

1. 전적
2. 파이팅 스타일
3. 기타


1. 전적

하와이에서 태어나 주짓수를 배우며 격투기를 접한 엔센은 1995년 1월 Shooto에서 프로로 데뷔한다. Shooto에서 중량급 간판선수로 성장하며 아사히 노보루, 사토 루미나, 사쿠라이 하야토 등과 함께 'Shooto 4대 천왕'으로 활약했다.

1997년 4월 Shooto 레콘기스타에서 브라질의 레이 줄루[1]를 무지막지한 엘보우 파운딩으로 45초만에 쓰러뜨렸으며, 한 달 후 5월에는 UFC 13에 출격해 로이스 앨저를 가드에서의 암바로 보내버리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10월에는 다시 Shooto로 돌아와 초대 헤비급 타이틀을 두고 조 에스테스와 맞붙어 1분만에 파운딩으로 승리를 거두며 Shooto 초대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1997년 11월에는 Vale Tudo Japan 1997에서 프랭크 샴락을 상대로 마운트를 잡으며 선전했으나 스탠딩의 더티복싱에서 밀리며 패했다. 그런데 레프리가 스탑을 선언했는데도 샴락이 공격을 멈추지 않아 에간 이노우에가 난입하여 샴락에게 덤벼드는 사태가 벌어진다.[2] 이로 인해 공식 기록은 샴락의 DQ승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내용상으로는 엔센의 TKO패.

그러나 1년 후 1998년 10월 Vale Tudo Japan 1998에서 랜디 커투어를 잡아내는 대형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연달아 TD를 내주며 하위에 깔렸으나 가드에서 암바를 캐치하며 1분 30초 만에 캡틴 아메리카의 탭을 받아낸 것. 이는 당시 커투어의 위상을 생각하면 엄청난 업셋이었다. 반면 엔센과 Shooto는 이 승리를 통해 MMA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1999년 4월에는 PRIDE 5에서 니시다 소이치를 RNC로 잡아냈다.

엔센의 몰락은 PRIDE 2000 무차별급 그랑프리에서 시작되었다. 2000년 1월 그랑프리 출전권을 두고 대결한 마크 커와의 경기에서 완패하고 만 것이다. 커의 레슬링과 파워에 눌려 시종 가드에 몰렸고, 하위에서 시도한 관절기가 모두 무위로 돌아가며 무기력한 패배를 당하고 만 것이다.

2000년 8월에는 이고르 보브찬친과 대결했다. 주짓때로인 엔센이 경기를 앞두고 '타격전을 벌이겠다'라고 말했을 때 많은 팬들이 반신반의했으나 그것은 실제로 일어났다. 인간흉기급의 강타자를 앞에 두고 toe-to-toe로 격렬한 난타전을 벌인 것. 물론 의기는 가상했으나 그대로 안드로메다로 직행했다. 1라운드가 끝나자 엔센의 얼굴은 형체가 일그러질 정도로 크게 부어올랐고 닥터의 경기속행 불가 판정으로 보브찬친의 TKO승이 선언된다. 당시 세컨의 손에 질질 끌려나가던 그의 모습은 두고두고 팬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로 처참했다. 경기 내용적으로 완패였으나, 선언한대로 이고르와 난타전을 벌인것만으로도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당시 이고르는 전성기에 가까운 상태였고, 세계 헤비급에서도 이고르와 타격전으로 승부하겠다는 선수는 없었다..


이후 PRIDE 무대에서 히스 헤링,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에게 패하며[3][4] 총 4연패로 정상권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2004년 4월의 SB 대회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은퇴했고, 이후 프로모터로 활동했다.

허나 2010년 4월 Astra를 통해 6년 만에 복귀, 뉴질랜드의 안츠 난센을 맞아 암바로 승리했다.

2. 파이팅 스타일

베이스는 브라질리안 주짓수. 안드레 페데네이라즈의 노바 유니아오 출신이다. 검은 띠 4단으로 수준급의 주짓수 스킬을 가지고 있다. 가드에서의 움직임이 좋고 레슬링도 동급에서는 나쁘지 않은 편.

하지만 헤비급에서 뛰기에는 너무 체격이 너무 작았고 레슬링 역시 체격차를 메워줄 정도로 좋지는 않았다. 2010년에 복귀를 선언하긴 했으나 10년대의 MMA에서 경쟁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나이도 있고. 전성기인 90년대 후반 시절에도 정상급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3. 기타

초창기 Shooto 중량급을 풍미했던 Shooto의 에이스. Shooto의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합 중에 탭을 치지 않는 선수로도 유명했는데 이를 "야마토 타마시"라고 하며 근성의 화신과도 같은 선수로 평가받았다. 다만 이것은 일본 한정이고 미국에서는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는 몰상식한 짓으로 취급받는다. 양 국가에서 MMA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이기도 하다.

이는 노골적인 야쿠자와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이때문에 '정말로 야쿠자인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 엔센은 야쿠자는 아니지만 함께 사업을 하기도 한다고 대답했다. 뭐가 다르지? 2011년의 인터뷰에서는 "야쿠자의 도움 없이 제2의 PRIDE는 없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일본 MMA계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야쿠자와의 유착이 너무나 뿌리깊어 이미 그들 없이는 사업이 불가능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을 암시하며, 일본 MMA가 태생적으로 프로레슬링에 뿌리를 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상하게 이긴 시합보다 진 시합들이 더 유명하고, 명승부로 평가받는다. 상대에게 그림이 될 만한 시합을 선사해 주며 패하는 것으로 이름이 나 있다. 이고르 보브찬친과의 난타전이 특히 유명하다. UFC의 엘비스 지노식 '화백'과 쌍벽을 이루는 명품 자버.

2008년 무렵에는 야쿠자들과 대마초를 나누어 피우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때 징역형을 받았는데 꽤나 힘들었다는 듯.

일본 MMA의 슈퍼스타 야마모토 노리후미의 매형이기도 하다. 키드는 지금 이혼한 상태지만.

너무나 짙은 왜색 때문에 한국에서의 인기는 바닥을 긴다.

라켓볼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격투기보다 더 잘할지도 모른다고.

'슈토군'이라는 이름의 를 15년 동안 기르고 있었다. 엄청난 애견인으로 2010년 슈토군이 죽자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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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줄루징요의 아버지.
  • [2] 에간의 난입 타이밍이 좀 애매한데, 실은 엔센이 쓰러지는 시점에서 이미 뛰어들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 [3] 노게이라에게는 삼각에 걸려 섭미션패를 당했는데 실신하면서도 탭을 치지 않으며 버텼다.
  • [4] 본인이 평소 때 '탭을 치는 것은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다'라고 한 말을 지켰던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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