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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타 여제

last modified: 2014-11-17 03:36:24 by Contributors


역대 러시아 제국 차르
이반 6세 엘리자베타 여제 표트르 3세

1709 ~ 1762년
재위 1741년 ~ 1762년


표트르 대제예카테리나 1세 사이의 차녀. 본명은 엘레자베타 페트로브나(Елизаве́та Петро́вна). 엘리자베타는 황실 친위대에게는 인기가 높았으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그렇게 강력한 정치적 힘은 발휘할 수 없었다.

갓난 아기에 불과한 이반 6세가 즉위하자 그녀는 자신에게 기회가 왔음을 느꼈다. 1741년 엘리자베타는 근위병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대권을 장악하였다. 32세의 나이로 러시아 제국을 통치하는 여제가 된 것이다. . 이반 6세 이전 안나 여제 시절에는 발트 해 부근 독일계 귀족들이 득세했기 때문에 독일계 귀족들을 숙청하고 독일풍을 일신하고 러시아 전통귀족들을 등용한다. 이 때 스웨덴이 기회를 노리고 침공했지만 20만 대군으로 무찌르고 핀란드 남부를 손에 넣는다


상당히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했으며 결혼 전 애인이 많았던 걸로 유명하나 즉위 후 신하와 귀천상혼 한데다가, 게다가 자식 없었고. 결국엔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아 1742년 조카인 카를 페터 울리히를 차기 제위 계승자로 임명했다. 그러나 카를 울리히는 러시아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고 지나칠 정도로 독일만을 좋아했다. 이것을 우려한 여제는 1744년 독일 소귀족의 딸인 조피 프레데리케를 불러들여 카를 울리히와 결혼시켰다. 그러나 별 효과는 없었고, 조카와 달리 결혼 후 예카테리나라는 러시아식 이름으로 개명하고 러시아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조피를 엘리자베타는 매우 아끼게 되었다.

이 시기, 엘리자베타 여제는 곧 원로원을 재구성하고 내각 회의를 폐지한다.

엘리자베타 여제는 교육과 예술의 발전을 장려했다. 러시아 최초의 대학교인 모스크바 대학교를 세웠으며 예술 아카데미를 건립하고 겨울궁전을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극과 무도회를 좋아하고 서유럽에서 비싼 옷을 사들이는 등 낭비가 심해 러시아의 재정 상태를 악화시켰다. 특히 사치스런 옷을 1만 5천벌이나 사고도 계속 주문해서 재정상태가 거의 파산에 가까웠다고 한다.

대외적으로는 반프로이센 정책을 추진했다. 엘리자베타 여제는 개인적으로 안나 여제 시절 영향으로 독일계 발트인에 대한 적대감과 프로이센프리드리히 2세를 매우 싫어하고 스웨덴과 오스만 투르크[1]라는 공동의 적과 혐오 대상을 공유한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와 성향이 맞았기 때문에 곧 동맹을 맺고 7년전쟁에 참가했다. 러시아군프랑스, 오스트리아와 함께 프로이센을 거의 몰아붙였으나 승리직전에 사망하고 만다. 다 이겼는데 갑자기 죽은 건 아니고 건강이 매우 안좋아서 2~3년 전부터 병세가 오늘 내일 했다고 한다.

과거에는 독일계 귀족들을 누르고 러시아풍을 회복하여 러시아 민족사학의 영향으로 평가가 후했는데 현재는 독일계 귀족들을 등용해서 그동안 저평가 되었던 안나 이바노브나가 다시 재평가 받는것과 달리 엘리자베타는 지나치게 고평가 받았다고 평가하고 현재 학계에서 평가가 많이 내려갔다.[2] 특히 외교 정책에서 프로이센을 적대한것에 대해 발트해에 러시아의 영향권을 두고 프로이센의 힘이 강해질까봐 오스트리아와 손잡았는데 프리드리히 2세는 발트해에 관심이 없었다. 7년전쟁 때도 이미 폴란드를 위성국화 하고 스웨덴은 오히려 프로이센의 적국으로 참전하는 등 프로이센에 이겨봤자 별로 얻을게 없는 상태였고 러시아군이 프로이센의 군대에 몇 번 타격을 주고 베를린을 일시적으로 함락[3] 시키는등 선전도 했지만 러시아의 피해도 막심했다.[4]

이후 로마노프 왕조는 단절되었고, 표트르 1세의 외손자인 표트르 3세가 즉위하여 홀슈타인-고토로프-로마노프 왕조[5]를 열었으나 프로이센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도,받지도 않는 무조건 평화 협정을 맺는 병크를 저지르고 6개월 이후에 쿠데타로 실각해 예카테리나 2세가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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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스웨덴은 30년 전쟁시절 합스부르크 황제군을 쳐발랐고 러시아는 표트르대제 이후 계속 전쟁 상태였으면 오스만 투르크는 발칸과 카프카스, 크림 지역에서 오스트리아,러시아와 충돌했다.
  • [2] <러시아의 역사> -니콜라스 V. 랴자놉스키(NICHOLAS V. RIASANOVSKY)-
  • [3] 완전히 정복 한것은 아니고 베를린에 근접하자 베를린 시에 사례금을 받고 공격을 면제 했다. 야전에서 공성으로 전환하면 몇 달 간 장비배치에 배후의 위협도 있을 뿐더러 공성전에서 공격자의 피해도 많기 때문에. 어쨌든 공략한건 공략한거..
  • [4] 러시아의 승리라고 주장하는 조른도르프에서도 프로이센군은 3분의1정도의 손실, 러시아군은 병력의 절반의 손실을 입었다. 콜베르크 요새를 공략하기전엔 보급의 어려움으로 겨울마다 폴란드로 철수해서 월동을 지내야 했다..
  • [5] 원래 이름대로라면 홀슈타인-고토로프 왕조가 되어야겠으나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왕조와 비슷하게 왕조명으로 로마노프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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