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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튼 존

last modified: 2015-03-17 19:53:52 by Contributors

Sir Elton John



현재의 모습. 늙었고 살도 꽤 쪘지만 유쾌해보이는 모습은 여전하다.

Contents

1. 개요
2. 학력
3. 수상 및 서훈내역
3.1. 명예의 전당
3.2. 수상
3.3. 서훈
4. 관련 인물
4.1. 송라이팅 콤비 버니 토핀
4.2. 존 레논
4.3. 프레디 머큐리
5. 커밍아웃과 논란과 결혼
6. 내한공연
7. 디스코그래피
7.1. 싱글
7.1.1. 빌보드 1위
7.1.2. 빌보드 2위
7.1.3. 빌보드 3위~10위
7.1.4. 빌보드 11위~20위


1. 개요

영국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1947년 3월 25일 출생. 어릴 적 이름은 Reginald Kenneth Dwight.[1] 아래에 보면 알겠지만 오랜 기간 활동하며 수많은 앨범과 싱글을 발표하며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거머쥔 살아있는 전설이다. 팝, 록, 발라드, 컨트리, 블루스, 펑키, 레게, 클래식, 뮤지컬음악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준 높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진정한 천재음악가. 약 1억 6천만장의 앨범을 판매했고, 70년대에 가장 많이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한 아티스트이며, 빌보드 앨범차트 역사상 최초로 1위 데뷔를 이룬 아티스트이기도 하다.[2]#영어 위키피디아

'7.1.1. 빌보드 1위' 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전성기의 음악은 어디까지나 록을 기초로 하여 뻗어나간 것이다. 영어 위키피디아에서도 엘튼 존을 'rock singer-songwriter'로 정의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 보편적으로 록커로 분류된다.[3] 그러나, 한국에서는 유독 히트하며 대표곡으로 오인되는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탓인지, 가만히 앉아 피아노나 치는 고루한 발라드가수 할아버지 쯤으로 여겨지는 면이 있다.역으로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보고 멘붕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엘튼존은 이렇지 않아 그러나 이는 90년대 중반 이후의 노년기에 접어들어서야 정착된 모습으로, 엘튼 존 본인으로서는 상당히 억울한 부분. #전성기의 라이브 모습

라이온 킹의 OST를 작곡하기도 하였으며[4] 아이다, 빌리 엘리어트 등 뮤지컬 작곡에도 매진했고 빅히트시켰다.

1992년 엘튼 존 에이즈 재단(Elton John AIDS Foundation, EJAF)을 설립했으며, 이 재단 주최로 1993년부터 매년 오스카상 시상식 때 함께 개최되는 후속파티(Elton John AIDS Foundation Academy Awards Viewing Party)의 호스트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인맥의 핵심 인물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영어 위키피디아의 소개글 클릭하면 참석 인원들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정작 전성기에는 항상 노미네이트에 그치는 등 상복이 정말 지지리도 없었는데, 늘그막에 보상을 받는 듯. 라이온 킹 OST 대히트를 전후해 대부분의 수상이 90년대 이후에 집중된다. 최근에는 젊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자주 선보이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 등 굵직한 행사에서도 자주 등장하며 제대로 대접받는다.때로는 망가지기도 한다.


2. 학력

영국 왕립음악원[5] 5년 중퇴, 명예회원(1997년), 명예박사(2002년)

왕립음악원이 1999년 9월부터 던대학교 산하 단과대학으로 병합되었기 때문에, 2002년 받은 명예박사 학위는 런던대학교 명예 음악학 박사이다. 왕립음악원 역사상 명예박사학위는 이 때 처음 주어졌고, 지휘자 故콜린 데이비스 경과 함께 받았다. 2013년 현재까지도 다니엘 바렌보임, 사이먼 래틀 경까지 이 학위를 받은 사람은 4명 뿐이다.#영어 위키피디아

3. 수상 및 서훈내역

3.1. 명예의 전당

  • 1975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헌액
  • 1992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 헌액
  • 199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6]

3.2. 수상

3.3. 서훈

  • 1993년 프랑스 문예공로훈장(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오피시에
  • 1996년 대영제국 훈장 3등급(CBE)
  • 1998년 기사작위(Knight Bachelor) 서임

4. 관련 인물

4.1. 송라이팅 콤비 버니 토핀

작사가 버니 토핀(Bernie Taupin)과의 장기간의 협업으로 유명하다.[9] 협업이기는 하지만 버니 토핀이 가사를 엘튼 존에게 보내면 엘튼 존은 거기에 멜로디를 붙이는 식으로 따로따로 작업을 해 왔기 때문에, 둘은 찰떡 콤비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아주 친밀한 관계는 아니다. 둘은 서로의 가사와 멜로디를 그저 존중해줄 뿐. 버니 토핀의 경우는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 성품이기도 하다.

199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엘튼 존은 헌액소감을 마치고 버니 토핀을 무대로 불러 올려 마무리를 맡겼는데, 버니 토핀이 올라와서 한 말은 딱 한마디. "One Word, Music!" 둘의 협업관계를 상징적으로 설명해 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당시 영상

둘이 한때 연인 사이였다는 설도 있다. 연인 사이였다는 설은 앞에 설명한 둘의 협업 관계를 생각해 볼 때 신빙성이 떨어지며, 지금까지 알려진 명확한 근거도 전혀 없다는 점에서 설보다는 악성 루머에 가까운 것이다. 엘튼 존은 밴드의 퍼커셔니스트 존 메이혼(John Mahon)이 옛 연인이라는 사실을 묻지도 않았는데 공연에서 가끔씩 언급하기도 할 정도로, 지금은 이런 면에서 쉬쉬하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다.

4.2. 존 레논

존 레논과의 우정이 깊었기에 최근까지도 엘튼 존은 공연에서 존 레논을 가끔 언급하곤 한다.

엘튼 존과 존 레논의 우정은 계속 이어져 서로의 앨범 녹음을 도와주고 공연에도 찬조출연 해주는 등 돈독한 관계로 지낸다. 존 레논이 죽은 뒤 엘튼 존은 그를 추모하는 노래 'Empty Garden (Hey Hey Johnny)'을 만들어 발표하기도 했다. 이 부분은 2015년 2월 22일자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다. 단, 존 레논이 엘튼 존에게 무릎을 꿇고 엘튼 존이 일어나십시오라고 한 말은 허구이며, 몇년전부터 국내의 엘튼 존 광팬인 네티즌이 지어낸 이야기이고, 해외의 공식자료들에 그런 일화는 전혀 등장하지않는다. 단지 존 레논이 가볍게 칭찬한 적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존 레논의 아들인 션 레논의 대부(godfather)이기도 하다.

4.3. 프레디 머큐리

엘튼 존은 프레디 머큐리의 임종 직전 병문안이 허락된 몇 안되는 인물이다. 음악적으로 둘은 곡에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담기보다는 음악 자체에 집중했던 스타일에서 공감대가 있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성지향성이라는 문제를 공유할 수도 있는 사이였을 것이다.

70년대 중반부터 엘튼 존과 프레디 머큐리는 활발히 교류해서, 서로의 삶과 음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1975년에 발매된 엘튼 존의 9번째 정규 앨범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에서 프레디 머큐리의 영향을 느낄 수 있으며, 프레디 머큐리는 공연에서 엘튼 존의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을 자주 불렀다. 1985년에 발매된 엘튼 존의 19번째 정규 앨범 Ice On Fire에는 퀸의 드러머 로저 테일러와 베이시스트 존 디콘이 참여하기도 했다.

1991년 프레디 머큐리가 세상을 떠나고 그 유명한 추모공연이 열렸는데, 엘튼 존이 맡은 곡은 퀸의 대표곡 'Bohemian Rhapsody'와 최후의 역작 'The Show Must Go On'. 당시 엘튼 존이 성대결절과 폭식증을 극복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목상태가 심히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퀸의 나머지 멤버들이 엘튼 존에게 이 두 곡을 맡긴 것은 프레디 머큐리 뿐 아니라 퀸 멤버 전체와 엘튼 존의 인간적, 음악적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배경을 잘 모르는 경우 엘튼 존이 곡을 망쳤다고 혹평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슬픈 사실.

5. 커밍아웃과 논란과 결혼

1976년에 양성애자로 커밍아웃을 했는데, 후에 직접 회고하기를 당시엔 커밍아웃의 필요를 느끼면서도 한창 누리던 전성기 인기에 가는 타격이 너무 클까봐 한편으로 두려웠기 때문에 저지른 비겁한 과오라고 했다. 어쨌든 실은 동성애자이며,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잊을 만하면 나오는 성정체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의 광팬인 여성 엔지니어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적도 있다.[10] 그리고 2005년 영국에서 동성결혼(정확히는 Civil Partnership)이 허용되자, 12년간 사귀어온 동성애인 데이비드 퍼니시와 결혼했다.

2009년 우크라이나의 고아원에서 HIV(에이즈)에 감염된 레프라는 아이를 만났고, 이 아이를 입양하려 하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당국으로부터 나이가 많다는 이유와 현지에서는 결혼으로 인정되지 않는 동성결혼 부부라는 이유로 입양을 [[거절당했다]. 결국 2010년에 대리모를 통해 아들을 얻었다. 이후 아이를 위해 형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한 명을 더 입양하려 하나, 이번에도 잘 안되었는지 결국 같은 대리모를 통해 2012년 둘째도 얻었다.

동성애를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음악까지 함께 폄하하는 것까지 올바르다 할 수는 없다. 가사는 전적으로 버니 토핀 등 작사가에게 맡기는 엘튼 존의 작업 스타일을 생각해 볼 때, 1980년작 'Sartorial Eloquence', 1981년작 'Elton's Song', 1995년작 'Made in England' 등 자전적 요소가 들어간 몇몇 곡을 제외하고는 동성애 코드가 음악에 반영되는 부분도 아주 적다.

다만 어쨌거나 대리모[11]를 통해 아이를 얻은 점에 대해서는 아이의 입장에서 볼 때 윤리적 문제를 충분히 제기할 수 있으며, 시각에 따라 비판받아 마땅한 점이기도 하다.

6. 내한공연

2004년 9월 중순에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첫번째 내한공연을 진행했고,[12] 2012년 11월 서울과 부산에서 두번째 내한공연이 잡혔다. 그랬다가 부산공연은 취소되고 11월 27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만 내한공연을 했다. 66세라는 나이 때문인지 혈기왕성하게 하진 못했고, 대체로 노래하고 땡큐~ 노래하고 땡큐~ 노래하고 땡큐~ 하는 식이었다는 후문.

7. 디스코그래피

7.1. 싱글

7.1.1. 빌보드 1위

  • Crocodile Rock (1972)
  • Bennie and the Jets (1974)
  •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1974)
  • Philadelphia Freedom (1975)
  • Island Girl (1975)
  • Don't Go Breaking My Heart (Duet with Kiki Dee) (1976)
  • That's What Friends Are For (With Dionne Warwick, Gladys Knight & Stevie Wonder) (1985)
  •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Duet with George Michael) (1991)[13]
  • Something About the Way You Look Tonight/Candle in the Wind 1997 (1997)

'Candle in the Wind'는 원래 1973년작으로 엘튼 존이 어릴 적부터 흠모하던 마릴린 먼로에 대한 추모곡인데,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장례식에서 가사를 바꾸어 불렀다. 장례식을 생중계로 지켜보던 전세계 사람들에게 이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결국 따로 싱글 발매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백인 미녀의 죽음에 노래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14]는 비판을 롤링 스톤즈 멤버 키스 리차즈에게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엘튼 존은 이전부터 다이애나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으며 다이애나는 생전에 엘튼 존의 광팬이었다고 하는데, 엘튼의 곡 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곡이 바로 Candle in the Wind. 이 점을 감안해서 기존 곡을 개사하기로 했다는 것이 후에 밝힌 엘튼 존의 입장.

이 'Candle in the Wind 1997'은 빌보드 차트에서 14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천문학적인 수익금 전액을 엘튼 존은 다이애나비 측에 기부했다. 진짜 큰 돈을 내놓기는 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다음해 엘튼 존이 기사작위 서임자로 발표되면서 설명된 서임배경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For services to Music and for charitable services.'

1986년 12월 14일 모짜르트 컨셉으로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호주 공연[15]에서 이 곡을 불렀는데, 이 버전 또한 히트하여 영국 차트 5위, 미국 차트 6위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세 번이나 차트에 오르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곡인 셈.

7.1.2. 빌보드 2위

  • Daniel (1973)
  • Goodbye Yellow Brick Road (1973)
  •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1974)
  •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1988)

7.1.3. 빌보드 3위~10위

  • Your Song (1970)
  • Rocket Man (1972)
  • Honky Cat (1972)
  • The Bitch Is Back (1974)
  •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 (1975)
  •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1976) [16]
  • Mama Can't Buy You Love (1979)
  • Little Jeannie (1980)
  •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 (1983)
  • Sad Songs (Say So Much) (1984)
  • Nikita (1985)
  • Candle in the Wind (1987)
  • The One (1992)
  •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1994)

7.1.4. 빌보드 11위~20위

  •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1973)
  • Grow Some Funk of Your Own (1976)
  • I Feel Like a Bullet In the Gun of Robert Ford (1976)
  • Blue Eyes (1982)
  • Empty Garden (Hey Hey Johnny) (1982)
  • I'm Still Standing (1983)
  • Who Wears These Shoes (1984)
  • Wrap Her Up (1985)
  • A Word in Spanish (1988)
  • Through the Storm (Duet with Aretha Franklin) (1989)
  • Healing Hands (1989)
  • Sacrifice (1989)
  • Circle of Life (1994)
  • Believe (1995)
  • All of the Lights (With Kanye West)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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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Elton Hercules John'으로 법적 개명했다.
  • [2] 1975년작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의 기록. 이는 비틀즈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싱글차트에서도 20년 후 1995년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이 처음 기록했다. 7주 동안 1위를 지켰으며, 두번째 기록도 같은 해 1975년 발매된 엘튼 존의 'Rock of the Westies'가 세운다.
  • [3] 하긴 이 분은 데뷔 전에 다름 아닌 킹 크림슨의 보컬 오디션을 본 적이 있으시다. 떨어지긴 했지만
  • [4]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Circle Of Life', 'I Just Can't Wait to Be King', 'Hakuna Matata' 등 가사가 있는 곡은 모두 엘튼 존 작곡이며, 가사가 없는 BGM만 한스 짐머 작곡이다.
  • [5] RAM(Royal Academy of Music). 왕립음악대학(RCM, Royal Collage of Music)과는 다른 곳이다. 전통과 역사, 동문 등 종합적으로 RAM쪽이 더 높게 평가받는 편. RAM은 미국의 줄리어드, 독일의 베를린 음악대학 등과 함께 세계 5대 음대로 꼽히기도 했다.
  • [6] 로큰롤 명예의 전당 역사에서 비교적 초창기의(제9회) 헌액식이었기 때문에, 당시 헌액 후보 경쟁자가 굉장히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튼 존은 '데뷔앨범 발매 후 25년 경과'라는 후보요건을 충족하자마자 헌액 명단에 들었다. 존 레논, 밥 말리, 드 스튜어트, 더 밴드, 더 그레이트풀 데드 등 함께 헌액된 아티스트들의 면면이 정말 화려했다.
  • [7]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서 부여하는 특별상 중 최고 권위의 상. 특별상 중 이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뮤지션만이 대상이 되는 유일한 상이기 때문이다.
  • [8] 2013년 신설된 브릿 어워드의 특별상이다. 브릿 어워드에는 Outstanding contribution award라는 이름의 공로상이 이미 존재해 왔고 이것이 매년 브릿 어워드 시상식 때 주어졌었다. 엘튼 존도 1986년에는 과 함께, 1995년에는 단독으로 이 공로상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2013년에는 Outstanding contribution award가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시상식이 끝나고 7개월 후에 아이콘 어워드 시상식이 따로 개최되었다. 때문에 이 상이 Outstanding contribution award를 대체하는 새로운 공로상인지, 아니면 '공로상 오브 공로상'의 포지션인지는 2014년의 상황을 봐야 할 것같다. 아이콘 어워드의 수상자 기준은 다음과 같다. 'iconic artists whose writing, recording and performances set them apart as having made a lasting impact on the nation’s culture, recognising the very highest level of British music achievement'
  • [9] 1992년에 둘이 함께 작곡가 명예의 전당(Songwriters Hall of Fame)에 입성했다.
  • [10] 근데 엘튼 존의 첫사랑이었던 여자에 대한 감정과 그 여성분이 엘튼 존에 대해 회고한 것을 보면 양성애자인 것 같기도 하다.
  • [11] 두 아들 모두 한 명의 대리모를 통해 출산되었으며, 해당 대리모에게는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경제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고 밝혔다.
  • [12] 공연을 기획한 SBS에서는 그 다음주인 추석연휴 중에 녹화·편집된 당시 공연 실황 영상을 특집으로 방영하기도 했다.
  • [13] 원래 엘튼 존의 솔로 버전이 1974년 발표되어 싱글차트 2위에 올랐다. 17년 뒤에 조지 마이클의 라이브 공연에서 두 사람이 듀엣으로 불렀는데 이 버전이 반응이 좋아 싱글로 발표되어 1위에 오른 것.
  • [14] 당시 최근작인 'Something About the Way You Look Tonight'을 함께 끼워서 싱글발매 했다는 점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 [15] 'Tour De Force' 호주 라이브 투어. 1986년 11월 5일부터 1986년 12월 14일동안 진행했다.
  • [16] 2002년 후배가수 블루(Blue)의 리메이크 버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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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17 19:5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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