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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흠

last modified: 2014-02-20 02:20:02 by Contributors



이름 연경흠(延京欽)
생년월일 1983년 9월 14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충청북도 충주
출신학교 청주석교초 - 청주중 - 청주기계공고 - 인하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2년 한화 이글스 2차 12라운드(전체 90순위) 지명[1]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6~2013)
응원가 동방신기 - 풍선[2]

한국프로야구 통산 2만 번째 홈런의 주인공.

Contents

1. 소개 및 아마추어 시절
2. 프로 시절
2.1. 2006 시즌
2.2. 2007 시즌
2.3. 2008 시즌
2.4. 2009 시즌
2.5. 2012 시즌
2.6. 2013 시즌
3. 기타 사항


1. 소개 및 아마추어 시절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 現 한화 이글스 육성군 스카우트.

200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2순위(전체 90번)에 지명되었으나 송광민, 김태완과 마찬가지로 대학행을 선택했고, 인하대에서 4번타자를 맡았다. 위의 둘과는 달리 외야수를 봤기 때문에 미래의 외야자원감으로 꼽혔으며 졸업 후 2006년에 입단했다. 장타력이야 이미 검증되었기 때문에 차세대 거포 외야자원으로 촉망받았다.

2. 프로 시절

2.1. 2006 시즌

당시 한화 외야엔 조로켓, 남연이 형, 고봉사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김인식감독의 꾸준한 신뢰로 많은 타석을 부여 받았다.

시즌 성적은 96경기 9홈런 20타점 타율 .203, 출루율 .277, 장타율 .390, OPS .667을 기록. 장타는 확실했으나 선구안이 지옥이었다.

제이 데이비스를 제외한 나머지 둘의 성적을 보면 조원우는 106경기 1홈런 25타점 6도루 .267 .332 .380 .637, 고동진은 120경기 4홈런 29타점 16도루 .241 .299 .422 .621. 연경흠의 일발장타를 감안한다면 고동진 대신 기용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보이나 그것은 그의 우익수 수비를 모를 때 할 수 있는 생각이다...

2.2. 2007 시즌

제이콥 크루즈가 입단한 2007년에 들어서 그의 기회는 더 줄어들었는데 역시 조원우고동진에 밀려서 빛을 보지 못했다. 결국 2007시즌 대부분은 거의 2군에서 머물었고 1군 기록은 36경기 1홈런 7타점 .260 .305 .377 .682를 기록하였다.

2.3. 2008 시즌

동기이자 친구인 김태완은 빛을 보고 송광민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본인은 이 해에 윤재국, 추승우, 클락, 송광민에 밀려 별 빛을 보지 못했다. 추승우, 클락, 송광민은 그렇다쳐도 윤재국의 기록은…. 윤재국은 다음 해 7월에 방출되었는데 이후 행방은 위키피디아 - 윤재국을 참고.

시즌 성적은 45경기 4홈런 9타점 .245 .317 .443 .760을 기록

2.4. 2009 시즌

1군 붙박이로 있으면서 주전 좌익수로 출전하면서 주로 2번 타선에 배치되었다. 하지만 선구안이 좋지 않고 약점도 극명해서 삼진으로 말아먹기 일쑤였다. 볼넷이 34개인 반면 삼진은 88개.

수비에서도 별 좋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발이 느려서 수비 범위가 좁았던 데다가 타구 판단도 좋은 편이 아니었으며 어깨조차 좋은 편이 아니었다. 쉽게 말해 이영우의 몇단계 다운그레이드. 하지만 좌익수라는 포지션이 수비력이 좋지 않은 선수가 맡아도 별 문제는 없는 포지션이었기에 꾸준히 경기에 나갈 수 있었다.

이 해 122경기 11홈런 47타점 2도루 .253 .337 .414 .751을 기록하였다.

7월 16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에서 프로야구 통산 2만 호 홈런의 주인공이 되었기에, 연경흠 본인에게 있어 본의 아니게(?) 가장 눈부신 해가 되었다.

시즌 종료 후 경찰 야구단에 입대하였다.

2.5. 2012 시즌

제대 후 팀에 복귀했으나 눈에 띄는 활약은 보이지 못했다. 1군과 2군을 왔다갔다하다가 그대로 시즌을 종료했다.

42경기 62타수 11안타 1홈런 5타점 타율 0.177로 커리어 로우를 기록했다(…).

2.6. 2013 시즌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었으나 주로 백업요원으로 출전했다. 4경기에 출전했으나 안타 없이 1득점만을 기록하고 2군으로 내려갔다. 타격 능력에서 컨택 능력이 늘어나지 않으면 자리 잡기가 힘들어 보였고, 자신의 포지션이었던 좌익수 자리에는 이미 최진행이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결국 선수로서 은퇴 수순에 들어가서 한화 이글스 3군에서 코치 수업을 받았다가 2013년 6월 19일자로 정식 은퇴했다. 만 29세라는 이른 나이에 은퇴를 결심하게 된 것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던 고질적인 무릎 통증과 팔꿈치 부상 때문이었다고.. 계속해서 재활에 매달렸지만 회복이 힘들다는 판단 하에 은퇴를 결심했고, 구단에서도 이를 수용했다고 한다. 한화의 좌타 외야수 요원 가운데에서는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던 적도 있을 정도로 젊고 가능성이 있던 그였기에 적지 않은 팬들이 그의 이른 은퇴 선언에 아쉬움을 표했다.

은퇴 후에는 한화의 육성군 스카우트로 활동하게 되었다.

3. 기타 사항

야수로써는 체격이 작은 편이었으며 외야수이긴 했지만 좌익수밖에 못 본다는게 흠이었다. 게다가 리그 전체로 볼 땐 평균 이하의 수비력이었다. 빠른 뱃스피드로 공을 날려버리는 스타일이었으며 실제 그의 타구는 라인드라이브로 자주 날아갔다.
발이 빠르게 생겼지만 엄청 느렸다. 그 느리다는 김태완보다 느리다는 말까지 나왔으니 더이상 설명이 필요한지? 타격폼이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갈피를 못잡고 헤매는 모습이 보였으며, 떨어지는 볼에 취약한 타입이었다.



절묘한 슬라이딩 사진으로 인해 푸마로 합성되기도 했다.


대전시 용전동 이영상 씨 옆에 꼽사리 출연 2008년 올림픽 브레이크 때 해운대 풍경 기사에서 이여상과 우연히 등장했다. 자세한 사항은 이영상 항목 참조. 그런데 대전시 용전동 이영상 씨의 임팩트가 워낙에 강렬했던지라 연경흠이 같이 있었다는 걸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연경흠도 옆에 계신 여성분이랑 결혼했다참고해운대의 커플이 대전 신혼부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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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대학 진학으로 인해 실제 입단은 2006년.
  • [2] 한~화 연경흠~ 한~화 연경흠~ 오~오오오오~ 오오오오 이글스의 연~경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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