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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은분리법

last modified: 2015-04-08 00:14:06 by Contributors

鉛銀分離法. 혹은 단천에서 많이 나는 -광석을 이용한 방법이라고 하여 단천연은법(端川鍊銀法)이라고도 한다.

Contents

1. 개요
2. 정말 조선이 먼저인가?

1. 개요

조선 연산군 대에 김감불과 김검동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전해지는 고전적인 취법(cupellation, 灰吹法)의 일종. 회취법은 납이 포함된 은광석에서 는점의 차이를 이용해서 납만을 산화시키고 은을 골라내는 기술이다. 조선에서는 도가니를 이용해 용로(鎔爐)에 납을 얹은 후 그 위에 은을 깔고 불을 지피면 납이 먼저 녹아 재 안으로 떨어지고, 그 후에 순수한 은만을 응고시켜 추출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연은분리법과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연산군일기>에 수록되어 있다.

"良人金甘佛, 掌隷院奴金儉同以鉛鐵錬銀以進曰: “鉛一斤, 錬得銀二錢。 鉛是我國所産, 銀可足用。 其錬造之法, 於水鐵鑪鍋內, 用猛灰作圈, 片截鉛鐵塡其中, 因以破陶器, 四圍覆之, 熾炭上下以鑠之。傳曰, 其試之。”
양인인 김감불과 장례원의 노비인 김검동이 납으로 은을 불린 뒤 바치며 아뢰길, "납 한근으로 은 두돈을 불릴 수 있는데, 납은 우리 나라에서 나는 것이니 은을 넉넉히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리는 법은 철제 화로나 냄비 안에 재를 둘러 놓고 납을 조각내서 안에 채운 다음 깨진 질그릇으로 사방을 덮고, 숯을 위아래로 피워 녹입니다.” 하니, 임금이 명령하기를, “시험해 보라.” 하였다.
-연산 9년, 5월 18일

연은분리법이 고안되기 이전의 동아시아에서 어떻게 은을 얻었는지 살펴보면, 중국에서 구리와 은을 분리하는 방법이 개발되기는 했지만 다른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광석을 태운 다음 재에서 은을 걸러내는 원시적인 방법이 주를 이뤘고, 따라서 은의 생산량은 미진한 상태였다. 연은분리법은 이전에 중국에서 사용하던 회취법보다도 더 효율적이었으며, 더 많은 은을 산출할 수 있었고, 명나라의 실용서 <천공개물> 등에 소개되면서 널리 퍼졌다.

하지만 정작 이 기술을 고안했다고 알려져 있는 조선에서는 연은분리법을 제대로 써먹질 못했다. 세종 이후로 은광 개발이 억제된 탓에 일단 원재료인 은광석을 찾아보기가 힘들었고, 민간경제에서도 동전보다 면포로 물물교환을 할 정도로 화폐경제 발전이 늦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은 그 뒤 일본으로 건너가 꽃을 피우게 된다.

2. 정말 조선이 먼저인가?

한국의 일부 학계, 특히 일본의 학계에서 한국을 통해 전래되었다고 하는 설이 논란에 있다. 학계 논란에 대해서는 내용 추가바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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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기본적인 내용은 '迪倫齋雜想 : 첫번째 글로벌 무역금융 네트워크 - 은(silver) 무역을 중심으로' 글을 참조하는 것이 좋다. (5)http://dylanzhai.egloos.com/2376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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