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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

last modified: 2015-03-12 17:50:32 by Contributors

年號

원호(元號)라고도 한다. 연호를 선포하는 행위를 '건원(建元)'이라고 하며, 본문 중 상술하겠지만 연호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화권 전체의 맹주(황제, 제국)를 자처하는 행위였기 때문에 황제를 자칭하는 '칭제(稱帝)'와 더불어 칭제건원이라 묶어서 부르고, 중국 이외의 나라가 칭제건원을 하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 불경한 사건으로 여겼다.

Contents

1. 개요
1.1. 중국의 경우
1.2. 중화민국의 경우
1.3. 한국의 경우
1.3.1. 북한의 경우
1.4. 일본의 경우
1.5. 베트남의 경우
1.6. 몽골의 경우
2. 하위항목
3. 참고항목

1. 개요

중국을 중심으로 해 한국, 일본, 베트남, 몽골 등지의 한자 문화권에서 쓰였던 기년법. 중국한무제가 시작하였다. 임의의 해에 연호를 붙이고, 그 해를 원년(1년)으로 삼아 이후 '연호명 X년'으로 표기하는 방식이다.

연호는 과거의 시각을 표기하려 할 때는 어떤 일이 어느 왕이 다스리던 몇 년째 해에 일어났는 지 알면 연도를 쉽게 표기할 수 있으나, 반대로 미래의 시각을 표기하려 할 때는 애로사항이 싹튼다.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어, 아키히토라는 사람이 헤이세이라는 연호를 달고 1989년에 왕이 되었다. 그럼 헤이세이라는 연호를 쓸 때 기준으로 2088년을 표기하려면 헤이세이 100년이라는 연도가 갑툭튀한다. 물론 아키히토가 그때까지 살아있을 리가 없으므로 전혀 말이 되지 않으니 쓸 수 없으나, 헤이세이 다음에 쓰일 연호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으므로 불편함이 초래된다.

물론 연호를 쓰는 나라들도 개념있게 미래의 연도는 죄다 서기로 표기하므로 문제 없다.[1]

군주의 명칭을 그 군주가 반포한 연호를 이용해서 지칭하는 경우도 있는데 주로 명나라청나라의 황제들이 그렇다.[2] 명나라와 청나라는 일세일원제(一世一元制), 즉 황제 한 세대에 연호를 한 개만 반포하도록 하는 제도를 채택했기 때문에 황제를 지칭할 때 이름을 부르는 것은 엄청난 불경죄이고 묘호시호보다 '연호+황제'나 '연호+제(帝)'를 쓰는 게 일반화됐다. 예를 들어 주원장은 그의 연호를 따서 '홍무제'라고 부르는 식이다. 연호를 쓸 경우의 장점은 해당 황제가 살아있을 때와 그가 사망한 뒤에까지 동일한 명칭으로 지칭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묘호와 시호는 사후에 붙는 것이고, 시호는 너무 길어졌기 때문에 부르기가 버거우니[3] '연호+제'가 훨씬 실용성이 있었다. 한편 일본의 덴노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 일세일원제를 채택했지만, 연호를 사후에 그대로 중국의 시법과 무관하게[4] 시호로 올리게 됐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는 연호+덴노 식으로 부르지 않고, 사후에 연호+덴노 식으로 부른다. 예를 들어 현재의 덴노인 아키히토의 연호는 헤이세이이고, 사후에 헤이세이 덴노라고 불릴 '예정'이지만 살아 있는 지금은 헤이세이 덴노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덴노라고 하든지 곤조 덴노(今上天皇, 금상천황)이라고 부른다.

한편 연호를 써서 군주를 지칭하는 것을 영어로 번역 때는 '연호+칭호' 순으로 적는 게 일반적이다. 예를 들면 홍무제는 Hongwu Emperor[5]로 적는 식이다. 군주의 휘를 그대로 쓰거나, 묘호, 시호 또는 존호(尊號)를 쓸 경우 '칭호+이름/묘호/시호/존호' 순으로 써서 칭호가 앞에 오지만(예를 들면 Emperor Gojong 식으로) 연호의 경우는 칭호 앞에 쓴다는 것. 아마 '연호+칭호'의 경우 '그 연호가 사용되던 시기의 군주'라는 의미라서인 것 같다. 그리고 연호로 군주를 지칭할 경우, 문장에서 해당 군주의 칭호를 쓸 때 the도 앞에 붙여서 the Hongwu Emperor 식으로 써야 한다.[6] 단, 연호를 그대로 시호로 올리는 관습이 있는 일본의 덴노들은 Emperor Shōwa 식으로 칭호를 앞세운다. 시호라는 의미가 더 강해서인 듯하다.

1.1. 중국의 경우

황제의 권위가 물리적 공간과 백성들을 넘어 시간에까지 미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래는 황제가 느끼기에 국정을 쇄신할 필요가 있을 때나, 심하면 마음이 끌리면 기분전환 삼아 바꾸었다. 따라서 황제가 변덕스러운 성향이거나 나라가 어지러울 수록 자주 바뀌었으며, 대부분 두 요인이 일치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혼란기에는 한 해도 사용하지 못하고 휙휙 바뀌거나, 심지어는 몇 시간만에(...) 갈아치워버린 경우도 존재한다. 이외에도 나라에 재해나 이변이 발생했을 때, 또는 오행에 따른 60간지의 순환에 따라 연호를 바꿀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메이지 유신 이전 일본의 경우 갑자년(甲子年)과 신유년(辛酉年)에 개원을 하는 관례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당장 문서에 연월일을 기록할 때 애로사항이 꽃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라 나라 시대에 한 황제는 하나의 연호만 쓰는 일세일원제가 확립되었다. 그리고 곧 주변국도 이러한 관습을 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일단 이 방식이 정착되자 시호묘호와는 달리 당대의 살아있는 황제 본인에게도 사용이 가능하며, 독창적이라서 구분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었으므로 이후로 이전에 쓰이던 시호나 묘호 대신 (연호이름)+제(帝) 라는 식으로도 황제의 이름을 구분하게 되고, 특히 명·청의 황제나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 덴노의 이름은 이 관습을 철저히 따른다.

1.2. 중화민국의 경우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쑨원중화민국을 세운 것을 기념하여,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중화민국(中華民國, 약칭 민국)'을 사용하고 있다. 2015년은 중화민국 104년이다.

1.3. 한국의 경우

한국에서는 고구려 광개토왕 시기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것이 신뢰할 수 있는 기록으로 남아있는 최초의 용례이며, 이후 고고학적 성과를 통해 고구려가 '연가(延嘉)'나 '건흥(建興)' 등의 자체적인 연호를 사용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외에는 신빙성 있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 없어, 신라를 제외한 고구려나 백제에서 연호를 어떻게, 얼마나 사용했는지에 대한 전모를 밝히기는 심히 자료가 부족한 상태.

한국 역대 왕조 중 연호의 사용에 대해 그나마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발해신라로, 발해 초기부터 중기까지 사용된 연호가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신라에서도 6세기 법흥왕이 처음 사용해서 진덕여왕 시기까지 자체적인 연호를 사용했으나 무열왕이 즉위하면서 당나라에 외교적인 접근을 위해 당의 연호를 받아들이며 자체적인 연호의 사용을 포기했다.

이후 후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 초기까지 (주로 왕권 강화 목적으로) 자체적인 연호가 간헐적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10세기 중반 이후 동아시아의 국제적 역학관계가 고착되면서 사대를 표방하며 중국 왕조의 연호를 들여와 사용하는 용법이 정착되었다.

사실 연호를 독자적으로 제정하는 것은 해당 국가가 우리도 제국이며, 중국황제와 맞먹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중국이 경제적, 문화적, 군사적 주도권을 공고히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 심하면 왕조의 멸망으로 직결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역대 왕조들은 개국할 때나, 중국이 내부적으로 혼란해서 주도권이 약해졌을 때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것이다. 즉, 사대 정신이 강해서 안 쓴 것이 아니라, 쓰고 싶었으나 중국이 너무 강해서 못 쓴 것이다.

조선 왕조에 들어서면서 명나라사대의 예를 맺음에 따라, 명나라 황제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조선은 대청 관계에서만 청 황제의 연호를 사용했을 뿐, 내부적으로는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의 연호인 '숭정(崇正)'을 계속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공식적으로 중국과의 사대 관계를 청산하면서,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조를 세운 1392년을 '개국 원년'으로 하여 '개국기원(開國紀元)'을 새로운 연호로 도입하였다(이에 따라 1894년은 개국 503년이 된다). 1896년(개국 505년) 태양력을 도입하면서 '건양(建陽)'으로 개원(改元)하였고, 이듬해(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광무(光武)'로 바뀌었다. 이후 순종이 즉위하면서 '융희(隆熙)'로 개원하였다. 그러나 이미 나라 꼴은 망했어요 가끔 고종이나 순종을 연호를 따 "광무황제"나 "융희황제"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이지는 않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임정 수립 연도인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정하여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했다. 8.15 광복 이후 1948년(대한민국 30년, 단기 4281년) 제헌 국회에서는 새 정부가 사용할 연호를 논의했는데, 이승만은 임시정부를 계승하여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하자고 주장했고, 국회에서는 단기 연호를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단기 연호를 사용하기로 결정됨에 따라 대한민국 연호 사용을 중지하였다. 이후 1961년(단기 4294년) 박정희5.16 군사정변을 일으킨 후 연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 1962년(단기 4295년)부터 단기를 폐지하고 서기로 전환하여 현재에 이른다. 2015년은 대한민국 97년,단기 4348년이다.

1.3.1. 북한의 경우

주체왕국(...) 북한에서는 1997년부터 태조대왕의 출생년도 1912년을 원년으로 한 "주체" 연호를 쓰고 있다. 빼도박도 못하는 왕국 인증 위의 중화민국과 원년이 같으므로 햇수도 같다.

1.4. 일본의 경우

일본의 경우에는 아스카 시대 말기 타이카 개신(大化改新) 이후 연호를 도입, 에도시대까지는 심심하면 연호를 갈아치워 5년 이상 꾸준히 쓰인 연호가 드물 정도지만 메이지 덴노 이후 일세일원제를 도입하여 이후로는 해당 덴노의 연호를 덴노 사후 그대로 덴노의 이름(일종의 시호)으로 쓰는 용법이 정착되었다.

일본은 그저 바다 건너 먼 곳에 있어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의 질서 속에 포함되지 못했던 것이다. 당장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수양제가 일본의 사신이라는 작자가 보낸 국서에서 덴노를 해가 뜨는 나라의 임금이라고 명기하고 수양제를 해가 지는 나라의 임금이라고 표현한 것을 듣고도 그냥 넘어간것만 봐도 알 수 있으며, 일본 또한 중국의 번속국임을 자처한 경우가 다반사이다.

또한 조선은 단지 중국의 속국이라서 연호를 강요당한 것만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 참여하고 백해무익한 내부적, 외부적 분란을 피하며 조공체계 하에서 중국에 보다 가까운 포지션을 점유함으로써 더 큰 이익을 도모한 것이다. 자세한 것은 조공 항목을 참조.

1.5. 베트남의 경우

베트남의 경우 재미있게도 대외적으로는 중국에 사대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황제국을 표방하였으므로 10세기 쯤에 연호를 도입한 후 1945년까지(프랑스 식민지가 된 뒤에도 연호제는 유지) 연호를 사용하였다. 한마디로 외왕내제로 몰래 사용한 경우다. 동남아에서는 내가 그래도 끗발 좀 먹힌다

1.6. 몽골의 경우

한자문화권이 아니었던 몽골도 청나라로부터 독립한 직후, 보그드 칸 치하에서 "공대(共戴)"라는 연호를 사용했었다. 1911~15년 사이 사용되다가, 몽골이 다시 중화민국의 영향력에 들어가면서 사용이 중지되었다. 소련의 개입으로 1921년 다시 공대 연호가 사용되다가, 보그드 칸의 퇴위로 1924년 11월에 서력기원으로 바뀌었다.

이하는 차례대로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에서 사용되었던 연호의 일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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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중화민국 연호의 경우 미래의 년도 역시 중화민국으로 표기 가능하므로 문제없다.
  • [2] 물론 그 이전에도 사례가 있긴 하다. 경시제가 그 예이다.
  • [3] 물론 약칭 시호가 있긴 하니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
  • [4] 일본 역대 덴노들의 시호는 중국의 시법에 맞는 경우도 있지만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은 한국의 삼국(하대 신라는 제외)과도 비슷한 현상이다.
  • [5] Hongwu는 중국어 발음대로 적은 것이다. 오자 아니니 수정하지 말 것.
  • [6] 단순히 목록형으로 군주들을 나열할 때는 the를 생략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The Hongwu Emperor was the founder of the Ming dynasty." 같은 문장 안에서 사용할 때는 the가 붙어야 한다는 뜻. 반면 칭호를 앞세우는 이름/묘호/시호/존호 등은 the를 절대로 앞에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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