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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카테린부르크

last modified: 2015-10-22 16:14:03 by Contributors

예카테린부르크.png
[PNG image (1.33 MB)]

Contents

1. 개요
2. 도시 특징과 역사
3. 예카테린부르크 지하철
4. 출신 인물
5. 이야깃거리


1. 개요

러시아어: Екатеринбург
영어: Yekaterinburg
한국어: 예카테린부르크
문화어: 예까쪠린부르그

러시아 중앙부에 있는 대도시로 베르들롭스크 크라이의 주도이자 우랄 연방관구의 본부가 있다. 인구는 2010년 기준으로 약 135만명으로 러시아에서 4위이며, 한마디로 우랄 산맥의 중심도시.

도시의 이름은 러시아의 전설적인 여제인 예카테리나 대제에서 따왔다.

2. 도시 특징과 역사

도시가 우랄 산맥의 동쪽 기슭에 가까스로 위치해있기 때문에 아시아에 속해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유럽아시아를 나누는 오블리스크가 도시 서쪽으로 40km에 위치해있다.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경계선으로 터키이스탄불이 있다면 러시아엔 예카테린부르크가 있는 셈. 유럽모스크바극동 시베리아를 잇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예카테린부르크 역을 통과하며, 러시아 철도가 아시아로 이어지는 길목이기도 하다. 덕분에 근대 러시아 소설에서 누군가가 시베리아로 유형을 간다면 항상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머무는 장면이 나온다.

우랄 산맥의 풍부한 천연 자원들이 모이는 도시이기 때문에 공업이 상당히 발달했다. 러시아인들이 예카테린부르크하면 바로 떠올리는 것이 공장의 이미지. 도시 자체가 18세기 광산업을 위해 건설된 도시이고 이로써 축적된 부를 통해 공업, 금융업, 상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적백내전 이후 예카테린부르크는 우랄 산맥 권역에서 현재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스베르들롭스크(영어: Sverdlovsk, 러시아어: Свердло́вск)라는 이름으로 도시 이름이 개칭되었다.[1] 이후 스탈린이 우랄 산맥을 공업화하면서 군수산업도 크게 발달하게 되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예카테린부르크와 우랄 산맥 권역의 공업지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산업의 핵심이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체제가 무너지고 러시아 연방이 되면서 도시이름은 다시 옛 이름인 예카테린부르크로 바뀌었으나, 아직까지 이 도시를 포함한 주는 스베르들롭스크 주(Свердло́вская о́бласть)라고 불리면서 소련시대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에서 발전속도가 빠른 도시 중 하나다.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고 고층건물도 많이 올리는 중. 2020 엑스포 유치에 뛰어들었지만 두바이에게 밀렸다..
시내 교통은 트램과 트롤리버스가 활성화 되어 있다. 시베리아에 몇 없는 지하철 보유 도시이기도 하다.
시의 중심부에는 저 위의 사진에서 나오듯이 크고 아름다운 인공호수와 운하를 만들어 두었다. 시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며 가끔 카누를 타고 노는 사람들도 보인다.

3. 예카테린부르크 지하철


1호선 어차피 2호선 이상은 없다 프로스펙트 코스마노토프 역

지하철이 건설되어있다. 1980년 착공해서 1991년 개통되었고, 현재 1개 호선에 9개 역을 운영중이다. 참고로 완공이 91년 4월이고, 소련의 해체가 12월이라 소련의 마지막 지하철로 불리기도 한다.

원래는 3호선까지 계획되었지만 1990년대 초반 러시아 경제 불황으로 추가 증설계획이 취소되어 단일 노선 3개 역만 운영하는 반쪽짜리 지하철이 될 뻔하였다.추가 역도 힘든 판에 당연히 추가 노선은 꿈도 못 꾸지 다행히 옐친이 주예산을 지원하면서 1994년까지 6개 역으로 증설될 수 있었으며, 현재는 9개 역을 운영중이다.

점차 러시아 경제가 회복되고, 지하철 수요가 증가하면서 최종 3호선, 총 32개 역에 이르는 계획이 세워져있다. 현재 2호선이 2012년부터 공사중이다.

현재는 노보시비르스크와 예카테린부르크, 스크[2]만이 시베리아에서 지하철이 개통되어 있는 도시들이다. 첼랴빈스크 지하철은 현재 건설중이다.[3]

4. 출신 인물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와 같이 경기를 했던 피겨선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가 이 도시 출신. 전 대만 총통인 장징궈의 소련 출신 아내 장팡량(蒋方良, 본명 - 파이나 바흐레바) 역시 이곳에서 태어났다. 보리스 옐친이 이곳에서 대학을 나오고[4] 처음 일자리를 잡고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1991년 보수파의 쿠데타 당시 옐친에 의해 임시 수도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당시 옐친에 대한 지지세가 강했던 지역. 시내를 찾아보면 커다란 옐친의 동상이 있다. 다만 여기 출생은 아니고 같은 스베들롭스크주의 부트카라는 가까운 소도시 출신이다.

5. 이야깃거리

러시아의 마지막 황족인 니콜라이 2세 일가가 여기에서 최후를 맞았다. 현재 그 자리에는 당시 처형당한 로마노프 왕가를 추모하는 피의 성당이라는 정교회 성당과 관련 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스베르들로프스크였던 시절인 1979년에는 도시에 있던 생화학무기 연구소에서 생물병기로 생산된 탄저균이 도시에퍼지면서 몇 개월만에 수천 명이 죽었다고 한다.

2013년 지방선거에서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가 민주주의를 도입한 이후 러시아 대도시들 중 사상 최초로 집권여당이 아닌 야권 성향의 시장이 당선되었다. 시민 운동가 출신이라고 한다. #

대한민국의 인천광역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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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볼셰비키로 러시아 혁명기에 이 지역에서 활동하였으며 니콜라이 2세 일가 처형을 지휘한 야코프 스베르들로프의 이름을 땄다. 예카테린부르크 국립극장 앞에 이 사람의 동상이 있다. 개칭은 소비에트가 봉건적 색채가 남아있는 예카테린부르크라는 이름을 도시에 쓸 수 없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레닌그라드로 개칭된 상트 페테르부르크도 마찬가지.
  • [2] 1개노선, 4개역. 아직 건설중이다.
  • [3] 1992년에 건설을 시작해 2000년 개통을 목표로 했으나, 예산크리 등으로 연기에 연기를 거듭. 2011년에 겨우 첫 역을 완공하는 경이적인 건설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 [4] 이곳의 국립대인 우랄 공과대학교 출신. 건축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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