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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사와라 미치히로

last modified: 2015-03-11 20:44:41 by Contributors



주니치 드래곤즈 No.36
오가사와라 미치히로(小笠原 道大)
생년월일 1973년 10월 25일
국적 일본
출신지 치바현 치바시
포지션 1루수, 3루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6년 드래프트 3위
소속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1997~2006)
요미우리 자이언츠(2007~2013)
주니치 드래곤즈(2014~)

2006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MVP
스기우치 도시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다르빗슈 유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07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후쿠도메 고스케
(주니치 드래곤즈)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Contents

1. 개요
2.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3.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
4. 2011시즌 이후
5. 트리비아

1. 개요

일본의 프로야구 선수. 1999~2010년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던 강타자로, 저 12시즌 동안 MVP 2회, 베스트나인 7회, 골든글러브 6회를 수상했다.

준비자세에서 마치 무사가 칼을 뽑듯 배트를 쭉 뻗어주는 특유의 타격 준비자세와 호쾌한 스윙으로 별명은 '무사', 혹은 '미스터 풀스윙'. 일본에서는 '갓츠'(Guts)로 불리는 근성넘치는 플레이로도 명성이 높았다. 일본 넷상에서는 잘하면 갓츠, 못하면 캇스라고 부른다더라

일본인 타자치고는 스윙이 큰 편인데, 나쁜 볼을 잡아당겨 장타를 만들어내는 배트 컨트롤과 파워가 일품이다. 이 때문에 일본프로야구계의 대표적인 배드볼 히터로 분류되지만, 배드볼 히터임에도 선구안과 타석에서의 참을성은 상당히 뛰어나서 통산 출루율이 .390에 달한다. 2014시즌까지의 통산 OPS. 931는 4,000타석을 기준으로 일본프로야구 역대 10위.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으로 국내에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한국 투수들에게는 호구잡히는 인상. WBC 경기 하이라이트나 다큐 영상에서 일본타자가 헛스윙 삼진 잡히는 장면에서는 십중팔구 오가사와라를 볼수있다.

등번호는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부터 2번. 하지만 주니치 이적 후 36번을 달게 되었다.

2.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1997년 당시 도쿄돔을 홈 구장으로 사용했던 닛폰햄 파이터즈에 입단하였다. 처음엔 포수로 활동하다가, 1999년 오치아이 히로미츠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1루수로 전향한다. 1999~2000년에는 번트를 절대 대지 않는 2번 타자로, 2001년에는 1~3번을 오가며 최다 안타 1위(2000~2001년)와 20-20클럽(2000년)을 달성하는 등의 활약을 펼친다.

2002년에는 주전 3루수였던 가타오카 아츠시의 FA 이적으로 3번 타순에 정착하여 타율 .340, 홈런 32개를 때려내며 수위타자에 오른다. 3루수로 전향한 2003년에는 OPS 1.122를 찍으며 2년 연속 수위타자를 차지하는 동시에 골든글러브를 수상. 시즌 종료 후 아테네 올림픽 예선에 출전하는데, 시즌 성적은 당시 일본대표팀의 중심타자인 타카하시 요시노부, 조지마 겐지, 후쿠도메 고스케를 압살하는 수준이었으나 컨디션 난조 때문에 한국전에서는 8번 타순에 배치되기도 했다.

팀이 훗카이도로 연고지를 옮긴 2004년에는 2004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하여 일본대표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고, 2005년에는 컨택과 선구안에서 어려움을 겪으나 홈런에서 만큼은 37홈런으로 커리어 하이.

2006년에는 홈런왕, 타점왕, 리그 MVP까지 차지하면서, 팀에 44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1]을 안겨주었다.

3.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

도쿄돔 시절의 닛폰햄 파이터즈가 안습 수준의 비인기팀인 탓에 오가사와라 역시 그 시절까지는 성적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연고지 이전 후 팀을 우승에 올려놓았던 2006년의 맹활약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고 시즌 종료 후에는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인기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다.

요미우리에 입단하면서 그의 시그니처였던 수염도 깔끔하게 외모 상향 면도하게 되는데, 이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 선수는 수염을 기를수 없다'는 구단의 규정 때문. 사실 당시 오가사와라를 애타게 원하던 요미우리는 "너님은 특별 케이스로 수염 안 깎아도 좋으니 제발 오셈" 이라고 했으나, 오가사와라는 이왕 요미우리의 일원이 된 이상 자신이 팀에 맞추어야 한다면서 스스로 수염을 깎았다고 한다.

그런 팀의 기대에 부응하듯 이적 첫 해인 2007년, 요미우리의 리그 우승에 기여하며 자신은 MVP를 수상한다. 이는 일본프로야구에서 양리그에서 MVP를 차지한 역대 두 번째 선수.[2]

2008년에는 시즌 초반 어려움을 겪지만 페이스를 회복하며 .310/.381/.573 36홈런 96타점을 기록했고, 2009년에는 .309/.384/.543 31홈런 107타점을 찍고 베스트나인을 수상하며 팀의 정규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에 기여한다.

2010년에는 6월 4일 역대 18번째 전 구단 상대 홈런을 기록하는 등 .308/.394/.559/ 34홈런 90타점의 활약으로 2년 연속 베스트나인을 수상한다.

이 시기에는 주로 3루수를 맡았지만 1루수로도 자주 기용됐다. 3루 405시합, 1루 206시합.

4. 2011시즌 이후

2011년부터는 붙박이 1루수로 확정되었다. 오가사와라의 수비부담도 덜어주는 한편 고졸 3년차 거포 유망주 타 다이시의 3루 주전 정착을 위한 포석. 헌데 오타는 2군에서도 삼진머신인데

그러나 오가사와라는 극도의 부진에 빠지며 6번, 7번, 8번 타순에 배치되는 등 어려움을 겪는다. 컨택능력이 떨어졌고, 거기다 통일구의 영향으로 특유의 장타력까지도 떨어져 버린 게 문제. 8월에 들어선 그나마 타격감을 올리며 3번 타순을 되찾기도 했으나 시즌 최종 성적은 5홈런 20타점 OPS .653로 1998년 이후 최악의 성적. 부진 속에서 2011년 5월 5일에는 명구회 가입 기준이 되는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부상으로 제대로 출장도 못하면서 34경기 99타석에 나와 .152/.194/.185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둔다. 나이도 39세에 2년 계약 종료시점이라 은퇴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이지만 본인은 선수생활 연장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


2013년 6월에는 깜짝 기용으로 굿바이 쓰리런 홈런을 쳐내기도 했다.[3] 하지만 이 홈런 이후로 다시 침체기에 빠져들었으며, 이 홈런이 그의 2013시즌 처음이자 마지막 홈런이 되고 말았다. 이후 FA를 선언했는데, 출전 기회가 적어진 요미우리를 떠나 새 팀을 찾는다고. 다만 이제 40줄이라 받아줄 팀이 있을지는 의문. 일단 기사에 따르면 주니치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는 한다.

2013년 11월 26일 계약기간 1년 연봉 3000만엔에 주니치 드래곤즈와 계약했다. 주니치와 계약하자마자 수염을 다시 길렀다. 그리고 2014년에는 나이 때문에 선발출장보다는 주로 대타나 경기도중 교체 식으로 출장하는 경우가 많았고 81경기 83타석 출장해 .301의 타율로 비록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고 작년에 이어 1년에 홈런이 1개밖에 안나오는 등대형사와라 노쇠화로 인해 장타력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일본프로야구의 무시무시한 투고타저에도 불구하고 4년만에 3할에 복귀하는 등 대타요원으로 그럭저럭 쏠쏠한 활약을 해 2015년 재계약에 청신호를 켰다.

5. 트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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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팀의 전신인 도에이 플라이어스 시절인 1962년에 우승하고 44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 62년에 도에이를 우승시키며 리그 MVP를 차지했던 선수가 바로 장훈이었다.
  • [2] 첫 번째 양리그 MVP 수상자는 에나츠 유타카이며 1979년 히로시마 카프, 1981년 닛폰햄 파이터즈 소속으로 수상한 바 있다.
  • [3] 이 이전에 니코니코 동화에서 오가사와라의 굿바이 쓰리런 홈런을 예언한 MAD가 있어서 잠시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히메카와 유키 항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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