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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

인물사진의 거장 유서프 카시[1]의 작품 말년의 헵번

정식 풀네임은 오드리 캐슬린 러스턴(Audrey Kathleen Ruston). 세간에선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란 이름이 더 유명하다. 아버지인 조지프 앤서니 러스턴이 훗날 성에 헵번(Hepburn)을 붙이면서 본인도 'Audrey Hepburn-Ruston' 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영국의 영화배우. 당대 최고의 미녀 여배우 중 한 명이었다. 직업인 배우로서의 능력도 뛰어났고[2]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였으며 추정 IQ는 168인 엄청난 지성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영화계 은퇴 후에는 아름다운 선행을 펼쳐 더욱더 유명해졌다. 한마디로 미녀 + 천재 + 천사 완전체

Contents

1. 소개
2. 외모
2.1. 진정한 아름다움
3. 생애
3.1. 유년기
3.2. 세기의 연인
3.3. 사생활
4. 기타
5. 주요 출연작


1. 소개

마릴린 먼로로 대표되는 글래머 여배우들이 인기를 얻고 있던 시절에 호리호리하고 지적이며 고전적인 미인으로 등장하여 당대 최고의 미인 자리에 올랐으며 또한 현재까지도 영원한 미의 상징으로 불리우고 있다. 세기의 미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녀의 사진이 21세기의 휴대폰 광고에 쓰였을 정도이니…

2. 외모


오드리 헵번의 데뷔작 로마의 휴일에서 선보인 단발 헤어컷은 헵번 스타일이란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남아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 사브리나에서 지방시의 옷들을 입어서 지방시를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로 격상시켰으며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선보인 헤어스타일과 검은색 긴 장갑도 '헵번 드래스'라고 불리며 유명해졌을 만큼 영화 배우로 활동한 시기의 오드리 헵번은 한마디로 유행의 선두주자였다. 그래서 당대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각별히 사랑받은 여배우이기도 했다.

사실 1950년대 이후 오드리 헵번이 대중문화에 워낙 영향을 끼친 부분이 많다 보니, 우리 일상 생활에도 알게 모르게 정말 영향을 많이 끼친 영화배우. 심지어 오덕계에서도 오드리 헵번의 영향을 받은 캐릭터나 의상 등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렇듯 최고의 미녀라는 찬사를 받는 오드리 헵번이지만 헵번 본인은 외모에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지인들에게 털어놓기를 "나는 피부도 좋지 않아 화장을 하지 않으면 볼품이 없고, 얼굴이 각졌고[3] 콧등도 매끄럽지 않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90년대에 EBS에서 방송된 세계의 명배우 다큐멘터리에서 생전 오드리 헵번과 절친했던 친구가 밝힌 것으로, 다큐멘터리의 원래 명칭은 세기의 여성들 오드리 햅번 편.

"이런 얼굴로 영화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4] 그 외에 헵번 자신은 너무 말라서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왜냐하면 그녀가 영화 배우로 한창 활동할 시기의 헐리우드에서는 여배우하면 일단 글래머러스한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이 지배하고 있었고 실제로 헵번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여배우들이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헐리우드 여배우들 사이에서 '오드리 헵번은 거식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루머가 돌정도였다고... 하지만 평소 파스타를 두 그릇 씩이나 먹고 달콤한 디저트를 즐겼다는 것을 보면 원래 마른 체질인 듯하다.

2.1. 진정한 아름다움

하지만 오드리 헵번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건 외려 영화계에서 은퇴한 후부터가 시작이었다. 영화계 은퇴 이후 유니세프 대사로서 인권운동과 인도주의적 활동에 참가하고 제3세계 오지 마을에 가서 아이들을 도와주었으며, 그런 활동에서 미소짓는 노년의 헵번이 보여준 모습은 젊을적 미녀의 이미지 못지않게 유명하고 또한 아름답다. 특히 1992년 암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에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한 것이 유명하다. 이런 모습을 보인 분이라 헵번의 아버지가 나치 동조자였다고 까는 소수의 사람들은 십자포화TOT로 맞게 된다.[5]

Time Tested Beauty Tips 시간이 일러주는 아름다움의 비결

For attractive lips,
speak words of kindness.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For lovely eyes,
seek out the good in people.
사랑스런 눈길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For a slim figure,
share your food with the hungry.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For beautiful hair,
let a child run his fingers through it once a day.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다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그의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게 하라.

For poise,
walk with the knowledge you'll never walk alone...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다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해라

People, even more than things,
have to be restored, renewed, revived,
reclaimed and redeemed and redeemed ...
사람들은 회복되야 하고, 새로워져야 하며, 치유받아야 하고, 복구되야 한다. 그리고 계속 만회해야 한다.

Never throw out anybody. Remember, if you ever need a
helping hand, you'll find one at the end of your arm.
누구도 내쫓지 말아라. 네가 도움의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손 끝에서 찾을 수 있다.

As you grow older you will discover that you have two hands.
One for helping yourself, the other for helping others.
또 너도 나이를 들면 손이 두 개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위한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라는 사실을 . . .


오드리 헵번의 유언이라는 유언비어가 붙어 다니는 글로 사실은 헵번이 좋아했던 시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유언장에 저렇게 썼다면 모르지만,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사람이 저렇게 긴말을 남길 수 있겠나? 시인은 샘 레벤슨(Sam Levenson).

3. 생애

3.1. 유년기

벨기에 태생. 영국의 은행가인 아버지 조지프 앤서니 러스턴(Joseph Anthony Ruston)과 네덜란드의 귀족인 엘라 판 헤임스트라 남작 부인(Baroness Ella van Heemstra) 사이에서 태어나 벨기에와 영국, 네덜란드를 옮겨가며 지냈다. 아버지는 오드리를 낳은 후 가정을 버리고 방랑[6], 헵번이 영화배우로 성공한 이후에 아일랜드에 있는 요양원에서 다시 만난 게 전부라고 한다. 당시 나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매우 험악했기 때문에 오드리 헵번도 아버지를 만나는 것을 심히 고민했었다.

10대 시절 대부분을 네덜란드에서 보냈는데 그때 살던 곳이 바로 마켓 가든 작전으로 악명 높은 아른헴. 실제 자원하여 부상병 치료에 나섰다 전투에 휘말린 적도 있다고. 당시의 처참한 경험 때문에 평생 전쟁 영화 만큼은 출연을 사양했다고 한다. 헐리웃판 쟁과 평화에 출연하긴 하지만 전투장면에서는 출연하지 않는다. 여담으로 당시 16세의 간호사였던 헵번이 치료한 어느 영국군 부상병과 20여년 후에 다시 만나게 된다. 그 부상병은 007 시리즈그리고 망작 !인천의 감독 테렌스 영.

원래 건강한 몸도 아니었고 전쟁중에 갖은 고생을 다하며 영양실조로 인한 합병증에 시달렸다. 종전 후 영국에 돌아왔을 무렵 전쟁난민 지원모금을 위한 홍보 포스터의 모델이 될 정도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고.

로우틴 때까지만 해도 발레리나로도 제법 유명했으나 키가 너무 커져(170cm) 포기했다고 한다.아무래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나보다 어려운 집안 사정 속에 연기 활동으로 집안에 보탬을 주다 1950년대 들어와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그렇긴 해도 전체적인 지명도로 치면 무명이나 마찬가지였지만.)

3.2. 세기의 연인

오드리 헵번의 본격적인 스타덤은 1952년, 프랑스 작가 콜레트의 원작을 무대화한 뮤지컬 지지 초연에 캐스팅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후 24세 때인 1953년에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의 여주인공인 앤 공주 역에 오디션을 거친 후 발탁,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끈다. 로마의 휴일은 고귀한 신분의 여인이 평소의 일상에서 벗어나 평범한 남성과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는 이야기 구성의 원조로, 이것 외에도 훗날에 만들어진 여러 영화나 방송물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원래 로마의 휴일은 프랑크 카프라 감독이 캐리 그랜트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주연으로 만들 예정이였으나 조지 스티븐슨에게 프로젝트가 넘어갔고, 스티븐슨도 거절해서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하게 되었다. 와일러는 앤 공주를 진 시몬즈에게 맡기고 싶었지만 스케쥴이 안 맞아서 캐스팅이 불발되고 예산도 축소되어[7] 연극 배우로 어느정도 인지도는 있지만 영화계에서는 완전 무명이었던 오드리 헵번을 최종적으로 캐스팅하게 된다.

로마의 휴일은 오드리 헵번의 첫 주연작이지만 영화를 본 그레고리 펙이 자기 이름만 크게 나온 포스터를 보자, "헵번이 오스카를 탈 게 분명한데, 내 이름만 포스터에 나오면, 사람들은 나를 쪼잔하다고 비난할 거다"라면서 그녀의 이름도 같은 크기로 포스터에 넣으라고 파라마운트사에 요청하고 그의 예상대로, 헵번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8]

이후 1954년작인 사브리나에서 여주인공인 사브리나 페어차일드(Sabrina Fairchild)역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제27화 아카데미상 여우주연 후보에 오르는 등 인지도를 점점 높혀간다.[9]

사브리나 출연 직후 영화사쪽의 반대를 무릅쓰고 영화가 아니라 브로드웨이 연극인 <온디네>에 출연, 연극의 아카데미상이라 할 수 있는 토니상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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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61년.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작품인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에서 주인공을 맡은 그녀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다시 한번 자리매김한다. 특히 이른 아침에 검정색 선글라스 & 드레스를 입은 여주인공 홀리 고라이틀리(Holly Golightly)가 택시에서 내려 뉴욕 5번가에 위치한 티파니 보석상[10]의 쇼윈도우 앞에서 커피를 들고 도넛을 먹는 모습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의 명장면으로 그녀에게 스크린의 불멸성을 부여하였다. 물론 영화내에서 상류층의 남자들을 만나며 신분상승을 꿈꾸는 여성 홀리역을 훌륭하게 소화한 건 덤. 다만 헵번은 홀리의 성격이나 생활이 자신의 실제 성격과 너무 달라서 이 영화를 찍기 싫어했다고 한다.[11]

오드리 헵번이 영화상에서 맡은 배역 자체는 다양했지만 데뷔작부터 대부분의 영화상에서 헵번이 맡은 캐릭터의 성격은 순진무구함으로 세상의 때에 찌든 남자들을 변화시키는 여성상인 경우가 많았다. 오드리 헵번의 연기력이 모자랐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사나 대중들이 가장 오드리 헵번에게 바랐던 게 저런 이미지였기 때문. 오드리 헵번은 이에 불만이 많았는지 연기생활 후반기에 찍은 '어두워질 때까지'에선 시각장애인을 연기하여 기존 이미지와는 다른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다.

노래실력도 괜찮아서 뮤지컬 영화 화니 페이스 와 <마이 페어 레이디>에 출연하기도 했고 위에서 설명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는 훗날 명곡의 반열에 든 "문 리버"를 직접 어쿠스틱 기타를 치면서 부르기도 했다. 동화 오디오북도 녹음해서 그래미는 이 오디오북으로 받았다.

단,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오드리 헵번의 노래 장면은 다른 가수의 더빙이었다. 본래 영화판 마이 페어 레이디는 뮤지컬 초연 배우들을 그대로 기용하여 제작할 예정이었는데 영화사에서 초연 당시 여주인공을 맡았던 리 앤드루스의 낮은 인지도를 못마땅해 하면서 갑작스럽게 오드리 헵번으로 여주인공역을 바꾼다. [12] 하지만 헵번은 크랭크 인이 될때까지 뮤지컬 넘버들을 익힐만한 충분한 시간을 얻지 못했고 감독 또한 오드리 헵번의 노래실력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에 왕과 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등에서 노래 더빙을 한 마니 닉슨의 더빙으로 영화에 수록하게 된것. 더군다나 오드리 헵번은 줄리 엔드류스가 마이 페어 레이디의 출연이 불발돠고 출연한 메리 포핀스에 밀려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놓치는 바람에 헵번은 이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60년대 후반부터는 영화 출연을 줄여가다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1989년작 '영혼은 그대곁에(원제: Always)'를 마지막으로 영화에선 은퇴했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출세작 로마의 휴일과 유작 올웨이즈
담당은 달턴 트럼보이다.

리처드 드레이퓌스는 스필버그에게 "그런데 누가 천사를 연기할 거지?"라고 물었다. 스필버그가 "오드리 헵번"이라고 대답하자, 드레이퓨스는 "그래, 그녀말고 누가 천사를 맡을 수 있을까!"라고 감탄했다고...

3.3. 사생활

첫결혼 전 약혼했던 연인이 있었으나 헵번이 유명해지면서 스케쥴이 바빠지자 헤어진다. 이후 미국 배우인 유부남 멜 퍼러[13]와 사귀게 되는데, 멜 퍼러는 엄청난 바람둥이였고 성질도 더러웠지만, 헵번을 구워 삶았다. 결국 멜퍼러는 세번재 와이프를 버리고 오드리 헵번과 네번째 결혼을 하는데, 이 결혼은 아무리봐도 헵번이 아깝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탑여배우가 한물간 이혼남 배우랑 결혼하는 셈이었으니.

헵번은 아이를 좋아하여 많이 가지려고 했는데, 첫번째 임신때 사고로 유산한 이후 잦은 유산을 했고, 퍼러와의 사이에 낳은 자녀는 아들 하나로 끝난다. 이 결혼은 불행하게 끝장났는데, 멜 퍼러의 바람기 때문에 결국 헵번은 아들 하나 낳고 이혼했다. 이후로 헵번은 멜 퍼러를 피했으며, 면전에서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싫어했다고 한다. 멜퍼러는 장수하다가 2009년 90살로 사망했다.

두번째 결혼은 이탈리아 의사인 안드레아 도티와 하는데, 재혼시 나이가 40이었는데 아들 하나를 낳았다. 이후로도 임신을 하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더 이상 출산을 하지 못한다. 남자복은 지지리도 없는지 안드레아 도티도 바람둥이였고, 참고 살다가 결혼후 13년만에 이혼했다. 그래도 도티와는 계속 연락하고 지냈다고..

이후 사망시까지 네덜란드 배우인 로버트 월더와 동거했으나 결혼을 하진 않았다. 아이는 없었다. (동거 시작했을 때 나이가 50대였으니..)

매우 검소해서 아이들에게 밤새 동화책을 읽어주며 직접 밥을 해주고 빨래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사치도 하지 않았다. 스위스로 이사를 갔을 때는 허름한 옷을 입고 직접 짐을 날랐고, 협찬받은 의상은 모조리 반납했으며 예쁜 재규어 승용차도 가지고 싶어하면서 가족이 다 탈 수도 없고 장 보러 갈때 쓰지도 못한다고 끝내 안 샀다. 둘째 아들의 회고에 따르면 하도 사람들이 "너희 엄마가 밥은 주냐, 책은 읽어주냐"고 물어봐서 다른 엄마들은 아무도 집에서 밥을 안 해 줘서 자기에게 묻는 줄 알았다고 한다.

4. 기타

  • 오드리 햅번은 <사브리나>를 찍을 때는 전문 요리사 수준의 요리를 배웠고 <하오의 연정>을 찍을 때는 첼로 연주를 배워서 직접 첼로를 연주했다. <파계>를 찍을 때는 실제로 수녀 수업을 받으면서 영화를 촬영하다가 병원에 실려갔을 정도로 매 역할마다 진지한 자세로 임하였다고 한다.

  • 영화 '아멜리에'로 유명한 프랑스 배우 드리 토투도 부모님이 이 배우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 애완동물로 사슴을 기른 바 있다. 간혹 트위터나 웹상에서 사슴과 함께 있는 흑백사진들을 볼 수 있다.

  • 2013년 영국의 초콜릿 회사 갤럭시 초콜릿의 광고에 CG로 구현되어 등장했다.

  • 2013년 3월 7일에 방영된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는 헵번의 열렬한 팬이 등장했다. 심지어 이 양반은 스스로 헵번의 피규어까지 만드는 흠좀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죽어서도 팬을 거느린 무서운 헵번그팬의 블로그

  • Hepburn_doodl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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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4일 구글에서 오드리 헵번의 탄생 85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일 로고를 제작했다. #

  • 2014년 11월 29일부터 2015년 3월 8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오드리 헵번의 생애 전체를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린다. 헵번의 둘째 아들로 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 회장을 맡고 있는 루카 도티가 주관하여 헵번이 출연한 영화의 소품과 의상, 집에서 쓰던 물품 등을 전시한다고 한다

  • 골초로 유명하여 흡연으로 인한 결장암으로 1993년에 사망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보여 준 긴 담배 파이프가 유명하며 아직까지도 헵번 파이프라고 하면 통한다. 맨 윗 사진에 있는 저거. 대장에 생기는 결장암이랑 담배랑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흡연은 결장암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 지금 담배보다 훨씬 독한 저 시절 담배를 피우면서도 피부에 잡티 하나 없는 모습[14]을 보면 참.... 신은 불공평하다.



여담으로 담배 피우는 헵번의 모습이 2001년 우표에 담겨 발행된 적이 있는데, 헵번의 아들이 어머니가 담배를 피는 모습이 이미지가 좋지 않다고 하여 발행 중단을 요청, 중단되었고 판매된 것들은 전량회수되어 소각처리했다. 당연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가장 최근 낙찰가가 한화로 6억 7천만원 정도.(...)

1,400만장을 발행했으며 당시 폐기를 담당한 직원이 30장 가량 빼돌렸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만한 노후 자금이 없네 몇 장 남아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며 잊을만 하면 경매에 나와주셔서 그 때마다 최고가를 갱신하고 가시는 귀하신 몸이시다.



5. 주요 출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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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윈스턴 처칠의 그 유명한 노려보는 사진 등 수많은 명사들의 사진을 촬영한 대가다.
  • [2] 오드리 햅번은 미국 연예계에 12명밖에 없는 EGOT 중 한 명이다. EGOT란, 에미(Emmy, TV), 그래미(Grammy, 음악/청각 매체), 아카데미(Accademy, 영화), 토니(Tony, 무대공연)상을 모두 수상했다는 뜻.
  • [3] 정확히 말하면 사각턱. 사각턱은 서양에서는 흠이라기 보다, 미인으로 치는 경우가 많지만 헵번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인 경우.
  • [4] http://book.interpark.com/product/BookDisplay.do?_method=detail&sc.shopNo=&sc.prdNo=2268925&sc.dispNo=028016015 서평중에서…
  • [5] 어차피 아버지는 헵번이 어릴때 집을 나갔으니 영향을 받을 겨를도 없었다. 더구나 오드리 헵번 본인도 사실 나치 독일이 저지른 만행의 피해자들 중 하나였다. 어렸을 적 독일군이 최후의 발악으로 식량을 죄다 수탈해가는 바람에 쫄쫄 굶어야 했고 네덜란드가 해방된 후 연합군과 유니세프가 지원해 준 연유를 허겁지겁 먹다 탈이 났던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처절한 경험은 그녀가 인도주의적 활동을 하는 계기들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 [6] 나치 동조자였다고 한다.
  • [7] 영화의 주요 사건이 일어난 시간이 단 하루라는 것도 예산을 아끼기 위해서 나온 아이디어.
  • [8] 그레고리 펙은 헐리우드에서 드문 진짜 대인배 인격자로 유명했다.
  • [9] 이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이 입었던 옷과 스타일은 사브리나 팬츠, 사브리나 플랫이라고 불리며 유명하다. 참고로 영화배우에게 특정 브랜드가 최초로 의상 협찬을 시작한 영화가 바로 사브리나인데, 이때 협찬한 브랜드가 바로 그 유명한 지방시(Givenchy). 지방시는 이때 얻은 광고효과로 인하여 매출이 급격히 늘어 큰이득을 보았고, 이후부터 오드리 헵번이 출연하는 영화에 적극적으로 의상협찬을 아끼지 않았다. 헵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그녀가 입었던 검정색 블랙 드레스도 지방시의 브랜드일 정도. 단 헵번은 협찬받은 옷은 모조리 촬영이 끝나면 반납했다고 한다.
  • [10] 다이아몬드 액세서리 전문으로 유명한 실제 브랜드이며, 영화에서 나온 그자리에서 아직도 영업하고 있다. 직접 찾아가보면 영화를 추억하며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많은편.
  • [11] 참고로 오드리 헵번이 자신이 출연한 영화들 중에서 자신의 실제 성격과 가장 비슷한 영화로 뽑은 영화는 화니 페이스라고 한다.
  • [12] 이미 오드리 햅번은 영화 <퍼니 패이스, 1957>에서 뮤지컬 넘버들을 훌륭하게 소화한바 있었다.
  • [13] 영화 쟁과 평화에서 같이 출연한 배우이다. 영화서 주인공격인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역을 맡았다.
  • [14] 이정현이 동안 비결을 묻자 담배를 일절 입에 안 댄다고 대놓고 말한 것을 생각하자.
  • [15] 영문명도 똑같은 Audrey Burnh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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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3 11:5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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