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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야 시즈카

last modified: 2015-03-28 03:17:17 by Contributors

AKB48 팀 B 역대 부캡틴
초대 부캡틴 오오야 시즈카
(2014.02 ~ 2015.03)
오오시마 료카

AKB48 Team A
오오야 시즈카 (大家 志津香)
생년월일 1991년 12월 28일
소속 AKB48 팀 A
신체사이즈 164cm 84-63-89
혈액형 O형
별명 시쨩
출신 후쿠오카
링크 공식블로그 しーちゃんでんせつ(시쨩전설)
구글플러스 트위터


Contents

1. 개요
2. 이력
2.1. 고난
2.2. 개인 활동에서의 성공
2.3. 기타
3. 활동
4. 선발 참여곡


1. 개요

AKB48의 비운의 기수 4기 출신이다. 소속사는 와타나베 엔터테인먼트.

캐치프레이즈는 할수없다라는 말은 하지않겠습니다. 후쿠오카현에서 온, 팀A의 오오야 시즈카입니다.

무려 3년 1개월을 연구생으로 지낸, AKB48에서 가장 고생한 멤버 중 손에 꼽히는 멤버. 비록 승격한 후에도 AKB48 내에서 큰 족적은 못 남겼지만, 솔로 버라이어티 탤런트로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다. 황금 시간대 오락 프로에 2년째 고정 출연하는 등의 활약을 보이며 2014년 초 현재, AKB48 멤버 중 개인 인지도는 어지간한 선발 멤버들보다 높다.

엄청난 노력파로 노래와 댄스뿐만 아니라, 웃음을 전할 수 있는 MC와 장기자랑을 열심히 공부했다. 그 예가 다른사람들이 말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수첩에 적어놓고, 자신이 나온 TV프로그램은 자신의 부분을 몇번이나 돌려보면서 재미있는 점은 무엇이었는지, 이점이 왜 편집되었는지, 어떤걸 고쳐야 할 지를 철저하게 분석한다고 한다.

2. 이력

AKB48에는 타고난 미모와 아이돌성으로 순식간에 스타가 된 멤버들도 많지만, 그 정반대가 오오야 시즈카이다. 동기나 후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없다면 만들어라'라는 신조로 자신은 묵묵히 노력 할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동기나 후배가 점점 승격함으로 인해, 오오야는 '아 나는 틀렸구나, 슬슬 접어야할 시기인가'라고 생각해여, 자포자기가 되었던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연구생시절 제일 힘들었던 일이라고.

2.1. 고난

2007년 5월 'AKB48 4기 연구생 오디션'에 합격 된 후, 2010년 7월에 팀 A 정기멤버로 승격하게 되는데 ,실제로 3년 2개월(극장 데뷔에서 2년 4개월)이라는 최장 연구생 기록을 가지고 있었으며[1] 참고로 4기생의 동기중에 제일 먼저 승격한 사에키 미카는, 2008년 2월에 승격했다. 오오야는 4기생 동기가 승격하고 자신이 직접 춤등을 가르쳤던, 5기와 6기의 일부 멤버에게도 늦어져, 7기생과 같은 타이밍의 승격을 하였다. 그 때문에 지금도 팬들에게는 7기생의 한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4기와 5기의 멤버에게는 평범히 반말로 이야기 하고 있지만, 초기에는 블로그에는 왜 반말이야?라는 충격적인 코멘트가 달린적도 있다. 본인은 3년동안이나 힘든 연구생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해왔던 이유는 '4기 오디션에서 떨어진 사람들의 몫까지 열심히 해야겠다는 것, 그리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1명이라도 있는 동안에는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정한 것, 꼭 하고싶은게 있었던 것, 지기싫은 성격인 것등을 뽑고 있다. 당시로써는 오오야에게 'AKB'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도박이었고, 죽을 각오로 임해왔다고.

2009년 1월, 당시 연구생에 대해 처음으로 '셀렉션 심사'[2]가 시작했다. 실은 운영측은,오오야 시즈카를 극장에서 실컷 써먹고 이 시점에서 해고시킬 생각이었다. 셀렉션 심사중에 우연히 1기 오리멘인, 코지마 하루나시노다 마리코가 극장에 있어서 사정을 듣게되어 운영측에 '오오야는 열심히 하고있으니까 절대로 탈락시키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했다. 운영측은 그 말을 듣고는 최종적으로 '오오야는 해고시키면 안되겠다'라고 생각하여 해고를 면하게 되었다. 오오야는 우연히 극장에 있던 그 둘의 말 한마디로 인하여, 기적적으로 남게 되었다. [3]

하지만 오오야는 승격을 하게된 이후로, 더 큰 고난에 직면하게 된다. 연구생때는 그나마 많은 극장공연에서 언더라도 설 수 있어서 극장에서라도 인기가 있었지만, 정규멤버가 되고 난 후 정규멤버의 극장공연의 일 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미디어노출도 별로 없어서 그야말로 진퇴양난. 힘들게 정규멤버까지 올라왔는데 병풍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오오야의 상황을 반전시킨 것은 TV도쿄의 '주간 AKB' 오오야 시즈카의 고뇌편이었다. 이 편에서 악수회에서 팬들이 없어서 눈물을 흘리는등의 오오야 시즈카의 캐안습한 상황이 소개되어서 많은 화제가 되었다. 이 후 시쨩은 재조명되었고, 2011년 1월부터 소속사가 오오야를 슬슬 밀어주게된다. 미디어노출이 많아지면서 정말로 바닥을 쳤던 인기가 오른다. 3회 총선거에서 29위로 언더걸스에 진입하기도.

2.2. 개인 활동에서의 성공

이후의 행보로는 상당히 독특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룹 내부에서는 싱글에 선발되지도 않고 총선거 순위도 권외까지 떨어지는 등 전형적인 병풍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외부에서는 '히루오비'의 기상 캐스터를 맡거나 버라이어티 방송에서 맹활약하는 등 잘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일반인 상대로의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중이다. 특히 '미라클 나인'이라는 TV 아사히의 레귤러 예능에서 활약 중인데[4], 골든 타임 예능에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유일한 48그룹 멤버이기도 하다.

후지TV에서 중계해준 4회 가위바위보 대회에서 쟁쟁한 선발멤버들이 인지도 최하인 E 판정을 받은 반면 오오야는 B를 받는 신기한(?) 모습을 보여주며 병풍계의 희망으로 떠오르기도. 문제는 사람들이 오오야의 이름은 아는데 AKB48 멤버인 줄은 잘 모른다는 점(...) 한 마디로 AKB에서의 입지는 미묘하나, 탤런트로서의 입지는 굉장히 높다. 버라이어티 능력이 워낙 뛰어나 졸업해도 노로 카요(...)보다는 성공할지도.

2.3. 기타

친한 멤버는 같은 지방조인 사시하라 리노, 키타하라 리에, 요코야마 유이, 코모리 미카하지만 활발하고 친화력이 좋고, 많은 극장경험으로 많은 멤버와 두루두루 친하다. 많은 후배들도 오오야 시즈카를 존경하고 있다.

장래의 꿈은 '버라이어티'에서 활약하는 사람. 그래서 그런지 AKB와 XX에서 레귤러로 출연하다가 방송 졸업이 발표되었을 때(레귤러 멤버 교체), 가장 아쉬워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부모님은 횟집을 하시고 오오야 본인은 조리사전문학교생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리를 잘한다. 조리사면허는, 요리방송에 나오기때문에 취득하는 듯 하다고.

학생시절에는 '다이빙부'에 소속해서 AKB에 들어가서는 인스트럭터가 되었다. 데뷔 이후에는 AKB관련 버라이어티에서 크루즈 면허증을 벼락치기 공부로 획득(...).

특이사항으로는 결벽증이 있다. 전차의 손잡이나 화장실의 손잡이 에스컬레이터의 손잡이등 만지질 못한다. 그래서 방이 엄청 깨끗하다고 한다.

잠버릇이 엄청 심하다고 한다.

바나나맨의 방송 '바나나숙'[5]에 나와 말하길 평생 못 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고, 심지어는 가족들한테도 들었다고 한다. 특히 웃으면 더 못생겼다고 생각하는데, 이런식으로 주눅 들다보니 일 관련해서 사진촬영을 할때 카메라맨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좋아~ 이뻐~ 귀여워~' 라는 소릴 들으면 '왜 저런 거짓말을 하지?' 라는 생각이 먼저들어 기분이 나빠지고 웃을 수 없게된다고. 그래서 한때는 사진촬영 날만되면 몰래 울기도 했다한다. 그래서 MC들이 이 돼지야! 라고 불러주니 오히려 더 기뻐했다

3. 활동


2007년 5월 27일, 'AKB48 4기 연구생 오디션'에 합격한다. 오디션에 응모한 동기는 본인도 AKB48의 팬이여서 AKB48 콘서트에 갔을때 알게 된 다른 팬 여자아이에게서 '함께 오디션 받자'라고 초대 된 것이라고 한다.

2009년 8월 23일 'AKB48 조각마츠리'에서 신내각이 발표, 팀 A의 정식멤버로 눈물의 승격을 한다.

2010년 5월 4일, '비스킷 엔터테인먼트'로 이적. 후에 소속사 이름은 '와타나베 엔터테인먼트'로 바뀌게 된다.

2011년 제3회 총선거에서는 29위를 차지하면서, 감동의 언더걸즈에 진입한다. 동정표가 몰렸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는 의견이 많다.

2011년 9월 20일 'AKB48 24th 싱글 가위바위보 대회'에서는 6위를 차지. 생애 첫 선발이자 미디어선발에 진입했다.

2012년 4월 부터, TBS의 '히루오비!'의 기상캐스터가 되었다.

2012년 6월 6일 제4회 총선거에서는 5,933표를 득표 59위를 차지했다. 순위가 30위나 떨어졌고, 표수는 1,331표나 줄어들었다. 이유는 동정표가 나카야 사야카나카타 치사토에게 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래도 동정표가 다 빠진 알짜표가 '5,933표'가 된다는 것을 위안을 삼아야 할 듯.

2012년 8월 24일 도쿄돔 콘서트에서 신내각이 발표되어, 팀 B로 이동이 발표되었다.

2013년 6월 7일 제5회 총선거에서는 권외로 추락했다. 바닥에서 그렇게 고생해서 간신히 언더까지 진입했다가 다시 추락하는 안타까운 모습. 미야자키 미호와 함께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비관론까지 나오고 있다. 본인의 근성을 다시 한 번 보여줄 수 있을지는 시간을 두고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AKB 밖에서는 황금 시간대에 레귤러 방송을 뛰는 등 개인 활동에서는 나름대로 성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AKB48을 나가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2013년 9월 18일 제 4회 가위바위보 선발대회에서는 2연승 후 오오바 미나에게 패배하긴 했지만 간만에 선발 진입에 성공한다.

2014년 2월 24일 'AKB48그룹 대조각축제 ~시대는 변한다. 하지만, 우리는 앞밖에 보지않아!~'에서 팀 B 부캡틴 임명이 발표되었다.

2014년 10월 6일 충수염으로 공연을 취소하고 입원했다. 그런데 아리요시AKB공화국 232번째 에피소드에서 밝히길 이때 의사가 충수 잘라낸 거 보시겠어요?라고 물어봤는데, 오오야의 충수 길이가 일반인들보다 훨씬 길어서 절제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2015년 3월 26일, AKB48의 단독 봄 콘서트 'ジキソ まだ修行中'에서 4차 팀셔플에서 팀A로 이동 발표됨에 따라 부캡틴자리를 내려놓게 되었다. 후임 팀B 부캡틴으로 오오시마 료카가 되었다.

추가로, 이번 신조각으로 AKB48 팀A에 오오야 시즈카를 비롯, 나카니시 치요리, 오가사와라 마유, 나카무라 마리코가 한데 뭉치게 되면서 버라이어티계열의 새로운 캐미를 기대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시짱,쵸리,마츙,마리코라니..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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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4년 4월 현재, SKE 4기 연구생 이누즈카 아사나가 3년 6개월로 기록이 깨졌다.
  • [2] 연구생을 대상으로한 AKB48로써의 자질이 없는 멤버를 해고시키는 심사. 하지만 사실상 인기가 없거나 문제가 생긴 연구생들 정리해고이다.
  • [3] 나중에서야 코지마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인것 밖에 없고 오오야를 구하는 데에 적극적이었던건 시노다였다고 고백했다. 오오야는 쓴웃음.
  • [4] 림시츄가 하는 방송에 꽤 많이 나오는 편. 심지어는 크림난챠라에서 오오야 시즈카 팬 감사제 라는 기획을 방송하기도 했다.
  • [5] 2014년 1월 15일 방영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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