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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타니 요시츠구

last modified: 2015-04-01 20:18:04 by Contributors


(츠루가에 있는 요시츠구의 초상화. 실제로는 눈가를 제외하고는 되도록 얼굴 전체를 가렸을 흰 색의 두건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다)

Contents

1. 오오타니 교부쇼유 요시츠구
1.1. 개요
1.2. 오다 정권시기
1.3. 도요토미 정권시기
1.4. 히데요시 사후
1.5. 의리의 무장
1.6. 야사
2. 기타 매체
2.1. 바사라2
2.2. 전국 바사라
2.3. 지휘봉의 행방
2.4. 노부나가의 야망
2.5. 태합입지전
2.6. 전국무쌍 시리즈


1. 오오타니 교부쇼유 요시츠구

1.1. 개요

大谷 刑部少輔 吉継
1559~1600

일본 전국시대 무장이자, 다이묘.

히데요시의 코쇼[1]로 역사에 처음 나타났다.

다만 원래 신분이 미천한 아시가루였던 탓에 히데요시에게는 튼튼한 지지기반이 없었고 그 때문에 히데요시의 코쇼였던 요시츠구도 그렇게 대단한 출신배경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오오타니성이 그렇게 드물은 것은 아니니 몇몇 후보가 있긴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가문출신이 아니었던 것은 명확하다.

1.2. 오다 정권시기

히데요시의 측근으로 활약했다. 코쇼로 히데요시의 곁에 붙어다녔는데 능력은 물론 외모도 출중했다고 한다.

이 때 히데요시의 곁에 붙어서 전장에도 다녔지만 딱히 전공을 세웠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요시츠구의 역할은 히데요시의 경호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요시츠구에 대해서는 공식기록이 거의 없어서 딱히 알 수 있는 일이 없다.

1.3. 도요토미 정권시기

오다 노부나가혼노지의 변으로 횡사하자 그 후계자다툼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은 요시츠구의 주군이기도 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였고, 이에 따라 요시츠구의 운명도 덩달아서 피게 된다.

원래 자기기반없이 맨손으로 자수성가한 히데요시는 자기보다 신분이 높았던 다른 다이묘들이나 사무라이들에 대해서 꽤 의심이 많았고 그래서 자기사람에 집착했고, 그 때문에 유력인재의 육성이나 스카웃에 치중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무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이 시즈가타케의 칠본창이라고 불리우는 7명의 인재로 히데요시는 여기에 더해서 세 자루의 타치에 비견될 만한 인재가 있다고 말했는데 그 중 하나가 요시츠구였다. 즉, 이런 호칭들에는 히데요시의 인정을 받은 도요토미 정권의 엘리트로 차후 중진을 맡게 될 것이 분명한 인물들이라는 측면이 존재했다.

히데요시가 후일 사무라이출신으로는 유례가 없이 중국의 삼공에 해당하는 칸파쿠의 자리에 오르자 이에 따라 그 측근인 요시츠구도 종5위를 서품받게 된다.

1589년에는 마침내 5만석을 받고 다이묘격이 된다. 당시 후호죠씨는 급격히 세력을 불리는 히데요시에 대항하기 위하여 군비증강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히데요시도 후호죠씨를 무력으로 꺾을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자신의 측근인 요시츠구에게 힘을 보태어준다는 의미가 강했다.

후의 역사를 다룬 매체에서는 이 오다와라 정벌을 마치 히데요시가 대군으로 후호죠시를 압살한 것처럼 묘사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꽤 변수가 많고 정치적인 상황이 안정되지 않아서 히데요시로서도 상당히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다. 후호죠씨와 다테 마사무네는 동맹관계였고 이들의 군세를 다 합쳐도 히데요시보다는 못했지만 당시 히데요시의 군은 여러 다이묘의 군이 섞인 연합군이었고 이중 일부가 이들에게 호응이라고 한다면 단숨에 와해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히데요시의 밑에 있던 다이묘들은 히데요시의 군사력이 두려워 굴복한 것뿐이었지 신뢰관계로 맺어진 것이 아니었다.

요시츠구는 오다와라 정벌에도 동참했는데 주목할 만한 점은 홋카이도다이묘의 이명으로 알려진 카키자키씨가 히데요시밑에 줄을 대기 위하여 요시츠구와 접촉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당시 홋카이도와 그 인근지역은 아이누등의 소수민족에 의하여 통치되어 일본의 조정과 막부의 영향력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홋카이도에 터를 잡은 카키자키씨는 사실상 야인취급을 받았다. 실제로도 아이누와 군사적인 갈등을 통해 가문이 거의 멸문직전까지 몰린 적이 있을 정도였는데 그 카키자키씨가 히데요시에게 접촉했다는 건 첫번쨰로 사실상 일본이 거의 히데요시의 수중에 넘어갔다는 뜻이고 두번쨰로는 요시츠구가 히데요시의 측근이라는 사실이 그런 변두리까지 알려졌다는 점이다.

1.4. 히데요시 사후

요시츠구는 병을 앓아서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져 있었는데 이것이 한센병을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다. 임진왜란 시기에는 출진하지 않고 일본에 남아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사실 게임등의 이미지가 강해서 군략에 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요시츠구의 업적의 대부분은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행정적인 것이고 히데요시에 의하여 중용되었던 시기에 맡은 일들도 서류업무가 많은 편이었다.

다만 그 후에 병을 고치고 다시 집무에 나섰다는 이야기를 보면 이 때는 한센병에 걸리지 않았었을 가능성이 높다. 후세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 때 요시츠구는 권력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태두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친하게 지냈다. 실제로 도요토미 정권의 제2인자였던 마에다 토시이에와 그 일파가 히데요시 사후 제멋대로 구는 이에야스를 징벌하기 위하여 공격을 가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카토 키요마사등의 무단파와 함께 이에야스의 저택을 경호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에야스가 친도요토미파였던 우에스기 카게카츠에게 압력을 넣기 위해 군을 동원했을 때는 요시츠구도 참전했다. 이 때 실각상태였던 이시다 미츠나리와 만나서 이에야스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이시다가에서도 인원을 보내자는 제안을 하는데 거꾸로 설득당하여 서군에 붙고 만다.

결국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서군으로 참여하여 오전 중에는 토도 타카토라와 교전했다. 오후에는 코바야카와 히데아키의 부근에 진을 쳤는데 당시 히데아키는 동군과 서군 모두에게 어느 쪽에 붙을지 알 수 없는 놈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사실 이에야스가 포섭을 위해 히데아키와 접촉하고 있다는 건 서군측에서도 다들 알고 있었지만 괜히 그걸가지고 뭐라고 했다간 되려 그걸 빌미로 동군에 붙어버릴 우려때문에 달래는 정도가 고작이었고 그나마 요시츠구라면 히데아키를 억누를 수도 있다고 보아 거기에 배치된 것이었는데 우려대로 히데아키는 배신하고 동군에 붙었고, 그 때문에 최초의 희생자가 요시츠구가 된다.

히데아키가 배신하는 꼴을 본 다른 무장들도 더 이상 서군에게 가망은 없다고 보고 연달아 배신했고 그 때문에 요시츠구는 조금전까지 아군이었던 부대에게 집중공격을 받는 꼴이 되었고 결국 요시츠구는 자해했다.

이 후 요시츠구의 목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불명.

사세구
육도의 갈림길에서 기다리리라, 언젠가 저승에서 우리 다시 함께 하리.
(契りあれば 六つのちまたに 待てしばし おくれ先立つ たがひありとも)

요시츠구의 사후 오오타니 가문은 기반을 잃고 그 아들은 로닌이 되어 오오사카성에 입성했으나 결국 전장에서 죽고, 그 자손들은 사무라이를 때려치우고 귀농했으나 결국 직계혈통은 단절되었다.

참고로 같은 서군인 사나다 노부시게와는 친인척관계로 요시츠구의 딸로 추정되는 치쿠린인이 노부시게의 정처다.

1.5. 의리의 무장

여러 매체에서는 마치 이시다 미츠나리, 사나다 유키무라등의 서군이 의리가 있어서 도요토미측에 가담한 것처럼 묘사하기도 하지만 그건 결과론적인 발상으로 당시에는 어느 쪽이 이길지 가늠하기 힘들다하였다. 실제로 많은 로닌들이 세키가하라 이후로도 구직을 위하여 오오사카를 찾았다고하는데 이건 당시 사람들이 도요토미측이 이길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았다는 충분한 근거다.

또한 전기한대로 요시츠구는 원래 히데요시가 죽자 이에야스에게 줄을 대는 등 꽤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에 밝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히데요시 사후 히데요시파인 마에다 토시이에와 이에야스간에 정치적인 갈등이 있었는데 누가 먼저 죽느냐에 따라서 다음 정권을 쥐는게 누구냐가 결정된 판국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도요토미파인 토시이에가 아니라 이에야스에게 줄을 댄 것은 요시츠구가 의리가 아니라 이해로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토시이에는 병치레때문에 얼마 가지 못하고 죽을 거라는 예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시마즈, 모리, 사나다, 우에스기등은 무력으로 굴복한 것뿐이고 히데요시를 섬긴 기간은 그리 길지도 않기 때문에 굳이 보은을 위하여 몰락해가는 도요토미 히데요리에게 가담했다는 발상자체가 글러먹었다. 당장 몇십년전의 전국시대만해도 주인이 신하의 뒤통수를 치거나, 아버지와 아들이 다른 편으로 갈려서 싸우는게 일상이었던 전국시대다. 그런데 그 다이묘들이 전부 고작 히데요시 정권 동안 충의의 사무라이가 되었을리가 없다.

유명한 이시다 미츠나리와의 우정도 대부분 후세에 창착을 통해서 강조된 것으로 그렇게까지 깊은 교분을 나누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미츠나리하고는 사실상 동기인 셈이었기 때문에 평소부터 친하게 지냈다는 기록자체는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1.6. 야사

그 군략을 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요시츠구에 대해 "병사 백만을 지휘시켜보고 싶다."고 칭찬했다는 야사가 있다. 다만 실제로 그런 말을 했다고쳐도 원래 히데요시가 사람을 칭찬할 때는 과하게 하는 편이라서 딱히 신경쓸 바는 못된다. 사실 요시츠구는 게임등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군사적인 면에서 크게 활약한 적은 없다.

유아사 고스케가 목을 묻으려 할 때 때마침 동군의 무사 도도 니에몬 타카노리(도도 다카토라의 조카)가 그를 발견했다. 고스케는 사정을 설명하고, 주군의 목을 묻는 대신 자신의 목숨을 내놓게 된다.

후에 이에야스가 니에몬에게 요시츠구의 목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자 그는, '알고는 있사오나, 사나이끼리의 약속이므로 죽어도 말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만약 말했더라면 큰 상을 받았을 터인데도 약속을 지키려는 그에게 이에야스는 크게 감동하여 더 큰 상을 내렸다고. 다만 이 이야기는 역사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요시츠구하면 유명한 것이 요시츠구가 한센병환자라는 이야기지만 사실 여기에는 역사적인 근거가 없다.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야기자체도 에도시대나 되서 나돌기 시작한 것으로 그 이전에는 매독설이 있었다. 세키가하라때는 가마에 탄 상태에서 지휘했다고 하는데, 당시의 전투양상은 지휘관이 직접 말을 타고 야전지휘를 할 일은 없었기 때문에 가마를 타고 지휘를 하는 일자체가 그렇게 드물었던 것은 아니다. 고로 이것만으로 말을 타지 못할 정도로 병이 악화되었던 상태였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 당시 중병에 걸렸었는지 어땠는지도 불명.

오오사카 성에서 열린 다회(茶會)에서 오오타니가 돌린 차[2]를 모두가 마시는 시늉만 하고 입에 대지는 않았으나 오직 미츠나리 만이 주저 없이 차를 들이켰고[3] 이후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후세의 창작이고 이시다 미츠나리와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히데요시하고 있었던 일이라고도 한다. 다만 전기한대로 요시츠구가 한센병에 걸렸었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단순한 야사에 불과하다.

할복하기 전에 배신한 코바야카와 히데아키의 군사가 있는 방향을 향해, 인면수심이로다. 삼 년 사이에 재앙을 내리리라(人面獣心なり。三年の間に祟りをなさん)라고 저주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코바야카와 가문은 이후로 흉흉한 일이 끊이지 않았고, 세키가하라 전투가 끝나고 불과 2년만에 당사자인 히데아키 또한 후사 없이 사망하여 대가 끊겨버리고 말았지만 당연히 야사.

원래 가문이 딱히 큰 가문도 아니었고 히데요시의 총애를 받은 것때문에 히데요시의 사생아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는데 역시 근거는 없다. 오히려 오오타니가는 그 뿌리를 명확하게는 알 수 없더라도 정황상 몇몇 후보가 있기 때문에 출신배경으로만 보면 요시츠구쪽의 격이 히데요시보다 더 높았던 것 같다.

2. 기타 매체

2.1. 바사라2


전장에서 죽는 것은 무사의 본연! 와라!


바사라2에서는 5번째 스테이지의 마지막 중간보스(고정)로 등장하는데, 묘하게 흑마법사(…) 같다.

2.2. 전국 바사라


전국 바사라 3에서부터 등장. 성우는 타치키 후미히코.

배경 설정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활약할 무렵에 이시다 미츠나리, 도쿠가와 이에야스, 쿠로다 칸베에 등과 함께 싸웠다고 한다.

이시다 미츠나리의 친구이자 그의 보좌관으로 이시다군의 참모역이다. 전작에서 친구이자 동료사이였던 히데요시와 한베에의 관계와 똑같은 셈. 신작인 바사라4의 설정집에 의하면 미츠나리와는 소년시절부터 친구였다 한다. 이에야스의 복수 밖에 모르는 이시다 미츠나리를 보좌하여 서군의 형태를 유지한다. 이시다에게서 '한베에님 다음으로 가장 지혜로운 자'라고 극찬받을 정도로 열렬한 신뢰를 받고 있으며, 실제 공식 설명중 하나는 '이시다 미츠나리의 복심(腹心)'. 모든 사람들에게 잔혹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남자라 평가받는 이시다이지만, 그의 지나치게 올곧다 못해 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을 오오타니가 꿰뚫고 있기도 하다.

굳이 미츠나리를 도우며 서군에서 싸우는 이유는 단 하나. 세상을 불행하게 하기 위해, 세상을 비추는 태양과 같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없애기 위해서. 사실 이에야스를 증오하는 미츠나리를 이용하여 세상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중에 뜬 상태로 다니며, 큰 구슬들을 조종해 적을 없애는 원거리형 캐릭터. 통상기나 고유기 버튼을 길게 누르는 것으로 적에게 인을 붙이는 것이 가능하며, 이후 고유기를 쓰면 구슬들이 인 붙은 적을 자동으로 찾아가 끌어오는 유도 성능을 가지거나 공격력이 증가하거나 추가 히트가 발생하는 등의 강화가 일어난다. 즉, 적을 만나면 일단 인부터 붙이고 시작해야 한다. 잡병들을 없애는 능력은 좋긴 하지만 대장전에서는 좀 불리하기도 하고, 다른 캐릭터와 달리 방향 전환이 즉시 되지 않는 등 조작이 까다로운 편이라 육성을 기피하는 유저들도 있다. 하지만 익숙해진다면 적 무장전에서 자신은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적 대장을 끌어왔다 밀어냈다 하며 농락하는 짓도 가능하다.

덧붙여 초기에는 설명이 "무거운 병에 걸려있어 도요토미 히데요시 생존 시대부터 타인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왔다. 자신의 몸에 닥친 불행을 견디지 못하고 모든 인간을 불행에 빠뜨릴 목적으로, 전국을 전쟁에 휘말리게 하기 위해 암약한다."이었는데 이것이 한센병 환자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준다고 하여 일본 한센병 협회에서 캡콤에게 항의한 바가 있다. 그래서 캐릭터 설정과 설명이 현재처럼 수정되었다. 하지만 제품판 설명서에서는 고쳐지기 전 설정이 그대로. 눈 가리고 아웅인가?

사실상 서군의 진정한 흑막이자 악의 축으로 츠루히메, 오이치, 쿠로다 등을 이용해 먹으면서 이익을 챙기는 등 모리 모토나리와 서로 짜고 쵸소카베 모토치카의 시카쿠를 괴멸한 것도 직접 한 일이다. 모토치카가 부하를 시켜 이에야스에게 편지를 보냈을 때 그 부하에게 구슬을 박아 죽이고 편지를 중간에 가로채며 이를 이에야스가 한 짓처럼 오해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이 인물. 단순히 이에야스를 죽이고 싶어하는 미츠나리와는 달리 본인은 세상 사람에게 평등한 불행을 선사하겠다는 상당히 삐뚤어진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테마곡도 흑막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나쁜 남자인 모리와는 달리 이 쪽은 의외로 제법 인간적인 면을 많이 갖추고도 있다. 미츠나리와는 정말 친하지만 속으로는 친구도 꿈도 자기 관리도 못 하는 그를 바보 같은 사내라 비꼬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절대적인 신뢰와 의지를 하는 그를 보며 점점 순화되어 간다. 특히나 2회차 루트에서는 미츠나리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 지를 알 수 있다. 모든 세상에 불행을 선사하려 하며 심지어는 동맹인 모리나, 자기 자신도 포함되어 있지만 유독 미츠나리만은 여기서 제외할 정도니 말 다 했다.[4] 최종적으로 이에야스에게 미츠나리와 큰 인연으로 이어졌다는 말에 본인은 강하게 부정하며 인정하지 않았으나 결국 엔딩에선 미츠나리에게 창을 날리는 혼담의 창을 대신 맞고 사망하는 모습을 보인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는 난코보 텐카이와 함께 흑막으로 등장. 미츠나리를 이용해 오다 노부나가를 부활시켜 온 세상에 불행을 가져다 줄 계획을 짰지만 끝까지 자신을 신뢰하는 미츠나리를 보며 점차 마음이 흔들렸고 결국 미츠나리가 노부나가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빠지자 자신을 희생하여 미츠나리를 구출한다. 죽기 직전에서야 자신도 미츠나리를 소중한 친우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후회하며 죽어갔다.

겉모습이라든가 여러 흑막의 모습 때문에 상당히 비호감 캐릭이라 보였지만 의외로 인기는 높은 편. 중간 인기투표에서 무려 9위를 차지했다. 공기 주인공인 케이지보다도 1위 높은 셈. 지못미 케이지……. 많은 사람들에게 '플레이 후 인상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캐릭터'라는 평가를 듣는, 상당한 인기캐릭터이다.

덧붙여서 웃을 때 웃음소리가 굉장히 섬뜩하다. 완폐아 주제에!

전국 바사라 3 연에서는 마츠나가 히사히데 스토리 모드즉, 3편의 서군 흑막과 2편의 흑막의 만남에서 히사히데에게 털린 후 축 쳐져서 사망하는 모습이 나온다. 3편의 모리 모토나리 스토리에서도 사망하는 등 스토리 모드에서 유난히 사망하는 장면이 많은 캐릭터이다.

그리고 연에서는 방향 전환이 어려워서 조작이 까다로운 것은 여전하지만 전용 아이템의 성능이 업그레이드 되어 상당히 강해졌다. 다른 사기 캐릭터들에 묻혀서 그렇지 오오타니 역시 알고보면 꽤 강한 캐릭터이다. 3편에서는 전용 아이템의 효과가 인을 붙인 적을 공격했을 때 히트수가 3이 되는 것이 전부인 잉여 아이템이었지만[5] 여기서는 인이 붙은 적을 공격하면 히트수 3에 무조건 암속성 발동이라는 효과가 추가되었기 때문에 적을 공격할 때마다 자신의 체력이 계속 회복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즉, 속성 무기인 4무기에 목맬 필요 없이 공격력이 강한 5무기나 6무기를 써도 된다는 뜻이다. 덧붙여 적을 염주로 끌어왔다 밀어냈다 하는 패턴은 아무리 바사라 난이도 적 무장이라도 벗어나지 못한다. 능숙한 사람이 할 경우 정말로 적장이 몇 번 앞뒤로 왔다갔다 하다가 비명횡사하는 통쾌한 장면도 볼 수 있다. 혼담처럼 다운되지 않는 적장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덤으로 바사라기 역시 명중률이 좋은 편이라 바사라 난이도에서도 적 무장들이 잘 피하지 못 한다.

그리고 인을 붙인 적에게 히트수가 올라간다는 것이 별거 아닐 것 같지만 실제로 해보면 꽤나 유용한 효과이다. 특히 염주를 부채꼴 모양으로 쏘는 기술은 다단 히트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적 잡졸이 몰려있는 곳에 죄다 인을 붙인 다음 이 기술을 단 한번만 써도 순식간에 1000히트가 넘어가면서 슈퍼 피버가 뜨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즉, 이를 잘 이용하면 1만 히트 같은 것은 문제도 아니며 항상 돈이 궁한 이 게임에서 돈벌이에도 꽤 도움이 되는 효과이다. 그리고 인을 붙이는 순간 잡졸들은 일단 모두 다운되기 때문에 잡졸의 압박이 유난히 심한 바사라 난이도에서는 인 붙이는 기술만으로도 적의 공격을 차단하는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즉, 이 캐릭터를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조작에 익숙해지는 것과 적들에게 인을 잘 붙이는 것이 관건이 된다.

동인쪽에서는 코쥬로, 사스케와 함께 바사라 3대 엄마 캐릭터로서 인기가 많다. 그 이름도 '팀 전국 엄마'. 쉽게 화를 내는 미츠나리를 달래는 대사가 많고, '핏자국은 닦고 나가라' '잠 좀 자라' 등등 여러 뒷바라지를 해 주는 대사도 많기 때문. 그리고 미츠나리 본인도 오오타니의 충고나 진언은 곧잘 듣는다. 사실은 오오타니 말 이외에는 거의 듣지 않는게 맞지만.[6]

세키가하라 맵에서 미츠나리 회복 이벤트 등, 항상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자신 역시 미츠나리를 진심으로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불행한 남자다. 실제로 문둥병 때문에 흉해진 자신의 몸을 보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 마음이 삐뚤어진 점 등을 생각하면 마냥은 악당이라고 할 수 없는, 상당히 인간적인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전국 바사라 4에서도 건재. 한베에히데요시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는것은 물론이고, 미츠나리와의 우정도 여전하다. 4의 시간대에서는 비록 히데요시는 살아있지만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군을 떠난 탓에 미츠나리가 눈뜨고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나 시마 사콘이 들어오면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듯. 공평한 불행을 위해 미츠나리를 이용할 작정이었던 오오타니는 사콘의 존재를 꺼림칙해하지만 미츠나리에게 비탄을 안겨준 이에야스에게도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7] 자신의 모순을 차츰 눈치챈다. 이때 그의 회상으로 다회 사건이 언급되는데, 자신을 동정해서 모두가 꺼리던 차를 마셨냐고 미츠나리에게 묻자 미츠나리는 너따윈 신경 안 쓰고 히데요시님의 다회를 망치는 행동을 참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은혜를 입힐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미츠나리의 바보 같은 점에 어처구니 없어하는 한편 그때부터 미츠나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싶진 않다고 생각하게 된 듯하다.
이 즈음 모토나리에게서 배신을 권하는 편지가 오고, 미츠나리는 초조해하며 그 내용에 대해서 묻고는 거절했다는 말을 듣고 안심한다. 결국 자신이 미츠나리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며 엔딩.

노답 친구와 서군을 먹여살리기 위해 미래에서 아르바이트 중이시다

2.3. 지휘봉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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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신장 178cm, 비주얼 연령 27세. 취미는 햇볕 쬐기. 좋아하는 것은 시오콘부.

이시다 미츠나리의 친우로 훌륭한 군사지만 병으로 인해 시력을 잃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병에 걸린 뒤 사람들에게 기피되고 그 자신도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고 있었지만 오사카의 다회에서 미츠나리와 만난 뒤 그 '바보 같은 모습'에 친우가 된다.

게임 내에서는 미츠나리에게 여러 조언을 해주지만, 종종 미츠나리의 발전을 위해 미츠나리가 깨달을 때까지 일부러 입을 다물고 있을 때도 있다. 의장(義將)으로 알려져 있지만 승리를 위해 아군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코바야카와 히데아키의 배신에 분전하지만 결국 도도 다카토라의 모략으로 서군 다수가 적으로 돌아서면서 중과부적으로 괴멸. 친우에게 미래를 맡기고 사망했다. 그 유해는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후 그의 유서는 절망에 빠진 미츠나리에게 앞으로 나갈 힘을 주었다.

각종 인기 투표에서 이시다 미츠나리, 도도 다카토라와 함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여성향 게임 잡지에서 실시한 인기 투표에서는 2위 미츠나리보다 열 배가 넘는 표를 획득히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공식 앙케이트에서는 이시다 미츠나리에 이어 2위.

2.4. 노부나가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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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노부나가의 야망에서 천도 기준으로 통솔 93 무력 68 지력 91 정치 89 의리 99에 창금지극을 들고 나온다. 능력치가 전반적으로 좋지만 무력이 너무 낮은게 문제.

Example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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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 교부

백만인의 신장의 야망 노보우의 성 이벤트에선 최초로 문둥병에 걸리기 이전의 일러가 나왔다. 여담으로 이벤트 중간에 히든보스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등장하는데 미츠나리와 더불어 무능하다며 까인다. 안습. 언급도 안되는 마스다 나가모리보단 낫지

2.5. 태합입지전


5 기준으로 능력치는 통솔 80, 무력 69, 정무 72, 지모 81, 매력 76의 만능형. 산술이 3이라 돈 벌어오기 좋고 다른 기능들도 웬만한건 다 1-2레정도씩은 갖추고 있어 균형잡힌 편이긴 한데, 하나에 특화된 것이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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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시종겸 인질겸 경호원. 도노소리를 듣는 상급무사가 자신의 가신의 아들들 중에서 쓸만한 인재를 골라서 코쇼로 삼았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죽는 역할이긴 했지만 그 만큼 출세의 기회도 많았다. 사무라이들의 남색이 일반적이었던 당시에는 주군의 남색상대를 겸하기도 했는데 당시 사회풍속상 이건 명예로운 일로 여겨졌다.
  • [2] 다회에서는 한 그릇의 차를 돌려서 마신다.
  • [3] 한센병으로 인한 고름 한 방울이 차에 떨어졌다고 한다.
  • [4] 모토나리가 자신과 요시츠구 본인에게도 불행을 선사할 거냐고 물어봤을 때는 자신있게 대답하였지만 "이시다도?"라는 질문에서는 "미츠나리…… 미츠나리는……." 하면서 차마 대답을 못 하였다.
  • [5] 게다가 이 효과 하나 보자고 슬롯을 4개나 잡아먹어야 했으니...
  • [6] 모리와 말다툼을 할 때, 오오타니가 미츠나리에게 진정하라고 하자 그 미츠나리가 '교부를 봐서 봐주겠다.'라고 할 정도니.
  • [7] 이에야스와의 전투회화를 보면 미츠나리를 상처 입힌,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에야스를 용서할 수 없다고 외친다. 정작 이에야스는 오오타니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걸었다면 미츠나리는 지금보다 더 상처입었을 거라고 대답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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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1 20: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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