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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 쇼크

last modified: 2015-04-07 16:43:18 by Contributors

Oil Crisis / Oil Shock[1]

Contents

1. 개요
2. 1973년 1차 오일 쇼크
3. 1978~79년 2차 오일 쇼크
4. 결과

1. 개요

유류 파동, 석유 파동이라고도 한다.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에서 석유가격을 왕창 올려서 전 세계 경제에 압박을 가한 사건. 말 그대로 잠가라 밸브 되시겠다.

2. 1973년 1차 오일 쇼크


제4차 중동전쟁이 아랍권의 패배로 끝난 이후, OPEC의 아랍권 국가인 리비아, 이라크, 이란이집트, 시리아, 튀니지가 손잡고 석유 수출을 줄이는 동시에 원유 가격을 인상했다. 1배럴[2]당 2.9달러였던 원유가는 3개월 만에 11달러에 이르렀으며, 이는 현재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40달러가 폭등한 것이었다.[3] 당장 세계 경제에는 헬게이트가 열렸다.

이걸 산유국이 돈벌려고 전세계를 물먹인 사건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이, 기존의 비정상적으로 낮은 유가는 다국적기업들이 해당 국가에서 헐값에 석유 채굴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측면이 크다. 해당국가 입장에서 보자면 자원강탈. 이런 상황에서 카다피가 다국적기업을 리비아에서 밀어내고 석유를 국유화한다. 그리고 이걸 주변 국가들이 뒤를 이은 결과가 유가 폭등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유가의 현실화라고 해도 할 말 없는 상황이었다고 봐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선두에 선 무아마르 알 카다피의 입지가 크게 상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중동국가 입장에서는 국가재정이 천지차이로 뒤집어진 계기이기 때문이고,[4] 반미나 반제국주의 입장에서는 미국주도 다국적기업의 수탈을 몰아내고 그 나라의 권리를 찾아온 모범적 사례라는 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히 카다피의 막장적 행보는 이 시기 드러날 일이 없었고, 오히려 1980년대까지 제3세계의 주요 지도자로 평가받았기 때문에 반미주의 아이콘으로 부각된 것도 있다. 애초에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마오쩌둥68운동 당시 찬양받을 정도로 정보부재이던 시대였기도 했던데에다가 당시 아프리카에 각지에서 남아공 국민당 정권이나 우간다의 다 아민같은 막장 정권들이 집권했던 덕에 카다피 정도면 그럭저럭 양호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수준이었다.

중동 국가들이야 그렇거나 말거나 기존의 저유가가 상식이던 시대의 세계 경제가 거의 막장이 된 건 당연한 일. 한국은 이 때 중화학 공업을 처음 육성하던 시기[5]였기에 큰 타격이 예상되었으나, 직접 중동권에 뛰어들어 돈을 벌어오고(이른바 '오일 달러') 중공업 육성 초기인 덕에 비교적 석유 의존도가 낮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경제를 유지하였다. 물론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는 얘기지 사실 당시 한국도 물가가 크게 오르고 난리났던건 마찬가지였긴 했다.

한편으로는 한창 경제성장 일로에 있던 일본은 한 동안 헬게이트가 열렸다. 거리의 네온사인까지 꺼버릴 정도로 긴축에 들어갔는데, 당시 신인 만화가(!)였던 모토미야 히로시의 작품에서 '북내륙(호쿠리쿠) 석유 비축기지'가 소재로 쓰이는 등 당시로서는 꽤나 대사건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오일 쇼크 이후로도 일본 제품의 대서방 수출이 계속 쾌조를 보였기 때문에 사실상 지금에 와서는 그 존재감이 묻혔다. 버블시기와 그 이후 거품붕괴가 워낙 넘사벽급으로 각인되어 있는지라 특히 특촬팬과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 일을 상당히 꺼림칙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 1차 오일쇼크로 인하여 당시 인기의 정점을 누리고 있었던 특촬이 제작비 인상으로 작업환경이 많이 악화되고, 그로 인해 당시 수많은 특촬작품의 제작 명맥이 끊어지고 제작회사들이 망하는 결과를 맞게 되었기 때문이다.

3. 1978~79년 2차 오일 쇼크

호메이니팔레비 왕조를 전복시킨 뒤, 이란은 하루 6백만 배럴 분량이던 석유 생산량을 2백만 배럴까지 축소했고, 유가는 2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문에 30달러선이 깨지고, 사우디아라비아가 공개적으로 석유의 무기화를 천명한 뒤 39달러까지 찍었다.

이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물가는 상승하면서 실업 등의 문제는 오히려 심각해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났으며, 미국에서는 급작스럽게 불어난 달러를 미국 은행으로 회수하기 위해 금리를 21%(!)까지 끌어당겼다. 이 결과 미국에 잔뜩 외채를 끌어다 국내의 산업화를 진행하고 있던 멕시코[6] 대한민국, 폴란드[7] 등은 졸지에 빚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을 맞았고 경제가 크게 휘청거리게 된다. 그리고 이 당시의 고 이율 정책은 오일쇼크가 끝난 뒤에도 지속되어서 1980년대 중남미와 동유럽 외채위기의 원인이 되었다고 평가된다.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항목에 나와있는 "수입은 안하고 수출만 하는 정책"과 비슷한 경제정책이 동유럽과 중남미에서 널리 펼쳐졌을때가 바로 1980년대의 일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기본적인 복지지출마저도 줄이면서 국민들의 삶이 막장화 된건 덤.

특히 이 시기 한국 경제는 1차 석유 파동 당시보다 석유 의존도가 높아진 상태였기 때문에 경제의 타격이 컸다. 이 때는 한국 경제가 경제 성장률 마이너스를 기록한 몇 안 되는 시기로, 그래프를 보면 이 정도로 급격한 하락은 외환위기 당시에나 있었다. 이것이 을씨년스러운 정치 상황과 맞물려 박정희 정권에 대한 불만도가 높아졌고, YH 사건 등 노동 시위가 잦아졌으며 이는 최규하 정권 시기까지 이어지게 된다. 정부는 이에 대응하는 의미에서 1980년부터 석유의 비축 조치를 시행하였다.

4. 결과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계기로 OPEC 아래 뭉친 중동권은 국제 무대에서 어느 정도 발언권을 얻게 되었다. 물론 서방과의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더 이상 제국주의의 유산 아래 휘둘리지 않는다는 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 없는 사건이었다. 특히 이스라엘중동전쟁을 통해 전쟁에서는 승리했으나 석유파동으로 역관광을 타면서 운신이 굉장히 조심스러워졌다.

흔히 舊 7공주(Seven Sisters)라고 불리는 당시 걸프오일, 앵글로 페르시안 석유, 뉴저지 스탠더드 오일, 뉴욕 스탠더드 오일, 로열 더치 쉘을 위시한 다국적 기업들이자 지금의 슈퍼메이저의 전신인 기업들은 전세계 석유고의 85%를 장악하고 있었으나 오일쇼크 이후의 현재의 슈퍼메이저는 고작 5% 정도를 가지고 있으며 산출량은 10%에 불과하다. 이들에게서 국유기업으로 넘어간 석유고는 현재 전세계의 88%에 달하며, 그중 가장 큰 7개 회사인 新 7공주 (사우디 아람코, NIOC, INOC, PDVSA, 가즈프롬, CNPC, 페트로바스, 페트로나스)는 매장량의 40%, 생산량의 1/3를 쥐고 있다. 하지만 수직독점 체계를 완성한 슈퍼메이저들인지라 국영회사들은 이들에게 매출에서 발린다. 허나 석유고를 가짐으로 나오는 영향력은 이루 말 할 수 없다고 하겠다.

한편으로 석유파동은 복지국가의 원수이자 신자유주의의 구세주이기도 하다. 사실 이 시기에는 복지국가 자체의 문제도 지적 받고 있었지만[8] 석유파동으로 기존의 립스 곡선[9]에 기반한 이론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낙관적 세계관에 기반을 둔 복지 국가론도 흔들리게 되었다.

브레튼우즈 체제 아래 금본위제도의 붕괴와 석유파동으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회복하고 경제적인 성장을 맛보던 유럽 내 약 25년 간 '영광의 시대'는 무너지고,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시작되었다. 이후 세계 경제는 유동적인 자본의 흐름에 크게 의존하는 '불안정의 시대'로 접어들어, 현재까지도 유동성 위기가 하나의 화두로 제시되고 있다. 한편 오일쇼크가 끝나가자 그 동안 호황을 누리던 일부 산유국들은 경제가 좆망테크를 타기도 했다. 알제리, 멕시코, 베네수엘라, 소련[10]이 대표적인 예고, 이라크도 오일쇼크때는 선진국 진입직전에까지 왔었지만(한창때에는 1인당 GDP 3900달러선을 찍기도 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아주 낮은 수치지만 당시 기준(1980년)으로는 상당한 액수로, 주요 선진국의 1인당 GDP 수준도 9천 달러-1만 달러대 안팍이었다. 즉, 중진국 수준이라는 얘기.) 이란과 쿠웨이트와 전쟁이 연이어 터지고 경제제재를 받게 되면서 몰락하게 된다. 다만 모든 산유국이 망테크를 탄건 아니라서 오일쇼크가 끝난 뒤에도 사우디 아라비아리비아, 아랍 에미리트, 쿠웨이트등은 여전히 부유한 국가로 남아있다.

또한 한, 미, 일 등 주요 국가에 에너지 관련 부서가 생기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일본 - 자원에너지청. 1973.7, 미국 - 에너지부. 1977.10, 한국 - 동력자원부. 19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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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전자인 Oil Crisis, 그러니까 석유 파동이 정식 명칭이다. 영문 위키피디아의 표제어 역시 전자로 되어있다.
  • [2] 배럴은 야드파운드법에 의한 부피의 단위로, 한국 현실에서는 석유 단위에서나 주로 들을 만한 단위이다. 그래서 배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데, 1배럴은 158.987294928리터이다. 즉 거의 160리터가 1배럴. 정유회사들, 특히 세븐 시스터즈가 괜히 초대형 기업이 아니다.
  • [3] 2013년 10월 현재 기준,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의 가격은 1배럴 당 100달러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 [4] 카다피가 독재자로 여겨지긴 하지만 생각보다 그 당시에는 정치를 꽤나 잘했다. 윗동네 김씨왕조와 비교하면 모욕일 정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가 나빠지면서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진리만 확인 했을 뿐
  • [5] 인터넷상에 보이는 혹자의 논지에 따르면 1차 오일쇼크로 인해 선진국의 산업구조 개편(탈중화학공업)이 추진되었으며 이를 위해 선진국과 IMF의 주도로 개발도상국의 중화학공업이 계획적으로 육성되었고 당시 박정희 정권은 그 프로그램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중화학공업 육성책도 그에 대한 연장선상에 나온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나 1차 오일쇼크는 1973년 10월에 터진 것이고 박정희정권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이 공식발표된 것은 1973년 1월이다. 실제 검토시기까지 따지면 훨씬 이른 시기부터 준비되었을 것이다. 또한 1973년 초만하더라도 당시에는 유가가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중동변수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시간의 선후를 완전히 바꾸어 버린 주장.
  • [6] 그러나 사실 멕시코는 석유가 많이 나던 국가였기 때문에 당시까지만 해도 빚이 늘어나는 상황이긴했지만 석유값이 계속 올라가다보니까 경제는 계속 성장해서 1980년대 초반에 1인당 GDP 3000달러선을 찍기도 했다. 그러나 석유값이 하락하기 시작하고, 수출이 별로 늘어나지 않으면서 빚을 도저히 갚아낼수 없는 상태가 되자 자연히 경제가 파탄났고,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상태가 되었다. 물론 그 대가가 어마어마해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크게 깍이고 복지제도도 무력화 되었으며 빈부격차가 어마어마하게 커졌고, 투자자유화에 따라서 외부의 충격에 취약해지면서 경제위기도 주기적으로 터져나왔으며 현재까지도 빈부격차 문제나 저임금 노동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 [7] 잘 알려지지않았지만 공산권 붕괴에도 오일쇼크가 알게모르게 큰 영향을 끼쳤다. 1960년대 공산권 국가에서는 경제성장률 둔화현상 극복과 수출증대를 위한 투자를 늘리기 위해 서구권으로부터 많은 빚을 끌어모았는데, 당장은 경제적으로 크게 윤택해졌지만, 문제는 갑작스럽게 오일쇼크가 터지며 수출액이 줄어듬에 따라 세수가 줄어들고 갚아야할 부채가 급증하면서 재정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긴축재정을 시행하는 상황이 왔다는 것이다. 인민들 입장에서 서구권에 비해서 자유를 누리지 못한 차에 그나마 누려왔던 복지가 축소되었는데 선거로 정권을 심판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자연스레 불만이 쌍이고 쌓이게 되면서 공산정권을 지탱하던 토대가 취약해졌고, 그나마 버텨주던 소련이 석유값 하락과 체르노빌 사태, 군비증가로 재정이 크게 줄어드는 바람에, 동구권 국가들은 물론이고 자국민들조차 먹여살리기 힘들어지게 되면서 결국 80년대 말에 공산권 자체가 붕괴되는 원인이 되었다. 다만 오일쇼크때 폴란드나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등의 경제성장이 꺽이기는 했어도 소련은 오일쇼크때는 호황을 누렸기는 했다. https://books.google.co.kr/books?id=vZGDAwAAQBAJ&pg=PA444&lpg=PA444&dq=소련 오일쇼크&source=bl&ots=QsKoZjAx_Q&sig=KB6CgH99RtAPC9MLOf_zveTJhTE&hl=ko&sa=X&ei=BughVdCECILM8gXJ4oGACQ&ved=0CFYQ6AEwCw#v=onepage&q=소련 오일쇼크&f=false 아래에서도 나오겠지만 소련의 경제가 나락에 빠지기 시작했을때는 80년대 중반부터의 일이다.
  • [8] 복지국가의 한창 시기이던 1960년대 영국의 비틀즈는 'Taxman'에서 "나 세금 걷는 사람인데 95% 퍼가요 ~"라고 깠다. 물론 세계 정상급 밴드의 세금 체감을 일반화할 수는 없고 비틀즈가 세금 전문가도 아니지만 저런 세율이 말로라도 나온다면 대강 어떤 상황인지 짐작은 되지 않는가?
  • [9] 물가 상승과 실업률의 연관 관계를 설명하는 그래프. 분수함수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두 변수 모두가 값이 커지는 경우는 발생할 수 없다.
  • [10] 다만 이쪽은 아프간전이나 체르노빌 참사가 터진것도 영향이 크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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