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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 유키코

last modified: 2015-04-05 16:41:12 by Contributors

Contents

1. 일본의 아이돌
1.1. 생애
1.2. 활동
1.3. 죽음
1.4. 음악
1.4.1. 발매된 싱글 목록
1.4.2. 오리지널 앨범 목록
1.4.3. 베스트 앨범
1.5. 생전의 영상
1.6. 생전의 친필과 그림 등
1.7. 관련 링크(팬 사이트)
2. 일본의 배우

1. 일본의 아이돌

main002.jpg
[JPG image (38.67 KB)]
이름 오카다 유키코(岡田有希子)
본명 사토 카요(佐藤 佳代)
출생 1967년 8월 22일, 아이치현 이치노미야 시[1]
사망 1986년 4월 8일(18세)
소속사 선뮤직
소속레코드사 캐년 레코드(현재 니캐년)
신체 155cm, 45kg, O형, 시력 0.1(양쪽 다)
쓰리 사이즈 84cm - 58cm - 84cm
직업 가수,배우,아이돌,대변인
학력 호리코시 고등학교
데뷔 1984년 싱글 퍼스트 데이트
가족 2녀중 막내
활동 시기 1984년~1986년

구글 검색에 따르면 대변인하고 싱어송라이터,음악 프로듀서도 겸업했다 카더라#

1.1. 생애

岡田有希子. 80년대에 이름을 알렸던 일본아이돌 중 한 명. 최후의 정통파 아이돌.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죽어 비운의 아이돌이라고도 불린다.[2] 2년밖에 활동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라든가 등등의 이유로 사후에도 활동 당시만큼은 아니지만 아무튼 팬이 생겼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팬이 있는 듯.

소속사는 선뮤직으로 마츠다 세이코의 직속 후배. 깨끗하고 청순한 모범생 이미지로 활동하며 크게 성공했다. 사망으로 끝난 활동 기간이 총 2년 정도이고, 많은 소녀 아이돌 스타들이 활동하던 시기임을 감안하면 데뷔 초부터 큰 인기를 모은 그녀의 존재는 독보적이었다.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기 전에는 그저 독서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학업에 크게 집착하지는 않았던 평범한 소녀였다. 그러나 가수가 되기 위해 일본 테레비의 예능 신인 발굴 프로그램 스타 탄생[3]에 출전하기로 하는데, 부모님은 결사 반대하던 끝에 겨우 3가지 조건을 걸고 이 조건을 전부 해내면 출전을 허락하기로 한다.

그 조건이란
1. 교내 테스트로 학년 1등급을 딸 것
2. 중부지역 통일모의고사에서 상위 5명 안에 들 것
3. 나고야 시립 고요고등학교에 합격할 것(유키코의 고향에서 높은 학군의 학교였다. 그러나 한 학기만 다니고 연예 활동을 위해 도쿄로 상경해 호리코시 고교로 전학했다.)

세 가지 모두 대단한 조건하지만 특히 두번째는…… 어떤 의미로 엄친딸(외모-몸매-학업성적 모두)이었다.

부모님으로서는 일부러 무리한 조건을 걸면 딸이 하다가 지쳐 포기할 거라고 생각한 듯 하지만……유키코는 독하게도 세 가지 조건을 전부 해내고, 프로그램에 출전하여 당당히 우승, 선 뮤직의 후쿠다 전무의 눈에 띄어 계약을 맺고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이때 '스타탄생'에서 부른 노래가 나카모리 아키나슬로우 모션.

살이 쉽게 찌는 체질이어서 다이어트의 긴장을 늦출 새가 조금도 없었고, 빠듯한 스케줄의 연속으로 하루에 3~4시간 정도 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한참 인기를 얻을 무렵, '요즘은 하루에 20시간 정도는 일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근면성실한 타입인데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지기 싫어했고, 완벽주의 성향도 있어서 또래의 아이돌들에 비해 자신을 굉장히 몰아붙이면서 일을 했다고 한다.

1.2. 활동

노래와 연기 모두 좋은 반응을 얻으며 열심히 활동했다. 이 때가 1986년 4월 8일. 84년 데뷔하여 85년(고3일 때다. 이후 침체기를 겪다가 86년 초에 최초로 오리콘 1위를 기록하게 되는데, 이 때의 노래 '구치비루 네트워크'는 바로 마츠다 세이코가 작사해준 노래이다. 유키코는 데뷔 후 '마츠다 세이코의 뒤를 이을 포스트 세이코'라는 기대를 받으며 활동했었고 그런 유키코를 세이코가 질투했다는 얘기도 있다. 세이코의 평소 성격이라면 충분히 있을법한 일이기는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인터뷰 등에서 세이코는 후배로서 유키코를 매우 귀여워하며 잘 대해주기는 했었다. 설사 실제로 질투를 했다고 해도 세이코처럼 영리한 연예인이 공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못되게 구는 제스처를 취하진 않았을 것이다.

1.3. 죽음

1986년 4월 8일, 12시 20분경 갑자기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되었고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오카다 유키코가 18세의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특히나 팬들에게 더욱 컸던 충격은 그녀가 맞이한 죽음이 다름 아닌 자살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사망 당일 오전에도 이미 가스중독 자살미수가 있었다. 이 내용은 그녀가 죽기 전 당시 상황이었다.
자살 직후 영상. 후술하겠지만 그나마 이 영상이 (당시 기준에서) 개념적으로 보도한 영상이라 링크한 것이다. 다른 영상이나 사진은 위키 규정상 차마 링크가 불가능한 수준이 많다.

◎ 1986년 4월 8일 오전 9시. 도쿄 미나토구의 미나미 아오야마 로터리 맨션.
6층의 거주자가 짙은 가스의 냄새를 맡았다.
통보를 받은 관리인은 가스의 누출이 어디인지 한채씩 찾아 다녔고, 402호실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

초인종을 여러번 눌렀지만 반응이 없고 다급해진 관리인은 보조키로 문을 열었다.
이 방의 거주자는 사토 카요(오카다 유키코의 본명). 차주는 선 뮤직.

보통 맨션이었고 출입도 자유롭지만 떠오르는 아이돌 스타였던 그녀가 이곳에 살고있다는 사실은, 관리인외에는 철저한 비밀이었다.

관리인은 체인락때문에 더이상 열지 못하고 "사토씨 괜찮습니까?" 여러번 외쳐됐지만 반응은 없었다.

오전 10시 9분. 관리인의 연락을 받은 경시청이 아카사카 소방대원을 대동한채 출동하고 소방대원이 체인락을 절단한 후에야 현장으로 진입할수 있었다.

실내에는 강한 가스냄새가 진동했고, 한 가운데 한명의 소녀가 왼손에서 피를 흘린채 울고 있었다.

왼손에는 커터칼로 자른 듯한 5CM의 자상이 두 개나 있었고 주변엔 그녀가 흘린 피가 흥건히 고여있었다.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에 급히 호송된 오카다.

곧 바로 왼손의 상처를 봉합수술로 치료하고 신경안정제를 투여. 의외로 침착한 그녀의 반응에 의사는 곧바로 퇴원이 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린다.

당시 휴가를 얻고 있던 오카다의 매니저 미조구치는 회사의 전무인 후쿠다와 또다른 매니저 야마구치에게 알렸고. 두 사람은 11시가 넘어서야 병원에 도착. 오카다와 대면했지만 그녀는 자살이유에 대해선 함구한채 울기만 할 뿐이었다.

치과치료로 부재중인 소속사 사장때문에 이후 처리과정을 고심하던 후쿠다는 병원에 계속 입원을 한다면 아이돌스타인 그녀의 상품성에 흠집이 날것을 우려. 택시를 잡아 소속사인 선 뮤직 빌딩으로 오카다를 데려온다. 


소속사에 들어오자 마자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오카다.

하지만 심상치 않은 그녀의 표정에 무언가를 눈치챈 후쿠다 전무는 매니저인 야마구치와 사장비서에게 철통같은 감시를 지시하고. 여기서 오카다의 2차 자살시도가 무위로 끝나는 듯 했다.


"스트로베리 쥬스를 먹고 싶어요" 오카다의 부탁에 후쿠다가 사장비서에게 이를 부탁하고 감시인은 3명에서 2인으로 줄어들었다.

여기서 갑자기 전화를 해온 사장.

이미 자살미수가 기자들의 귀에 들어간 상황에서 향후 대처를 의논하기 위해 후쿠다는 오카다의 옆을 떠나며 야마자키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둘만 남게된 오카다와 야마자키.

순간 생수를 엎지른 오카다.

"가만 있어. 내가 티슈를 찾을테니"

야마자키가 티슈를 찾는 일순간의 틈에 오카다 유키코가 없어진다.

"유키코가 없어졌습니다."



패닉에 빠진 야마자키가 옆방에서 사장과 전화통화를 하던 후쿠다 전무에게 달려가 외쳤고, 다급해진 두 사람은 사내 건물을 돌아다니며 그녀를 찾았다.

바로 그때 휴가중이던 오카다 유키코의 전담 매니저 미조구치가 택시를 타고 선뮤직 사옥에 도착했다. 
12시 6분.



택시에서 내려 사옥으로 들어가려던 미조구치의 눈에 갑자기 검은 물체가 쿵하며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직감으로 오카다 유키코가 떨어진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다가갔지만 사람으로 생각되는 물체는 이미 머리통이 터져 하얀 뇌수가 사방에 흔재. 식별할수가 없었다.

다만 언제나 그녀가 차고 있던 손목시계만이 그 물체가 오카다 유키코였음을 증명할 뿐이었다.

그녀가 자살한 선뮤직 사옥은 요츠야 4가의 교차로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고, 오카다가 먹고싶다던 스트로베리 쥬스를 배달하기 위해 온 웨이트리스는 사체를 보고 기겁. 구토를 해댄다.

"유키코 유키코!"

눈물을 쏟아내는 미조구치.

매니저로서 그녀의 참담한 사체만은 매스컴에 노출시키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에 미조구치는 회사에 올라가 모포를 가져오고 조각나고 터진 머리와 뇌수를 주어담으며 사체를 수습한다.(이하생략...)





이 날이 사와지리 에리카가 태어난 날이기도 해서, 한때 사와지리는 '오카다 유키코의 환생'이라고 불린 적도 있다.지금 이렇게 말하면 오카다 유키코 팬들한테 몰매맞는다

여러 추측이 무성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던 다 마사키가 마츠다 세이코와 결혼한 것으로 인한 상실감 때문'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죽은 후에 일기가 발견되었는데, 선뮤직 사장에 의하면 선배 연예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더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아 그 상대가 누구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당시 드라마에서 상대역이었던 미네기시 토오루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당시 죽은 사람의 시체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잡지에 싣거나 아스팔트에 뇌수와 피가 흥건한 광경을 화면에 그대로 내보내는 등의 미디어의 보도 태도[4]가 매우 지탄을 받았다. 기자뿐만 아니라 흩어진 뇌수를 담아가는 엽기적인 행인도 있었고 나중엔 가져간 살점을 먹었다는 흉흉한 소문도. 게다가 그녀를 따라 30여명 가량의 팬들도 자살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게다가 당시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들은 60여명의 청소년들이 집단 자살을 했으며 그 해에는 783명의 소녀들이 자살을 하는 등 자살율 증가 근 50%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기록하게 된다. 이것을 일컬어 공황 오카다 유키코 현상(윳코 신드롬)이라고 한다.

오카다의 시체 사진을 찍은 사진기자가 몇 년 후에 죽었다느니, 나카모리 아키나의 심야 라이브 영상에 유령이 찍혔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MBC의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진실 혹은 거짓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방영(2002년 12월 1일)하였으며 여기서는 '진실'로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위의 이야기들은 거짓이다. 사진기자는 죽지 않았으며 유령의 경우 그 당시 흉흉했던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만들어 낸 이야기 일 뿐이다.
저 소문을 유키코가 들었다간 저승에서 펄펄 뛸 소리다.
참고로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는,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하나 더 얘기하면 유키코씨의 아버지는 그녀 사후 주식에 투자했다 잘못되어서 그녀의 유품까지 모두 버려야 했고, 홧병으로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생전 그녀의 연고지였던 이치노미야 시에는 그녀의 언니만이 살고 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그저 안습이자 흠좀무이며 지못미.

오카다 유키코의 사후 그녀의 어머니는 오카다의 일기와 메모, 그림 및 사진 등을 엮어서 '오카다 유키코 - 사랑을 주세요'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이 도서는 (당연히) 절판되었으나 일본 아마존닷컴 등지에서는 구할 수 있다. 오카다 유키코씨에게 관심이 있다면 한번 사보는 것도 괜찮을 듯.

1.4. 음악


다음 목록을 보면 나름 오리콘 차트 1위를 한 곡도 있고 곡이 1위는 아니더라도 열손가락 안에 입상한 경우도 제법 있는데 국내 노래방에서는 오카다의 노래를 전혀 찾을 수 없다. 자살을 안하고 쭉 살아서 활동했더라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그 전에 국내 노래방 업체에서는 오카다 유키코라는 이름조차도 전혀 모른다는게 함정 노래방에서 오카다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일본 가라오케로 가보자.

1.4.1. 발매된 싱글 목록

No앨범명발매일최고 순위비고
1퍼스트 데이트1984년 4월 21일20위데뷔곡/글리코 카페테리 cm송
2리틀 프린세스1984년 7월 18일14위
3-Dreaming Girl-사랑,처음 뵙겠습니다1984년 9월 21일7위글리코 세실 초콜릿 cm송
4둘만의 세레모니1985년 1월 16일4위도시바・렛츠채팅cm송
5Summer Beach1985년 4월 17일5위글리코 카페테리 cm송
6슬픈 예감1985년 7월 17일7위
7Love Fair1985년 10월 5일5위글리코 세실 초콜릿 cm송
8입술 Network1986년 1월 29일1위가네보 화장품 86봄의 이미지송
9Believe In You(2003 String version)2002년 12월 4일63위기존의 원곡을 리믹스하여 재발매
 꽃의 이미지1986년 5월 14일[5]1999년 3월 17일1999년 3월 17일 발매된 오카다 유키코 메모리얼 박스에 수록.

1.4.2. 오리지널 앨범 목록

No앨범명발매일최고 순위비고
1신데렐라1984년 9월 5일7위CD는 12월 21일 발매
2FAIRY1985년 3월 21일2위
3시월의 인어1985년 9월 18일4위
4비너스 탄생1986년 3월 21일4위

1.4.3. 베스트 앨범

1.5. 생전의 영상

그녀의 대표곡인 입술 Network. 가사는 항목을 참조. 참고로 2분 33초 이후에는 몰래카메라(...)가 있다.
리코 세실 초코렛 광고

사랑하면 누구라도 예뻐지고 싶어
멋진 레이디가 되는 날을 꿈꾸고 있어
로켓[6]에 숨겨둔 사진을 바라보면서(이하 생략)

마지막 자막(마크 아래):'맛과 건강', 우리들의 바람입니다.


1.6. 생전의 친필과 그림 등


여러분, 건강히 지내시나요?
벌써 완전히 가을!
유키코도 살짝 소녀틱한 기분에 젖어 식욕의 가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응? 무슨 소린지...가 아니라, 3곡째의 싱글
'Dreaming Girl 사랑,처음 뵙겠습니다'에서
Gamba하고(=힘내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도, 리퀘스트 엽서를 적거나 하면서 Gamba하면서 응원해 주실거죠?
아, 콘서트도 여러분 와 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해요.
도쿄&오사카의 두 군데였지만 멀~리서부터 와 주신 분도 있어서 감격해 버렸어요!!
정말로
{유키코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라고 한 목소리 외치고 나서
'Yukiko' No.2 렛츠 스타트~

번역은 http://angelhalo.org/bbs2/?mid=free&document_srl=244558을 참조.

둥글둥글한 글씨체는 1980년대 소녀들 사이에 유행이었다고 한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지 20년이 훨씬 넘은 탓에 그림의 사진을 구하기가 힘드나 아무튼 찾아보면 고만고만한 고등학생 정도의 실력이...지만 일반적인 그림은 잘 그리는 편이었다.
현재 웹상에서 볼 수 있는 그녀의 그림들

다음은 그녀가 그린 누군가다. 한번 맞혀보자.


이거가지고는 감이 잘 안온다면 이걸 보자. 이걸 보면 감이 딱 올것이다.


[7]

덧붙여 실생활에서의 목소리는 이런 식(?)이었다는 듯. 물론 라디오라서 전화하는 것마냥 예쁜 척애교가 조금 들어갔겠지만 말이다.

1.7. 관련 링크(팬 사이트)

혐오스런 사진(자살 직후라든가...) 관련한 사이트는 올리지 마시길 당부드립니다.

2. 일본의 배우

참고로 한자는 岡田由子로 조금 다르다. 1에 의해 거의 존재가 묻혀버렸다.(...) 얼마나 심하게 묻혀버렸냐면 이 사람의 한자 이름으로 구글링을 해보면 "이것을 찾으셨나요?"에 1의 이름이 뜨거나 1의 이름으로 수정된 검색결과가 나오기까지 한다. 거기에 2의 이름으로 검색했는데도 1의 사진이 더 많이 나오는건 기본. 거기에다 생년까지 1967년으로 같다. 다만 이 사람은 당연히 본명이고 현재까지도 살아있다는 것 정도...
프로필 사진 제외하고는 사진은 별로 없지만 존재는 한다.

참고로 가운데다. 어찌보면 이쪽도 (비록 살아있지만) 비운의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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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성장은 같은 아이치현 나고야 시에서 했다고 한다.
  • [2] 그러나 더 안습한 아이돌이 있었다. 엔도 야스코는 스케반 데카 출연으로 인지도를 쌓으며 음반 데뷔를 앞두고 있었으나 소속사에서 남자친구와 헤어질것을 강요. 계속되는 마찰로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0일 뒤 대형 아이돌 오카다 유키코의 자살로 그녀의 죽음은 조용히 묻히게 된다.
  • [3] 모리 마사코를 시작으로, 야마구치 모모에나카모리 아키나도 이 프로그램 출신이다. 유키코가 이 프로그램 최후의 우승자(스타 탄생 후반기의 합격자일 뿐 마지막 합격자는 아니다.)였고, 이후 스타 탄생은 종영된다.
  • [4] 전술했지만 특종에 매달려 시신의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는, 기자의 자질은 둘째치고 고인에 대한 예의조차 없는 추태를 보여줬다. 시신의 수습이나 병원으로의 연락도 주변의 기자나 행인이 아니라 매니저가 했을 지경.
  • [5] 오카다 유키코가 자살하지 않았으면 본래 발매되었을 날이다
  • [6] 사진이 들어가는 장신구
  • [7] 답은 짐작한대로 그녀 본인의 성장과정(?)이다.사실 눈치빠른 사람이면 위에만 보고도 누군지 짐작은 할것이다. 첨언하자면 위의 좌측의 그림이 태어났을때 가운데는 유치원, 우측은 소학교(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아래 좌측이 중학교,가운데가 고등학교, 우측이 현재(자살 전).
  • [8] 이름처럼 1980년대 당시 활동한 일본 아이돌의 사진들을 볼 수 있는 사이트. 윳코짱 관련해서는 데뷔 초기의 모습, 자살 며칠 후 현장에 달려온 팬들의 추모 모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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