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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십육국시대

중국의 역사
위진남북조시대/육조시대
서진 동진/오호십육국시대 남북조시대

五胡十六國

EastZin.jpg
[JPG image (48.17 KB)]

위의 지도에서 북방에 표기한 여러 국가들이 오호십육국이다.만리장성의 위치가 이상해도 신경쓰지 말자

Contents

1. 개요
1.1. 재평가
2. 한국사와의 관련
3. 오호십육국의 역대 군주
3.1. 전량(前涼)의 군주
3.2. 전조(前趙)의 군주
3.3. 성한(成漢)의 군주
3.4. 후조(後趙)의 군주
3.5. 전연(前燕)의 군주
3.6. 전진(前秦)의 군주
3.7. 후연(後燕)의 군주
3.8. 후진(後秦)의 군주
3.9. 서진(西秦)의 군주
3.10. 후량(後涼)의 군주
3.11. 남량(南涼)의 군주
3.12. 북량(北涼)의 군주
3.13. 남연(南燕)의 군주
3.14. 서량(西涼)의 군주
3.15. 북하(北夏)의 군주
3.16. 북연(北燕)의 군주
4. 16국 이외
5. 기타 창작물에서


1. 개요

5호(胡)
흉노(匈奴) 선비(鮮卑) 갈(羯) 저(氐) 강(羌)

16국(國)
전량(凉) 전조(趙) 성한(漢) 후조(趙) 전연(燕) 전진(秦) 후연(燕) 후진(秦) 서진(秦) 후량(凉) 남량(凉) 북량(凉) 남연(燕) 서량(凉) 북하(夏) 북연(燕)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 Sixteen Kingdoms

중국의 역사시대중 하나로 크게는 위진남북조시대에 속한다. 오호는 흉노, 선비, 갈, 강, 저 등의 다섯 이상의 오랑캐들을 뜻하고 십육국은 이들이 여러 나라를 세웠음을 뜻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16국 중 전량, 서량, 북연은 한족 왕조에 속하며 나머지 13국이 이들 다섯 민족이 세운 국가이다.

사실 '16국'은 이 가운데서도 어느 만큼 지속하고, 영향력이 있었던 상대적으로 큰 나라만 넣었다. 실제로 이 시기에 세운 나라는 16개국을 훨씬 넘는데, 선비족의 대(代)나라와 나중에 이를 부흥시켜 이어진 북위(北魏)는 16국에 안 넣고, 십육국에 안 끼워넣는 단명한 왕조도 수없이 많다.

오호십육국시대의 시작은 보통 유연(劉淵)이 뒷날 전조로 바뀌는 한(漢)을 건국한 304년, 끝은 북위(北魏)가 화북을 통일해 북조가 나타나는 439년으로 본다. 이 시기 중원(화북)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고, 한때 전진(前秦)이 화북을 통일도 했으나 비수대전의 패배/병크/삽질로 다시 난장판이었다. 단 1년도 못넘긴 왕조가 있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걸 기점으로 16국 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기도 한다.

이 시기의 특징으로는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혼란기로, 이때 흥망성쇠한 나라들의 이름은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힘드니 고우영 선생이 만화 십팔사략 집필 당시 자문을 구했던 중국 쓰촨대학 역사 교수조차 "일일히 파고들 것 없이 이건 그냥 넘어가라"고 했을 정도. 그래도 정 알고 싶은 분들은 자치통감을 읽어보거나 하면 좋다.

정말 많은 영웅들과(대표적인 예가 석륵) 많이도 세워진 국가들, 그리고 넘쳐나는 막장 군주들이 있는 시대. 삼국시대처럼 잦은 전쟁으로 중원의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많은 종족들이 강제 이주도 겪었다. 이게 다 서진시대의 팔왕의 난 탓이다. 기껏 통일하고서 일어난 내분으로 영가의 난이라 대표하는 이민족의 침입과 막장스런 내정 때문에 중국은 수나라(隋)가 성립한 뒤에야 다시 통일 왕조를 이뤘다.

오호십육국 시대는 어떻게 하면 망하는가, 통치자는 뭘 해선 안되는가 하는 반면교사의 향연이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대체역사물에서는 종종 중국을 약하게 설정할 때, 오호십육국시대에 다시 못 통합하고 분열이 지속했다라 취급하는 일이 많다. 일례로 겁스 무한세계에서 고대 로마의 맥이 19세기까지 이어지는 <로마-1>평행계라면, 중국은 그저 세리카라 부르는 지역으로 그 안에 여러 흩어진 나라들의 집합 정도로만 언급한다.

1.1. 재평가

다만 이러한 평가는 도덕관념에 기반을 두고 개인, 주로 지도자들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를 연구한 중국 문화의 전통적인 시각이다. 요즘 사학계는 이 시대에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원래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의 관념으로는, 중국의 역사가 예전 제국이 멸망하면 다음 제국이 들어서서 그 자리를 대신함이 자연스럽고 타당하다라 여기려는 경향이 있어 예전에는 이 시대 자체를 일종의 흑역사 쯤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정통론을 믿는 사람이 더는 없다. 오늘날의 대체적인 관점은 중국의 역사는 수많은 이민족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됐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중국 북방에 이민족 국가들이 나오는 이 시기가 특별한 가치가 있다.

원래 서양 쪽의 사학자들이 이 시대를 처음으로 주목했다. 왜냐면 이들은 어떤 거대하고 오래간 제국의 반쪽이 멸망하더니, 여럿으로 나뉘어서 오늘날에 이른 역사적 경험이 있어서였다. 따라서, 왜 중국은 오호남북국시대를 거치고서도 재통일됐나?에 관심을 품었다.

한편 중국 사학계 역시 최근 이 시대에 관심을 기울인다. 현대에 들어와 중국 내 소수민족 문제가 나오다보니 변방사나 이민족 유입의 역사 등에 관심이 높아졌고, 그 첫 단추가 이 오호십육국 시대에 있다고 보여서다.

따라서 서양이나 중국 가릴 것 없이 이 시대에 관심이 높아졌고 연구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에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데다가, 이 시대는 워낙 자료가 적어 어려움이 많다. 한편, 이 시대 바로 앞의 어느 사마씨들의 막장국가한중일의 수많은 남자들이 덕후화한 어느 영웅호걸들의 시대는 사학계에선 여전히 찬밥신세이다.[1]

2. 한국사와의 관련

한국사에서는 선비족의 모용씨가 세운 전연(前燕)이 강성하면서 고구려고국원왕이 어머니와 부인을 볼모로 빼앗기고[2] 아버지인 미천왕의 능이 파헤쳐지고 수도였던 환도성이 불타는 수모를 겪었다. 간신히 전진(前秦)이 이들을 병합하면서 살 만하자 남쪽의 백제에 찝적거렸는데 당시 백제의 태자였던 근구수왕에게 역관광을 겪더니, 끝내 평양에서 근초고왕이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얼마 뒤 전진이 붕괴하자 다시 후연이 나타났으나 이번엔 복수혈전을 다짐한 광개토대왕에게 충분히 발려버리고, 이후 요동을 완벽하게 장악한 고구려는 강성하면서 남북조시대 내내 그 세력을 떨친다. 이 때 신라 사신이 고구려 사신의 덤으로 가서 전진에게 "우리도 있어염~~" 하고 왔다.

삼국시대를 연구하려면 당연히 이 시대의 이해가 어느 만큼 필요하니, 한국의 역덕후라면 기초적인 수준이라도 알고 들어간다. 한편 최근의 서양과 중국 학계가 이 시대에 관심이 있으니, 그쪽 사람들에게 곁다리로 고구려의 인지도도 좀 올라갔...으려나?

3. 오호십육국의 역대 군주

사실 북방 '오랑캐' 왕조의 군주들은 생전에 황제 칭호 대신 천왕 칭호를 썼다가 사후에 시호를 올릴 때 황제라고 하거나, 치세 중에 천왕과 황제를 번갈아가며 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런 경우 편의상 '황제'로 통일해서 정리한다. 상세한 내용은 천왕 항목을 참고할 것. 단, 천왕이 아닌 제후 '왕'은 왕으로 표기한다.

3.1. 전량(前涼)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1대 태조(太祖) 무왕(武王) 장궤(張軌) - 301 ~ 314 건릉(建陵)
2대 고조(高祖) 명왕(明王) 장식(張寔) 영안(永安) 314 ~ 320 314 ~ 320 영릉(寧陵)
3대 태종(太宗) 성왕(成王) 장무(張茂) 영원(永元) 320 ~ 324 320 ~ 324 평릉(平陵)
4대 세조(世祖) 문왕(文王) 장준(張駿) 태원(太元) 324 ~ 346 324 ~ 346 대릉(大陵)
5대 세종(世宗) 명왕(明王) 장중화(張重華) 영락(永樂) 346 ~ 353 346 ~ 353 현릉(顯陵)
6대 - 애공(哀公) 장요령(張耀靈) - 353 -
7대 - 위왕(威王) 장조(張祚) 화평(和平) 354 ~ 355 354 ~ 355 민릉(愍陵)
8대 - 충왕(沖王) 장현정(張玄靚) 태시(太始) 355 ~ 363 355 ~ 363 평릉(平陵)
9대 - 도공(悼公) 장천석(張天錫) 태청(太淸) 363 ~ 376 363 ~ 376 -

3.2. 전조(前趙)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 - 한왕(漢王) 유연(劉淵) 원희(元熙) 304 ~ 308 304 ~ 308 영광릉(永光陵)
1대 고조(高祖)
태조(太祖)[3]
광문황제(光文皇帝) 유연(劉淵) 영봉(永鳳) 308 ~ 309
하서(河瑞) 309 ~ 310
308 ~ 310 영광릉(永光陵)
2대 - 폐제(廢帝) 유화(劉和) - 310 -
3대 열종(烈宗) 소무황제(昭武皇帝) 유총(劉聡) 광흥(光興) 310 ~ 311
가평(嘉平) 311 ~ 315
건원(建元) 315 ~ 316
인가(麟嘉) 316 ~ 318
310 ~ 318 선광릉(宣光陵)
4대 - 효은황제(孝隱皇帝) 유찬(劉粲) 한창(漢昌) 318 318 -
5대 - - 유요(劉曜) 광초(光初) 318 ~ 329 318 ~ 328 -
6대 - - 유희(劉煕) - 328 ~ 329 -
  • 유요가 319에 국호를 한(漢)에서 조(趙)로 바꿈

3.3. 성한(成漢)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 시조(始祖) 경황제(景皇帝) 이특(李特) 건초(建初) 303 ~ 304 303 -
- - 진문왕(秦文王) 이류(李流) - 303 ~ 304 -
- - 성도왕(成都王) 이웅(李雄) 건흥(建興) 304 ~ 306 304 ~ 306 안도릉(安都陵)
1대 태종(太宗) 무황제(武皇帝) 이웅(李雄) 안평(晏平) 306 ~ 310
옥형(玉衡) 311 ~ 334
306 ~ 334
2대 - 애황제(哀皇帝) 이반(李班) - 334 -
3대 - 폐제(廢帝)
유공(幽公)
이기(李期) 옥항(玉恒) 335 ~ 338 334 ~ 338 -
4대 중종(中宗) 소문황제(昭文皇帝) 이수(李壽) 한흥(漢興) 338 ~ 343 338 ~ 343 안창릉(安昌陵)
5대 - - 이세(李勢) 태화(太和) 344 ~ 346
가녕(嘉寧) 346 ~ 347
343 ~ 347 -
  • 소문제가 국호를 성(成)에서 한(漢)으로 바꿈

3.4. 후조(後趙)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 - 조왕(趙王) 석륵(石勒) 태화(太和) 328 ~ 330 319 ~ 329 고평릉(高平陵)
1대 고조(高祖) 명황제(明皇帝) 석륵(石勒) 건평(建平) 330 ~ 333 330 ~ 333 고평릉(高平陵)
2대 - 해양왕(海陽王) 석홍(石弘) 연희(延熙) 334 333 ~ 334 -
3대 태조(太祖) 무황제(武皇帝) 석호(石虎) 건무(建武) 335 ~ 348
태녕(太寧) 349
334 ~ 349 현원릉(顯原陵)
4대 - 초왕(譙王) (石世) - 349 -
5대 - 팽성왕(彭城王) 석준(石遵) - 349 -
6대 - 의양왕(義陽王) 석감(石鑒) 청룡(靑龍) 350 349 ~ 350 -
7대 - 신흥왕(新興王) (石祗) 영녕(永寧) 350 ~ 351 350 ~ 351 -

3.5. 전연(前燕)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 고조(高祖) 선무황제(宣武皇帝) [4] 모용외(慕容廆) - - -
1대 태조(太祖) 문명황제(文明皇帝) [5] 모용황(慕容皝) - 337 ~ 348 용평릉(龍平陵)
2대 열조(烈祖) 경소황제(景昭皇帝) 모용준(慕容儁) 원새(元璽) 352 ~ 357
광수(光壽) 357 ~ 360
348 ~ 360 용릉(龍陵)
3대 - 유제(幽帝) [6] 모용위(慕容暐) 건희(建熙) 360 ~ 370 360 ~ 370 -

3.6. 전진(前秦)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 태조(太祖) 무혜황제(武惠皇帝) [7] 부홍(苻洪) - 350 -
1대 고조(高祖) 경명황제(景明皇帝) 부건(苻健) 황시(皇始) 351 ~ 355 350 ~ 355 -
2대 - 여왕(厲王) 부생(苻生) 수광(壽光)355 ~ 357 355 ~ 357 -
3대 세조(世祖) 선소황제(宣昭皇帝) 부견(苻堅) 영흥(永興) 357 ~ 359
감로(甘露) 359 ~ 364
건원(建元) 365 ~ 385
357 ~ 385 -
4대 - 애평황제(哀平皇帝) 부비(苻丕) 태안(太安) 385 ~ 386 385 ~ 386 -
5대 태종(太宗) 고황제(高皇帝) 부등(苻登) 태초(太初) 386 ~ 394 386 ~ 394 -
6대 - - 부숭(苻崇) 연초(延初) 394 394 -

3.7. 후연(後燕)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 - 연왕(燕王) 모용수(慕容垂) 연원(燕元) 384 ~ 386 384 ~ 386 선평릉(宣平陵)
1대 세조(世祖) 성무황제(成武皇帝) 모용수(慕容垂) 건흥(建興) 386 ~ 396 386 ~ 396 선평릉(宣平陵)
2대 열종(烈宗) 혜민황제(惠愍皇帝) 모용보(慕容寶) 영강(永康) 396 ~ 398 396 ~ 398 -
3대 - 창려왕(昌黎王) 난한(蘭汗) 청룡(靑龍) 398 398 -
4대 중종(中宗) 소무황제(昭武皇帝) 모용성(慕容盛) 건평(建平) 398
장락(長樂) 399 ~ 401
398 ~ 401 흥평릉(興平陵)
5대 - 소문황제(昭文皇帝) 모용희(慕容熙) 광시(光始) 401 ~ 406
건시(建始) 407
401 ~ 407 -

3.8. 후진(後秦)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 시조(始祖) 경원제(景元帝) [8] 요익중(姚弋仲) - - -
- - 위무왕(魏武王) [9] 요양(姚襄) - - -
- - 진왕(秦王) 요장(姚萇) 백작(白雀) 384 ~ 386 384 ~ 386 원릉(原陵)
1대 태조(太祖) 무소황제(武昭皇帝) 요장(姚萇) 건초(建初) 386 ~ 394 386 ~ 393 원릉(原陵)
2대 고조(高祖) 문환황제(文桓皇帝) 요흥(姚興) 황초(皇初) 394 ~ 399
홍시(弘始) 399 ~ 416
394 ~ 416 우릉(偶陵)
3대 - - 요홍(姚泓) 영화(永和) 416 ~ 417 416 ~ 417 -

3.9. 서진(西秦)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1대 열조(烈祖) 선열왕(宣烈王) 걸복국인(乞伏國仁) 건의(建義) 385 ~ 388 385 ~ 388 -
2대 고조(高祖) 무원왕(武元王) 걸복건귀(乞伏乾歸) 태초(太初) 388 ~ 400
경시(更始) 409 ~ 412
388 ~ 400, 409 ~ 412[10] 원평릉(元平陵)
3대 태조(太祖) 문소왕(文昭王) 걸복치반(乞伏熾磐) 영강(永康) 412 ~ 419
건홍(建弘) 420 ~ 428
412 ~ 428 무평릉(武平陵)
4대 - 여무왕(厲武王) 걸복모말(乞伏暮末) 영홍(永弘) 428 ~ 431 428 ~ 431 -

3.10. 후량(後涼)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 - 주천공(酒泉公) 여광(呂光) 태안(太安) 386 ~ 389 386 ~ 389 고릉(高陵)
- - 삼하왕(三河王) 여광(呂光) 인가(麟嘉) 389 ~ 396 389 ~ 396 고릉(高陵)
1대 태조(太祖) 의무황제(懿武皇帝) 여광(呂光) 용비(龍飛) 396 ~ 399 396 ~ 399 고릉(高陵)
2대 - 은왕(隱王) 여소(呂紹) - 399 -
3대 - 영황제(靈皇帝) 여찬(呂纂) 함녕(咸寧) 399 ~ 401 399 ~ 401 백석릉(白石陵)
4대 - - 여륭(呂隆) 신정(神鼎) 401 ~ 403 401 ~ 403 -

3.11. 남량(南涼)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1대 열조(烈祖) 무왕(武王) 독발오고(禿髪烏孤) 태초(太初) 397 ~ 399 397 ~ 399 -
2대 - 강왕(康王) 독발이녹고(禿髪利鹿孤) 건화(建和) 400 ~ 402 399 ~ 402 서평릉(西平陵)
3대 - 경왕(景王) 독발욕단(禿髪傉檀) 홍창(弘昌) 402 ~ 404
가평(嘉平) 408 ~ 414
402 ~ 414 -

3.12. 북량(北涼)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1대 - 문왕(文王) 단업(段業) 신새(神璽) 397 ~ 399
천새(天璽) 399 ~ 401
397 ~ 401 -
2대 태조(太祖) 무선왕(武宣王) 저거몽손(沮渠蒙遜) 영안(永安) 401 ~ 412
현시(玄始) 412 ~ 428
승현(承玄) 428 ~ 431
의화(義和) 431 ~ 433
401 ~ 433 원릉(元陵)
3대 - 애왕(哀王) 저거목건(沮渠牧犍) 영화(永和) 433 ~ 439 433 ~ 439 -

3.13. 남연(南燕)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1대 세종(世宗) 헌무황제(獻武皇帝) 모용덕(慕容德) 건평(建平) 400 ~ 405 398 ~ 405 동양릉(東陽陵)
2대 - - 모용초(慕容超) 태상(太上) 405 ~ 410 405 ~ 410 -

3.14. 서량(西涼)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1대 태조 무소왕(武昭王)
흥성황제(興聖皇帝)[11]
이고(李暠) 경자(庚子) 400 ~ 404
건초(建初) 405 ~ 417
400 ~ 417 건세릉(建世陵)
2대 - - 이흠(李歆) 가흥(嘉興) 417 ~ 420 417 ~ 420 -
3대 - - 이순(李恂) 영건(永建) 420 ~ 421 420 ~ 421 -

3.15. 북하(北夏)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1대 세조(世祖) 무열황제(武烈皇帝) 혁련발발(赫連勃勃) 용승(龍昇) 407 ~ 413
봉상(鳳祥) 413 ~ 418
창무(昌武) 418 ~ 419
진흥(眞興) 419 ~ 425
407 ~ 425 가평릉(嘉平陵)
2대 - - 혁련창(赫連昌) 승광(承光) 425 ~ 428 425 ~ 428 -
3대 - - 혁련정(赫連定) 승광(勝光) 428 ~ 431 428 ~ 431 -

3.16. 북연(北燕)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1대 - 혜의황제(惠懿皇帝) 고운(高雲) 정시(正始) 407 ~ 409 407 ~ 409 -
2대 태조(太祖) 문성황제(文成皇帝) 풍발(馮跋) 태평(太平) 409 ~ 430 409 ~ 430 장곡릉(長谷陵)
3대 - 소성황제(昭成皇帝) 풍홍(馮弘) 태흥(太興) 431 ~ 436 430 ~ 436 -

4. 16국 이외

  • 단부
  • - 뒷날의 북위
  • 등지
  • 서연
  • 선우조[12]
  • 염위 : 한족염민군에서 세운 나라. 단명 왕조였지만 민족 구성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나 했는데, 염민은 명령으로 후조의 지배 민족이었던 제노사이드시켰다.
  • 우문부
  • 적위
  • 전구지, 후구지 시즌 2
  • 탕창
  • 초촉
  • 환초

5. 기타 창작물에서

중국 5천년 역사의 최고 동인지시대가 있어 철저히 듣보잡.(...) 후삼국지가 오호십육국 시대의 초반기를 다루지만, 전조의 흉노족 유요는 촉한 북지왕 유심의 아들이고 후조의 갈족 석륵이 조운의 손자라는 괴작. 설사 괴작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 삼국지연의에 종속된 2차, 3차 창작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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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정확히 말하면 삼국시대는 이러한 오호십육국 시대를 연 화이잡거(華夷雜居)의 시작으로서 중시된다. 때문에 동양사 전공자들은 국내 넷상에서 이뤄지는 삼국지 팬덤이나 논쟁을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보거나 아예 관심없는 사람이 많다.
  • [2] 찾아온 뒤에도 당시 태자였던 소수림왕이 대신 볼모로 가야 했다.
  • [3] 유요가 추증
  • [4] 경소제 추증
  • [5] 경소제 추증
  • [6] 남연(南燕) 헌무제 추증
  • [7] 경명제 추증
  • [8] 무소제 추증
  • [9] 무소제 추증
  • [10] 400 ~ 409 사이 후진(後秦)에 복속
  • [11] 당고조 추증
  • [12]1년 왕조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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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4 20: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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