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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음방송

last modified: 2015-08-24 13:54:50 by Contributors

玉音放送 (ぎょくおんほうそう)

Contents

1. 개요
2. 동영상 설명
2.1. 시작 부분
2.2. 히로히토 덴노가 말한 내용
2.2.1. 원문
2.2.2. 해석
3. 반응
3.1. 일본인
3.2. 한국인
4. 그 밖에


1. 개요

1945년 8월 15일 정오에 방송된 일본 제국GG항복선언이다. 내용은 일본 제국의 국가원수인 히로히토가 연합국의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는 내용으로, 이 방송을 기점으로 길었던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 전쟁은 끝을 고하고, 한국8.15광복을 맞이한다. 또한 이후 일본은 미국이 점령하여 태평양 최고사령부(SCAP)의 통치를 받게 된다.

옥음방송의 '옥음'이라는 단어는 '왕의 목소리'라는 뜻으로, 해석하자면 친히 목소리를 내셔서 하시는 방송이라는 뜻이 되겠다. 옥음방송이라는 단어 자체는 왕이 국민에게 하는 방송이라는 일반명사지만, 이 항복선언 이전엔 덴노가 국민을 대상으로 방송을 한 예가 거의 없었던데다 이 항복선언의 임팩트가 가장 크기 때문에 옥음방송 하면 대개 이 항복선언을 일컫는다. 왕조 국가에서는 다양한 관례 때문에 서민이 왕과 직접 접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이야기할 일이 있으면 평민-신하-신하-신하-시종-왕으로 이루어지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덴노와 직접 대화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특권'으로 취급되었던 것인데, 이처럼 평상시에 국민에게도 말씀을 아끼던 높으신 분이 입을 처음으로 연 게 항복선언인 셈이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옥음방송이라는 용어 자체가 지극히 일본을 기준으로 한 표현이기에, 타국에서는 '왕의 목소리'라는 '옥음'이라는 용어 자체에 불쾌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체로 항복선언이라고 일컫는 경우가 많다. 중국 측의 용어인 '종전조서'라는 표현도 쓰인다. 사실 종전조서도 일본의 항복이라는 의미가 드러나있지 않은 용어이다.

황족이 하는 방송 아니랄까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국민 방송 주제에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낡은 표현이 떡칠되어 있는 건 예사고, 빙빙 에둘러 서술하는 문어체식 표현으로 되어 있어 얼핏 들으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는 당대의 일본인들조차도(…) 처음에는 이 연설이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이해한 이들이 많지 않았으며, 그래서 아나운서가 따로 내용을 해설하는 별도의 방송을 했을 지경이었다.

항복선언임에도 항복이라는 용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은 것이 특징인데, 애초에 연합국 측에서도 '항복하라'가 아니라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물론 포츠담 선언 자체가 일본군의 무장 해제 및 전쟁 종료를 담고 있었으니 사실상 완곡하게 항복 요구를 한 것이고, 그에 대한 답변으로 이 방송도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겠다'며 완곡하게 항복선언을 한 것이니 딱히 이상할건 없다. 대미 선전포고가 자기 잘못이 아니라며 책임전가자기합리화를 시전한다는 비판도 있으나, 사실 딱 놓고 보면 책임전가는 아니다. '내 책임이 아니다'가 아니라 '내가 의도했던건 이런게 아니였는데 내가 내렸던 판단 때문에 상황이 이 지경까지 막장으로 치닫아버렸다'에 가깝다. 한마디로 자신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는걸 부정하진 않았다. 한줄요약하자면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위의 동영상은 1945년 8월 15일 당일,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실제로 라디오로 방송된 자료이다.

2. 동영상 설명

2.1. 시작 부분

처음에 와다 노부카타 아나운서가 방송의 개시를 알린다.
"지금부터 중대한 발표가 있겠습니다. 전국의 청취자 여러분께서는 기립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 궁내부의 의전관이 발표한다.
"덴노께서 황공하옵게도 친히 전 국민에게 칙서를 말씀하시게 되셨습니다. 지금부터 삼가 옥음(玉音)을 방송해 드리겠습니다."
이후 가사 없이 반주만 수록된 기미가요가 나온다. 국가적 차원의 방송이라서 기미가요를 처음과 끝에서 틀어준다. 이어서 히로히토 덴노의 발언이 이어지고, 이후 와다 아나운서가 그 내용을 해설하는 방송을 했다.

2.2. 히로히토 덴노가 말한 내용

이하의 원문은 일본어를 아는 사람도 읽기가 쉽지 않은데, 이는 이 글이 문어체로 쓰여 있는 데다가, 히라가나 대신 가타카나가 사용되고 한자도 현대의 신자체가 아닌 구자체로 되어 있으며, 탁음을 표현할 때 쓰이는 탁점(゛)도 사용되지 않는 등 표기법이 현대 일본어와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상술했듯이 문장 자체가 논점을 돌려 말하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어 문어체를 알아도 곧바로 해석하기 어려운 건 덤이다.

2.2.1. 원문

朕深ク世界ノ大勢ト帝國ノ現状トニ鑑ミ非常ノ措置ヲ以テ時局ヲ收拾セムト欲シ茲ニ忠良ナル爾臣民ニ告ク

朕ハ帝國政府ヲシテ米英支蘇四國ニ對シ其ノ共同宣言ヲ受諾スル旨通告セシメタリ

抑々帝國臣民ノ康寧ヲ圖リ萬邦共榮ノ樂ヲ偕ニスルハ皇祖皇宗ノ遣範ニシテ朕ノ拳々措カサル所曩ニ米英二國ニ宣戰セル所以モ亦實ニ帝國ノ自存ト東亞ノ安定トヲ庶幾スルニ出テ他國ノ主權ヲ排シ領土ヲ侵スカ如キハ固ヨリ朕カ志ニアラス

然ルニ交戰已ニ四歳ヲ閲シ朕カ陸海將兵ノ勇戰朕カ百僚有司ノ勵精朕カ一億衆庶ノ奉公各々最善ヲ盡セルニ拘ラス戰局必スシモ好轉セス世界ノ大勢亦我ニ利アラス加之敵ハ新ニ殘虐ナル爆彈ヲ使用シテ頻リニ無辜ヲ殺傷シ慘害ノ及フ所眞ニ測ルヘカラサルニ至ル

而モ尚交戰ヲ繼續セムカ終ニ我カ民族ノ滅亡ヲ招來スルノミナラス延テ人類ノ文明ヲモ破却スヘシ斯ノ如クムハ朕何ヲ以テカ億兆ノ赤子ヲ保シ皇祖皇宗ノ神靈ニ謝セムヤ是レ朕カ帝國政府ヲシテ共同宣言ニ應セシムルニ至レル所以ナリ

朕ハ帝國ト共ニ終始東亞ノ解放ニ協力セル諸盟邦ニ對シ遺憾ノ意ヲ表セサルヲ得ス帝國臣民ニシテ戰陣ニ死シ職域ニ殉シ非命ニ斃レタル者及其ノ遺族ニ想ヲ致セハ五内爲ニ裂ク且戰傷ヲ負ヒ災禍ヲ蒙リ家業ヲ失ヒタル者ノ厚生ニ至リテハ朕ノ深ク軫念スル所ナリ

惟フニ今後帝國ノ受クヘキ困難ハ固ヨリ尋常ニアラス爾臣民ノ衷情モ朕善ク之ヲ知ル然レトモ朕ハ時運ノ趨ク所耐ヘ難キヲ耐ヘ忍ヒ難キヲ忍ヒ以テ萬世ノ爲ニ太平ヲ開カムト欲ス[1]

朕ハ茲ニ國體ヲ護持シ得テ忠良ナル爾臣民ノ赤誠ニ信倚シ常ニ爾臣民ト共ニ在リ若シ夫レ情ノ激スル所濫ニ事端ヲ滋クシ或ハ同胞排擠互ニ時局ヲ亂リ爲ニ大道ヲ誤リ信義ヲ世界ニ失フカ如キハ朕最モ之ヲ戒ム

宜シク擧國一家子孫相傳ヘ確ク神州ノ不滅ヲ信シ任重クシテ道遠キヲ念ヒ總力ヲ將來ノ建設ニ傾ケ道義ヲ篤クシ志操ヲ鞏クシ誓テ國體ノ精華ヲ發揚シ世界ノ進運ニ後レサラムコトヲ期スヘシ

爾臣民其レ克く朕カ意ヲ體セヨ

(御名御璽)

昭和二十年八月十四日

2.2.2. 해석

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서 시국을 수습코자 충량한 너희 신민에게 고한다. 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2] 4개국에 그 공동선언[3]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하도록 하였다.

대저, 제국 신민의 강녕을 도모하고 만방공영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자 함은 황조황종(皇祖皇宗, 열성조)의 유범으로서 짐은 이를 삼가 제쳐두지 않았다. 일찍이 미영 2개국에 선전포고를 한 것도 실로 제국의 자존과 동아의 안정을 간절히 바라는 데서 나온 것이며, 타국의 주권을 배격하고 영토를 침략하는 행위는 본디 짐의 뜻이 아니다.

그런데 교전한 지 이미 4년이 지나 짐의 육해군 장병의 용전(勇戰, 분투), 짐의 백관유사(百官有司)의 여정(勵精, 노력), 짐의 일억 중서(衆庶, 국민)의 봉공(奉公, 국가를 받듦) 등 각각 최선을 다했음에도, 전국(戰局)이 호전된 것만은 아니었으며 세계의 대세 역시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적은 새로이 잔학한 폭탄을 사용하여 번번히 무고한 백성들을 살상하였으며 그 참해(慘害, 참상)가 미치는 바는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이 교전을 계속한다면 결국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 뿐더러, 나아가서는 인류의 문명도 파각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짐은 무엇으로 억조의 적자를 보전하고 황조황종의 신령에게 사죄할 수 있겠는가. 짐이 제국정부로 하여금 공동선언에 응하도록 한 것도 이런 이유다.

짐은 제국과 함께 시종 동아의 해방에 협력한 여러 맹방에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제국신민으로서 전진(戰陣)에서 죽고 직역(職域, 직무)에 순직했으며 비명(非命)에 스러진 자 및 그 유족을 생각하면 오장육부가 찢어진다. 또한 전상(戰傷)을 입고 재화(災禍)를 입어 가업을 잃은 자들의 후생(厚生, 생계)에 이르러서는 짐의 우려하는 바 크다. 생각건대 금후 제국이 받아야 할 고난은 물론 심상치 않고, 너희 신민의 충정도 짐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짐은 시운이 흘러가는 바 참기 어려움을 참고 견디기 어려움을 견뎌, 이로써 만세(萬世)를 위해 태평한 세상을 열고자 한다.

이로써 짐은 국체(國體)를 수호할 수 있을 것이며, 너희 신민의 적성(赤誠, 정성과 노력)을 믿고 의지하며 항상 너희 신민과 함께 할 것이다. 만약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함부로 사단을 일으키거나 혹은 동포들끼리 서로 배척하여 시국을 어지럽게 함으로써 대도(大道)를 그르치고 세계에서 신의를 잃는다면 이는 짐이 가장 경계하는 일이다. 아무쪼록 거국일가(擧國一家) 자손이 서로 전하여 굳건히 신주(神州, 일본)의 불멸을 믿고, 책임은 무겁고 길은 멀다는 것을 생각하여 장래의 건설에 총력을 기울여 도의(道義)를 두텁게 하고 지조를 굳게 하여 맹세코 국체의 정화(精華)를 발양하고 세계의 진운(進運)에 뒤지지 않도록 하라. 너희 신민은 이러한 짐의 뜻을 명심하여 지키도록 하라.

대동아 전쟁의 종결조서
(소화 20년 8월 14일)

3. 반응

3.1. 일본인

앞서 말했듯 처음에 이 선언을 알아듣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덴노가 친히 발표를 한다는 것 자체를 믿지 않은 사람도 많았고, 문어체로 발표를 하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했던 것. 그러나 이후 덴노의 항복선언을 해석한 전문들이 방송을 통해 삽시간에 퍼지게 되었고 얼마 안가 일반인들도 일본의 항복을 알게 되었다.

3.2. 한국인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도 이 방송은 그대로 전달되었으나, 일본어를 아는 이들도 많지 않았고 문장이 일본인도 알아듣기 힘든만큼 난해했던 탓에 일본어를 아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알지 못하였다. 그러다 나중에 그 내용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 - 한국에서는 사실상 조국이 해방된 것이나 다름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해방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자세한 것은 8.15광복 항목을 참조하기 바란다.

4. 그 밖에

한 면당 3분에서 4분 반 정도밖에 녹음할 수 없었던 당시 SP 음반의 기술적 한계 때문에, 두 개의 녹음기를 사용해 6분 가량의 방송을 두 장에 걸쳐 녹음했다.[4] 당시 사용된 녹음기는 일본 전기 음향[5]의 DP-17-K가 사용되었고, 일본 NHK 방송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SP 녹음인 것을 감안해도 음질이 좋지 않다. 우선 당시 일본의 방송 기술이 딸려서(...) 노이즈가 심한 것도 있고,[6] 오픈릴 테이프가 없었기 때문에 잡음이 심한 아세테이트 디스크에 녹음해야 했던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항복선언인 만큼 쪽팔려서 일왕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리게 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잡음을 많이 넣어 녹음하게 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일왕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게 하려고 임의로 출력을 증폭시킨 것이 되레 심한 잡음을 유발했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

또한 전후로 SP의 소재가 불분명해졌는데, 방송을 치욕스럽게 생각한 황실에서 디스크를 은닉해서라는 설이 있다. 한 동안 공식 녹음반이 분실 혹은 파기되었다고 알려졌지만, 방송 1년 뒤 미군이 당시 옥음방송 녹음을 담당한 엔지니어를 불러와 복제반을 제작했다. 하지만 복제반 제작시 재생 속도와 원판 녹음 속도의 미세한 오차로 인해 현재 일반적으로 유포되고 있는 음원은 피치가 조금 낮다고 한다.

한편 뒤늦게 발견된 원본 음반 또한 NHK 방송 박물관에서 질소가스를 충전해 보관 중인데, 이 아세테이트제 디스크가 품질이 조악해 열화되어버리는 바람에 복구는 되었지만 실제 재생은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물론 복각 기술이 발달한 21세기에 와서는 잡음을 상당 부분 제거해 비교적 또렷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2011년 5월에 일본의 복각 전문 레이블인 알투스에서 발매된 황기2600주년 기념 봉축곡의 CD에 보너스 트랙으로 실리기도 했다.지네 나라 왕의 GG선언을 보너스 트랙으로 넣는 열도의 위엄

항복에 반대하던 군부 내 일부 강경파 세력이 이 음반을 방송 전에 탈취하려고 했다.[7] 다행히[8] 예기치 못한 사태가 일어날 것을 대비해 미리 백업판을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히로히토의 항복 방송에 대한 비화에 대해 알고 싶은 위키러는 한국방송의 '8.15특집 전쟁과 일본 제3부 히로히토와 종전조서' 라는 다큐를 추천한다. 보다보면 피꺼솟

옥소리와는 관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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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만세를 위해 태평한 세상을 연다'라는 구절은 주자학의 근간이 된 북송 오자중 장재의 저서의 쓰인 표현을 자기 입맛대로 갖다 쓴 표현이다. 원문은 '爲天地立心 爲生民立命 爲王聖繼絶學 爲萬世開太平(천지를 위해 마음을 세우고 생민을 위해 명(命)을 세우고 성인을 위해 끊긴 학문을 잇고 만세를 위해 태평을 연다.)'로, 근사록(近思錄)에 적혀있다. 하여튼 어떻게든 포장하려고...
  • [2] 원문은 米英支蘇, 중국을 '支那'(지나, 중국을 가리키는 명칭, 현재는 멸칭으로 사용)로 썼음
  • [3] 포츠담 선언. 일본 군대의 무장 해제, 무조건 항복 등을 요구하는 선언이다.
  • [4] 듣고도 구별 가능하다. 중간에 갑자기 음질이 맑아지는(...) 파트가 있다.
  • [5] 현재의 데논
  • [6] 실제로 1930~40년대에 일본과 방송 교류를 했던 독일 측 기술진들은 일본 방송의 음질이 너무 후달려서 중계하기 민망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반대로 일본 측 기술진들은 독일 방송의 음질이 너무 좋아서 열폭했다.
  • [7] 궁성사건 참조.
  • [8] 1945년 8월의 상황에서 일본이 항복선언을 무사히 마친 것은 일본으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만주한반도 북부에서는 소련군8월의 폭풍 작전을 벌이고 있었고, 만약 강경파가 권력을 장악하고 1억 총옥쇄를 유지했더라면 그해 11월부터 일본어는 지옥에서나 들을 수 있는 언어가 되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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