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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진군(황해도)

last modified: 2015-03-14 01:25:50 by Contributors


Contents

1. 소개
2. 하위 행정구역 (광복 당시)
3. 통일 이후의 전망

1. 소개

황해도에 위치한 군. 면적 696제곱km. 광복 당시에는 옹진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북한 치하에서 1954년 남동쪽 절반이 강령군으로 분리되어 반도의 서남단만을 관할하게 되었다.

옹진반도의 대부분은 38선 이남에 있어서, 한국 전쟁 이전에는 대부분의 지역이 남한령이었다. 38선 분할로 인해 옹진군 교정면, 가천면의 북부 2/3이 북한령이 된 대신, 38선 이남에 있던 벽성군 해남면, 동강면, 송림면(연평도 포함), 장연군 백령면(백령도, 대청도, 소청도)을 더하여, 옹진읍 온천리에 있었던 옹진군청에서 관할하였다. 또한 옹진군과 연백군경기도로 이관하였다. 그러나 휴전 협정 이후 서해 5도를 제외한 전 지역이 완전히 북한 치하로 넘어갔으며, 군청 역시 인천으로 옮겼다. 옹진고등학교도 부천으로 옮겨 가서, 현재의 부천시 소사구 범박동에 있는 시온고등학교가 되었다.

옹진군이 고향인 실향민들은 대부분 개전 초기 군과 함께 남쪽(대부분 인천)으로 피난한 경우이다. 그래서 인천에는 옹진군 출신 및 그 후손들이 상당히 많이 거주한다. 또한 1.4 후퇴 당시 황해도나 평안도에서 바닷길로 피난한 사람들 역시 옹진군 도서지역에 집결하여 남쪽으로 내려갔다.

2008년 현재 북한 인구조사에서 옹진군과 강령군(구 옹진군+벽성군 3개면[1])의 인구를 합치면 26만 명에 달한다. 통일되면 옹진로 승격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다만 앞서 언급한 인구조사는 민간인뿐 아니라 북한군들까지 조사된 것이다. 따라서 옹진 지역은 우리측 서해 5도와의 접경지역이기 때문에 주둔하고 있는 북한군의 수가 상당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통일 후 이촌향도 문제도 불거질수 있으니 일단 어떻게 될지 기다려보자. 하지만 신도시가 건설된다면 어떨까?

전쟁 전까지만 해도 금광과 온천업으로 엄청 잘 살던 동네였다.그 녀석이 오기 전까지는...

2. 하위 행정구역 (광복 당시)

광복 당시 기준 1읍 10면이다.

  • 옹진읍
    1938년 읍으로 승격되기 전에는 마산면(馬山面)으로 불렸으며,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교정면, 가천면과 함께 해주군에서 옹진군으로 편입된 곳이다. 군청 및 읍사무소 소재지인 온천리에는 15세기 중엽부터 발전하여 온 마산(馬山)온천이 있다[2]. 또한 이 지역 경제의 트레이드 마크인 옹진금광이 수대리에 있었다. 해옹선 냉정역과 종착역인 옹진역의 소재지. 인구 32,965명(1949년)으로 무려 현재의 영동읍보다도 큰 동네였다. 영동군 안습 평양의 공산정권에게 강점당하지만 않았어도 무난하게 시승격을 노릴 수 있었던 동네다. 일본인한테 옹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일이 있으면 한국사도가시마라고 해주면 바로 이해를 할 것이다.
    소속 리 : 온천(溫泉)·당현(堂峴)·도원(桃源)·냉정(冷井)·개평(開坪)·수대(秀垈)·송정(松亭)·구계(龜溪)·양암(陽巖)·단천(丹川)·노호(蘆湖)
  • 가천면
    광복 당시에 면사무소 소재지는 장현리이다. 38선이 설정될 때 면의 남부 3분의 1 지역이 이남에 있었는데, 북면이 관할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속 리 : 장현(長峴)·한현(閑峴)·성변(城邊)·삼괴(三槐)·옥천(玉泉)·사산(沙山)·가암(架巖)
  • 교정면
    광복 당시에 면사무소 소재지는 송림리이다. 38선이 설정될 때 면의 남부 3분의 1 지역이 이남에 있었는데, 서면이 관할했던 것으로 보인다. 판정리에는 면 이름의 유래가 된 판정우물이 있다.
    소속 리 : 송림(松林)·국봉(國峰)·건전(乾田)·비파(琵琶)·난천(蘭泉)·월암(月巖)·판정(判井)·구포(鷗浦)·송현(松峴)·낭암(浪巖)
  • 동남면
    동남면임에도 군의 중앙에 있다. (구) 옹진군의 동면과 남면을 1914년 행정개편 당시 합면했기 때문이다. 면사무소 소재지는 당장리이다. 사곶 일대에는 북한 해군기지가 설치되어 있다. 주요 부속도서로는 어화도(漁化島), 용호도(龍湖島)가 있다. 어화도의 경우 인천광역시에는 어화도 출신 실향민들의 단체인 어화도민회가 있으며, 용호도의 경우 의 산지이며 과거 용호도수산학교가 있었고 개전 초기 옹진철수 때 피난선을 제공했던 곳이다. 이 지역의 해상교통은 사관리(=사곶)에서 용호도를 거쳐 어화도에 들어가는 기선이 전부였다. 인구 15,184명 (1949)
    소속 리 : 당장(堂墻)·어화도(魚化島)·송강(松江)·송현(松峴)·장척(長尺)·거답(巨畓)·석교(石橋)·안산(安山)·인평(仁坪)·서장(西壯)·신안(新安)·갈항(葛項)·용호도(龍湖島)·전당(錢塘)·사관(沙串)·무파(茂巴)
  • 봉구면
    (구)옹진군의 봉현면과 구주면을 합면해서 탄생되었다. 면사무소 소재지는 장수리이다. 옹진반도의 주요 해상 요충지 중 한곳인 부포리가 이 면에 있는데, 부포선의 종착역인 부포역이 있으며 6.25 이전까지는 인천과의 사이에 연락선이 다녔다. 일명 부포항로. 평양리의 개머리 해안포진지와 무도리의 "무도방어대"는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의 도발 원점이기도 했다. 인구 13,414명(1949)
    소속 리 : 장수(長壽)·광암(廣巖)·신평(莘坪)·도화(都華)·평양(平陽)(!!!)·부포(釜浦)·건지(乾智)·옥은(玉隱)·향가(香街)·죽교(竹轎)·무도(茂島)
  • 부민면
    면소재지는 강령리이며, (구) 강령군의 중심지이다. 강령탈춤의 발상지. 강령반도에서 해주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해있다. 부포선 강령역이 있고, 신강령역은 바로 부민면 북쪽 끄트머리에 있다. 인구 11,275명(1949)
    소속 리 : 강령(康翎)·광평(廣坪)·천상(泉上)·고동(古洞)·성도(聖道)·내동(內洞)·부암(婦巖)·미산(眉山)·금병(錦屛)·석계(石溪)
  • 북면
    군 중앙에 있는 면으로, 면 소재지는 화산동리이며 화산성(花山城)이 있다. 화산이라는 데에서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월남에서 왔다는 이용상의 유적지인 망국단이 바로 이곳에 있다. 이 곳은 옛 수군절도사의 본영이 있었기에 일명 '본영(本營)'이라고도 하는데, 1914년까지의 군청 소재지였으며 옹진향교 또한 이 곳에 있었다. 한편 구곡노동자구[3]에는 북한 중앙식물원 옹진분원이 있다. 인구 10,609명(1949).
    소속 리 : 화산동(花山東)·고안(古安)·웅현(熊峴)·초일(蕉日)·화산중(花山中)·봉소(鳳所)·상심적(上深寂)·삼산(三山)·하심적(下深寂)
  • 서면
    군 서부에 위치한 면. 면 소재지는 읍저리. 읍저리는 일명 '소강(蘇江)'이라고도 하는데, 수군첨절제사의 본영인 소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 안의 누각인 만하정(挽河亭)과 진해관(鎭海館)은 광복 당시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한편 연봉산에는 오래된 절인 청련사(靑蓮寺)가 있었으며, 주요 부속도서로는 창린도가 있다. 인구 15,389명(1949).
    소속 리 : 읍저(邑底)·동문외(東門外)·연봉(蓮峰)·외전산(外錢山)·장포(長圃)·만진(萬珍)·내전산(內錢山)·동오(東五)·서경(西京)·창린도(昌麟島)
  • 용연면
    군 동부에 위치한 면. 면 소재지는 송학리. 부포선 철도가 통과한다. 한 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던 옹진 학 도래지가 용연면의 강령천변에 있던 거다. 인구 8,195명(1949)[4].
    소속 리 : 송학(松鶴)·한봉(漢鳳)·장릉(長陵)·용연(龍淵)·수계(水鷄)·용산(龍山)!·봉황(鳳凰)·오산(梧山)
  • 용천면
    군 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 소재지는 포산외리. 포산외리의 용천약수가 유명하며, 주요 부속도서로는 기린도, 마합도가 있다. 인구 11,475명 (1949).
    소속 리 : 포산외(蒲山外)·대정(大井)·손량(孫梁)·용암(龍巖)·용문(龍門)·마합(麻蛤)·제작(製作諸作)·포산내(蒲山內)·대기(大機)·마항(馬項)·원산(院山)(!!!)·기린도(麒麟島)
  • 흥미면
    군 남단에 위치한 면. 면 소재지는 안락리이다. 본토 최남단에는 등산곶이 있으며, 옹진반도 도서지역의 최대도서이자 전국구로 봐도 꽤나 큰 섬인 순위도(巡威島)[5]가 이 면의 관할이다. 인구 12,373명 (1949).
    소속 리 : 안락(安樂)·식여(食餘)·냉정(冷井)·송산(松山)·석포(石浦)·월계(月溪)·아미(峨嵋)·봉강(鳳崗)·괘암(掛巖)·등산(登山)·창암(蒼巖)·예진(禮津)

3. 통일 이후의 전망

옛날과는 다르게 지역기반산업의 전망이 어둡다. 금광은 70년대에 문 닫았다. 고갈로 폐광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폭약사고로 폐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온천업은 전국구로 봐도 온양에 밀리고, 황해도 내에서도 연백의 연안, 배천과 송화 등 경쟁자가 너무 많다. 그 외에는 양식 같은 수산업 정도? 조선시대처럼 해군기지 지어야지. 이미 사곶에 북한 해군기지가 있기도 하고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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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북 5도 체계 하에서는 옹진군의 면으로 인정한다.
  • [2] 한반도에서 가장 뜨거운 온천이다.
  • [3] 고안(古安)·웅현(熊峴)·상심적(上深寂)리를 합친 북한의 행정구역
  • [4] 통계청 포털에서는 용유면으로 되어있는데, 그 당시 용유면(현 인천 중구)은 부천군 소속이었다.
  • [5] 창암, 예진 2개리 관할
  • [6] 지리적으로 봐도 이곳은 통일 이후에는 서울, 경인 지역을 대비하는 전략적 요충지가 될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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