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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키자카 야스하루

last modified: 2015-04-15 22:01:29 by Contributors

Contents

1. 역사상의 와키자카 야스하루
1.1. 한국 대중매체의 기묘한 버프
2. 창작물에 등장하는 와키자카 야스하루
2.1. 불멸의 이순신
2.2. 임진록 시리즈
2.3. 천하제일상 거상
2.4. 코에이 게임
2.5. 명량

1. 역사상의 와키자카 야스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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脇坂安治, 1554년 ~ 1626년
이상하게 많이들 와카자키라고 알고있다 若崎安治


와키자카의 문장, 불멸의 이순신을 봤다면 한번쯤이라도 봤을 그 문장이다.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에도 막부 시대에 활약한 무장이자 다이묘. 시즈가타케의 칠본창 중 한 사람. 성인 와키자카는 '와키사카'로 읽기도 한다.

오우미(近江)국(지금의 시가 현) 출신으로 본래 아자이 나가마사의 가신이었는데, 1573년 아자이가가 오다 노부나가의 공격으로 멸망하자 노부나가의 가신이었던 아케치 미츠히데의 부장이 되어 단바 공략전에서 공을 세웠다.

그리고 미츠히데를 떠나 스스로 하시바 히데요시를 찾아가 그 밑에서 히데요시의 쥬고쿠 평정전에서 활약했으며 혼노지의 변 이후 히데요시의 통일전쟁에서도 활약하여 영지를 하사받았다. 원래 그의 활약을 보면 육전에서의 활약이 많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해전에 능한 장수로 흔히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히데요시에게 해적 집단이 있던 영지를 받으면서 이 무렵(1590년)에야 수군 지휘관이 되었기 때문. 가토 요시아키, 구키 요시타카와 함께 수군의 지휘관이 되어 호죠가의 오다와라성 공략전에서 수군을 이끌고 성을 봉쇄했다. 한마디로 해전이 딱히 전공인 무장은 아니란 소리.[1]

임진왜란용인 전투에서 1천 6백명의 병력으로 5만의 조선군을 몰아냈다. 용인 전투는 임란 초기 조선군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병크지만 결과만 보고 30배가 넘는 병력을 처참하게 개발살냈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정작 일본 쪽 기록에도 용인 전투에 대해서는 조선군이 궤주(潰走)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조선군은 죽은 병사보다는 도망친 병사들이 더 많았다고.
어쨌든 승장이지만 한국에서는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에게 개발살난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본래 서군이었으나 전투가 일어나기 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미리 동군으로 갈 의사를 밝혔고 전투에는 직접 참가하지 않아서 전투가 끝난 후에도 참수당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쿠가와와 상당히 가까워졌다고 한다.

자세히 말해보면 임진왜란이 끝난 뒤 일본으로 돌아가 이시다 미츠나리에게 '배신'을 때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에 붙어 잘 먹고 잘 살다가 천수를 누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때 야스하루의 행동을 배신이라고 하기 애매한 게, 원래 처음부터 야스하루는 도쿠가와 진영에 가담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야스하루가 오사카 성에 체류하고 있을 때 미츠나리가 거병하는 바람에 미처 도쿠가와 쪽으로 붙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미츠나리 진영에 가담했던 것. 애시당초 세키가하라 전투는 도요토미 VS 도쿠가와의 대결이라기보다는 도요토미 정권 내부의 항쟁이라고 보는 쪽이 옳다.[2] 하여튼 어떤 의미에서는 도도 다카토라 못지 않은 줄타기의 달인. 그의 처신 덕에 와키자카 가문은 영주로써 메이지 유신 때까지 가문이 온전히 보전되었다.

위키백과에서는 노량해전에 참전하였다고 되어있다. 봤으면 고칩시다.

임진왜란 때 자기들이 이긴 것은 부풀리고 진 것은 쉬쉬했던 다른 일본 장수들과 달리, 자신의 승패를 솔직하게 기록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에서 해초 먹고 나서 정신차렸나 보다.[3]

1.1. 한국 대중매체의 기묘한 버프

역사스페셜에서는 그의 관점으로 한산도 대첩 편을 방영한 적도 있고 불멸의 이순신에서 담당 배우인 김명수의 열연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상할 정도로 띄워주는 시각이 있고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아예 이순신의 라이벌이라는 과분한 포지션에 일본 최고의 수군무장이라고 나레이션으로 몇번이나 읊어주는데 이는 모두 지나친 과장이다. 일본에서는 인지도가 정말 듣보잡에 가까운 장수로 실제 지위도 임진왜란때 3만석 규모의 중소 영주였다. 참고로 선봉장 고니시와 가토 기요마사의 영지는 약 20만 석이였고 노량해전에서 개박살난 시마즈 요시히로는 혼자서만 10석에 가문전체는 약 60만석이였다.
일본인들 중에서 역사에 어지간히 관심있는 사람들도 이 사람을 잘 모른다고 한다.[4] 되려 불멸의 이순신을 시청한 몇몇 일본인들 사이에서 "이렇게까지 분전했던 장수를 우리가 몰랐었다니 부끄럽다"라는 반응이 있었다.

2. 창작물에 등장하는 와키자카 야스하루

어째 일본보다는 한국 창작물에서 대접이 더 좋은 인물이다. 임진록 2이나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과의 라이벌 중 한 명으로 나오는 것만 해도 엄청난 특례.

반면 일본 창작물에서는 듣보잡답게 거의 등장하지도 않는다. 게임, 만화, 소설은 물론 심지어는 사극에서도.

2.1.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사극에 자주 출연하는 연기파 배우 김명수가 맡았다. 그래서 그런지 알게 모르게 상당히 버프 받았다. 덕택에 이순신하고 라이벌 플래그가 섰다. 사실 와키자카와 이순신은 한산도 대첩때 처음 만났지만… 드라마상에서는 젊은 시절의 와키자카가 왜구짓을 하는데 이순신과 칼싸움을 벌이고, 이순신이 와키자카의 얼굴에 상처를 냈다는 식으로 나온다. 게다가 상처로 인해 생긴 흉터의 위치는 매번 바뀐다. 분장 좀 옳게 했어야지 심지어 노량 해전 편에서는 해전 중에 가리포 첨사 이영남과 칼싸움 끝에 바닷물에 빠진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이순신에게 패한 것을 참지 못해 자결한다고 적어 놓았지만, 논란이 많았는지 최후를 애매하게 처리한 것.[5] 정작 실제로 야스하루는 노량 해전에 참전하지도 않았다. 그걸 떠나서 왜란 전에 고니시나 도도를 은근히 비꼬는게, 정말 저랬다면 왜란이 시작하기도 전에 고니시나 도도에게 까여서 죽지 않은게 용하다. 근데 일일히 댁은 일본 최강의 수군장수임 ㅇㅇ라는 대사를 꼭 뒤에 한두번을 붙여두는 걸 보면, 드라마 제작진도 무리수인 것은 인지하고 있었던 듯 하다. 쪽팔리니까 그냥 밀어 붙힌거다.

mwellbeing.jpg
[JPG image (99.73 KB)]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 미역으로 웰빙하라! 짤방 와키자카 하면 생각나는 가장 유명한 짤방이 아닐지? 근데 구글에서 와키자카 야스하루로 검색해 보면 우측의 인물 설명란에 이 짤방이 대표 이미지로 뜬다 흠좀무(...) 아마 이미지 검색 때 제일 먼저 뜨는 이미지가 이 짤방이기 때문인 듯(...)


명량 해전 한정이지만, 승리를 확신할 때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기분이 불쾌해지면 집어던지는 등의 기행을 보여준다.왜 지고 있는데 나한테 화풀이냥!

불멸의 이순신이 한창 유행할 때 "내가 죽이고 싶은 사람도, 가장 존경하는 사람도, 함께 차를 마시고 싶은 사람도 이순신이다"라며 이순신을 존경했다고 그가 직접 말했다는 글이 퍼지기도 했지만, 이건 정말로 전혀 근거가 없는 낭설이니 믿으면 정말 골룸.[6] 글쎄, 죽이고 싶은 사람이 이순신이었던 건 맞을 수도 있겠다. 다만 저런 말은 와키자카만 할 법한 말은 아니란 말이지...

하여튼 불멸 탓인지 우리 나라에서 필요 이상으로 용인 전투의 맹장이니 일본 수군의 본좌니 하며 지나치게 띄워주는 인물이고, "이순신은 이런 용장을 이겼다. 우왕ㅋ굳ㅋ"이라고 보는 움직임도 있지만 굳이 이런 마이너 무장을 1류 무장으로 띄우는 등의 왜곡질을 안해도 충무공 이순신이 위대한 인물임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리고 고려 말기에 가문의 문장이 특별출연했다.[7]

2.2. 임진록 시리즈

임진록 2에선 조총을 사용하는[8] 장수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다는 걸 빼면 장점이 없다.[9] 체력도 낮고 공격력도 별로고 기동성도 떨어지고…. 대신 용기린갑옷만 착용시켜준다면...
그나마 임진록 2에서는 이순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으나 조선의 반격에서 이순신에게 가공할 마법 기공신포가 생기면서 이젠 이순신만도 못하다.[10]. 대신 귀갑차에 탑승시키면 장수 보호도 되면서 장수 특유의 격려 시스템이 그대로 적용되고, 또 와키자카가 총병 유닛인지라 탑승시키면 귀갑차 기본 공격력도 상승하니 원펀치 쓰리 강냉이. 총병 계열에 공격력, 방어력 격려 효과를 많이 주기 때문에 조총병과 귀갑차를 끌고 다닐 때 데리고 다녀주자. 조선의 반격 시나리오에서는 이순신을 저격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다.[11]
녹음상의 실수인 것 같은데 선택시 대사에서 자기 이름을 '와카자키'로 불러버렸다.

2.3. 천하제일상 거상

천하제일상 거상에도 등장하는데, 임진록 2와 마찬가지로 조총을 사용한다. 총낭인의 레벨 40부터 와키자카로 전직이 가능하다. 임진록 2의 와키자카와는 달리 두 가지의 공격타입이 존재하는데, 커다란 조총으로 한 발을 쏜 다음 쌍권총을 꺼내 여섯 발을 발사하고[12] 다시 조총을 꺼내 쏘는 방식이다.
고유기술은 격필살이며 쌍권총을 쏘는 상태에서 격필살이 발동될 경우 발사된 여섯 발 모두 격필살이 발동된다. 이 상태로 여섯 발 모두 명중시키면 몬스터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ㅎㄷㄷ 이러한 특징 때문에 여전히 와키자카를 데리고 다니는 유저들이 존재한다.
레벨 80부터 진차로 전직할 수 있다.

2.4. 코에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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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혁신, 천도

코에이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능력치가 C급이다. 전투치가 70대 초반이고 나머지 능력치는 별볼일 없고, 태합입지전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를 두고 '와키자카 맹장 떡밥'에 낚인 사람은 "임진왜란은 일본에서도 흑역사 취급하니까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도 왜란 참전 장수들을 낮게 책정하잖아"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와키자카나 우키타 히데이에 같은 인물들만 놓고 보면 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고니시 유키나가[13]도 한국인들 생각보다 그렇게 능력치가 높은 편은 아니니까. 그러나 가토 기요마사, 시마즈 요시히로, 도도 다카토라, 베시마 나오시게코바야카와 타카카게만 봐도 그런 말은 나올 수 없다. 무엇보다 임진왜란의 주범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만 봐도 답이 나오는 문제.
태합입지전5에선 무력만 78이고 통솔은 56, 전투쪽 기능은 3레벨이 무운 말고는 없다. 그나마 꼴에 다이묘라고 안 짤리고 나온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 그래도 쓰기에 따라선 칠본창중 나가야스, 가츠모토, 다케노리보단 나을 수 있다. 물론 마사노리, 기요마사, 요시아키와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2.5. 명량


영화 명량에서는 와키자카 야하루로 표기된다. 담당 배우는 연기파 배우인 조진웅. 영화상 모습으로는 기존의 능력치 버프는 커녕 한국인의 이미지 기준 대폭 능력치 너프를 당했다. 구루시마 미치후사와의 티격태격 장면에서 깨갱거리는 안습한 역할에, 해전에 들어가서도 소극적으로 미적거리다가 후반부에 만신창이가 된 이순신 대장선을 향해 돌격을 감행하지만 역으로 조선 수군의 충각술에 휘말려 안드로메다로...근데 메이킹필름 보면아주 약간 나오는데 투구 없는 상태로 갑판 잡고 부들부들거리고 있는 거 보면 살아있는 것 같긴 하다.[14][15]

여담으로 명량에 등장하는 와키자카의 문양이 묘하게 어떤 명품 브랜드 혹은 모 자동차 메이커 마크와 상당히 유사해보인다. 외제차 몰고 명품쓰는 된장남?? 이 문장은 원래 무로마치 막부의 충신 중 하나였던 하타케야마 가문의 문장으로, 와키자카가 결혼을 통해 하타케야마 가문의 영지를 상속받으면서 문장도 물려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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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구키 요시타카의 경우는 노부나가 휘하에서 해적(본래 해적 출신이다.)으로 명성을 떨쳤던 인물이지만 요시아키와 야스하루는 원래 육전 전담 무장이었다가 영지에 해적집단이 있어서 수군을 맡게 된 케이스. 요시아키는 이요, 야스하루는 아와지에 영지가 있는데 두 곳 다 헤이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해적 집단이 자리한 곳이다. 또한 이 시대 일본의 '수군'이라는 개념은 지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수군의 개념과는 많이 다르다. 당대 일본의 기록에서 水軍이라는 표현을 찾아볼 수 없고 수군이라 칭할 만한 것으로 海賊衆(해적중/카이조쿠슈), 船手衆(선수중/후나테슈) 따위로 나타난다. 즉 이 시대 일본에서는 수군=해적이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 [2] 도요토미 가 내의 문신파 vs 무신파이며 좀 더 확장하면 친 도쿠가와 vs 반 도쿠가와 간의 대결이기도 하다.
  • [3] 와키자카기에 의하면 한산도에서 발린 후 해초를 먹어가며 연명한 끝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역사스페셜 등에 따르면 와키자카의 후손은 연례 행사로 그 때를 기리는 의미로 미역으로만 식사를 한다고. 미역웰빙의 선구자
  • [4] 물론 이것은 임진왜란 자체가 일본에서는 인기없는 화제이기도 한 탓도 있다. 그나마 임진왜란에 관해 일본인들이 자주 하는 얘기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등의 '벽제관 전투'와 시마즈 요시히로의 '사천 전투', 가토 기요마사의 '울산 농성' 정도. 왜냐하면 지들이 졌으니까
  • [5] 그러나 작중 이영남이 부상을 입고 구출당한걸 보면 극중 일본군에 의해 구출되어 조선에서 탈출했을 가능성도 있다.
  • [6] 이순신을 통해 민족적 자긍심을 극대화하려는 의도 때문인지 유독 이런 낭설이 많다.
  • [7] 1화의 왜구들이 들고있는 깃발이 와키자카 가문의 문장이다. 사족이지만 와키자키 야스하루의 역을 맡았던 김명수공민왕역이다.(...)
  • [8] 무려 두 자루를 양 손으로 들고 쏘지만 현시창
  • [9] 임진록 2에서는 김좆키와카자키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나왔는데, 조선의 반격에선 교정되었으나 녹음된 음성은 여전히 "와카자키입니다".
  • [10] 결정적으로, 이순신은 템 맞추면 일격필살 + 화전 연구로 공격업도 적용되지만, 얘는 철갑탄 업글 외엔 그런 거 없다
  • [11] 이때의 목소리는 이순신이나 와키자카나 둘다 성우가 동일하므로 자문자답이라 할 수 있다.
  • [12] 쌍권총을 쏜 상태에서 몬스터 한 마리를 사살하면 그 다음 공격에도 쌍권총으로 여섯 발을 쏘는 게 특징.
  • [13] 그래도 고니시는 혁신에서 수군 적성이 S인 데다가 내정관으로는 쓸만한 편이다.
  • [14] 사실 주된 상대로 설정된 건 류승룡이 맡은 구루시마 미치후사다. 물론 와키자카 야스하루나 구루시마 미치후사나 일본 내에서 듣보잡 무장인 건 똑같지만.
  • [15] 명량이 제작사의 의도대로 이순신 3부작으로 제작된다면, 다음에 제작될 한산:용의 출현의 경우 와키자카가 이순신에게 처절하게 패배한 전투인 만큼 부각될 위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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