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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전

last modified: 2015-04-08 01:33:56 by Contributors

Contents

1. 전국시대 진나라명장
1.1. 하라 야스히사만화 킹덤에서의 묘사
2. 고려의 왕 공민왕의 휘


1. 전국시대 진나라명장



王翦 ?~?

춘추전국시대를 종결시킨 진나라(秦)의 무장으로 빈양 동향 사람이다.

그의 일족이 멸망시킨 국가만 해도 5개로 연나라, 조나라, 초나라, 위나라, 제나라 등 5개국으로 수백개 성을 함락시켰으나, 백기와 같은 학살자의 이미지는 없다. 전국시대 가장 뛰어난 무장 가운데 한명으로 평가받는다.[1]

출생 연도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기원전 236년부터 그와 관련된 기록이 사서(史書)에 나타나며 장군이 돼서 조나라의 연여를 공격해서 9개의 성을 빼앗았고, 기원전 228년에는 간신배 곽개를 현질로 매수하여 조나라 명장 이목을 제거하고, 조나라 수도 한단을 함락하여 기어코 조나라를 멸망시킨다.[2] 기세를 몰아 기원전 226년에는 연을 멸망시켰다.

기원전 224년 진왕 정-훗날 진시황-이 초나라 정벌 계획을 세우자 60만 병력을 동원하자 주장했으나, 이신몽염은 20만으로 충분하다 맞섰다. 그러자 진왕은 이제 왕전도 늙었네.ㅉㅉㅉ 하고 왕전의 주장을 무시했다. 이 20만 대군은 초반에는 승승장구하다가 초나라의 명장인 항연이 본격적인 기만책을 사용하자 결국 대패하였다.[3]

비로서 진왕은 왕전에게 60만 대군을 주어 초나라를 치게 하는데, 이 60만은 진의 전병력이어서 내심 반란을 걱정했다. 이런 속내를 읽은 왕전은 진왕을 안심시키려고 싸우기도 전에 줄기차게 사자를 보내서 막대한 토지와 저택 등 포상을 보장해달라고 징징요구한다. 말하자면 승리수당에 눈이 멀어 조낸 열심히 뛴다고 위장한 셈.[4]

이렇게 치졸한 보신책까지 쓴 이유는, 이전 시대와 달리 변해버린 전쟁의 양상을 읽고 있는 왕전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장기전을 계획했기 때문이다.[5][6] 항연이 이신에게 승리하여 기세가 오른 초나라군의 사기를 약화시키고, 지친 진나라군을 쉬게하다가[7] 기세를 잡아 일망타진하려는 생각이었는데, 이런 장기전은 고금을 막론하고 군주에게 의심을 받아 망치곤 했기 때문이다.[8] 우주방어 참조.

결국 초나라군과 전투에서 1년간 장기전을 벌인 끝에, 단 한번 기습으로 항연을 죽이고[9] 초나라군을 전멸시켰으며, 수도까지 점령하여 초나라를 멸망시켰으며, 이런 기세를 앞세워 장강을 건너 남진하여 백월까지 공략하였다.

이 공을 인정받아 왕전은 무성후(武成侯)에 봉해졌고, 아들 왕분 또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연나라를 멸망시켰다. 덕분에 왕씨 가문은 몽오-몽무-몽염으로 이어지는 몽씨 가문과 함께 진나라 군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손자 왕리는 진시황 사후 초한쟁패 혼란기 때 항연의 손자인 항우에게 패사한다.

왕(진시황)의 악행을 막을 생각은 않고 일신의 안녕만을 추구했다는 이유로 훗날 사마천에게 까인다.[10]


삼국지 12 일러스트

게임인 코에이삼국지 11에서 고대무장으로 등장하며 특기는 구축을 가지고 있으나…능력치는 통솔력 92를 제외하면 무 71/지 75/정 68/매 79, 그야말로 평범함의 극을 달린다. 하다못해 평가절하 당한 동급의 명장 백기는 무력이라도 높은데, 지못미. 여담으로 백전노장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노인들과 친하다(친애무장이 황충, 엄안, 황개). 그러나 삼국지12에서는 매력 삭제에 따라 다른 능력치가 상승됨으로써 제법 쓸만한 무장이 되었는데, 통 94/ 무 72/ 지 82(전작보다 무려 +7)/ 정 68이고, 병과는 창병이며 전법은 손권과 같은 전군방호가 주어졌다. 다만, 일반적인 해금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고 꼼수가 필요하다.

1.1. 하라 야스히사만화 킹덤에서의 묘사




공식능력치
시기 무력 지휘력 지력 정치
20권 ? ? ? ?
가이드북 93 93 97 ?

성우는 호리우치 켄유

같은 육대장군급 무장인 환기보다 통솔력과 지력이 조금씩 높다. 또한, 능력치 총합으로 따지면 7위인데 왕전보다 총합이 높은 건 양단화, 육대장군인 왕기, 삼대천인 이목염파, 그리고 군신 악의다. 저 7명의 경험치가 모두 A 이상이고 왕전이 B란걸 생각하면, 저기서 더 강해질 가능성이 상당히 남아있단 말.

가면남으로 설정되어 19권에서 몽오군의 부장으로 첫 등장한다. 몽오가 성 3개를, 다른 부장 가 성 5개를 함락 할 때 성 8개를 함락하면서 벽 천인장을 놀라게 한다. 원래 능력은 굉장히 뛰어나 소왕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으나 인정받지 못하고 음지에서만 활약했다. 그 이유는 몽념의 설명에 의하면 소문에 왕전은 자신이 진나라의 왕이 되고 싶어한다.라는 이유 때문.

위나라군과의 전투에서는 전투 전에 유리한 거점을 차지하여 염파도 나름 감탄하였고, 열세에 몰려있는 벽 천인장을 5천명의 장수로 임명하여 좋은 미끼로 써먹으려 한다. 그러나 전투 중에 염파는 왕전진영의 방비를 보고서는 백기에 필적하는 재능을 가졌으나 자기자신의 안위를 우선으로 하며, 무엇보다 장수보다는 왕이 되고 싶어하는 그의 야망을 알아보고는 소왕 시절부터 음지에서 활약한 이유를 알게되었고 이런 무장은 신뢰를 받을수 없다고 하며, 실망해버린다.[11]

다만 왕전이 왕이 되려는 야심을 어디까지 이어가게 될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실제 역사대로 흘러가게 할 경우라면 언젠가 진나라 왕인 정에게 데꿀멍하는 장면이 나오고 이후 노후보장 해달라며 비굴할 정도로 보신을 위해 굽실거리는 캐릭터가 되어야 할텐데, 작가가 스토리를 어떻게 구상을 해놓았을지가 관건일 듯 싶다.-그 이전에 '나 왕국 세울거임'이라고 말하는 사람한테 60만명을 주는 쪽이 이상하지 않음?-

이후 합종군과의 전투에서는 연합군에 맞서 함곡관 우측 산악지대를 방어했다. 견고한 진으로 연나라 군대와 맞섰으나 연나라 군대의 산악 민족들의 기동력에 밀려 방어가 뚫리자 미련없이 군대를 철수시키고 그 자취를 감춘다.

왕성에서는 이 때문에 난리가 났으나 사실은 함양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절벽을 연나라 군대가 오르는 동안 뒤를 치기 위해 사라졌던 것. 연나라 군대의 진격을 보고 '멍청한 놈들'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집중사격을 가해 적의 주력인 산악부족을 전멸시키고는 다시 사라져 연군의 발목을 묶는 등 간지 폭풍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서 1만명을 추려내어서 오르도를 기만하는 한편, 이 1만의 병력을 합곡관의 지원군으로서 투입하여 합곡관 방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합종군 격퇴가 일단락된 후엔 위나라를 침공해 경도성을 함락시켰는데, 항복한 장졸들에게 '죽던가, 내게 복종하던가'를 선택하게 해 자신의 군세에 흡수시킨다. 여전히 야심가의 모습으로 묘사중. 한편, 위나라 군대와 대치중인 등의 군대가 자신을 원군으로 부르지 않는 것에 대해 예상과 다르다고 갸웃거리는 모습을 보인다[12].


2. 고려의 왕 공민왕의 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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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천자문에는 기전파목 용군최정(起翦頗牧 用軍最精)이라 하여 백기, 왕전, 염파, 이목을 전국시대 가장 뛰어난 네 명의 장수로 꼽은 바가 있다. 물론 반박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
  • [2] 조나라의 수도인 한단성 공격에서 왕전이 군사를 움직였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이는 이목 또한 마찬가지로 사마천의 사기나 전국책에 없는 내용이다. 이간계로 이목이 죽기전까지 대치상태를 유지했다는 기록만 존재할뿐. 고로 왕전과 이목의 전투에서 왕전이 패했다는 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전국책 조책 내용 중 나오는 시간 순의 오류로 환의(환기)의 패배를 한단성 공격시기 왕전의 패배로 착각하는 경우가 생긴 듯 하다. 사기 백기-왕전 열전을 봐도 사마천은 왕전에게 호의적인 기록자가 아니었기에 왕전의 패배가 있었다면 정확하게 기재했겠지만 역시나 그런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 [3] 이신이 초나라를 공격하고 있을때 초나라 왕족 출신으로 진나라 대부이던 창평군이 반란을 일으켰고, 창평군에게 후방을 차단당한 이신이 보급로 재확보를 위해 창평군의 반란부터 진압하러 회군하다 항연의 초군에게 등을 맞아 개털렸다고 한다. 그리고 항연은 창평군을 초왕으로 옹립했다.
  • [4] 그런데 이때 포상을 요구하는 문구를 보면 이 나이 되도록 제대로 된 토지 한번 받아보지 못했으니 노후와 내 후손들의 앞날이 걱정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퍼포먼스성이라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런 한탄이 진왕에게 먹힌 것을 두고 그동안 그 실력에 비해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거나 혹은 정치적으로 견제를 받았던게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
  • [5] 진시황이 60만은 너무 많은거 아니냐며 춘추 시대의 전투를 얘기하자 예전엔 전쟁 한판 하는데 드는 비용이 셌고 힘의 균형 때문에 한 나라를 없애는 것도 신중히 했기에 소수 병력의 명예전으로 끝났지만 요즘은 한 나라를 없애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지고 대규모 병력을 징집하기도 쉬워졌기 때문에 더욱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며 반박하는 구절이 있다.
  • [6] 철기시대가 춘추 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던 때부터 시작했다고 보는 학자들은 대량 생산되기 쉬운 철기가 보급되면서 이때부터 본격적인 물량전이 시작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 [7] 그냥 쉬게 한게 아니라 돌 던지기등으로 체력을 기르면서 힘센 자들을 정예병으로 추스리기도 했다.
  • [8] 특히 진왕의 경우 동생 성교의 난과 친어머니와 노대가 일으킨 난으로 반란에 대한 의심이 유난히 많던 왕이었다.
  • [9] 이 때 항우의 아버지 항초도 죽었다.
  • [10] 그런데 이 사람보다 더한 놈들이 널렸는데? 아마도 능력있고 영향력 있었을 사람이니만큼 그 힘을 왜 쓰지 않았냐는 비판인듯
  • [11] 벽도 5천인장에 임명 될 때 왕전의 눈을 보고는 꺼림직함을 느끼는 내용이 있다.
  • [12] 왕분이, 왕전의 군대를 빼낼 경우 만에 하나 조나라가 참전해버린다면 전선 전체가 붕괴될 위험이 있다 하여 원군 요청을 하지 않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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