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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중양

last modified: 2014-04-22 20:24:45 by Contributors

Contents

1. 실존인물
2. 김용무협소설에서 왕중양



1. 실존인물

王重陽
(1112 ~ 1170)

중국 도교의 한 분파인 전진교를 연 1대 조사. 실존 인물이다.
본래 이름은 중부(中孚)이고 는 윤경(允卿)이라 하였으나 도가에 입문한 뒤부터 이름을 철(喆), 자를 지명(知明)이라 고쳤다. 도호는 중양자(重陽子)[1]라 하여, 흔히 부르는 왕중양이라는 호칭은 이 도호에서 유래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송나라에서 태어나 금나라에서 성장하던 문인으로 섬서 함양 사람이었다고 하며 20세 때 예부에서 하는 진사 시험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여 이를 포기하고 무술을 익혀 이름을 세웅(世雄), 자를 덕위(德威)라 하여 무장으로 출세하려고 했지만 이를 실패하였다.

1130년에는 북송나라의 공격을 받은 시기였는데 이 때 자신의 아버지가 여러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주었으나 멀리 살아서 구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이를 약탈하자 지방관이 이들을 잡아들이자 지방관에게 그들이 어렵기 때문에 약탈한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석방시키게 했다.

1159년부터는 미친 사람 행세를 하다가 도가에 입문하여 유장촌에서 수도하다가 수중앙으로 이사하여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자신이 거주하던 곳을 불태우고 또다시 세상을 돌아다니며 마옥, 손불이, 담처단, 왕처일, 학대통, 구처기, 유처현 등을 제자로 맞아들였다.

도가의 일원이지만 유불선이 결국 하나로 합쳐진다는 이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유학과 불가 서적도 공부하게 했다고 한다. 실존인물이면서, 전진교를 창시한 조사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전설이 많이 붙어서, 입산수도하기 전에 하늘에서 신인이 나타나 경서를 전해주었네 하는 식의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이다. 왕중양은 여러 번 인생의 실패를 겪다가 도가사상에 매혹되어 스스로 공부하고 수련했고, 결국 한 문파의 개파조사가 되었다는 것이 실제 역사일 것이다.

왕중양에게 깨달음을 준 어느 선생을 여동빈의 화신으로 취급하여 전진교 일파에서는 여동빈을 여조(呂祖)라 부르며 특히 공경한다.

그가 죽은지 한참 후인 나라의 쿠빌라이 칸 때는 중양전진개화진군에 봉해졌으며 나라의 이산 때는 중앙전진개화보극제군으로 봉해졌다.

2. 김용무협소설에서 왕중양


김용무협소설에서는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에서 등장한다. 엄밀히 말하면 본인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고, 주변 인물의 언급으로만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는 왕중양이 천하오절 중 한 사람으로, 전진교의 창교조사인 무학의 대종사. 별호는 "중신통(中神通)". 전진칠자의 사부이며, 주백통의 사형이다.

소년 시절에 학문을 읽히고, 그 후 무공을 연마하여 강호를 누비는 영웅이 되었다. 금나라 병사가 쳐들어오자 참다못해 군사를 일으켜 금군에 대항하였지만 많은 병사를 잃게 되자, 한을 이기지 못하고 활사인묘(活死人墓)에 은거했다.

8년 동안 활사인묘에 은거했으나, 임조영의 계략에 걸려 밖으로 나오게 된다. 임조영의 마음은 알고 있었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한 몸이라 망국의 한을 갚지도 못하고 가정을 이룰수는 없어서 안타까워 했다. 그러다가 종남산에서 무공을 겨루기로 하면서, 임조영은 자신이 지면 자결할 것이며, 자신이 이기면 자신을 활사인묘에서 살게 하고, 평생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며 싫다면 중이나 도사가 되어 출가하고 10년간 종남산에서 사당을 짓고 살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그리고 임조영은 바위 위에 맨손가락으로 글자를 써서 왕중양을 패배시킨다. 그래서 왕중양은 출가하여 도사가 되었다. 원래는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많은 책을 읽고 수행을 하면서 도를 깨우쳤고 그것이 바로 전진교의 시작이다.

나중에야 왕중양은 황약사에게 물어보아 임조영이 돌을 녹여서 부드럽게 하는 석단(化石丹)을 몰래 바위에 문질렀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을 안다.

임조영이 죽은 후,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러 고묘에 왔다가 옥녀심경이 전진교의 모든 무공을 깨뜨린 것을 보게 된다. 그 길로 3년간 움막집을 짓고 산중에서 옥녀심경을 깨뜨릴 무공을 연구했지만, 성과가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옥녀심경과 같이 내외공을 아우르며 유연하게 이어지는 무학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었고 결국 임조영의 재주와 기지에 탄복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여 더 이상 새로운 무공을 만들어내는 것을 포기했다.

사조영웅전의 주인공인 곽정이 태어나기 전에 열린 제 1차 화산논검에서 동사(황약사), 서독(구양봉), 남제(단지흥), 북개(홍칠공) 등 나머지 네 사람보다 한 수 위의 무공을 선보이며 무공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등극, 구음진경을 차지했다.

천하제일인인 그가 소지하고 있었기에 감히 누구도 구음진경을 노릴 수 없었고, 구음진경을 쟁탈하기 위해 일었던 피바람도 끝을 보게 되었다. 그 자신은 사심이 없어 구음진경을 연마하지 않았지만, 또한 비록 무림의 불화꺼리가 되는 구음진경이라 해도 무림 선배의 심혈이 담긴 역작인 만큼 없애버릴수도 없어서 지키고만 있었다. 다만 자신이 사사로운 뜻으로 구음진경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자신의 문하에서는 어느 누구도 구음진경의 무공을 수련해서는 안된다는 엄명을 내렸다.

워낙에 브라콘 사형을 존경하고 신성시하는 주백통은 왕중양이 구음진경을 연마하지 않았다고 알고 있었지만, 실은 그도 호기심은 이기지 못해 책을 훑어보고, 10일간 명상하여 그 이치를 깨달았다. 그리고 활사인묘로 다시 들어가 고묘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지하 석실에 구음진경의 요지와 옥녀심경을 깰 수 있는 방법을 적어두었다.

왕중양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지하석실의 비어있는 관을 보고, 앞으로 임조영의 제자들이 석관에서 임종을 맞을 것인데 그때는 전진교의 시조가 평생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임조영의 제자들이 구음진경을 봤을때는 이미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이므로, 구음진경의 비밀을 무덤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2].

다만 왕중양이 생각하기에 옥녀심경은 임조영이 스스로 만든 것이고, 자신은 옛 고수가 만든 구음진경을 그대로 옮겨적은 것 뿐이니 굳이 비교하자면 자기가 한 수 아래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고, 제자들에게 양보와 자제를 가르치게 된 것이다.

한편 단용석을 떨어뜨려도 고묘에서 나갈수 있는 비밀통로와 그 위치를 알려주는 석관 아래의 방의 천장에 그려져 있는 비밀지도의 존재는 임조영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목숨을 구할 여지를 남겨놓았다는 사실을 임조영이 알면 비웃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은 후에 구양봉이 위협 거리가 될 것을 알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남제 단지흥을 찾아가 자신의 선천공을 전수하고 일양지를 전수받았다.[3] 하지만 이때 대리국으로 가면서 사제 주백통을 데려간 탓에 영고주백통간의 정분이 생기게 되어 나중에 단지흥이 출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수명이 다되어 가자 구양봉이 구음진경을 빼앗기 위해 올 것을 알고, 관 속에 들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가 전진교의 본산을 침공한 구양봉을 격퇴하고 그의 합마공을 파쇄한 후 자신도 힘이 다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죽으면서 사제 주백통에게 구음진경의 상하권을 나눠서 각각 다른 곳에 숨기라는 유언을 남겼다.

빼어난 무공, 높은 인격과 도력(도가의 일파인 전진교의 창교조사이니 당연한 일), 의병을 이끌고 금나라의 남침에 대항한 애국심 등에 의해 죽어서도 추앙을 받으며 사람들 사이에 널리 회자된 인물이다. 사조영웅전의 등장인물이라고는 하지만 주인공인 곽정이 장성하기도 전에 이미 죽었기 때문에 사실 작중에 실제로 출연한 적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성이 하도 높다 보니 본 작품은 물론이고 속편인 신조협려에서까지 이름만큼은 뻔질나게 많이 나오는 기염을 토한다.(…)

이래저래 뛰어난 인물이긴 한데 연애에 대해서는 둔감해서 한 아가씨 인생을 망친 듯 하다(…) 뭐 그 쪽도 츤데레 계열이긴 했지만(…) 원래 여러 아가씨 인생 망치는게 일류 고수의 속성이다. 임조영을 필두로 화쟁, 정영, 육무쌍, 소소, 은리 등등.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영웅호색~

선천공이라는 무공으로 유명한데, 정작 그걸 배운 사람은 단지흥. 전진교의 제자들이 선천공을 배웠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사실 전진교의 왕중양 제자들은 실력이 낮은 편은 아니지만 스승의 명성에 비하면 좀 신통찮은 편이다. [4].

사실 김용은 넉넉한 환경 덕분에 고료에 구애받지 않고 지난 작품을 만족할 때까지 여러번 개작했는데, 이와 관련된 유명한 버그(…)도 훗날 수정했다. 구판을 번역한 고려원 영웅문에선 왕중양의 무공이 일양지이고 대리 단씨의 무공은 선천공으로 나오는데, 《천룡팔부》의 설정과 모순을 일으켜, 강룡십팔장 VS. 항룡십팔장과 더불어 김용빠에게 훌륭한 떡밥이 되었다. 신판을 번역한 김영사 영웅문에선 이런 오류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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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euteron이 아니다. 표기는 동일하지만.
  • [2] 사조영웅전의 왕중양이 거의 신화적, 추상적인 인물인 반면에 신조협려에선 이런 인간적인 면모들이 추가되어서 보다 생동감 있는 캐릭터가 된 측면이 있다.
  • [3] 자신의 무공이 구양봉과는 상극이므로, 자신이 죽고 나면 구양봉이 발호할 것을 예상하여 단지흥에게 뒷일을 부탁한 것. 훗날 일등대사 역시 자신의 목숨으로 영고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곽정과 황용에게 선천공을 전수함으로써 뒷일을 부탁한다. 구양봉이 얼마나 대단한 자였는지, 또 얼마나 악한 인간이었는지 알 수 있는 장면.
  • [4] 전진교 관련해서 가장 강한 인물은 주백통인데, 이쪽은 구음진경이 왕중양 덕분에 봉인되어서 전수 불가. 덕분에 신조협려만 되어도 전진교는 양과 성장 과정의 배경이되고, 의천도룡기 시기가 되면 등장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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