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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last modified: 2015-04-14 03:05:46 by Contributors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Central League) / 파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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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Tokyo Yakult Swall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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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Yomiuri Gi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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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Yokohama DeNA Bay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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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드래곤즈
(Chunichi Drag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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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타이거스
(Hanshin Ti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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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도요 카프
(Hiroshima Toyo Carp)

© from
팀 엠블럼 마스코트[1]
쟈비트[2]
요미우리 자이언츠
Yomiuri Giants
読売ジャイアンツ
구단 법인명 ㈜요미우리 교진군
(株式会社読売巨人軍)
창단 1934년 12월 26일
연고지 도쿄
구단 연고지 변천 도쿄 도 (1952~)
구단명 변천 대일본 동경 야구 클럽 (1934)
도쿄 교진군 (1935~1946)
요미우리 자이언츠 (1947~)
홈 구장 고라쿠엔 구장 (1937~1987)
도쿄돔 (1988~)
2군 구장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장 (1985~)
모기업 요미우리신문
감독 하라 다쓰노리 (原 辰徳)
킷 스폰서 언더 아머
일본시리즈 우승
(22회)
1951, 1952, 1953, 1955, 1961, 1963, 1965, 1966, 1967, 1968,
1969, 1970, 1971, 1972, 1973, 1981, 1989, 1994, 2000, 2002,
2009, 2012
센트럴 리그 우승
(36회)
1951, 1952, 1953, 1955, 1956, 1957, 1958, 1959, 1961, 1963,
1965, 1966, 1967, 1968, 1969, 1970, 1971, 1972, 1973, 1976,
1977, 1981, 1983, 1987, 1989, 1990, 1994, 1996, 2000, 2002,
2007, 2008, 2009, 2012, 2013, 2014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4회)
2008, 2009, 2012, 2013
일본 야구 연맹 리그 우승[3]
(9회)
1936 추계, 1937 춘계, 1938 추계, 1939, 1940, 1941,
1942, 1943, 1949
아시아 시리즈 우승
(1회)
2012
한일 클럽 챔피언십 우승
(1회)
2009
세리그/파리그 교류전 우승
(2회)
2012, 2014
공식 홈페이지

Contents

1. 구단에 대한 소개
2. 돈지랄 선도 구단
3. 인기와, 명문 구단의 자부심
4. 역사
4.1. 2007년 시즌
4.2. 2008년 시즌
4.3. 2009년 시즌
4.4. 2010년 시즌
4.5. 2011년 시즌
4.6. 2012 시즌
4.7. 2013 시즌
4.7.1. 페넌트레이스
4.7.2. 포스트시즌
4.8. 2014 시즌
4.8.1. 페넌트레이스
4.8.2. 클라이맥스 시리즈
5. 유니폼
6. 이야기 거리
6.1. 감독 순수혈통주의
6.2. 한국선수에 대한 인연
6.3. 기요하라에게 고개숙인 감독 & 코치들의 굴욕
7. 대표적인 선수들
7.1. 감독
7.2. 투수
7.3. 포수
7.4. 내야수
7.5. 외야수
7.6. OB
7.7.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7.8. 영구결번
7.9. 준영구결번
8. 관련 항목

GIANTS PRIDE

1. 구단에 대한 소개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도쿄 도. 홈 구장은 일본 최초의 돔 구장인 도쿄돔.

일본 프로야구 최고 명문 구단이며, 종목을 불문하고 일본을 대표하는 스포츠 클럽이다. 마스코트는 자비트(Giants+Rabbit)로 토끼를 소재로 한 마스코트이다. 롯데 자이언츠의 마스코트가 갈매기이듯.[4]

일본에서는 보통 요미우리 자이언츠라고 다 부르지 않고, 줄여서 일본식 애칭인 '거인(교진)'이라고 부를 때가 많다. 모회사 이름인 요미우리로 부르는 일은 타 팀 팬들이 반쯤 멸시적으로 지칭할 때 빼면 거의 없다. 즉, 교진군, 혹시나 일본 잔재인 '군' 표기를 싫어한다면 자이언츠 B.C.(야구단)로 부르는 게 일본 현지 방식에 가깝지만, 아무래도 한국에도 자이언츠가 있다 보니 한국에선 요미우리로 부른다. 1990년대까지 미국의 보도 매체에서는 미국식으로 TOKYO GIANTS로 표기됐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YOMIURI GIANTS로 표기하는 매체의 비중이 늘고 있다.

일본 주식 시장에 등록된 팀명은 '(株)読売巨人軍'. 그러나 말만 주식 회사지 모기업인 요미우리 신문으로부터 재정의 대부분을 지원받는다. 모기업이 요미우리 신문인 만큼 창립자 및 간부들이 조선 침략을 미화하는 등 극우적 발언을 한 사례들이 있었다.[5]

당연히(?) 요미우리 계열사인 니혼 TV가 전 경기를 중계하나, 몇 년 전에는 구단의 성적이 중하위권을 맴돌아 시청률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적도 있다. 전 경기 중계라고 해도 한국의 케이블 TV처럼 1회 초부터 9회 말까지 완전 중계도 아니었고 정규방송 편성에 따라 3~4회부터 중계를 시작하거나 7~8회에 경기를 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대표적인 예가 왕정치가 756호 홈런을 친 경기. 경기가 중계는 됐지만 정작 홈런을 친 순간은 정규 편성 중이던 예능 프로 방송 때문에 묻혀버렸다(...). 중계 방송이 시작된 시점은 이미 왕정치가 홈런을 치고 나서 20분이나 지난 뒤였고(...), 전 일본의 야구 팬이 그해 시즌 시작부터 기다려온 그 순간을 생중계를 하지 않는 병크로 인해 시청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친 건 당연한 수순. 잠깐 이거 한국에도 비슷한 예가 있는 거 같은데? 결국은 니혼 TV도 전 경기 중계를 포기하고 대부분의 경기 중계를 요미우리 계열 위성 방송사인 G+로 옮겼다. 대신 여기서는 1회부터 경기 끝날 때까지 완전 중계니까 팬들에게는 좋은 일일 수도 있다.

2. 돈지랄 선도 구단

팀 컬러가 한국으로 치면 삼성 라이온즈라기엔 가난한 팀., 미국으로 치면 뉴욕 양키스. 하지만 이 예로도 훨씬 부족한, 한 마디로 돈지랄 구단이다(...). 한 예로, 요미우리 회장이 2014년에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로 진출한 '다나카 마사히로'한테 '우리 팀 선수가 된다면 연봉 10억 엔을 주겠다'라고 발언한 것이 있다. 때문에 일본 리그의 좋은 선수란 좋은 선수를 싹 쓸어가는 관계로[6] 타 구단 팬들 중 특히 안티가 많다. 요미우리 때문에 단일 리그였던 일본 프로야구가 양대 리그로 나뉘어졌을 정도이며, 한 일본 야구 팬은 '일본 야구는 요미우리와 안티 요미우리로 나뉘어진다'라고 말할 정도. 즉 일본 프로야구의 역사는 곧 '요미우리와 요미우리에 대항하는 나머지 5+6개 팀'의 역사로 점철될 정도로, 요미우리는 영원한 수장으로서 일본 야구를 이끌어가고 있다. 요미우리가 특유의 돈지랄을 통해 앞서 나가고 나머지 센트럴리그 5개 구단이 그에 반기를 들며 도전하는 양상이며 안티 요미우리의 수장이 일본의 뿌리 깊은 관동-관서 라이벌 의식까지 곁들여져 있는 한신 타이거즈, 그리고 신문사 라이벌이기도 하며 주부 지역의 대표인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라이벌 구도, 그리고 같은 도쿄 연고 팀임에도 교진의 기에 눌려서 변방 취급받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경쟁 구도 등이 주가 된다.

이에 비해 퍼시픽리그는 센트럴리그 자체에 반기를 들면서 '니네는 인기와 기믹으로 먹고 산다면 우리는 야구 실력으로 먹고 산다'라는 식으로 어필해 왔지만, 센트럴리그보다는 관중 동원 면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프로레슬링을 연상케 하는 '스토리성'이 그동안 일본 프로야구를 이끌어온 요인이였다. 그러다 보니 요미우리 구단(혹은 모기업)의 재정 상태가 나빠져서 특유의 돈지랄을 못 하든가, 아니면 어쩌다 리그 하위권에 오래 머문다든가 하는 경우 위에서 언급한 스토리 라인이 깨지기 대문에 요미우리뿐만 아니라 NPB 자체의 인기가 크게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날 정도이다. 안티 요미우리의 선봉에 선 팀들조차 결국은 거인의 인기로 인한 반사 이익을 얻기 때문에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은 바라지 않는다(판 자체가 깨지는 것이므로). 특히 이 팀의 회장인 꼰대 영감 타나베 츠네오의 경우 일본 야구 판도 자체를 좌지우지할 정도이며, 전술되어 있듯 다나카 마사히로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에 '우리 팀이었다면' 연봉 10억 엔을 주겠다고 발언할 정도로 일본 야구계에서 막강한 인사이다.

과거에는 자체적으로 유망주를 키워 V9(9년 연속 우승)을 달성하였으나 90년대 초반부터 FA 제도가 시행된 이후 다른 팀에서 검증된 선수들을 많이 데려갔다. 그런데 문제는 이 검증된 선수들이 이상하게 자이언츠에 입단하면 먹튀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미스테리이다. LG 트윈스도 그랬었지... 용병들도 싹쓸이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며 로베르토 페타지니, 터피 로즈 등 많은 선수들이 요미우리에서 시련을 겪었다(알렉스 라미레스 등 예외는 있다). 08 시즌 충격적인 일본 데뷔를 한 임창용도 결국 야쿠르트와 재계약을 했지만 그 전까지는 요미우리가 데려갈 거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다만 하라 타츠노리 감독의 2차 집권기부터는 육성 선수 제도 등을 활용해 마구치 테츠야, 쓰모토 테츠야처럼 우수한 신인을 발굴하는 등 팀의 자원을 유망주 육성에 더 쓰고 있으며 이를 통해 2000년대 후반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7] 물론 미국의 LA 다저스가 보여주듯 유망주 수집도 돈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선수 스타팅 라인업 발표 시 타악기와 육성만 사용하는 두 구단 중 하나(다른 하나는 치바 롯데 마린즈)로 이쪽은 응원 구호도 타 구단과 크게 차이난다. 다른 구단이 일본 프로야구 범용 구호[8]를 사용하는 데 비해, 자이언츠는 K리그식 콜을 사용한다.[9] 또한 일본 야구 하면 생각나는 플라스틱 배트도 외야 서포터즈석으로 가면 잘 쓰지 않으며, 맨손 응원을 많이 하고 있다. 요즘 베르디가 못해 빡친 서포터즈가 여기로 왔나[10] 그 외에는 다른 구단과 응원 스타일 면에서 큰 차이는 없는 편. 여담으로 안티 팬들이 많다보니 자이언츠가 자기 팀의 응원을 베꼈다는 의혹이 자주 제기되기도 한다. 진실은 저 너머에... 굳이 다른 팀에서 볼 수 없는 문화를 꼽자면 적시타가 나올 때마다 머플러를 머리 위에서 돌리는 것이다.

3. 인기와, 명문 구단의 자부심

일본프로야구뿐 아니라 일본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전국적인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기사 2014년 기준으로 889만 명을 보유하고 있어서 608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한신 타이거즈보다도 월등히 많다. 출처(일본어 원문)[11]

2군 경기장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장의 경우에도 입장료를 1,000엔이라는 정신 나간 2군 입장료를 자랑하며 자사 방송사를 동원해 방송 중계를 하다 보니 경기장 펜스 광고도 판매하고 있다.

보다시피 일본 내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며, 요미우리 신문이라는 언론사를 등에 업은 빅 마켓 구단이라는 특성상 국내, 외국 선수 막론하고 끓는점이 굉장히 낮다. 대부분의 초인기 빅마켓팀 선수들이 치르는 고역이긴 하지만, 요미우리는 그 정도가 심해서 10년을 잘하다 한달만 못해도 바로 역적으로 취급해 쫓아내기도 한다는 것. 본가인 요미우리 신문에서 물어뜯기 시작하면 외국인 용병은 금방금방 버림받기 쉽다. 이승엽 선수도 "요미우리가 나에게 모든 것을 줬고 또 나에게 빼앗아 갔다"라고 표현했을 정도.

이렇듯 구단도 요미우리는 일본 야구를 대표한다라는, 명문 구단의 자부심이 강하다. 선수들에게 대접을 잘 해주는 대신 타구단에는 없는 품위 유지 규정이 존재한다. 이승엽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수염 못 길러." "옆머리가 귀를 덮게 하지 마." "껌 씹지 마." "경기 중에 침 뱉지 마." "귀걸이 하지 마." "원정 경기 이동시에는 정장을 착용할 것." 등의 주의를 들었다고 한다.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알렉스 라미레스등 원래 팀에서 수염을 길렀던 선수들도 자이언츠에 들어간 이후에는 수염을 기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12][13] 이러한 룰을 지키지 않을 경우엔 아무리 성적이 좋고 인기 스타라 해도 용서가 없다. 3할 타율에 20홈런을 때릴 수 있는 유격수에다 교진 성골 스타였던 오카 토모히로가 불륜 스캔들 한 번에 내쫓기듯 트레이드당한 사례가 좋은 예.[14]

4. 역사

2014년 기준으로 리그 우승 45회,[15] 일본 시리즈 우승 22회라는 엄청난 커리어를 자랑한다.

1934년 미국 대표 팀과 친선 경기를 치른 전일본야구팀을 기반으로 창단되었으며, 창단 당시 이름은 대일본도쿄야구클럽(大日本東京野球倶楽部[16])였다. 그러나 일본 프로야구 리그 출범 전에 시행한 미국 원정 기간에 당시 사용하던 명칭은 너무 길고 미국 사람들에게는 전혀 어필이 안 되는 이름이라 구단 창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뉴욕 자이언츠의 이름을 따서 도쿄 자이언츠라는 이름으로 미국 원정을 돌아다녔고, 귀국해서는 도쿄 거인군이라는 명칭을 썼으며 이 명칭은 2차 대전 종전까지 계속 된다. 2차 대전 후 요미우리의 명칭을 표면에 내세우면서 도쿄 요미우리 거인군이라는 이름을 썼고 영문 명칭 사용이 허용되고 야구 규약상 타구단과 같은 방식으로 맞추게 되어 정식 명칭이자 현재까지 사용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라는 명칭이 확정된다.

다만 이때의 반동으로 이미 없어진 쿄진(거인의 일본 발음)을 팀의 상징적으로 병렬 사용하며 이게 더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공문서에는 야구 규약에 명시된 대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라는 이름만 사용되기 때문에 팬들 사이뿐만 아니라 언론에서 애칭이 정식명칭보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세계적으로 봐도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가 정착 되었다.

이후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재팬 시리즈 9년 연속 우승(V9)이라는 세계 프로스포츠 역사에 남을 대기록을 수립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는 일본에 컬러TV가 널리 보급되고 왕정치(오 사다하루)와 나가시마 시게오 중심의 ON포의 맹활약이 어우러지면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전 일본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V9 시대가 종료된 후에 1975년 구단 창립 이후 사상 첫 센트럴리그 꼴찌를 경험하게 되나 1981년, 1989년, 1994년, 2000년, 2002년, 2009년, 그리고 2012년에도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등 지금까지도 명문팀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워낙 V9 시대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강렬한 탓에 V9 시대 이후에도 강팀이었던 기간이 길었지만 그때만큼의 임팩트는 주지 못하고 있기도.

4.1. 2007년 시즌

센트럴리그 정규시즌에서 2002년 이후 5년만에 1위를 기록하게 되지만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2시리즈에서 리그 2위를 차지한 주니치 드래곤즈에 패하고 말았다. 단 이해 센트럴 리그에서 처음 시적된 클라이막스 시리즈 규정상, 정규시즌 1위 = 리그 우승팀이므로 사실상 센트럴 리그 우승팀으로 우승 기록에 남게 되었다. 하지만 주니치는 그 해 일본시리즈를 가져갔다.

4.2. 2008년 시즌

시즌 거의 후반까지 한신 타이거즈13게임차 뒤진 2위를 기록하다 10연승을 내리 거두는 등 승승장구하여 막판에 한신 타이거즈를 따돌리고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참고로 이 기록은 센트럴리그 역대 최다 승차 역전 우승이다.[17] 요미우리 쪽에서는 이를 1996년 주니치 드래곤즈와 11.5게임 차까지 벌어진 상황을 극복하고 센트럴리그 우승을 따낼 때[18]의 슬로건인 "메이크 드라마"에 빗댄[19] '메이크 레전드'라고 치켜세웠다. 어법에 안 맞잖아... 하지만 한신에게는 전설의 설레발"우승이야!"만이 남았다.

물론 08년 올림픽 대표 선수 차출에서 요미우리는 상대적으로 덕을 좀 본 감이 있긴 하지만...

그 후 센트럴리그 1위 자격으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2시리즈에 직행하여 같은 상황에서 다시 한 번 만난 주니치를 상대로 3승 1무 1패로 역관광을 태워, 2002년 이후 6년 만에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였다. 일본시리즈에서는 6년 전에 만났던 왕년의 라이벌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다시 만났으나, 3승 4패로 석패하였다.

4.3. 2009년 시즌

처음부터 줄곧 1위를 독주. 4월 이후 1위를 단 한 번도 내주지 않고 2위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게임차를 12게임까지 벌리며 정규 시즌 3연패를 달성. 이후 클라이맥스 시리즈도 주니치에 4승 1패(어드밴테이지 1승 포함)으로 가볍게 눌러 일본시리즈 진출, 퍼리그 우승팀이자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팀인 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를 4승 2패로 누르고 7년만에 21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였다.

4.4. 2010년 시즌

3연패한 전력 그대로 잘 갔으면 좋겠지만, 시즌 초반부터 작년에 펄펄 날...지까지는 아니였지만 준수하게 던져주던 곤잘레스, 츠미 테츠야, 노 슌의 3선발에 작년까지 릴리프 에이스였던 마구치 테츠야를 투입해서 좌완 선발까지 만들었지만 앞의 셋은 시즌 초중반에 차례로 삽질, 야마구치는 선발적응을 전혀 못하고 다시 릴리프 강등,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무리 마크 크룬의 캐삽질로 더불어 투수진이 전체적으로 붕괴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 상황에 타선으로 간신히 버티던 수준으로 초반에는 1위 독주체제로 4연패가나.의 페이스였다가 전반기 끝자락부터 급격히 무너져, 한참 뒤에서 놀던 주니치 드래곤즈한신 타이거즈의 맹추격을 받아, 10년 시즌 선두권 싸움이 치열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결국 시즌 4연패에 실패하고 클라이막스 시리즈 1스테이지부터 밟아 올라가야할 처지에 놓였다.

그리고 순위를 마지막 경기가 되어야 결정나는 상황까지 왔는데, 그 전날 한신 타이거즈가 마지막 경기를 지는 바람에 잠정 2위로 올라와서, 시즌 최종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2위 확정으로 CS1차전을 홈에서 개최하는 유리한 상황이 될 했지만, 마지막까지 올시즌 내내 삽푸던 마크 크룬이 시즌 마무리 기념으로 깔끔하게 블론하여 연장 10회에 역전패. 78승 1무 64패로 0.5게임차로 3위로 굴러떨어지면서 페넌트레이스를 마감했다. 이로써 CS 1차전은 고시엔 원정 확정.

CS 1차전은 정규시즌 2위였던 한신 타이거스를 2승으로 가뿐하게...라고 보긴 좀 그렇고 근소하게 제압하여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하였다. 그리고 정규시즌 우승팀인 주니치 드래곤즈와 일본시리즈를 놓고 대결을 벌여 어드밴티지 1패 포함 1승 4패로 가뿐하게 발려, 시즌을 마감하였다.

시즌이 끝난 후 외국인 거의 전원을 물갈이했으며 투수위주로 크게 쐈다. 그레이싱어는 재계약은 했는데 특권 다 박탈당하고 연봉은 후려쳐진 상태라 보험용으로 재계약한 느낌이 강하다. 1군에서 보기는 거의 힘든 상황. 더군다나 새로 데려온 투수들이 네임벨류가 장난 아니다.

4.5. 2011년 시즌

한 마디로 말하자면, 망했어요


4.6. 2012 시즌

시즌 초반에 잠시 부진했지만 4월 중순부터 마구 치고 올라오면서 19승 4패로 교류전 우승, 순항을 이어나가면서 6할 5푼에 육박하는 승률로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었다. 시즌 후반기에 연패를 하면서 하락세를 보이고 그 때문인지 주니치 드래곤즈에게 클라이막스 시리즈에서 3연패 하며 광탈하나 싶었지만 내리 3연승을 하며 일본시리즈 진출.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스웝하고 올라온 니혼햄 파이터즈를 4승 2패로 무난히 꺾으며 3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성공하였다. 이어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아시안시리즈에도 참가하여 무난히 우승하였다.

4.7. 2013 시즌

4.7.1. 페넌트레이스

시즌 초반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더니 시즌 중반부터는 압도적인 독주체제를 이어나갔으며 9월 22일에 센트럴리그 1위를 확정지었다. 최종승률은 84승 7무 53패, 승률 0.613으로 NPB 12팀 중 유일한 6할을 달성했으며, 파리그 1위 라쿠텐과 같이 80승+를 찍었다. 한신을 상대로 12승 11패로 고전했을뿐, 나머지 4팀을 상대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센트럴리그는 2부 리그인가 교류전에서는 13승 10패로 센트럴에서의 압도적인 모습보다는 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타선에서는 작년에 삽질했던 무라타 슈이치가 타율 3위(0.316)과 25홈런으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작년 2관왕을 차지했던 아베 신노스케도 작년만큼은 아니더라도 30홈런을 치며 기대치만큼의 활약을 해줬다. 노 히사요시가 작년보다 안 좋은 모습을 보이긴 했어도 야잘잘 타율 10위를 차지. 용병 호세 로페스[20]도 기대만큼 홈런을 많이 치지는 못했지만 18홈런을 기록했다. 타격 10걸 안에 4명이나 있다. 사카모토 하야토의 부진은 조금 아쉬운 부분.

투수진은 규정 이닝 + ERA 3점대 투수 4명, 10승 투수 3명을 달성했다. 스기우치 도시야가 WBC때의 스캔들과 부진으로 흔들리나 싶었지만 결국 제 모습을 찾아줬다. 요미우리 가겠다면서 프로 재수한 스가노 도모유키[21]도 신인왕급의 성적을 나왔지만 야쿠르트 스왈로즈소년가장 오가와 야스히로가 다승왕과 승률왕을 차지하고 대부분의 스탯에서도 앞서는 처지라 신인왕 수상은 어려워 보인다.

이 와중에 안습한 건 선발과 중계를 오간 사와무라 히로카즈인데, 올해 초 모리 마키와 이혼한 것이 보도된 것도 모자라 34경기(22선발) 3.13(7위)이라는 호성적을 기록하고도 5승 10패 6홀드라는 안습한 디시전을 기록했다. 3년 연속 두 자릿수 패배. 요미우리의 전력을 생각하면 이 정도 디시전도 신기할 정도... 불펜 전환 전까지는 4승 9패로 최저 승률을 기록 중이었다. 불쌍해서 내린 걸 수도 이길 수 있는 투수가 좋은 투수인 거다

중계와 마무리도 스캇 매티슨, 야마구치 테츠야, 니시무라 켄타로가 강력하게 불펜의 중심을 지켰다. 매티슨과 야마구치 테츠야는 42홀드 포인트[22]로 최우수 구원 투수상을, 니시무라 켄타로는 42세이브를 올리며 세이브왕을 차지했다.

4.7.2. 포스트시즌

히로시마 도요 카프한신 타이거스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2-0으로 광속 탈락시키면서 클라이막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를 히로시마와 치르게 됐다.

10월 16일 파이널 스테이지 1차전에서는 3:2로 승리하였다. 10월 17일 2차전에서는 3:0으로 승리하였다. 10월 18일 3차전에서는 3:1로 승리하였다. 이로써 센트럴리그 1위팀에게 먼저 주어지는 1승을 포함하여 4승으로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였다. 일본시리즈에서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맞붙게 되었다.참고로 파이널 스테이지 에서는 모든 경기를 3점만 내고 이겼다.

10월 26일 일본시리즈 1차전에서는 2:0으로 승리하였다. 10월 27일 2차전에서는 1:2로 패하였다. 10월 29일 3차전에서는 1:5로 패하였다. 10월 30일 4차전에서는 6:5로 승리하였다. 10월 31일 5차전에서는 2:4로 패하였다. 11월 2일 6차전에서는 라쿠텐의 넘버원 에이스 다나카 마사히로를 넘어서며 4:2로 승리, 최종 7차전에서 끝장승부를 가리게 되었다. 11월 3일 7차전에서는 0:3으로 패하여 일본시리즈 우승이 좌절되었다. 그리고 나베츠네는 폭풍 돈질을 예고하였다.

오프시즌에는 FA 대어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우완 선발 타케 칸과, 취약 포지션이었던 2루 보강을 위해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타오카 야스유키를 FA로 영입하였다. 주니치 드래곤즈프랜차이즈 스타였지만 연봉삭감을 둘러싸고 오치아이 히로미츠 GM과 갈등을 빚다가 퇴단한 베테랑 내야수 바타 히로카즈도 영입하였다. 출전기회가 줄어든 베테랑 오가사와라 미치히로타니 요시토모는 각각 주니치 드래곤즈오릭스 버팔로즈로 떠나보냈다. 외국인 선수로는 미묘한 활약을 보인 보우커데니스 홀튼이 떠나고 대신 SK 와이번스에서 활약한 좌완 크리스 세든과 계약하였다.

4.8. 2014 시즌

4.8.1. 페넌트레이스

개막전 한신 타이거스와의 도쿄돔 경기부터 타선이 불을 뿜었다. 상대 선발 노우미 아츠시를 5회도 채우기 전에 10실점 10자책점을 안기며 강판을 시키더니 개막 3연전 내내 타선이 대폭발. 그 뒤로 타선이 죽을 좀 쒔지만 위기에 강한 선수들의 근성으로 기어이 승수를 쌓더니 2위 한신 타이거스와 무려 7.5게임차로 센트럴리그 1위를 했다. 다만 중간에 한신에게 반 게임차까지 추격을 당하는 등 1위 수성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외국인 선수들 중 제 역할을 했다고 할 만한 선수가 거의 없다시피했다. 마무리 캇 매티슨은 30세이브를 올렸지만 6승 6패와 3.58이라는 마무리 치고는 매우 높은 패수와 방어율을 기록했고, 선발 투수 역할하라고 들여온 크리스 세든도 겉도는 모습을 보였다. 타선에서는 외인 타자 3명이 있었지만, 세 로페즈는 거의 뜬금포 위주였고[23], 레데릭 세페다슬리 앤더슨도 뭔가 나사빠진 모습[24]만 보여주었다. 이는 나중에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폭탄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4.8.2. 클라이맥스 시리즈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한신에게 놀랍게도 4연패로 광탈당했다. 일단 실드를 치자면 에이스 역할을 하고 한신 상대로 매우 강하던 스가노 도모유키가 부상으로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결장하긴 했다. 그러나 경기 내용 자체는 도저히 실드칠 수 없는 수준의 졸전이었다.

5. 유니폼

/유니폼 항목 참조.

6. 이야기 거리

6.1. 감독 순수혈통주의

현존하는 골품제

요미우리 순혈이 아니면 코치까지는 가능하지만 절대 요미우리 감독이 되지 못한다. 저 멀리 물 건너에 있는 축구구단이나 옆나라의 수도권 구단과 닮았지만 그 팀들과는 좀 방향이 다른 골품제다.

밑에 기술하는 내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삼성 라이온즈에 적용해보면 류중일의 경우 요미우리식 원칙에 가장 충실한 감독이다. 류중일의 경우 출신지까지 삼성 연고지인 경북출신이라서 순혈 of 순혈 삼성 감독이다. 참고로 위에서 설명하는 요미우리식 골품제를 삼성의 케이스에 적용하면 이순철최동원은 4두품 이하, 진갑용임창용은 5두품, 김시진장효조와 심지어 몸에 푸른 피가 흐른다던 양준혁 조차도 6두품, 이만수는 진골, 류중일이 성골 취급이라고 보면 된다. 이승엽의 경우 해외진출은 불순물 취급하지 않는 것으로 가는 분위기라 성골 취급 가능성이 있다. 그 외에도 요미우리의 원칙대로 하면 김경문은 6두품에 해당하므로 절대 두산의 감독이 될 수 없다. 아시다시피 김경문 감독은 선수 말년에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동했다. 1년만에 돌아오기는 했지만. 이후 코치 연수를 거쳐 처음 코치 생활을 시작한 곳은 삼성이었다.

그 순혈주의라는 게 어느 정도냐 하면 타 구단에서 뛰다 요미우리에서 은퇴했다고 해도 인정 못 받는다. 이 정도는 4두품 이하에 해당하며 어디가서 자이언츠 출신이라고 말도 못한다. 예를 들어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다 말년 몇 년만 삼성 라이온즈에서 뛴 최동원을 삼성 맨이라고 하지 않는 경우와 같다. 하지만 최동원과는 또 다른 게 선수 본인이 자이언츠에 애착을 가지고 있더라도 OB회 등에서 거의 허용을 안 하는 분위기. 물론 내놓고 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지만 알게 모르게 타 팀 출신은 알아서 짜지는 분위기이고 OB들이 그나마 인정을 해줘야 주변에서도 자이언츠 출신으로 인정을 해주는 식이다. LG로 치면 이진영, 정성훈 심지어는 김용의윤요섭더러, "너님들은 입단할 때 우리 팀 아니었으니까 우리 팀에서 은퇴해도 출신으로 인정 안 함." 이런 식이라고 보면 된다.

4두품 이하 조건에서 팀에 웬만큼 공헌도가 높거나 압도적인 통산 성적을 쌓았을 경우 5두품 대접. 가네다 마사이치장훈이 이런 케이스이다. 이 둘은 그나마 일본 야구계에서 넘사벽의 업적을 남겼기에 그나마 요미우리 순혈은 아니더라도 공로자로서 인정은 해준다.

요미우리에서 20년 뛰고 선수 생활 막판에 1~2년 정도 다른 팀에서 뛰어도 인정을 못 받는다. 이 정도면 6두품 취급. 어디가서 요미우리 OB라고 말하고 다녀도 되고 또 대우는 그렇게 해준다. 그리고 본인의 능력 여하에 따라서는 코치까지도 할 수 있다. 명투수 시모토 타카시(西本聖), 통산 최다 희생타 기록 보유자인 카와이 마사히로 등이 이런 케이스. 최동원의 케이스를 대입하면 만약 롯데에서 최동원을 순혈로 인정 안 한다면 이 케이스로 해석 가능하다. 삼성으로 치면 김시진이 대충 이 케이스에 들어맞을 듯. 그렇다고 삼성이 순혈을 따지는 구단이라는 얘기는 아니고...뭐 최동원 같은 경우에는 노무라 카츠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난카이 호크스 쪽에 가깝지만.

심지어는 선수 생활 내내 요미우리에서만 뛰다 은퇴를 했더라도 코치 생활을 다른 팀에서 한 경우도 순혈로 인정 못 받는다. 이쯤 돼야 그나마 진골 대접이라도 받는다. 다른 팀 코치직에서 물러나면 코치로 다시 불러들이기도 하고 요미우리 원로원 의장 OB회 회장직을 맡아서 팀 운영에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허용된다.

그래서 오 사다하루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감독직을 수락했을 때, 일본 야구계는 이를 충격적인 뉴스로 받아들였다. 당시 다이에 GM이었던 네모토 리쿠오의 강력한 러브 콜을 받고 호크스 감독직을 수락할 때까지 오 사다하루는 누가 뭐래도 카와카미 테츠하루, 나가시마 시게오와 더불어 요미우리의 상징이자 전설이었고 성골 중의 성골이었다.[25] 감독을 맡았던 시기에 팀 전력이 우승권 전력이 아니었음에도 요미우리의 우승 지상주의에 밀려 감독직을 내놓아야 했지만 당시 요미우리는 FA 제도 도입 등 바뀐 제도를 십분 활용하여 돈지랄로 팀 전력을 강화하고 있던 중이라 실업자 해설가로서 성골 신분만 유지하고 있었으면 당시 감독이던 나가시마처럼 다시 한 번 요미우리의 감독직으로 복귀해서 권토중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진골 신분으로 내려앉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선수 시절에는 요미우리에서 뛰었지만 코치, 감독 생활은 다른 팀에서 한 로오카 타츠로,[26] 리 마사아키[27] 등은 맡은 팀을 몇 번씩이나 우승으로 이끈 명장임에도 불구하고 요미우리가 침체기일 때조차 감독 인선에서 고려돼 본 적이 없다. 감독 선임을 위한 수뇌부 상황을 표현하자면, 구단 내외부에서 "요새 우승에서 꽤 멀어진 거 같은데 이쯤 되면 능력도 검증된 히로오카나 모리를 감독으로 모셔와야 하지 않겠음?"이라고 변죽을 울리면 바로 "어디 감히 야쿠르트, 세이부같은 평민 팀 유니폼에 손을 댄 작자들을!" 하고 반응이 나온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호리우치 츠네오는 감독으로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은퇴 이후에도 요미우리의 코치직 이외에는 해설자를 제외한 그 어떤 자리에도 앉지 않았던 덕분에 감독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2004~2005 흑역사 시절 준비도 없이 단지 다른 팀 유니폼을 입어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호리우치 츠네오를 감독으로 내세웠다가 말아먹은 걸 생각한다면... 이 시절 현 2012 시즌 라쿠텐 감독인 호시노 센이치의 감독 선임도 유력했었는데 OB 회장인 카와카미 테츠하루를 위시한 요미우리 OB회가 발끈하면서 난리를 치는 통에 무산됐다. 하긴 선수 시절부터 안티 교진 이미지로 먹고 살았고 일본시리즈 우승 경력도 없으며(2013년 라쿠텐의 우승으로 한을 풀었다), 요미우리 유니폼을 1초도 입어본 적이 없는 호시노 따위야... 자리 준다 해도 차버릴 것 같다. 이것 때문에 요미우리는 팀이 서서히 가라앉는데도 융통성이 없다는 엄청난 비난을 들었다.

2012년에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지휘봉을 잡은 나카하타 키요시도 비슷한 케이스. 미스터 자이언츠라고 불리던 나가시마 시게오의 골수 심복이던 나카하타도 오매불망 요미우리의 감독직만을 바라보며 다른 팀의 코치 제의를 거절하고 요미우리를 떠나 있을 때는 해설자 생활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인의 바람과는 다르게 결국 요미우리의 감독 자리가 후배인 하라 다쓰노리로부터 새카만 후배인 타카하시 요시노부로 이어질 조짐이 보이자, 그대로 갔다간 평생 프로에서 감독 한 번 못해보고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꿩 대신 닭으로 평생의 꿈이던 요미우리의 감독 자리를 포기하고 요코하마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이런 점 때문에 수많은 요미우리의 OB들이 다른 팀 감독이나 코치 자리를 마다하고 오로지 해설자 생활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요미우리의 골품제에서 다른 팀 유니폼을 입게 되는 경위는 자의든 타의든 상관없다. 즉,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구단의 뜻에 의해서 타구단으로 트레이드된 경우에도 가차없이 순혈이 아닌 것으로 간주한다. 즉, 타구단으로의 트레이드된 선수는 구단으로부터 "너님은 은퇴하고나서 능력이 되면 우리 팀 코치까지는 할 수 있지만 감독은 절대 안됨."이라는 선고를 받았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구단에서 효용가치가 떨어져서 방출 통보를 받은 선수 중에는 기량적으로는 다른 팀으로 옮기면 3~4년 정도는 충분히 더 뛸 수 있는 기량인데도 요미우리 순혈을 지키기 위해서 그냥 자진 은퇴의 길을 택하는 경우도 꽤 있다.

즉, "프로야구에 입문하는 순간부터 인생 종치는 순간까지 요미우리의 유니폼이 아닌 다른 유니폼을 1초라도 입었으면 요미우리 순혈이 아니다."라는 거다. 그래서 키요하라 카즈히로는 요미우리의 감독이 될 수 없지만 기요하라의 동기인 와타 마스미는 요미우리의 감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선수 시절의 성적은 기요하라 쪽이 넘사벽임에도 불구하고...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쉽게도 쿠와타 역시 나이가 많은 상태에서 약간은 구단에서 떠밀리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MLB 진출을 했다. 요미우리가 미국 쪽 유니폼 1년만 입은 것도 불순물로 쳐버리면 쿠와타조차도 순혈이 아니게 된다. 쿠와타도 요미우리에 대한 충성심이 보통이 아니라는 점과 마쓰이와는 달리 메이저리그에 가기 직전 상황에 요미우리에서는 이미 효용 가치가 떨어질 대로 떨어져서 본인의 개인적인 도전을 구단이 흔쾌히 수락했다는 점에서 그 처우도 주목거리지만 이미 하라에서 타카하시 요시노부로 감독 승계 작업이 시작된 상황이라 구와타도 요미우리 감독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과장 아니고 진짜이다. 그만큼 순혈을 까다롭게 따지는 구단이다. 이미 하라 다쓰노리 감독의 후계자로는 순혈 타카하시 요시노부가 감독 수업을 차근차근 밟아나가고 있다. 그런데 타카하시 요시노부는 외야수인데 과연 외야수 출신 감독 잔혹사에서 자유로울지는... 더군다나 인품 면에서도 좋지 않은 소문이 조금 있는지라 호리우치처럼 팀을 말아먹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괜찮아. 아베 신노스케가 있잖아.

이 점에 있어서 너무나도 보수적이고 새로운 야구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고 너무 배타적인게 아니냐는 의견도 많다. 같은 일본 사람인데 타 구단 출신이라고 감독을 못한다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프랜차이저가 감독 코치를 이루면서 잘 나가는 팀이야말로 진정한 명문 팀으로서 의미가 있는 만큼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한 가지 주목해야할 케이스는 커리어의 후반을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보낸 마쓰이 히데키이다. 마쓰이는 비록 미국의 다른 구단의 유니폼을 입었지만 일본 국내에서는 요미우리 외에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어본 적이 없다. 만약 마쓰이가 일본 야구계로 복귀할 경우 요미우리의 감독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이 요미우리의 순혈주의의 정의와 요미우리로 대표되는 일본 프로야구의 메이저리그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게 판가름 날 것 같다. 과연 MLB에 진출한 것도 피에 불순물이 섞인 것으로 간주해서 내칠지 아니면 MLB는 일본 야구를 뛰어넘는 한 수준 높은 리그이고 일본 국내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MLB에서 뛴 경력이 있는 OB는 순혈로 간주해서 받아들일지.

마쓰이의 경우가 주목받는 것은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MLB에서도 최고 명문이라는 뉴욕 양키스의 일원으로서 3년 연속 포함한 100타점 4번에 월드시리즈 MVP도 수상하는 등 일급타자로서의 기량을 과시했다는 점이다. 요미우리의 마쓰이에 대한 태도에 따라 콧대 높은 요미우리의 순혈주의라는 것이 그저 메이저리그의 위엄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굽신굽신하는 일본 국내 한정인지 아니면 "메이저리그? 그거 뭐임? 먹는 거임? 우걱우걱"하면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위엄을 과시할지 주목을 받는 부분이다. 일단 몇몇 구단들이 마쓰이 영입에 관심을 보이지만 요미우리에선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마츠이 없어도 아쉽지 않은 상황도 그렇겠지만 내심 마쓰이를 프랜차이저에서 제외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긴 하다. 양키스에서 계속 뛰었으면 모를까, 그놈의 무릎 부상 때문에 저니맨 신세가 돼버린 마쓰이를 본다면...더군다나 마츠이 히데키의 부모도 한신 타이거즈 팬이고 마츠이 역시 그동안 보였던 성향을 보면 요미우리에 제대로 찍힌 듯한 느낌이었는데[28], 회장이 직접 마쓰이를 감독감으로 보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일단 2014 시즌에 코치진으로 합류 여부가 우선이긴 하겠지만 감독 선임에 대해서는 과연 OB회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문제. 어쨌든 그덕에 마쓰이와 비슷한 케이스인 우에하라 코지도 어쨌든 성골 취급으로 감독을 할 가능성이 생기긴 했지만 강도 높은 교진 디스[29] 때문에 어려울 듯.[30]

감독 순혈주의와는 별개의 내용이긴 하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선수 구성에서도 일본인 순혈주의를 고집해서 외국인 선수 개방에도 가장 늦었던 구단이기도 했다. 정확하게는 미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한 외국인 선수의 영입이다. 물론 러시아계였던 빅토르 스타르핀이라든지 하와이 출신의 일본계 미국인이었던 요나미네 카나메가 있긴 했지만, 일본에서 오랜 기간 거주했거나 일본계라 여기서는 논외. 일본 프로야구는 출범 초창기부터 외국인 선수를 자유로이 기용했지만 요미우리는 1975년에 가서야 메이저리그 출신 내야수 데이비 존슨(전 워싱턴 내셔널스 감독)을 영입했다.

2012년 기준으로 하라 다쓰노리의 자리가 위태위태해지고 에가와 스구루의 수석 코치 영입을 둘러싸고 광풍이 한 차례 불었는데 정작 에가와는 '난 감독을 절대 안 할 거임' 하고 선을 그어버렸고 아직 코치 생활 시작조차 안 한 타카하시 요시노부가 경험을 충분히 쌓을 때까지 몸빵을 해줄 요미우리 감독 후보로는(한 번도 요미우리 이외에 유니폼을 입은 적이 없는 선수 중에서) 60년대생 중에 이토 마사키 & 키하라 히로미 등이 꼽히고 있긴 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타카하시가 감독 이을 커리어를 쌓을 때까지 몸빵 후보일 뿐... 현직 코치들 가운데 순혈로는 카자키 카오루 & 라타 신이치가 있지만 이 둘은 위의 두명에 비해서는 커리어가 평범하고 그저 준수한 수준이었던 선수들인지라 애매한 상황이다. 마키하라의 경우는 너무 현장을 오래 떠나있어서 과연 코치로서 복귀가 쉬울지도 의문부호가 있기도 하고...

2014년, 하라 다쓰노리감독의 경질설이 부각되면서 살아있는 전설 마츠이 히데키를 감독이 아니라 코치라도 좋으니까 수뇌진으로 불러오려고 했으나, 마츠이 본인이 이번해에는 오고싶지 않다며 거절해서 무산됬다.

6.2. 한국선수에 대한 인연

과거에는 장훈, 김일융, 이승엽, 조성민, 정민철, 정민태 등 많은 한국인, 재일 한국인 선수들을 두고 있었다.

여러모로 삼성 라이온즈와 인연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재일동포인 김일융이 삼성에 발을 딛은게 시초.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김종훈김한수, 김현욱은 연수코치에 다녀온 적이 있었고 이승엽도 한 때는 지바롯데에서 뛰다가 2006년 하라 감독 복귀와 요미우리 전력증강으로 영입하였다. 첫해는 잘해서 초대형 계약을 맺었지만 2008년이후로 하향세 요미우리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계약기간동안 이승엽 데리고 있다가 2011년 오릭스를 거쳐 2012년 지금은 삼성에 복귀했다. 삼성 출신은 아니지만 삼성에서 뛴 적이 있던 김기태(타자와 투수 양쪽 동명이인에 해당.)도 있다.

6.3. 기요하라에게 고개숙인 감독 & 코치들의 굴욕

기요하라 카즈히로가 요미우리 시절 타팀 출신임에도 자기 따르는 선수들 모아서 파벌을 결성해서 기요하라 군단 이라는 명칭까지 생기게 만들었으며 그후 팀에서 왕노릇을 했고 감독이고 코치고 제지를 못했다. 오히려 기요하라가 코치에게 자리비키라고 반 협박을 해도 코치가 알아서 비켜주기도 했다.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요미우리에게 있어서는 타팀출신에게 그대로 휘둘려버리는 감독 & 코치의 모습이 드러났으니 제대로 망신살. 더군다나 방송으로 찍던 말던 오다 코헤이를 대놓고 괴롭히는 기요하라를 아무도 제지하지 않아서 오다가 야구선수로써 기량발전을 못한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방관은 더 나쁜것일지도.

7. 대표적인 선수들

7.2. 투수

7.3. 포수

7.4. 내야수

7.5. 외야수

7.6. OB

  • 사와무라 에이지: 전쟁으로 인해 일찍 산화한, 초기 일본 야구의 신화적인 선수.
  • 빅토르 스타르핀: 러시아계 일본인으로 초기 거인군의 에이스였다.
  • 카지마 하루야스: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격 3관왕.
  • 나가카미 히데오(中上 英雄):한국계 일본인으로 1918년 5월 18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1944년, 25살의 나이로 감독직에 올랐는데 이는 일본 프로야구 최연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기도 했고, 1976년에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치바 시게루: 일본 프로야구 초창기의 명2루수. 감독으로서는 킨테츠 버팔로즈의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 쇼 타케히코: 일본 프로야구가 양대리그로 재출범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선수.
  • 카와카미 테츠하루: '타격의 신'. 후에 요미우리 감독으로 요미우리의 일본시리즈 V9를 견인함.
  • 장훈: 이쪽에서도 10번을 달았었다. 오 사다하루와 함께 'OH포'로 대활약.
  • 왕정치(오 사다하루): 통산 868홈런에 빛나는 전설의 홈런왕. 세계의 오.
  • 나가시마 시게오: '미스터 베이스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상징이자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대의 스타.
  • 리 마사아키: V9 시대를 이끌었던 명포수. 감독으로서도 세이부의 80년대 황금기를 이끌었다.
  • 로오카 타츠로: 자이언츠 역대 최고의 유격수이자 지략가.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첫 우승과 세이부 라이온즈의 전성기를 이끈 명 감독.
  • 호리우치 츠네오: 고시엔 2대 괴동. 요미우리의 에이스였으나... 감독으로선 팀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 니시모토 다카시: 70~80년대 초반 거인의 우완 에이스. 우타자 몸쪽으로 날카롭게 꽂히는 슈트가 주 무기였다. 2014년 오프시즌에서 김성근 감독을 따라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로 부임했다.
  • 김일융: 일본명 니우라 히사오. 나가시마 감독하에서 70년대 후반 요미우리의 좌완 에이스로 활약하였다.
  • 에가와 스구루: '공백의 1일'로 드래프트를 시끌시끌하게 만들었던 인물. 이후 짧지만 강렬한 전성기를 맞으며 에이스로 군림했다.[31]
  • 바야시 시게루: 요미우리의 에이스였으나 에가와 사건에 얽혀 한신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된 비운의 투수.
  • 나카하타 키요시: 요미우리 45대 4번 타자 출신 프랜차이즈 스타. 2012년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감독으로 취임했다.
  • 하라 다쓰노리: 현재 요미우리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선수시절에도 1980년대~19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프랜차이즈 스타.
  • 이토 마사키: '헤이세이의 대 에이스'. 80년대 말-90년대 후반의 사이드암 선발 투수.
  • 와타 마스미: 키요하라 카즈히로와 함께 'KK 콤비'를 이 뤄 고교 야구를 제압한 스타. 요미우리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했다.
  • 키하라 히로미: 2012년 기준 일본 프로야구 최후의 퍼펙트 게임 투수. 사이토, 마키하라, 쿠와타는 거인의 세 기둥으로 불렸다.
  • 노즈카 카즈노리: 자이언츠 역대 최고의 톱 타자-2루수.
  • 카와이 마사히로: 번트 장인. 시노즈카 X 카와이 키스톤 콤비는 80~90년대를 주름잡았다.
  • 시 토시히사
  • 미즈 타카유키
  • 마쓰이 히데키
  • 키요하라 카즈히로
  • 쿠보 히로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요미우리 우타자로서는 최초로 40홈런을 치고 이적 선수로서는 최초로 요미우리 주장 자리를 차지하며 요미우리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 오카 토모히로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 키무라 타쿠야(항목 2번)
  • 타니 요시토모
  • 데이비 존슨: 현 워싱턴 내셔널스 감독이자 요미우리 자이언츠 사상 최초의 외국인 선수.
  • 렌 크로마티: 자이언츠 역대 최고의 외국인이자 가장 많은 인기를 받았던 선수. 만화 크로마티 고교의 크로마티는 여기에서 따왔다(...).
  • 발비노 갈베스: 심판에게 위협구를 던진 카리브의 괴물.
  • 로베르토 페타지니: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주전 1루수로 활약하다 요미우리로 이적. 후에 LG 트윈스에서 페타신으로 불렸다.
  • 터피 로즈: 55홈런을 친 적이 있는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의 거포. 요미우리 시절은 안 좋은 추억...
  • 세스 그레이싱어
  • 데니스 홀튼: 2011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우승을 이끈 뒤 2012년 요미우리로 이적했다. 그러나 2년 후 재계약을 포기하고 KIA 타이거즈로 적을 옮긴다.
  • 이승엽
  • 조성민
  • 정민철
  • 정민태

7.7.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7.8. 영구결번

1. 오 사다하루: 설명이 필요 없는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 세계의 오 . 통산 868홈런(1위), 2170타점(1위)에 트리플 크라운 2회 달성에 빛나는 성적을 냈다. 다만, 감독으로서는 자이언츠에서 닛폰이치를 거두지 못해 결국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로 자리를 옮겨 거기서 감독으로서 레전드가 됐다. WBC 초대 우승을 이끌었다.

3. 나가시마 시게오: 역시 교진군의 전설이자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 미스터 베이스볼, 미스터 자이언츠의 별명을 가졌으며, 현재를 통틀어도 가장 인기있는 역대 선수이기도 하다. 감독으로서도 교진군을 일본시리즈 2회 우승으로 이끌었다.

4. 쿠로사와 토시오: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영구결번 선수. 나고야긴코, 츠바사군 등에서 활약하다 1944년 교진군에 이적하여 구단 최초로 4번을 달고 4번타자로 나서 맹활약을 했다. 하지만 33세의 다소 젊은 나이에 장티푸스로 요절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사와무라 에이지와 함께 영구결번 처리했다.

14. 사와무라 에이지: 일본 프로야구 양대 리그 이전(일본 야구 연맹 시절) 시대의 최고의 투수. 어린 나이에 일본 구계를 호령하는 대투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 27세 나이에 전장에서 산화했다. 이후 구단에서 그의 전설적인 활약을 기리고자 영구결번 처리를 했으며, 후에 그의 이름을 딴 사와무라상을 제정했다.

16. 카와카미 테츠하루: '타격의 신'으로 칭송받는 인물. 또한 교진군의 9년 연속 일본시리즈 제패, 즉 V9(1965~1973)을 이끌었던 명장이기도 하다.

34. 가네다 마사이치: 일본 프로야구 통산 400승(1위), 4490삼진(1위)를 기록한 전설적인 투수. 교진군에서는 5시즌(1965~1969)밖에 뛰지 않았고 성적도 돋보이지 않았지만 여러 차례 재팬시리즈 우승에 공헌을 하기도 했고 일본 야구계에서 가지는 상징적 의미가 너무나도 커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7.9. 준영구결번

8. 하라 다쓰노리: 하라가 은퇴한 이후 직접 니시 토시히사(仁志敏久)에게 넘겨줬고, 니시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한 뒤인 2008 시즌부터 2013년까지는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이적해온 타니 요시토모(谷佳知)가 달았다. 2014년에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FA 이적한 도루왕 출신 2루수 타오카 야스유키가 달게 된다.

18. 에이스 번호: 구단 내에서는 준영구결번으로 처리하지 않지만, 교진군의 18번은 에이스에게만 돌아가는 번호라 워낙 유명하다. 요미우리의 에이스 번호는 양대 리그 출범 이후 후지타 모토지(藤田元司)-호리우치 츠네오-쿠와타 마스미-스기우치 토시야로 이어진다.

8.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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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왼쪽의 '공식 엠블럼'보다 더 자주 쓴다.
  • [2] 자이언츠(Giants)+토끼(Rabbit)
  • [3] 양대 리그 출범 이전.
  • [4]
    Giabbit.jpg
    [JPG image (74.73 KB)]
    이 자비트 마스코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모자에 있는 YG 교차 로고의 형상에서 토끼 모양을 착안해낸 것에서 비롯됐다. Y자의 갈라진 부분이 귀가 되고 G와 교차되면서 얼굴 모양을 형성하고 Y의 받침 부분이 몸통과 발의 형태를 하는 형식으로 디자인되었으며 1992년부터 채택되었다. 1970년대에는 미스터 자이언츠라는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은 아저씨(...)가 마스코트였고 1980년대에는 쌍방울 레이더스 비슷하게 팔다리가 달린 야구공이 헬멧을 쓰고 마녀 빗자루처럼 야구 배트를 타고 있는 모양이 마스코트 로고였다.
  • [5] 다만 아래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구단 역사의 여명기부터 지금까지를 빛낸 구단 OB 중에는 상당수의 재일 한국인이 있고, 지금까지 한국인 선수를 가장 많이 데려간 구단이기도 하다.
  • [6] 사실 이것이 이들 구단 탓만 할 것이 아닌 게 선수들 입장에서 보면 우승 가능한 구단, 여기에 누구나 알고 있는 명문 구단에서 뛴다는 것은 프로 선수 인생에 있어서 희망 사항 중 하나이다. 당장 야구만이 아닌 타 구기 종목 프로 구단만 봐도 그렇다. 괜히 칼 말론이나 게리 페이튼 같은 명선수들이 단기 계약을 감수하고서라도 레이커스 구단에 입단했던 것이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뉴욕 양키스는 메이저리거라면 한 번쯤 뛰어보고 싶고 또 뛰어봐야 할 명문 구단이라는 점 역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우승 후보에 명문이란 2가지 장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 [7] 하지만 쵸노 히사요시, 와무라 히로카즈, 가노 토모유키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여전히 자금력과 명성, 뒷공작 등을 이용해 드래프트 최대어를 미리 확보해 놓는 등 과거와 같은 패악질을 일삼고 있기도 하다.
  • [8] 범용 구호는 "오~ Go! ○○○(선수명)".
  • [9] "(짝짝짝) ○○○!(선수명)". K리그에서는 한 선수당 두세 번 사용하는데, 자이언츠는 이들 중 세 번을 외친다.
  • [10] 응원 도구를 적극적으로 쓰는 철천지 원수 한신과는 크게 대조적인 부분이다.
  • [11] 참고로 팬덤 수에서 3위~5위까지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292만 명), 주니치 드래곤즈(288만 명),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279만 명) 순이다.
  • [12] 오가사와라는 자이언츠가 수염 길러도 좋다고 한 엄청나게 드문 사람인데 자기가 알아서 깎고 다닌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죠
  • [13] 이러한 규정은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도 비슷하게 존재한다. 예를 들면 수염을 기를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니 데이먼은 보스턴에서 뛸 때에 길렀던 수염을 양키스 이적 후에 밀어버렸다. 사실 이 규정은 조지 스타인브레너의 괴팍함 때문에 생겨났지만...
  • [14] 니오카는 야마모토 모나와의 불륜 하나로 문책성 트레이드가 된 건 아니고, 그 전에 후배 선수인 야노 겐지와 동석한 술자리에서 영 좋지 않은 곳의 털을 라이터로 태우면서 그 후배 선수는 고통스러워하는데 낄낄 웃으면서 병신짓한 게 걸려서 구단이 발칵 뒤집어진 후 2연타로 터진 것이었다. 쫒겨날 만했다. 그 전까지 모범적인 이미지가 강한 선수였기에 이 2연타 병크로 두 얼굴의 사나이 & 모나오카 등등으로 불리며 엄청나게 까였다. 니혼햄으로 하야시 마사노리와 같이 트레이드됐을 때 마지막 기자 회견에서 울먹거리면서 인터뷰를 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대한 애정만큼은 남달랐던 듯... 그러게 왜 그런 변태짓에다 불륜짓해서 쫒겨나니 ㅉㅉ
  • [15] 세리그 우승 36회, 양대 리그 성립 이전 리그 우승 9회를 합해 총 44회이다.
  • [16] 참고로 한자로 되어있는 구락부는 '클럽'의 음차자이다. 과거 일본에서는 거의 이 표기로 썼으며 현재도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음차이다. 중국어권에서는 다 이렇게 쓰는 듯하다.
  • [17] 퍼시픽리그에서는 1963년 니시테츠 라이온즈(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전신)가 난카이 호크스(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전신)과의 14.5경기 차를 극복하고 역전 우승을 따낸 적이 있다.
  • [18] 일본시리즈 우승은 오기 아키라 감독의 오릭스 블루웨이브가 가져갔다.
  • [19] 이에 대해 노무라 카츠야는 "MAKE DRAMA는 마케(일본어로 패배라는 뜻) 드라마라고도 읽을 수도 있지." 라고 비꼬기도 했다.
  • [20] 08-09년 시애틀 매리너스의 중심 타선 중 한 명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2루, 3루를 봤지만 요미우리에서는 1루수로 주로 뛰고 있다. MLB 커리어 통산 92홈런.
  • [21] 하라 다쓰노리 감독의 조카 뻘이라고 한다.
  • [22] 홀드 + 구원승. 홀드로만 따지면 매티슨 40홀드, 야마구치 테츠야 38홀드.
  • [23] 22홈런 57타점 타율 0.243
  • [24] 프레데릭은 출장 경기수가 매우 적었고(52경기), 앤더슨도 중간에 빠진 나머지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다.
  • [25] 게다가 그 두 사람과는 달리 오 사다하루야 말로 요미우리의 본거지인 도쿄 출신의 순혈 of 순혈이었다. 그런데 일본인이 아닌 건 함정. 참고로 카와카미는 구마모토, 나가시마는 치바 출신이다.
  • [26] 야쿠르트의 첫 일본시리즈 우승과 세이부의 80년대 전성기를 이끈 명장. 히로오카는 선수 생활은 요미우리에서 했지만 코치, 감독 생활은 히로시마, 야쿠르트, 세이부에서 했다. 그래서 감독 인선에서는 거의 고려가 되지 않지만 요미우리 OB회 회장 자리는 역임한 바 있으며 회장 재임시절 감독이하 선수단의 운영에 이런 저런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 [27] 히로오카의 후임으로 세이부에서 리그 우승 8번, 일본시리즈 우승 6번의 위업을 이룬 OB 출신 리 마사아키 조차도 선수 시절도 아니고 코치, 감독 시절을 다른 팀에서 보냈다는 이유로 감독 인선에서 진지하게 고려된 적이 없다. 게다가 모리 감독의 경우 그의 마지막 감독 생활이었던 1994년에 요미우리의 모종의 계략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자세히 얘기하자면 요미우리가 3승 2패로 우승하기 바로 직전인 1994년 일본시리즈 6차전 경기 시작 직전에 "세이부, 모리 감독 경질"이라는 루머를 도쿄돔 전광판에 떡하니 띄워놨다. 그야말로 OB고 뭐고 간에 상대편 감독 죽이기밖에는...
  • [28] 일본 대표 팀 소집하는 날을 "오늘 쨉들의 모임이 있는 거야?"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 [29] 대지진으로 인한 정전 사태 중에도 프로야구를 강행하려는 요미우리를 씹었는데 그 이면에는 입단 과정에서 구단 측의 야쿠자 동원 등 안 좋은 루머에다 이런저런 일로 요미우리에 대한 감정이 나빴던 우에하라의 작심이 한 몫한 듯한 느낌도 있는 듯하다.
  • [30] 비슷한 케이스였던 다카하시 히사노리는 2014년 시즌부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서 뛰게 되면서 나가리.
  • [31] 또 여담이지만 근육맨의 주인공 근육 스구루의 이름의 모티브이다.
  • [32] 디트로이트와 다저스 사이에 일본으로 귀국해서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2년간 플레이.
  • [33]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마스코트였던 '배트에 탄 소년(バットに乗った少年)'을 본인들 마스코트로 사용했다. 쌍방울 레이더스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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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4 03: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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