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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타운급 항공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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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초창기 미합중국 해군에서 운용한 항공모함의 함급.

CVYT.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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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전쟁의 활약

1. 개요

1931년 미국 해군은 신형 항공모함 건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적당한 수준의 기동력, 적당한 수준의 함재기, 적당한 수준의 방어력을 원하고 있었다. 미 해군의 항공모함 운용경험과 연구결과에 따르면 항공모함의 배수량은 최소 20,000톤 정도는 되어야 적절한 요구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마지노 선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당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인해 미국에게 허용된 항모쿼터는 5만 5천톤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미 해군은 3척의 새 항공모함을 뽑을 생각이었는데 5만 5천톤을 균등하게 3분의 1로 나누면 고작 레인저급 수준의 소형 항공모함 3척을 뽑고 끝나는 격이었다. 이게 싫었던 미 해군은 그냥 두 척의 항공모함은 배수량 2만톤급 설계를 하기로 하고, 아쉬운대로 1만 5천톤 정도쯤 되는 소형 항공모함[1]을 건조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1931년 5월 CV-5 요크타운으로 명명된 신예 항공모함의 설계가 시작되었고, 건조되는 신예 항공모함은 요크타운급으로 명명되었다. [2]설계가 마무리되자 1934년 5월 21일 요크타운의 건조가 시작되었고, 7월 16일에는 미 해군 전사에서 전설적인 항모로 기록될 CV-6 엔터프라이즈Big E의 건조가 시작되었다. 이 두 항모는 기준배수량 19,800톤에 만재배수량 25,500톤에 달하고 32.5노트로 항해가 가능하며 함재기도 80 ~ 90기 가량 탑재할 수 있었다. 여담으로 요크타운급 건조사업은 당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진중이던 뉴딜 정책에 따라 공공사업적인 성격으로 추진되었다.

이후 1938년 항모 보유쿼터에 여유가 생기면서 새로운 항공모함 건조를 준비하였는데 당시 미 해군은 아이오와급 전함을 위시한 주력함급의 설계에 매달려 있었고, 요크타운급이 워낙 성공적이라 새로 설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냥 과거 요크타운급 설계에 지금까지 운용하면서 발생한 요구사항들을 반영하는 형태로 요크타운급 3번함 CV-8 호넷이 건조되었다. 호넷의 경우에는 배수량이 100톤 정도 더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기존 요크타운급 항모와는 별 다른 차이가 없었다. 어쨌든 이로 인해 미군이 운용한 요크타운급은 총 3척이 되었다.

2. 전쟁의 활약

진주만 공습으로 미 해군의 전함이 모조리 털린 까닭에 태평양 전쟁 초창기 살아남은 항모들이 미국 태평양 함대 작전의 주 타격력으로 활용되었다 태풍이 살린 엔터프라이즈. 그 결과 전함과 전함 사이의 함포결전이 아닌 항공모함과 항공모함 사이의 항공전 위주로 전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항공모함들이 손실되었다. 요크타운급도 예외가 아니어서, 네임쉽인 CV-5 요크타운은 산호해 해전에서 전치 3개월 진단서를 끊고도 3일 동안의 응급수리를 마치고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 일본 해군한테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를 선사했다. 게다가 일본군에게 두드려 맞고 빈사상태까지 갔지만 그걸 또 악착같이 복구해내는 바람에 일본군을 두 번이나 속여먹는 위업까지 세웠다![3] 하지만 결국 일본의 집요한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격침당했다.

CV-8 호넷은 개전 초기 둘리틀 특공대를 발진시켜서 역시 일본한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지만, 결국 과달카날 전투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집중 공격을 받고[4] 격침당했다. 그러나 호넷 역시 격침당하기 직전까지 일본 해군의 베테랑 조종사들을 저승길 길동무로 삼았다.

2번함인 CV-6 엔터프라이즈는 여러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지만, 행운여신의 가호[5] 숙련 된 승조원과 든든한 동료들이 함께 있었기에 전쟁 시작전 7척의 항공모함 중 새러토가레인저와 더불어 종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에식스급 항공모함들이 전선에 등장하기 전까지 태평양 전선에서 4척의 항공모함이 상실하는 상황에서 미 태평양 함대가 곧바로 사용 가능한 항공모함으로서 지속적으로 전선에 투입 하였고 적 잠수함 뇌격에 피해를 입어 전선에서 물러난 새러토가가 수리가 완료 되어 복귀 이후 함께 일본군의 공세에 대응했다. 과달카날 해전이 끝나고 전선이 잠시 소강상태에 빠지자 요크타운급이라고 쓰고 엔터프라이즈라고 읽는 함선에 대한 대대적인 개장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배수량 제한으로 인해 설계시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 어뢰방어를 위한 벌지를 설치하고 구식 대공포였던 1.1인치 포를 제거하고 40mm 보포스 대공포를 추가로 설치하는 등 당시 태평양 전쟁의 사정에 맞게 거의 모든 시스템에 대한 업그레이드가 단행되었다. 그 결과 배의 기준배수량은 21,000톤으로 늘어났다. 이후 에식스급 항공모함들이 대량 건조되어 배치되면서 이들과 함께 태평양 전쟁을 수행하였으며, 일본 본토 공습 당시 카미카제 공격에 엔터프라이즈가 대파되면서 요크타운급은 전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1945년8월14일, 수리가 끝난 엔터프라이즈가 해군공창 부두에 정박하고 있을때 전쟁은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미 해군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을 승리로 이끈 이 항모들이 벌인 전설적인 활약은 널리 이야기될 것이다.

여담으로 네임쉽 요크타운호가 요크타운급이 아닌 에식스급의 설명을 달고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요크타운이 침몰한 후 그 이름을 에식스급 항공모함 중 하나에게 승계시켰기 때문이다. 승계 이유는 미드웨이에서의 전설적인 활약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비슷한 예로 렉싱턴이 있다.

또한 요크타운급 항공모함들이 조약 때문에 방어력이 많이 포기되었음에도 상당히 오래 버틴 것을 알 수 있는데 요크타운과 호넷의 최후를 봐도 요크타운은 꽤 오래 버텼고 호넷도 전투불능이 된 상황에서 자침시키려 해도 안되서 일본군이 격침시켰지만 꽤 오래 버텼고 엔터프라이즈의 경우에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가 없을 정도.

특히나 호넷의 방어력은 가관인데 방뢰능력을 포기했다는 요크타운급이 어뢰 9발을 맞고도 안 가라앉았다. 이후 일본이 추가적으로 산소어뢰 네발을 쏴서 세발을 명중시킨 후에야 천천히 가라앉았다고.

번호 이름 진수 취역 최종 설명
CV-5 요크타운 1936-04-04 1937-09-30 1942-10-02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잠수함 I-168의 뇌격으로 격침
CV-6 엔터프라이즈 1936-10-03 1938-05-12 1956-10-02 고철로 스크랩
CV-8 호넷 1940-12-14 1941-10-20 1943-01-13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일본군에 의해 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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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와스프급 항공모함이 바로 그 주인공. 절대 이 녀석과는 관련이 없다
  • [2] 요크타운이란 이름은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미국 대륙군이 영국군을 상대로 최대이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요크타운 전투에서 유래된 것인데, 과연 이 항공모함은 실로 그 이름이 아깝지 않은 활약을 하게 된다
  • [3] 첫 공습에서 요크타운이 격침당했다고 오판한 일본군은 여전히 둥둥 떠있는 요크타운을 다른 항모로 착각하였다. 아내의 유혹? 이는 일본군이 미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거의 얻지 못했기도 했고, 해당 전역에 있는 항공모함이 전부 동형함이었던 것도 한몫 했을 듯.
  • [4] 일본의 사토오 병조장의 급강하 폭격기가 비행 불능이 되자 호넷의 연돌에 자폭, 7명의 전사자를 내고 자신의 항공유를 호넷의 통신 데크에 뿌려 화재를 냈다.
  • [5] 진주만 공습 당시 폭풍으로 입항이 하루 늦어져서 무사히 넘겼으며, 산타크루즈 해전에서는 방공전투에서 이점을 얻기 위해 때마침 발생한 스콜에 이동한 덕분에 엔터프라이즈는 보이지 않았고 여동생인 호넷이 집중 공격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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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6 23: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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