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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라베

Contents

1. 욘 라베
1.1. 생애
1.1.1. 전반생
1.1.2. 난징 대학살
1.1.3. 귀국과 여생
1.2. 기타
1.3. 창작 작품에서 모습
1.3.1. 욘 라베
1.3.2. 난징! 난징!
2. 영화


1. 욘 라베

john.jpg
[JPG image (38.84 KB)]


John Rabe, 1882.11.23~1950.1.5

중국쉰들러. 만고의 의인(義人). 난징의 살아있는 부처.

영웅으로 칭송받아야 마땅한 극히 얼마 되지 않을 나치 당원. 본디 지멘스 회사 소속의 중국 담당 간부로 27년간 중국에 머무른 독일인이며, 나치 당원이었지만, 난징 대학살 당시 동맹국이었던 일본군의 만행에 맞서 난징에 안전지대를 만들어 약 15~25만 명의 인명을 지켜냈다.

1.1. 생애

1.1.1. 전반생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평범한 비즈니스 가도를 달렸다. 중국에 오기 전에도 해외근무를 주로 했던 것 같다.

중국에 온 뒤 1910년부터 27년간 난징/베이징/상하이 등의 지방에 걸친 지멘스 회사의 업무를 담당했다.[1]

나치에 가입한 전력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는데, 중일전쟁 당시는 나치가 본격적인 마각을 드러내기 이전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야욕을 노골화시키기 이전의 히틀러는 독일의 전통가치를 수호하고, 사유재산제를 보호하는 전제 하에서 근로대중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국가사회주의를 지향했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국제공산주의자로 구성되어 소련의 지배를 받는" 공산당과 달리 나치가 독일 노동자들의 진정한 친구라고 착각했을 정도였다. 이에 더해서 베를린 올림픽이나 아우토반 건설 등 대단한 경제적·문화적 성과를 올렸고 군부 역시 압도적 충성을 바쳤다. 욘 라베 역시 나치에 대해서 "러시아의 국제공산주의로부터 독일을 지키고 근로대중의 이익을 보호해줄 노동자당"이라는 순진한 시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난징 학살과 관련하여 독일 대사관의 구원을 요청하기도 하고, 귀국한 후로는 나치 정부에 일본에 대한 항의와 중국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결론적으로 모두 무시당했고, 이로 인하여 욘 라베가 나치의 실체에 대해서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된다.

1.1.2. 난징 대학살

그러나 급속도로 중일전쟁의 전황이 격화되고 상하이를 점령한 일본군은 난징에 접근해 오며 폭격을 퍼붓는다. 이에 여러 서양인들이 도시를 떠나지만 몇몇 선교사 등 외국인들은 도시에 남는 쪽을 선택했다.

1937년 12월 난징을 일본군이 점령하자 라베는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난징 안전구역을 만들고 그 관리를 맡은 중립위원회를 구성해 일본군의 천인공노할 약탈과 살육, 강간으로부터 중국인을 지켰다.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에 연락해 협약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중국군 패잔병을 재빨리 대피시키기도 했으며, 27년간 모은 사재를 털어 난민들을 도왔다.

그 이유를 본인은 이렇게 회상했다.

인륜의 문제였죠. 사람들의 저에 대한 신뢰를 함부로 배반할 수 없었고, 그렇게 신뢰받는 존재가 되는 건 매우 감동적인 일이었으니까요.

안전구역은 난징 대학교와 대사관에 위치해 있었으나, '도로'를 경계로[2] 국제위원회와 일본군간의 구두 약속으로 성립한 것이었고, 군사력 또한 전무해 들락날락하는 일본군을 제재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이것을 몸으로 막은 외국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희생자가 얼마나 늘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강간, 살육 파티를 벌이고 있던 일본군이 밀고 들어오는 걸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지만 욘 라베가 우호국인 독일의 나치스 당원이었다는 점 덕에 적어도 늦출 수는 있었고, 그 동안 수십만이 무사히 도시를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숫자는 약 15~25만 정도로 추산된다. 사실, 나치 당원이라고는 해도 일본군은 같은 파시즘 우호국가 스페인 대사관에서 학살을 저지르거나, 심지어 혈맹국 독일목사와 수녀들도 죽여 댔기에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물론 삽질이긴 했지만 욘 라베는 어쨌든 나치당원이었기 때문에 "관대하신 히틀러 대총통께서 미친 일본놈들을 막고 저 불쌍한 중국인들을 인도적으로 구해주실거야."라고 생각하고 아돌프 히틀러에게 편지까지 썼다. 아마 이는 독일이 중국편에서 일본 괴롭히려고 별짓을 다 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중일전쟁이라 해도 독일이 중국에게는 아직 우호적일 것이라 마지막 희망이라도 걸어볼려는 생각으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일기의 히틀러 찬양 부분 및 나치당원이라는 점 때문에 발굴이 늦어지고 저평가되었다는 지적이 많다.

1.1.3. 귀국과 여생

이 훈훈한 이야기에는 씁쓸한 뒷이야기가 있는데, 욘 라베는 독일로 돌아간 후에 이 일을 보고했으나 게슈타포에게 붙들렸고, 히틀러에게 보낸 편지는 본인에게 도달하지도 못했다는 걸 알게 된다. 정작 히틀러는 욘 라베라는 자가 자신한테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에 관해서 편지를 썼다느것 자체를 몰랐다. 일본군이 난징에서 어떤 일을 벌였는지도. 게다가 돌아온 대답은 "우리 우호국의 적국인 중국은 곧 우리 적인데 걔들을 도와? 닥쳐."였다. 안 그래도 소련 때문에 일본 제국이 소련의 뒤통수를 치게 하려고 비위를 강제로 맞춰주려다 보니 난징 대학살의 경위와 중립 위원회의 활동을 상세히 기록한 귀중한 자료였던 일기는 출판이나 공개가 금지되었고 라베는 종전까지 베를린의 지멘스 본사에서 일했다.

심지어 전후에는 나치 당적을 갖고 있던 문제가 되어서 소련군영국군에 체포되었다가 지멘스 본사의 중재 덕에 간신히 무죄로 풀려났는데, 자신이 나치 당원이기는 했지만 전쟁 범죄 같은 반인륜 행위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인증을 하는 과정에서 재산을 날리고 가족조차 부양할 수 없는 알거지가 된다. 신도 부처도 없단 말인가

그러나 라베 일가의 참상을 전해 들은 난징 시민과 중국 정부가 돈을 싹싹 긁어 모금하고 모금해 돈과 음식을 보내주었다.[3] 하지만 라베는 여전히 가난한 생활을 면치 못한 채로 베를린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고, 유해는 샤를로텐부르크 지구의 빌헬름 황제 기념 묘지에 안장되었다.

1997년에 라베의 묘비가 유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난징으로 옮겨졌고, 라베 일가가 난징에서 살던 집은 욘 라베와 민간인 안전구역 기념관이 되었다.

1.2. 기타

늘 그래왔듯이 일본 극우파들은 조직적으로 아시안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고 있으며, 극우들이 점령해버린 지 오래인 일본어 위키백과에는 "라베가 국민당 측과 커넥션이 있었던 사업가이니 중국놈들에 편향된 자라 믿기 어렵다."라고 오히려 라베의 선의를 의심하는듯한 기술을 해 놓았다. 물론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이런 일본 극우들의 망언을 절대 믿지 않고 오히려 미 웨일스를 포함해 해외의 포털 사이트 등지에 "이는 일본놈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단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멍청한 왜노(일본인 비하 명칭)놈들에게 제대로된 역사를 가르쳐주자!"며 가루가 되도록 까고 있다. 다행히 해외에서도 이리스 장 등의 역사서를 통해 잘 알고 있었기에 일본 극우파들의 말은 절대로 듣지 않고 중국인들의 입장을 최대한 따르고 있다.

영화에서도 간간히 언급되지만, 욘 라베는 오스카 쉰들러처럼 히틀러를 경외하는 나치당원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1937년으로 2차대전 개전 전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히틀러는 베를린 올림픽이나 아우토반 건설 등 대단한 경제적·문화적 성과를 올렸고 마구잡이 학살이나 망상적인 전쟁 확대 및 정신병적인 행동 등은 대부분 2차대전을 개전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으니, 전쟁 초기엔 독일 군부의 엘리트 장성들도, 나중에 히틀러를 암살하려 한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조차도 히틀러가 조국을 구원할 천재라고 오판했을 정도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나치에 대한 저항운동을 전개한 백장미단 단원들도 전쟁 전까지는 죄다 히틀러 유겐트에 들어가서 히틀러를 추종하던 사람들이었다. 엄청나게 먼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일반인에 불과한 라베가 알고 있는 히틀러와 나치당의 인상은 이 전쟁 전의 화려한 업적이 대부분이니 좋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또한 당시 사상과는 별로 상관없이 그냥 일자리를 찾거나 사업에 더 수월해지기 위해 나치당에 가입한 사람들도 많았다는 것 또한 염두해 둬야 한다. 오스카 쉰들러도 이런식으로 나치당원이었고 '나치에게 경례하지 않은 남자'로 알려진 우구스트 란트메서[4]도 일자리를 찾기 위해 한때 나치당에 가입했었다.

여담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리투아니아 일본 대사 스기하라 지우네가 정 반대로 독일에서 수천명의 유대인의 목숨을 살린 일도 있다.

1.3. 창작 작품에서 모습

1.3.1. 욘 라베

영화에서는 히틀러를 마구 까대는 영국인 의사의 말에 불편해하다가 점차 같이 까게 되는 모습이 나온다. 사실대로 하자면 라베는 귀국한 뒤에야 나치의 본색을 깨닫게 되었을 뿐, 난징 학살 당시에는 히틀러가 중국인들의 학살을 막기 위해 인도적으로 개입해 줄 거라고 기대할 만큼 나치의 본질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고, 히틀러와 나치 독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나치 당원이었다.

물론 작중에서 나치에 우호적인 모습을 비춘 뒤 좋은 일을 하면 나치 미화가 되어버릴 수 있어서, 라베가 나치가 아니라는 걸 인증하는 건 피해갈 수 없는 영화적 장치이긴 하다. 하지만 그 뒤 나치의 본색을 보는 욘 라베를 묘사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사실 영화가 이상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각색이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욘 라베가 돌아갈 때도 난징은 암울했다. 해피엔딩쪽으로 억지로 각색하다 보니 이후 나치의 본색을 아는 전개는 생략된 듯 하다.

1.3.2. 난징! 난징!

여기서는 조금 더 후덕하고 많이 늙은 모습으로 나왔다. 이곳에서도 중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많이 무력하다. 결국에는 일본군들에게 100명의 여자들을 바쳐서 안전을 보장받지만 그 여자들 대부분이 살아남지 못하며 일본군들은 보란듯이 안전지대로 쳐들어와 외국인들과 중국인 관리인들을 능욕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범하며 깽판은 칠대로 다 친다. 심지어 라베의 비서인 탕의 딸도 살해되며 그 아내와 처제까지 강간당한다. 결국 라베는 본국의 소환을 받고는 미안하다고 울면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중국인들을 뒤로 하고 독일로 무력하게 귀환해버린다. 다만 '난징!난징! 삶과 죽음의 도시'는 일본군의 잔혹함만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였기 때문에, 욘 라베의 역할이 지나치게 축소된 감이 있다.[5]

2. 영화

이 사람이 한 일을 영화화한 게 있다. 2009년작. 네이버 영화 IMDB

아래는 트레일러.



트레일러에도 나온, 대형 하켄크로이츠 깃발로 일본군의 폭격을 피한 것은 실제 사건을 각색한 장면이다. 실제로는 방공호 위에 깃발을 덮은 정도라고.

아, 물론 일본 넷 우익들이 유튜브에 몰려가서 병림픽을 치루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만든 프로파간다라면서. 근데 이 영화는 독일프랑스중국이 합작한 영화인데? 본격 독일+프랑스 공산국가 드립 물론 해외 네티즌들은 개드립이라면서 쿨하게 씹고 있다. 당연하지 결국 프로파간다 드립이 안 통하자 중국의 티베트 문제와 한국의 베트남 전쟁 이야기로 물타기를 시작했다 우린 왜[6][7]

영화는 아주 의미심장한 한 줄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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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시 욘 라베의 근무처는 독일제 수력발전소 난징 지점장.
  • [2] 울타리도, 철조망도 없었다
  • [3] 난징시 시장이 직접 찾아가서 건네주었다. 현재 시세로 19000불(유로화 기준 한화로 2,651만원)에 해당한다고. 정부가 모금한 돈으로는 좀 적어 보이지만 이건 당시 경제 수준이 바닥을 기던 중국에서 정성스레 모금된 돈이다. 만일 현재의 중국이라면 수천만 위안이라는 대륙의 기상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 [4] 유대인 여성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나치당에서 탈퇴당했다. 나중에는 형벌 부대에 끌려가 죽었다.
  • [5] 일단 15~25만사이의 사람들이 탈출한 것 만으로도 일본에서 신나게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해대는데 그게 영화에까지 나왔다면 극우들이 얼마나 그 점만을 쪼아댔을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또 일본군의 잔혹함을 중점적으로 다뤘는데 그 장면을 넣는건 불필요했을 것이다. 확실한건 욘 라베의 역할이 지나치게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 [6]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논란을 이용한 것이다. 이것 자체야 연구할 가치가 있는 주제이지만 이걸로 난징 대학살 사건을 물타기하겠다는 건 말 그대로 정신나간 행동이다. 더구나 한국은 월남전에서 대해서 민간인에 대한 한국군 학살이나 대민피해에 대해서 공식인정 대통령이 사과하였고 일부 교과서에도 한국군이 라이따이한 문제와 더불어 저지른 범죄로 기록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아예 사실 자체를 부정한것과는 차이가 있다
  • [7] 굳이 일본인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난징 대학살은 조작이고 저 영화는 중국의 프로파간다라는 놈도 있다.해당 리뷰 지금은 삭제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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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0 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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