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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

last modified: 2015-04-03 23:25:08 by Contributors

목차

1. 傭兵, mercenary
1.1. 역사
1.1.1. 고대
1.1.2. 중세
1.1.3. 근세
1.1.4. 근대
1.1.5. 현대
1.2. 장점
1.3. 단점
1.4. 현대
1.5. 유명한 용병 부대
1.6. 프로 스포츠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선수를 칭하는 말
1.7. 각종 매체
1.7.1. 가공의 용병 부대
1.7.2. 그 외 가공의 용병 캐릭터들
1.7.3. 양판소
2. 用兵

1. 傭兵, mercenary

통상적인 월급보다는 더 많은 돈을 받으며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남의 나라의 전쟁에 참여하는 일을 하는 자. 용병은 오로지 이득(대개 돈)만을 추구하기에 모병제에서의 군인, 혹은 징병제에서 월급을 받는 군인을 '용병'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일반적인 직업군인과, '용병'으로 칭하는 집단과의 차이는 애국심의 유무 또는 국가 소속의 유무라 할 수 있다. 용병은 보수만 주어지면 의뢰주와의 약속대로 의뢰-주로 전쟁-를 해주기 때문에, 의뢰주가 누구든 관계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1.1. 역사

1.1.1. 고대

용병은 고대 국가 시절부터 존재해 온, 인류가 가진 오래된 직업 중 하나이다.

고대의 이집트군도 용병대를 운용했으며, 고대 그리스페르시아 또한 용병을 많이 사용했다. 중장보병 위주였던 그리스는 주로 스키타이 출신의 궁병과 크레타 섬 출신 궁병들을 용병으로 고용해서 잘 써먹었고, 반대로 궁병이나 기병이 강했던 페르시아에서는 그리스 본토의 폴리스나 그 식민도시 출신의 중장보병들을 용병으로 고용한 일이 많다. 이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페르시아의 왕자 小 키루스가 고용한 1만 여 명의 그리스 용병대이다. 이 용병들은 반란을 일으킨 키루스를 따라 제국의 서쪽 끝인 리디아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 행군했고, 그곳에서 왕의 군대와 맞붙었다. 그러나 고용주인 키루스는 전투 중 전사하고, 남은 용병들은 티그리스 강을 따라 방향을 돌려 아르메니아, 캅카스 지역을 통해 흑해 연안으로 탈출한다. 적지 한가운데에서 페르시아군 추격대를 따돌리고,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토착민들의 공격을 버텨내며 행군한 이 과정은 용병대의 장교들 중 한 명이었던 저술가 크세노폰이 남긴 책 아나바시스(Anabasis)를 통해 매우 유명해졌다.

그리스 이후 용병으로 유명해진 고대 국가는 역시 카르타고다. 카르타고는 상업 국가로, 물론 자체적인 시민병이나 상비군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병력을 용병에 의존했다. 카르타고가 용병으로 주로 고용했던 것은 이베리아 반도의 원주민들과 켈트족, 그리고 누미디아 기병대였다. 이들은 상당히 잘 싸웠지만, 월급 문제로 인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는 등 용병에 의존하는 것의 취약점을 드러내게 하기도 했다.
상비군 중심의 편성을 고집했던 로마군 역시 적지 않은 용병들을 고용했다. 강력했던 보병, 공병에 비해 기병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탓에 누미디아 기병, 갈리아 기병, 게르만 기병을 수시로 고용하여 기병 전력으로 활용하였다. 또한 투석병, 투창병, 궁수같이 상대적으로 고도로 숙련된 특수한 기술이 요구되던 병과들이 용병으로 고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로도스섬 출신 투석병은 그리스군, 마케도니아군에서, 발레아레스섬 출신 투석병들은 로마군에서 그 명성을 떨쳤다.

제정 말기에는 이미 공화정 말기에 진행된 중산 계급의 몰락과 국가 시스템의 붕괴로 용병의 비중이 올라갔는데, 18~19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저술가들은 이들 용병들의 정치적 타락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취급했으나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용병들의 발호를 로마 몰락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1]에 더 가깝게 보고 있다.

1.1.2. 중세

흔히 중세를 생각하면, 봉건제 원칙에 따라 소집된 농노들과 기사들이 전투의 주역이었을 것 같지만 사실상 봉건 기사들로만 전쟁을 수행하기에는 여러 가지 무리가 따랐다. 우선 병력을 소집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지방 영주가 보내오는 병력의 양과 질은 순전히 그 영주의 성의와 충성심에 달려 있었다. 게다가 봉건 계약 하에서 기사가 자신이 모시는 영주에게 복무할 의무가 있는 것은(나라마다 법이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연간 40일 정도였고, 이후 계속 복무시키려면 월급을 줘야 했다. 그래서 보통 각국의 왕들은 휘하 영주와 기사들을 복무시키는 대신 세금을 받고 그 돈으로 기사와 전문적인 병사, 궁수, 기술자 등을 고용하여 전쟁을 치렀다.

서양 중세의 역사가 복잡한 만큼 용병의 활용이나 유명한 용병 부대도 무수히 많으며, 국가와 시대에 따라 그 형태도 천차만별이었다. 이 와중에 돈으로 사는 사설 깡패 떠돌이 전투원 수준을 넘어 뛰어난 무예와 전술, 집단 대오, 적에 대한 무자비함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성, 그리고 고용주에 대한 신의성실성까지 겸비한 중세 용병의 완성형이 등장하게 되었으니, 이가 바로 합스부르크와 오랜 교전으로 다져진 스위스 용병이다.

1.1.3. 근세

용병의 최전성기.

르네상스기로 들어가면 독일란츠크네히트처럼 국가에서 관리하는 용병대도 있었다. 이와 유사하게는 프랑스에서 헌병을 뜻하는 "장다룸"은 원래 이 고용한 용병이라는 뜻이었다고 하며, 또한 비잔틴 제국은 신체 강건한 노르만 출신 용병들을 근위대로도 활용하였는데 그게 바로 바랑기안 근위대이다. 바랑기안 근위대는 높은 충성도로 명성이 높았는데,[2] 1204년 베네치아군과 십자군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될 때도 용감히 맞서 싸웠다.

르네상스 시기의 전쟁은 주로 용병들에 의해 치뤄진 탓에 일부러 용병들이 짜고 나라간의 분쟁을 일으켜 싸우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쌍방 피해 없이 보수만 타 먹는 일도 많았다.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고용한 이탈리아 출신 용병대가 이런 짓을 많이 벌였다고하며 그 밖에도 예전부터 독일, 프랑스, 영국인 등등도 이탈리아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벌였다.

그러나 저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상당수의 전장에서 용병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스페인군에서 이탈리아인으로 구성된 용병 부대의 명성은 상당히 높았으며 독일의 란츠크네히트나 스위스의 유명한 스위스 용병대는 상당히 성실하게 전쟁을 수행했다. 덜란드 독립전쟁에서 스페인 정규군이 임금 체불과 보급 악화로 인해 반란 직전까지 몰렸을 때도 용병들은 별다른 불평 없이 성실히 임무를 수행했다. 애초에 용병은 칼질과 평판에 목을 매야만 하는 직업이다.

마키아벨리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두 용병단이 붙은 전투에서 서로 칼을 두어번 휘두른 뒤 평원에서 쉰 후 보수로 서로 함께 을 먹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마키아벨리는 "용병을 쓰는 것이 최악, 동맹군은 악, 그리고 오직 국민병만이 최선.", "용병대장은 유능할 경우 왕의 지위가 위험하며, 무능할 경우 왕의 돈이 아까우므로 결국 쓸모가 없다."라고 일갈하며 용병이란 군체계가 그야말로 최악의 체계이며, 개념박힌 국가라면 절대 피해야 할 군제라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맞는 말이기는하지만 당시 국가의 제정은 제대로 된 상비군을 운용할 수 있을 만큼 부유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반만 맞는 말이다. 또한 마키아벨리의 악담과는 달리 이탈리아 내부의 전투에서도 시민군이 용병에 대해 우위를 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시민병은 전투 경험이나 전문성 면에서도 용병들에 대해 열세에 있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병은 장기간의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몇십km 떨어진 곳에서 1년이 넘는 기간동안 계속 전쟁을 치른다고 하면 농민이건 상인이건 생계가 곤란해지고, 이는 곧 세수의 감소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주나 영주들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시민은 생업에 종사하게 하고 그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으로 용병을 고용하는게 전쟁을 더 오래 수행할 수 있고 국가 내적인 피해도 최소화하는 방법이었다. 각 국가의 규모가 커지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시민병은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로마 제국도 같은 과정을 밟았다고 할 수 있다. 공식적으로 모병제로 전환하기 오래 전인 마리우스 시대에 시민병은 사실상 도태되기 시작했다.

또한 베네치아는 용병에 의한 정치 불안을 겪지 않으면서 신성 로마 제국, 프랑스, 교황 등이 연합한 캉브레 동맹의 공격을 물리침으로써 이탈리아 용병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면 어느 정도의 군사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는 베네치아의 관료들이 경험을 통해 용병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인들은 대규모의 용병을 거느린 용병대장과 계약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소규모의 단위인 '랜스(lance)'별로 각각 직접 계약을 체결했고, 용병대장은 자기가 직접 거느린 병력이 아니라 관료들이 그때 그때 배정해 준 '랜스'들로 이루어진 부대를 지휘하도록 했다.[3] 또한 관료들은 전체 병력을 유지하기 위한 재정을 계획-관리했으며, 각 랜스와의 계약을 장기화함으로써 고용주인 베네치아에 일체감과 충성심을 가질 수 있도록 했고, 또한 정기적으로 점호와 사열을 통해 각 랜스가 계약한 대로의 인원과 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이는 그 후의 국가들이 관료체계를 통해 정규군을 운영하는 방식의 모범이 되었다(반대로 말하면, 베네치아인들은 경험을 통해 '용병대 전체를 단위로 그때 그때 계약을 맺는 방식'의 한계를 확인했다고 할 수 있다). 대국이 용병대에 의해 나라가 좌지우지되는 경우도 드물었으며, 마키아벨리 자신이 강조한 '징집된 민병'이 용병들에게 처참히 발리는 바람에 피렌체도 결국 용병을 고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키아벨리 자신도 용병 개개인의 능력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았다. 그가 비판한 것은 용병대장들이 이탈리아 소영주들과 도시 국가들 사이의 분쟁에 개입하여 고용주를 엿먹이는 행위를 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었다.

16세기 후반이 되자 스위스 용병대나 란츠크네히트의 위명도 점차 사라져갔지만, 유럽 대륙에서 용병이라는 개념 자체는 절대 사라지지 않고 멀쩡하게 건재하고 있었다. 당장 17세기 초반에 일어난 대전쟁인 30년전쟁만 봐도, 이 전쟁 자체가 근대적 국민 국가의 성립 이전에 일어난 일이다. 당연히 이 시기의 전쟁에서는 현대적 의미의 국민병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이 시기까지도 대다수의 군대(특히 독일 각 제후국의 군대)는 순수하게 소득을 찾아 참전한 용병들이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가톨릭 동맹군들의 경우 용병에 의존하는 비율이 굉장히 높았으며, 이 용병들은 마키아벨리의 편견과 같은 허당 무리가 아니라 도리어 무시무시하게 잘 싸웠다. 심지어는 국민병 제도의 근간을 닦았다고 평가받는 구스타프 아돌푸스의 스웨덴군마저도 국민병 못지않게 용병을 많이 사용했을 정도로, 이 시기까지도 용병은 사실상 유럽 각국 군의 중추였다. 주로 독일인과 스코틀랜드인들이 유럽 각국에서 용병으로 활동했으며, 특히 스코틀랜드의 경우 전체 스코틀랜드 남성의 15%인 약 4만 명 가량이 30년전쟁 기간 동안 용병 노릇을 했다.

하지만 순수하게 전투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용병이 줄곧 시민병을 압도했다 해도, 마키아벨리의 지적은 적어도 정치라는 측면에서 보면 완전히 어긋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실제로 30년전쟁 동안 제대로 된 국가군의 근간을 갖추지 못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나 독일 각 군주들의 경우에는 항상 유력한 용병 지휘관들의 눈치를 보며 전쟁을 수행해야만 했다. 특히 이 폐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것은 가톨릭 연합군 측의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의 행태로, 황제는 일개 장군일 뿐인 발렌슈타인에게 과도할 정도로 끌려다녔고 급기야 자기 휘하 장군을 암살하는 방식으로 겨우 갈등을 해결했다. 때문에 용병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비판을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리고, 용병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주장이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임을 생각한다면 마키아벨리가 용병을 허당 취급했다는 해석은 오독에 가깝다. 마키아벨리 자신이 말한 것처럼 왕이 고용한 용병이 진짜 허당이면 돈이 아까운 것이지만, 허당이 아니라 유능하다면 왕이 위험하다는 것이 이 주장의 핵심이다.
이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키아벨리의 활동 배경이 소규모의 영주국이나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있던 이탈리아 북부임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프랑스스웨덴, 신성 로마 제국, 하다못해 베네치아 공화국정도의 대국이라면 그 국력 자체가 일개 용병단과는 비교할 수 조차 없는 만큼, 용병단에 의해 국가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은 일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이탈리아 소영주국들의 경우, 국력(특히 군사력)이 용병단을 압도할 만큼 강하지 못했고, 정치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당시에는 소국의 영주들이 직접 용병대장으로 나서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용병대장 출신으로 군주의 자리에 오른 사례도 드물지만 발생할 정도였다. 즉, 고용 국가-용병 사이에 갑을관계가 비교적 명확히 규정되는 대국의 사례들과는 달리, 이탈리아 북부의 소국들은 자신들이 고용한 용병을 확실하게 통제하기 힘들었고, 이 때문에 해당 지역에서는 용병 조직들이 국가와 대등한 정치적 실체로써 기능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자면, 용병단이 중심 도시 하나만 무력으로 장악해 버리면 국가 자체를 장악하고 군주의 자리를 찬탈할 수도 있는 것(또한, 정치적으로 잘만 하면 주변 국가들에게 그 찬탈을 인정받을수도 있었던 것)이고, 이 정도의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더라도 그 자신이 정치적 실체인 용병조직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용주를 배신하고, 고용주는 그 불성실이나 계약위반, 배신행위를 제대로 응징할 힘이 없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사실, 용병들이 신용을 위해 철저하게 신의를 지킨 경우가 많은 다른 사례들에 비해,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이런 배신이나 불성실 사례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실제 역사적 사례를 보더라도, 용병대장 출신으로 영주가 된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문의 경우가 있고, 마키아벨리가 섬기던 조반니 메디치 역시 용병대장 출신으로(혈통빨도 있지만) 아들을 토스카나 대공으로 만들었으며, 당시 피렌체의 숙원이던 피사 점령 역시 용병에게 맞겨두었을 때는 지지부진하던 것이 마키아벨리의 주장에 따라 국민병을 중심으로 원정했더니 단번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사실, 피사 원정같은 경우 당시 이탈리아 정치구도의 일부이던 용병들이 피렌체가 지나치게 성장하는 것을 우려하여 정치적 고려에 따라 의도적으로 임무를 방기했다는 -위에 나온 것처럼 술먹고 놀았다는- 해석도 있다. 당연히, 피렌체 입장에서는 배신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따라 본다면, 용병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거부감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으로 신뢰할 수 없음에 따른 것이며, 이에 대하여 군사적 기량의 특출함을 들어 반박하는 것은 문제의 초점을 한참 벗어난 것이다. 또한, 용병이 정치적으로 신뢰를 지킨 사례로 베네치아 공화국급 이상의 대국의 사례를 제시하는 것 역시 마키아벨리가 활동하고, 연구한 대상이 소국들이 할거한 이탈리아 북부임을 이해하지 못하여 생긴 오류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용병들이 대체로 신의를 지킨 것은 그들이 선량하고 성실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신용을 잃으면 이후 용병으로 활동할 여지도 잃기 때문에 지킨 면이 큰데, 갑을관계로 매여 용병료 이상의 이득을 기대하기 힘든 대국과의 관계와는 달리, 당시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용병대장 자신이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는 것 역시 충분히 가능했던 것. 물론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에서 용병 이외에 충분한 군사력을 확보할 수단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마키아벨리의 주장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은 물론 가능하겠으나, 용병을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 자체에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글을 보면 대부분 유럽 위주로 나와있지만 아시아라고 용병이 없을 리 없다. 임진왜란을 기록한 류성룡의 징비록을 보면 명나라군에도 용병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흑인에서 백인까지 골고루 있었으며 이들은 돈을 받고 명나라군에서 싸웠다. 류성룡은 이런 인종을 직접 보는 게 처음이라 신기해했는데 명나라 장수는 놀리듯이 좀 뻥을 쳤고 이걸 고스란히 징비록에 기록했는데 "이들은 보통 한족과 달리 강인하고 한참 굶어도 힘이 딸리지 않으며 화낼 때 무섭게 싸운다오." 라는 투로 기록되어 있다.

그 밖에 태국도 용병으로 스페인포르투갈 백인 용병을 고용해 싸웠고 이들이 유럽으로 가서 태국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게 남아있다. 용병들은 코끼리를 타면서 총을 쏘며 버마군(현재 미얀마)과 격돌했던 일을 쓰고 있는데 이들의 기록을 봐도 당시 태국군 군대 체제가 상당히 잘 잡혀있으며 전략이나 여러 요소에서도 유럽 강대국 못지않게 잘 잡혀 있었기에 아시아 야만족 전쟁이라 단순하게 생각했다가 고생했고 되려 많이 배웠다고 적혀있다.

1.1.4. 근대

17세기가 지나고 18세기가 되어서까지도 용병은 유럽의 군대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물론 이전 세기의 발렌슈타인처럼 유력한 귀족 한둘이 용병대를 좌지우지하는 일은 없어졌고, 중앙정부가 군사 업무에 관한 권한을 확실히 장악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군대의 성질을 국민군으로 바꿔놓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비교적 민족 의식이 강했던 프랑스를 봐도, 프랑스 혁명 이전의 경우 전체 보병 연대의 무려 3분의 1이 외국인이었다. 18세기에 들어서도 민족적 정체성이 적었던 독일의 영방국가들이나 오스트리아는 프랑스보다도 더 심했다.

또한 근대 용병집단들 중 특기할 만한 곳이 있으니, 독일의 헤센이다. 헤센-케셀은 본래 독일의 소규모 영방국가 중 하나였는데, 17세기 말엽부터 18세기에 걸쳐서 용병업을 국책사업으로 삼았다. 본래 농업국가였는데, 30 년 전쟁의 여파로 국토가 초토화되어 먹고 사는것조차 힘겨워지고 활용할 자원이 인력뿐이자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 즉 본격 현실판 용병 국가. 헤센은 고작해야 도시 한두 개 정도 크기의 아주 작은 영방국가였지만 전 국민의 무려 7%정도를 계속 군인으로 유지했으며 이를 유럽 각국의 여러 영주들에게 용병으로 대여해주며 외교적 안정과 경제적 이득을 챙겼다. 7년전쟁때는 또 국토가 초토화되었는데, 이 여파로 군국주의화는 한층 더 심화되었다. 그리고 7년전쟁 이후에는 일반 병사들도 장교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실판 아우터 헤븐인 셈이나 다른 점이 있다면 헤센에선 재주는 용병이 넘고 돈은 군주가 챙겼다는 점이다.[4] 또 헤센은 신교도 국가에만 고용된다는 원칙이 있었고, 이슬람 세력을 상대할때만 예외였다. 헤센군이 유명해진 것은 당대의 강국인 영국과 자주 계약을 하면서 바로 그 미국 독립전쟁에도 참전했기 때문인데, 어새신 크리드 3에서 나오는 특수병인 헤센 병사가 바로 이들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미국측이 공식적으로 헤센군을 고용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에게 미국의 차고 넘치는 빈 땅을 준다고 꼬드겨 탈영과 해산을 종용하기도 하였다. 이후 별다른 기록은 없지만 이들의 숙련도를 생각하면 활용하기는 했을듯.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 각국에 불어닥친 민족주의의 바람과 함께 이러한 국가 용병 군대는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용병은 유럽의 군사 제도 속에서 주목할 만한 비중을 가지고 있었다. 19세기 초엽에 이르기까지도 영국군은 군 내에 독일인 병사들로 이루어진 KGL(King's German Legion)을 유지하고 있었고, 일종의 기업군이라고 할 수 있는 동인도 회사군은 아예 영국 정규군의 명령 체계를 따르지 않는 사설 군대였다.

1.1.5. 현대

민족주의의 시대 동안 사그라들었던 용병이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봇물 터지듯 잇달았던 신생 독립국 붐에 의해서다. 다수 신생국이 정비되지 못한 군대 체계를 대신하여 용병을 필요로 했고 현대 병기에 익숙한 유럽의 전직 군인들이 그 수요를 충당시켰다. 뿐만 아니라 공산 국가들도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용군, 원조군이라는 허울좋은 명목 아래 용병을 만들어 제3세계에 흩뿌렸다.

특히 50~70년대에 걸쳐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전쟁과 내전은 모조리 용병이 관련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시장은 넘쳐났으므로 현대적 용병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또한 이들은 신생국 정부 뿐만 아니라 구 종주국 정부와도 계약을 맺고 경제적 이권 보장, 거류민 보호 등에 종사하였으며 이것이 현재의 PMC(사설 군사 회사)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1.2. 장점

현대 노동경제학에서는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징병제와 모병제보다는 용병 고용이 그 사회에 최대한의 효율을 가져다준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용병의 오랜 시간에 걸친 학습(learning by doing)과 스킬 계발을 통해 군사 직종에 최적화된 노동력이라는 특징때문. 용병을 활용한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이론이 상당부분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가정이기에 용병제는 용병제 나름의 취약한 부분이 있다.

특히 근대적인 개념의 민족국가(nation state)가 등장하고 국민군이 보편화되기 이전인 전근대의 국가들은 그 정도의 군대를 항상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경우가 드물었으며, 특수한 능력과 기술을 다른 민족들에서 '구입'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누미디아족 기마술, 갈리아족과 게르만족의 완력과 체력, 로도스섬과 발레아레스섬의 투석, 제노바의 석궁 등이 대표적.

또한 체력이나 용맹함 등 용병이 갖춰야 할 덕목은 종종 특정 민족의 특기로 간주되었다. 예컨대 페르시아인들은 그리스 용병을 고용해서 잘 써먹었고(문제는 내전에서 그 짓했다는 것), 스파르타 용병대장 크산티포스는 1차 포에니 전쟁에서 레굴루스의 공격을 막아내었으며, 한니발도 갈리아 용병을 잘 활용했고, 누미디아 기병들은 포에니 전쟁 시기 카르타고와 로마 모두에서 고용되어 전쟁의 한 축으로 활약했다. 비잔틴 제국 역시 기마궁수, 중기병등을 용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를 토착군대와 조합시켜 주변국을 캐관광 태우는데 성공했다. 중국에서도 사실상 후한대에서부터 당나라 시대까지 기병의 핵심 전력을 차지한 것은 북방 민족 용병이었던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5]

봉건제 사회인 중세 유럽에서 용병들은 상비군으로 활용되기 좋은 군대였기 때문에 영주와 국왕들에게 자주 고용되었으며 카탈루냐 용병대 같은 경우 프랑스, 오스만 제국, 비잔티움 제국을 모조리 버로우 시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30년전쟁 당시의 발렌슈타인으로, 용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30년전쟁 중 독일 최고의 실력자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국민군을 창설한 것으로 유명한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군대도 상당수는 용병으로 채우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용병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변치않는 용맹성과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좋은 곳(?)과 계약을 맺을 수 있다면 이런 정설은 통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스위스 용병, 네팔 구르카 용병이다. 일반적인 '용병'에 대한 통념과는 달리 이렇게 잘 관리된 용병 집단은 자신들의 출신지에 대한 소속감, 자존심도 있지만, 무엇보다 용병으로서 비겁한 모습,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싫어했다. 이런 유명한 용병 부대는 대체적으로 척박한 환경 때문에 오래전부터 용병 '수출'이 주 산업이었던 곳이었기에, 비겁하거나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이면 그 민족 용병 전체의 위신에 흠집을 내고, 자신 뿐만이 아니라 고향 후배들의 '취직'길까지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이들은 자신의 용병 부대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싸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코 디 로마 사건 당시에 교황 클레멘스 7세가 도망칠 때까지 시간을 끌다가 189명 중 42명만이 살아남은 스위스 근위병이나(이 사건 이후 대대로 바티칸 경비병은 스위스 용병을 쓴다), 프랑스 혁명 때 엘리제궁과 바스티유 감옥을 지키고 있다가 몰살당한 786명의 스위스 창병 근위병.[6] 또한 용병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충성심을 자랑한 바랑기안 근위대 같은 사례도 있다. 때문에 이들처럼 '전통 있는 용병집단'을 고용할 경우, (급료만 제대로 지불한다면) 정규군 못지 않게 믿을만한 군대를 얻을 수도 있다.

현대에 있어서도 정규군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용병이 싸고 또 용병을 고용하면 용병의 군사활동은 정규군의 것과는 별도로 계산되기 때문에 자국 내의 반전여론을 억제하기 쉽다.

1.3. 단점

단 나라 꼴이 막장으로 치달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봉급이 나오지 않거나 전황이 밀려버리면 우루루 이탈해버리거나, 본국의 정치가 불안정한 때에는 용병대장이 쿠데타로 직접 나라를 접수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용병에 의해 나라가 멸망한 경우라면 대표적으로 서로마 제국. 게르만 용병 대장인 오도아케르에 의해 소년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폐위되면서 멸망했다. 이탈리아의 용병대장 스포르차는 귀족의 지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다만 이런 문제는 용병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어서, 맘루크, 예니체리 등 노예군을 상비군으로 유지한 이슬람 국가들의 경우에도, 결국 해당 군대가 실권을 잡고 왕조를 재창조 하기는 마찬가지였으며, 심지어 정규군과 징집병으로 구성된 군대라 하더라도 지휘관이 이를 이용해 나라를 접수하는 사례는 (바로 현대 한국사를 포함해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흔히 용병은 윤리문제에서 통제가 안 되기 때문에 약탈과 잔혹행위를 심하게 저지른다고 하지만, 사실 시민병이나 징집병 역시 같은 문제가 있다. 고대 로마의 시민병들의 잔인함(적의 시체를 잘 매장해 주는 대신 팔다리를 썰어댔다)이 용병과 용병 생활에 익숙한 그리스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오히려 용병으로 이루어진 절대왕정 시대의 군대는 약탈을 하지 않은 반면 프랑스 혁명으로 만들어진 시민병은 대규모로 약탈을 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용병이 약탈을 덜 하는 이유는 간단한데 여기서 계약이 끝나면 그 다음은 누가 그들을 고용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미래의 고용주가 될 수도 있는데 시덥잖게 약탈을 시도했다가 척을 지면 앞날이 보장되지 않게 된다. 그냥 당장 좀 벌어보고자 약탈하는 경우가 없는 건 절대 아니지만, 이는 르네상스때 이탈리아 한정이라고 볼 수도 있긴 하다.

프랑스 혁명 당시의 시민병들은 프랑스 본국의 혼란으로 원활한 보급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거의 전적으로 그들에게 '해방된' 지역의 약탈에 의존했다(나폴레옹이 이탈리아에서 병사들에게 한 연설은 이 점을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절대왕정 시대의 군대는 병사들의 약탈을 제한하지 않으면 군대를 통제할 수 없게 되거나 부대 자체가 와해될 위험이 있었지만 당시 프랑스군은 애국심에 불타고 있었으므로 그런 위험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현지조달에 의존하는 방식은 비옥한 지역에서는 보급에 얽매이지 않는 기동으로 강한 힘을 발휘했지만 가난한 지역인 스페인과 러시아에서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현재의 PMC(Private Military Company)들은 이런 용병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 직원들은 대부분 세계의 유명 특수부대 출신들인데다 대원 개개인 한명이 각자 전투의 프로다. 그러나 여전히 윤리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데, 일례로 유명한 PMC '블랙워터'의 경우 이라크에서 자신들이 신변의 위협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무차별 총격을 가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살해되게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 정도가 심해 심지어 이라크 부통령의 경호원마저 오인 사살하는 바람에 미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가기도 했다. '피에 굶주린 용병 어쩌구...'라고 묘사되면서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레벨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실제 모 TV에서 방영된 피지 출신의 전 용병의 인터뷰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참전 중에 같은 동료 용병들이 지나가는 차에 장난으로 총을 쏘는 일이 꽤 잦았다고 한다. 학살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위험한 짓을 많이 하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물론 현대 용병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칼 구스타프 폰 로젠 백작 같은 기사도에 넘치는 엄친아급 용병이 얼마든지 있다.

1.4. 현대

현대에서는 인도주의의 기본이 되는 제네바 조약조차도 용병을 전투원으로서 인정하지 않고, 잡힐 경우 전쟁 포로로 인정해 주지도 않고 있다. 관련 조항은 제네바 협약 제1 의정서에 명시되어 있으며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47조 용 병
1. 용병은 전투원 또는 전쟁포로가 될 권리를 가지지 아니한다.
2. 용병은 다음의 모든 자를 말한다.
가. 무력충돌에서 싸우기 위하여 국내 또는 국외에서 특별히 징집된 자
나. 실지로 적대행위에 직접 참가하는 자
다. 근본적으로 사적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적대행위에 참가한 자 및 충돌당사국에 의하여 또는 충돌당사국을 위하여 그 당사국 군대의 유사한 지위 및 기능의 전투원에게 약속되거나 지급된 것을 실질적으로 초과하는 물질적 보상을 약속받은 자
라. 충돌당사국의 국민이 아니거나 충돌당사국에 의하여 통치되는 영토의 주민이 아닌 자
마. 충돌당사국의 군대의 구성원이 아닌 자
바. 충돌당사국이 아닌 국가에 의하여 동국의 군대구성원으로서 공적인 임무를 띠고 파견되지 아니한 자

현재는 사적인 용병 조직은 표면상에서는 거의 사라지고,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PMC로 전환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별 차이는 없지만.

물론 이런 규정이 있다고 해서 용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용병의 대부분이 활동하는 곳은 제네바 협약 따위는 무시하는 집단들이 분쟁을 벌이는 곳이라 정규군이 잡혔다고 해도 잔혹하게 살해되는 것은 똑같기 때문. 애시당초 용병으로 지원한다는 것 자체가 정규군이 제 기능을 못하고 전시국제법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자기 목숨을 담보로 큰 돈을 노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국이 고용하는 구르카족 용병부대나 프랑스외인부대등은 일단 형식적으로는 용병과 다름없다. 다만 구성원들이 용병이고 핵심 지휘관을 자국인으로 쓰며 편제도 일단 정규군으로 운용하기에 국제법상으로는 정식 군인이나 외국인 의용병으로 취급되며 정식 민병대/의용병의 조직은 국제법상으로는 정규군과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

게임,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 등에서 자주 나타나며 보수에 따라 바로 적이 되는 모습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실제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용병대를 해산하고 새로 결성하지 않는 한, 한 쪽의 용병대가 적측에 가담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30년전쟁에서는 보수를 받지 못한 용병대가 고용주를 갈아타는 바람에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사례가 한 번 있었지만, 이조차도 같은 신교도 진영 안에서 고용주를 바꾼 것이었지 적측에 붙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스위스 용병대는 뛰어난 전투력과 함께 충성도 높기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16세기 초, 신성 로마 제국군이 로마를 공격하자 교황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다 괴멸된 스위스 근위대(Swiss Guard)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사례이다. 다만 이 또한 예외적 사례라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실제 스위스 용병대는 자기들끼리 전장에서 맟닥뜨렸을 때 '계약이 앞선 용병대가 전장에 남고 다른 쪽은 떠난다'는 내규를 가지고 있었기에 계약금만 받고 생까는 경우도 있었다. 더구나 용병대라는 단체로서 고용주를 바꾸는 것이 아닌 개인적으로 탈영해서 반대측에 가담하는 일은 드물지 않은 것이었다. 이걸 제대로 안 지켜서 같은 스위스 용병끼리 싸우는 일도 있긴 했다고 하지만….

현재의 용병 또한 기본적으로는 이와 다를 바 없다. 물론 용병이 계약 중에 배신하는 경우는 손꼽아 셀 정도로 적지만 일단 계약이 끝난 뒤의 일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것이다. 계약 만료 후 적대 세력에 고용되어 전 고용주에게 총부리를 겨눈 용병도 많으며 반대로 후환이 두려워 용병을 적에게 넘기거나 등 뒤에서 총을 쏜 고용주도 많다. 용병이 잘 관리되는가는 기본적으로 그 고용주인 정부나 전장이 어느 정도 '제대로 된' 상태인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는데, 현대에 용병을 고용하는 지역은 기본적으로 막장 그 자체니 난장판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용병들이 전투 중, 또는 계약 만료 전에는 고용주가 먼저 계약을 어기지 않는 한 적에게 붙지 않으며, 계약을 어겼다 해도 바로 배신하는 일이 적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용병은 돈보다 명예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 용병이 돈에 눈이 멀어 고용주를 배신했다고 하면, 새 고용주에게 지속적으로 고용되지 않거나 정규군에 들어가지 않는 한 두고두고 커리어에 오점을 남기기 때문이다. 돈에 눈이 먼 용병이라고 소문이 나면 새 고용주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고용했다 해도 지속적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살 것이고 다음에 만날 동료들에게도 백안시 당할 것이다. 어쩌면 배신당한 고용주가 죽거나 몰락하지 않았을 때,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새 용병을 고용하거나 현상금을 걸 수 있다. 용병은 정규군이 아니기 때문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될 때, 항복 의사를 밝히면 어지간히 잔인한 적장을 만나거나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않은 한 포로가 되어 몸값만 지불하면 풀려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때문에 용병이 돈만 밝힌다는 것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빈사의 사자상의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주요 용병수출국으로는 중세에서 근세까지는 독일, 스위스, 스코틀랜드 등이 있었으며, 현재는 네팔의 구르카 족이 유명하다.[7] 다만 세계화로 빠르게 진행된 현대에 들어서는 '주요 수출국'이라는 개념이 희박해진 경향이 있으며, 특수부대를 전역하고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특수부대 출신자들이 프랑스의 외인부대 등에 지원하거나[8], 큰 돈을 노리고 사설 용병업체를 통해 중동, 아프리카의 내전 현장으로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현대 용병의 '수출국'이라면, 고도의 특수전 훈련 경험을 얻을 수 있는 미국, 러시아, 유럽 각국 등 군사 선진국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특수부대 전역자들은 국내 경호업체나 PMC[9]에 취업하는 일은 많아도 외국의 외인부대 입대나 PMC 취업은 지극히 드물다. 일단 고강도 훈련은 받았어도 한국군의 특성상 실전 경험이 거의 없고, 무엇보다 외국어 회화가 가장 큰 문제다. 일부 네티즌들의 허풍(내가 아는 형님이 특전사 전역했는데 지금 블랙워터에서 일한다 등등 )때문에 많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어자피 한국에서 특수부대 전역하면 굳이 외국에서 총맞을 걱정할 거 감수하면서 해외 PMC에 취업할 필요도 없다. 자신의 경력이나 인맥만 가지고도 불경기에조차 국내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직장을 구하는 데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외국인이 들어가기 쉬운 프랑스 외인부대 레종 에트랑제조차 프랑스어 구사능력이 필수조건이다. 레종 에트랑제에 복무한 한국인은 찾아보면 그다지 드문 편은 아니지만, 이들 상당수는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유학생 상태에서 지원했다. 국내 출간되거나 잡지에 연재된 외인부대 복무 수기 중에는 실전까지 겪었음에도 "상관이 어눌한 프랑스어만 해결되면 진급을 추천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해결 못했다"는 기록도 있다.

수호이 전투기 시리즈로 유명한 수호이사가 아프리카에 전투기를 팔면서 전투기를 조종할 조종사와 유지 관리 보수를 해줄 정비사를 포함한 부대를 아예 세트로 판매한 일도 있다. 덕분에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전쟁 당시 러시아 출신과 우크라이나 출신 용병이 서로 수호이 전투기를 타고 격돌한 실화가 있다.(둘 다 생존) 그 밖에도《에어리어88》수준의 제트 전투기 부대는 아니어도, 프로펠러기나 헬기 조종사를 구하기 어려운 나라들이 용병을 고용하고 있기도 하다.

쿠웨이트 공군에서는 F/A-18 전투기의 조종사는 쿠웨이트 공군이 직접 맡지만 정비사는 미국 해군에서 제대한 사람들을 고용해서 운용하고 있다.

또한 돈 많은 서구국가등에 고용된 용병들은 장비나 제대로 된 보급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난한 아프리카국가등에 고용될 경우 물론 그런 건 없고 본인이 알아서 다 챙겨야 한다. 그 경우에는 급료도 매우 짜서 그 돈을 가지고는 본국으로 돌아와서 넉넉하게 생활하는 것은 힘든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단, 전투는 물론 고용주측의 군대 양성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능하거나, 다이아몬드 광산나 금광 등을 둘러싼 분쟁일 경우엔 이들보단 훨씬 많은 급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상대해야 할 적들이 많고 강하기 때문에 무사히 고향에 돌아갈 확률은 그만큼 떨어질 것이라는 게 문제.

1.6. 프로 스포츠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선수를 칭하는 말

야구, 축구, 배구, 농구 등 모든 프로 스포츠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프로와 아마추어 리그를 가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다만 '단순히 돈을 위해서만 싸워준다'는 용병의 부정적인 원래 의미와 맞물리기 때문에 현재는 '외국인 선수' 라는 말로 대체해 사용하는 쪽이 대세. 이 부분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돈을 위해 싸우는 건 그 나라 선수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진짜 소속팀의 정직원인 실업선수[10]와는 달리, 일반적인 프로선수는 소속팀의 직원이 아니라 '개인 사업자'로서 돈을 받고 그 팀을 위해 싸워주는 것이니까 모두 용병이라고 봐야 한다.

저 위에서 말했듯이 일반적인 직업군인과, '용병'으로 칭하는 집단과의 차이는 소속의 유무라 할 수 있으며 용병은 보수만 주어지면 의뢰주와의 약속대로 의뢰-주로 전쟁-를 해준다는 것을 생각하자. 프로선수는 선수 본인 또는 소속 팀의 뜻에 따라 이적을 해서 전 소속팀에 맞서기도 한다. 이런 의미라면 팀 소속의 프로선수라면 용병 아닌 선수는 없다. 적어도 외국인 선수을 용병이라고 말하려면 국내 선수는 고정된 소속 팀이 있어야 하고 이적은 거의 없어야 한다. 선수들이 출신지에 따라 그 연고지 팀으로 자동 편입되는 구조라면 외국인 선수만을 용병이라 할 수 있겠지만(이게 가능한 팀은 프로스포츠계에 없다고 봐도 된다 아틀레틱 빌바오같은 아주 특수한 팀 외에는...) 그 지역과 무관한 선수지만 전력강화를 위해 잠시 데려다 쓴 거니까.

다만 이 명칭을 두고 90년대부터 활성화 된[11] 뒤로 '용병이라니? 스포츠 선수가 전쟁터 나가 사람 죽이는 일 하러 오는 거냐? 그럼 외국인 사원도 한국회사에서 일하면 용병이냐?'며 명칭에 대하여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고 '박지성이나 한국 선수들을 '해외진출 선수' 보통 이렇게 부르지, 한국 용병이라고 부르는가?' 하는 주장도 있다. 한국인들 특유의 타민족에 대한 배타성과 용병이라는 언어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때문.

한국의 프로스포츠는 이 외국인의 의존도가 크다. 자세한 내용은 외국인 선수 항목 참조.

1.7. 각종 매체

특이한 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면 과반수 정도가 위악자라는 것 정도. 사실 용병이라는 일 자체가 돈의 목적으로 일을 하는 걸 보면 약간 의외라고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가상의 해결사와 비슷한 경우도 좀 있다. 돈에 휘둘리는 직업인데도 가끔 가다가(몇몇 사람들은 거진) 누군가가 위기의 상황이 처했을 경우 내키기라도 하는지 돕는 경우도 있을 정도.

1.7.1. 가공의 용병 부대

1.7.2. 그 외 가공의 용병 캐릭터들

1.7.3. 양판소

왠지 멋있어 보이니까 양판소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되었다.

보통 이 세계에 처음 와서 민증도 없고, 할 일도 없는 주인공이 용병이 되는 전개가 자주 있다. 그 외에도 용병이 동료가 되거나, 듣보잡 용병단을 주인공이 인수 하거나, 듣보잡 용병단을 직접 만드는[19] 전개가 자주 나온다. 이런 경우 주인공이 용병을 교육해서 강자로 키워주기도 한다. 물론 주인공의 내공 심법 전수는 필수요소. 그리고 다들 소드 마스터가 되고, 주인공은 앞서서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되고, 밸런스가 무너지고, 작품이 황폐화되고.

용병 길드에 가면 와우에서 퀘스트 뽑아주듯이 즉석에서 퀘스트를 받을 수 있다. 용병 길드는 웬만해선 어느 동네에나 있으며 대륙 전체에 걸쳐 퍼져 있는 것 같다. 별로 국가의 규제를 받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잘 굴러간다. 규제 없는 자유시장과 보이지 않는 손의 장점을 보여주는 묘사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혼돈!파괴!망가!가 들이닥치는 거야.

용병 길드는 시대 고증을 무시하고 전산화가 진행되어 있는지(마법) 용병의 활동 실적과 실력에 따라 객관적으로 등급을 설정해주며 S급, A급, B급, C급 등으로 섬세한 등급제가 이루어져 있다. 물론 오러를 쓰는 용병은 높은 등급을 준다. 등급체계 돋네.

이 시대고증을 무시한 최첨단 전산화 시스템 덕분에(마법) 한 길드에서 등록을 하고, 용병 등급을 받으면 대륙 어디를 가나 인정받을 수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왠지 영웅전설 6유격사협회와 비슷하다?

양판소는 아니지만 은색의 용병이라는 게임 초반부에서 이런 용병의 처지에 대해 불평을 토하는 대목이 있다. 후반부 출생의 비밀 떡밥과 약간 날림이 심한 스토리 라인, 작중 임무가 도를 넘지 않는 것으로 제한되어 있는 걸 제외하면 꽤 수작.

양판소의 전성기에는 아예 용병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들이 유행하던 시기도 잠깐 있었다.(당시 택배회사 직원과 용병은 양판소 주인공의 양대산맥이었다...) 덕분에 아무래도 흉폭할 수 밖에 없는 용병들이 무슨 이상화된 기사상에나 걸맞을 정의로운 인물로 그려진 것이 웃음포인트.

2. 用兵

병력을 부리는 일체의 행위를 가리키는 말. 쉽게 말해서 행보관이 병사들에게 땅을 파라고 시키는 것도 용병의 일종이다. 그러나 보통은 전시 병력의 전략, 전술적 운용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인다.[20] 각종 전략게임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어[21]. 예로부터 유능한 장수의 기본소양으로서 이걸 못 하면 수천 목숨을 오락가락하게 만든다. 한국에선 용병(傭兵)과 헷갈리는 것을 막기 위해 주로 용병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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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국가재정의 악화, 인구의 감소로 인해 종전과 같은 직업군인 체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 [2] 안나 콤네나의 알렉시아스에 따르면, 바랑기안 근위대는 제국 토착 엘리트 병사들과 비견될 정도로 높은 충성심과 용맹함을 가지고 있으며, 황제 수호가 대대로 물려받은 사명이라고 생각하여 회유하기 몹시 어려우니 일찌감찌 그런 생각은 포기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알렉시오스 1세는 옆 성벽에 있던 독일 용병을 회유하여 간단히 수도에 입성해서 니케포로스 3세를 축출하고는 제위에 오른다.
  • [3] 이러한 자유계약 용병을 지칭하는 단어가 오늘날에 와서는 계약직 노동자를 지칭하는 단어가 된 프리랜서(freelancer)이다.
  • [4] 미국 독립전쟁때는 2천만 탈러에 헤센인 7천명과 다른 지방의 독일인 1만 9천명으로 총 2만 6천명을 파병했는데, 이 중 7,700 여명이 전사하고, 일부는 미국에 정착하면서 1만 7천여명만이 돌아왔다. 그리고 2천만 탈러중 병사들에게 돌아간것은 150 만 탈러고 나머지는 헤센 정부가 먹었다.
  • [5] 당나라 멸망 이후 북방민족이 민족 의식에 눈을 뜨면서 용병 고용이 힘들어져 기병의 질이 형편없어진 것이 송나라 시대부터 중국의 군사력이 바닥으로 떨어진 이유 중 하나이다. 물론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 [6] 프랑스 혁명 당시 다른 정규군은 모두 도망갔지만 이들만은 여전히 남아서 자리를 지켰다. 프랑스의 왕이자 고용주었던 루이 16세는 "그대들은 임무를 다했으니 철수해도 좋다."라고 했으니 물러서도 상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스위스 용병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성난 수만 명의 시민들을 막다가 대부분 죽었다. 스위스의 루체른에 있는, 부르봉 가문의 문장인 백합이 그려진 방패를 껴안고 죽어가는 사자의 모습을 묘사한 '빈사의 사자상'은 이들을 표현한 것이다.
  • [7] SAS에서는 이들을 영국 시민 지원자와 동일한 정규군으로 취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네팔 현지인의 50배 이상의 월급을 노리고 건강한 마을 청년들이 매년 1000:1이 넘는 경쟁을 하는 실정에서는 '용병'으로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물론 빼어난 신체능력과 끝없는 책임감으로 돈값의 몇 배를 해내니 특별한 케이스이긴 하지만.
  • [8] 급료도 급료지만, 일정 기한을 복무하면 프랑스 시민권과 프랑스에서의 복리후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여기를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 [9] 한국에도 PMC가 있다. 다만 간접적인 군수지원일 뿐 전투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 [10] 요즘은 계약직이지만 과거엔 정규직이었다. 그래서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초창기에는 은퇴 후의 안정성을 생각해서 실력이 됨에도 프로로 가지 않고 실업선수로 계속 뛰는 선수들도 있었다. 2014년 현시대 일본의 사회인 야구 역시 이런 원리로 운영되기 때문에, 고시엔에서 아무리 날고 긴 선수라도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사회인 야구로 가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 [11] 사실 80년대 프로스포츠 시작과 같이 축구에서 외국선수 영입을 시작한 게 있지만 야구와 농구가 90년대 후반부터 외국선수들을 영입하면서 더 활성화되었다고 봐야 한다.
  • [12] 블루 선은 중장갑과 메크 위주의 병력, 이클립스는 바이오틱위주의 병력, 블러드 팩은 크로건과 볼챠를 중심으로 모였다
  • [13] 설정상으로 다차원 시공간을 누비며 역사에 개입하되 역사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용병부대다. 초창기에는 의뢰주가 플레이어라는 개념이었지만 이후 아프로디아 뉴로라는 의뢰자격인 존재도 등장해서 용병 설정을 확실하게 굳혔다. 용병대로서의 이름이 없다는 게 유일한 흠
  • [14] 이후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에서 레오나 하이데른이 추가 설정으로 합류한다. 참고로 원 게임인 IKARI에서는 랄프와 클락이 플레이어블 캐릭터이고 하이데른은 엔딩 컷에 딱 한 장면 등장.
  • [15] 타우와 독점 계약을 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전 우주에서 용병일을 하고 있다. 물론 타종족의 용병활동은 타우제국이 아주 싫어해서 걸리면 처벌 받기에 타우제국 몰래 한다.
  • [16] 네이브는 용병단장 자리를 그만두고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고, 마틴은 왕족인 데다가 동료에 가까우므로 예외.
  • [17] 버섯 왕국에는 군대 개념이 없기 때문에 마리오 형제가 유일한 용병부대이자 방위군 격인 존재이다.
  • [18] 헬싱 내의 와일드 기스의 대장
  • [19] 하룬
  • [20] 스포츠 감독의 선수 기용과 활용도 일종의 용병술이라 할 수 있다.
  • [21] 삼국지라든가 삼국무쌍이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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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3 23: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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