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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노 마사루

last modified: 2014-08-25 08:41:13 by Contributors



주니치 타격코치 시절

이름 우노 마사루 (宇野 勝)
생년월일 1958년 5월 30일
국적 일본
출신지 치바
포지션 유격수, 3루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76년 드래프트 3위
소속팀 주니치 드래곤즈(1977~1992)
치바 롯데 마린즈 1993~1994

일본의 전직 야구선수 이자 개그맨.

1958년생으로써 1976년도 드래프트 3순위로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하게 된다. 호타준족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동년배의 하라 타츠노리와 비견되는 장타자 유망주였다. 하라가 대학행을 결정하면서 고졸신인으로 프로에 먼저 발을 들이게 된다.

입단후 1977~78년까지는 간간히 대타로 출장을 했다. 그 와중에도 파워있는 타구를 선보여서 기대를 모았고, 1979년부터 주전 자리를 꿰차면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1년부터 포텐이 폭발, 1979년부터 1992년까지 14시즌 연속 두자리수 홈런을 기록했고, 25홈런 이상을 5번, 30홈런 이상을 세 번, 40홈런 시즌을 한 번 가졌다. 그리고 1984 시즌에 37홈런으로 일본프로야구 유격수 출신으로는 현재까지도 유일한 홈런왕에 오르고, 다음 해에는 41홈런을 치며 일본프로야구 유격수 단일시즌 최다홈런을 기록했다. 이후 은퇴할 때까지 유격수 통산홈런 1위(338홈런)를 기록하는 등, 주니치의 간판타자이자 거포 유격수로 오랫동안 활약했다. 말년은 고향에 자리잡은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보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온갖 몸개그변태스탯, 정교함 따윈 개나 줘버리는 야구센스로 유명했다. 특히 수비에 있어서는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던 선수였는데, 어떤때는 뒷목잡고 쓰러지게 만들기도 했다. 유형을 정리하자면, 신체조건 좋고 파워 뛰어나고 강견에 포텐자체는 엄청난데 몸아이큐가 떨어져서 정교함과는 거리가 먼 플레이와 어이상실한 개그성 플레이로 지금까지도 전설로 회자되는 장면을 많이 연출했다. 1979 ~ 1982시즌 4년 연속 실책왕을 차지하였으며, 17년간의 선수생활 통산 실책왕 7회, 통산 270실책의 기록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

보통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일본야구 선수들의 진기명기를 보면 대부분이 아크로바틱한 플레이[2]가 주를 이루는데 비해 우노 마사루는 죄다 몸개그가 주다.[3] 가장 유명한 몸개그 플레이로는 호시노 센이치 전 주니치 감독이 유도한 플라이볼을 헤딩으로 만들어 실점하게 하고 이에 분노한 호시노가 글러브를 패대기치는 장면[4]으로서, 이 장면으로 인해 일본의 진기명기 플레이 코너가 있었다란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어쨌든 이런 유형의 선수들이 가장 키우기 어려운 유형인데도 코칭스테프들이 포기 못하는 타입이기도 하다.[5] 그래도 선수생활 대부분 동안 유격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참 신기한 일.

스탯을 참고해보면 알겠지만 크고 아름다운 볼넷/삼진(BB/K) 비율(통산 605볼넷/1306삼진)도 주목할만한데 나쁜 볼도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풀스윙으로 일관한 덕분에 삼진이 볼넷보다 두 배가 넘은 시즌이 대부분이었다. 즉, 배드볼 히터, 영웅스윙어.[6] 하지만 이런 화끈한 스타일 덕분에 오히려 이런 면을 좋아하는 팬도 많긴 했다. 그거까지는 스타일일 수도 있는데... 가장 비난을 받았던 점은 뛰어난 장거리타자였음에도 생애 단 한번도 100타점을 넘기질 못했다는 것.[7] 한마디로 찬스에 약했다는 뜻이다. 거기에 정확도도 떨어지는 건 덤. 선수시절 내내 3할 타율은 딱 한 번(1989) 기록했다.[8] 주루 플레이도 마찬가지. 통산 78도루를 기록했는데 도루실패가 96개나 된다! 이로서 통산 도루성공율 45%라는, 어찌보면 실책 기록만큼이나 대단하다고 볼 수 있는 기록을 달성했다.

은퇴 후 현장을 오래 떠나 있었는데 그동안 TV나 라디오에서 해설가로 일했다. 그러다가 2004~2008년 시즌까지 친정팀 주니치 드래곤즈의 타격코치를 맡았고, 2008년 시즌 팀을 떠났다가 4년 간의 야인 생활을 거친 후 2012년 시즌부터 다시 주니치의 타격코치로 복귀해 2013년까지 근무했다. 수비코치가 아님을 다행으로 알라

노안으로도 유명한 선수다. 그나마 맨 위에 사진은 신인때라 노안이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아래 사진을 보면 저 호호 할아버지가 아직 50대 초중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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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연히 선수생활 내내 골든글러브를 탄 적이 없다(...) 비슷한 공격형 유격수로 유명했던 케야마 타카히로는 1990년대 초반 노무라 켄지로, 카와이 마사히로 등 최고 수준급 유격수 사이에서도 골든글러브를 1회 기록했다.
  • [2] 이런 플레이를 好プレー라고 칭한다.
  • [3] 주로 이런 플레이를 珍プレー라고 한다.
  • [4] 당시 요미우리가 지난 시즌부터 이어나가던 연속경기 득점 기록이 걸려있었다. 안티 거인의 화신 호시노로서는 저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 [5] 일본출신 유격수 중에서 큰 체격이라 할 수 있는 신장 181cm위너이다의 대형유격수라고 할 수 있다. 큰 키에 유격수를 보는 선수로선 드물게 파워까지 겸비했으니 코칭스탭들이 탐이 날 수밖에 없다. 오지환...
  • [6] 이 선수가 남긴 진기한 기록들 중에는 10타석 연속 고의사구23타석 연속 삼진도 있다.
  • [7] 일본에서 유격수 100타점은 토리타니 타카시가 처음 기록했다.(2009년 104타점)
  • [8] 이는 일본프로야구 공격형 유격수 계보를 잇는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케야마 타카히로에게도 마찬가지. 이케야마의 별명 '붐붐마루'를 보더라도 무지막지한 배트스피드에 의존한 배드볼 히터, 영웅 스윙어였고, 이케야마 역시 선수 내내 3할 타율은 딱 한 번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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