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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스톡 페스티벌

last modified: 2014-10-27 03:03:17 by Contributors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의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 공연모습.

Contents

1. 개요
2. 개최
3. 무료입장!
4. 여파
5. 아티스트


The Woodstock music and art fair 1969.(Woodstock)

1. 개요

1969년 8월 15일부터 18일 까지 4일간[1] "물병자리 박람회-3일간의 피스&뮤직"이란 표어로 뉴욕 주 캣스킬 산에 위치한 한 농장에서 개최된 콘서트.

1960년대쿠바 미사일 위기 등으로 냉전이 정점에 달한 시기, 전세계인들이 핵전쟁의 공포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 가운데 미국은 국내적으로는 1968년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암살 등 인종차별 문제와 실업 및 시위와 진압 등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국외적으론 베트남에 개입하면서 말그대로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데다 구정공세 당시 처참한 전쟁의 모습이 TV를 통해 본토에 중계까지 되면서 전국적으로 반전여론이 고조되던 상황이었다.

자본주의의 진영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인들은 그동안 자유주의 국가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으나 이러한 국내외 문제는 이러한 자부심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져왔고 여기에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들은 물질문명을 부정하고 자유나 평화와 같은 정신적 가치에 무게를 두는 히피라는 문화풍조에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히피 문화의 절정을 장식한 것이 바로 이 우드스톡 페스티벌인 셈. 실제로 이를 정점으로 70년대에 들어서면서 히피문화는 거의 와해되다시피 할 정도로 식어버린다.

2. 개최

위와 같은 사회적 풍조에 힘입어 음악가이자 프로모터인 아티 콘펠드, 역시 프로모터인 마이클 랭, 사업가인 존 로버츠, 조엘 로즈먼[2]이 서로 아이디어를 내어 3일간 뉴욕 주의 우드스톡에서 반전, 평화, 자유를 주제로 한 음악 축제를 열기로 기획하게 된다.

자세히는 마이클 랭[3]은 당시 뉴욕주 우드스톡에 살고 있었고[4] 뉴욕시에서 만난 아티와 함께 60년대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음악 축제를 구상하였고 여기에 파트너로 2명이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협찬을 구하는 등 계획이 진행되었다.
표는 18달러와 24달러 두가지로 판매되었으며 뉴욕의 레코드 가게들에서 직구매하거나 맨해튼의 단 한곳의 우체국에서만 우편으로 구매가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18달러 짜리 표만 해도 18만 표가 넘게 팔렸다.

원래는 기획사인 우드스톡 벤처가 임대한 월킬이란 곳의 밀스 인더스트리얼 공원[5]에서 열릴 계획이었으나 타운 오피스[6]에서 5만 명 이상은 수용할 수 없다고 못박은데다 주민들이 반대를 해서 열리지 못하고 행정위원회에서 5,000명 이상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고 결정해 버리면서 그대로 개최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또한 며칠 뒤 이동식 화장실은 마을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콘서트를 허가할 수 없다고 결정한다.대박을 놓치셨네요

이후 지인을 건너건너 베텔에 목장을 소유하고 있는 맥스 야스거와 그의 아들 샘 야스거를 소개받아 그의 목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 열리게 되었고 이때만 해도 지역 관청에선 하루 5만 명 정도만 올 것으로 예상했었다.

3. 무료입장!

그러나 이러한 갑작스런 장소변경 때문에 제대로된 보안준비는커녕 콘서트 자체 준비하기도 빠듯한 시간이기에 개인 사유지라고는 하나 울타리 빼곤 이렇다할 구조물도 없는 공연장을 격리하기란 불가능했다. 때문에 이들은 펜스를 추가로 치고 보안요원을 배치하든가 아님 그냥 스테이지 쪽만 완성하든가 정도로 시간이 촉박했는데 사람들이 생각보다 빨리 장소에 몰려들기 시작했가 콘서트가 열리기 전인 14일 밤에 이미 울타리를 죄다 끊어놓았다(...) 그리고 다음날...

추정치 40만 명의 대인원이 몰려들었다!

4. 여파

5. 아티스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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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3박 4일이라 표현은 3일간이지만 날짜 수로는 4일이다.
  • [2] 이 둘은 친구사이이자 사업 파트너였다고 한다.
  • [3] 뉴욕 브루클린 태생.
  • [4] 기획사인 우드스톡 벤처와 페스티벌의 이름이 우드스톡이 된 이유가 이것으로 보인다. 정작 사무실은 맨해튼이었던 것은 함정
  • [5] 약 37만 평가량
  • [6] 우리로 치면 읍, 면사무소 같은 곳
  • [7] 공연순
  • [8] 이상 15일 출연자. 아를로 거스리는 11시 55분 부터 다음날 오전 12시 25분 까지 30분간 공연
  • [9] 15일 오후부터 16일 새벽까지 진행된 첫 공연의 마지막 출연자.
  • [10] 16일 오후공연 첫 출연
  • [11] 우드스톡에서 이사람이 부른 노래 중 하나인 'Next stop is Vietnam'은 미드제너레이션 킬에 등장한다. 아이스맨이 X누던 그 장면.
  • [12] 정식 초청자가 아니라 출연자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 현장에서 난입 등장한 케이스 가수활동은 1964년 부터 했었다.
  • [13] 첫 공연의 아를로 거스리처럼 16일과 17일 사이에 공연
  • [14] 처음으로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참가하기로 계약한 그룹. 당시 매우 인기있던 그룹이었다고 한다.
  • [15] Cosmic이 아닌 Kozmic을 쓴다.
  • [16] 두 번째 공연 마지막 출연자. 9시 40분 종료.
  • [17] 위에 나온 컨트리 조 맥도날드가 포함된 밴드 컨트리 조 맥도날드와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반전 노래 위주의 밴드.
  • [18] 18일 넘어가는 구간 출연자
  • [19] 상단 사진에 나오는 부분. 이땐 꽤나 빠져나가서 약 20만 명 정도밖에 없었다고 한다. 헨드릭스가 미국 국가인 Star spangled banner를 비꼬아 연주한 것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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