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우라노 카즈미

last modified: 2015-04-09 07:21:16 by Contributors



우라노 카즈미 (浦野 一美)
출생일 1985년 10월 23일
출신 사이타마 현 사카도 시
신체 키 154cm 79-57-77cm
혈액형 O형
별명 신디
그룹 경력 AKB48 1기생
AKB48 팀 A (2005~2007)
AKB48 팀 B (2007~2009)
SDN48 (2009~2012)
이동복도주행대7 (2012~2014)
링크 공식 블로그 「Cinderella Magic」 구글플러스


Contents

1. 개요
2. AKB & SDN에서의 활동
3. 특징 및 대인관계
4. 선발 참여곡


1. 개요


일본의 버라이어티 탤런트이자 가수. AKB48SDN48의 전 멤버였다.

소속사는 프로덕션 오기.

AKB48때 쓰던 캐치프레이즈는 나에게 반한다면 상급자~ , 팀 B 시절에는 팀 B의 언뉘(おねえちゃま), 우라노 '신디' 카즈미입니다.

애칭인 '신디'는 신데렐라의 줄임말이다. 신데렐라를 동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1기생인 나리타 리사가 붙여줬다고 한다. 컨셉을 신데렐라처럼 공주님스러운 스타일로 잡은 건지 아니면 진짜 좋아하는 건지(...) 방송에 나올 때나 블로그에 셀카를 올릴 때는 티아라를 쓰고 나온 사진이 많다. 공주병? 어쨌든 저 신디라는 별명은 꽤 유명해져서, 일단 자기가 영어식의 미들네임처럼 즐겨쓰기도 하고, 이 때문에 이름보다는 신디로 불릴 때가 더 많다. JKT48에 이름이 실제로 신디인 멤버(2기생 신디 유비아)가 있는데 이 덕분에 친해졌다고 한다.

AKB48에서 나이가 좀 있었던 멤버. 때문에 동기생이나 팬들한테 레인보우 할멈(レインボーババア), 엄마(お母さん)이라 불리기도 했다. 아니 들도 계시는데 왜... 그 분은 쿠소바바니까

2. AKB & SDN에서의 활동


48그룹의 베이비시터.

2005년 10월 AKB48 오프닝 멤버 오디션에서 합격하여 AKB48 1기생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당한 오리멘 중 하나.

초창기에는 댄스가 정말 서툴러서, 다카하시 미나미와 함께 레슨 끝나고도 매번 남아서 춤 연습을 했다는 이른바 낙오자 조였다.

이후로도 인기가 있거니 없거니 그럭저럭 평균치의 아이돌 생활을 계속해나간다. 밑 사례를 보면 성격은 참 좋은 것 같은데, 유감스럽게도 아이돌로서 대성할만한 매력은 그다지 없었다(...)

그러던 중, 2007년 2월 3기 모집생을 뽑아 팀 B를 만들때 그룹 내부에서 문제가 생긴다. 3기의 최종 합격생이 16명에 미치지 못하는 13명만으로 구성되어, 본래 각 팀에 16명씩 소속시켜 활동하려는 일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 80년대 중반 출생의 왕언니들이 둘 셋씩 껴있어서 나이어린 멤버들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잡아나가던 1기, 2기와 달리 3기는 대부분 90년대생 초반의 꼬꼬마들만 모여있는 상황.

여기서 운영진은 팀A에 있던 = 즉 1기생이던 히라지마 나츠미, 우라노 카즈미, 와타나베 시호를 팀B로 옮겨 새 멤버들을 서포트한다는 대책을 세우고 이를 실행했다. 졸지에 서포트 역할을 맡게 된 세 명은 버려진다는 느낌에 충격을 받았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맡겨진 일에 열심히 임하는 멘탈갑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라노는 이 중에서도 앞장서서 멤버들을 따끔하게 지적하는 '메인' 역할을 맡는다. 미움받을 각오를 하고 싫은 소리를 했다고 한다. 히라지마가 반대로 멤버들과 친하게 지내며 이야기를 듣는 역할이었다. 그야말로 팀 B의 숨겨진 캡틴. [1] 그리고 이 이적 떄문에 서로 고생했다는 인식이 있어서 이들은 매우 친한 사이이다. 서로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거나 공연 때 같이 나와주거나 하는 사이.

이 노력이 운영진에게 인정받은 것인지 부려먹기 좋다는 인식을 준 것인지(...)는 몰라도, 2008년 SKE48이 생길 때 아키모토 야스시에게 'SKE48로 이적하지 않을래?' 라는 제안을 받는다. 우라노는 '설마 팀B를 이 정도까지 만들어놨는데 또 이적시키겠어' 하는 마음으로 저 제안을 농담처럼 알아듣고 '네ㅋㅋ 좋아여ㅋㅋ'라고 가볍게 대답을 한다. 그리하여 실제로 SKE48로의 이적 코앞까지 단계를 밟은 적이 있다. 저니맨 아이돌 인생을 밟을 뻔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09년 7월엔 오오시마 마이, 이마이 유우, 오리이 아유미와 함께 '크레용 프렌즈 from AKB48'의 명의로 크레용 신짱의 10번째 오프닝곡 'ユルユルで DE-O! 2007クレヨンフレンズVersion' 을 불렀다.

2009년 SDN48이 만들어지며 사토 유카리, 오오호리 메구미, 코하라 하루카와 함께 SDN48의 이적 및 AKB48과의 겸임을 발표한다. AKB 그룹 내에서 활동하다가 연령이 높아져서 48 그룹의 교복 컨셉을 소화할 수 없게 된 멤버들을 이적시키고 새로운 연구생을 등장시키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였고, 인지도가 높은 멤버들을 이적시켜옴으로써 초기 팬덤 형성을 쉽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였다. 센터에도 설 수 없었고 캡틴도 아니었지만, 여기서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해 나간다.

졸업 이후 나온 방송에서 SDN당시 제일 힘들게 느껴졌던 일을 밝힌적이 있다. 그라비아 사진을 찍을 때 손브라(전라인 상태로 양 손으로 가슴을 가리는) 포즈를 취해야 했는데, 이 때 착에로 수준의 그라비아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쇼크상태였다고 한다. 당시 같은 조로 사진을 찍게 된 코하라 하루카와 촬영 전날 만나 서로 껴안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코하라 하루카가 밝힌 에피소드로 AKB48의 도쿄 경마장 전국 악수회에서 이루어졌던 말이 달리는 코스에서 달리기 경주를 하고 그 결과를 AKB 멤버가 예상하는 이벤트에 출전 했었는데[2] , 눈물이 나올 정도로 발이 아팠다고 말하였다. 이 당시의 SDN은 AKB랑 다른 대접을 받았다고 밝혔다.[3]

그리고 결국 SDN48에서의 졸업을 발표하고 이후 그룹이 해체되며 아이돌 인생이 끝난 줄 알았는데...

2012년 요네자와 루미의 비밀 트위터 어카운트 유출 및 이로 인해 히라지마 나츠미까지 연애 의혹을 받는 사진이 유출되는 이른바 '쌀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 결과로 두 멤버는 그룹에서 강제졸업 당하게되는데, 문제는 히라지마가 당시 '이동복도주행대 7'의 리더를 맡고 있었다는 점. 졸지에 리더가 쫓겨나게 된 당황스러운 일로 발전된지라(...) 어떻게든 수습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임시로 우라노가 이동복도주행대에 가입하여 활동하게 된다. 우리 어머님 회춘하셨습니다. 뒷일은 맡겨주세요

48그룹 통틀어 극장 공연 횟수 3위의 성실성도 갖추고 있다. 총 833회 공연으로, AKB48 시절 691회 및 SDN48 시절 142회라는 레전드급 횟수. [4] 현재까지 단 두 명만이 가지고 있는 800회 이상 공연이라는 기록을 자랑한다. 대단한 것은 AKB48 시절의 691회인데, 저게 딱 2010년 4월 AKB48 졸업을 발표하기 이전까지의 횟수라는 것, 그야말로 초창기의 시어터 여신이다.

1회 총선거에서는 17위로 당당히 입성하여 言い訳Maybe 선발에 입성하는 기쁨도.

SDN48 졸업 이후에는 졸업생이 다 그렇듯이 계속 예능계 생활을 하며 간간이 버라이어티나 영화, 드라마에 나오고 있다.

오랜만에 AKB48/총선거/5회에 졸업생으로서 입후보했지만, 광탈


3. 특징 및 대인관계


위에서 설명한 대로 히라지마 나츠미와 사이가 무척 좋다. 동지애?

아버지가 파티쉐인 것에 영향을 받아 본인도 제빵이나 제과를 무척 좋아하고 기술도 뛰어나다. 반쯤 농담이지만 아이돌 인생 때려치고 케이크 가게 열어도 먹고 살겠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 SDN48 졸업할 때 앞으로 뭐 할 거냐고 질문을 받자 "제빵 기술을 더 익혀서 이쪽으로 전향하려고 해요"라는 대답을 남겼다(...). 본인이 결성한 '재미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후식을 먹는 모임'에서도 자주 빵이나 과자를 만들어 같이 먹자고 가져오는 모양.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의 네모우스TV 1차 한국 해병대 캠프에 다른 멤버들과 함께 참가해서 굴렀다. 초반에 계단을 내려가다가 그렇게 걸으면 넘어진다고 교관한테 잡혀서 크게 혼난다음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이 있었고, 이후에는 공기화(...) 구르기만 열심히 굴렀다.

2009년 2월 19일 B4th 공연 '아이돌의 여명' 중 처음으로 센터를 맡은 곡에서 노래부르며 점프하다 의상에 걸려 넘어져서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당연히 공연을 쉬게 되고, 이 일이 알려져 신문 기사에 실리면서 '아이돌이 되어 야후 뉴스에 이름이 오른다'라는 본인의 꿈을 실현하는데 성공한다. 별로 좋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재미있는 것은 이 부상 때문에 우라노의 대타로 나가게 된 것이 바로 당시 듣보잡 꼬꼬마 사시하라 리노였다. 사시하라는 이 대타공연에서 두각을 드러내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후 진짜 대아이도루가 된다

----
  • [1] 다만 당시에는 캡틴 제도가 없었다.
  • [2] 근데 그때 당시 영상 보면 알겠지만, AKB 멤버들에게 그냥 누가 이길지 예상하는 인터뷰를 받은 것 뿐이다.
  • [3] 이 이야기도 게스트 MC가 너무 차별 받는 것 같다는 말을 던지자 한말이다.
  • [4] 1위는 현역으로 계속 기록 갱신 중인 코바야시 카나, 2위는 838회의 히라지마 나츠미.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09 07:21:16
Processing time 0.1453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