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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경쟁

last modified: 2015-09-15 17:15:20 by Contributors

(ɔ) NASA/Bill Ingalls from
(ɔ) NASA from
우주 경쟁이 낳은 결과물인 R-7 로켓과 턴 V 로켓

Contents

1. 개요
2. 미국-소련의 우주 경쟁
2.1. 왜 시작되었는가?
2.2. 왜 우주 경쟁을 선택했는가?
2.3. 인공위성 발사 경쟁 : 소련의 선공과 미국의 대패
2.4. 동물 날려보내기
2.5. 유인 우주 비행- 유리 가가린과 앨런 셰퍼드
2.6. 달 탐사 경쟁: 아폴로 계획과 미국의 설욕
2.7. 우주 정거장 개발과 우주왕복선
2.8. 소련의 해체와 ISS


1. 개요

Space Race

우주 개발 및 진출을 위한 국가간 경쟁. 국가적으로 우주에 대한 진출을 목표로 과학과 기술을 개발하고 나서면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요즘에는 미국의 민간 기업들이 우주로 나서고 있어, 민간 차원에서의 우주 경쟁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달 여행, 화성 여행, 소행성 채굴 등의 계획을 발표하는 회사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보통은 냉전 시기에 이루어졌던, 미국소련 사이의 우주 개발 경쟁을 의미한다.

2. 미국-소련의 우주 경쟁

1957년 10월 4일, 스푸트니크 발사로 시작된 미국과 소련이 벌인 우주 경쟁으로 최초의 우주 경쟁이다. 과학적, 상업적 목적없이 순수하게 경쟁심에서 실시된, 어떻게 보면 국가 규모의 병림픽이지만 동시에 사상 최고의 과학기술 발전을 맛보게 된 시기.

최초의 우주 개발인 만큼 가시적 성과가 컸고, 기본적으로 우주선 발사에 중점을 두었다. 모든 것이 최초였기에 상대보다 앞서야 했던 긴장감이 팽배했던 시기.

2.1. 왜 시작되었는가?

처음에는 아무도 우주 경쟁에 목맬 생각이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이제 막 강대국의 자리에 올라섰고 과학 기술에 있어서 일류에 도달했다. 과학·기술에서 미국에 대적할만한 국가군인 서유럽은 전후 복구에 매달리는데도 바빠서 우주 개발 같은 돈지랄에 나설 형편이 못 되었다. 당연히 미국은 여유가 넘치는 상황에서 느긋하게 우주 개발에 나섰고, 군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 분산되는 등 체계적이지 않고 국가적 역량이 집중되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해안 경비대도 로켓 개발에 나섰었다.

소련도 막 전후 복구가 끝난 참이었고, 서기장인 니키타 흐루쇼프도 우주 개발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당장 전쟁의 상처는 치유했다고 하지만 미국과의 경쟁이라는 당면한 문제가 있었고, 냉전에서 우주 개발 같은 문제의 관심 순위는 낮았다. 그러나 바로 그 냉전이었기 때문에 유사시에 미국을 타격하는 문제를 고민하던 차에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대륙간 탄도탄인 R-7을 만들어내었고, 흐루쇼프는 그때부터 장거리 발사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관심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 세르게이 코롤료프는 평소 자신의 꿈이던 인공위성 발사를 진언했고, 당시에 미국이 장거리 발사체 분야에서 뒤쳐진 것을 기회로 흐루쇼프도 선전의 목적으로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를 승인한다.

스푸트니크의 성공과 이후에 자국 위성 발사 실패로 대단한 충격을 받은 미국은 NASA를 설립하고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서 베르너 폰 브라운을 중심으로 우주 개발에 나서게 된다.베르너 : 세르게이님 감사여

2.2. 왜 우주 경쟁을 선택했는가?

미국과 소련이 당대 최강국이자 최고의 과학 기술을 보유하기는 했지만 우주는 완전히 낯선 곳이었고 모든 것이 새로웠다. 당연히 지식적인 면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상당한 한계가 있었고, 들어가는 자금과 자원은 인류역사를 통틀어 최강의 힘을 지닌 양대 국가인 미국과 소련조차 등골이 휘는, 다른 나라는 엄두도 못낼 수준으로 필요했고, 그럼에도 정작 가시적인 이익은 들어가는 비용을 감안하면 없는것이나 다름없었다. 인류의 운명까지 위협해 가면서 으르렁거리던 이 시기에 이렇게 국가적 돈지랄에 나선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 국가 안보와 군비 경쟁
    소련의 로켓은 애당초 대륙간 탄도 미사일로 개발된 것이었고, R-7 로켓의 개발로 소련은 핵무기를 미국 본토에 투사할 수단을 획득하게 되었다. 소련은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여, 자신들이 인공위성 대신에 핵무기를 실어 미국으로 배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증한 셈이다. 실제로 흐루쇼프는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전에도 "우리는 수소폭탄을 실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갖고 있다."고 선전했지만, 실제로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되기 전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그것을 인식한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당연히 충격에 빠졌다. 기존에는 소련이 미국과 그 동맹국에 본토를 둘러싸인데다 미국에 비해 항공전력이 한참 뒤쳐져서 미국의 정찰기가 돌아다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소련도 직접 미국의 본토에 선빵을, 그것도 핵선빵을 때릴 부위를 골라서 날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본적 핵전력이나 동맹 전력까지 합치면 미국이 우세했지만, 소련이 원한다면 때리고 싶은 미국 도시를 맘대로 때릴 수 있다는 것은 그런 우세를 가볍게 상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기권 밖에서 떨어져내리는 미사일은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막기 어렵다. 소련의 핵미사일을 막을 수 없다면, 미국 역시 소련과 같은 수준의, 더 나아가 소련을 능가하는 핵무기 투발수단을 가져야 했다.

  • 자존심
    안보 문제보다 더 큰 동기이자, 미국에서 군이 아니라 민간 조직인 NASA가 우주 개발의 중심으로 나서게 된 원인이다. 세계를 양분하는 두 강대국은 항상 서로에 대해 경쟁심을 불태웠고, 정치, 경제, 기술, 문화, 오락, 스포츠 등의 모든 분야에서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대결했다. 인류의 운명이 걸려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무력 충돌은 못했지만, 좋은 경쟁거리가 생기기만 하면 서로 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좋은 경쟁거리가 생긴 것이다.
    미국 정부나 군부는 소련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로 바로 자국을 타격할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지만, 미국의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런 안보상 위협보다 '우리가 졌다'는 패배감이 더 피부에 와닿았다. 아직 19세기적 사고관이 남아있던 시기에, 최초의 경쟁에서 밀리고 전인미답의 영역을 개척하는데 선두를 내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국가적 사기가 떨어지기에는 충분했다. 경쟁에서 밀린 미국은 상처입은 자존심을 어떻게든 회복해야 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우주개발에서 소련보다 앞서가야만 했다.
    소련 입장에서도 우주 개발의 선두주자이자 우주 시대를 연 국가로서, 다른 곳도 아니고 냉전으로 한창 으르렁거리는 미국에게 밀릴 수는 없었다. 소련의 모체인 러시아는 유럽에서도 변방이었고 다소 후진국으로 비추어졌지만, 최초로 우주에 발을 내딛었다는 점은 그걸 한번에 만회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우주 개발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공산주의의 우월성을 알리는 프로파간다로 사용하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주개발 분야에서 후발주자에게, 그것도 미국에게 밀리기라도 한다면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국가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자체의 자부심에 상처를 큰 상처를 입을 것이었다. 따라서 소련 역시 이 자존심을 건 전장에서 물러날 생각은 없었고, 우주개발에서 미국에 뒤쳐지면 안 되었다.
    자존심 경쟁을 볼수 있는 사례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인류의 달착륙을 목표로 하는 아폴로 계획을 발표하자 NASA에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국가적 자존심을 드높이기 위해 자국민을 결집시키는데도 충분한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아폴로 계획이 진행되면서 미국에는 우주와 관련된 문화 코드나 들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예를 들면 그냥 흘러간 올드 팝으로 기록되었을지도 모를 재즈 곡 Fly me to the Moon이 초대박을 쳤다.

  • 대리전 및 선전
    냉전 끝에 핵전쟁으로 인류가 끝장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대륙간 탄도 미사일 경쟁은 미소 양국의 국민 뿐만이 아니라 그 동맹국들에게도 대단한 불안감을 주는 일이었다. 장기적이고 확고한 동맹국 뿐만 아니라 상대편의 동맹국이나 제3세계 국가들, 심지어 자국민들에게도 공포감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미사일 경쟁은 좋은 선전거리가 아니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 같은 사태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자국을 포함한 세계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일당독재 국가인 소련 입장에서도 냉전을 심화시켜 국제적 긴장을 높이는 건 좋은 일이 아니였다. 그렇기 때문에 양국은 직접적으로 맞붙어 대결하는 걸 철저하게 피했다. 그 결과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소련의 개입 위협 때문에 직접 북베트남으로 치고 올라가지 못했고, 소련도 미국의 존재 때문에 너무 나서서 행동할 수 없었다. 6.25 전쟁 때는 북한이 혼자 미쳐 날뛴 것이라 미군이 대대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세계전쟁으로 번질까봐, 소련에서 파병한 전투기 조종사들이 주고받는 러시아어를 감지하고도 무시했었다.
    반면 우주 경쟁은 대리전이나 선전전의 소재로 적절했다. 똑같은 발사체라도[1] 핵무기를 싣고 날아가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인공위성을 싣고 날아가는 발사체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전자는 엄청난 돈을 퍼부어서 만들어놓고도 당장 쓸 일도 없는데다 돈 값을 했다가는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무기. 후자는 인류의 우주 진출이라는 장밋빛 미래와 신세계의 개척이라는 개척주의, 그리고 인류 전체의 과학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을 담은 우주 발사체. 이 중에서 좋은 선전거리가 되는 쪽은 후자였다.
    실제로 소련은 유리 가가린을 여러 공산권 국가에 순방시키면서 체제선전을 했고,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라는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를 배출했으며,[2] 우주 정거장을 건설한 뒤에는 공산권 국가들에서 우주 비행사를 배출시켜주는 식으로 우주 개발을 철저하게 홍보용으로 써먹었다.[3] 미국에서는 지금도 NASA가 우주와 관련된 자료를 항상 카피레프트로 공개하고 있고,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하는 과학 실험에 일반인들을 참여시키는 이벤트를 하기도 한다. 다만 NASA와 별도로 미합중국 공군 우주사령부에서 군사적 목적의 우주개발을 병행하는 것은 안자랑...

2.3. 인공위성 발사 경쟁 : 소련의 선공과 미국의 대패

스푸트니크 쇼크라는 말로 대표되는 일련의 과정들이다.

소련이 1957년 10월 4일 스푸트니크를 발사하면서 우주 시대를 열었고, 동시에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 성공국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반면 미국이 같은 해 12월 6일에 발사한 뱅가드 로켓은 발사대도 못떠나고 폭발해버렸고, 이 장면은 TV를 통해 전세계로 생중계되었다. 스푸트니크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미국은 뱅가드로 인해 상처가 벌어질대로 벌어진다.그리고 이어지는 소련의 위로 간신히 노 1호로 발사는 성공시켰지만 스푸트니크에 비하면 미국의 인공위성 스플로러 1호는 크기도 작았고,흐루쇼프 : 작은 오렌지만하군. 무엇보다 그 때 이미 소련은 스푸트니크 1호 발사 한달여 만에 최초로 생명체인 라이카를 태운 스푸트니크 2호를 올려보냈기 때문에 체면치레라고 할 것도 못 되었다.

미국은 패배를 만회하고 반격을 하기 위해서 우주 개발 및 발사체에 관련된 업무를 모아서 NASA를 설립하고 교육정책을 진보주의적 교육에서 본질주의적 교육으로 바꾸는 등의 재정비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국가적 역량을 기울인 대결에 나선다.

2.4. 동물 날려보내기

경쟁적인 인공위성 쏘아올리기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과학위성, 통신위성, 군사위성 등등. 이후에는 우주에서 공격하기 위한 무기를 장착한 위성을 발사할 계획도 세워졌었다.

하지만 인공위성 발사는 실용적인 목적이었기에, 인류 역사상 최대의 미친짓(물론 좋은 방향으로)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웠다. 그 준비단계라고 할 수는 있어도.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두 나라가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갖춘 뒤, 그 미친짓으로 직접 이어지는 단계는 동물의 우주비행이었다.

많이들 라이카가 최초의 우주비행 동물이라고 알지만, 실제로는 1946년에 미국이 V-2 로켓을 이용해 대기권 밖으로 날려보낸 과실파리라는 초파리의 일종이 가장 먼저 우주로 날아갔었다. 하지만 이건 큰 의미가 없다.

우주로 보내진 최초의 포유류는 당연히 1957년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지구궤도를 돌았던 개인 라이카였다. 소련은 당시 우주를 비행한 개를 회수할 기술이 없었기에, 처음에는 캡슐이 대기권에 재진입하기 전에 라이카를 약물로 안락사 시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2002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라이카는 스트레스와 캡슐이 과열로 궤도에 도달한 직후에 죽었다고 한다. 유인 우주 비행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개를 쏘아올린 소련은 1960년 9월 18일에 스푸트니크 5호에서 벨카스트렐카라는 두 마리의 개 외에도 여러마리의 쥐를 궤도에 올려 모두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는데 성공했다.

한편, 미국도 아프리카에서 침팬지나 원숭이를 수입하여 훈련시킨 뒤 우주로 보냈다. 하지만 얘네들은 그렇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이 뭔지, 몇 마리가 날아갔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라이카 아는 사람도 왠지 별로 없을 것 같지만 물론 홍보하기 좋아하는 NASA는 당시의 사진도 공개하고 있으니, 어떻게 생긴 녀석이 갔는지 궁금하다면 무인 머큐리 계획 사진기록을 참고하자.

좀 지나서의 일이지만, 소련은 1968년 9월에 달로 발사되는 존드 5호에 거북을 탑승시켰고, 이것이 최초로 달 궤도를 비행한 생물이 되었다.

2.5. 유인 우주 비행- 유리 가가린과 앨런 셰퍼드

계속해서 동물을 우주로 보냈지만 양쪽 다 겨우 동물이나 올려보내고 자랑하려 하는 게 아니였다.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기계(인공위성) 다음 차례로 모두가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너무도 당연했지만 함부로 하기 힘든 모험이기도 했다. 인공위성이나 동물 발사 실패는 시행착오 정도로 넘어갈 수 있지만 사람을 보냈다가 실패하면 자존심도 자존심이고 사기도 엄청 떨어지고 국내외의 인기도 타격이 가는 모험이었다.

소련은 보스토크 계획을 진행하고, 스푸트니크 쇼크에 빠진 미국도 머큐리 계획에 올인을 했다. 이미 첫 인공위성을 빼앗긴 미국에게는 소련을 앞지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물론 소련도 우주인을 보내는데 조금도 뒤쳐질 생각이 없었다. 피 말리는 경쟁 끝에 불과 25일 차이로 유리 가가린앨런 셰퍼드보다 먼저 유인 비행을 함으로써 최초의 유인 비행 타이틀도 소련에게 뺏기고 만다. 그나마 여기서 그치면 모르겠는데, 최초의 우주 유영마저도 소련에게 빼앗기는 바람에 체면치레 할 방법조차 없었다.

2.6. 달 탐사 경쟁: 아폴로 계획과 미국의 설욕

이렇게 우주 경쟁에서 밀리던 미국은 큰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겨우 한 달여 차이로 최초의 우주인마저 놓친 미국은 미칠 노릇이었다. 우주인 빼앗긴 것만 해도 미칠 지경인데 우주 유영까지 소련이 성공시키면서 미국의 자손심이 입은 상처는 계속 커졌다. 첫 인공위성, 첫 우주인에 우주 유영까지 이미 소련이 달성한 상황에서 소련을 앞지르기 위해서 다음 목표를 찾던 미국은 소련을 이기자는 목표로 달에 사람을 보내는 아폴로 계획을 추진하게 된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1961년 5월 25일 국회에서 그 유명한 "10년 안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연설을 통해 달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최초로 언급했다.

미국은 10년 안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 무사귀환시켜야 합니다. 다른 어떠한 우주 계획도 인류에게 이보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이는 또한 장기적인 우주 탐사 계획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며, 이를 위해 온갖 어려움과 막대한 비용을 감수할 것입니다.
first, I believe that this nation should commit itself to achieving the goal, before this decade is out, of landing a man on the Moon and returning him back safely to the earth. No single space project in this period will be more impressive to mankind, or more important for the long-range exploration of space; and none will be so difficult or expensive to accomplish.

그리고 1962년 9월 12일, 라이스 경기장(Rice Stadium)에서의 연설에서 이를 보다 명확히 했다.

For the eyes of the world now look into space, to the moon and to the planets beyond, and we have vowed that we shall not see it governed by a hostile flag of conquest, but by a banner of freedom and peace. ...(중략)... We choose to go to the moon, We choose to go to the moon. We choose to go to the moon in this decade and do the other things, not because they are easy, but because they are hard,"
"세계의 눈이 지금 우주를 향해, 달과 그 너머 행성들을 향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맹세했습니다. 우주가 적의에 차 있는 정복의 깃발(=소련) 아래 지배되도록 좌시하지 않고, 자유평화의 깃발 아래 지배되도록 할 것을. ...(중략)...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 우리는 10년 내에 달에 갈 것이고, 다른 일들도 할 것입니다.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메세지를 들은 소련도 이번에도 미국을 엿먹이자라는 각오로 N-1 로켓과 소유즈 우주선을 개발하게 된다.

사실 달 탐사도 소련이 계속 앞서 나갔었다. 소련은 루나 탐사선을 통해 달의 무인 탐사를 처음으로 수행했다. 루나 2호는 달에 성공적으로 충돌하였으며, 루나 9호는 달에 최초로 착륙했으며 이는 TV로 중계되었다. 또한 달 뒷면의 사진을 찍었고, 후기의 루나 탐사선은 월석을 체취하여 지구로 성공적으로 귀환하는 등 이번에도 소련이 먼저 선점을 할 듯 했다.

그러나 N-1 로켓은 1969년 3월 7일에 폭발하고 말았다.[4] 소련은 어떻게든 계획을 지속하려고 했지만 그 해에 7월에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면서 경쟁은 끝났고, 남은 부품도 모조리 해체되고 말았다. 이후 아폴로 계획도 18호에서 20호까지의 미션이 예산 삭감으로 취소되었고, 이 이후로 현재까지 달에 간 사람은 아직 없다.

하지만 이 달 착륙 경쟁에서 얻은 것도 있었다. 소련은 이후 마르고 닮도록 쓰는 우주선계의 AK-47 소유즈를 잘 활용하게 되고, 미국도 남은 로켓을 사용하여 스카이랩과 아폴로-소유즈 도킹에 사용한다.

2.7. 우주 정거장 개발과 우주왕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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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531.09 KB)]
왼쪽부터 살류트, 스카이랩, 아폴로 - 소유즈 도킹, 미르, ISS

소련은 아폴로 계획에서 미국에게 한방 먹은 후 루나 탐사선을 비롯한 무인 달 탐사에 주력하는 한편, 살류트 계획을 통해 우주 정거장을 이용할 계획을 가진다.

세계 최초의 우주 정거장인 샬류트 1호는 1971년 발사 되었다. 이후 살류트 2호를 제외한 모든 우주 정거장에는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떠난 우주 비행사들이 체류했다. 살류트 6호와 7호에는 여분의 도킹 포트가 있어서 다른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 정거장에 거주하는 승무원 들을 방문하거나 프로그레스 우주선이 지구 에서 별도의 보급품을 가져다 줄 수 있었다. 살류트 우주 정거장의 크기는 이동주택 정도 였고 1982년 발사된 살류트 7호는 4년 동안 가동되었다.

2.8. 소련의 해체와 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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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두 기술은 뿌리가 V-2 로켓으로 완전히 동일하며, 실제로 초기형 ICBM은 인공위성 발사체로도 쓰였고, 냉전 이후 퇴역한 ICBM이 우주로켓으로 쓰인 일도 많았다. 륙간 탄도미사일#s-4 항목 참조.
  • [2] 다만 테레시코바는 그저 낙하산을 타는 취미가 있었을 뿐, 우주에는 관심이 없어서 우주비행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 [3] 이래서 베트남에서 한국보다 먼저 우주비행사를 배출했다. 최초의 흑인 우주비행사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아니라 소유즈로 우주에 나간 아프리카계 쿠바인이다.
  • [4] 새턴 5형 로켓의 1단이 대형 로켓 5개를 묶은 형태인데 반해 N-1 로켓은 소련 공업능력의 부족으로 중형 로켓 30개를 묶어서 겨우 원하는 추진력을 얻는 복잡한 구조였기 때문에 로켓 하나의 고장이 곧 폭발로 연결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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