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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게른 슈테른베르크

last modified: 2015-04-11 07:18:58 by Contributors

(ɔ) неизвестен/unknown from
사진부터 광기가 느껴진다.
생몰 1886.1.22~1921.9.15.

Contents

1. 전쟁에 미친 청년 시절
2. 운게른, 깨달음을 얻다!
3. 몽골의 잔혹한 지배자로 등극하다
4. 운게른의 극을 관람하듯이 인상 깊고 감동스러운 몰락과 적백내전 종결
5. 운게른 사건 이후 몽골
6. 창작물의 미친 남작


몽골미친 남작, 몽골 역사를 통틀어 유일한 유럽인 통치자. 그리고 20세기판 궁예. 아니, 정치상 계산하에 행동했다는 설도 있는 궁예에 반해 이 놈은 진짜로 미쳤다.

1. 전쟁에 미친 청년 시절

풀네임은 독일어로는 로만 니콜라이 막시밀리안 폰 웅게른-슈테른베르크(Roman Nickolai Maximilian von Ungern-Sternberg), 러시아어로는 로만 표도로비치 폰 운게른-시테른베르크(Роман Фёдорович фон Унгерн-Штернберг).

국내에는 이름이 잘못 알려져 있는데 이 '운게른-슈테른베르크'고 이름은 로만이다. 족보가 꽤나 복잡한데, 출생은 오스트리아의 그라츠(Graz), 조국은 러시아, 가계는 독일독일계 러시아인이다. 일단은 귀족이다. 스스로 아틸라의 후손이며 가문에서 십자군 출신 전사도 다수 배출했다고 주장했으나, 그의 조상 중에 십자군 전쟁 참전자가 있는 지의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혈통 탓인지 어려서부터 군사전쟁을 동경하는 전쟁광 기질이 강했다고 한다. 성년이 되자 장교를 희망하며 러시아군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라마지 않던 러일전쟁이 발발한다. 그러나 사관생도 신분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전투에 참여할 수가 없었고, 끝내 가 끓어오름을 견디지 못한 그는 19세가 되던 해 과감하게 사관학교를 관두고 육군 보병에 지원했다.

하지만 훈련을 마치고 채 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일본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버렸고, 그는 언젠가 다시 발발할 전쟁을 기다리면서 사관생도로 복귀, 1908년 청나라와의 국경을 지키는 코사크 기병연대 장교로 부임한다.

그러나 막상 군인이 되긴 했지만 러시아의 국경은 더없이 평온했다. 결국 로만은 주체하기 힘든 혈기를 달래기 위해 초소에서 보드카를 마시면서 리볼버를 들고 부하들과 러시안 룰렛을 하거나 숨바꼭질을 걸리면 사망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부하 장교들과 결투를 벌이다가 머리에 큰 상처를 입었는데, 이 상처는 평생 운게른의 상징처럼 자리잡았고, 이 일로 운게른의 똘끼가 심화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러시아는 즉각 선전포고를 날렸고, 로만은 기쁨에 겨워 환호했다. 부대와 함께 카파티아 산맥으로 이동한 로만은 그토록 원하던 전장의 포화를 실컷 만끽했으며, 전선에서 미친 듯이 날뛰면서 용맹을 과시한 결과 소령으로 진급했다. 이 시기가 로만의 생애를 바꾼 일대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터져 로마노프 왕조가 멸망하고 러시아 제국군이 와해되자 로만은 졸지에 직위를 잃고 실업자로 전락했지만, 타이밍 좋게 발발한 적백내전이 그를 구원했다.

제국이 붕괴하면서 러시아는 셰비키를 주축으로 하는 적군과 황제의 복권을 지지하는 백군으로 양분해 치열한 내전에 돌입했는데, 백군의 지휘관 중 한 명인 그레고리 세메노프 대령이 바로 로만의 상관이었다. 세메노프는 실직 상태의 로만을 거두어 자신 휘하의 아시아 기병대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로만의 휘하 군단은 러시아인은 물론 몽골인, 카자크, 브리아트인 그리고 혼란을 틈타 탈주한 죄수까지 다양한 출신이 참여한 혼성 부대로, 로만의 지휘 아래 극동을 종횡무진했다.

1920년 전후, 볼셰비키가 모스크바를 정리하는 사이 극동은 백군인 그레고리 세메노프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로만은 세메노프가 건설한 만주-브리아트 공화국의 내각에 들어가 소장으로 진급했다. 악명을 떨칠 기반을 구축한 순간이었다.

2. 운게른, 깨달음을 얻다!

30대 후반에 막강한 군사력을 손에 쥔 운게른은 자신의 정신 나간 취향을 일층 강화한 형태로 표출하기 시작한다. 운게른은 초소 대신 술집에 들어가 전에 그러했듯이 보드카를 만취하도록 마시고 리볼버를 꺼냈다. 하지만 결투 대신 1/2 확률로 아무나 쏴서 맞췄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운게른이 나타난 술집 일대는 공황 상태에 빠지고 사람들은 제각기 탈신도주해버렸다. 결국 운게른은 이 놀이를 얼마 못 가서 접어야만 했다.

이런 와중에 운게른은 어떤 '깨달음' 비슷한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의 큰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내가 을 쏴서 그 총알에 맞아 죽는 사람은 원래 그렇게 죽고 말았을 불행하고 가엾은 운명을 타고난 존재들이다. 어떻게 해도 그 사람들은 이것보다 나은 방식으로 죽지 못했으리라.

…그러니 그 이상 연명하면서 죄에 더 찌들기 전에, 아직 세상의 때가 덜 탄 상태에서 그 사람들을 죽이면 그 사람들은 다음 세상에서 그나마 더 나은 생활을 구가하리라!


운게른은 이 사상을 깨달은 자신을 부처에 비유하면서 이 깨달음이 도를 깨달은 것과 같은 경지에 오른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자신의 적군들도 부처의 적인 마라 같은 존재들이며, 자신의 손에 죽은 적군은 업보를 덜어내어 내세에 자신의 백군으로 환생할 것이라 자신했다(……).

망상은 점점 가속해 운게른은 마침내 자신이 칭기즈 칸이 환생한 것이라는 신념에 도달했다. 그리고 과거 자신이 지배했던 몽골, 중국, 티베트만주까지 통합한 대제국을 되찾는 것이 바로 자신의 숙업이라고 다짐하기 시작했다. 운게른은 20세기 초까지 이 지역들에 쌓인 문명의 잔재들을 허물고 그리운 초원의 유목 생활 시절로 되돌이킬 것을 선언했다! 가히 막장전설의 시작이었다.

자신의 사상을 추종하는 300명을 소집한 운게른은 마리화나와 보드카를 먹여 입단식을 거행, 불교도군 기사을 발족했다. 이미 운게른의 조직은 군대를 넘어 사이비 종교 같은 집단으로 변모했다. 이자들은 명상이라는 미명하에 일상에서 마리화나를 일삼아 피웠고 운게른을 성인으로 추대하면서 가족을 가지지 않은 채 평생 독신으로 살 것을 결의했다. 그 속에는 운게른의 충실한 심복을 자처한 대령 세파일로프도 있었고 운게른의 차를 끓였기에 "티 포트"라 불릴 남자도 있었다.

3. 몽골의 잔혹한 지배자로 등극하다

볼셰비키가 극동으로 눈을 돌리면서 운게른을 비롯한 백군들은 자신의 거점을 강화해야만 했다. 세메노프가 만주를 공략하는 사이 운게른은 세력을 독자로 구축하고자 몽골 영내로 밀고들어갔다. 1921년 겨울, 운게른의 기사단과 휘하 병력들은 몽골의 수도 우르가에 결국 입성했다.

영하 40도 혹한 속에서 격렬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몽골인들은 백인 침입자에 필사로 항쟁했지만 광신적인 운게른의 기사단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중국 군벌의 지원도 허사로 돌아가고 몽골의 수도는 백군의 수중에 결국 떨어졌다. 그리고 예정된 수순대로 살육이 시작되었다.

운게른의 병사들은 입성하기 무섭게 그들의 지휘관 못잖은 똘끼 본색을 드러냈다. 눈에 띄는 여자들마다 나이를 불문하고 강간했고 사람을 심심풀이로 죽였으며 닥치는 대로 약탈했다. 기병들은 을 몰고 거리를 누비면서 보이는 사람마다 으로 죽였고 상점의 비단들은 남김없이 긁어내어 몸에 휘감고 다녔다.

운게른의 친위 기사단은 정결할 것을 강요받았지만 이자들도 예외 없이 잔학했다. 한 장교는 칼을 빼들고 가정집에 난입해 그곳에 있던 여자에게 자살을 강요했다. 교리상 살아 있는 여자만 범하지 않으면 되므로 시간(屍姦)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절차를 거쳐 몽골의 지배자가 된 운게른은, 집권 초기 예상보다 의외로 명철한 통치력을 보였다. 이것은 그 전까지 몽골이 너무 낙후했던 까닭이 더 크지만, 운게른의 통치하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몽골도 개화기에 접어들어 러시아의 선진 도시 체계, 의료와 교육, 교통, 통신, 각종 문명 시설을 수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에 국한했고 운게른의 잔학한 취미는 그치지 않았다. 일례로 운게른은 날마다 번갈아가면서 버스 정류장에 오늘의 환생 정류장을 지정했는데 그 정류장에 내리면 이유 불문하고 총살되었다(…). 또한 운게른 휘하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면접' 차원에서 "티 포트"가 등 뒤로 다가와 목을 졸라 죽기 일쑤였다. 그 정도 방비 능력도 없으면 운게른의 부하가 될 자격이 없기 때문이었다.

운게른의 광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민을 아무나 잡아들여 감옥에 가둔 뒤 보석금을 내면 석방하는 정신 나간 제도를 마련했다. 운게른은 이 제도가 국가 수입에 보탬이 됨은 물론, 시민들의 정신세계를 더 건강히 하여 해탈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선전했다(…). 상황이 이쯤 되다보니 반발이 거세지자, 명목상이기는 해도 몽골의 군주였던 드 칸조차 운게른에게 항의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에 운게른은 "후일 내가 모든 오명을 감수하면서 극락에서 부처를 뵐 터이니 그에 앞서 당신의 지위를 빌려주시오!"라며 복드 칸을 폐위시켰다. 그리고 스스로 이 되었다. 이제 몽골의 앞날에는 더는 꿈도 희망도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외부 세계에서 운게른은 미친 남작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 독립운동가 이태준 선생[1]도 운게른의 군대에 의해 살해당했다.

4. 운게른의 극을 관람하듯이 인상 깊고 감동스러운 몰락과 적백내전 종결

시간이 지나면서, 운게른의 몰락도 시작되었다. 운게른의 상관이자 극동 백군의 대장인 대령 그리고리 세메노프를 후원했던 콜차크 정권이 볼셰비키의 공세로 드디어 붕괴됐고 세메노프의 재정을 후원했던 영국 정부도 이용 가치를 상실한 세메노프에게 돈 퍼주기를 중단했다. 그리고 그것은 세메노프 정권의 붕괴로 이어졌다.

운게른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운게른을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려는 수단으로 이용했던 일본이 자금 지원을 중단한 데다가 그동안 미치광이들의 발광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모스크바도 주변의 백군들이 정리되면서 드디어 몽골에 신경쓸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사막에서 운게른에 맞서 저항운동을 전개하던 담딘 수흐바타르(Damdin Sükhbaatar, Дамдин Сүхбаатар)가 복드 칸의 밀서를 들고 모스크바로 갔고 곧 적군을 이끌고 몽골로 돌아왔다.

운게른은 일전을 각오하고 군대를 몰고 북으로 출진했다. 전투 전 병사들에게 보드카와 마리화나가 지급되었지만, 기사단은 수흐바타르의 군대에 상대가 되지 못했고 일방으로 유린당했다. 패배한 운게른은 병력을 추려 모아 반격하려 했다. 그러나 충성심 부족한 기사들은 운게른이 자는 동안 암살해 볼셰비키들에게 바치려 했고 운게른은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상처 입고 목에 부적을 주렁주렁 매달은 몰골로 도망했다. 운게른이 도망하는 동안 수흐바타르는 우르가를 점령했다.

운게른은 마침내 체포되어 1921년 9월 15일, 우리에 갇힌 괴물같은 몰골로 시베리아의 도시 노보시비르스크에 도착했다. 운게른의 재판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운게른은 전혀 꿀리지 않는 모습으로 자신을 변호하면서 재판에 임했다. 운게른은 그동안 그의 주변을 맴돌던 신비주의스러운 몽상은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적어도 재판에 임하는 태도에서는 운게른이 광인이라는 사실을 찾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저지른 죄악이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었기에 운게른은 결국 총살되었다.[2]

총살 후 운게른의 뇌는 연구를 목적해 모스크바로 보내졌고 연구 결과 젋었을 때의 결투로 좌뇌 측두엽이 손상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젋은 시절의 따분해서 저질렀던 결투가 그의 뇌를 망가뜨렸고 그를 결국 광기로 몰고간 것이다.

그보다 먼저 니카라과에선 용병이자 노예제 옹호자이던 미합중국인 윌리엄 워커(1824~1860)가 백인 용병 겨우 1백여 명을 이끌고 수도 마나과를 점령하여 니카라과 제국 건국과 같이 황제라고 선포하던 적이 있다.[3] 워커는 그나마 슈테른베르크처럼 광기어리지는 않았으나 백인을 귀족으로 선포하고 영어를 공용어로 만들었고 반발하는 마나과 사람들을 탄압했다. 당연히 니카라과 민중은 이 몽상자를 미치광이 양키라고 분개했고 워커는 이에 니카라과를 다시 공화국으로 만들었지만 결국은 워커도 쫓겨나 온두라스로 가게 된다. 하지만 그의 만행을 알고 있던 온두라스에서도 쫓겨났고,니카라과와 온두라스 양쪽에서 범죄자가 된 그는 이번에는 영국령 온두라스(현재의 벨리즈)를 공격했지만 영국군에 패해서 영국의 포로가 되었다가 온두라스로 인도되었다.이후 워커는 분노한 온두라스 사람들에게 린치를 당한뒤 1860년 9월 12일 총살되었다. 슈테른베르크와 워커. 둘 다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을 집권하면서 벌인 짓은 각국에는 치가 떨리는 역사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놀랍게도 둘 다 비슷한 나이로 처형되는 운명까지 같았다.

5. 운게른 사건 이후 몽골

몽골은 300년 가까이 예속되어 온 중국과 완벽히 결별하고 아시아 최초이자 소련에 이은 세계사상 제2번째 공산주의 국가로 거듭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한다. 봉건사회 상징이자 몽골 질서를 이끈 티베트 불교 수장 복드 칸은 완벽히 폐위당했고 폭군 운게른 통치 하에서 피에 젖었던 수도 우르가는 1924년 몽골 인민의 위대한 투쟁 영웅 담딘 수흐바타르(Damdin Sükhbaatar, Дамдин Сүхбаатар)의 이름에서 따온 울란바토르(=울란바타르, 붉은 영웅)[4]로 개칭되었다.

지금도 몽골 인민은 운게른의 이름이 거명될 때마다 끔찍한 역사를 반추하는 듯 치를 떤다. 소련블라디미르 레닌은 운게른의 시체를 몽골로 보냈지만 운게른에게 원한이 깊었던 몽골 인민은 시체를 사막이 있는 길거리에 내던져서 짐승 먹이가 되게 했다. 다만 해부용으로 유용하게 몇몇 부위는 재활용되었다. 몽골사를 이처럼 송두리째 뒤바꾼 운게른의 압제는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6. 창작물의 미친 남작

이탈리아 만화 코르토 말테제-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1920년대 주인공 코르토와 만난다. 공작부인 마리나 세미노바와 코르토의 대화에 첫 등장. 시베리아 어딘가에서 샤먼에게 점을 보는데 샤먼이 2년 내에 죽을 것이고 많은 피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자 쏴 죽인다. 제대로 미친 놈으로서 운게른 못지 않게 또라이인 타타르의 도살자 세르게이 세메노프도 완벽히 미쳤다고 평가한다. 나중에 코르토 말테제와 라스푸틴,[5] 상하이리를 포로로 잡는데 라스푸틴이 이름만이 아니라 생김새까지 라스푸틴 같다고 기분이 나빠진 데다가 코르토의 여순드립에 처형을 유보한다. 그리고 코르토는 그의 부대 내에 보관 중이던 세메노프의 크고 아름다운 대포 열차를 박살낸다. 코르토가 한 짓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불러서 서로 랭보의 시를 읆고는 같이 샤먼에게 점을 본다. 이 샤먼도 운게른을 보고 얼마 못산다고 예언한다. 그리고 코르토에게는 허리 꺾인 검은 용을 조심하라고 말하면서 운게른에게 코르토를 죽이지 말라고 말한다. 그 다음날 운게른은 코르토 일행을 석방하고 부하 마케이비치까지 붙여준다. 대인배? 나중에 운게른은 적군과의 마지막 싸움에서 승리하고 부하의 배신으로 적에게 넘겨져 처형되고 코르토가 운게른의 무덤에 갔다고 한다(이건 어디까지나 허구이다…).

'아이언 스톰'이라는 2002년에 나온 대체 역사 FPS게임[6]에서도 운게른이 나온다. 아이언 스톰의 세계관은 1921년에 운게른이 패배하지 않았다는 데서 출발해 "패배하지 않은 운게른은 다른 백군들을 규합해 러시아를 재정복하고 중국을 병합해, 러시아·몽골 제국을 세우고 일본과 만주를 조건으로 동맹한다. 그 후 운게른은 유럽을 침공하고 1964년 유럽은 미합중국과 영국에 지원받아 USWE(United States of Western Europe)로 재편성되어 운게른의 러시아·몽골 제국과 운게른의 핵무기 개발 계획에 맞선다."(…)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이쪽 세계에서는 2차 세계대전에서의 추축국 구도가 운게른의 러시아·몽골 제국으로 대체된 정도.

Hearts of Iron 시리즈의 모드 카이저라이히:대전의 유산에서는 1936년까지 몽골의 수장. 그런데 러시아가 내전으로 아예 망하다시피 하면... 한동안 집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나 소련이 성립하면...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되찾으려는 전쟁으로 운게른은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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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소설가 이태준과는 동명이인.(한자도 같다.) 몽골 최초 근대식 병원인 동의의국을 개업했고 몽골에 만연하던 매독 치료에 힘써, 복드 칸이 자신의 어의로 삼았을 정도로 존경받던 의사였고 상해 임시정부로 볼세비키가 보낸 40만 루블을 전달한 독립운동가였다. 현재 울란바토르에는 이태준 선생을 기념하는 공원과 기념관이 있다.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16904&logId=4886194
  • [2] 운게른은 재판 결과를 두고 "너무 빨갱이스럽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 [3] 사실 그는 노예제 옹호자라는 위의 설명을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남부 출신이었으며 노예제 확산을 막으려는 북부의 견제에 반발해 미국보다 남쪽에 있는 지역들을 미국에 합병해 노예주를 늘리고 싶어한 'fillibuster' 중 하나였고(이들은 남북전쟁에도 공여한 바가 있다.) 이를 위해 니카라과에 가기 전에는 멕시코를 공격,로어 캘리포니아 공화국과 소노라 공화국을 수립하고 대통령이 된 적이 있었다. 물론 멕시코 군대에 의해 격퇴당했지만. 참고로 윌리엄 워커는 이런 fillibuster들 중에서 가장 큰 성과를 냈었다.
  • [4] 중국에 예속되었을 때는 고륜(庫倫)이라고 칭해졌다.
  • [5] 실제 라스푸틴이 아니라 코르토의 친구인 가상인.
  • [6]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간 B급 FPS라는 게 세간의 평이다. gog.com, 스팀(플랫폼)에서도 판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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