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원죄

last modified: 2015-04-04 21:17:53 by Contributors

Contents

1. 그리스도교의 교설
2. 원죄는 연좌제인가?
3. 마블 코믹스의 이벤트
3.1. 등장인물
4. 엔자이(冤罪)
5. BL 게임 원죄 eine falsche Beschuldi-gung

1. 그리스도교의 교설

한자: 原罪
라틴어: peccatum originale
영어: original sin

그리스도교 신학의 교설(敎說)중 하나. 성서에 등장하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구분하는 열매를 먹으면서 발생하였다는 죄. 원죄의 개념은 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간 아담(Adamah)과 이브(Eve)의 이야기에서 등장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모든 인류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의 자손이므로 이 죄를 물려받게 되며 이로 인하여 지옥에 갈 운명이라고 한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의 아들이자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형으로 죽었다고 믿는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한다.
죄를 지은건 아담인데 왜 우리까지 원죄를 지었냐고 말한다면 표성의 원리 때문이다.

정확히는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가 개념을 주창한 이래 서방교회에 퍼진 개념이라고 한다. 단, 아우구스티노가 주창한 개념이 그대로 적용된 것은 아니고 시대가 지나며 수정되고 다듬어져 온 것이다.

삼위일체와 함께 비신자들은 물론 신자들마저 흔히들 잘못 생각하는 개념. '원죄'란 말을 쓰기는 했지만 원죄는 '죄'가 아니다. 전통적인 표현으로는 지은 죄가 아니라 남은 죄이며 짊어진 죄

인간은 어떤 죄를 지을 때 온전하게 자기 판단만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내면적인 미망, 콤플렉스, 압박 등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도 이런저런 이유로 죄를 선택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간사한 동물이라 그러한 상태가 당연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노는 다르게 생각했다. 인간은 원래 그렇지 않았는데,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 때문에 인간 본성이 타격을 받아 결함을 지니게 됐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서방 가톨릭의 인간관은 선설도, 악설도 아닌 결함설이라고 이름 지을 만하다.[1] 이런 원죄로 말미암아 누구든 인간이라면 본성적으로 결함을 지니게 되어, 하느님과 멀어지고 죄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띄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히 정의롭고 선한 인간은 없다. 누구든지 원죄로 인한 내면적인 한계, 결함을 안고 산다는 것이 원죄의 본 의미라고 한다. 이렇게 때문에 원죄라는 말은 사실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에 상반 되는 개념이 본죄이다. 아담과 이브로 인해 생긴 '상태이상'이 원죄라면 자유의지로 지은 죄가 본죄이다. 으로 비유하자면 원죄는 '조상이 낸 빚을 물려받아 내가 채무자가 된 것'이라면 본죄는 '내가 직접 대출받아 생긴 빚'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의미를 더 확장해서 어떤 인물, 조직 등이 과거에 도저히 씻기 힘든 죄를 저질러서 매우 오랫동안 속죄하고 그 대가를 치뤄야 할 때 원죄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2. 원죄는 연좌제인가?

기독교의 기본 교리에 해당하는 원죄가 연좌제에서 나온 개념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 기독교인들의 입장
원죄는 연대 책임의 개념보다는 아담의 실수로 인해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에 죄가 들어와 후손들에게 대물림되게 되었다는데에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sin)과 사회적 범죄(crime)의 의미가 다르다. 죄의 대물림은 '선대(아담)의 범죄(신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의 책임을 후대에 묻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왜 원죄라는 개념과 심판이 적용되게 되었는지에 대한 경위를 설명한 것에 가깝다.

비신자들은 원죄가 연좌제라고 하지만 구약 성경이 연좌제를 옹호하는 것에 대한 문제는 유대교라면 몰라도 현 기독교에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구약 성경의 율법은 이미 예수의 가르침과 희생으로 굳이 집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는 합리적인 사고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율법보다는 개인의 믿음과 실천을 중요시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처럼 제사나 안식일 관련으로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고로 이러한 비판은 실제 기독교인들에게 비판할 소재와는 거리가 멀다. 성경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보아야 할 일이며 현재 기독교인들 중에는 구약 성경에 연좌제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옹호하는 경우는 매우 희박하다. 기독교인에 대한 이러한 지적은 기독교인과의 대화에서 문제가 나왔다기 보다는 깔 거리를 찾기 위해 성경을 보다 억지로 비판하기 위해서 현 기독교인들은 지키지 않는 구약 성경의 율법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만약 실제로 구약 성경에 연좌제를 옹호는 구절이 있다며 연좌제를 옹호하는 신도가 있다면 그것은 예수가 끊임없이 깐 바리새인과 다름없는 인간이니 상종하지 않으면 될 일이지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을 예시로 가져와 기독교 전반을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문제는 한국 기독교는 구약 성경을 너무 사랑한다는 점.

원죄를 연좌제라 보는 시각에도 문제가 있다. 원죄는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신을 직접적으로 배신하면서 생긴 상징적인 죄이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에서 지은 죄와는 그 급이 다르다. 일반적인 죄를 초월한 죄인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저지른 죄가 신을 직접적으로 배신한 죄이고 선악과의 영향력이 후손들에게도 모두 퍼져있으며 그것이 영원할 것이기에 원죄로써 남은 것으로 다른 죄들은 구약 성경에서는 연좌제로 다스려야 한다고 해도 현재 기독교(천주교+개신교)에서는 종교를 넘어 개인에 따라 연좌제를 옹호한다고 해도 공식적으로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연좌제에 대해선 딱히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2]

물론 그래도 아담과 이브가 지은 죄를 왜 후손이 짊어지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가는 것이 비종교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데 그 이유는 이 원죄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죄가 아니라 종교적으로 판단되는 죄이기 때문이다. 그 죄의 수위는 신이 정한 것이고 인간으로써는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신이 곧 법이었고 신이 존재한다면 지금도 그러할테니 항의한다면 신에게 항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원래 구약 성경의 신이 호전적이었다는 것은 기독교인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아담과 이브에게 원죄를 모두 짊어지게 하려면 그저 목숨을 끊는 것 밖에는 길이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류 자체의 존재가 소멸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 후에 인류를 다시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신의 능력의 한계가 어딘 지를 모르니 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넘어갈 수 밖에.

  • 비기독교인들의 입장
그러나 비신자들의 입장에서는 원죄는 빼도 박도 못할 연좌제이다. 애초에 기독교 교리에 의하면 모든 것은 야훼의 주관과 의도로 일어나는데, 아담이 범죄하여 인간 본성이 타격을 받아 결함이 생긴 '상태'가 됐다면, 아담 개인의 죄로 당시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후대의 인류 전체가 결함을 지니게끔 설계한 것이 다름 아닌 야훼였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경 곳곳에는 연좌제를 지지하는 야훼의 언행이 있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 대에까지 갚는다. 출애굽기 20:5

아비의 죄를 후손 삼대까지 갚는다고 한다.

또 다른 구절을 보자.

야훼께서,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아준 아이에게 중병을 내리셨다. 다윗은 식음을 전폐하고 베옷을 걸친 채 밤을 새우며, 어린것을 살려달라고 맨땅에 엎드려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늙은 신하들이 둘러서서 일어나라고 했으나, 그는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더불어 음식을 입에 대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기는 마침내 7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사무엘하 12:15~18)

사무엘하의 기록에 의하면 간통불륜을 저지른 다윗과 밧세바는 살고, 아무 죄 없는 아기가 부모의 죄로 죽게 된다.

모든 인간에게 왜 원죄라는 개념과 심판이 적용되게 되었는지에 대한 경위를 설명한 것이라는 기독교도들의 해명도 앞뒤를 바꾼 말장난에 불과하다. 원죄가 '범죄로 인한 죄'가 아니라, '결함이 있는 상태'로 설명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기 때문인데, 뒤집어 말하면 모든 인간에게 원죄라는 개념과 심판이 적용되었는지에 대해, 그 '경위에 대한 설명'이 곧, 아담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결함이 있는 상태를 부여하는 형태로 후대에 묻는 것이 된다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 하면, 기독교 측에서는 원죄가 죄가 아니라 일종의 결함이 있는 상태라고 하는데, 이 말은 곧 죄를 통해 책임을 지운다는 말에서, 를 빼고, 대대손손 결함이 존재하는 상태를 넣는다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의 개인적 실수로 인해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고, 당시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후대의 모든 인류가 결함이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가? 야훼는 전지전능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데, 마음만 먹으면 아담과 이브의 실수에 대한 책임은 그들에게만 묻고, 후에 태어날 후손들에게는 결함이 들어가지 않도록 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요약하자면, 기독교 측의 온갖 변명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이브의 개인적 실수로 인해 온 인류에게 결함이 생기게 되었다는 교리적 사실은 자명하다는 것이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연좌제를 가지고 성경이 집필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라고 하지만, 그 말은 곧 성경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시대적 한계를 고려해 보라는 말에 불과하고, 이는 비신자들에게 있어 성경의 권위를 다른 종교의 경전 및 신화집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또 기독교인들은 원죄라는 개념이 구약의 율법에 국한된 이야기라 주장하지만 연좌제는 신약의 예수가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벌인 구원 사업의 대전제가 된다.[3] 고로 연좌제는 구약의 율법에만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다.

또 일부 기독교인들은 실제로 구약 성경에 연좌제를 옹호는 구절이 있다며 연좌제를 옹호하는 신도는 극히 일부라 주장하지만, 이 경우는 논점의 핀트 자체를 잘못 잡은 것이다. 구약 성경에 연좌제를 옹호하는 구절이 있다는 것을 예시로 든 것은 어디까지나, 연좌제 자체를 옹호하는 야훼의 속성을 이야기 하기 위함이지, 그것을 현대에 적용하여 연좌제를 옹호하는 신도가 있다는 취지의 비판은 전혀 아니다.애초에 그런 신도가 있으면 그게 인간인가

일부 기독교인들은 원죄가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신을 직접적으로 배신하면서 생긴 상징적인 죄이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에서 지은 죄와는 그 급이 다르며, 일반적인 죄를 초월한 죄인 것이기 때문에 후손들에게 영향이 퍼진다고 해도 연좌제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이 말은 말장난에 가깝다. 원죄가 초월적이고 급이 다른 죄라고 해도, 그것이 그 죄를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치도록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에 대한 근거는 전혀 되지 못하며, 초월적이고 급이 다른 죄가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준다는 말 자체가 한 사람의 죄에 대하여 특정 범위의 사람에게 연대 책임을 지우는 제도라는 연좌제의 정의에 명백히 들어맞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비신자들이 보기엔 빼도박도 못할 연좌제 맞다.

또한 현대의 그리스도교인들이 연좌제를 옹호하지 않는다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주장은 앞서도 서술했지만 논점의 핀트 자체를 잘못 잡은 것으로, 이 논쟁 자체는 원죄라는 기독교 교리의 전근대성을 지적하기 위함이지, 그리스도교 신자들 개개인의 연좌제에 대한 견해를 논해하기 위함이 아니다.

또 모든 것은 신이 알 뿐이고 우리는 알 수 없다는 식의 논지를 전개하는 기독교인들도 있는데, 이는 결국 무지에 호소하는 논리일 뿐이다. 성경/논란 항목의 '전지전능한 야훼의 뜻이라 인간은 모른다'항목을 참조할 것.

  • 결론
기독교인이 내부적으로 원죄는 연좌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상관이 없다. 신앙은 합리적이면 논리적인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기독교에서든 아니든 어떤 교리를 어떻게 믿든, 그것을 믿겠다는 그들의 자신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며, 그 믿음에 대해서는 관여할 수 없다. 단, 비기독교인들에게 이러한 신앙적 입장을 강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기독교인이 원죄에 대해 연좌제라고 어떻게 생각하든 그 생각은 존중되어야 하며, 기독교인들은 그 생각에 대해 관여할 수 없다. 다만, 비기독교인들도 이러한 주장을 기독교인들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오해하지 말자. 종교적 신앙의 패러다임과 비신자들의 합리적 논리는 현대 사회에서 객관적으로 봐도 전혀 동등하지 않다. 지금은 청동기나 중세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보편 타당한 것이 주를 이루는 21세기 현대 사회이며 당연히 후자가 훨씬 논리적이며 합리적일 수 밖에 없다. 당장 본 리그베다 위키만 하더라도 '학문적인 성향'을 지지하기에, 종교적 입장과 과학적/합리적 입장이 상충될 때는 후자를 위주로 기술하도록 되어 있다. 당장 창조설 항목과 진화론 항목을 비교해보자.

즉, 종교인들의 신앙을 존중한다는 말은, 종교인들 자신들이 무엇을 믿든, 그 대상을 믿겠다는 종교인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지, 그 신앙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이어서 존중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종교적 신념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며, 본 위키를 포함해 교회 밖에서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 마디로 비신자들과 신자들은 서로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넘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3. 마블 코믹스의 이벤트

마블 코믹스 이벤트
인피니티 인휴매니티 원죄 어벤저스 vs. 엑스맨: 액시스
스파이더버스
시크릿 워즈

2014년에 연재된 이벤트로, 제이슨 에런이 쓰고 마이크 데오다투가 본편 작화를 담당했다.

첫머리에 왓처가 살해당하고 안구가 적출되었다는 충격적인 사건이 제시되고, 왓처의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여러 히어로들이 엮인다는 내용.

본편 2화에서 오브의 까발리기로 히어로들이 각자 감춰진 비밀들을 알게 됨 → 개별 타이인 이슈에서 푼다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게 개인 시리즈로 보면 좀 뜬금없는데다 타임라인도 뒤죽박죽이라 독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데 일조했다. 무슨 대단한 비밀이 밝혀진 것처럼 다들 난리치는데, 정작 대부분은 그냥 예전 스토리 재탕격이거나, 딱히 놀랍지 않은(...) 진실들뿐이다. 이쯤 해서 본편 스토리도 와처 살해범의 정체를 두고 질질 끌어서 얘기도 막장스러워졌고, 그다지 좋은 평가는 못 받았다. 차후 스토리를 위한 떡밥 뿌리기용 이벤트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다음은 원죄 이벤트의 영향으로 밝혀진 비밀들.

  • 캡틴 아메리카: 일루미나티가 자신에게 인커전의 진실을 숨긴 것을 알게 됨. 이후 어벤저스 타이인에서 아이언맨을 추궁하다 미래로 한바탕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일루미나티를 적으로 규정한다.
  • 데어데블: 돌아가신 아버지 잭 머독이 어머니를 학대하는 듯한 광경을 떠올림. 이후 어머니를 찾아감.
  • 스파이더맨: 거미에 물려 초능력이 생긴 날, 자신과 똑같이 거미에 물린 소녀가 있었음을 알게 됨. 이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타이인에서 신디 문이라는 이름의 그 소녀를 찾아가고, 스파이더버스 이벤트의 시발점이 됨.
  • 토르: 자신에게 숨겨진 여동생이 있었음을 알게 됨. 이후 로키를 데리고 여동생을 찾아 '열 번째 세계'로 향함.
  • 헐크: 헐크가 탄생한 감마선 폭발 사고에 토니 스타크가 관련되었음을 알게 됨. 이후 분노하며 토니를 찾아감.
  • 노바(샘 알렉산더): 아버지 제시 알렉산더가 노바 군단의 배신자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됨.
  • 루크 케이지: 자신의 아버지가 70년대에 마이티 어벤저스를 이끌었음을 알게 됨.
  • : 과거 휴먼 토치의 실수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기회를 잃었던 사실을 알게 됨. 휴먼 토치를 찾아가 화를 낸다.

4. 엔자이(冤罪)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가리키는 일본의 용어. 자세한 사항은 엔자이 항목 참조.

----
  • [1] 원죄론에서 아담과 하와는 이러한 선천적인 약점(?)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 의지로 죄를 짓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원죄를 지닌 상태의 인간 후손이 범하는 죄와 질적으로 다르다. 커버해 줄 구석(?)이 없다는 것.
  • [2] 예수는 선을 행하기 위해서 율법에 얽메이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선을 행한다는 의지로 율법을 어기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것을 직접 보여준 것이다.
  • [3] 인류의 원죄가 없었다면 예수가 육화하여 십자가에서 죽을 필요가 없었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04 21:17:53
Processing time 0.1208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