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월북

last modified: 2015-04-15 20:55:48 by Contributors

본 항목은 정식 명칭인 잠입탈출죄 또는 탈남(...) 으로도 들어올 수 있다.

경고 :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불법입니다.

이 문서는 대한민국 내에서 현행법상 불법으로 지정되어 금고 이상의 형에 처해지는 범죄를 다룹니다. 대다수의 이러한 범죄 행위는 자기 자신, 타인의 신체적, 정신적, 금전적 피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불법인 사항은 해외에서도 불법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특정 행위가 해당 국가에서 불법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적자는 속인주의 원칙에 의하여 귀국시 대한민국의 형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국적자가 대한민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해외로 도피했다면, 범죄인 인도조약에 의하여 해외에서 체포될 수 있으며, 대한민국으로 송환되어 대한민국에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문서 내용을 따라할 시에는 모방범죄가 되어 해당 법률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리그베다 위키에서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작성자 또는 열람자 개인의 모든 법적 문제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본 문서에서 서술하는 내용은 절대로 따라해서는 안 됩니다.

본 문서에서 해당 범죄 행위에 대한 내용을 편집할 때에는 범죄에 대한 반면교사가 될 수 있는 해설의 의미로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범죄에 대한 묘사나 자세한 범죄 방법 등의 서술은 모방범죄의 우려가 있으므로 절대적으로 금지됩니다. 이러한 행위는 형법 제31조 및 제32조에 의거, 대한민국 경찰 또는 검찰에 의하여 범죄 교사 및 방조로 판단되어 처벌 받을 수 있으므로 절대로 기재하여서는 아니됩니다. 리그베다 위키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작성자 개인의 모든 법적 문제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간혹 금고 이상의 범죄 중 본 틀이 없기도 하나, 이는 해당 행위를 개별적으로 규정한 조항이 없다는 의미일 뿐, 해당 행위가 범죄가 아님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 문서 상단의 '상위 문서'나 본문 내의 '처벌' 등의 문단을 참조하여 주십시오.


국가보안법 제6조(잠입, 탈출) ①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1]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개정 1991·5·31> ②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지령을 받거나 받기 위하여 또는 그 목적수행을 협의하거나 협의하기 위하여 잠입하거나 탈출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2]
③삭제<1991·5·31> ④제1항 및 제2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개정 1991·5·31> ⑤제1항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⑥제2항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개정 1991·5·31>


본 문서는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행위에 대한 항목이므로 편집시 신중히 편집하시기 바라며 이를 선동하거나 조장하는 문구를 작성시 국가정보원, 검찰경찰의 수사를 받아 법원에서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에 대해 리그베다 위키는 일절 책임지지 않습니다.


Contents

1. 개요
2. 설명
3. 하는 일
4. 기타
5. 월북한 인물(미친놈)들
5.1. 미군 또는 주한미군 월북자
5.2. 미국인 월북자
5.3. 일본인 월북자
6. 월북의 기준에 대한 논쟁
7. 해외 사례
7.1. 예멘
7.2. 독일
8. 관련 항목

1. 개요


왜 하는지 아무도 이해 못하는 범죄 중 가장 정신나간 범죄.
가장 멍청한 자살법

越北. 대한민국 국민이 '자유 의지'로써 북한으로 '영주를 위해'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 참고로 월북과는 구별되는 개념들로, 외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은 입북(入北), 자유 의지가 아닌 것(납치)은 납북(拉北), 일시적으로 갔다오는 것(방문)은 방북(訪北)이라고 한다.

2. 설명

한국전쟁 이전과 전쟁기간 중 월북자들은 그래도 참작이 가능하다 할 수 있다. 악질 친일 경찰이 서슴없이 복직하는 세태에 실망하고 월북한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이 시기에 월북한 사람들로는 홍명희, 김원봉 등이 있다.

월북자들 가운데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뿐 아니라 민족주의자들도 월북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주로 48년 남북협상 때지만... 대표적인 인물들이 이극로, 홍명희다. 이들은 본래 민족주의자들이었으나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 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자' 라고 낙인이 찍혀 오랫동안 흑역사. 하지만 북한도 친일 청산 못한 것은 매한가지(...) 남한은 최소한 반민특위가 와해되어 친일 청산이 좌절되었지만 북한은그런 거 없이 그냥 재등용시켰다. 그 명분이라는 게 식민지배가 36년 이상 진행되었고 친일파랍시고 다 잡아 가두면 일할 사람들이 없어서(...) 북한의 친일파 항목도 참조해볼 것.

월북한 사람들 중 정치인은 상당수가 뒤끝이 좋지 못했다. 박헌영의 경우만 봐도 알수 있듯이 김일성은 월북한 남로당 출신들을 정적으로 취급했다. 한국근현대사 공부를 열심히 해보면 알겠지만 북한 정치판은 창립 이후에 숙청과 숙청을 거듭하여 김일성파(갑산파 중 강경파)밖에 남지 않았다. 다만 이러한 경우와 별 상관이 없는 학술인, 예술인은 양극으로 갈리는데 본업에 종사하면서 괜찮은 삶을 살거나 노동 지역으로 배정받아 활동이 완전히 끊긴 채 심한 경우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반면에 일부 월북한 민족주의계열 인사들 가운데서 극진한 대접을 받은 이도 있다. 대표적으로 홍명희가 있다. 해방 직후 좌익으로 널리 알려진 문인들이 월북 이후 대부분 숙청 당한 데 비해 홍명희는 종신토록 고위직을 지내며 북한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명망을 누렸다.

간혹 몇몇 납북자들이 월북자로 오인받아서 문제가 되었다. 특히 북한 쪽에서 강제로 납치해 놓고 "공화국을 동경하여 자진 월북하였다" 라고 대외 선전을 해댄 케이스가 한둘이 아니다. 실제로 60~80년대에는 몇몇 납북 당한 사람들이 남한으로 돌아온 뒤 간첩으로 몰리거나 심지어 공안 사건으로 조작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문단계의 정지용 시인은 한국 전쟁 중에 실종되어 월북인지 납북인지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월북 작가로 낙인 찍혀 1988년 납·월북 문인 해금 조치[3] 이전까지는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는 불온 시인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독립당에서 활동했던 엄항섭, 조소앙, 김규식 선생 등도 납북(납치되어 북한에 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제1공화국 시대 때 그를 "자발적으로 월북했으며 북한 간첩으로 대대적인 활동했음" 이런 식으로 알려져버렸다.[4] 그래서 대한민국에 거주하던 조소앙 선생의 가족들은 연좌제의 굴레 속에 엄청난 고생과 시련을 겪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안재홍도 역시 자발적 월북자로 몰려 가족들도 연좌제 고통에 시달렸다. 그의 아들인 안정용 씨는 대한민국에서 혁신계열 정치 활동을 했으나 납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어 생활하는데 있어서 매우 곤궁했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이승만의 강력한 정적들이었기 때문에, 이승만 정권의 정통성 홍보와 위신을 위해서 이들을 깎아내려야 했기에 자진 월북으로 낙인찍은 것이다.[5]
반대로 자진 월북하려던 자를 납북으로 둔갑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의 윤태식이 그 예.

남한에서 사고나 범죄를 일으킨 범죄자나 군인들도 월북을 했는데 군인들의 월북 중 대표적인 사건으론 1977년 10월 육군 제20사단 대대장이였던 유운학 중령이 자신의 무전병까지 권총으로 위협하면서 강제로 데리고 월북한 사건과 1981년 8월 육군 제1사단 GP담당 중대장이였던 석정현 대위(단기사관 12기)의 월북, 1984년 6월에 육군 22사단 소속이였던 조준희 일병이 소총과 수류탄으로 같이 군 복무하던 동료 병사 15명을 죽이고 월북해버린 사건 등이 있다. 또 남한에서 사고 치고 월북해버리거나 월북을 시도했던 민간인들도 여러 차례 있었는데 이런 경우 북한에서도 잠깐 이용해먹기도 했지만 도로 돌려보내는 경우도 있다.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의 범인 윤태식도 월북하려다가 북한 대사관에서 내쫓은 바 있다. 1996년 어느 부사관이 월북했는데 당시 남한 쪽에서 강력범죄를 일으켜서 군사재판을 받게 될 인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에서 돌려보내려고 하자 결국 거기서 자살을 했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에는 사업 실패로 빚 독촉에 시달리던 자동차 운수회사 사장이 직원과 함께 제3국을 통해 월북해버린 사건도 있었다.하지만 남한에 비해 빈곤한 북한 생활에 적응이 안 되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관련뉴스

심지어 어떤 용자카드 빚 때문에 월북을 했는데 모 카드 회사에서 대금 추심 때문에 통일원에 방북신청을 내기도 했다! 당연히 방북을 불허했다.[6] 결국 저 월북한 용자는 북한에서 추방당했다. 추방당한 뒤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은 듯.

2010년에는 현직 의사를 포함한 4명이 스웨덴을 경유하여 월북을 기도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웃긴 것은 그들이 망명신청서에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문구를 적었지만 북한 쪽 인사로부터 "사회적 기여도가 낮아서 곤란하다" 는 말을 들어야 했다고 한다. 남한에서 착각하는 것과는 달리 북한에서의 의사의 지위는 굉장히 낮다.(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받아서?)

2014년 9월 5일에도 경기도 안성에 사는 한 50대 남성이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제3국을 통해 월북했지만, 북한이 송환한다고 알려왔다. 관련기사 그는 자본주의가 싫다는 이유로 월북했는데 결국 구속됐다.

6.25 전쟁 종결 전까지야 이래저래 사정이 복잡하니 차치하고 6.25 전쟁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는 남아있는 가족과 친척을 궁지로 몰아넣는 일이 되었다. 그나마 '남한의 체제가 싫었다', '북한이 더 잘 산다' 같은 핑계마저 늦게 잡아도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완전히 기반을 잃었다. 역사를 거꾸로 걷는 주체사상과 더불어 와장창 무너지는 사회주의 경제 때문에...

지금은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는 일이 되고 말았다. 선전해줄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고생해서 북한으로 넘어가도 적대계층 취급을 받으니 아무런 의미도 없다. 굳이 지옥이 뭔지 남은 생을 살면서 절실하게 체험하고 싶다면 또 모를까. 2015년 시점의 상황으로 봐선 거의 자살과 비슷한 선택이다. 그것도 그냥 죽는 것도 아니고 재수 없으면 고통스럽게 아주 천천히 죽게 되니 말이다. 당연하지만 탈북보다는 월북이 훨씬 쉽다.

2013년 9월 16일 낮, 일본에서 강제추방된 뒤 월북하려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에서 거주했던 40대 남성이 임진강에서 부표를 매달고 월북하려다 대한민국 육군 초병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발생했다. 저 추정은 시신에서 발견된 여권을 근거로 하고 있으므로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9월 16일 현재 이 사람이 무슨 이유로 대낮에 대놓고 월북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술이라도 취했나?

민간인을 사살했다는 내용 때문인지 초병의 대응에 대해 인터넷에선 몇몇 잡음이 일어나고 있는데 보도자료가 정확하다면 초병이 저 사람을 쏴 죽인 건 절차상 매우 정상적이고 당연한 절차에 따른 행동이다.

애초에 월북 문제를 떠나서 백주대낮이고 뭐고 불상자가 군사지역에 무단 침투해서 초병의 반복되는 지시와 대인수하에 불응[7]했는데 이미 강을 건너는지라 생포하기도 힘든 상태이니 소대 입장에선 그냥 쏠 수밖에 없었다. 안 되겠소, 쏩시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대신 이 강을 건너게 될 것이오

몇몇 사람들은 박왕자 씨 피살사건과 비교하며 초병을 비난하고 있는데 해당 사건은 의도적으로 침입한 것이 아닌 관광객이 '경고 없이' 북한군에게 사살당한 것이고 본 사건은 의도적으로 무단 침입한 자가 '수 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살당한 것이므로 이 둘은 절대 두 사건을 같은 케이스로 비교할 수 없는 사건이다. 군 초병 수칙 자체가 3번의 경고/수하에도 상대가 불응한다면 경고사격→여기에도 불응하면 발포, 사살이다.[8] 괜히 사고위험행위 틀을 붙여놓은 것이 아니다. 진짜로 시도할 경우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3. 하는 일

흔히 넘어가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귀빈 대접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꼭 모두가 그런 것만은 절대로 아니다.

일단 당장 선전용으로는 이만큼 기막한 존재들도 없다. '남한 땅 살기 싫어서 건너왔다' 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민들에게 대고 '보아라, 우리가 더 우월하니까 못 사는 저들이 우리에게 온 것이 아니겠느냐!' 며 잠깐동안 선전용으로 쓸 순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일부 이용가치가 있고 정말 잡아낼 거리가 전혀 없는 자들[9]을 제외하면 남는 건 비참한 삶 뿐이다. 남한의 최신 사정에 능통하다는 이점 때문에 대남공작 관련 훈련 기관의 교관 내지는 대남방송 관련 업무에 배치하는 경우가 일부. 대외 선전 값어치가 높은 경우는 방송에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경우도 일부. 이후에도 자유의 삶은 커녕 북한이라는 거대한 감옥에 갇힌 죄수 신세가 된다. 조선일보 NK 리포트에 따르면 위에 있는 고위 월북자를 제외한 그냥 월북자들 중에 적어도 2~3명 정도는 선전 잡지에 고정 출연한다고 한다.

jirashi.jpg
[JPG image (270.59 KB)]

이 와중에 두 번째 사진의 깨알같은 '김세연()' 에 신경 쓰면 지는 거다 죄다 남자만 나왔다. 안습
저런 찌라시 따위에 절대로 속아서 넘어가지 말자. 사실은 월북하려던 자들을 되돌려보내기 위한 삐라라 카더라

1980년대까지는 이런 것에 출연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딴 거 없다. 그러고 저 삐라에 출연한 윤치기 외 10여 명의 생사여부는 본인들밖에 모른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70년대까지는 남한 내 사정에 정통하거나 친척과 같은 연고자가 있는 걸 이용해서 남파 간첩으로 훈련시켜 역침투를 하는 경우도 의외로 많았다. 야동 이순재가 주연한 고영남 감독의 영화 '탈출' 이 바로 이런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10] 남과 북 모두 연좌제라는 걸 했던 이유가 사실 이런 커넥션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방침이었다.

그리고 이미 체제 대결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끝난지도 20년도 더 지났기 때문에 사실상 선전가치라는 것 자체가 이미 없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북한 입장에서도 남한에 공갈을 부려서 뭘 뜯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문제를 일으킬 이유도 없고. 위에서 월북시도를 하다가 거절당한 이야기처럼 본인이 북한의 기준[11]으로 남한에서 거물이라든가 유니크한 특기가 있는 게 아닌 이상 북한에서도 월북 자체를 거부하고 대부분 그냥 돌려보낸다. 그리고 국정원에서 인수해 간다.

최근 북한 당국의 월북자들에 대한 대처는 주로 일단 잡아서 조사를 해보고 쓸 만한 정보력이 있거나 선전가치가 있다 싶은 인물만 받아주고 아니면 그냥 다 돌려보내는 식이다. 심지어 2013년 10월에는 월북자 6명과 시신 1구를 돌려보냈다. 괜히 북에서 대접받을까 해서 북에 간 사람들은 2~3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하다가[12] 남쪽으로 송환되었고, 여기에 한 명은 북한 땅에서 같이 월북한 아내를 살해한 것까지 확인되어 모두 처벌받았다.[13] 이것은 남한 당국에 '우리도 월북자 돌려보낼 테니까 우리 탈북자 문제로 괴롭히지 좀 마라' 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4. 기타

현재 대한민국 육군 최고 전력의 부대 중 하나인 20사단은 사실 월북 사건의 피해자(?)이다. 1977년 유운학 대대장, 즉 중령이 월북해버린 것. 당연히 군에서는 난리가 났고 결국 그때까지 최전방 DMZ를 맡고 있던 20사단은 당시 경기도 양평에 주둔하고 있던 5사단과 강제로 임무가 교대되어 후방으로 쫓겨나버린 이후 이 두 부대의 위치는 2014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운학이 월북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으나, 당시 군 생활을 함께 했던 사람의 증언은 여길 참조.
그 외에도 이 사건 직전 빚에 쫓기던 어떤 용자 군무원이 L-19 정찰기를 타고 월북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이 비행기가 이 대대 위로 넘어가는 바람에 받게 된 심한 문책 아니 보병 대대가 그걸 어떻게 막으라고 신동아 참조. 진실은 저 너머에.

후방으로 떨어진 덕분에 지금은 육군 최강의 부대가 되었으니 인생사 뿐 아니라 부대사(部隊史) 또한 새옹지마일지도 모를 일.로젠리터 정확히는 후방으로 배치되어 12.12 쿠데타에 동원되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압군으로 참여한 보상에 가깝다. 최전방 부대를 빼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까운 일이기에 보통 쿠데타는 수도에서 가까운 비 전방부대를 동원한다.

2009년에는 양돈장에서 일하던 30대 남성 강동림이 철책을 자르고 월북하는 바람에 22사단이 한동안 고생했다고 한다.

2014년 9월 16일 11시 55분 경, 아랍계 미국인 남성 한 명이 한강을 헤엄쳐서 월북하려다가 해병대에 발견되어 체포되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 이 남성은 조류를 따라 북쪽으로 헤엄치다가 지쳐서 강기슭 지역에 엎드려 있는 것이 해병대 매복조에 발견되어 체포되었다. 체포된 후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 북한으로 가려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2014년 11월말 월북했던 50대가 2014년 12월 26일 판문점으로 귀환했다.
2015년 1월 두번이나 월북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50대 남성이 구속됐다.

여담으로 한국의 여러 민족종교중 해방 이후에도 그나마 상당한 교세를 유지했고, 박정희 정권 시절 정부의 지원도 받았던 천도교가 지금처럼 크게 몰락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월북이다. 천도교의 지도자인 교령이, 그것도 두 명이나 월북하면서 대차게 타격을 입었다.

5. 월북한 인물(미친놈)들

  • 표무원, 강태무 소령 - 한국 전쟁 발발 이전인 1949년 국방경비대 소속 8연대[14]의 이 두 대대장[15]은 길어야 하루 차이로 훈련 및 대북 시위 명분으로 자기 대대원들을 이끌고 나란히 월북[16][17]했고, 이로 인해 군은 물론 나라 전체도 충격에 빠졌다. 그들이 왜 이러한 일을 벌였는지는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당시 여순 반란사건 직후 진행된 군 내부의 숙군 작업을 고려하면 아마 남로당 소속인 자신들도 이 대상에 오르리라 불안에 떨어 이 같은 일을 벌인 듯 싶다.

    월북 이후 이 두 대대장은 부하들을 제물로 삼아 북한에서 성대한 환영을 받았고, 그 후 벌어진 한국전쟁에서도 북한군 지휘관으로 참전, 둘 다 전후까지 살아남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를 역임하다 표무원은 2006년, 강태무는 2007년에 사망했다.

  • 한국 전쟁 와중에도 전의를 잃거나 포위당해 월북해 삐라에 실린 이들도 있었다. 여기에서도 위 8연대에 이어 3연대 대대장도 나오는데,[18] 해당 연대들뿐만 아니라 이 두 연대를 예하에 두고 있는 사단 입장에서도 당연히 흑역사다.
  • 김석형
  • 김순남
  • 하기: 부림 사건으로 유명한 소설가로 1996년 7월에 중국에 갔다가 술에 취한 나머지 두만강에 뜬 달을 보고 혹해서 강으로 뛰어들어 헤엄쳐서 월북했다.(...) 술에 취한 김하기는 북한 주민들에게 남에서 온 소설가라고 떠들다가 체포되었는데 김하기를 체포한 북한 군인들의 첫마디는 "동무는 남조선의 수영선수인가?"였다고(...). 북한은 김하기의 신원을 확인한 다음에 북한에서 새장가도 들고 글도 쓰지 않겠는가 하고 제의했지만 김하기는 거부했고 1996년 8월 16일에 돌아올 수 있었다. 북한에서는 음주침략이라고 배를 잡고 웃어댔다고 한다.
  • 문예봉
  • 박헌영
  • 백남운
  • 백흥룡[19]
  • 성혜림, 성혜랑 : 성혜림이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남한에서 살고 있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온 가족이 월북했다. 이 중 성혜림은 이미 북한에서 결혼했으나 세자 김정일과 불륜을 통해 교제하는 사이가 되었고 결국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을 낳았다.
  • 신불출
  • 심영
  • 안학수[20]
  • 윤기권[21]
  • 윤노빈[22]
  • 유운학[23]
  • 조준희 : 22사단 출신의 월북 군인. 그 중에서도 특히 악질인데 GP에서 내무반에 지뢰를 던져 중상을 입고 기어나오는 전우들까지 총으로 하나하나 다 살해한 뒤 소초에서 나오던 군인들과 근무 서던 군인들을 사살하고 월북. 이를 추적하던 다른 군인 2명까지 지뢰를 밟아 사망했다.
  • 최승희 : 일제강점기의 유명한 무희로 해방될 당시 이미 유부녀였는데 남편을 따라 월북했다.
  • 최덕신[24]
  • 홍명희

이 외에도 다양한 월북자들이 존재한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파탄이 난 90년대 이후에도 정말 곤란한 처지가 되어서 월북한 사람들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2005년경 방송된 조선중앙방송의 방송 내용에 따르면 길게는 90년대 초반 JSA에서 근무를 하던 도중 월북한 경우도 있는 반면 짧게는 2000년대 중반 평범한 연구직이나 사무직에 근무하다 월북한 사례도 있다.

사실 남북 체제 대결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기 때문에 일부 매니아 계층의 월북은 오늘날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는 경제적 혹은 범죄 관련으로 곤경을 모면하고자 하는 것이 근래 월북자들의 주된 동기로 보인다. 즉 2000년대 이후의 월북 사유를 살펴보면 2004년에 막대한 사채빚을 진 군 간부가 월북한 사건이 있고 2009년에 폭행죄로 지명수배된 강동림이 월북했다고 알려진 사건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안으로 북한을 고르는 것은 정상적인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짓이다. 남한에 남아서 손가락질을 받게 될 가족들이나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의 실태를 생각해본다면 자신이 사형을 선고받을 만한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남한에서 사형을 받거나 징역을 사는 것이 천국이나 마찬가지다.[25] 또 북한 입장에서도 이미 체제 대결이 끝나 선전용 월북자가 굳이 필요없고 더군다나 자신들 사회에 사실상 적응이 불가능한 범죄자의 월북은 오히려 골칫덩이만 떠안는 셈이라 전혀 반기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북한에서도 거부당하다니 세상에서 갈 곳이 없어...

특히 무엇보다 월북자들은 이미 남한 땅에서 살아왔으므로 누구보다도 남한의 실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인민에게 대고 남한의 실상을 떠벌리고 다니기라도 하면 그간 남한을 엄청 비참하다고 허위선전해온 북한 정부 입장에서는 골치깨나 썩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월북자들이 자신이 생각한 북한의 모습과 실상이 너무 다르다면 더더욱 그 위험성은 커진다. 사실 월북자들 중 대부분은 북한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남한이 싫어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을 텐데 자유를 피해 도망나온 사람이 꽉 막힌 북한 스타일을 더 좋아할지는 미지수.

출신 월북자들을 받는 것은 꺼려하지만[26] 이런 재월북자들은 자신들의 체험으로 북한인들에게 "탈북해봤자 별 볼 일 없구나" 는 식의 인식을 심어주어 체제 단속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북한은 갖은 수를 동원해 이들을 다시 유인하고 있다.

탈북했다가 재입북해서 한동안 북한의 이런 선전에 동원된 뒤 2013년 재탈북한 김광호가 대표적인 사례. 그러나 김광호는 남북한을 오가며 각종 정보를 양측에 누설했다는 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김광호처럼 탈북과 월북을 반복한 파란만장한(...) 행적을 보인 자도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재월북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일부 사람들의 몰지각한 편견과 행위 때문에 남한에서 탈북자들이 여러모로 불이익을 받고 사는 것은 사실이나 탈북할 때의 초심과 현재 북한이 어느 정도로 미쳐 돌아가는 국가인지 생각하면 남한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것에 비해 재월북은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특히 이미 남한의 문물을 체험해봤던 사람들을 북한이 미쳤다고 마음대로 풀어줘서 살게 놔두겠냐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김광호씨도 재입북한 뒤 그곳에서 무심코 내뱉은 '남한이 더 잘 산다' 는 말 한 마디 때문에 문제가 생겨서 재탈북했다고 한다.

5.1. 미군 또는 주한미군 월북자

더욱 엽기적이고 황당한 것은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주한미군(!)미국인들 중에서도 월북한 사람들이 있다. 충공깽... 2014년 현재까지 총 6명으로 특이하게도 이 미국인 월북자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가정불화나 자라온 배경이 정상적이지 않거나 정신이상 등 순탄치 않은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즉, 애초에 미군측에서도 문제로 삼고 있었던 인물들이며 어떠한 사유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북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중 다섯은 육군 소속으로 부사관 및 병들로서 미군 장교가 월북한 사례는 아직까지는 없다고 한다. 엄밀하게 말해서는 한국전쟁 종결 후 공산권을 택한 포로들의 경우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북한이 아닌 중국으로 이주했다. 게다가 상당수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고 그리스계 1명은 중국에서 일생을 마쳤고 중국의 ‘노력 영웅’이 되었다. 2009년 이들의 삶을 다룬 중국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어 파문을 일으켰다.

한편 놀랍게도 미국이라면 죽도록 이를 가는 북한에서는 월북한 미군들을 매우 소중히 대우했는데 그 이유는 체제 선전용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도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제의 앞잡이였다가 자진해서 우리 수령님의 품으로 다가오길 택한 영웅" 이라는 선전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그 대가로 이들에게 평양에 최고급 주택을 지어서 그곳에 살게 해주고 해외에서 납치해온 외국인과 결혼도 시켜주는데다가 적지 않은 연금을 지급했다. "이름없는 영웅들" 류의 북한의 체제선전 영화에서 "출처를 밝힐 수 없는 미 정보국 책임자급" 등의 악역 배우를 주로 담당했다.

한때 이들을 두고 조선일보에서는 '나의 주한미군은 절대 그렇지 않아' 하는 생각에 한국전쟁 당시 미귀환 미군 포로였다고 기사를 낸 적이 있었는데 미 국무부가 공식적으로 월북 미군으로 확인했다. <어떤 나라>, <천리마 축구단> 등의 북한을 소재로 다룬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영국의 대니얼 고든이 이들을 주제로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이 있으니 참고할 것. 한국에서는 2007년 8월 23일에 개봉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군대' 라는 항공망을 통해 비행기삯 한 푼 안 내고 한국 땅으로 건너왔고 '탈영' 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기는커녕 넘어간 땅에서 한 것도 없는데 '영웅' 소리를 들으며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셈이니 과연 세상은 불공평하다. 부러우면 직접 해보자

  • 찰스 로버트 젱킨스 God Damn it, Robert!

  •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

  • 조지프 T. 화이트 - 1982년 월북했는데 1985년에 청천강에서 수영을 하다가 익사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북한의 통보로 진짜로 익사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불명. 어쩌면 정치범수용소에 있다는 6.25 전쟁 당시 미군 장교가 사실 이 사람일 수도 있다.

  • 래리 앨런 앱셔 - 드레스녹보다도 먼저 월북한 미군. 드레스녹처럼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그나마 친척들이 잘 키워줬다. 무분별한 성생활로 성병에 걸렸고 마리화나에 빠져 5~6번이나 징계를 당했는데 또 마리화나를 피우다가 걸려 1962년 5월 재판에 넘겨지기 전에 월북했다. 역시 납북태국 여성인 '아노챠' 와 결혼해서 살다가 1983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앱셔의 나이는 겨우 마흔이었다.

  • 제리 웨인 패리시[27] - 켄터키 주 핸더슨 출신으로 미군 특수 요원이었다. 계부가 알콜중독으로 가족을 자주 팼으며 설상가상으로 계부는 패리시가 의붓여동생과 성관계를 하는 사이라고 마구 몰아세워서 돌아오면 죽이겠다고 패리시를 내쫓았다. 그 후 앱셔와 드레스녹의 이야기를 듣고 1963년 12월 국경순찰 중에 월북한다. 레바논 출신 여자와 결혼해 3명의 아들을 두었다. 패리시의 아내는 월북되었다는 말이 많았는데 본인은 방송에 나와서 내 가족들도 레바논 정부도 내가 여기 산다는 것을 안다면서 월북설에 극구 부인했다. 자초지종은 이 여자가 북한으로 관광을 왔다가 우연히 패리시와 만나서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을 레바논에 돌아와서 알게 되었고 레바논의 가족들은 당장 애아빠에게 돌아가라고 그녀를 추방해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와 패리시와 결혼한 것이다. 간질병으로 인하여 1998년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부인과 자식들은 여전히 평양에 살고 있다고 한다.

5.2. 미국인 월북자

  • 아르투로 피에레 마르티네스 - 29세. 텍사스 주 엘파소 출신으로 위 다섯과 달리 일반인이며 히스페닉 계. 스스로 들어갈려고 시도했다가 걸린 적이 2번 있었다. 잡힌 이후 캘리포니아 주의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퇴원하자마자 돈을 빌려 중국으로 간 다음 북한으로 들어갔다. 들어온 날짜는 강제로 잡혀들어갔다가 풀려난 캐네스 배와 매튜 토드 밀러 석방일로부터 이틀 후라고 한다. 북한에서는 당연하게 방송에 출연시켜서 미국의 외교정책 비난에 잘 써먹고 있는 중이다.

5.3. 일본인 월북자

1970년에 일어난 요도호 사건의 범죄 그룹 '적군파' 멤버인 타미야 타카마로외 8명도 민항기를 납치한 뒤 북한으로의 망명을 요구하여 결국 자녀까지 낳으며 평양에서 살고 있다. 3명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하였으며 일본인들을 납치하여 북한으로 데려오는 등의 공작원 활동을 하다 검거되어 일본으로 송환된 이도 있다. 이들은 모두 국제 지명수배되어있으며 자녀들은 일본에 귀국하여 살고있다. 일본인들의 경우에는 월북이라기보다 공작원들에 의해 강제로 북한에 납치당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납북 일본인 참조. 의문의 실종 사고로 오랜 기간 모습을 볼 수 없는 실종자들도 북한에 납치당한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6. 월북의 기준에 대한 논쟁

일단 월북자를 해방 후 38선 이남에 살다가 이북으로 넘어간 이들, 그리고 휴전 후에는 휴전선 이남에 살다가 이북으로 넘어간 이들로 분류한다는 기준은 명확하지만 애초에 고향이 대한제국/일제강점기 시절에 이북 쪽이었는데 해방 후 북한으로 넘어간 이들을 월북자로 분류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물론 한국 입장에서 보면 북한으로 '가버린' 인물들이라 월북자로 분류할 수 있지만 '월북한' 이들 입장에서는 그냥 고향으로 돌아갔다고도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인 백석이나 작곡가 이면상 같은 경우에는 각각 평안북도 정주함경남도 함주 출신이지만 남한에서는 일반적으로 월북자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월북이라는 단어의 기준을 재정립하거나 북한 지방이 고향이었던 인물들에 대한 재분류용 단어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7. 해외 사례


7.1. 예멘

예멘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던 시절은 월북자가 엄청나게 많았다. 왜냐하면 예멘은 한국과 반대로 남예멘이 공산주의였고 북예멘이 자본주의였기 때문이다. 즉, 예멘의 월북자들은 한국으로 치면 탈북자에 해당한다.

7.2. 독일

독일의 경우 분단이 남북이 아닌 동서로 분단되어 있었는데 한국으로 치면 월북자가 되는 경우는 독일에서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해당된다. 자세한 사항은 동독베를린 장벽 항목을 참고.

----
  • [1] 법에는 이렇게 써있는데 사실상 한반도 안에 반국가단체라고 해봤자 엄청 큰 거 하나 빼고는 조직되는 순간 뼈와 살이 분리될 테니...
  • [2] 살인죄와 같은 형량이다.
  • [3] 1988년 3월 31일에 납북인지 자진 월북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정지용·김기림이 해금된 이후 7.19 해금조치를 통해 백석을 비롯한 120여명의 납·월북 작가들이 전면적으로 해금되었으며 89년에 홍명희, 이기영, 한설야, 조영출, 백인준이 최종적으로 해금되었다.
  • [4]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뉴델리 밀회 사건.
  • [5] 조소앙, 김규식, 안재홍 등 이승만을 견제할 수 있는 거물들이 대거 사망 또는 납북되어, 남한에서 이승만을 견제할 수 있는 인물은 조봉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조봉암마저 결국...
  • [6]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51900329107008&ed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1-05-19&officeId=00032&pageNo=7&printNo=14054&publishType=00010 91년 일이며, 해당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다.
  • [7] 그냥 단순 불응한 것도 아니고 적성 지역으로 접근을 시도했다.
  • [8] 게다가 저 침입자가 과연 일반인이였나도 의심스러운 게 저 위치까지 가려면 그 전에 수많은 검문소에서 검문을 제대로 받아야 정상인데 그곳을 무사히 다 통과한다는 것이 일반인이라면 하기 힘든 일이다. 검문소의 위치를 미리 알고 우회하던가 아니면 가짜 신분증으로 넘어가던가 아니면 검문소 초병들이 일을 제대로 안했던가. 아니면 진짜 간첩일 가능성도 있다.
  • [9] 물론 평생을 항상 조심하면서 살아야 하며 게다가 가족은 두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이들을 어떻게든 처분하려 하기 때문에 강제로라도 결혼을 시키고 그 다음 아내나 자식들이 엉뚱한 소리 하나 늘어놓으면 그걸 명분삼아 죽여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10] 정 모 국군 하사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정 하사가 북에 가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이설도 있지만 적어도 그 영화에서는 이순재가 연기한 정 하사는 자진월북이 아니라 DMZ에서 납치되어서 자진 월북으로 위장되었었다. 그가 간첩훈련소에서 만나고 처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진월북자들. 결국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거듭난 척 연기를 하여 북한의 신뢰를 받고 남파 간첩으로 남한에 돌아오자마자 동료들을 모두 쏴죽이고 국군 부대에 투항한다.
  • [11] 예를 들면 의사라는 직업이 남한에서는 거물이지만 북한에서는 별볼일 없는 직업군이다.
  • [12] 다만 정치범수용소는 아닌 것 같고, 그냥 월북자 등을 가둬 놓고 조사하는 수용소로 보인다.
  • [13] 참고로 이 때 피살자의 시신을 인계하면서 북한 측이 직접 월북자 이모 씨가 자기 아내를 살해하였다고 통보했고, 검찰의 조사 결과 사실로 확인되어 집유를 받은 다른 월북자와 달리 유일하게 징역 10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되었다.
  • [14] 현재 해당 연대는 제7보병사단 예하 연대로 편입되었고 해당 연대 역시 이 사건을 두고두고 흑역사로 여기고 있다.
  • [15] 당시 이들도 창군 초창기 다른 부대들이 그러하듯 소령 계급으로 대대장 직급을 맡았었다.
  • [16] 다만 이는 같은 고향 출신인 두 대대장 간 밀약이었는지, 북한군에게 투항하기 전 낌새가 이상한 걸 눈치챈 중대장을 포함한 몇몇이 저항하거나 3개 중대가 포위망을 뚫고 가까스로 탈출한 사례는 있었다.
  • [17] 이때 부대에 잔류해 월북당하지 않았던 사람들 중 12.12 사태의 현장에 있었던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도 있었다. 참조.
  • [18] 연출이 아니라면 정황상 현리 전투 와중 군단 전체가 와해된 상황에서 별 수 없이 월북한듯 싶다.
  • [19] 일명 배인오. 1993년 김삼석 남매 간첩단 사건을 조작한 안기부의 프락치. 원래는 영화로 노동사회운동을 하는 영화감독이자 연출가, 작가였다. 그러나 안기부에 포섭되어 당시 반핵평화운동을 하던 김삼석과 그의 여동생에게 접근하여 친분을 쌓은 후 김삼석에게 물건을 배달을 부탁하여 간첩으로 몰았다. 그 후 독일로 망명하여 베를린의 범청학련 사무실에 나타나서 양심선언을 했다. 이후 북한으로 망명했다. # 현재는 북한을 탈북하여 동남아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소재 파악은 안 되고 있다고 한다.
  • [20] 한국군 하사로 베트남 전쟁시 월북했다고 알려져서 가족들이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는 등 곤욕을 치렀으나 이런저런 정황과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베트남 전쟁 당시 포로가 되어 북송된 후 탈북하다가 1975년에 처형되었다고 공식 확인했다. 2009년 국방부에서도 공식적으로 월북자가 아닌 납북자로 인정했고 2010년 주간조선에서 공개한 베트남 전쟁 관련 문서에 의하면 당시 주월사령부에서도 안학수 하사가 공무 중 납치 실종, 납북을 알고 있었음에도 공문서 위조까지 하면서 술과 여자 문제 때문에 탈영해서 북으로 도망친 천하의 개쌍놈으로 위조했다.
  • [21] 17세의 나이로 5.18에 참가한 유공자. 5.18의 이후 보상금 전액을 모친에게 주고 외국 여행 중 영국 대사관을 통해서 북한으로 갔다. 5.18 관련자들이 약간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언급하는 흑역사.
  • [22]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미스테리한 월북의 주인공. 헤겔 철학의 전문가이자 신생철학이라는 철학 사상으로 유명했던 윤노빈은 현실에 비판적이지도 않았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음에도 83년 대만으로 유학을 떠난 뒤 가족과 함께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가버렸다. 오길남의 증언에 의하면 나름대로 글을 쓰면서 사는 것 같지만 북한이 대대적으로 내세우는 선전업무에 종사하는 것 같지는 않은 듯. 먹물이라 북에서도 별로 안 좋아하나
  • [23] 제20기계화보병사단 예하의 대대장으로 이 인간은 하필 보병학교 전술교관 출신이라 당시 한국군의 비문, 군사교범, 부대명 등이 싸그리 물갈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의 피해를 환산해보면 무려 1조원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있을 정도. 이후 20사단은 주둔지였던 연천에서 춘천을 거쳐 양평으로 주둔지가 변경되었고 5사단은 졸지에 양평에서 연천으로 부대가 이동되어 버렸다. 게다가 혼자서 월북한 것도 아니고 월북 제안을 거절하는 운전병은 총으로 다리를 쏴서 놔두고 무전병은 위협해서 억지로 함께 월북해버렸다. 아무것도 모른 채 억지로 끌려간 그 무전병은 아직도 귀환하지 못하고 있다.
  • [24] 한국 육군의 중장 및 육군사관학교 교장까지 지낸 사람이지만 1972년 박정희와 갈등으로 미국에 망명했다. 이후 1986년 북으로 망명하였다. 결국 북에서 천도교 청우당 당수를 지내기도 했다. 그래서 육군사관학교흑역사로 알려져 있다. 사망했을 때는 김일성이 직접 문상까지 왔다고 한다. 그런데 제11기계화보병사단 엄청난 흑역사가 되는 거창양민학살 지시를 내린 인물이라서 이걸로 인해 대한민국이 종북 방관혐의를 씌워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 [25] 무엇보다 현재 남한은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어 있는데다가, 북한의 수용소처럼 고문을 행하는 것도 아니다.
  • [26] 감시하느라 쌩돈과 인력만 낭비될 뿐. 이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불평분자이기 때문에 북에서도 적응 못하고 시한폭탄이 될 확률이 높다.
  • [27] 이 두 사람 모두 북한 영화에 단골 악역 미군으로 잘 나왔다. 패리쉬는 주로 행동대장 따까리 역으로 출연했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15 20:55:48
Processing time 0.2217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