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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

last modified: 2015-04-02 00:27:41 by Contributors

Contents

1. 僞書: 거짓된 문건
1.1.
1.2. 위서 논란이 있는 책
1.3. 위서 구분법
2. 魏書: 중국의 역사서

1. 僞書: 거짓된 문건

반대말은 진서(眞書).

역사서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역사서 이외에도 책이나 편지, 공식 문서 등 위조본은 모두 위서라 칭한다. 때문에 사전에는 가짜 편지가 표제어일 정도. 위조지폐도 종이니깐 위서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이건 보통 위서와는 매우 안좋은 쪽으로 엄연히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위서로 보지 않는다. 위조지폐 항목 참고. 다만 위서라고 현재 논란을 벌이는 분야가 대표적으로 역사쪽이기 때문에 주로 역사서에 한정되어 언급될 뿐이다. 애초에 이는 문헌학적 개념이다.

다만 여기서 거짓되었다는 것은 역사서의 성립연대, 저술자, 성립과정와 같은 서지사항이 거짓되고 조작되었다는 거지, 절대로 안의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잘못된 내용이 있다고 해서 위서라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어차피 진서라도 잘못된 내용이 있을 수 있다. 간혹 환빠들이 "삼국사기에도 잘못된 내용 있잖아! 그러니까 삼국사기도 위서야!" 그러는데 더 들을 것도 없는 헛소리. 예를 들어 삼국사기는 성립연대도 그렇고, 그것을 참고한 후대의 서적도 있어 서지사항이 조작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니 위서가 아니다. 좀 더 혼란이 심한 예로는 일본서기가 있는데, 일본서기의 경우 쓰인 연대 자체는 사실이므로 진서는 맞다. 내용이 역사 판타지소설로 자꾸 넘어가서 그렇지(...)

간단하게 "현대에 아무리 좋은 역사책이 나와도 그 책이 스스로 천년 전에 쓰여졌다고 주장하면 내용에 관계 없이 위서가 된다."

반대로 '위서지만 안에 진실이 있다'는 주장의 경우, 최소한 당대 저작되었다는 말은 개드립이고, 후대에 저술한 것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뽑아내려 하더라도 훨씬 더 엄격한 검증을 거쳐야 하며(물론 절대 다수는 알아서 배제된다), 오히려 그 저작한 연대의 분위기를 알려주는 정도의 가치만 있다.[1]

즉, 위서고 아니고를 판별하는 것은 사료의 외적 비판에 해당한다. 사료의 내용의 잘잘못과 교차검증 같은 것은 내적 비판에 해당한다. 따라서 둘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착각하지 말자.

1.1.

  • 관자(管子): 위서라도 그 자체로 역사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 전국시대 제나라의 명상인 관중의 저작으로 칭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관중의 행적을 바탕으로 제나라의 다른 사상가들은 물론이고 한나라 시대의 영향까지 포함되어 있으므로 위서이다. 하지만 위서라고 해도 그 시기가 워낙 이르고, 당대의 사상과 시대상을 엿볼 수 있으므로 좋은 사료로 인용된다. 특히 한국 고대사에서는 고조선에 대해 언급된 몇 안되는 사료이므로 특히 중요하다.
  • 위서(緯書): 유교의 가짜 경전. 저자를 공자로 칭하고 있는데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위서(僞書)이다. 내용이 음양오행술과 도참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저자인 공자의 사상과는 내용이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 기독교위경
  • 시온 의정서
  • 육도삼략
  • 제왕연대력
  • 콘스탄티누스의 기증: 중세서양사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위서. 기독교를 공인한 것으로 유명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교황 실베스테르 1세에게 보낸 칙령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자신이 동로마로 이주하면서 서로마를 로마 교황에게 맡기고, 스스로를 교황보다 낮추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국왕권이 교황권에 비해서 낮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활용되었다. 때문에 프랑크 왕국의 피핀이 로마 교황에게 교황령을 넘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시대 교황권을 뒷받침하는 상징적 문건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세시대에 조작된 문서로, 르네상스 시대에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처음에는 조작을 주장한 책 자체를 금서로 묶기도 했던 교황청도 결국은 조작사실을 인정하였다.
  • 환단고기, 단기고사, 부도지, 규원사화, 천부경 등 '환'자 계통 서적 / 자료
  • 남당유고

1.2. 위서 논란이 있는 책

  • 노자(도덕경): 과거에는 '노자라는 인물 자체가 가공의 인물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으나, 최근에 기원전 3세기 경의 판본이 발견되어 위서설은 많이 위축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본래 책의 내용 중 일부만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 내용마저도 알려진 판본과 차이가 많아 후대의 조작이 심하게 들어갔음은 부정할 수 없다.
  • 동방견문록
  • 화랑세기 필사본: 다만 화랑세기 자체는 분명히 당대에 쓰여졌던 사서삼국사기에도 언급되어 있다. 여기서 위서 논란이 있는 것은 현대에 발견된 필사본이다.
  • 편의십육책: 제갈량이 저술한 책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진수가 편찬한 제갈량집에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위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항목 참조.

1.3. 위서 구분법

이 구분법은 말의 학자인 량치차오가 제시한 위서 구분법이다. 출처는 그의 저서 <중국역사연구법> 제5장 '사료의 수집과 감별' 중에 나오는 내용.

1. 그 책이 전대(과거)에는 저서 속에 보이지 않거나 혹은 결코 다른 사람이 인용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것은 10중 9는 거짓이다.
  • 환단고기를 예로 들어보면, 환단고기는 신라시대의 '삼성기'(안함로/원동중), 고려시대의 '단군세기'(이암), 고려시대의 '북부여기'(범장), 조선시대의 '태백일사'(이맥)를 근대에 묶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삼성기'가 세조실록에 단 한번 등장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기록에서 이들이 언급된 바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정작 세조실록에 단 한번 등장하는 이 삼성기도 문제인 것이, 해동고승전에는 신라시대의 승려 안함(安含)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안함(安含)·원로(元老)·동중(董仲) 세 사람이 있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 기록을 교차검증하면 세조실록의 안함로원동중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는 환단고기에 나오는 것처럼 "안함로와 원동중이 지은 삼성기"가 아니라 "안함·노원·동중이라는 세 성인의 기록"이 된다. 뭐긴 뭐야 구라치다 걸린거지.

2. 그 책이 전대(과거)에 저서 속에 보이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산일되었다가 갑자기 이본 하나가 돌출되어 편수 및 내용 등이 구본과 완전히 다른 것은 10중 9는 거짓이다.
  • 화랑세기를 예로 들어보면, 화랑세기라는 책 자체는 삼국사기 편찬 과정에서 참조한 사료 가운데 하나로 그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근대에 박창화가 남긴 화랑세기 필사본은 일부 문구를 제외하면 정작 삼국사기에 전하는 화랑 관련 기록과 내용이 거의 겹치지 않는다.[2]

3. 그 책의 구본이 있으나 없느냐는 따지지 않으나 금본의 내력이 명확하지 않으면 바로 경솔하게 믿어서는 안된다.
  • 단기고사를 예로 들어보면, 유응두가 중국에서 발견한 것을 김두화가 입수한 경위가 불분명하고 1959년 이전까지 단기고사라는 책을 언급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실상 갑툭튀한 것이다.

4. 그 책이 유전된 실마리는 다른 분야로서 고견할 수 있으나 이로써 금본에 아무개가 예전에 쓴 것이라면 증명이 불확실한 것이다.

5. 진서의 원본이 전인의 인용을 거쳐 확실히 증거가 있는데 금본이 이것과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금본은 필연코 거짓이다.

6. 그 책에서는 아무개가 찬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책속에 기록된 사적이 본인보다 나중의 사람의 것이라면 그 책은 전부가 거짓 혹은 일부분이 거짓이다.

7. 그 책이 진짜라고 하더라도 그 일부분이 후인에 의해서 고치거나 바뀐 흔적이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그 책의 전부에 대해 신중하게 감별해야 한다.
8. 그 책속에 언급한 것이 사실과 확연히 상반된다고 하면 그 책은 틀림없이 거짓이다.
  • 화랑세기를 예로 들어보면, 화랑세기에는 용수(龍樹)가 진평왕 말년에 동생 용춘(龍春)에게 아내와 자식을 부탁하고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황룡사 9층 목탑지에서 수습된 찰주본기에는 진평왕 다음의 선덕왕이 재위 14년에 용수를 시켜서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다고 되어 있다. 아버지이복동생처럼 유령이 된 채로 지었나 보다.

9. 두 책이 동일한 사안을 기록한 것이 절대적이 모순이 된다면 틀림없이 하나가 거짓 아니면 둘 다 거짓이다.
  • 화랑세기를 예로 들어보면,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모두 용수(龍樹)와 용춘(龍春)이 동일인물의 다른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화랑세기에는 용수와 용춘이 개별적인 인물이며 형제 관계로 나타나 있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모두 구해왕의 아들이 삼형제로 기록되어 있지만, 화랑세기에는 한 사람이 누락되어 있으며 누락된 사람은 이사부의 아들로 처리되어 있다.

10. 각 시대의 문체는 자연스럽게 구분되는 것이니,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스스로 이를 알 수 있다. 따라서 후인이 거짓으로 만든 책은 자구에서 지엽적인 반증을 찾을 것까지도 없이 그저 문체를 한번 보기만 해도 금방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후연서[3]를 예로 들어보면, 기재된 한문의 어휘와 문법 자체가 근대의 것이다. 대표적으로 적(的)을 현대 한국어의 조사처럼 범용하고 있으며, 지(之)를 현대 한국어의 접미사처럼 남용하고 있다.[4] 다중이 가려내기 스킬이기도 하다

11. 각 시대의 사회 상태는 우리 대에서 각 분야의 자료에 의해서 항상 그 개략적인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아무 책에서 그 시대 상황을 말한 것이 사리에 있어 너무 차이가 나는 것이라면 바로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 환단고기를 예로 들어보면, 한민족은 구석기 시대에 환국, 신석기 시대에 배달과 조선이라는 크고 아름다운 국가를 세웠다 카더라. 그러나 구석기 시대는 빙하기로 이동생활을 하던 가족 단위의 사회에 지나지 않았으며, 신석기 시대에 빙하기가 끝나고 정주생활이 시작되면서 여러 가족이 한 지역에 모여서 마을 단위로 응집되고, 이후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한정된 자원의 독점을 바탕으로 상하관계가 고착화되어 국가 단위가 형성되는 것이다. 다음 글을 읽어보자.

12. 각 시대의 사상은 그 진화 단계에 있어 저절로 한결같이 정해진 것이 있기 마련인데, 만약 아무아무 책에서 표현된 사상이 그 시대와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바로 거짓으로 단정할 수 있다.
  • 단기고사를 예로 들어보면, 고조선의 유위자라는 사람은 도가의 지식을 설파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세포, 원자, 성운, 항성, 혹성, 스펙트럼까지 통달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항성이나 혹성과 같은 어휘들은 서양 과학이 일본을 통해 번역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 전근대에 저런 어휘는 해당하는 개념과 연결되지 않으며, 후대에 근대적 어휘로 수정한 것이라고 한다면 원문이 어떻게 되어 있길래 근대 과학에 해당하는 어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단 말인가.(...)[5]

2. 魏書: 중국의 역사서

중국의 정사서
흠정 24사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晉書) 송서
남제서 양서 진서(陳書) 위서 북제서 주서
수서 남사 북사 구당서 신당서 구오대사
신오대사 송사 요사 금사 원사 명사
기타 정사서 동관한기 신원사 청사고 중화민국(건국)사

중국 남북조시대의 국가 중 하나인 북위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서. 1번과 헷갈리면 곤란하다. 북제(北齊) 문선제(文宣帝) 천보(天保) 10년(559년) 위수(魏收)가 저술한 사서로 114권(본기 12권, 지 10지, 열전 92편)으로 되어 있다.[6]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다.

  • 본기 서두 「서기」라는 형식으로 북위 왕조 창건 이전의 탁발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북제 때 편찬되었기 때문에 북제의 전신인 동위를 정통인 후계자로 하고 있다.
  • 열전에 5호의 여러 나라와 남조의 계승을 내세우고 있다.
  • 불교·도교 관련의 사건을 기록한 석로지가 있다.

북위 건국 이전부터 시작하여 북위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동위를 정통이라 하였으나, 북제를 왜곡하고 열전(列傳)의 서술이 불공평하다. 특히 남조의 나라들에 대해서 극히 불평등하게 기록하는 등 공정성이 심히 낮다. 예를 들어 남조 유송의 무제(武帝) 유유, 남제의 고제(高帝) 소도성을 도이(島夷, 오랑캐)[7]라고 기록하고[8] 거기다 동진 원제 사마예가 사실은 사마근의 아들이 아니라 그의 부장 우금의 아들이라고 기록하는 등 괜히 '더러운 역사서(穢史, 예서)'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9]

북위서위와 동위로 분열된 계기인 효무제(孝武帝)의 도주[10]때문에 그를 '도망친 황제'라고 조롱하는 의미로 출제(出帝)라고 기록했다. 그에 반해 북사와 북제서에서는 효무제라고 제대로 기록했다.

이 때 위서는 당대에도 논란이 되어 신명나게 까였고 서위, 북주, 를 정통으로 하는 위담찬의 <위서>(92권)이나 당나라 장태소찬의 <후위서>(100권) 등의 개정판이 만들어졌지만 모조리 소실되었다. 더구나 위서 자체도 난리통에 부분부분 손실되어서 위서를 포함해서 편집되었던 <>에서 역으로 내용을 가져와야 했다. 현재 전하는 위서는 잃어버린 부분을 북송 때 보완한 것이다.[11]

문제는 존속 기간의 문제도 있어서 위서가 남북조 가운데 북조를 다룬 <북사>의 저본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남사와 북사가 서로 내용이 다르면 대부분 <남사>를 기준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 단적으로 백제의 요서경략설을 남사 계통에서는 긍정하는 기술을 하고 정작 북사 계통에서는 기록하지 않는데 남송 때 통사를 기록한 사마광자치통감은 <남사>의 기준을 따르고 있다.

이 항목과 상관은 없지만 제목은 같은 위서가 또 있다. 바로 삼국시대 조위의 역사서인 위서로 왕침이 썼다. 현존하지는 않고 진수정사 삼국지배송지의 주석에 인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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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예를 들어 20세기 초 등장하여 요즘에는 역사 왜곡 문제를 일으키는 대종교 계통 사서 등의 경우 고대사 사료로는 가치가 없지만, 일제강점기 민족 감정을 고취시키는 의미에서 등장했다는 정도의 의의는 있다.
  • [2] 단, 예시문에서 들고 있는 화랑세기의 사례는 아직 진위 논란이 있으므로 가려서 볼 것이 요구된다. 이하의 예시문은 위서론에 입각하여 작성되었다.
  • [3] 정립의 소설 '광개토대제'에 사료로 인용된 책이라고 하나, 역사적으로 이러한 사서가 있다는 말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사실관계가 어긋나는 점도 많아서 정립이 자의적으로 구절을 지어내고 실존하는 사서인 것처럼 설정놀음한 것이 확실시된다.
  • [4] 예시에서 든 것은 한문에 있어 고대-근대 문법의 차이지만, 이외에도 상고-고대, 상고-중세, 고대-중세, 중세-근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문제이다. 극단적으로 갑골문이 고대나 중세의 문법으로 작성되어 있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다만 환단고기와 같은 경우에는 아예 중간에 원문을 유실하고 전적으로 기억에 의거하여 재구성했다고 하므로, 문체를 따질 것도 없다. 7번을 보자.
  • [5] 이와 관련된 대목이 전적으로 근대에 가필된 거라고 한다면 자신의 사료적 가치를 스스로 깎아먹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7번을 보자.
  • [6] 본기와 열전의 부분은 554년(천보 5년), 지는 559년(천보 10년)에 완성했다.
  • [7] 이것을 전후사정도 모르는 환빠들이 유유=소도성=한반도인 또는 유송=남제=한반도 역사라고 날조하는 명목이 되기도 했다.
  • [8] 이에 맞서 남조에서는 북조를 위로(魏奴, 위나라 오랑캐)라고 기록했다.
  • [9] 물론 자국을 높여주고 타국을 낮추는 경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사서에서 보이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타국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기를 쓰고 깎아내리는 경향은 찾아보기 힘들다.
  • [10] 효무제는 원래 실권자 고환(...)이 꼭두각시로 황제로 세웠는데 효무제가 고환을 죽일려다가 발각되자 효무제가 을 타고 수도 성을 떠나 장안으로 도주했다. 효무제는 장안에 도착한 후 관중대도독 우문태에게 의지해 실권을 넘겼는데 고환은 효무제에게 돌아오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고환은 따로 효무제의 일족 효정제를 세우면서 북위는 우문태가 실권을 잡은 서위와 고환이 실권을 잡은 동위로 분열되었다. 이후 서위는 북주, 동위는 북제로 왕조가 바뀐다.
  • [11] 북송 때 30권 정도 소실본이 발견되어 <북사>를 인용해 보충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군데군데 보충 부분이 명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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