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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태프트

last modified: 2014-12-09 03:09:56 by Contributors

역대 미국 대통령
26대 27대 28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윌리엄 태프트 우드로 윌슨


진짜 크다.그런거아냐



Fire in the hole! 실은 그가 던지는 것은 야구공. 그는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메이저리그에서 시구를 한 대통령이다 미국이라고 다를줄 알았지?.[1] 그리고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체중이 많이 나가는 대통령.


1930년 3월 3일. 사망 5일 전. 업무가 너무 고되서 그런지 휠체어 밀어주는 직원 눈초리가 심상치않다 더럽게 무거우시네

"백악관은 세계에서 제일 고독한 장소다."

나는 늘 당신이 워싱턴링컨을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될 거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 두 사람보다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태프트에게 쓴 편지. 물론 현실은(...)

Contents

1. 소개
2. 본격 비만 대통령!


1. 소개


William Howard Taft 1857.09.15~1930.03.08(대통령 재임 : 1909-1913)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오하이오주 출신으로 예일대를 2등으로 졸업했다. 이후 신시내티 로스쿨을 다녔는데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오하이오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대단한 공부벌레였던 듯.

이후 오하이오주에서 연방판사로 일하고 1900년 에스파냐로부터 얻은 필리핀의 초대 총독으로 임명되어 4년간 필리핀에서 일했다. 그 후 미국에 돌아와 1904년에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육군장관으로 임명되면서 그의 보좌관으로 뛰었다.

1905년에는 루스벨트의 특사로 훗날 총리가 되는 일본가쓰라 다로와 밀약을 맺는 역할을 했는데, 여기서 결정된 사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미국이 묵인하는 대신,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묵인한다는 밀약을 맺었다. 요게 바로 그 유명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이 밀약이 우리에게 초래한 결과? 바로 그 유명한 을사조약(제2차 한일협약)과 나아가 경술국치이다. 여담으로 이 둘의 재임기간은 겹친다. 대략 1909년 3월부터 1911년 8월까지로 그들의 재임기간에 경술국치가 일어났다. 정말 돋네요

어쨌든 루스벨트의 참모로 중용되면서 그의 신임을 받았고 개인적으로도 어지간히 친밀한 관계를 맺었는지 루스벨트는 태프트를 자신의 후계자로 내세웠고 그 결과 루스벨트의 후임으로 미국 제2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대통령으로써는 루스벨트 정권의 방침을 계승했지만 이른바 '달러 외교'라는 경제력을 배경으로 한 무력을 수반하지 않는 평화적인 외교를 목표로 했다. 동아시아에서는 강대국들이 중국을 잠식해 가는 걸 억제하면서 강대국 권리의 평등한 분배를 목표로 했지만 현실은 시궁창. 당연히 제국주의에 혈안이 된 강대국들이 이 말을 들을 리 없었다. 중앙아메리카에서도 유럽 열강의 자본을 배제하여 중앙아메리카의 개발을 추진, 정세의 안정을 도모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의 무력 개입을 실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서 오히려 중앙아메리카의 정세는 불안해졌다.

대통령이 된 태프트는 능동적이고 패기 있던 루스벨트와는 정 반대로 몇몇 실력 있는 상원의원에게 끌려다니다시피 했다. 대학 동문을 장관에 임명하기도 했는데 이게 마음에 안 든 루스벨트는 측근을 보내 장관을 교체하라고 말했지만 태프트는 반대로 그 측근을 경질시켜 버렸다. 근데 당시 공화당 내부에는 루스벨트의 추종자가 적지 않아서 루스벨트와 다른 노선을 걷는 태프트의 정책에 반대를 일삼아 계속 을 걸어댔다. 이걸 보면 태프트가 열받는 것은 당연한 일.


당시 루스벨트와 태프트를 풍자한 만평

어쨌든 이에 열받은 루스벨트는 '저 친구 대통령 시키느니 내가 다시 한번 더 뛸래'라며 다시 한번 대통령에 출마했고 태프트를 맹렬히 비난했다. 그러나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는 태프트가 루스벨트를 누르고 후보 지명을 받았는데 루스벨트는 그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진보당을 차려 공화당을 분열시켜 버렸다. 그 결과 공화당의 표는 분산되었고[2] 어부지리로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이 당선되었다.


선거 후. 아...망했어요

윌슨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준 후에는 예일대에서 강의를 하다가 1921년 워렌 하딩에 의해 연방대법원장이 되어서 9년간 활동하고 사임하였다.[3] 이로써 그는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행정부 최고 수반과 사법부 최고 수반을 모두 지낸 인물이 되었다. 대통령으로써의 업적은 그다지 별볼일 없었지만 연방대법원장으로써의 평판은 매우 좋았다고. 대통령보다는 오히려 법관에 더 어울리는 인물이었던 듯. 본인도 대통령보단 연방대법원장이 되는게 꿈이었다고 이야기 했다. 동료 대법관이었던 필릭스 프랑크푸르터도 루이 브랜다이스 대법관에게 저렇게 대법원장 노릇 잘 하는 사람이 왜 대통령 할때는 그모양이었을까 하는 식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4]


1929년 연방대법원장 취임 기념 단체사진.

미국에서는 그저 '제일 뚱뚱한 대통령' 정도로 기억된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임자는 미국 역사상 최고로 인기 많은 대통령 중 하나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이고 후임자 역시 업적이 있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우드로 윌슨이다보니 그 둘 사이에 끼여서 많이 존재감이 없는 안습한 인물.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카츠라-태프트 밀약의 주역인 만큼 좋게만 볼 수는 없는 게 사실. 대통령으로써도 시원찮은 인물이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나름대로 혁신주의 운동을 이어 나갔지만 루스벨트와 윌슨의 그늘에 가려서 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대법원장으로서 내린 판결은 되려 루스벨트나 윌슨보다 진보적인 성격을 띄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2. 본격 비만 대통령!



크고 아름다운 태프트의 전용 욕조


필리핀에서. 밑에 깔린 소가 힘들어 보인다. 야, 저 소는 무슨 죄냐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최고로 뚱뚱한 인물로 유명하다. 최고로 몸무게가 나갔을 때는 175kg이나 나갔다고.[5] 그래도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120kg대였지만 대통령이 되면서 백악관에서 50kg나 불어났다고 한다. 그 당시에 붙은 별명이 "빅 빌 태프트(Big Bill Taft)". 그의 비대한 체중은 지금도 미국에서 유머의 소재로 쓰이곤 하며 체중과 관련한 일화도 많이 남겼다.

  • 태프트가 필리핀에서 식민지 조사를 할 때 당시 국방장관 엘리후 루트에게 "하루 종일 걷다가 다행히 40km은 말을 타고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보고를 했는데, 루트의 답장은 "그래, 그 말은 멀쩡하오?" 위의 사진을 보면 전혀 멀쩡하지 않다

  • 마찬가지로 필리핀 여행 도중 체스터 니미츠가 함장으로 있던 구축함 디케이터에 탑승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해군 표준보급품 의자에 앉을 수가 없어서 니미츠는 결국 안락의자를 2개 사온 다음 목수를 시켜 손잡이를 제거하고 하나로 합처 더블사이즈 의자로 만들어 제공했다고 한다.

  • 목욕을 하다가 욕조에 몸이 끼는 바람에 간신히 구조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의 체구에 맞춘 크고 아름다운 욕조가 특별히 설치되었다. 성인 남성 3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라고.


    각하 나이스샷

  • 골프를 무척 좋아했는데 비대한 뱃살 탓에 허리를 굽힐 수 없어서 페어웨이에서도 골프공을 티에 올려놓고 칠 정도였다고.

  • 보다 못한 영부인이 다이어트하라고 바가지를 긁었지만 계속 쳐묵쳐묵. 하루는 간식을 먹고 싶어서 몰래 백악관을 빠져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먹다 남은 음식을 짱박아놓기도 했다. 이쯤 되면 식탐 정도가 아니라 가히 글자 그대로 식신이잖아.

  • 이런 자학개그를 한 적도 있다. "얼마 전 전차를 타고 가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그 자리에 숙녀 셋이 앉더군요."

  • 하루는 동생과 함께 극장에 갔는데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호러스(태프트의 동생). 이 극장에 불이 나면 난 덩치 때문에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내 몸에 불이 붙고 말 거야."

  • 매사추세츠 베벌리 만에서 수영을 했는데, '면적이 넓은' 그가 수영하자 지역 주민들이 수영을 하지 못하고 물 밖에 나오거나 아예 물에 들어가지도 않고 태프트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을 가진 한 소년이 있었는데 이 소년이 병원을 갔다. 간호사가 소년의 손톱 물어뜯는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그거 계속하면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단다"라고 말하자 소년은 그 버릇을 고쳤다. 이후 그 소년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려고 들어온 태프트를 만났는데 대뜸 그의 비대한 배를 보더니 "아저씨는 손톱을 물어뜯는군요!"라고 외쳤다.

  • 절친한 친구이자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촌시 디퓨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이 대통령을 만나자 태프트의 비대한 배를 만지면서 "이 배 안의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이름을 뭐라 할 건가?"라고 묻자 태프트는 "음, 아들이면 윌리엄(자신의 이름)이라고 짓고 딸이면 시어도라(전임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여성형 이름)라고 지을 거야. 그런데 이게 그냥 뱃속의 가스라면 촌시라고 부를 걸세."라고 받아쳐 데꿀멍하게 만들었다. 비대한 이미지 때문에 둔할 것 같지만 아주 재치가 없지는 않았던 듯. 이 글을 보는 위키러가 자신이 비만이라면 주변에서 저런 질문을 할 때 써 먹어보자.

  • 먹성과 덩치에 어울리게(?) 식사 후에는 항상 졸아서 보좌관들을 당혹스럽게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영부인이 "잠자는 미녀(Sleeping Beauty)"라는 별명을 붙였으며 한 의원은 "대통령께서는 제가 정치 경험을 통틀어 완전히 잠재운 최대의 청중(the largest audience)입니다."라고 말했을 정도.

  • 고위관료들과 오찬을 가지던 중 축음기로 음악을 틀라고 요구해 놓고 첫 곡이 끝나기 전에 잠들어 버렸다. 그러다가 다시 깨서 두 번째 곡을 요청하고는 또 잤다. 당시 동석한 재무장관 맥베이가 이건 아니다 싶어 활기찬 행진곡을 틀게 해 놓고 "죽은 사람 아니면 누구라도 깨겠지요."라고 장담했지만,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이를 본 맥베이는 보좌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돌아가신 게 틀림없네요." 이런 잠탱이가 어떻게 예일대 차석을 차지했는지 진실은 저 너머에.

  • 백악관에서 가족 만찬을 하던 도중 막내아들인 찰리가 부친의 정책에 반대하는 민감한 발언을 해서 분위기가 싸해졌다. 남편 눈치를 보던 영부인이 막내를 벌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묻자 태프트는 "저 아이가 저런 말을 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요."라고 허허 웃으며 넘겼다. 가히 덩치에 어울리는 관대함.

시어도어 루스벨트와는 처음에는 친밀했지만 태프트가 대통령이 되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하지만 1919년 루스벨트가 죽자 장례식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그날 비가 왔는데도 루스벨트가 안장되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그의 묘를 떠나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봤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뚱뚱했다는 것, 행정부와 사법부의 최고 수반을 모두 지냈다는 것 외에 그가 세운 사소한 기네스가 하나 더 있는데 지금까지의 미국 대통령 중 마지막으로 수염을 기른 대통령이다. 이후의 미국 대통령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태프트 이후로 수염을 기른 인물이 없다.정말 쓸데없는걸로 기록이 남았다 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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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한국프로야구도 최초의 시구자가 대통령인 전두환 대통령이다.
  • [2] 참고로 이 때 선거에서 진보당은 공화당에 대해서는 완승을 거두었다.
  • [3] 사실 태프트가 어떻게 연방대법원장에서 물러났는지 여러 기록이 있다. 어떤쪽에서는 은퇴했다고 하고, 또 어떤쪽에서는 사임했다고 하는데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대부분 사임으로 표시한다.
  • [4] 원문: "It is difficult for me to understand why a man who is so good a Chief Justice...could have been so bad as President."
  • [5] 태프트의 키는 183cm. 183cm 기준 표준체중은 73.7kg. 그리고 183cm에 175kg면 BMI 52.3(!!!)이므로. 미국의 고도비만 기준점은 BMI 40이니 그는 고도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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