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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트 체임벌린

last modified: 2015-03-26 16:16:15 by Contributors

Wilt Chamberlain



이름 윌턴 노먼 체임벌린
Wilton Norman Chamberlain
생년월일~사망 1936년 8월 21일~1999년 10월 12일
2m16cm
체중 125kg
포지션 센터
드래프트 1959년 territorial 드래프트[2]
필라델피아 워리어스에 지명
등번호 13번[3]
소속팀 필라델피아/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1959–1965)[4]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1965–1968)
LA 레이커스(1968–1973)
수상내역 정규시즌 MVP 4회
파이널 MVP(1972)
All-NBA First Team 7회
All-NBA Second Team 3회
NBA All-Defensive First Team 2회
NBA All-Star Game MVP(1960)
NBA Rookie of the Year(1960)[5]

1960년 NBA 정규시즌 MVP
페티트 윌트 체임벌린 빌 러셀
1966년 ~ 1968년 NBA 정규시즌 MVP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 스 언셀드

1960년 ~ 1966년 NBA 올해의 득점왕
페티트 윌트 체임벌린 배리

1960년 NBA 올스타 MVP
엘진 베일러 & 페티트 윌트 체임벌린 오스카 로버트슨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영구결번
No.13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영구결번
No.13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영구결번
No.13

Contents

1. 소개
2. 플레이 스타일
3. 기록
4. vs 러셀
5. 일화, 떡밥
6. 기타

1. 소개

NBA신화 그 자체. 현존하는 코트의 괴물.
60년대를 주름잡은 역사상 최고의 센터 중 하나(Center, 5번 포지션).
닉네임으로 'Wilt the Stilt', 'The Big Dipper'라 불렸다.
역사상 유일한 3만 득점 - 2만 리바운드의 기록 보유자이다.

2. 플레이 스타일

공격적인 부분에 있어 만능 토탈 패키지. 오른손잡이로 페인트존 내에서 모든 득점이 그의 오른손에서 쏟아져 나온다.
그의 필살기로는 'Lay down'[6]이 있는데, 정말 기괴한 핑거롤이 아닐 수 없다. 설명하자면 보통 레이업처럼 공을 올리는데, 보통 선수들 같으면 공이 포물선처럼 올라가는 단계가 있기 마련인데 이분한테 그딴 건 없다. 그냥 공을 말그대로 골대에 내려두고 오기 때문에 블락 시도하면 바로 골텐딩 작렬... 사기적인 팔길이에서 구사하는 레이 다운을 그 시대의 어떤 선수도 손쉽게 막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 드리블이나 슛 같은 게 현대 기준으로 엉성해 보일 수 있지만, 60년대 기준으로 보면 탑클래스의 기술적인 센터라 평할 수 있다. 그 당시에도 윌트에게 기술적인 점을 문제 삼자 Fade away를 그 키에 무기로 삼고, 패스를 문제 삼자 그 해 어시스트 왕을 차지한다.[7]

또한 그의 점프력은, 오죽하면 자유투 라인에서 한 발 도약으로(!) 레이업이나 덩크를 성공시켰을 정도다. (마이클 조던이나 줄리어스 어빙도 자유투라인 덩크를 성공시켰으나, 그건 전력으로 달려서이고 체임벌린은 실제 '자유투'할 때에 그랬다. 대학리그 당시.) 자유투 시 라인을 넘으면 안된다는 룰[8]이 이 때문에 생겼다.

3. 기록

득점, 리바운드, 출전 시간에 있어 압도적인 기록을 보인다.

한 경기 100득점 기록[9][10], 한 경기 50리바운드 기록(역시 당연히 역대 최대), 시즌 평균 득점 50득점 이상, 61/62시즌 경기당 플레이타임 48.5분(nba의 정규경기는 4쿼터까지 48분이다. 체임벌린은 이 시즌 결장없이 80경기를 모두 출장하였고, 연장전 포함해서 시즌 내내 단 7분만 쉬었다고 한다. 51경기 연속 "풀타임"출전도 이때 세운 기록.) 등등.

루키 시절 기록도 무시무시해서 데뷔경기에서 43득점 28리바운드(!)를 기록했는데 이 43득점은 NBA 역대 데뷔전 최다 득점 기록이고, 시즌 총 2707득점(경기당 37.6득점)과 1941리바운드(경기당 45리바운드)를 기록했는데 이 역시 nba 역대 루키시즌 최다 득점과 최다 리바운드 기록이다.(...)

NBA는 이러한 그의 영향력을 '줄이기'위해 페인트 존을 넓히는 등 무단히 룰을 바꿔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50-30을 밥먹듯이 하였으니... 한 때 시즌 평균 50.4 득점을 한 적도 있다.[11]

당시에는 블록슛이 집계되지 않아서 트리플-더블은 그리 많이 하진 않았다. [12] 만약 그 당시 블록슛이 집계 되었다면[13] 쿼드러플-더블, 트리플-더블 기록이 다시 쓰였을 거라는 의견이 다수이다.

4. vs 러셀

체임벌린과 빌 러셀은 10년 동안 무려 142경기나 맞대결을 펼쳤다. 평균 1년에 약 14번 이상 대결을 펼친 것. 상대전적은 윌트가 57승 85패로 열세에 있고, 체임벌린은 러셀과의 맞대결에서 평균 28.7점, 28.7 리바운드를 기록했다.[14].

이렇게 괴물 같은 능력으로 전설 같은 기록들을 써내려간 윌트 체임벌린이지만 빌 러셀의 팀이자 버드 조항이 없어서 온갖 자원이란 자원은 싹쓸이해갔던 [15] 보스턴과의 플레이오프 대결에선 계속 패배[16]하며 우승과는 거리가 먼 시절[17]을 계속 보내다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서 알렉스 해넘 감독의 설득으로 수비형 센터로서 동료를 살리는 플레이로 스타일을 바꾼다. 수비형 센터로 스타일을 바꿔서 시즌 평균 24.1득점(...) 24.6 리바운드 7.8 어시스트를 기록, 마침내 빌 러셀과 보스턴 셀틱스를 꺾고 우승에 이른다. 그 10년 간 러셀은 9번의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체임벌린의 우승은 고작 1번뿐이었다.

그럼에도 체임벌린은 수비와 리바운드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러셀과의 맞대결에서 훨씬 많은 리바운드 숫자를 기록했다. 1960년 11월 25일 체임벌린이 기록한 한 경기 최다 55개 리바운드는 바로 러셀과의 맞대결에서 기록한 것.

실제 1대1 매치업에서는 러셀이 안됐다고 한다. 일단 사이즈부터가 러셀이 딸리는 데다가 개인기량이 워낙 좋고 운동능력이 워낙 개사기라... [18]

5. 일화, 떡밥

빌 러셀보스턴 셀틱스 때문에 우승은 2번에 그쳤지만 체력/신체에 관해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무수한 일화들을 가지고 있다.(살아있는 야생 퓨마와 맨손으로 대적해서 때려잡은 적도 있다고 한다.) 그의 기록들을 보다보면 한 경기 30-20 정도는 겨우?라 생각하게 될 정도.

결론적으로 엄청난 운동능력의 소유자이다. 대학 시절에는 육상 종목에서 우승을 휩쓸기도 하고, 힘이 엄청나게 세어서 내기 팔씨름으로 용돈벌이(!!!)를 했다고 할 정도이다.

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팀동료였던 게리 와드 :

"윌트가 나나 빌리를 데리고 밖에 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사람들이 항상 그를 둘러싸고 사인을 요청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어느날 밤 홈경기가 끝난 후 우리 셋은 필라델피아 중심가를 걷고 있었죠. 밤 11시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나처럼 해봐요' 놀이를 하면서 가고 있었죠. 다른 모든 세 젊은 독신남이 모이면 그렇듯 바보스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기둥 하나와 마주쳤는데, 마침 윌트의 차례가 되었었죠. 그는 두 팔을 벌려서 기둥을 끌어안더니 자기 몸을 공중으로 들어올려서 기둥과 45도의 각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공중에 자기 몸을 고정시킨 자세로 대략 1분 정도를 버티다[19]가 내려왔죠. 빌리와 나도 시도해봤습니다. 우리는 공중으로 발을 박차고 올라갔지만 그 즉시 땅으로 떨어졌죠. 두 명 다 단 1초도 그 자세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20]


큰 키에 팔길이까지도 무지막지하다.


나중에 무릎을 다쳐 운동 능력을 상실하지만 그 몸으로 카림 압둘 자바의 스카이 훅도 블록했다.


이게 부상으로 운동 능력을 많이 잃은 상태에서 점프한 모습.

여담이지만, 40대 중반의 나이에 배구 홍보차 LA를 방문했는데, 마침 LA 레이커스의 연습이 있었다고 한다. 어린 선수들이 뛰는 모습이 기특했던 건지 그 특유의 과시욕이 불타올랐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심심풀이로 나선 연습 경기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그 매직 존슨의 공을 블록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럴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그냥 넘어갔으면 될 일을 당돌한 매직 존슨이 "님 반칙해놓고 왜 모른 척? 뻔뻔하네염 'ㅅ'"[21] 라고 대선배 체임벌린에게 함부로 떠들었던 것. 순간 새파란 아들뻘에게 모욕을 당한 체임벌린의 얼굴은 아니 무슨 드래곤 볼도 아닌데 금방 시뻘겋게 부풀어 올랐다. 곧 그는 손가락을 들어 매직을 겨냥하였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 경기장에서 레이업은 없다." 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그 말대로 상대팀 선수들[22]의 모든 골밑공격만을 아니 그러니까 헬핑을 가라고 좀 블락으로 막았다. 그 연습경기 내내 매직은 단 한 번의 골밑 득점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매직 +4인과 대굇수 윌트 체임벌린의 난잡한 골밑 공성전(...)은 래리 브라운의 입에서 나온 목격담이다.[23]

정말 쓸모없는 여담이지만 이 새파란 애송이 매직 존슨은 훗날 윌트의 화려하다 못해 뇌가 맛이 갈 듯할 여성편력을 본받다가 에이즈에 걸리게 된다(...)

보유하고 있는 대기록들과 신체능력 등으로 인해 아직도 농구팬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떡밥으로 등장한다. 그가 현재 리그에 등장한다면 명실공히 리그 최강의 센터가 되었을 거라는 편과, 당시 농구가 현대농구보다 상당히 낙후된 점을 들어 그 정도 대기록은 남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편이 대립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의 축복받은 신체운동능력 만큼은 NBA 역사상 가장 뛰어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데뷔 시즌의 몇 없는 기록 영상들 중에는 리바운드를 잡자마자 무슨 퓨마처럼 달려서 레이업을 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림 위로 공이 올라올 무렵에 뒤에서 죽을 힘으로 따라오던 상대편 선수는 겨우 자유투 라인에 도달했다.(...) 물론 같은 편에서는 아무도 가담하지 않았다. 그게 뭐야 몰라 무서워

농구가 각종 구기종목 중 신체능력과 체격의 영향이 가장 큰 종목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언제 뛰었다고 해도 NBA를 지배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인간, 조금 더 부풀려보자면 종의 한계를 초월하는 신체의 소유자였다.

현대 농구가 센터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만일 오늘날에 윌트 체임벌린이 나타났다면 스피드, 체력, 내구성이 전부 최상이면서 키, 팔 다리 길이, 운동능력, 기술 등이 전부 최상급이기 때문에, 리그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건 물론이요 오히려 리그를 선도하면서 지배하고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서 다시 센터 전성시대가 열렸을 가능성도 높다. 현 리그 최고의 몸뚱아리라는 르브론 제임스보다 거의 전 부분에서 비교우위를 가진 피지컬이니... 스몰 라인업은 도태된 전술로 여겨졌을 것이다.

신체능력은 역사상 최고였고 힘도 무시무시했고 상대 선수를 블락으로 깔아뭉갠 일화도 무수히 많지만... 다행히 성격은 착했다고 한다. 이런 무시무시한 플레이어를 상대 선수들이 가만 안 놔뒀으리라는 건 안 봐도 당연한 일이고 실제로 폭력에 가까운 수비를 종종 했지만 경기 중에는 도를 넘어서는 정도만 아니면 보복하거나 같이 짜증낸 적이 없다고 한다. 이 양반 성격이 후대의 어느 속좁은 농구선수강백호의 모티브 같았다면 NBA는 폭력사건 때문에 60년대에 문 닫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24]

6. 기타

평생 독신이었지만 20,000명의 여인과 동침을 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사실 정확한 수치를 밝힌 적은 없지만, 본인의 자서전에서 "나는 리바운드를 잡은 숫자만큼 여자와 잤다"라고 했는데, 통산 기록이 2만 개가 넘기 때문... 하룻밤에 2명 이상과 자지 않으면 힘든 숫자다.


저택의 Love-making room, 즉 "사랑을 나누는 방" ㅎㄷㄷ

은퇴 후 배구에 뛰어들어서 배구에서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되었다고 한다(...) 무지막지한 팔로 스파이크를 했다면 ㅎㄷㄷ 오히려 농구보다는 배구 행정에 더 일을 많이 했다고. 그래서 배구/전현직 배구인 항목에도 올라와 있다.

92년부터 심장질환을 앓았는데, 99년 LA의 저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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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참고로 영화 코난을 찍을때 사진. 슈워제네거가 ESPN의 빌 시몬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안드레와 윌트가 종종 아놀드를 아이처럼 번쩍 들어올리곤 했다고. 거버네이터를 꼬꼬마 취급하는 위엄 또한 셋이서 자주 어울렸는데 안드레가 워낙 대인배라 항상 저녁값을 지불했다고 한다. 반면 윌트는 천하의 짠돌이라 절대 안 냈다고(...) 그러던 어느날, 아놀드가 "오늘은 내가 쏴야지"하고 맘을 먹고 안드레가 화장실에 간 사이 몰래 계산을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안 안드레가 화가 나 "너 나 열받게 했어!"라면서 아놀드를 들어 올리자 옆에서 윌트가 "그래! 나도 낼려고 했다고!"(...)하면서 거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아놀드의 반응은 "웃기고 있네!(That's a good one!)"
  • [2] 지역연고제를 하는 NBA특성을 위해 지역연고팀이 해당지역의 유망한 신인을 우선지명하는 우선지명제 비슷한 방식이다. 1949년에 NBA가 출범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1965년에 이 제도는 없어졌다. 이 제도를 통해 NBA데뷔해서 유명해진 선수로는 체임벌린 외에도 아리진, 드 매카우리, 헤인슨, 이 로저스, 오스카 로버트슨, 등등이 있다.
  • [3] 이 등번호는 필라델피아, 골든 스테이트, 그리고 레이커스 3개구단의 영구결번이다.
  • [4] 본래 필라델피아 워리어스였다가 연고지를 샌프란시스코로 옮겼다. 현재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전신. 체임벌린은 팀이 연고지를 이전하기 전에 필라델피아에 터를 잡은 세븐티식서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 [5] 이 시즌에 정규시즌 MVP도 함께 휩쓸었다. 리바운드왕과 득점왕은 덤. ㅎㄷㄷ
  • [6] 레이업에서 유래
  • [7] 이 때의 어시스트 기준은 받자마자 슛... 이 정도면 상대팀 선수들은 윌트를 보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
  • [8] 정확하게는 자유투를 던지고 나서, 던진 공이 림에 맞기 전에 던진 선수가 자유투 라인 너머에 발을 대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노골이 되더라도 재빨리 들어가 풋백을 집어넣는 등의 플레이가 가능하기 때문. 2011년 기준 현행 규정상 자유투를 레이업처럼 던지는 것은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 [9] 당연히 역대 최대. 2위는 코비 브라이언트 선수의 81득점... 넘사벽이 느껴진다.
  • [10] 원래 윌트는 자유투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이유는 "손목 힘이 너무 좋아서 공이 훅 날아간다-_-; 동영상을 보라. 샤킬 오닐을 막는 핵어샥 작전은 원래 윌트를 위한 것이었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자유투 32개를 던져서 28개를 성공시켰다.
  • [11] 30대 중후반쯤에는 수비형 센터로 변신했더니 어떤 아나운서가 "이제 득점력이 한 물 갔나봐요?" 라고 철없는 발언을 했었다. 그 때 윌트의 대답은 "고~~~뤠?"(...) 그리고 바로 다음날 치뤄진 경기에서 45득점을 넘겼다(...)
  • [12] 그래도 트리플-더블 횟수 역대 4위.
  • [13] 블락의 경우 너무 대단해서 따로 집계했다는 기록원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의 기록에서는 정말로 10개는 기본적으로 넘어간다. 또한 당시 상대편에서 뛰었던 선수들은 마치 벽과 함께 플레이하는 기분이었다고... 뭐야 이 사람 이거 무서워
  • [14] 러셀은 윌트 상대 평균 14.5점, 23.7리바운드 기록
  • [15] 다만 윌트와 러셀의 차이가 팀원의 차이는 결코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69시즌 당시 윌트의 레이커스엔 제리 웨스트, 엘진 베일러라는 전설들이 포진한 최강라인업이었고 보스턴은 늙고 병든 라인업으로 포스트시즌에도 턱걸이로 진출한 팀이었다. 당시 셀틱스가 결승에서 선전해 7차전까지 몰고갔으나 7차전은 레이커스의 홈에서 치뤄지기까지해 셀틱스의 승리를 점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오죽하면 레이커스 구단주가 우승시 풍선 떨어지는 것과 밴드연주, 수훈선수 인터뷰 순서까지 정해둘 정도(베일러, 웨스트, 챔벌린 순) 그러나 셀틱스는 극적으로 업셋 우승에 성공했고 레이커스 직원들은 천장에 세팅된 풍선을 하나하나 꺼내야했다(...) 사실 챔벌린은 포스트시즌에서는 최고의 득점원도 아니었다. 그가 플옵 득점 1위를 차지한 적은 단 한번이었으며 엘진 베일러, 제리 웨스트에게 플옵최고 득점원 자리를 항상 내줬다. 큰 경기만 되면 더 강한 모습을 보인 빌 러셀과 대비되던 모습. 실제로 전문가들은 챔벌린이 팀을 이끌기보다는 본인의 스탯에 신경쓴다는 평가를 내렸으며 그가 이와같은 성향을 버리고 나서부터야 우승에 성공했다.(첫 우승당시 그의 평균득점은 24점을 조금 넘었다).
  • [16] 당시 보스턴의 전략은 80년대 마이클 조던을 마크했을 당시의 그것과 완전히 똑같았다. "윌트(조던)에게 득점은 주되, 우리는 우리의 기량차이로 나머지 상대를 압살하며 승리한다-." 결과적으로 두 선수 모두 본연의 스타일 속에서는 끝끝내 그 시절의 레전드들이 포진했던 보스턴과의 맞대결에서 한 번도 시리즈를 따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끝끝내 시카고 구단 자체적인 징크스로 남게 된다. 인재가 많은 팀이 이기는 것은 어딜가든 자명한 진리이건만...
  • [17] 그러나 어딜 가도 월트가 들어간 팀은 챔피언 컨텐더로 낙점되었다.
  • [18] 다만 러셀은 팀을 위해 자기희생을 하는 스타일이라 본인은 매치업에서 져도 팀을 이기게 하는 스타일인 반면 챔벌린은 개인활약에 훨씬 신경쓰는 선수였다 (스타일을 바꾸기 전 기준) 블록슛의 경우 숫자는 얼추 비슷했으나 챔벌리은 호쾌하게 블록을 해 관중석으로 날려버리거나 상대팀이 되찾는 경우가 많았는데 러셀을 최소한의 경제를 해 항상 블럭당한 공이 동료들 손에 가도록 신경을 썼다. 팀플레이에 대한 이해도 역시 러셀이 월등했다. 챔벌린이 러셀 스타일로 바꾸고 나서야 비로소 우승을 했다는 것, 그리고 러셀보다 월등한 동료를 데리고도 69년에 보스턴에 졌다는 걸 기억하자. 러셀과 챔벌린의 차이는 단순히 팀빨이 결코 아니었다.
  • [19] 이게 왜 대단하냐고 묻고 싶냐면, 직접 해봐라... 역도 선수라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윌트는 달리기와 점프에 특화된 농구 선수다!!!
  • [20] 게다가 이 아저씨 키가 7ft 1.06in, 대략 216~7이다...ㄷㄷㄷ
  • [21] 말투가 이상하지만 넘어가자. 엄밀하게 따지면 매직은 윌트를 비아냥거렸다.
  • [22] LA의 모든 선수들이다. 당연히 압둘 자바도 포함되어 있고 어쩌면 루키 시절의 제임스 워디도... 흠좀무
  • [23] 다만 이런 일화가 항상 그렇듯 과장이 섞여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이때 코트에 있을게 분명한 카림 압둘자바는 윌트만큼 크고 11살이나 어리다. 카림의 데뷔 당시 전성기가 이미 지났던 윌트는 현역시절 매치업에서도 카림에게 밀렸는데(물론 가끔 노장의 투혼을 발휘해 그를 압도한 적고 있다) 은퇴한지 한참 지난 이때, 아무리 골밑만 막았다고 한들 현역인 카림에게 단 한 차례의 골밑공격도 허용하지 않았을까?
  • [24] 조던도 엄청 심한 견제를 받았지만 체임벌린만큼은 아니었다. 배드 보이스의 조던 룰은 유명하니 두 말 할 필요도 없으나 체임벌린은 기본이 3명에 명문 팀의 경우 +α로 능력있는 수비수의 일리걸 디펜스까지 겹쳐있었다. 흠좀무... 게다가 이 때는 3점슛까지 없어 골밑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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