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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last modified: 2015-09-17 14:26:15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유고슬라비아 왕국
3.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3.1. 외교 관계
3.1.1. 한국과의 관계
4.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 (신 유고 연방)
5. 국가(國歌)
6. 유산
7. 분열이 예정되었던 인공 국가인가?

1. 개요

Yugoslavia, 직역하면 "남(南) 슬라브인의 땅"

1918년부터 2006년까지 동유럽 발칸 반도 서부에 위치했으며 지중해(좀 더 정확하게는 아드리아해)에 접해 있던 국가[1]. 수도는 베오그라드.

2. 유고슬라비아 왕국

(ɔ) from


세르보크로아트어: Kraljevina Jugoslavija / Краљевина Југославија (크랄례비나 유고슬라비야)
슬로베니아어: Kraljevina Jugoslavija (크랄례비나 유고슬라비야)
마케도니아어: Кралство Југославија (크랄스트보 유고슬라비야)
알바니아어: Mbretëria Jugosllave (음브레터리아 유고슬라베), Jugosllavia(유고슬라비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르비아 왕국에 의해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당시 오스만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지배하에 있었던 여러 남(南) 슬라브인들 지역들을 합쳐서 만들어졌던 연합왕국에서 시작되었다. 세르비아 국왕이 그대로 연합왕국 국왕이 되었다.1918년 창건 당시에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Kraljevina Srba, Hrvata i Slovenaca)이라는 긴 이름이었다.

1929년에 들어서야 유고슬라비야(Jugoslavija, Југославија)라는 국명이 정해졌는데, 이는 '남슬라브인의 땅'이라는 의미이다.

1941년 나치 독일군의 침공으로 정부와 왕실은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 역대 국왕
    • 페타르 1세 카라조르제비치 (1918-1921년)
    • 알렉산다르 1세 카라조르제비치 (1921-1934년)
    • 페타르 2세 카라조르제비치 (1934-1941년)

3.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ɔ) Flag designed by Đorđe Andrejević-Ku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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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세르보크로아트어: Socijalistička Federativna Republika Jugoslavija / Социјалистичка Федеративна Република Југославија (소치얄리스티치카 페데라티브나 레푸블리카 유고슬라비야)
슬로베니아어: Socialistična federativna republika Jugoslavija (소치알리스티치나 페데라티브나 레푸블리카 유고슬라비야)
마케도니아어: Социјалистичка Федеративна Република Југославија (소치얄리스티치카 페데라티브나 레푸블리카 유고슬라비야)
알바니아어: Republika Socialiste Federative e Jugosllavisë (레푸블리카 소치알리스테 페데라티베 에 유고슬라비스), Jugosllavia(유고슬라비아)

대체로 유고슬라비아라고 하면 이 국가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2차대전 이후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집권하여 왕정이 폐지되고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즉 유고슬라비아 연방이라는 이름의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고 티토는 유고 연방의 총리대통령으로서 여러 민족들과 인종들로 얽히고 설킨 유고슬라비아를 통치했다. 그런데 정작 사회주의 국가였지만 사회주의 국가의 맹주였던 소련과는 거리를 두고 독자노선을 추진하였다. 그래서 소련 중심의 공산권에 대항하던 서방에서 유고슬라비아에 많은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유고슬라비아의 특성과 다양성을 규정하던 것이 이른바 '1234567 국가'라는 얘기가 있었다. 즉,

1개의 연방국가,
2개의 문자(로마자와 키릴 문자),
3개의 종교(로마 가톨릭교, 그리스 정교, 이슬람교),
4개의 언어(세르보-크로아티아어, 슬로베니아어, 마케도니아어, 알바니아어),
5개의 민족(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마케도니아인, 알바니아인),[2]
6개의 연방 구성국(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7개의 접경국가(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리스, 알바니아)

라는 것이다.

유고 연방을 이루던 국가들은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서로 자기 말로 떠들어도 90% 이상 알아듣는다.[3] 그러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옛날 서로마 제국에 속하게 되었고 이외의 지역은 동로마 제국에 속하게 되면서, 서쪽 국가는 문자로 표기할 때 로마자를 쓰고[4] 동쪽 국가들은 키릴 문자를 사용하게 되었다.[5] 이후 역사의 기로에 설 때마다 자주 동방문화권과 서방문화권으로 편입되었던 까닭에 같은 언어를 씀에도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

냉전 시기에도 유고 연방은 소련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다. 서유럽과 가깝고 풍광이 아름다운 아드리아해에 면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경제적으로 다른 공화국보다 부유했고 서유럽의 문화가 유입되었지만, 인구는 세르비아가 제일 많았으며, 상대적으로 낙후된 경제 탓에 군 입대가 많아서 세르비아인들이 거의 연방군을 장악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동유럽 사회주의권 국가들 중 유일하게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에 오랜 기간 참가했던건 물론 개최까지 했다.[6]

© Hoshie (cc-by-sa-3.0) from


그러나 1980년 유고 연방을 안정적으로 통치해오던 티토 대통령이 88세를 일기로 서거하면서 티토의 영도하에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던 유고슬라비아는 그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티토 사후 유고 연방의 정치권력 체제는 각 공화국의 대통령이 번갈아 가면서 맏는 식의 집단지도체제로 바뀌었으나 사실상 세르비아 공화국의 연방내 권력독점으로 움직였고 결국 연방의 큰 공화국이었던 세르비아가 유고 연방내 다른 공화국들을 차별하면서 이에 유고 내에서 민족 및 지역 갈등이 점점 고조되었다. 사실 티토 이전부터 세르비아계는 티토의 형제애와 일치 정책에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고 밀로셰비치는 티토가 죽기 전부터 공공연하게 대세르비아주의 성향을 드러내고 여러 사람들의 경계를 사고 있었다.

밀로셰비치는 1987년 세르비아 대통령에 등극하면서 정치공작을 감행하면서 세르비아 인들의 감정에 불을 지피는 방식으로 시위를 조직해 몬테네그로와 보이보디나 지역의 고위층들을 자신의 심복으로 교체시켰고, 1988년에 아예 1974년에 제정된 헌법을 무시하면서 위헌적으로 헌법을 개정했고, 특히 코소보와 보이보디나 지역에 소요사태가 일어나자 소요를 진합한다는 명목으로 코소보와 보이보디나 자치주의 자치권을 박탈해 타 공화국의 반발을 샀고, 이 와중에 연방 대통령직을 신설하려고 하면서 갈등이 고조되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유고슬라비아는 1980년대 오일쇼크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고, 이후에 여러번 외채를 탕감받았지만 여전히 200억 달러가 넘는 외채를 보유하고 있었고, 급속한 물가상승과 두자릿대의 높은 실업률, 저성장으로 경제위기를 겪고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위기를 극복할려는 노력은 남북간 경제격차와 정치적 견해차로 인한 각 공화국간의 갈등으로(주로 인구가 많은 세르비아 VS 경제권을 쥐고 있는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의 구도였다.)무위로 돌아가기 일쑤라 별 효과를 보지못했고, 그 결과,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각 공화국간의 갈등은 더더욱 심화되고 지식인들은 갈등을 진정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겼으며, 각 공화국의 지도층들도 자신이 불만의 표적이 되지않고 인기를 높이기 위해, 타 공화국이나 타 민족에게 경기침체의 원인으로 돌리면서 책임을 회피했고, 더 나아가 자 민족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타 공화국과 타 민족을 향해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자 공화국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태도를 보여주는 바람에 갈등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그러던 중에 1989년 동구권 각지의 공산정권이 속속 붕괴되면서 사회각계에서 개혁의 목소리가 터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유고슬라비아 공산당도 대세에 따라 자연스레 1당 독재체제를 종식하기 위해 1990년 1월에 전당대회를 열었다. 전당대회에서 세르비아 대표단은 필리버스터를 발동했고, 슬로베니아 대표단이 퇴장당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크로아티아 대표단은 이에 격분하여 퇴장하면서 반쪽자리 전당대회로 전락했다, 이후 각 공화국별로 다당제 총선을 시행하가는 가운데서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간의 갈등이 여전히 지속되면서 유고 연방은 국가 존속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밀로셰비치였지만 다른 공화국의 지도자들도 '평화 대신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운운하며 민족간의 분열을 부추겼다. 보스니아만 해도 무슬림의 지도자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가 공공연하게 보스니아를 독립시킬 수 있다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경발언을 하여 세르비아계들의 반발을 샀다.

그러던 1991년 6월 25일 유고 연방의 6개의 공화국을 구성하고 있던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가 유고 연방에서 탈퇴,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발발, 연방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에 유고 연방의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세르비아가 군대를 파견하면서 세르비아 중심의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과 연방에서 탈퇴한 슬로베니아 공화국과 크로아티아 공화국간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한편 유고 인민군과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간 전쟁이 치열해져 가던 1991년 9월에는 남부의 마케도니아가 유고 연방에서 탈퇴, 분리독립을 선언했고 이듬해인 1992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분리 독립을 하면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은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티토 정권 시기 부통령 및 고위 관료를 지냈던 밀로반 질라스 등 몆몆 정치인사들이 유고 연방의 분열을 필사적으로 막아보려고 각 공화국들이 전쟁을 중단하고 각자 양보하여 통일을 유지할 것을 호소했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질라스는 1995년 자신의 자택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었다.[7]

3.1. 외교 관계

3.1.1. 한국과의 관계

유고슬라비아는 중립, 제3세계 국가였지만 대한민국과의 관계는 좋지 못했다.[8] 왜냐하면 1950년 한국전쟁UN미국이 발의했던 대한(對韓) 지원에 대해 반대를 했던 나라이기 때문이다. 반대를 하는 이유는 UN 상임이사국이었던 소련 때문이었다.

이 당시 소련은 주 UN 대사가 아예 불참하였으며 미국, 영국 등이 대한민국에 군사 및 물자원조를 발의하게 되자 자국 언론 등을 통해서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 및 물자원조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으며 즉각 이를 철회하라는 주장까지 폈던 적이 있다.

그로 인해 유고슬라비아도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 및 물자원조에 대해 반대했으며 급기야 대한 지원에 대한 투표에도 아예 기권 및 불참하는 등 대한민국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UN에서 공식적으로 상임이사국이었던 유고슬라비아의 기권으로 인해[9] 오히려 다른 비상임이사국들도 서방세계의 대한 지원이 수월했던 것은 사실이다. 만약 유고슬라비아가 반대했다면 대한 지원은 많은 애로사항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대한 유고슬라비아의 속사정은 조금 복잡했다. 스탈린과 사이가 안 좋았던 티토민포름에서 제명당한 직후 UN의 비상임이사국으로 뽑힐 때도 소련의 반대를 미국과 영국의 지원으로 타개했을 정도로 공산권과 거리를 두었다. 심지어, 한국전쟁에 대해 북한이 주장한 북침설(대한민국 국군이 먼저 38선을 넘었다는 헛소리)을 유고슬라비아 언론에서 조롱했을 정도다.#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소련과 북한은 찌질이 이런 상태에서 비상임이사국에 오른 유고슬라비아는 굳이 서방 측에 빌미를 제공할 생각이 없었고, 그렇다고 소련이 중심이 된 동구권에 찬성할 생각도 없었다. 서방과 공산권 양쪽에서 의견을 낼 때마다 기권을 했다. 동구권은 말할 필요도 없이 유고슬라비아에 대해 비난소련 따라하기을 했다. 여기서도 욕 먹고 저기서도 욕 먹는 유고슬라비아

사실, 소련은 한국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국가를 내세워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려고 했다. 그러나, 맥아더인천 상륙작전의 성공과 북진을 보고 취소했다. 여전히 말 안 듣는 티토의 유고슬라비아는 소련에게 있어 골칫거리였고 침공계획을 세우지만 이를 알게 된 유고슬라비아는 전쟁이 있을 경우 미국과 함께 소련에 맞서 싸우겠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영국은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유고슬라비아를 몰래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심지어 소련과 전쟁을 하려고 했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

소련과 유고슬라비아의 반대와 기권에도 불구하고 UN의 대한 지원은 결국 통과되어 이들을 제외한 당시 UN 회원국 52개국이 대한민국 지원의사를 표명하게 되었고 21개국이 전투 및 의료지원 의사를 표명하였다.
1971년에 북한과 단독수교하였으나 1989년에 대한민국과도 수교하였다. 이후의 한국과의 관계 부분은 세르비아 항목을 참고.

4.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 (신 유고 연방)

(ɔ) The original uploader was Milan B. at English Wikipedia from


세르비아어: Савезна Република Југославија (사베즈나 레푸블리카 유고슬라비야)

결국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등이 떨어져 나가면서 사실상 붕괴되어 버린 유고슬라비아는 그나마 연방에 남아있던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를 주축으로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즉 신(新) 유고 연방을 선포하여 무너져가는 유고슬라비아의 명맥을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 신 유고연방은 UN(국제연합)과 국제사회로부터 정식국가로 승인을 받지 못했고 신 유고 연방 내부에서도 연방을 구성하고 있던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두 공화국끼리 갈등이 생기는 등 신 유고연방 역시 붕괴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던 1998년 코소보가 떨어져 나갈 기미를 보이자 코소보 전쟁이 벌어졌고,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강제 개입하에 전쟁이 종료되면서 당시 신 유고 연방의 대통령으로서 무소불위의 독재 정치를 펼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이듬해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 시비로 권좌에서 물러나고 다소 온건 실용파였던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가 대통령이 되면서 유고슬라비아는 민주화되었다. 이후 2003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연방국(Државна заједница Србија и ЦрнаГора, 드르자브나 자예드니차 스르비야 이 츠르나고라)'이라는 이름으로 국명을 바꾸어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은 국제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2006년 몬테네그로가 다시 독립하면서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연방도 완전히 해체되어 버리고 말았다. 2008년 2월에는 코소보마저도 세르비아의 반발을 무릅쓰고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인정하고 있는 나라와 세르비아, 중국, 러시아, 인도 공화국, 그리스, 이라크, 모로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스페인 등 인정하지 않는 나라들로 나뉘어 있어[10] 코소보는 사실상 미승인 국가로서 남아있는 상태다.

그 결과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에 국가해체를 택했던 소련과 평화적으로 분리된 체코슬로바키아와 달리 유고슬라비아는 폭력적인 전쟁과 정치적 다툼을 수반하며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마케도니아등 총 6개의 나라로 분열되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5. 국가(國歌)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국가는 세르비아의 국가인 《정의의 하느님(Боже правде)》, 크로아티아의 국가인 《우리의 아름다운 조국(Lijepa naša domovino)》, 슬로베니아의 국가인 《전진하라, 영광의 깃발을 향해(Naprej, zastava slave)》,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세르비아의 국가인 《정의의 하느님》을 각 4행씩 조합한 것이었다.http://www.youtube.com/watch?v=vA28qpGybno&feature=related

한편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구 유고)과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신 유고),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국가는 《슬라브인이여(Hej, Sloveni)》였다. 이 노래의 멜로디는 폴란드 국가와 거의 같다. http://www.youtube.com/watch?v=cKvgUi_rXsw&feature=related

나라가 분리된 지 얼마 안 되는 경우 개별 대표팀을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분리 전 같은 나라였던 나라들이 단일 팀을 구성하기도 하는데[11] 보통 단일 팀 국기나 국가는 임시로 만들어 쓴다. 하지만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단일 팀(대회 도중 분리)은 구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국가와 국가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6. 유산

역사 속으로 사라진 유고슬라비아지만 유고슬라비아의 승계국가 자리를 놓고 구 유고 국가 사이에 논쟁도 만만치 않다. 일단 세르비아의 경우, 수도 베오그라드가 있어서 붕괴 전 유고 연방의 정치적, 외교적 주도권을 잡고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된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수립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잡은 나라가 바로 세르비아라면서 유고의 승계국은 세르비아라고 주장하고 있다.[12] 그러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경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국부인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크로아티아인 아버지와 슬로베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을 명분삼아 유고슬라비아의 승계국가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라며 세르비아의 승계국 주장에 반발하고 있다. 이 밖에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등도 유고슬라비아의 정통성을 승계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13]

만약 이 지역이 조각조각 떨어져 독립하지 않고 그대로 유고슬라비아로 지속되었더라면,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떡밥은 축구팬들 사이에서 오랜 논쟁이 되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유고 연방에 속하는 국가들에서 그야말로 엄청난, 1980~19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었기 때문이다. 선수 목록을 살펴보자면,

사페트 수시치(Safet Sušić) - 보스니아 [14]
흐리스토 비다코비치(Risto Vidaković) - 보스니아
다르코 판체프 (Дарко Панчев) - 마케도니아
네나드 마슬로바르(Nenad Maslovar) - 몬테네그로
데얀 사비체비치(Dejan Savićević) - 몬테네그로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Predrag Mijatović) - 몬테네그로
드라간 스토이코비치(Драган Стојковић) - 세르비아
고란 부녜브체비치(Горан Буњевчевић) - 세르비아
고란 조로비치(Горан Ђоровић) - 세르비아
슬라비샤 요카노비치(Славиша Јокановић) - 세르비아
시니샤 미하일로비치(Синиша Михајловић) - 세르비아
블라디미르 유고비치(Владимир Југовић) - 세르비아
보라 밀루티노비치(Бора Милутиновић) - 세르비아[15]
밀린코 판티치(Милинко Пантић) - 세르비아
즐라트코 자호비치(Zlatko Zahovič) - 슬로베니아
알렌 부치시치(Alen Vučkić) - 크로아티아
다보르 슈케르(Davor Šuker) - 크로아티아
즈보니미르 보반(Zvonimir Boban) - 크로아티아
로베르트 야르니(Robert Jarni) - 크로아티아
로베르트 프로시네치키(Robert Prosinečki) - 크로아티아
이고르 슈티마츠(Igor Štimac) - 크로아티아
드라잔 예르코비치(Dražan Jerković) - 크로아티아

등등... 이외에도 많다. 이들이 유고슬라비아라는 한 국가 아래에서 뛸 수 있었다면 적어도 유로컵이나 월드컵 등 주요대회 우승은 한 번 차지할 수 있었겠지 않았겠느냐는 이야기다. 실제로 당시 이들이 활약했던 1980년대~1990년대 초반 유고 대표팀 및 유고 청소년 대표팀은 공포의 대명사였다.[16]

그러나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인해 1992년 유로컵이나 1994년 월드컵을 비롯해 90년대의 주요대회에 유고팀이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마케도니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이 차례로 독립하고 결국 나중엔 몬테네그로도 떨어져나가면서 유고 축구팀은 완벽히 해체되었다. 결정적 계기는 보스니아 내전. 내전이 시작하자마자 미국, 영국 등 서방세계의 NATO 가입국들의 주도로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는 신 유고 연방에 대한 경제 재제와 무역 금수 조치가 단행되었고, 신 유고는 UN 회원자격도 박탈되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부분은 스포츠 부분이었다. 올림픽이나 FIFA 월드컵, 유니버시아드 대회 등 각종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도 경기 출전 금지령까지 내려졌던 것.

그렇게 벌어진 1992년 유로컵은 안습의 극치였다.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1991년 조별예선에서 7승1패 승점 14점으로 1위를 차지했으나 이듬해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인해 모든 국제활동이 금지되면서 유로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당시 같은 조 2위는 6승1무1패 승점 13점[17]이던 덴마크였는데, 대회개막 1주일을 앞두고 잉글랜드와 친선전을 가지려던 덴마크는 갑작스런 통보를 받고 본선에 출전하여 프랑스,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을 차례로 따돌리고 동화같은 우승을 차지했다. 그나마 1998년 월드컵 때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로 구성된 신 유고 연방과 크로아티아가 각각 월드컵에 진출했고, 이 대회에서는 크로아티아가 4강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키긴 했다.

만약 구 유고 연방이 붕괴되지 않고 이 대회에 출전하여 크로아티아의 멤버 외에 다른 유고 연방 계열 국가의 멤버들이 함께 뛰었더라면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건 14-15시즌 현재도 마찬가지라서, 한다노비치의 슬로베니아를 필두로한다노비치 빼면 슬로베니아는 내세울 선수가 없다는 게 함정 수보티치,이바노비치, 마티치 등을 보유한 세르비아나, 모드리치, 라키티치, 만주키치를 보유한 크로아티아, 피아니치, 에딘 제코를 보유한 보스니아와 요베티치를 보유한 몬테네그로여기도 요베턱 빼면 없다 선수들을 조합해보면 유럽 내 어느 강호팀을 상대로도 꿀리지 않는 막강한 스쿼드를 구축할 수 있다. 하지만 1+1+1+1은 4가 아니라고

참고로 세계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8골이나 득점한 유일한 나라였다는 나름 자랑할만한 기록(1934년 스코어 8:4)이 있었다.#

축구 이외에도 수구나 농구, 테니스같은 다른 스포츠 분야에서도 유고슬라비아는 공포의 실력을 자랑했는데. 만약에 유고 연방이 붕괴되지 않았다면 축구말고도 수구나 농구, 테니스 등에서도 좋은 성적을 더욱 거두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테니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과거 유고슬라비아도 축구 못지 않게 테니스도 강국이었다. 모니카 셀레스나 슬로보단 지보이노비치 등등이 당시 대표적인 국가대표급 테니스 선수들이었는데, 출전 금지령 조치로 이들이 미국 등 국외로 망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유고슬라비아가 분열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세르비아의 노바크 조코비치나 아나 이바노비치, 크로아티아의 고란 이바니셰비치같은 국가대표급 테니스 선수들도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가 아닌 유고 연방 국가 대표로 하계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출전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18]

스포츠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만약에 유고슬라비아가 현재까지 여러개의 소국들로 분열되지 않고 통합된 상태로 남아있었다면 상당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고, 동유럽에서는 상당히 강력한 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거슨 유럽의 안보 불안!

7. 분열이 예정되었던 인공 국가인가?

유고슬라비아에 대하여 분열이 예정되었던 인공 국가라는 비판이 널리 퍼져 있지만, 사실 유고슬라비아가 분열이 예정되었던 인공 국가라고는 볼 수 없다. 유고슬라비아는 비록 종교와 문화에서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이 남 슬라브 민족이 차지하는 민족 구성이고 거의 차이가 없는 언어를 쓰는 등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었으므로 단일 국가가 되기에는 충분한 명분이 있었다. 유고슬라비아가 내부적 다양성이 많았다고 하지만, 유럽만 해도 스페인, 벨기에,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네덜란드 등, 분열되기 이전의 유고슬라비아 정도의 다양성을 가지면서도 통합을 유지하는 나라도 분명 적지는 않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세르비아 주도로 통합한 것은 사실이지만,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역시 (지역 외회 결의 등으로) 이에 동의를 했다. 이 무렵 강대국인 영국, 프랑스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어려운 것이, 원래 영국과 프랑스는 '런던 밀약'으로 이탈리아에게 아드리아 해 해안 지대를 넘기기로 결의했고 실제로 1차대전 말기에 이탈리아는 이 지역을 점령하려했다. 유고슬라비아 통합안은 이에 대한 카운터로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민족주의자들이 주도적으로 주장한 결과 받아들여진 것이므로 강대국들의 강요와 같은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유고슬라비아 민족의 '자의에 의한' 것임이 분명하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유고슬라비아 인들의 합의가 성공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팽 하고 유고슬라비아를 승인해주었다. 중동전쟁을 부른 아랍국들이나, 아프리카의 식민지 출신 국가들이나 베트남과는 이런 측면에서 동일시 할 수 없다. 문제로 볼 수 있는 것은 이 무렵에 이탈리아의 야망 때문에 각 지역이 충분한 합의를 거치지 못하고 급히 통합되어야 했던 탓에 세르비아의 폭주를 유발했다는 정도일 것이다.

유고슬라비아는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권 국가들을 별개의 독립국가로 독립시키지 않고 슬라브랍시고 세르비아로 하여금 한나라로 통일국가를 세우게 한 것만 해도 실패는 예정되어 있었던 국가였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이 방법은 불가능한 것이, 유고슬라비아가 별개의 자치국으로 독립할 수 없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탈리아의 야망이 주요한 원인이다. 당시 강대국인 이탈리아에 대항하려면 민족자결주의를 명분으로서 유고슬라비아 민족이 단일국가로 독립하는 제안을 내세워서 연합국의 승인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이 길을 가지 않는다면 단지 오스트리아의 식민지에서 이탈리아의 식민지로 갈아타는 길 밖에 남지 않았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남 슬라브 민족에게 다른 길을 가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건설은 당시 남 슬라브 민족의 관점에서는 '최선의 선택', 혹은 적어도 그렇게 보였던 정치적 대안이었다.

만약에 아예 오-헝 제국 무너트릴 때 처럼 민족 구성 별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등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르비아에 흡수되어 유고슬라비아로 묶이지 않고 별개의 국가들로 독립했다면 발칸 반도, 동유럽 현대사는 참혹한 전쟁, 학살의 역사가 아닌 평화로운 역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1,2차 대전의 물결에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같은 소국이 평화롭게 살아남을 방법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현재 발칸반도의 혼란상을 고려할때 제1차 세계대전 종전후 서방 강대국들이 전승국들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이탈리아처럼 쥐꼬리만한 땅만 주고 세르비아를 토사구팽했다면 좀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탈리아가 쥐꼬리만큼 얻고 떨어져 나간 원인이 유고슬리바아가 건국되었기 때문이다. 유고슬라비아가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를 유고슬라비아에서 몰아낼 수 있었던 것이므로, 유고슬라비아가 없었다면 미리 맺어진 '런던 밀약'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이탈리아가 이 땅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세르비아와 이탈리아를 둘 다 팽하는 선택은 이미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죽은 이후 해체가 기정사실이 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억지로 존속시키지 않는한 애초에 연합국으로서는 불가능한 선택이다.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존속은 더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당시 발칸 반도 지역에서 일어났던 남슬라브 통일 운동도 몆몆 현지 지식인들과 지도자들만 주장했고 대다수 일반 민중들에게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민족주의 운동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일반 대중이 민족주의와 무관한 것도 아니다. 주장한 지식인이 소수였더라도 결국 따라간 대중이 있으니까 민족주의 주장이 목소리를 얻은 것이다.

여러모로 따져볼 때, 유고슬라비아는 내부의 문제가 많이 있기는 했으나 실상 이 내분 요소들이 내전으로 인한 국가 붕괴를 필연적으로 부를 만큼 중대한 사안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유고슬라비아 정도의 내부 문제를 가지고도, 내전과 학살 같은 폭력 충돌 없이 국가를 유지하는 나라들은 매우 많이 있다. 실제로 내전 이전까지 유고슬라비아 인들은 크로아티아 인이건, 세르비아 인이건, 보스니아 인이건 서로 평화롭게 교류하면서 살았다는 증언도 많이 있다.

따라서 유고슬라비아가 결코 처음 시작부터 잘못된 나라였다고는 볼 수 없다. 유고슬라비아는 평화로운 통일 족국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얻었으며 오히려 많은 나라없는 민족들에 비하면 강대국들의 승인을 받아서 상당한 규모의 인구와 영토를 가지고 독립국의 지위를 얻었으니 운이 매우 좋고 외부의 대우도 좋게 받은 편이다. 실제로 티토의 지도력과 공산주의 이념체계 였다는 점을 고려해도, 유고슬라비아는 수십년 동안 평화롭게 국가 체계를 갖추었으며 동서 냉전 사이에서 단독 노선을 걸으면서 독자성을 유지했고, 제3세계 비동맹 운동의 주축을 맡을 정도로 외교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결국 유고슬라비아가 냉전 붕괴 후 통합에 실패하고 국가들끼리 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여러 개의 소국들로 쪼개진데에는 티토 사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프란요 투지만, 알리야 이젯트베고비치, 밀란 쿠찬, 키로 글리고로프등 민족주의, 지역주의를 앞세워 정권을 쟁취하려던 정치 지도자들의 잘못이 크다. 충분히 대화로 해결하여 통합을 유지할수 있었던 사안들을 전쟁, 분리독립 이탈로 날려버린게 한 둘이 아니었다. 유고슬라비아의 비참한 종말은 그 어떤 외부 요인보다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기보다는 사소한 차이를 빌미로 삼아 증오와 폭력을 강화시켜나며 극단주의를 추종한 유고슬라비아 인들 스스로의 잘못이 가장 크다.

어쩌면 지역감정이 초 극대화되어 생긴 비극이라고도 볼수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은 정치 지도자들이 지역감정을 내세워 국민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었을 때, 민족국가가 맞이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비꼬며 유럽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가 1914년 여름, 1차대전이 터지고 나서 유럽은 모든게 바뀌었지만 100년이 지나도 그 전쟁의 발단이었던 보스니아가 세르비아 땅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다.

여담으로 유럽연합에는 2004년 슬로베니아가 가입했고, 크로아티아2013년에 가입했다.. 그리고 세르비아가 가입을 신청했으며, 그 밖에 마케도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의 가입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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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1991년유고슬라비아 내전 이후로는 몬테네그로 방면만 붙어 있었다.
  • [2] 몬테네그로인과 보스니아인이 빠졌다. 세르비아인과 별도로 구분하지 않고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인 또는 세르비아인으로 분류했던 모양이다. 덧붙여서 세르비아 북부에 위치한 보이보디나 자치주에는 헝가리인, 슬로바키아인, 루마니아인, 루신인 등 수많은 소수민족이 있다. 하지만 중심 민족 정도는 아니니 크게 상관은 없을 듯하다.
  • [3] 크로아티아어, 세르비아어는 소통이 가능하지만 마케도니아어의 경우에는 오히려 계통상 불가리아어에 더 가까워 의사소통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슬로베니아어의 경우에도 개통상으로는 크로아티아어에 가깝긴 하지만 의사소통에는 다소 지장이 있는 정도로 완전히 같지는 않다. 게다가 최근들어 언어가 급격히 분화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모양새지만 여전히 큰 틀에서 놓고 보자면 아직 크게 지장이 있을정도는 아니다. 알바니아어의 경우 같은 인도-유럽어적이기는 하지만 라브어군이 아니므로...
  • [4] 현재 쓰고있는 라틴문자는 류데비트 가이라는 사람이 1835년에 보완한 것이다.
  • [5] 단, 키릴 문자를 사용했던 몬테네그로는 로마자도 같이 사용하며, 독립 이후 오히려 로마자 사용을 좀 더 선호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알바니아어, 스니아어도 동로마 제국에 속한 지역이었지만 로마자를 사용하는데, 정확히는 오스만 제국 지배당시 이슬람교 문화권에 속했기 때문에 '아레비차(Arebica)'라고 하는 아랍문자를 변형한 알파벳(아랍 문자에서 유래한 문자들 중 유일하게 완전한 모음자가 존재하는 형태이기도 하다.)을 오랫동안 써오다가 20세기 초에 서서히 로마자로 갈아타기 시작했으며, 1941년에야 아레비차를 완전히 폐지하고 로마자 정서법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 [6]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은 냉전이 종식되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에 참가할 수 있었다.
  • [7] 사인이 심장마비 및 노환이었다는 세르비아 측의 공식발표가 있었으나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 [8]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은 자유진영, 친미, 친서방 진영의 국가들보다는 공산권과 좀더 친한 편이었다. 오히려 유고슬라비아는 서방세계 국가들과 관계가 좋은 편이었다.
  • [9] 반대와 기권은 엄연히 다르다.
  • [10] 자세한 내용은 코소보/독립 인정 국가 목록을 참조.
  • [11] 반대 사례도 있었는데 독일 통일 직후 열린 세계 여자 핸드볼 선수권 대회에서는 구 동독과 서독 팀이 별도 참가하였다.
  • [12] 하지만 세르비아는 구 유고 연방 해체과정에서 일어난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인종학살등 전쟁 범죄 과오등으로 인해 국제사회로부터 구 유고 연방의 정상적인 승계국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 [13] 옛 소련의 승계권을 확실히 이어받은 러시아와 달리 유고슬라비아는 전쟁등 혼란한 과정을 겪으며 해체되었기에 어느 나라가 승계자인지는 알 수 없다.
  • [14] 1955년생. 아래 언급된 선수들보다는 대선배.
  • [15] 1944년생.보스니아 수시치와 더불어 나이가 많은 축구선수였다.
  • [16] 이는 1987년 20세 이하 칠레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것으로 증명된다. 보반, 야르니, 프로시네치키, 슈케르, 미야토비치 등이 출전했다. 당시 조별예선에서 칠레, 호주, 토고를 각각 4:2, 4:0, 4:1로 가볍게 제압하고, 8강, 4강에서는 브라질과 동독을 각각 2:1로 무찌르며 결승에 진출, 서독을 승부차기 끝에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 [17] 당시에는 승리시에 2점, 무승부시에는 1점을 주는 제도였다.
  • [18] 그러나 테니스는 축구와 달리 굳이 유고슬라비아가 아니더라도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등 연방에서 갈라져나온 국가들도 충분히 최강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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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9-17 14: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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