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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마이단

last modified: 2015-04-14 11:20:43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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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8일 우크라이나 키예프 독립광장에서 벌어진 반야누코비치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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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시각으로 본 유로마이단.[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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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우크라이나 관련 사건
유로마이단 2014년 크림 위기 2014년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

Contents

1. 명칭
2. 원인
3. 발단
3.1. 정부의 방침에 봉기하다
3.2. 유혈사태와 정권 붕괴
3.3. 러시아의 개입과 분리 독립 가능성
4. 러시아의 개입
5. 크림 위기 이후 : 돈바스 전쟁
6. 야누코비치 변호
7. 기타 관련 사건사고
8. 스스로 무너지는 혁명

1. 명칭

유로마이단에서 유로는 유럽을, 마이단은 이번 시위의 중심인 키예프의 마이단 네잘레즈노스티[3]를 의미하는 것으로 직역하면 유럽광장이 된다. 이것이 트위터를 통해 전파가 되기 시작했다. 참고로 마이단은 페르시아어 '메이단'(میدان)에서 온 단어로[4], 우크라이나어에서 러시아어와 유사성이 보이는 "플로시차[5]"를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러적 정체성"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 원인

2013년 11월 시위가 일어나던 당초에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유럽연합 가입 및 경제협력 진행을 포기하고 러시아와 우호적인 협력조약을 맺는 것에 반대하면서 발생했다. 본 항목에서는 유로마이단의 발생과 과도정부의 탄생, 이후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까지 다룬다.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은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2010년대 우크라이나 정국 혼란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소련 구성국이였던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시절의 우크라이나 대기근, 타타르족(타타르어를 쓰는 소수민족) 및 러시아인의 우크라이나 이주에 따른 우크라이나 내 민족 및 언어권 구성과 이로 인한 지역갈등, 니키타 흐루쇼프크림 반도 우크라이나 공화국 귀속 결정에, 2004년의 오렌지 혁명과 그로 인한 친서방 유시첸코 정권 탄생, 이후 유시첸코 정권의 분열과 이로 인한 우크라이나 내부의 정치지형 변화, 남오세티야 전쟁과 이로 인한 동유럽의 위기심,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로 인한 신흥국 위기에 따른 우크라이나 경제위기 등등이 다 들어가야 하지만, 이럴 경우 원인이 내용, 전개, 결과보다 더 길어지는 관계(…)로 직접적 발단이 된 2013년 말 이후의 상황부터 축약 서술한다.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우크라이나의 끊임없는 내부갈등, 즉 친러 동부지역과 친서방 서부지역의 갈등이지만 이를 촉발시킨 것은 국가재정, 즉 문제였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와 그로 인해 파생된 신흥국 경제위기에서 우크라이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였고, 우크라이나는 13년 말이 되면서 외환의 보유고가 터무니없이 부족해지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돈을 꿔주겠다는 세력이 2개 존재했고, 빅토르 야누코비치 행정부는 둘 중 하나를 택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 두세력은 EU / IMF로 대표되는 서방 세력, 그리고 러시아였다.

아래의 그림들은 우크라이나의 당시 상황을 다룬 각종 만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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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이쪽으로!" 러시아: "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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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코비치 前 대통령의 진퇴양난.

양측이 우크라이나에 제시한 차관 규모는 러시아는 150억 달러, 유럽연합은 200억 유로이다. 문제는 조건이었는데,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에 강도높은 개혁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미 IMF로부터 한두 차례 차관을 제공받고도 이를 갚지 못한 우크라이나였기에 서방으로선 당연히 빌린 돈을 되돌려받기 위한 자구책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조건은 우크라이나의 경제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재편성, 특히 연금의 일부 삭감이나 가스 소비자가격 인상[6]등의 신자유주의적 요구안이 주내용이었다.[7]

반면, 러시아는 무조건적인 차관 지원을 약속했다. 말 그대로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 거기에다가 더 싼 가격에 가스를 공급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반론: 이런 러시아의 "조건없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야누코비치 정권은 친 러시아에, 동부의 러시아계의 지지를 받는 정권이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 친러시아 정권이 우크라이나 내에서 유지된다는 것만으로도 자국의 이익을 우크라이나 내에서 대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나, 야누코비치 정권은 EU 가입을 백지화 함으로써, 러시아가 가장 걱정스러워 하던, 자기 앞마당까지 EU 국가가 들어오는 것을 야누코비치 정권 동안 막을 수 있었다.)

단순히 차관뿐만이 아니였다. 2013년 말에는 우크라이나는 EU와 무역이 중요한가, 아니면 러시아와 무역이 중요한가 양자일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결국 빅토르 야누코비치 행정부는 여기서 서방의 요구를 거부하고, 러시아와 협정을 맺기로 결정하니 이것이 2013년 12월의 일이었다.

3. 발단

3.1. 정부의 방침에 봉기하다

2013년 11월 21일, 이 결정에 대해 서방은 우크라이나를 자신들의 영향권에 넣으려는 구상이 실패한 것에 크게 아쉬워했으나, 우크라이나의 정당한 결정이니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야권, 우익, 반러, 친서방 세력들은 이 결정으로 우크라이나 경제가 완전히 러시아에 예속당할 것을 두려워했고 이를 막기 위한 시위에 나섰다.


베르쿠트가 시위대를 공격하는 것이 생방송되는 모습

11월 30일, 베르쿠트가 시위대를 공격하면서### 79명 이상이 부상당했고, 이로 인해 다음 날인 12월 1일 키예프에서 대규모 봉기를 열었다.


12월 8일에는 키예프의 레닌 동상을 시위대가 무너뜨렸다.

이들의 반대는 격렬했고, 야누코비치는 이에 굴복하여 서방과의 협상을 재개하기로 하였다. 이후 시위가 잠시 잠잠해졌으나 야누코비치는 위의 결정을 뒤엎고 오히려 이참에 반대파를 억누르기로 결정한다. 시위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시위를 금지하는 반시위법을 제정, 공표한 것을 계기로 반대파가 완전히 폭발. 2014년 1월 이후부터 대대적인 반정부운동이 시작되었다.

결국 반시위법에 대한 반대가 반시위법을 공표한 정부와 정권 전체에 대한 반대와 불복으로 이어지면서 EU와의 협상 재개를 요구하던 시위는 전면적인 반정부 투쟁으로 번져나갔다. 야누코비치 정부 역시 물러나지 않고 진압을 천명하여 수도 키예프는 1월에서 2월 초중순까지 대규모 시위와 이의 진압이 반복되었다.

시위가 확대되면서 정부 역시 보다 더 과격하고 강압적으로 진압에 나섰고, 진압이 점점 과격해지자 시위대는 진압부대에 맞서기 위해 갑옷방패, 심지어 투석기까지 동원해 무장을 했기 때문에 수도인 키예프에서는 중세 시대까지나 보였던 중장보병들간의 라인전이 벌어지는 상황까지 일어났다. 도심 곳곳에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며 사실상 해방구를 형성하고 경찰들과 격전을 벌였다. 게다가 무력충돌의 수위가 심각해서 중장보병들끼리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었고 결국 정부 측이 총을 발포하고 시위대도 활과 새총같은 원거리 무기로 대응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8]


키예프 시가전 중 시위대의 새총


이 정도면 사실상 내전이나 다름없다. 10년 전 오렌지 혁명이 심장마비로 발생한 사망자 1명을 제외하면 사실상 무혈혁명이었던 데 비해 이번 시위는 이미 본격적인 유혈사태로 넘어간 상태다.

3.2. 유혈사태와 정권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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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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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본 우크라이나 사태.

결국 2월 19일 이후 야권과 정부간 협상도 성과 없이 결렬되고, 양측의 충돌은 본격적인 무력 동원과 유혈 충돌로 확대되었다. 야누코비치 정부는 시위대의 도심 집결을 막기 위해 지하철 운행을 중지시켜 버렸다. 또한, 키예프로 향하는 고속도로#, 철도 등#도 완전히 운행을 중지시켰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진압에 나선 정부는 총기를 사용하기 시작한다.[9]

2월 23일까지 80명 이상의 시위대가 경찰의 발포로 사망했고, 특히 저격에 의한 사망자는 20명 이상이 집계되었다. 한국의 광화문에 해당되는 마이단 광장은 위 사진과 같이 불타고 있으며, '티투쉬키(Titushky)'라 불리우는 폭력단 무리[10]가 시위 가담 여부를 가리지 않고 시민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우크라이나 전역에는 계엄령이 발령되었고, 정부는 군대를 동원할 계획을 검토했다. 내전과 다름없는 상태에서 학교 및 관공서는 휴교-휴업에 들어갔다. 주민들이 식량을 사재기하면서 마트의 재고는 텅텅 비었고, 길거리에서는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정권 교체 이후 알려진 일이지만, 이때 야누코비치 정부는 군 부대를 진압에 투입하려 하였으나 군이 진압작전에 투입되면 엄청난 비극이 초래될 것이었기에 결국 군 투입은 일어나지 않았다. 폴란드 외무장관의 말에 의하면 바로 그 푸틴이 군병력 투입에 반대했다고 한다.

이 와중에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EU, 미국 및 나토 등 서방 측과 러시아 측의 의견대립이 격렬해지고 있어 이들이 각자 지지-지원하는 야권과 정부 모두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참조 기사

2월 21일, 사태가 확산되고 사망자가 급증하자 독일, 프랑스, 폴란드 3국 외무장관의 중재하에 정부와 야권간 타협안이 통과되었다. 주요 내용은 2014년 이내 대선 실시와 야당이 참여하는 거국적 연립내각 구성으로 서방은 이 중재안으로 우크라이나 위기가 종식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위대 내에선 '시간을 벌려는 정부의 꼼수'라며 반발하는 움직임이 있어 시위가 곧바로 끝날지는 미지수였다.

2월 23일, 결국 反야누코비치 시위대는 시위를 계속하여 키예프의 대통령 집무실을 점령했고,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의 석방과 동시에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의회에서 탄핵되었고, 야누코비치는 동부의 거점 도시 하르키우(러시아명 하르코프)로 피난을 갔다. 의회에서는 전날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원내 최대 야당인 조국당 소속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의원을 임시 대통령으로 지명했다. 한편 야누코비치는 하르키우에서 TV중계를 통해 "의회 결정은 불법이며 쿠데타 행위, 나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며 물러나지 않겠다." 고 밝혔다.[11] 그 후 새벽에 동부국경 도네치크(러시아명 도네츠크) 주의 공항에서 뇌물을 주고 국외 탈출을 시도하다 국경수비대에 걸려 실패하고 그를 호위하던 무장군인들과 함께 사라졌다고 전해졌다.

같은 날 의회에서는 동부 지역에서 사용되는 러시아어의 제2 공용어 지위를 박탈하는 안건이 통과되었다.[12] 그러나 3월에 투르치노프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즈음에 집권여당이었던 야누코비치의 지역당마저 대통령을 축출하는데 찬성했고, 지역당 소속 의원 및 키예프 시장이 집단으로 탈당하는 등 전면적인 집권세력의 붕괴가 현실화되었다. 이후 지역당은 야권과 공조하여 야누코비치 축출 및 신정부 수립에 협조하고 있다.

2월 25일에 5월 선거를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티모센코 전 총리도 후보로서 결격이 없음을 선거위원장이 천명했다. 그녀는 지난 22일 석방되었다.

'부패한 암군' 야누코비치도 축출되었고, 유로마이단의 '민중 혁명'은 그들이 원했던 친서방 국가 설립에 성공한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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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푸틴이 유럽연합에게 다가가는 우크라이나를 막다

자자, 우리 러시아인들은 경제 정책의 사소한 차이점 때문에 오랫동안 이어져온 의리를 절대 버리지 않소이다...

3.3. 러시아의 개입과 분리 독립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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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내 전처는 소유욕이 좀 강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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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해도 러시아에게 경제적으로 많이 의존하는 상황에서 과연 이게 얼마나 갈지 우려하는 분석도 많이 나오고 있다. 바로 옆이 러시아이며, 당연히 친유럽 성향의 새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이전같이 러시아에 대항하면 천연가스 동결 같은 굴욕적인 상황은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수 있다. 거기에다가 EU자체도 밑빠진 독을 이미 네 개나 갖고 있는 상황이라...

야누코비치 전 정권이 괜히 러시아랑 협상을 한게 아니다. 위에 언급했듯이 러시아가 무역보복을 한 시점에서 2013년 말 우크라이나는 수출이 확 줄어들고, 물가는 크게 올라 그대로 가다가는 국가 경제가 파탄 날 지경이였다.

10여 년 전 함께 반러시아 시민혁명에 성공했던 조지아도 경제관계에서 러시아가 워낙 깊이 얽힌 상황 탓에 반러감정을 오래 이끌지 못하고 남오세티야 전쟁으로 두들겨 맞아 결국 저항의지를 접고 말았는데, 우크라이나도 덩치만 조금 더 클 뿐 러시아에 반항하기 힘들다는 점은 조지아와 비교하더라도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리고 동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일편단심 친러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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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각에서는 아예 서로 나뉘어져서 각자 갈 길을 가자고 하는 말도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은게 우크라이나에서 경제적으로 능력있고 부유한 지역은 동부인데, 그곳은 위에 서술했듯이 대표적인 친러시아 지역이다. 그렇기에 나뉘어지더라도 친 서방적인 서부는 한마디로 공업화 이전의 대한민국처럼 새로 출발해야 할 판이다. 아니, 정말로 6.25 전쟁 직전과 비슷하다. 캐나다퀘벡 주스페인바스크 지방과 같은 지방과는 상황이 다른 것이, 그쪽들은 분리 독립을 추구했거나 지금도 추구하는 지역이지만 잘 사는 지역들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군사개입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우크라이나가 분열되는 것은 미국, 러시아,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 러시아는 대내외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통일성을 존중한다고 밝혔었다.

한편 미국 내에서는 최악의 경우 러시아가 군사 개입하여 동부를 합병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지만, 우크라이나를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가입국인 폴란드와의 사이에 완충지대로 남겨 놓는 것이 러시아의 군사적 이익에 부합한다는 분석도 있다. 미 폭스뉴스는 러시아는 무력보다는 에너지 수출입과 경제 원조 등 기존 카드로 우크라이나 과도정국을 지배하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크라이나 경찰은 야누코비치 대통령에 대해 수배령을 내렸다. 공항을 통한 출국 실패 후 하르키우를 전전하던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경호원들에게 떠날 것인지 남을 것인지 선택권을 주었고, 남은 경호원들과 함께 3대의 차에 나눠타 러시아로 도망갔다고 한다.[13] 지역당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배신자라 부르며 선긋기를 시도하고, 동남부 지지세력의 반발이 예상보다 시원찮은 것 등의 이유로 정권 탈환을 포기, 망명을 시도 중이라고 보는 분석이 있다.

이런 가운데 야누코비치와 대선 경쟁을 벌였다가 패배 후 구속되었던 율리야 티모셴코가 석방되고, 5월에 조기 대선을 치르기로 해 키예프 정가(政街)는 빠른 속도로 '포스트 야누코비치' 체제로 접어들었다.

한편 빠르게 야누코비치 세력이 몰락하고 신속하게 친(親) 서방 세력이 급부상하자 러시아계가 많은 동부 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저항도 표면화되고 있다. 실제로 크림 반도의 일부 도시에서는 주민들이 시위를 벌이다 시청 청사에 러시아 국기를 게양하는가 하면, 오데사나 세바스토폴, 케르치, 그리고 하르키우 등에서는 친러시아 성향 주민의 저항 시위가 터지고 있다. 그에 대응해 과도정부 환영 시위도 열리고 있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시위대 진압 등에 나섰던 수천명 규모의 특수부대 "베르쿠트"의 해체를 선언했다. 100여명의 대원들은 야권에 합류했지만 상당수는 사표를 쓰거나 무기를 들고 부대를 이탈했다고 한다. 뒤이어 세바스토폴 시장은 "우리는 파시스트들에게 탄압 받는 충성스러운 군인들을 환영하며, 시 정부는 도시 방위를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대놓고 싸우자는 이야기인데... 실제로 세바스토폴로 귀순한 대원들이 있으며, 사진 러시아는 귀순한 대원들에게 러시아 여권들과 시민권들을 대거 발급하라고 외교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미국, EU의 경고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적극 개입하긴 어렵지만 대신 경제적으로 종속시킨 만큼 이를 통해 크림 반도를 분리독립시킬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상황이다. 굳이 군대를 개입시킬 필요도 없이 크림 반도를 알아서 분리 독립을 선언하도록 뒤에서 배후 지원만 좀 한 다음 러시아 연방으로 복귀시키거나 압하지야, 남오세티야처럼 독립국가로 승인해 주면 그만이다.[14] 군사적인 측면에서 봐도 EU는 군사력이 거의 준 해체 상태고 미국은 중국 견제가 최우선임을 고려하면 군사적 충돌이 생겼을 경우 우크라이나가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크림 반도를 제외하고는 동부 전역이 분리 독립을 선언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애초에 야누코비치조차도 분열은 바라지 않고, 일단 동부의 분위기는 혁명의 우세를 인정하고 사태를 지켜보는 성향이다. 동서부의 정치성향 차이는 뚜렷하지만, 그것이 딱 떨어져서 갈리는게 아니라는 것이다.[15] 2차 혁명 직후 야누코비치의 지지세력 활동이 미약했다는 것을 상기하자. 즉, 그동안 친유럽/친러 대립에서 중립 역할을 했던 키예프가 친서방으로 간 반면, 크림 반도는 원래대로 친러 + 분리 독립, 그리고 하르키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동부는 친러는 맞지만(러시아 국기를 휘날리는 친러 시위가 하르키우, 도네치크에 있었다) 아직 혼란에 빠진 상황이었으나....

그러나 이제 동부 지역에서도 친러시아 시위가 벌어지는 등 분리운동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 중심도시인 하르키우가 친러 시위대에게 장악당했고사진만 보면 여기가 러시아로 착각할 정도로 기세가 등등한 상황이다. 오데사 등 다른 동부 지역 도시에서도 친러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동부 또한 우크라이나계 주민이 많기는 하나 러시아어 사용자가 상당수있고 변변한 정책은 없으면서 삥뜯기씩으로 일관한 우크라이나 정부에 불만이 많은 것은 러시아계와 마찬가지여서 별다른 저항이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지난 16일 러시아로의 편입을 결정하는 투표가 95퍼센트를 넘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되자, 동부지역들에서도 분리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고 있다.[16]

4월에 들어서서도 하르키우, 도네치크, 루한시크(러시아명 루간스크) 등 동부 도시들에서는 친러 시위가 계속되었다. 급기야 4월 7일에 도네치크 주청을 점거하고 있던 시위대가 도네치크 공화국 주권선언서를 채택하고, 5월 11일 이전에 러시아 편입에 대한 주민투표 실시 계획을 밝혔다. 이들은 기존 주의회를 대체해 선포한 주민의회의 이름으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앞으로 평화유지군을 파견해 달라는 호소문을 채택했다.

4. 러시아의 개입

이하의 자료들은 러시아의 개입을 다룬 각종 만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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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 살짝만 좀 들어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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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말 현재, 크림 반도는 러시아에 병합되었고,[17]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도 크림 반도를 따라 분리 독립하여 러시아에 병합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2014년 3월 말, 러시아 하원 부의장을 지낸 인물이 우크라이나를 동서로 분할해 러시아폴란드가 나눠갖자는 제안을 담은 공식 서한을 폴란드 외무부에 보내 파문이 일었다. #

2014년 3월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지역에 러시아군 10만명을 배치했다고 한다. CNN 방송은 미국 정보 당국의 기밀 보고서를 인용해 러시아가 크림반도와의 육상 운송로를 확보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동부를 침공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2014년 5월 28일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외무부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충돌지역으로부터 시급히 '인도주의적' 지원을 해달라는 계속된 요청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외무부는 대부분 의료지원이 될 것이라고는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지난 2월 이후 우크라이나 정국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인도주의적' 지원의 시급성에 대해 경고했다. 6월18일 러시아 국방부 장관 세르게이 쇼이구가 러시아 국가의회 폐회식에서 발언하길,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서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언제라도 신속히 움직일 준비가 끝났다고 발언했다. 사실 러시아군의 동원문제라면 이미 3달전 3월 2일에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국가의회에서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러시아 연방군의 사용요청을 승인받았는지라, 극단적으로 말해 지금당장 러시아군 전차들이 우크라이나 국경선을 돌파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국제여론과 압력인데, 이것도 이라크의 막장화되는 사태때문에 이쪽에만 미국이 관심을 쏟기가... 아무래도 러시아가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을 하게 될듯.

2014년 6월 16일, 러시아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이제 그들(서 우크라이나)을 보살펴 주는걸 끝낼 때가 왔다."라고 언급했다.

5. 크림 위기 이후 : 돈바스 전쟁

© Mallefotz (cc-by-sa-3.0) from
우크라이나 친러 시위대의 상징, 성 조지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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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갈라지고 있다.

크림 자치 공화국이 러시아에 합병된 이후, 크림 반도의 상황이 일단락 되자 분쟁의 불씨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으로 옮아갔다. 4월로 들어서며 우크라이나 도네치크, 하르키우 등 동부 중요 도시에서 친러성향 시위대의 시위가 다시 벌어졌으며 4월 8일 도네치크에서 친러 시위대가 주 정부 청사를 점거하고 도네치크의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 이들은 독립을 위한 주민 투표와 새 의회 소집을 공언했고 뒤이어 하르키우와 루한시크에서도 연방제 도입,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는 친러 시위가 일어났다. 우크라 동부 3개 도시서 親러 시위… 주정부 건물 점거

곧이어 많은 지역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포했다.

도네치크를 중심으로 한 도네치크 인민공화국(4월 7일), 하르키우를 중심으로 한 하르키우 인민공화국(4월 7일), 루한시크를 중심으로한 루한시크 의회공화국(4월 8일), 오데사를 중심으로 한 오데사 인민공화국(4월 16일)이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하였다. 하르키우와[18] 루한시크 의회공화국, 오데사 인민공화국은 4월 중 진압당해 사실상 소멸했으나[19] 루한시크 인민 공화국이 4월 26일 다시 선포되어 도네치크와 함께 독립국가로 남아있다.

도네치크와 루한시크는 5월 12일 정부군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분리 독립 투표를 치러 가결하였으며 주의 많은 영역을 통치하고 있다. 이후 이들은 '노보러시아 연방국'으로 통일을 선언했으나 도네치크 측은 연방국가라는 입장, 루한시크는 국가연합이라는 입장이다.

2014년 6월부터 일진일퇴의 교전과 전투가 진행되다가 7월 말부터 정부군이 서서히 승리를 거머쥐는듯 보였으나 8월 중순부터 반군들이 다시 우위를 점해가고 있다.

2015년 2월 6일에 러, 프, 독 3국 정상이 회동을 가졌으며 협상 타결 등의 가시적 성과는 없었으나 프랑스 측에 따르면 건설적인 회담이었으며 러시아, 우크라이나 측의 의견이 포함된 문서를 작성중이라 한다. # ## 아울러 2월 8일 프, 독, 러에 우크라이나 포로셴코 대통령이 포함된 4자 전화 회담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단 분위기는 괜찮아 보이나 향후 진행 방향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진 모른다. 사태가 조속히 잘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6. 야누코비치 변호


야누코비치 입장에선 EU나 IMF에서 지원받는거보다는 러시아에서 지원받는게 나았을 것이다. 당장 2013년말까지 130억 달러를 갚아야 하는데 우크라이나 당시나 현재 경제상황으로는 도저히 갚을 길이 없다. 그냥 또 한번 국가부도가 나는 것이다.

물론 EU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돈을 갚은 상황도 당연히 고려를 했겠으나 EU나 IMF 특성상 돈빌려주면서 혹독한 구조조정을 요구할테고 그럼 당연히 경제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지도 모르는 거고.[20] 그리고 EU역시 회원국내에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의 경제가 역시 막장을 달리고 있어 회원국도 아닌 우크라이나까지 제대로 도와줄지 애매했다. 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었고. 그런데 2013년말까지 갚아야 하는 130억 달러의 채권국이 러시아...

아마 러시아는 자국 주도의 관세동맹에 우크라이나가 참여하면 "야!! 너 돈필요하지 않냐? 상당히 급한거 같은데. 일단 우리랑 동맹 맺으면 내가 돈도 빌려주고 그 130억 달러 나중에 받거나 탕감시켜줄께." 이런 조건의 당근을 내걸었을터. 2013년 중순, EU와 가까워지려하는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입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였는데, 우크라이나의 산업생산성은 8월, 9월, 10월 각각 작년 대비 4.9%, 5.6%, 5.4%씩 떨어졌으며 수출이 10%나 폭락했다.[21] 야누코비치는 친러인데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의회에 대놓고 EU가 요구하는 대로 법개정을 주문하는등 EU와 협상에 최선을 다했다. 사실 2013년 9월까지만 하더라도 우크라이나 국회의장은 법개정에 긍정적이었다. 허나 국내 정치적으로 서방의 차관제공 조건에 따르는 경제개혁 폭탄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22] 경제적으로는 안그래도 우크라이나의 최대 채권국이자 가스공급국인 러시아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로 가다가는 국가 경제가 파탄 날 지경이였다.

야누코비치는 돌아가는 정황상 러시아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7. 기타 관련 사건사고

우크라이나는 니켈광석 주요 수출국인데, 우크라이나의 정세가 혼란스럽다 보니까 니켈광석에 대한 공급에 대한 우려로 니켈가격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엔 14개월 최고치를 경신했다. # 또 다른 주 수출상품인 밀등도 급등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밸브 잠가라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천연가스 동결은 자원수출 위주로 돌아가는 러시아 경제에도 타격이 큰 이중 칼날이다. 게다가 미국과 EU의 각종 경제재재 때문에 S&P는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부정적)으로 떨어트렸는데, 여기서 한 단계만 더 떨어지면 투자주의등급이다(...) 덕분에 연초부터 골골거렸던 러시아 주식시장(Micex)은 더욱 급락했으며, 러시아 10년 만기 국채는 9.6%로 폭등했다[23]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최고치다.

우크라이나는 3월 이후 러시아에 무기와 기타 군수품 및 부품들을 공급하지 않고 있다고 유리 보리소프 러시아 국방차관이 5월 31일 발표했다. 그는 "러시아가 이미 선불한 무기들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이타르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보리소프는 그 대금이 약 1억4300만 달러로 우크라이나의 그런 행동은 이 나라의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6월 25일. 러시아 정부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오는 방산수입품 95%를 취소시킨다고 발표했다. 일단 아주 필수적인 것들만 받고, 나머지 95%는 올해 말까지 전부 수입취소절차를 밟는다고. 아예 우크라이나에서 부품이나 물건을 들여와야하는 방산물품을 완전히 차단. 대체제를 찾거나 아예 러시아에서 자체생산하기까지는 대략 2년 6개월 정도가 걸릴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8. 스스로 무너지는 혁명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3월 26일 유로마이단 사태에서 무장투쟁을 주도했으며 이후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로부터 폭동과 검찰에 대한 공격 혐의로 수배중이던 극우민족주의 단체 '프라비 섹토르'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알렉산드르 무지치코"가 25일 자신을 체포하려던 경찰에 저항하다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 인물은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로부터의 수배 외에도 체첸에서 20명 이상의 러시아 군인을 고문하고 살인한 혐의로 국제 수배가 되어 있던 인물이기도 했다고 한다.
우크라 극우단체 대규모 시위…지도자 사살 항의

3월 31일 키예프 독립광장 인근 한 식당에서 극우단체 소속의 30대 남성이 총을 난사해 3명이 부상당했으며 그 가운데는 키예프 부시장도 포함됐다. 이후 경찰과 지도부 간의 타협으로 이들이 시외곽 휴양소로 떠나면서 상황이 해제됐다.#

한편 5월 28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는 지난 2013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이어진 반정부 시위에서 시위대가 무장 경찰과 충돌 중 사망한 사건 조사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며 내무장관 아르센 아바코프의 사임을 요구했다.

유로마이단 시위로 정권이 퇴진하고 새로운 대통령 선출이 되기까지 벌써 3달이 지났는데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는 아직도 바리케이트와 각종 단체들이 만든 천막들이 잔뜩 늘어서 있다. 그래서 키예프 시의 새로운 시장으로 선출된 비탈리 클리츠코가 이런 불법 시설물들을 이제 철거해 달라고 요청하자, 그것에 반대한답시고 타이어들을 불태우고 총기를 내보이고 항의하는 시민들을 야유하며 내쫓는 등 추잡스런 행동을 하고 있다. 사실 키예프 중심가 뿐만 아니라 외각의 휴게소나 시 북쪽에서도 비슷한 상황들이 있었다고 한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은 "이번 대선이 국민이 기대한 평화와 안정 대신 학살을 가져왔다"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24]

6월 15일, 친 키예프 '돈바스 대대' 사령관 세멘 세멘첸코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에게 '반역자'들과 싸울 국가 서비스를 창설하라고 촉구했다.

"... 그리고 어떻게 반역자들을 통제할 것인가? 아마도 지금이 반역자들과 싸울, 민-군의 고급 및 중급 편성이 포함되는 SMERSh (스메르쉬) 혹은 그와 유사한 특수국을 창설할 시간이 아니겠는가?" - 세멘첸코의 소셜 네트워크 Facebook 페이지.

영화와 록밴드, 행위예술가들을 돕는 수단이었던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이 군대의 무장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넷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동부지역에서 분리주의 세력과 교전하는 정부군의 무장이 허술해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에 자극받아 최근 각종 장비와 물품을 마련해주기 위한 모금활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 3개월간 이뤄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정부군에 제복과 방탄 조끼가 제공됐는가 하면 지난주에는 반군과 군사장비의 월경 침투를 감시하기 위해 '국민 무인기'를 전달하자는 호소도 성과를 거두었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피플스 프로젝트(People's Project)'는 무인기 구입에 충분한 자금을 확보했으며 이를 반군이 장악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 상공을 정찰하는데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플스 프로젝트는 당초 대당 16만5천달러인 이스라엘제 무인기 혹은 12만 달러인 미국 무인기를 구입할 계획이었으나 3만5천 달러에 무인기를 제작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설계전문가와 일단의 자원봉사자들이 기체를 만들고 우크라이나 국방연구소가 필요한 정찰 장비를 장착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구축한 IT전문가 다비드 아라하니아는 "20대의 무인기를 확보하면 분명 우리 국경의 안전을 보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적에게 도움이 되지 않도록 '국민 무인기'의 사진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르하니아는 러시아군이 크림반도를 유린하던 지난 2월 현지의 정부군 일선 기지를 방문했고 병사들이 찢어진 방탄조끼와 위장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압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아르하니아는 곧바로 '국민 보병대대'라는 이름으로 크라우딩 펀딩을 시작, 충분한 성금을 모아서 필요한 장비를 전달했다. 아르하니아와 그의 동료들은 '국민 무인기' 사업이 일단락됨에 따라 '2차 국민 보병대대', '국민 저격부대' 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사이트 운영은 모두 7명의 자원봉사자가 맡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전직 공수부대원 출신의 자원봉사자가 무기상과의 협상을 담당하고 있다.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한 홍보활동에 주력한다.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구소련 붕괴 직후 90만에 달하는 병력을 보유했었으나 현재는 9만명에 불과하다. 구소련 시절에 비축했던 장비는 도난을 당하거나 매각됐다는 것이 국방 전문가들의 말이다. 이 때문에 사병들은 스스로 군복을 마련하고 있다. 루한스크 지역의 초소를 지키는 한 장교는 "내가 소지한 물품 가운데 군대가 준 것은 칼라슈니코프 소총과 방탄 조끼 뿐"이라면서 그나마 방탄조끼도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구입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키예프 포스트의 편집부국장 카티야 고르친스카야는 오랜 부패와 예산 부족으로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말라버린 근육'을 방불케 한다면서 "전쟁을 하게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도 이웃 국가가 공격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민 무인기' 사업은 군대를 돕기 위한 다수의 크라우드펀딩 가운데 하나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 정권에 항의하는 시위가 가열될 당시 시위대에 방탄조끼를 만들어준 여성 그룹의 리더 디아나 마카로바는 요즘 동부 지역에서 작전을 벌이는 정부군에 필요한 물자를 전달하고 있다. 언론인 출신인 마카로바가 이끄는 민간재단은 지난 2개월간 도네츠크 지역에 바지와 야시경을 비롯한 온갖 물자를 차량에 실어 보냈다. 지금까지 공급한 물자는 모두 차량 10대분에 달한다.

2014년 7월 17일, 동부 우크라이나 반군 점거 지역을 지나가고 있던 말레이시아항공 소속 민항기가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었다. 당시 비행기에 승객 280명, 승무원 15명이 탑승하고 있었고 총 295명이 전원 사망하였다.

우크라이나 키예프 독립광장에서 8월 7일 우크라이나 특수경찰 '키예프-1(Kiev-1)'과[25] 야권 정권 교체 시위대 '마이단(Maidan)'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러시아로 망명하고 새 정권이 설립된 후 거의 대다수의 시위대들은 자기들 본업으로 돌아갔지만 이들 일부 수백명은 여전히 마이단 광장을 떠나지 않고 계속 탠트를 치고 농성을 벌이고 있는 중. 시 당국은 '키예프-1'을 동원해 지역 주민들에게 민폐를 자행하는 이들의 텐트를 철거시키려 하고 있다.article|default # 이걸 취재한 사이먼 오스트로프스키 기자는 "혁명이 스스로 무너진다." (The Revolution turns against itself.) 라고 보도했다.[26]

우크라이나의 내전이 대통령 탄핵 시위로 치닫고 있다. 8월 29일 키예프에 소재하는 우크라이나 군사령부 건물 근처에서 시위자들이 모여 표트르 포로셴코 대통령 탄핵을 강력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UNN등[27]이 잇따라 전하고 있다. 이번 시위에 참가한 민중들은 우크라이나 동부 군사작전에 참여된 군인들의 가족, 친지, 그리고 극우민족파들 중심으로 결집한 시위대로 내전에 의한 인명피해 등을 직접 본 관련자들이다.

수천명에 달하는 이들은 “포로셴코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우크라이나 동부 군사작전을 중지할 것과 발레리 겔레테이 국방장관 퇴임을 외치면서 이같은 시위는 대통령이 탄핵될 때까지 지속할 것임을 밝혔다. 정부군과 전투에서 부상당한 세묜 세묜첸코 돈바스(우크라이나 동부) 민병대 대장의 신병안전도 함께 요구했다. 민병대 수장은 중상으로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것으로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이 같은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고 시위는 우크라이나 전 국민에게 빈곤과 정치적 독립에 대한 시그널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한 의원이 시위대에 의해 쓰레기통에 쳐박혔다.

9월16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의회를 나서던 비탈리 쥬라브스키(Vitaly Zhuravsky) 의원은 성난 시위대와 맞닥뜨렸다. 쥬라브스키 의원은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ich)가 속했던 지역당 소속이었다. 그는 지난 1월 반정부 시위를 규제하기 위한 각종 법안을 제출하는 등 시위대와 심한 갈등을 겪어왔다. 시위대는 의원을 쓰레기통으로 밀어넣은 뒤, 쓰레기통에서 나오려는 의원의 얼굴을 내리 누르거나 통을 흔드는 등 격렬한 항의를 이어갔다. 일부 시민들은 쓰레기통에 있는 의원에 물을 뿌리기도 했다. 이날 유튜브에는 의원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속속 전해졌다.

또 다른 시민이 촬영한 영상에는 쓰레기통 안에서 시위대에 의해 행동을 저지당한 채 항의하는 의원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경찰들은 시위대가 워낙 많으니 그냥 주위를 배회하고만 있고...#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촉발된 친서방 시위 ‘유로마이단’이 오는 11월21일 2014년으로 1주년을 맞는다.#

미국 영화계의 거장인 올리버 스톤 감독이 유로마이단 다큐맨터리를 준비한다고 한다.기사,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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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시각이 아주 틀린것이 아닌게, 시위대 중에 '프라비 섹토르'라는 극우주의자들이 시위대가 정부와 타협하고 물러나려는 걸 총기로 무장하고 거리로 나섬으로서 내전 상황으로 만들어 버렸음이 밝혀졌다. 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4&cid=979840&iid=48746376&oid=023&aid=0002698435&ptype=011(관련기사). 또한, 극우 성향의 우크라이나 자유당 당원들은 시위에서 폭력을 주도(...)하기도 하였고, 이후 우크라이나 과도정부에 참여했다. 자세한 건 자유당(우크라이나) 참조.
  • [2] 앞의 각주 설명이 100% 옳지는 않다. 극우 성향의 단체도 참여하기는 했지만, 유로 마이단은 오렌지 혁명처럼, 일반적인 키예프 시민들의 주도하에 일어난 항쟁이다. 다만 저 사진은 양 떼(일반적인 키예프 시민들) 속에서 양으로 위장하고 있던 늑대들(극우 단체)이 나온 상황인지라...
  • [3] Майдан Незалежності, 독립광장.
  • [4] 마찬가지로 페르시아와 가까운 터키이스탄불의 유명한 관광지인 '탁심 광장'도 현지어로는 Taksim Meydani이다. 같은 어원에서 온것
  • [5] Площа, 대응하는 러시아어는 площадь이다.
  • [6]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로부터 사들인 천연가스를 구매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국내 기업 및 소비자에 판매하고 있다.
  • [7] 실제 친서방 세력들도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엔 반대하지만 서방의 지원조건을 모두 받아들이는 데에도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 [8] 시위대와 경찰 중 누가 먼저 총을 발포하였는지는 논란이 있다. 최초 사망자 20명중 7명이 경찰이었을 정도로 경찰도 총격에 의한 사망사건이 빈발하고 있는 상태였다.
  • [9] 총기 사용 시간은 정부와 시위대간의 의견차이가 있다.
  • [10] 정부 편에서 고용된 폭력배 또는 사복경찰이다.
  • [11] 이 부분은 러시아 정부의 논조와도 일치한다. 특히 러시아 정부는 2월 22일 서방 3국 외상이 중재한 협정이 야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기된 것을 들어 서방을 맹공격했다.
  • [12] 정확히는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제2공용어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2012년 제정된 제2공용어법은, 지역별로 특정 외국어를 쓰는 소수민족의 비율이 10%를 넘기면 그 언어를 해당지역 제2공용어로 인정하게끔 되어 있다. 물론 러시아어권의 혜택을 위한 법이었지만, 서부의 일부 헝가리, 루마니아인들도 이와 같은 혜택을 받았다. 이 법의 폐지 역시 동서부 구분 없이 이뤄진 것이지만 주 타겟이 러시아어권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 가령 러시아어만을 사용하는 공무원은 새로운 법에 의하면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된다(그런데 사실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는 상당한 유사성이 있어 웬만한 시민은 거의모두 우크라이나어/러시아어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 2012년 당시에 법을 통과시키면 우크라이나어가 사라질것이라고 주장하는 야권 세력의 반발이 심했는데 그걸 그냥 무시했었다. 타협이라곤 없는 우크라이나 정치의 일면.
  • [13] 3월 2일 러시아에서 기자회견에 출현하였다.
  • [14] 남오세티야, 압하지야의 경우와 달리 크림 반도 국민은 러시아 연방으로의 복귀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는 듯 보인다.
  • [15] 민족 구성으로 보아도 크림 반도를 제외하고는 러시아계가 우크라이나계보다 많거나 50%를 넘는 지역이 없다. 물론 우크라이나계도 러시아어를 쓰는 경우도 꽤 많고, 또 동부에서는 우크라이나어를 쓰는 우크라이나계들도 친러 정당에 지지세가 매우 높지만 분리 독립과는 좀 다른 문제다.
  • [16] 미국 데일리비스트지는 러시아 정보부대 및 특수부대원들이 동남부지역에서 위조 여권을 소지하고 각종 사보타주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러시아의 속셈은 우크라이나 동부를 사실상 내전상태로 만든 다음 크림과 같은 분리투표절차를 노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 [17] 우크라이나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 [18] 6월 최근들어 반정부군들이 여기에 후방 교란을 시도하고 있다.여기 참조.
  • [19] 그러나 불씨가 아주 꺼진건 아닌듯하다. 여기를 참조.
  • [20] 한국도 IMF 지원당시 아주 장난 아니었지...
  • [21]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게 경제적으로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는 증거.
  • [22] 만약 서방과 협상을 하고 경제개혁과 함께 서방의 차관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 경제가 개혁될 가능성은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물가상승 및 개혁개방으로 폭풍이 휘몰아칠 가능성이 크고 이 폭풍은 야누코비치 정권과 집권 지역당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없애버릴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반대의 선택도 야누코비치를 쫓아내긴 했지만 당시 거기까지 예상했을까?
  • [23] 참고로 현재 러시아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서 이자율을 7.5%까지 끌어올린 상태.
  • [24] 유로마이단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하고 군대까지 동원해서 진압하려다가 실패해서 러시아로 튄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듯...
  • [25] 이들 역시 유로마이단 출신들이다. 前 유로마이단 일원들과 유로마이단이 부딪치는 막장 상황.
  • [26] Simon Ostrovsky. 반군에게 억류되었다가 석방된 그 기자다. VICE 뉴스 소속.
  • [27] 우크라이나의 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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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4 11: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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