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유목

last modified: 2015-04-03 03:11:00 by Contributors

Contents

1. 遊牧
2. 流木


1. 遊牧

참고: 유목제국

가축을 거느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풀밭을 찾아 가축을 기르는 생활 활동. 이들이 유목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축에게 풀을 뜯기다 보면 풀이 없어지기 때문! 열대지역마냥 비 한번 내리면 풀이 우후죽순 자란다면 이럴 필요가 없겠지만, 애초에 그런 열대지역에서 목축을 할 이유가 없다(...) 의외로 이런 현상은 농경민족에게도 흔히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예가 화전. 숲에 불을 질러 경지를 확보하고 지력이 고갈될 때까지 농사를 짓다가 지력이 고갈되면 이동하는 생활이다. 물론 이 경우는 유목보다 환경파괴가 크게 일어난다.

학문적으로 볼때 유목은 크게 Nomadism과 Pastoralism으로 나뉜다. 한국어로는 구분하기 힘들지만, 전자의 경우 일정한 장소없이 물과 목초가 있는 곳을 찾아 유랑하는 형태의 유목을 의미하고, 후자의 경우 여름과 겨울, 혹은 일정 시기마다 정해진 목축지를 찾아 이동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교과서에서는 전자를 유목, 후자를 이목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요뤽(Yörük)이라 불리는 터키의 유목민들은 여름에는 산악지대에 올라가서 양과 염소를 치고, 겨울에는 하산해서 헛간 같은 곳에 양과 염소를 키우면서 여름내 만들어두었던 건초를 주는 식으로 유목을 한다.

전자의 전형적인 유목민으로 알려져있는 아라비아 사막의 베두인들은 자신의 부족들이 공유하는 여름 목축지와 겨울 목축지, 봄 목축지를 순회하면서 목축을 한다. 이는 딱히 영역의 구분이 없는 몽골, 튀르크멘 유목민들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여름이 되어 산악지대로 이주하는 요뤽 유목민들의 모습


초원지대에서는 의 조합을 선호한다. 사막 지대에서는 낙타를 선호하기도 한다.

떠돌아다니는 특성 탓에 하나의 국가가 만들어지기는 어렵다. 때문에 농경민족의 변방 정도로 취급당하는데 대표적으로 말갈부터 거란 여진 몽골 등이 있다. 이외에도 역사에 나타나는 흉노, 선비등이 모두 이런 유목민족에 포함되는데 보다시피 모두 오랑캐로 분류되었다. 흉노와 같다느니 하는 훈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은 말에 익숙한만큼 농경민족보다 전투병력의 비중이 극도로 높고[1] 덕분에 약탈민족으로서의 성격도 크다. [2]때문에 제대로 된 지도자가 나타나면 무시무시할만큼 극도로 성장하며 이것은 게르만조차도 밀어버려서 서로마의 멸망까지 나비효과를 일으킨 훈족의 성장이나 요, 금, 원, 청으로 이어지는 유목민족의 중국 및 한반도 침략으로 이어졌다. 특히 몽골의 경우 칸국들까지 합치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나라를 이루었으며 헝가리까지도 몽골의 피가 섞여 있는 걸 생각하면 그들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할 수 있다.

흔히 생각하는 사막의 민족들은 대부분 유목민족이다. 파르시아아르메니아, 베르베르, 파르족등등..

다만 농경민족을 정복한 후 오히려 그들의 문화에 역으로 점령돼 버리는 일이 흔하다. 특히 중국.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 한반도의 역사는 농업이 정착된 후 이들 유목민족을 막거나 먹히는 역사로 점철돼 있다. , , , 이 모두 이들의 역사이며[3] 이들 민족의 기마부대는 언제나 공포로 군림해 왔다. 대표적으로 병자호란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만 이들은 빠른 성장만큼이나 쇠퇴도 빨라서 거란의 경우 과 금에 의해 멸망했고, 원도 그 엄청난 영토를 생각하면 너무 쉽게 무너져 버렸다. 당장 대제국을 이룬 청도 불과 100년만에 자기들의 언어와 정체성을 거의 잃어버리고 중국에서 소수민족 대우를 받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투르크족 역시 한 때 이슬람의 주도권을 쥐었으나 결국 문화적 헤게모니는 아랍인과 페르시아인들에게 내어줬을 뿐더러, 유목민들 중 거의 유일하게 기독교 문화권에 편입된 마자르 족 역시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유목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은 거의 상실하게 되고 기독교를 받아들인 다른 민족들과 별 차이가 없어지게 되었다.

로망을 가진 사람이 많지만 절대 오해하지 말자. 유목 생활은 농사짓는 것보다 훨씬 고되다. 주로 유목을 하는 지역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겨울이 되면 그 소중한 가축들이 얼어죽거나 굶어죽는 일이 빈발하다.[4] 유목 과거의 영화를 자랑한 몽골은 나름 거대한 영토에 비해 인구가 300만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도 이를 반증한다. 사실 영토만 클 뿐 농경민족이 이미 금싸라기 땅을 차지한 상황에서 그들은 변방에서 사람이 살기 힘든 땅에서 활보한 것일 뿐이며 인구 수와 문화 면에서 상대가 안 되었다.

고구려가 만주를 확장하면서도 만주보다 한반도, 특히 한강에 집중한 이유이며, 유목민족들이 중국을 차지하고도 오히려 중국의 문화에 휩쓸린 가장 큰 이유이다. 농경민족의 경우 산이나 강을 경계로 한 방어선의 확립이나 군주의 정복 욕심에 대외정벌을 한 경우가 큰데 비해 이들은 정말 살기 위해 농경민족을 약탈하기 위해 침략한 것이기에 전투력이 그렇게 높은 것이다. 우리에게 크게 다가오는 만주가 그런 경우인데 공업과 상업이 발달해서 영토가 곧 국력이 되는 근대가 되기 전까지 이 땅은 차지해도 이득이 적고 손해가 많은 땅일 뿐이었다.[5] 중국의 만리장성부터 고려가 9성을 쌓으면서 이들을 저지하고 조선에서도 심심하면 이들을 토벌하러 가면서도 정작 만주에 대한 영토 욕심을 내지 않은 것은 이것 때문이다.[6] 농경민족의 입장에서 이들은 문화를 파괴하는 침략자일 뿐이었다는 것. 거대한 영토에 현혹되지 말자. 그런데 왜 황하의 혜택을 받아 풍족했던 하북은 욕심을 내지 않았을까? 멀고 위험하잖아...

물론 농경기반 정주민들 입장에서는 그들이 같은 인간이라기보단 야만스런 들짐승과 같이 보였겠지만, 반대로 유목민족 입장에서는 정주민족들이 줄에 묶여있는 가축과 같이 생각했다고 한다. 단백질은 유목생활로 충분히 얻을 수 있었으나 생존에 필요한 탄수화물을 얻기 위해서 정주민을 약탈했다는 것. 물론 당하는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뛸 노릇. 달래도 보고 때려도 봐도 도무지 통하질 않으니.. 중국 통일왕조? 세계최강? 훌륭한 탄수화물 섭취용이죠.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베두인 족이 아직 남아 있는데 이들은 애초에 자기들이 마음대로 다녔던 곳이 국경으로 지정되어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일단 통행증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일단락 되었지만 이것은 유목민족의 삶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할힌골 전투의 발단도 이런 갈등으로 발생한 셈. 유목민들이 마음대로 다니던 북방 영토가 소련이며 만주국이며 몽강국의 국경으로 나뉜것은 유목민의 사회에 많은 혼란과 분열을 가져왔다.

유목이 고대적이고 미개하다는 생각이 있지만, 의외로 '유목'이라는 생활양식은 '농경'보다 늦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일단 유목으로 충분한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목민들은 대부분 을 매우 환대하는 전통이 있다. 유목민족이 사는 땅들은 정도는 다르지만 대부분 인구밀도가 낮고 척박한 땅이 많기 때문에 이나 호텔 따위가 적재적소에 있을 리도 없고, 내가 도와주고 다음에 내가 어딘가를 여행할 때도 남의 도움을 받고 상부상조하자는, 광활한 땅을 안전하게 여행하기 위한 상호간의 생존수단으로서의 전통이다. 물론 각박한 현대사회에는 아무리 유목민족의 후예들의 나라들이라고 해도 이런 개념이 다소 약해진 것도 있지만 여전히 이 공식은 도시를 벗어나면 꽤 잘 통하는 편이어서 몽골,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중동베두인이나 투아레그족 등 유목민 천막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외국인 여행자가 따뜻한 차와 식사, 잠자리를 공짜로 해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먼저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고 쉬다 가라고 잡아끄는 경우도 많다.[7]

우리나라에서는 어쩐지 목축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유목을 하는 사람들은 옷차림도 남루하고 화려한 것이랑 거리가 멀다는 편견도 많다. 하지만 베두인과 같이 정해진 영역이 있는 유목민들은 대상(Caravan)에 종사하거나, 잉여생산물을 인근의 정착민 마을에 내다팔아 사치품을 교환하는 식으로 상업도 겸했기 때문에 의외로 부유하다. 참고로 허영만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를 연재할 당시 작품에 나오던 몽골 및 유목민들 귀부인 여성들 옷차림이 화려한 것이나 갑옷을 입고 싸우는 게 오류라고 주장하는 글이 여럿 있었다. 때문에 이 책 단행본에서 허영만이 몽골 취재로 가서 직접 찍은 울란바타르 박물관에 전시중인 당시 여성 귀부인 사진을 싣으면서 유목민이 화려한 옷차림이나 갑옷을 입지 않았다는 건 편견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신부 이야기에 나온 실제 아제르바이잔 쪽 유목여성 옷차림 그림도 실제 옷차림을 보고 그린 것이다.

2. 流木

에 푹 잠겨 우러난 나무를 일컽는 단어,
일부러 나무를 삶아서 만들기도 한다.

라리움이나 아쿠아리움을 만들 때 많이 선호되는 재료
----
  • [1] 농경민족 관점에서 보자면, 기병은 육성하는데 시간도 많이 들고 기수에게도 말에게도 돈이 막대하게 들어간다. 하지만 유목민족의 경우 말이 농경민족보다는 상대적으로 값싸고 사람들 대부분은 말을 탈 줄 안다. 특히 유목민들이 가족, 씨족 단위로 말타고 활쏘며 사냥하는 생활은 스웜 전술이라는 막강한 전술로 바로 사용 가능하다. 간단히 말해 유목민족은 국민들 대부분이 짧은 시간안에 전장 투입이 가능한, 거대한 예비군 집단이라 할 수 있다. 그것도 기병으로.거기다 유목민들같은 경우 수렵까지 병행하는 경우도 많아 활과 같은 투사무기에 대해서도 농부들보다 익숙하니
  • [2] 이는 유목의 특성상 생산량에 한계가 있고 질병 발생빈도가 낮기 때문에 평화기의 인구 증가를 감당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 [3] 단 청나라의 주력인 만주족은 농경과 목축을 겸업하였기에 순수한 의미로서의 유목민족과는 조금 다르다.
  • [4] 몽골에서는 이런 한파를 조드Zud라고 부른다. 기온만 떨어지는 블랙 조드는 그래도 피해가 크지 않지만, 눈이 목초지를 덮어버리는 화이트 조드 때는 그냥 답이 없다.
  • [5] 특히 기후를 많이 타는 쌀농사. 현재 만주 지역에서 좋은 쌀이 나오는 곳은 지열 덕에 그나마 쌀농사가 편한 곳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자. 이마저도 대부분 구한말 이후 한민족이 건너가서 개척한 것이다. 이 지역에서 현재 주로 생산되는 작물인 옥수수감자는 당시에 없었다!
  • [6] 물론 생산력 문제 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문제도 있다. 만주 지방같은 경우, 제대로 된 방어선을 설정하기 힘들 뿐더러 이를 감당할 인구가 없다면 뚫리기 쉽상이다. 그 고구려도 요동 방어선을 제대로 설정하기 전까지 선비족과 같은 북방 유목 민족에게 생각보다 쉽게 털렸으며 요동 지방을 어설프게 지배했던 발해도 제대로 된 방어선을 설정하지 못해 요나라에게 일격으로 당했으니. 게다가 고려 말 공민왕 시절 실행되었던 제1차 요동 정벌에서도 결국 제대로 된 방어선과 병참을 구축하지 못해 요동성을 함락시키고도 내어줬으니(물론 이 경우 당시 남쪽에서 치고 올라오는 왜구도 감당했기 때문에 전선을 확대할 수 없었던 사정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세종대왕 시절부터 단행된 4군 6진에 대한 사민 정책도 이주 과정에서 백성들에 대해 상당한 고통을 유발했고. 다산 정약용도 이 점을 지적하여 국력에 넘치는 요동 정벌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제대로 된 국력을 지니고 패권에 대한 욕심과 역량을 지니고 있다면 오히려 이 지방을 경영하는 것도 괜찮다는 의견을 보였다.) 실제 조선 왕조에서 -왕조 차원이든 민간 차원이든- 이 지방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점은 인구가 서서히 팽창하고 신 대기근과 같은 사태로 당시 국토가 당시 인구를 감당하기 힘들기 시작한 현종 무렵부터였다.
  • [7] 이렇게 선뜻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는 호의를 금전적 관계로 해석하는 실례이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현지인 쪽에서 당당히 대가를 원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건 유목민이 아닌 우리나라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 유목민이 생활하는 천막이 아닌 관광지의 관광객용 천막이라면 돈을 내고 먹고자는 것이 당연하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03 03:11:00
Processing time 0.1763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