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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

last modified: 2015-03-28 09:25:45 by Contributors

Contents

1. 주장
2. 계보
3. 의미

유물론(materialism, 唯物論). ‘오직 유’에 ‘만물 물’을 쓴다. 유물론은 관념·정신·마음의 근저에는 물질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이다. 유심론[1] 혹은 관념론[2]과 대립되는 서양철학을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존재론 사조로서,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서양철학사를 관념론과 유물론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박쥐처럼 오가는 회의주의[3]의 지속된 투쟁사로 정리하기도 했다.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1. 주장


유물론의 입장이란 간단히 말해 "자아와 사람의 인식에 의존하지 않고 사람이 경험에 기초해 인식할 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거나 예속되지 않고 세계나 자연 따위가 주관의 작용과는 독립하여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외부의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상식에 기초해 생각하면 당연한 얘기 같지만 사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실제로 서양철학사에서 유물론은 언제나 소수파에 머물러 있었다(...). 이에 반대되는 의견으로는 관념론 참조.[4]

유물론을 신봉하는 A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눈앞에 컴퓨터 모니터(혹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가 있습니다. 그 모니터의 존재를 여러분은 시각과 촉각을 이용해 확인할 수 있지요. 즉 여러분의 유일한 인식 수단인 경험과 감각을 이용해 그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이 확인은 사람의 감각기관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의한 것이고 그 자극의 원천은 어디까지나 사람으로부터 외부와 관계되는 것입니다. 즉 감각에 반영되는 표상의 원천으로서의 외부와 관계되는 실체의 존재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명백한 실체를 부정하는 관념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말장난, 백일몽 같은 궤변일 뿐이죠. 그런 자들은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뛰어내리든지 시원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오븐에 머리를 처박든지 하면 됩니다." 왜 잘 나가다가 트롤링으로 끝나는 거냐...[5]


2. 계보


유물론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원자론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고대 희랍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이다. 데모크리토스는 당시 인재로서는 철학 분야에서 전혀 새로운 시기를 열어 놓을 만큼 뚜렷이 구분되게 영혼의 존재를 부정했고 모든 현상을 원자의 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등학교 윤리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 에피쿠로스도 유물론을 신봉한 사람이자 원자론을 신봉한 사람이었지만, 두 사람의 원자론은 일정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 차이를 주제로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바로 카를 마르크스.

이후 중세 기독교 사회가 성립되면서 유물론은 철저히 매장당한다. 신과 기적에 대상으로 한 신앙에 기초한 사회에선 당연한 결과. 이후 유물론은 천년이 지나 과학혁명[6]이 일어나기까지 오랜 세월을 인고해야 했다.

18세기 천문학ㆍ역학ㆍ화학 분야에서 전혀 새로운 시기를 열어 놓을 만큼 뚜렷이 구분되는 과학의 바탕에서 본 정확성이나 타당성이 있는 발견이 줄을 이으면서 유물론은 부활의 날개를 편다.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이 시기의 유물론을 신봉한 사람은 불란서의 백과전서파와 그 수장격인 디드로. 이 사람들은 정확하고 일정한 질서가 있는 점이 기계와 약간 비슷한 유물론을 신봉했고 사람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구성 요소를 정교한 역학 기계로 생각했다. 과학의 발전은 역사상 최초로 유물론을 한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만들어 주나 싶었지만.... 버클리칸트 등의 관념론에 밀려 눈물의 버로우를 타게 된다.

이 버로우를 해제한 19세기의 본좌가 바로 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폰 포이어바흐[7]. 19세기 독일은 기독교 교회를 등에 업은 지주계급이 통일과 민주주의를 모두 가로막는 실정이었기에, 조국의 진보를 바라는, 지식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기독교를 공격하려는 수단으로 유물론을 선택하는 예가 잦았다. 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폰 포이어바흐는 그런 사람들 중에도 수장급이었던 철학자로서 심오한 유물론 체계를 이용해 당대에 유행하던 관념론 사조인 신칸트주의[8]나 청년헤겔학파[9]를 논파했으나 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폰 포이어바흐를 역사 속에 영원히 이름 남게 한 것은 자기 자신의 저작이 아니라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웬 듣보잡이 작성한 노트였다(...). 바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총 11개의 짧은 명제로 이루어져 있으며, 증법에 기초한 유물론의 총체를 이루는 핵심 문서이다. 전문은 여기 참조.

현재 증법에 기초한 유물론은 철학계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에서조차도 증법에 기초한 유물론은 그리 환영받지 못하나 유물론에 기초한 경향의 철학은 여전히 현대 철학계에서 주류로서 논의되는데 예컨대 분석철학[10]계에서는 물리 주의라는 이름의 강한 주장을 하는 유물론이 심리철학[11]의 논의를 주도한다.



3. 의미


유물론은 세계나 자연 따위가 주관의 작용과는 독립하여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지식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언제나 미신에 대항한 과학의 수호 이념이었다. 18세기 유물론의 대표였던 백과전서파[12]가 당대 첨단의 과학 지식으로 무장한 지식인들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물론 증법에 기초한 유물론의 핑계하에 이루어진, 국가권력을 등에 업은 사이비 과학이 있었던 것은 수치스러운 사실이지만(...).[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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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唯心論;精神論;우주의 본체를 정신에 관계되는 것으로 간주하여 물질과 관련된 현상도 정신에 관계되는 것의 발현이라는 이론. 플라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이 그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인재다.
  • [2] 觀念論;觀念學;觀念主義;理想主義;본질로서 간주한 정신ㆍ이성ㆍ이념 따위를 이용해 물질에 관계된 현상을 밝히려는 이론. 사물의 본질이나 존재의 근원을 사유나 직관을 이용해 연구하는 학문에서는 유심론, 인생관ㆍ세계관에서는 이상주의라 하며, 외부 세계ㆍ현실 따위를 인식ㆍ체험ㆍ평가하는 의식과 의지가 있는 존재에 기초한 관념론, 외부 세계ㆍ현실 따위를 인식ㆍ체험ㆍ평가하는 의식과 의지가 있는 존재 작용의 객체로서 정신상ㆍ육체상 자아를 대상으로 한 空間性을 띤 외계에 기초한 관념론, 경험에 앞서 태어날 때부터 지녀 가능한 인식 능력에 기초한 관념론 따위가 있다.
  • [3] 懷疑主義;懷疑論;사람의 인식은 주관에 기초하거나 맞서거나 비교되는 관계에 있다고 간주해서 진리의 절대성을 의심하고 더할 나위 없는 지경에 도달하는 판단하지 않으려는 태도.
  • [4] 흔히 유물론과 반대되는 관점으로 관념론이 언급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은 잘못된 분류이다. 실제로 관념론은 인식론의 하나로서 실재론과 반대되는 논리인 일변, 유물론은 존재론 일종으로서 그 반대는 유심론이나 그 유심론이 관념론에 기초한 인식을 끌어다 쓰는 일변, 유물론이 실재론의 입장을 빌리다 보니 양자 간에 대립각이 형성돼서 엄격하게는 관념론을 대상으로 하여 '유심론에 기초한 인식론'이라고 해야 올바르다.
  • [5] 이 트롤링(?)은 리처드 도킨스포스트모더니즘의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까면서 거의 똑같이 시전한 바 있다.
  • [6] 科學革命;17세기 구주에서 일어난 자연과학 분야에서 전혀 새로운 시기를 열어 놓을 만큼 뚜렷이 구분되는 변혁. 근대 과학의 확립뿐만 아니라 정신과 의식의 거대한 혁명을 일으켰다.
  • [7] Ludwig Andreas Feuerbach(1804년 7월 28일-1872년 9월 13일)는 독일의 철학자. 청년헤겔학파를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인재이다. 형법학자 파울 요한 안젤름 리터 폰 포이어바흐의 四男.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철학에서 출발해 후일 訣別. 유물론다운 처지에서 특히 당시 기독교를 격렬히 비판했고 신념이나 생각이 현세에 가치를 두는 행복을 전파, 그 사상은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다운 관점에서 철학사는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과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의 중개한 인재로서 그 이름을 볼 수 있지만, 최근 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폰 포이어바흐를 다룬 연구는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는 해소되지 않은 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폰 포이어바흐 자신의 가능성이 지적되어 있다.
  • [8] 新Kant主義;新Kant學派;19세기 후반부터 독일을 중심으로 Kant 철학의 비판 정신을 부흥ㆍ발전하게 하려고 한 학파.
  • [9] 靑年Hegel學派;少壯Hegel學派;19세기 후반 헤겔학파의 左派.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철학의 보수성을 비판하면서 그 문제점을 혁명에 의해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 혁신파로서 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폰 포이어바흐나 다비드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가 그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인재이다.
  • [10] 分析哲學;과학과 날마다 볼 수 있는 언어의 여러 개념이나 어떤 문제를 대상으로 한 하나의 논리에 부합한 판단 내용과 주장을 언어나 기호를 이용해 표시한 것을 분석하고 그 의미 究明을 목적하는 철학을 통칭하는 말. 현대 英米 철학의 주류로서 기호나 언어의 분석을 이용해 인식의 眞僞나 그 의미를 주로 비판하려는 학문이다.
  • [11] 정신의 본질과 영혼 따위의 마음의 작용과 의식 상태에 관한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철학의 한 분야이다.
  • [12] 百科全書派;百科事典派 ;百科全書家;앙시클로페디스트;18세기 불란서 계몽 시대에, ≪백과전서≫의 집필과 간행에 참가하였던 계몽사상가들을 통칭하는 말. 로마가톨릭교회와 절대왕정에 반대하는 개혁을 지향하였으며, 진정한 인식은 경험이 아닌 타고난 理性에 의하여 얻어진다고 하는 태도로써 근대의 특징이 될 만한 지식ㆍ사유 방법을 전파해 불란서자본가대혁명의 사상에 관계되는 배경이 되었다.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인재로는 디드로, 달랑베르, 볼테르, 케네, 마르몽텔(Marmontel, J.)이 있다.
  • [13] 구소련에서 발생한 국가 전체 규모에서 하는 사이비 과학 인증을 더 알고 싶다면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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